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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기고 프레이리 교육사상 세 번째 이야기

 

프레이리와 교육

 

이성우(구미 도량초)

 

프레이리와 교육을 연결지을 때, ‘교육의 외연으로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한다학교 밖의 교육과 학교교육이다프레이리의 교육사상은 이 둘 가운데 전자를 중심으로 형성되고 발전해온 까닭에 초기에 외국 학계에선 주로 성인교육이나 평생교육 그리고 신학에서 다루어졌다그러다가 80년대 이후 제도권 교육의 문제점들이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기 시작하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지루(Henry Giroux), 쇼어(Ira Shor), 맥라렌(Peter McLaren) 등의 비판적 교육학자들이 프레이리의 사상을 자본주의사회의 찌든 교육에 대한 대안적 모델로 삼기 위해 그의 교육이론들을 연구하고 확장해 가고 있다이 글에서는 교육과 관련한 프레이리의 주요 개념들에 대한 소개와 더불어 학교교육에서 프레이리 이론의 적용가능성 그리고 그의 이론을 보다 원활히 적용하기 위한 대안 모색에 관해 논하고자 한다.

 

 

의식화

 

프레이리하면제일 먼저 떠오르는 낱말이 의식화가 아닐까 싶다프레이리에게 교육의 목적은 인간 해방인데해방을 위한 방법이 의식화이다의식화(conscientizacão), “인간이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성찰(reflection)과 행위(action)를 통해 사회 현실을 비판적으로 자각하고서 그 현실을 바꿔가려는 의지를 품어 가는 과정을 뜻한다유념할 것은의식화가 프레이리의 창안물이 아니라는 점이다이 개념은 1950년대 말 까마라대주교에 의해 널리 보급되었으며군사 쿠데타 이전에 브라질에서 카톨릭 급진주의자들 사이에서 익숙한 개념이었다.

앞의 글(진보교육 69, 2018)에서 살펴봤듯이프레이리에게 주관과 객관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만큼 의식화는 프락시스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문제는행위와 사고의 변증법적 개념체계인 프락시스에서 이 둘 중 어디에 프레이리의 무게중심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이에 대해서는 프레이리의 생각이 일관되지 않다의식화라는 말을 맨 처음 사용한 [페다고지]에서와 달리, 197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 프레이리는 의식보다는 행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경향을 띤다. [페다고지]에서 참된 말을 내뱉을 수 있다면곧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라 한 초기 의식화 개념을 스스로 비판하면서 프레이리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기도 했다.

 

나의 실수는 변화 과정상의 현실에 대한 지식의 근본적 중요성을 생각한 것에 있다기 보다는 서로 다른 이 두 계기(현실에 대한 지식과 그것을 변혁하는 활동)가 변증법적 관계에 있다는 것을 놓친 것에 있습니다이는 마치 현실을 발견하는 것 자체로 현실사회에 대한 변혁을 의미하는 것처럼 되어버린 것입니다.(Freire, 1975 ; Coben, D., Radical Heroes: Gramsci, Freire and the Politics of Adult Education, 1998: 75, 재인용)

 

 

대화

 

의식화가 프레이리 교육의 방법이라면교육의 원리로서 강조되는 것이 대화(dialogue)프레이리에게 프락시스와 대화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대화는 말을 매개로 이루어지는데프락시스와 마찬가지로 말 또한 성찰과 행위의 두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양자는 근본적으로 상호작용하므로 이 둘 가운데 어느 하나가 없으면 다른 하나도 바로 무너진다(Freire, Pedagogy of the Oppressed, 1970: 75). 말이 성찰과 행위의 두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는 프레이리의 언표는 비고츠키의 하나의 낱말은 인간 의식의 소우주라는 명제를 연상케 한다.어린 아이가 낱말을 만나는 것은 철저히 삶을 통해서이다아이는 삶 속에서 이런저런 세계를 만난다엄마든 장난감이든 실물적인 부대낌(행위)과 사고(성찰)이 없이는 그 세계에 대한 의식을 갖지 못한다프레이리의 용어로 설명하면아이는 프락시스를 통해 인간 의식의 지평을 넓혀 가는 것이다.

