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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송의 미국생활 적응기

 

2019~2020, 생의 한가운데

 

한송(진보교육연구소 회원)

 

2019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Upenn Christian Association에서 Slanguage 수업을 하는 빌에게서 메일이 왔다. 그의 아내, 앨리스가 2년 조금 넘는 투병 생활 끝에 12월 초에 영면하였다고.

 

빌은 경제학 교수로 근무하다 퇴직 후, 미국 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많은 이민자와 학생들에게 자원봉사로 20여년 간 영어를 가르쳐온 터였다. 빌과 함께 한 Slanguage 수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Slanguage 수업을 취재하는 지역 신문에 우리의 이야기가 실리기도 했다.

<Slanguage 수업을 주관하는 진보 기독교 단체> <Slanguage 선생님, Bill과 함께>

 

나는 그의 학생으로 시작했지만, 그가 부득이한 사정으로 수업을 못 하는 날엔 나에게 수업 보결(?)을 부탁하기도 하면서 우리 관계는 더욱 돈독해졌다. 앨리스는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었으나, 빌을 통해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나는 왠지 앨리스가 알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의 아내, 앨리스는 Penn Medicine에서 근무하는 의사였고, 그녀도 퇴직 후 Contact Community Helplines 라는 자살예방을 비롯한 정신건강 상담 전화 비영리단체와 그녀가 몸 담고 있던 기독교 단체에서 자원봉사로 제 2의 인생을 살며 빌과 함께 쿠바와 아프리카 등지에서 식수 개선 활동 등을 이어나가는 중이었다. 빌과 앨리스는 해마다 서로가 원하는 여행지로 번갈아 가며 여행을 즐기는가 하면, 뉴욕 주 외곽에 있는 가족 소유의 작은 농장을 오가며 농사일을 놓지 않고 그들의 노동의 대가를 주변 사람들과 나누는, 은퇴자로서 모범적인 생활을 해나가던 부부였다. 2년 전, 2017년 가을, 앨리스는 췌장암 진단을 받았다. 빌을 포함한 가족들이 적잖이 충격을 받은 것도 잠시, 원래 계획했던 유럽 크루즈 여행을 떠났고, 다녀와서 치료를 시작했다. 빌은 늘 앨리스의 상태와 치료 과정 등을 이메일을 통해 Slanguage 학생들과도 나눴고, 나는 나의 개인 사정이 여러 가지로 바빠지면서 그의 수업을 못 나가는 날이 많아, 그의 이메일을 통해 앨리스의 상태를 확인하던 차였다.

지루멸렬하나 긴장을 늦출 수 없는 항암 치료는 2년이 넘게 계속 되었고, 앨리스의 몸 상태가 호전이 되면 너무나 기뻐하며 이 부부는 가족 농장을 오가기도 하고, 크고 작은 여행들을 함께 했다. 앨리스의 상태가 나아지는 것 같아, 11월 말에 빌은 다른 일행들과 오랜 기간 해왔던 쿠바 식수 개선 활동을 위해 2주간의 쿠바 방문을 하기도 했다. 쿠바 체류 기간에도 빌은 이메일을 보내, 그 곳에서 어떤 활동들을 하고 있는지 공유했고, 이메일의 말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앨리스가 어떻게 지내는지 걱정이 가득한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했었다. 쿠바에서 돌아온 빌은 앨리스의 상태가 급작스럽게 악화되어 중환자실에 입원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참담해 했지만, 다행히 앨리스 곁에 가족들이 함께 해 안심했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12월 초, 빌은 앨리스가 이제 우리에게 작별을 고하려고 한다는 메시지를 보내왔고, 염려와 위로를 담은 답장을 보낸 다음 날, 앨리스가 평안하게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이 모든 과정에, 9년 전에 돌아가신 나의 아빠의 이야기와 중첩이 되면서 앨리스의 죽음이 마치 나의 가족의 일처럼 느껴지면서 마음이 많이 가라앉고 슬프고, 삶에 대한 경외감과 동시에 허망함이 가득했다.

