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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기간제 교사입니다

 

전북지역 기간제교사

 

저는 기간제교사입니다. 아침저녁 1시간 이상이 걸리는 출퇴근 시간이 버겁고 사고가 많아 평소 가기 두려운 고갯길이 포함된 직장임에도, 몸이 아파도 가족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출근을 합니다. 저는 아파도 안 되고 무슨 일이 있어도 안됩니다. 기간제교사의 대체는 없고, 대체가 필요한 상황은 기간제 교사에게 실직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정규직 교사들이 자유롭게 연가를 사용하는 것은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을 하는 저와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수요일이나 금요일 오후가 되면 출장이 아닌 조퇴로 나가시는 샘의 수업교체를 부탁받아 바꿔드리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연가쓸 때 사유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는 관리자의 말도 저와는 상관없습니다. 기본적으로 기간제 교사는 학교에서 허락하는 날에 연가를 사용해야 합니다. 연가 사용여부를 여쭤보고 허락이 나야 합니다. 고사기간 오후에만 사용가능하고 학교의 행사기간에는 수업이 없어도 업무분장을 맡아 일손을 덜어야 해서 연가 사용이 어렵습니다. 규모가 큰 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는 어느 순간 사라져버려야 하는 존재로, 투명 인간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을 내비치치 않지만 의무에만 오차 없이 투입되어 학교의 관리자, 동료, 학생들의 온갖 뜻을 받들어야 합니다. 연가 사용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면 주제넘고 건방진, 기간제 교사에 적합하지 않은 일꾼이 되어 버립니다.

 

12월 초순 또는 중순에 계약기간 만료가 되면 기말 고사 출제를 마치고 학기말 학년말 업무를 미리 다 정리하고 다시 실직상태로 12월 1월 2월을 보냅니다. 시험 준비하는 아이들과 제대로 된 작별 인사는 어렵습니다. 방학식, 졸업식 등 시작과 끝을 함께 할 수 없는 계약조건에서는 교사와 학생관계는 무시됩니다. 기간제교사도 교사이고, 매 수업마다 또는 쉬는 시간까지 교과를 가르치고 생활지도를 하며 최선을 다해 길러낸 제자에 대한 교사로서 긍지를 내면에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마치 일회용품처럼 단기 노동자로 의무를 요구하는 것에 기간을 마친 사람일 뿐입니다.

그리하여 방학 중 실직상태의 구직자로서, 또 다른 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가르치는 일을 하기 위해 교육청 사이트의 기관별 채용을 검색하고 서류를 제출합니다. 1차 합격 통보 문자와 전화를 받고 또 다시 2차 서류(30장이 넘는 경력증명서 서류)와 면접을 준비하여 다양한 형태의 질문과 요구사항을 듣게 됩니다.

 

2차 전형으로 실시되는 수업시연은 각자 알아서 준비해오라는 학교도 있고, 교과서를 주고 그 자리에서 바로 수업하라는 학교도 있고, 1페이지 분량의 교과서 내용을 주고 바로 수업지도안 짜서 제출하고 수업하라는 학교도 있습니다.

어떤 조건문도 제시하지 않고 그냥 수업하라고 해놓고, 우리가 원하는 것은 모둠수업이었다 고하는 학교도 있는가 하면, 모둠수업을 하니 우리는 강의식 수업을 원했다는 학교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전에 학교에 교과서가 뭐냐고 물어보면 안 알려주기도 합니다. 몇 학년 몇 과를 준비하라고 알려주는 상식적이고 공정한 학교도 있지만 말입니다.

수업시연과 면접점수가 동점이 나왔다고 하면서, 필기시험으로 인력풀에 이미 등록된 상태인데도 자체 테스트를 하겠다며, 시험시간은 몇 분만 줍니다. 해놓고서는 점수가 또 동점이 나오니까 부득이하게 먼저 제출한 사람을 뽑겠다고 합니다. 그 선생님이 서류도 먼저 접수했고 답안지도 먼저 제출해서 먼저 진행했기 때문에 그게 낫겠다고 합니다. 참 어이가 없습니다. 스피드 게임이라고 먼저 말을 하지도 않았으면서 말입니다.

 

어떤 학교는 3명을 동시에 면접하고 영어로 다양한 주제(교사로서의 자질을 쌓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학생을 어떻게 지도할 것인지 등)로 1시간 정도 free talking 후 합격자를 정했습니다. - 공정한 곳에서 나이도 제일 많고 경력이 많은 제가 뽑히게 되어 공정한 절차에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감사했습니다. - 실제로는 나이가 어느 정도 적당히 어리고 경력도 별로 없어야 더 잘 뽑힙니다.- 45세 이후 은퇴할 나이에 나온다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실제로 경력 많은 기간제 샘들과 만나서 이야기 하면, 자리 구하기 어렵고 나이가 많아 외면 받는 것이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근무할 때는 능력과 경력을 원하며 엄청난 업무를 떠넘깁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신분 및 대우는 알바생 취급을 하는 것이죠. 이것이 납득이 안가지만 현실이라서 꾹 참고 살아갑니다.

 

수업 시연을 마치면 면접 전형이 실시됩니다. 그런데 면접관으로 나온 교사와 관리자의 면접질문이 학교마다 제각각입니다. 주로 핵심은 이런 힘들고 과도한 업무를 맡길텐데 할 수 있느냐이고, 면접에서 할 수 있다 답했기에 계약 후에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기간제교사가 온다 하면, 서로 떠맡기 싫은 업무를 몰아주고, 시수를 더 맡기고, 승진하려는 교사, 바쁜 교사, 가정에 일이 있는 교사의 일을 가져다 얹어주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힘든 출장이 있는 업무, 쉬는 시간에도 학생들의 민원서류를 받아 처리해야하는 업무, 학년을 나누어서 수업을 해야 해서 교재연구 및 출제문항 수가 배가 되는 경우 등이 있습니다. 이처럼 기간제 교사는 동등한 업무분장을 절대 따르지 않습니다. 채용된 대가를 몸으로 떼워 비임용고시 합격자로서 의무를 다하라는 암묵적 압박이 작용하는 셈입니다.

 

채용이 되면, 항상 나오는 질문이 교장샘과 어떤 관계냐, 우리학교에 잘 아는 선생님이 누구냐, 어떻게 오게 되었냐 입니다. 아무도 없다 아무 관계도 아니다 하면 실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관리자의 백 없이 와서 근본 없는 사람 취급을 당하기도 합니다.

아는 교사가 있기라도 하면 서로 초반에는 모른채 하기도 합니다. 괜히 오해를 사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백으로 들어왔다는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공립의 경우 몇 년 전 이전 학교에서 같이 근무했던 샘들과 만나게 되는 일도 많습니다. 면접에서 본 경우도 있었고, 채용과정 끝나고 근무 하면서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가웠던 적도 있습니다.

너무 짧게 근무하고 헤어져서 아쉬웠는데 이렇게 다시 보게 되었다고 참 인연이란... 하면서 신기해하기도 하고. 그런데 아직도 여전히 신분의 벽을 넘지 못한 저에게 미안해 하십니다. 제가 더 미안합니다. 아직도 기간제로 떠돌고 있는 떠돌이 신분이라서.... 정말 죄송합니다. 그래서 여러 학교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다시 만나게 되는 일도 너무 많은데, 한편으로는 떳떳하지 못한 신분 때문에 어색하게 다시 만나게 될까봐 차라리 낯선 곳에서 처음 뵙는 분들과 일하는 것이 더 나을 때도 있습니다. 어떤 학교에서는 제가 근무했던 각각 다른 세 곳의 선생님 세 분을 동시에 만나 근무했던 적도 있습니다.

면접에서 저를 떨어뜨렸던 곳의 선생님이 이동을 하셨는지 제가 응시한 학교에 오셔서 면접관으로 저를 다시 떨어뜨리기도 하셨습니다. 저보다 15살 이상 어리신 임용고시 합격 남자 정규샘이었는데 5년 전에 물었던 동일한 질문을 하고 저를 떨어뜨렸습니다. <경력이 너무 많다고 하면서 제가 배워야할 선생님만의 노하우가 무엇이냐, 하면서>

 

채용에서는 지나친 경쟁이 다양한 엉뚱한 상황을 만들어 내는 것을 10년 넘게 지켜보면서 이제는 학교의 현장이 바뀌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교사끼리 신분이 나뉘고, 사실 함께 동료로 같이 가고 싶어도 구조상 그것이 어렵습니다. 정규직 샘들도 기간제샘과 교사로 동료로 어우러지고 싶지만, “아 참, 샘은... .아, 샘은 저희와 다르죠...” 같은 말을 하게 되니 그 분들도 어쩔 수 없을 겁니다. 복무규정이나, 복지 등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에 대화의 제한도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급식시간에 기간제 교사는 기간제 교사끼리 정규 교사는 정규 교사끼리만 식사하고 이야기하고. 어떤 학교에서는 기간제 교사가 혼자이면 정규샘이 먼저 와서 같이 급식실 가자고 합니다. 이유는 기간제 교사가 혼자이면 챙기고 싶다고, 아무도 안 챙기니까 나라도 챙기겠다 하십니다. 이런 분들 중에는 알고 보면 전교조 샘들이 많았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따뜻한 밥 한끼 같이 먹는 것의 힘으로 몇 달을 벼텨주길 바라는 마음이었겠지요. 이것이 다 아이들에게 영향을 줄 거라 생각하고 하신 일이라 생각합니다.

 

성과급 이야기에도 낄 수 없고, 회의에서도 배제되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근무 중에 누가 결혼하고 아프고 누가 돌아가시거나 하면 동등하게 3만원 5만원 냅니다. 하지만, 내가 받을 일은 없는 거죠. 몇 달 후면 떠나게 되지만 업무에서도, 동료로서 사회적 관계에서도 권리는 없고 의무를 다해야 하는 겁니다. 결혼을 축하해주고 어려운 일에 위로하는 것이 싫은 것이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하고 오히려 그렇게 할 수 있는 상황이 감사하지만 저희는 다치거나 병원에 입원했을 때 실직하는 일만 있지 위로 받는 일은 없습니다.

 

저희는 그 누구보다 성실하고 묵묵히 유령처럼, 그림자처럼 학교 현장을 지켜왔습니다. 그러나 저희에게는 의무만 있고 권리는 없습니다. 그저 쓰다 버려지는 일회용품처럼 소모될 뿐인 저희는 기간제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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