그런데 어린아이는 달리 추상적 사고력이 고도로 발달한 어른들은 삶 속에서 세계를 만나지 않고서도 낱말에 대한 개념을 획득해 갈 수 있다바로 이 점 때문에 어른들은 진솔한 삶과 동떨어진 허구적인 관념 조작을 통해 세계에 대한 고지식하거나(naive) 주술적인(magical) 의식에 포섭되어 간다이 신비화된 기제를 탈피하여세계의 참 모습을 정직한 시선으로 바라보기 위해 비판적(critical) 의식을 획득해 가는 과정이 의식화이다.의식화란 곧 참된 말(word)로 세계(world)를 올바르게 읽어내는 리터러시 역량을 말한다이 역량의 획득은 참된 프락시스를 통해서만 가능하다프레이리에 따르면, “프락시스가 없이는 참된 말이 존재하지 않는다이런 까닭에 참된 말을 하는 것은 곧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Freire, 같은 책같은 쪽)

그런데그 누구도 혼자서는 참된 말을 할 수 없다참된 말은 이웃들과의 비판적인 토론을 거쳐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한 역사적 과정 속에 뛰어드는 것을 포함한다그래서 프레이리는 대화의 정의를 사람들이 세계를 매개로 하여 세계를 이름 짓기 위해 만나는 행위로 규정한다(Freire, 같은 책, 76). ‘세계를 이름 지음이란 그것을 개조해 가는 과정즉 이웃들과의 소통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변혁하고자 하는 인간의 열망을 뜻한다.인간이 세계를 이름 지음에 따라 그것의 변혁을 꾀하는 것은 참된 말을 통해서 가능하다.

또한프레이리는 대화가 인간화의 프락시스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비판적 사고가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강조한다비판적 사고를 촉진하기 위한 프레이리의 대화는 후술할 문제제기식 교육을 의미한다대화와 문제제기식 교육은 동전의 양면이다대화는 문제제기식 교육을 핵심으로 하고문제제기식 교육은 학생과 교사가 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대화적 관계를 기반으로 한다교사는 더 이상 가르치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고 학생들과의 대화 속에서 자신도 배우는 자가 된다학생들 또한 배우는 가운데 가르치는 사람이 된다이로서 그들은 서로 연결되어 모두가 함께 성장하는 과정을 책임지는 것이다.

 

 

은행적금식 교육

 

프레이리의 주저 [페다고지]는 원제목 피억압자를 위한 교육학에서 보듯이 브라질의 기층 민중들을 위해 쓰인 책이라는 점에서 제도권 교육에서 적용 여지는 멀어 보인다그러나 총 4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방금 논한대화의 개념이 나오는 3장과 2장에는 학교교육에 유용한 메시지가 가득 채워져 있다.

[페다고지]의 2장은 “(학교)교육이 설명병을 앓고 있다는 문제의식으로 시작한다학교교육은 현실과 유리되고 학생들의 삶과도 동떨어진 학습내용을 교사가 일방적으로 학생들에게 주입시키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이런 상황 속에서 학생은 교사의 설명 내용을 부어 넣는 그릇으로 만들어진다.

 

이렇게 해서 교육은 예탁 행위가 된다학생은 예탁소교사는 예탁자이다양측이 서로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교사가 지침을 발표하고 예탁금을 발행하면학생은 끈기 있게 그것을 수용하고암기하고반복적으로 익힌다이것이 은행적금식 교육(banking education)’의 개념이다.(Freire, 앞의 책, 58)

 

그러나 진정한 교육을 전제한 학습자와 학습을 바라보는 프레이리의 관점은 다르다학생은 교사가 채워야 할 빈 그릇이 아니며교육의 대상(object)도 아니다공부는 재발견되고재창조되며재작성 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그리고 공부는 주체(subject)가 하는 것이지 객체(object)가 하는 것이 아니다.[Freire, the Politics of Education, 1985 ; Ira Shor(ed.), 교실을 위한 프레이리사람대사람 옮김, 2015: 34, 재인용은행적금식 교육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이러한 이상적인 교육 상황을 프레이리는 문제제기식 교육(problem-posing education)’이라 일컬었다.