나의 아빠는 암 진단을 받고 정확히 일 년 만에 돌아가셨다. 지방에 사시던 아빠가 항암치료를 위해 서울로 올라오시면서 온 가족이 서울에서 일 년을 어느 때보다도 똘똘 뭉쳐 살았었다.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일말의 희망이 보이면 가족 모두가 그 희망을 붙잡고 미래를 이야기했고, 그러다가도 또, 의사의 다른 소견에 같이 절망하고 또 위로하고, 했던 일련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아빠의 마지막에 가족이 함께 했다는 것과, 아빠에게 그 동안 말하지 못했던 많은 속 마음을 이야기하고, 아빠의 딸로 태어나 너무나 행복했고, 아빠가 우리 아빠라서 참 자랑스러웠다는 이야기, 오히려 죽음을 준비하는 아빠로부터 많은 위로를 받았던 그 시간들을 앨리스와 그 가족들이 그렇게 겪어왔겠다 생각하니, 애잔하고 안타깝고 그러면서도 이해가 되는 이상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아빠를 보내고, 어느 날, 운전을 하다 숨이 쉬어지지 않은 공포감이 엄습했고, 그리고 나는 불안증이라는 병명을 진단 받았다. 약을 먹고, 상담을 받으며 극복했다기보다 불안이 늘 옆에 있었구나를 자각하면서, 나라는 사람에 대해 처음으로 심각하게 들여다봤던 시기였다. 늘 당차고 멋지게 살았다고 자부했었는데, 나를 처음으로 들여다보니,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가득한, 그래서 타인의 기대에 부응해 정신없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고, 그러다, 울퉁불퉁한 내 자신도 나름 멋진 사람이네, 하며 평안을 찾았다고 생각하던 시절에 결혼도 하고 미국으로 오기도 하고, 그래서 인생에 대해 좀 안다고 어깻죽지에 힘도 주고 했던 시절이 3년 전이었다.

 

미국 생활 3년이 넘어 가면서, 새로운 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지금도 이민자에게 영어를 가르치면서 ‘선생님’이라는 타이틀을 한국에서처럼 붙이고 있는 이 상황이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하루하루 이지만, 일과를 마치고 돌아온 하루가 늘 바깥에서 보이는 활기차고 즐거운 나로 온전히 지내기엔 정서적으로 번-아웃 된 상태라, 어떤 모습이 진정한 나인지, 왜 내가 미국에서 이러고 살고 있나 심히 우울해 하기도 한 상태였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이 영어를 가르치면서, 모국어로 영어를 쓰는 사람들과 함께 수업안을 공유하고 수업을 공개하고, 교수방법에 관한 회의를 함께 하며 겪는 일종의 결핍, 콤플렉스가, 어느 누구도 아닌, 내가, 내 스스로를 심하게 질타하고 자책하게 만드는 심리상태에 스스로 질려있던 상황이었다. 수업에서 학생들과 주고받은 좋은 에너지에 너무나 감동하고 웃으며 집으로 왔다가도, 다시 수업 상황이나 동료들과 주고받은 대화 속에서 또 실수한 그 장면들이 자꾸 머릿속에서 떠나가질 않아 곱씹고 곱씹다 결국은 또 자괴감에 빠지는 것이, 지구가 공전하듯 주기적으로 반복이 되었다. 참, 고약한 것은 나와 함께 수업을 하는 미국인 자원봉사자들도 늘 내게 많은 것을 배우고 수업의 내용이 흥미롭다며 칭찬해 주고, 수업안을 제출하면 덧붙일 것이 없다며 좋은 피드백을 보내주는 부장교사(?)도 있고, 학생지원팀에서도 학생들 사이에 나의 수업에 만족을 표하는 수치가 굉장히 높다며 늘 치켜세워주는 데도, 늘 나를 절벽으로 몰아붙이며 힘들게 하는 것은, 나 자신이었다. It is what it is, 라고 한국인으로, 영어 전공자가 아닌 사람이, 미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이 상황에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며 내가 잘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 가자라고 수없이 다짐해도, 지친 상태에서는 이런 여유조차 가지지 못하고 내일은 어떻게 더 잘 할 수 있을까, 또 스트레스 가득한 상태로 준비하는 모습에 넌더리가 나면서, 왜 여기에서 이러고 살고 있나 했었다. 그렇다고 이 일을 하기 전에 집에만 있던 날들이 여유롭고 평화롭기만 한 것도 아니라서, 일을 만들어서 하는 사람, 나라는 사람의 운명을 또 원망하기도 했었다. 사실 미국 오기 전에, 나의 정신과 의사가 내게 충고를 한 게 있었다. 미국 가서 3개월은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나는 쉬는 연습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3개월은 웬걸... 한 달이 지나자마자 무료함과 더불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불안감에 영어수업을 찾아듣다가 결국은 영어 가르치는 봉사까지 시작하면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이민자 학생들과 함께>

