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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호 69_현장에서_꽃을 보려면

2018.07.11 18:27

희동 조회 수:162

꽃을 보려면

 

강수정(진보교육연구소 회원)

 

심각해지는 학급붕괴와 범죄에 노출된 청소년들을 이런 혼란상을 이겨낼 수 있는 강인한 생존 능력의 소유자로 만들기 '신세기교육개혁법(BR법)'이 공표된다. BR 법은 전국의 중학교 3학년 중에서 매년 한 학급을 행동범위가 제한된 일반인이 없는 장소에 이송하여 한 사람씩 지도와 일정의 음식, 그리고 여러 가지 무기 중 한가지씩을 나눠 주고, 마지막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서로 죽이게 한다는 법률이다. 제한 시간 3일 동안 위법 행위에 구애받지 않고 서로를 죽이되, 규칙을 어길 경우에는 특수 목걸이가 폭파하여 목숨을 잃게 된다. 수학여행을 위장하여 무인도에 도착한 학생들은 마치 게임처럼 진행되는 상황에 경악하지만, 생존을 위해 결국 서로의 목숨을 빼앗기 시작한다.

-영화 배틀로얄(Battle Royale, 2000)

학생인권과 교권이 함께 하는 학급규칙

시험 감독을 들어갔는데 교실 벽에 ‘학생인권과 교권이 함께 하는 학급규칙’이라는, 지금은 서로 천하 원수지간인 학생인권과 교권이 사이좋게 붙어 있는 학급규칙이 있는 거다. 누굴까 싶어 출석부를 들쳐봤더니 초임발령을 받아 나와 2년을 같이 1학년을 한 L선생님이다. 순간 함께 한 많은 시간들이 스쳐갔다. 학급야영, 교실야영, 봉사활동, 고기 잡으러 가기 등등 이런 거 하지 않아도 교사 생활하는데 하등 지장이 없는 위험천만한 일을 기획하는 나 같은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우리 두 반은 늘 함께 했다. 거의 매일 아침마다 내가 준비해간 열무비빔밥도 참 맛있었는데... 함께 먹은 밥그릇 숫자만큼 즐겁고 행복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지금은 학폭 가산점 신청이나 성과급위원 참석 등으로 마음의 끈을 놓았던... 이렇게 애쓰고 있었구나... 생각하니 애잔함이 밀려왔다.

답안지를 챙겨 교실을 나오는데 민아 어머님이 종종 걸음으로 달려오신다. 시험감독을 하러 오셨나 보다. 내 얼굴을 보더니 눈물을 글썽이면서 이내 우신다. 힘드셨나보다. 관계에 미숙한 아이들이 관계를 엮느라 서로 지지고 볶고 몸살을 앓는데 지켜보는 엄마의 심정이 오죽할까. 엄마도 엄마가 필요한 것 같아 토닥토닥 안아드렸다.

 

선생똥

교사와 학생들 간에 문제 상황이 발생하면 늘 내 마음은 이미 교사들을 배반할 준비를 하면서 여지없이 학생들 편(?)에 서곤 했다. 학생을 상대적 약자로 설정해서 신통방통하게도 순식간에 아이들의 편에 서는 놀라운 선택을 했고, 그 순간에 내심 ‘스따’를 자처하며 심지어 자랑스럽게까지 여기면서 이방인이 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성격은 안 좋은데 착한 덕에(이게 말인지 막걸린지 모르겠지만, 암튼~ 그렇단다) 이런 미운털이 박히는 행동을 천진난폭하게 노출하는데도 다행히 교사들에게 ‘따’당하지 않고 학교라는 테두리 안에서 외롭지 않게 30년을 살았다. 심지어 교사들을 욕하기까지 했던 나다. 그랬던 내가 요즘 슬슬.... 교사 편(?)에 서서 분개할 때가 더 많아졌는데 그만큼 교사들의 처지가 참담해졌다는 반증이다. 궁지에 내몰린 교사들의 노동이 힘겹고 애처롭다. ‘선생똥은 개도 안 먹는다’는 말이 왜 생겼는지 이제사 알겠다.

 

학교폭력위원회

교사노동의 소외와 왜곡을 부추기는 중심에 ‘학교폭력위원회(이하 학폭위)’가 한 몫을 차지한다. 너무 끔찍해서 보는 내내 치를 떨면서 봤던 일본 영화, 배틀로얄(Battle Royale, 2000)의 ‘신세기교육개혁법’이 연상된다. 교사는 교육의 비전문가이며 교육개혁의 대상화로 보는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독선을 배경으로 깔고 최악의 상황을 설정해놓고 오만가지 오물덩이를 학교로 끌어 들여 전문가임네 하면서 ‘우월하시고 존경받으시는 법조인님들’께옵서 만든 최악의 결정판이 바로 학폭위다. 탄생부터 일그러진 지식계급주의의 완성판이다. 그러니 그의 운명은 자명하다.

아이들이 점점 어려지다보니(어쩌면 자유분방해지다보니) 자기중심성만 창궐하고 관계성이 얕아서 오만가지 욕을 일상어로 남발하며 실컷 잘 놀다가도 심사가 틀리면 설익은 인권의 잣대를 촘촘하게 들이대면서 이전투구를 벌이며 물고 뜯고 싸운다. 그러다말면 그야말로 굿~인데, SNS에 올리고 부모에게 말하고 교장한테 따지고 급기야는 재판을 요구한다. 사소한 말다툼이나 뒷담이 급속도로 비화되어 대한항공도 울고 갈 학부모 갑질이 탄생되고 그 대단원의 막이 펼쳐지는데 그게 바로 학교 안 리틀 법정인 ‘학교폭력위원회’이다.

아이들 간의 사소한 말다툼이나 뒷담이 오간다. 예를 들면, ‘누구 존나 화장 못해’ 모...이딴 거. 문제 상황이 발생하면 교사가 매개가 되어 관계 회복을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아동의 발달을 이끌면 간단한데 그걸 못 참는 소위 피해 학부모가 학폭위를 요구하면서 전쟁이 시작된다. ‘소통과 협력’을 위한 교사의 지도는 쏙 빠지고 학폭위가 예정된 상태에서 교사는 사건의 전말을 조사하느라 며칠 동안 종일 시달리면서 몸과 마음이 누더기가 되도록 지친 상태로 보고 자료를 마련해야 한다. 수업도 아이들도 방치되다시피한 채 정신없이 조사가 끝나면 마치 죄인이라도 된 듯이 학부모에게 사건의 전말을 보고한다. 이때 주의사항! 일명 피해자(먼저 학폭위를 요구하면 그 사람이 피해자로 선점됨)로 지목된 학생에게 교사의 지도나 조언은 위험하다.

“아니... 선생님도 대통령이 맘에 안 들면 대놓고 욕은 못하지만 뒷담을 하거든. 뒷담을 안 하면 좋겠지만 한다고 뭐가 문제야. 그걸 전해준 아이들이 문제지만 당장 기분이 나쁘더라도 그냥 훌훌 털어버려. 자존감이 강한 사람은 남이 뭐라 하든 신경 안쓰는 거야. 다만, 자신을 들여다보는 기회로 삼으면 되지. 살면서 상처도 받고 또 풀고 해야 마음의 근육이 단단해지고 성장하는 거란다. 학폭위는 좀 더 생각해보자.”

모~ 이런 훈수? 절대 안 된다. 그러면 바로 ‘왜 교사가 2차 가해를 하냐’고 하며 문자질, 전화질, 항의방문은 감수해야한다. 아참, 이때 교사의 손전화는 25시간 풀 작동 되어야 또 다른 티끌을 잡히지 않는다. 연락이 안 된다고 식식거리며 학교로 달려와서는 으름장을 놓는 수도 있는데 이건 걍 애교수준이다. 교사의 소명이니 교육권이니 하면서 생활지도한다고 나서는 교사는 학부모의 고소가 기다리고 있다. 그저 군말 없이 구경꾼의 역할만 충실히 해야 한다.

아이들은 여전히 교육의 대상이며 약자이지만 어느 순간, 복병처럼 똬리를 틀고 있는 학부모라는 존재로 빙의된다. 교사는 칼 없는 칼집만 들고 있었던 죄밖에 없는데 모든 교육 적폐의 책임을 온몸으로 감당하면서 사방팔방으로 먹잇감이 되어 방치되어 있다. 선무당 칼춤 추듯 휘두르는 그들의 칼은 자기 자식을 제외한 학교 안 모든 타자를 위협적으로 겨누고 있다. 마침내는 그 칼끝이 자기 자식을 향하게 될 거라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학폭위가 열리고, 학부모에게 고소당하고, 교감이 경위서를 제출하라고 했다면서 얼굴이 사색이 된 선생님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교감에게 상황을 물어봤다. “경위서가 왠 말이냐? 오히려 학부모 고소를 취하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하면서 너무 억울한 표정이다. 담임뿐 아니라 학생부장까지 사나흘 간격으로 열리는 재판을 준비하느라 너무 지쳐 보여 이 말도 안 되는 학폭위에 딴지를 걸어야겠다 싶어 교장과 학부모위원장(위원장이 학부모다)을 만났다. “왜 학폭위냐? 교사가 일차적으로 지도하고 그래도 안 되면 선도위원회도 있는데 뭣 땜에 학폭위을 여냐?”고 했더니 두 분도 미칠 지경이란다. 교장은 학부모가 요구하면 피할 방법이 없다면서 볼멘소리를 하고 학부모위원장은 생업도 바빠 죽겠는데 학폭위 때문에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마음과 교사의 자존심이 갈기갈기 찢기고 서로의 가슴에 생채기가 나면서 학교를 전쟁터로 만들어 더 이상 추락할 곳이 없게 부추기는 폭력적 막장기구인 학폭위를 당장 폐지하고 교사에게 교육권을 되돌려주어야 한다. 교육 주체들을 말라 죽일 요량이 아니라면!

꽃을 보려면

“선생님 앞에서 울어서 죄송해요. 시험 끝났다고 울반 아이들이 열 명이나 몰려와서 지금 집에서 놀고 있어요. 니네반 ‘다 여기로 다 모였구나’ 했어요. 민아를 사랑해주고 늘 있는 그대로 봐주고 지켜봐줘서 고맙습니다.”

“열 명이나요? 떼로 몰려가 아이들 해 먹이느라 힘드셨겠어요. 감사합니다.”

민아 어머니의 눈물이 마음에 걸려 전화를 드렸더니 시험 끝났다고 울 반 아이들이 잔뜩 몰려와서 놀고 있단다. 흐믓~^^ 아이들도 엄마도 교사인 나도 거울이 되어 서로를 비추면서 이렇게 서로에게 흐르고 있는데, 민아가 그리고 또 우리 아이들이 삐뚤어질 리 없다. 학생인권과 교사의 교육권, 그리고 학부모가 서로 따뜻이 화해할 때 꽃씨 속에 들어있는 잎을, 꽃을 틔울 수 있다.

꽃씨 속에 숨어있는 꽃을 보려면 고요히 눈이 녹기를 기다려라

꽃씨 속에 숨어있는 잎을 보려면 흙의 가슴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려라

꽃씨 속에 숨어있는 어머니를 만나려면 들에 나가 먼저 봄이 되어라

꽃씨 속에 숨어있는 꽃을 보려면 평생 버리지 않았던 칼을 버려라

 

‘수학여행을 위장하여 무인도에 도착한 학생들’에게 생존을 위한 죽음의 게임을 멈추게 하고 들로 나가 먼저 봄이 되는 일. 그 길에서 언젠가 L선생님도 만나겠지. 오늘은 오랜만에 전화 한번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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