프레이리의 은행적금식 교육 개념은 주입식 위주의 제도권 교육에 대한 통렬하고도 적확한 비판적 수사를 자랑하지만몇 가지 면에서 한계가 있다.

우선이 개념은 프레이리의 독창적인 것이 아니라 사르트르의 다이제스트(digestion)에서 유래한다사르트르는 암기위주의 학교교육에 대한 비판으로서 음식물이 소화(digestion)되어 체내에서 영양소로 분해되어 생물학적 삶의 활력으로 기능하듯이지식을 맹목적으로 머리에 채워 넣는 행위가 결국 사회적 삶에 유용한 자산이 된다는 의미로 이 개념을 썼다프레이리 자신도 은행적금식 교육이 사르트르의 이 개념과 유사하다고 적고 있다(Freire, Pedagogy of the Oppressed, 1970: 63).

다음으로, ‘은행적금식 對 문제제기식은 극단적인 이분법적 속성들로 대비를 이루고 있는 점이 문제이다. [페다고지]의 2장에서 이 두 개념이 대조를 이루는 내용을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은행적금식 교육

문제제기식 교육

()대화적

교사는 전지(全知), 학생은 절대적 무지(無知)

교수만 있고 학습은 없음

교사는 생각의 주체학생은 객체

창조성을 위축시키거나 소멸시킴

사실만 중요하게 취급

인간성을 향한 존재론적 소명 부정

주입식·설명식 교육

현실의 신화화

대화적

교사가 모르는 것을 학생이 알 수 있음

교사와 학생이 서로 가르치고 배움

교사-학생의 이분화 거부공동탐구자

창조성 신장비판적 현실 개입 유도

비판적 교육

인간화 교육

일방적 주입 거부의사소통 도모

탈신화화

 

지금 우리 제도권의 교육은 분명 프레이리의 은행적금식 교육에 가까운 것이 사실이다하지만, “단지 가까울 뿐이지꼭 그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오늘날 우리 교육현장에서 프레이리의 은행적금식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경우는 어디에도 없다지금 학교에서 설명식 수업은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따라서 적어도 형식면에서 은행적금식 교육 대 문제제기식 교육의 양극 대비(bipolar opposition)는 비현실적이라 하겠다.

그러나 내용적으로 프레이리의 은행적금식 교육 개념은 여전히 유효하다교실에 걸린 “1시간 더 공부하면 남편 직장(마누라 몸매가)이 바뀐다는 천박한 구호가 급훈이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걸려 있는 우리 교육현실이 이를 웅변으로 말해준다그렇다면 내용적으로는 물론 형식적으로도 현실성을 확보하기 위해 프레이리의 은행적금식 대 문제제기식은 수정될 필요가 있다.

 

 

문제해결식 교육 대 문제제기식 교육

 

[페다고지]에서 은행적금식 교육 대 문제제기식 교육으로 대비되는 것이프레이리의 최초 저서 [자유 실천으로서의 교육 Education As the Practice of Freedom]에서는 문제해결식 교육 대 문제제기식 교육으로 제시된다전자에 비해 후자의 경우 우리 교육현실에 적용 가능성이 훨씬 높다.

한국에서 천재 소리 듣던 학생들이 미국 명문대학에 진학하여 처음에는 뛰어난 학습역량으로 주위를 놀라게 한다고 한다한국학생들은 문제해결(problem solving) 능력이 뛰어나서 아무리 어려운 문제를 만나도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내는 것이 그들 눈에 놀랍게 보이는 것이다그러나 문제해결 역량은 공부 과정이 깊어질 때 한계가 드러난다이 과정에서 요구되는 지적 능력은 문제해결이 아닌 문제제기(problem posing) 능력이기 때문이다뉴턴이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을 생각해냈듯이인류 지성사에서 위대한 발견은 모두 ?”라는 의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은행적금식 교육을 받아온 한국인들은 잡다한 어려운 문제들을 척척 풀어내는 훈련만 받았을 뿐스스로 문제를 던지는(problem posing) 교육은 받지 못한다이런 수동적인 공부 방식은 이 나라 최고 지성의 전당이라 하는 서울대에서도 마찬가지이다비판·창의력의 높으면 서울대에서 A+학점 받기 어렵다고 한다(2014.10.21. 경향신문). 한국에서 가장 우수한 대학이라는 곳에서조차 이러하니 다른 대학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질문하기를 배우기

 

[질문하기를 배우기 Learning To Question]. 안토니오 파운데스(Antonio Faundez)와 프레이리가 대화 형식으로 주고받은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그 중 한 대목을 살펴보자.