가을이 아름답게 여무는 10월에는, 가을이 어떻게 지나고 있는지도 모르게 바빴다. Welcoming Center 에서 성공(?)한 이민자로서 경험을 이야기 해 달라해서, 또 가서 아직 미국이 서툴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줄줄 읊으면서도, 그럼에도 희망을 가지고 잘 살고 있노라 이야기했고, 또 사람들은 도움이 많이 되었고 배운 바가 크다고 좋은 반응을 보였어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무거운 마음이었다. 그러던 중, 10월 중순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아침에 메일을 하나 받았다. 슈퍼바이저의 아들의 죽음을 알리는 메일이었다. 슈퍼바이저로서 늘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그녀를 보면서 늘 멋있다 생각했는데, 그녀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18살의 세상을 마감하기엔 너무나 젊은 나이로, 새벽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여름휴가 때 아들과 버뮤다 크루즈 여행을 다녀오고, 아들이 너무나 좋아해서 자기도 즐거운 여행이었노라고 웃으며 이야기하던 그녀의 모습이 겹쳐지며 아들이 세상을 떠난 이 상황이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슈퍼바이저는 어릴 때 미혼모로 아들을 낳고 혼자 공부를 계속하며 이 자리까지 온 사람으로 그녀에게는 아들이 전부였던 거라, 어느 부모나 그러하겠지만, 그 아픔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한계를 뛰어넘는 것일 터였다. 이 곳에서는 장례식(funeral)에 앞서 뷰잉(Viewing)이라고 관 뚜껑을 열어 마지막 가는 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순서가 있기도 하는데, 그 뷰잉에 갔다가 아들의 관 앞에 앉아 자식 잃은 어미의 처연한 모습을 그녀에게서 봤다. 말없이 조용히 다가가 안아주고 토닥여주고, 돌아오는데도 그 모습이 한 동안 오래갔다. 그리고 내겐 삶이 이리 한 순간인가, 이리 쉽게 끝날 수 있는 건가, 하는 황망함이 너무나 컸다. 장례식이 끝난 후, 전체 메일이 왔다. 혹시, 정신적으로 슬픔이 강렬하여 상담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알려달라는. 조직 차원에서 정신과 상담을 지원하겠노라는. 그리고 슈퍼바이저는 한 달을 쉬고, 그 이후에 파트타임처럼 간간히 나와 업무를 보면서 Grief Therapy 받는다고 공식적으로 상실의 슬픔에 대한 상담을 받았다. 그녀의 큰 상실은 부정할 수 없는데도, 또 일상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바쁘게 돌아갔다.

 

<Holiday Open House 파티에서 학생들과>

 

그리고 12월이 왔고, 그 사이, 어쩌다 공개 수업을 두 번을 하고, Holiday Open House라고, Fund 조성을 위한 큰 행사가 열렸다. 그 날 오후가 내 수업이 있는 날이라, 오픈 하우스 손님들이 교실로 몰려와 이것저것을 물어보고 학생들과 담소를 나누며, 이 분들 기준에 그들의 기부금이 성인 영어교육을 위해 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확인하는 자리가 있을 수 있는 터라, 그 수업을 이끄는 나로서는 초급수준 학생들과 그 기부자들을 연결하는 중대한 역할이 주어진 것이었다. 교실을 찾아온 기부자 한 명이 정신과 의사였다는데, 초급반이라고 누누이 이야기를 했어도, 그가 쓰는 영어 단어가 너무나 어려운 말들이라 나도 이해하기가 어려워 얼굴만 벌겋게 닳아 오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이집트에서 온 우리 아저씨 학생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 정신과 의사가 뭐라고 하든 말든, 이 수업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선생님과 반 친구들이 친절하게 도와줘서 이집트에 가족을 두고 홀로 미국에 와 사는 자기에게 큰 힘이 된다고 이야기 하는 순간, 나 혼자 전전긍긍하고 있던 그 시간이 민망하고, 이 이집트 아저씨 학생님께 내가 얼마나 힘을 얻었는지 말로는 표현 못 할 감동과 고마움의 시간이었다. 그러면서 다른 학생들도 서툰 영어로 기부자들을 향해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나는 그야말로 천군만마를 등에 진 개선장군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이 분들을 보면서 수업을 하면 되는 것인데, 나의 쓸데없는 콤플렉스가 자꾸 스스로 발목을 잡았구나 하는 기분이었다.

 

<앨리스의 장례식>

 

12월 21일, 앨리스의 장례식이 열렸다.

뉴저지 작은 교외의 그들의 교회에서 열린 장례식장에 들어선 순간부터, 빌과 앨리스의 가족들이 옅은 미소로 참석자들을 맞았다. 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아, 괜찮은가 싶었다. Slanguage 수업을 열던 Upenn Christian Association 담당자, 메건과 롭이 도착하고 반갑게 그들과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식이 시작되자 빌이 가족들과 천천히 입장했다. 장례식장 맨 뒷자리에 앉은 나를 본 빌이 천천히 내게 다가오더니 와줘서 고맙다고 안아주며 인사를 하고 장례식장 앞쪽을 향해 걸어갔다. 그 순간, 롭이 내게 귓속말로, You just made his day, 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20여 년간 Slanguage 수업을 해왔던 빌에게 Slanguage 학생으로선 유일하게 나만 장례식에 온 것이다. 물론, 나조차도 장례식에 참석하기에 앞서, 내가 가도 될 자리인가 고민스러웠던 것이라, 다른 학생들도 참석을 해도 될지 고민했을 법했다. 그럼에도 한 사람이라도 이렇게 와 주어서 빌에게는 의미가 깊었으리라 짐작해본다. 빌은 생각보다 많이 차분하고, 오래 인생을 살아온 사람에게서 풍겨져 나오는 여유가 있었다.

지인이 피아노로 연주하는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로 장례식이 시작됐다. 그러는 동안 장례식장에 설치된 스크린에는 고인이 생전에 지내온 삶이 사진들로 가득 찼다. 죽기 전, 앨리스는 자신의 장례식이 음악으로 넘치기를 바랐다는데, 그녀의 바람대로 월광 소나타가 끝나자, 목사의 짧은 기도문 뒤에, 바로 브루스 스프링스턴(Bruce Sprinsteen)의 “You're Missing" 이 흘러나왔다. 스크린에는 노래의 가사가 올려졌다. 가사 일부만 여기에 적어본다.

 

Shirts in the closet, shoes in the hall

Mama's in the kitchen, baby and all

Everything is everything Everything is everything

But you're missing

Coffee cups on the counter, jackets on the chair

Papers on the doorstep, but you're not there

Everything is everything Everything is everything

But you're missing

 

일상의 평범함은 그대로인데, 너만 이곳에 없구나, 라는 노래인 듯싶다. 2년 전에 빌의 권유로 미국령 버진 아일랜드로 태풍이 지나간 자리를 복구하는 자원봉사에 갔다가, 동네가 내려다 보이는 계단에 앉아 아침을 먹던 중, 누군가 뒤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보스턴에서 전기 기술자로 일하는 나이 지긋한 중년의 미국 여성이였다. 지금은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는 그 분은 장기 봉사자로 왔다가 그 날이 마지막 아침이었는데, 그 곳에 오랜 기간 머물며 매일 아침, 동네를 내려다봤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동네 사람들의 아침 일과가 많이 익숙해져, 이 시간이 되면 저기 파란색 대문이 열리고, 어느 트럭이 어디에서 멈춰 물건을 내리고, 누가 무엇을 하는지 알게 됐는데, 어느 날, 파란색 대문이 조금이라도 늦게 열리는 날에는 혹시 밤사이 무슨 일이 있었나 걱정까지 하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다 둘이 반복되는 일상이 새삼 소중하고 그것을 지켜내는 것도 엄청난 노력이 든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다. 그런 일상이 다 그대로인데, 너만 이곳에 없다는 그 상실감이 또 얼마나 큰 슬픔인지,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아주 천천히 천천히, 그러나 깊숙이 스며드는 상실감에 어쩔 줄을 모르고 있던 내 모습이 겹쳐서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빌과 앨리스의 자식들이 돌아가며 무대로 올라와 앨리스를 추모했고, 뒤이어 손주들이 무대위로 올랐다. 그리고 돌아가면서 마이크를 잡고서 할머니 앨리스와의 추억을 이야기했다.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그들과 울다가 웃다가, 또 토닥이다가 다시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했다. 나는 그야말로, 무방비 상태에서 한 방을 맞은 기분이었다. 앨리스를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나는 많이 울었다. 마지막은 빌이었다. 빌은 앨리스와의 삶을 회상했다. 앨리스가 자신에게 남긴 유언은 자기의 삶을 당당히 살아나가라는 것이었다. 앨리스는 삶에서 2%만 우울했고 나머지는 늘 삶을 보물처럼 가꿔왔다는 것이고, 현재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삶을 축복하라는 메시지였다.

미국 3년 차, 새롭고 즐겁던 시기가 지나고, 내가 가진 온갖 부정적인 상황만 잔뜩 끌어다 굴만 파던 시기에, 죽은 자가 내게 던진 메시지와도 같았다. 장례식의 마지막 곡은 Bridge Over Troubled Water였다. 아빠가 엄청 사랑한 노래여서 노래가 나오는 동안 사람들과 함께 흥얼거리면서 나는 또 많이 울었다. 참 아름다웠던 장례식이었고, 나는 장례식장을 나오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삶에 대한 묘한 기대감과 경외로움으로 가득 찼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학생들과 작은 파티를 했다. 서로에게 고맙고, 감사하고, 특히나 학생들에게, 바쁘고 힘든 일상 속에서 이렇게 시간을 내서 영어를 배우러 온 것에 너무나 감사했고, 그게 존경스러웠다고 했다. 나의 어른 학생들은, My teacher 하면서, 나를 보면서 이민자로서 영감을 얻고, 롤 모델로 참 자랑스럽다고 했다.

불혹이 넘는 이 나이에도 가끔 툭 튀어나오는 어린 자아에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그럼에도 정답은 하나인 듯하다. 언제나 너 자신이 되라고. Be yourself. 문제는 내가 누구인지 모를 때가 많아서 난감하지만, 그것을 알아가는 게 인생의 숙제가 아닌 가 싶다. 세상 어디에 있든, be yourself가 되는 것. 세상과 소통하면서도 나를 알아가는 것, 나를 잃지 않는 것, 나를 소중히 여기는 것. 미국이든 한국이든, 나이가 많든 적든. 그것을 알아가는 과정이 삶이 아닌가 싶다. