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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호 '자본'에 저당잡혀 있는 우리의 몸과 욕구

2001.07.12 14:41

강유미 조회 수:1722 추천:3

문화비평-

문화비평 - '자본'에 저당잡혀 있는 우리의 몸과 욕구

강유미(교육문화분과)

우리의 몸은 유혹당하고 있다. 이영자는 지방을 제거하고자 하는 욕망에 시달렸고, 우리 아이들은 머리를 염색하고 싶어한다. 어떤 선생님은 자신의 누드사진을 인터넷에 올렸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몸의 정치를 이야기한다. 어떤 의도에서 비롯되고 어떤 의미기호를 지니든 그야말로 몸의 시대가 활짝 개화한 것일까.

사실 우리의 몸의 의미는 늘 시대의 사회 맥락과 함께 변화하였다. 그 옛날 플라톤은 세상을 순수관념이 지배하는 이데아계와 물적 세계인 가상계로 구분하였다. 우리의 몸은 본질을 갖는 실체라기보다는 위대하고 순수한 이데아의 반영일 뿐이었다. 그에게 있어 가장 아름다운 것은 육체과 관련된 것이 아닌 영혼의 덕스러움이었다.

중세로 가면 몸은 급기야 천대받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중세의 그림들에서 인물들이 비정상적으로 길쭉하게 그려진 이유는 형이상학적 측면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당시에는 육체를 직설적으로 묘사하는 것 자체가 죄악이었다.

반면 르네상스시대는 신으로부터 인간에게 시선을 돌렸다. 인간의 육체는 당시 예술의 주요 소재로 등장한다. 그것도 아주 정직한 시선으로 투영된 채 말이다. 르네상스 정신과 근세 자본주의 발전은 인간의 자아의식의 창을 열어 젖혔고, 교회와 봉건 영주의 권위에 반발하는 계몽사상을 낳게 하였다.

계몽주의 시대로부터 인간은 이성적이고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아직 미자각상태(未自覺狀態)에서 잠들고 있는 인간에게 던져진 이성(理性)의 빛은 서구 시민사회의 씨앗이었다. 이제 인간은 2중인(homo duplex)으로 정의되기 시작한다. 즉 육체, 요구, 욕망 등을 지닌 동물에 가까운 인간과 사회화된 인격체로서의 인간이라는 2중성을 지닌 인간이다. 인간의 몸과 욕망은 밝은 이성의 횃불 아래에서 합리적 판단의 연습을 통해 교화과정을 거쳐야 했다. 이것이 곧 사회화 과정이며 당시 교육의 본질이었다.

이렇듯 인간의 육체와 욕망이 정신과 주종관계에 놓이게 된 것은 당시의 초기 자본주의 사회적 맥락과 닿아있다. 재화는 한정되어 있다고 믿었던 이 시대에 가장 중요했던 것은 재화의 생산과 튼실한 저축이었다. 생존하기 위해서 그리고 더욱 많은 자본을 축적하기 위해서 인간은 금욕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후기 자본주의에서 우리의 몸은 다른 대접을 받는다. 그야말로 우리의 육체는 무궁무진한 시장 그 자체이며 자본의 가치증식을 위한 잠재력을 지닌 상품인 것이다. 이제 사회는 더 이상 생산과 저축이 아니라 소비에 중요한 가치를 부여한다. 주요한 소비계층이 누구인지를 분석하고 그들이 무엇에 관심을 보이는가를 집요하게 찾아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소비의 욕구를 창출해내기 위한 싸움을 벌여나간다.

후기 자본주의의 생존력이 뛰어난 이유는 우리의 정신적 영역을 상품화시키는데 있다. 고도의 문명 생활을 누리고 있다고 자부하는 현대인들은 상대적으로 정신적 풍만함은 누리지 못한다. 고도의 자본축적 전략으로 압축되어진 시공간 때문에 우리의 삶이 전개되는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파스칼은 인간의 불행이 고요한 방에 들어앉아 휴식할 줄 모른다는 데서 비롯된다고 말했지만 휴식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가시적 성과물로 인간의 존재성이 증명되는 현실 속에서 가만히 명상하거나 휴식하고 있다는 것은 곧 정체되어 있다는 것이며 그러므로 경쟁에서 뒤쳐지게 될 것이라는 말과 다름 아니다. 문화산업은 빈곤해져 가는 현대인의 정신에 초점을 맞추고 그 의미영역을 상품화한다. 철학적 의미를 담은 문학과 고전적 취향의 음악, 그리고 예술적 고뇌가 담겨진 순수미술이 상품화된 것은 벌써 오래 전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문화적 요소들이 대량 소비의 동력이 되어주지 못한다는데 있었다.

이제 문화산업은 놀랍게도 프로이드가 말한 이드의 영역을 탐구하기 시작한다. 우리의 정신 중에서도 무의식의 이드영역은 늘 일탈과 해체를 꿈꾸고 성적 욕망과 폭력 욕구에 굶주려 있으며 무엇보다도 이 영역의 욕망은‘무한’하므로....!, 대부분의 TV광고가 성적 의미를 드러내고 선정적 폭력장면이 들어있는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는 등 대중문화 곳곳에 일탈과‘자유의 팽배’가 나타나는 것은 이러한 맥락과 닿아 있다.

이렇듯 자본은 밑천이 될만한 영역을 확장해가는 동시에 더 빠른 회전을 위해 상품의 생산만이 아니라 특히 소비를 촉진시킨다. 최근 들어와서 디자인과 광고와 같이 소비를 촉진하는 기술이 발전하였고 또한 그 부분의 경제적 활동이 많아졌는데 동시에 이 활동은 문화적 과정으로 나타나고 있다. 오늘날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이미지의 만연 현상이나 문화적 기호들의 범람, 거리풍경의 스펙터클화가 나타나는 것은 자본축적 운동과 무관하지 않은 변화들이다. 소비의 촉진과 판촉 활동의 증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광고매체로 활용하는 방식으로도 나타나며, 특히 일상적 움직임의 가속화 현상을 추동한다. 불황이 지속되어도 밤풍경은 더욱 화려해지며 과소비는 더욱 판을 친다. 동시에 회전시간 단축의 필요성은 내구재 상품만이 아니라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 상품의 대대적인 소비를 촉진한다. 이러한 소비의 욕망속에서 자본주의는 그 생명을 연장해 간다.

우리의 몸은 지금 감각적이고, 일회적이고, 쾌락적이고, 시각적으로 아름답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취급받고 있다. 마치 몸의 시대가 활짝 열리고 포스트 담론에 힘입어 육체의 해방을 이룬 듯 하지만 그 미적기능적 기준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획일적이며 폭력적이다. 우리의 몸은 상품이 되기 위해 수많은 이미지로 전이되고 그 이미지는 상징과 사회적 기호를 창출해내며 마지막으로 이러한 상징과 기호는 또다시 상품화되는 과정을 겪는다.

획일화된 미적 기준, 그것도 자본주의적 축적전략에 상응하는 상품이미지로서의 몸의 기준을 따르기 위해 우리 아이들은 몸부림친다. 어떤 선생님이 자신의 나체 사진을 인터넷에 올린 이유는 이러한 몸의 상품화 체제에 대항하여 우리의 몸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임을 보여주고자 함이었다.

이 사회에서 욕망과 육체의 진정한 주인이 바로 우리 자신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의 욕망과 육체는‘조작된’관리방식의 코드를 따르고 있지 않은가? 우리에게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그 본질을 끊임없이 탐구하며 우리의 몸을 우리 자신이 관리하려는 다른 차원의 욕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헤겔 법철학 비판 서론>에서 맑스는 욕구개념을 설명하면서‘급진적 욕구’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급진적 욕구는 자본주의의 발전과 더불어 형성되고 있으나 자본주의에 통합될 수 없다. 그 토대는 물적이며, 그 구조는 질적이고 그 형태는 비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의식형태이다.”

그는 계속해서 욕구의 범주를 세 유형으로 나눈다. 즉 객체화에 따라 분류되는 욕구 범주, 유기체적 욕구라는 인간학적 범주, 사회적으로 정의되는 욕구라는 정치경제학적 범주가 그것이다. 특히 이 세 번째의‘사회적 욕구’개념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1) 그 기원이 생물학적(동물적!)이기보다는 사회적이다.

2) 사실이나 논리에서 볼 때 공동체적으로만 충족될 수 있다.

3) 욕구대상이 본질적으로 타자에의 준거를 포함하고 있다.

4) 물적 재화와 관련시켜 볼 때에는 한 사회 혹은 한 계급의 욕구의 평균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회적 욕구는 기본적으로 긍정적인 가치를 지닌다. 즉 사회적으로 발전되는 방향을 요구하는 욕구이며 사회적으로, 특히 공동체적으로 충족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 급진적 욕구의 실현은 궁극적으로 자본주의의 논리를 지양하는 실천을 의미한다.

그가 설정한 욕구의 개념이 문화적 욕망과 경제적 소비가 동등하게 수렴되고 개인의 욕망의 분출이 곧 개인의 해방과 일치하는 것으로 보여지는 현 단계에서 어떤 유효성을 가질 것인가에 대해서는 확언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의 몸이 우리의 것이 아닌 이 시대에, 즉 우리의 욕망이 자발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일정한 경제적이데올로기적 체제가 만들어내는 것이며, 우리의 욕망이 해방을 의미한다기보다는 그 체제의 유지에 도움을 주거나 기존 체제에의 편입을 낳을 수 밖에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본질적으로 우리의 욕망에 관한 담론을 재구성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진정한 주인이 되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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