 

파운데스수업에서 질문이 실종되고 있습니다교사와 학생 공히 질문을 망각하고 있는데나는 모든 지식은 질문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지식은 프레이리 당신이 말한 호기심으로 시작되는데호기심은 질문하기와 같은 말입니다당신이 동의하실지 모르지만내가 보기에 오늘날의 가르침이나 지식은 정답 전달만 있을 뿐 질문하기는 없습니다.

프레이리바로 그거예요당신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그게 바로 내가 말한 호기심의 거세입니다.(Freire & Faundez, Learning to Question: A Pedagogy of Liberation, 1989: 34-35)

 

은 모름에서 비롯된다인간은 인식론적 호기심을 품는 존재이다파운데스의 말대로 호기심은 질문하기와 동의어나 마찬가지이기에 모름은 필연적으로 질문하기로 이어진다존 듀이는 [민주주의와 교육]에서 성장의 중요한 요건으로 미성숙을 논하였다인식론적 호기심이 살아 있는 한 무지(無知)는 지적 성장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우리가 통탄해 마지않을 일은 프레이리의 표현대로 인식론적 호기심이 거세된 현실이다.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책상 위에 엎드려 자는 학생들교실붕괴로 상징되는 오늘날 학교교육의 현실이다그러나 글쓴이는 엎드려 자지 않고 열심히 강의 듣는 교실에서도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회의한다수포자의 교실이든 우수학생의 교실이든 질문이 없는 교실에서 배움이 없기는 마찬가지다오늘날 공교육의 실패는 질문의 실종’, ‘거세된 호기심으로 요약된다학생으로부터 인식론적 호기심을 이끌어낼(problem posing) 생각은 않고 그저 정답 제공(problem solving)에만 연연하는 교실에서 배움은 일어나지 않는다.

존 듀이의 말대로학교가 할 수 있고 또 해야 할 전부는 사고훈련 밖에 없다질문하기를 멈추는 것은 사고하기를 멈추는 것과도 같다수업에서 교사는 학생들에게 최대한 많은 질문을 이끌어내야 한다프레이리의 귀한 가르침에 자극을 받아 글쓴이는 요즘 질문을 통한 수업”, 즉 문제제기식 수업모형을 고민해오고 있다현재 글쓴이가 고안한 것은질문의 유형을 다음과 같이 세 종류로 나누고 각각의 의의를 아이들에게 안내하고서 상황에 따라 정서에 따라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도록 권고하는 것이다. <토끼와 거북이>라는 텍스트의 예를 들면,

 

수준-1) 순수한 질문 질문하기가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은 “‘경주라는 낱말 뜻이 뭔가?” 하는 식의 순수한 무지에서 출발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수준-2) 반론 텍스트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한 학생은 비판적 관점을 담아 토끼와 거북이가 경주를 한다는 게 있을 수 있는 이야기인가?” 하는 삐딱한 반론을 제기할 것이다.

수준-3) 비평 최고 수준의 질문으로단순한 반론 혹은 비판을 넘어 초인지적 차원의 대안적 관점을 내놓는 질문이다. “거북이가 잠자는 토끼 몰래 슬그머니 1등을 한 것은 비겁하다나 같으면 어찌어찌 했을 것이다...”는 식의 비평적 관점을 제시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할 것이다.

 

모든 수업이 그러하듯 아이들의 입에서 질문이 터져 나오게 하려면 어떠한 질문도 허용되는 브레인스토밍의 수업분위기가 요구된다프레이리 식으로 말하면교사-학생학생 상호간의 대화적 관계(dialogical relationship)이 필수적이라 하겠다교육이 있기 전에 만남이 먼저 있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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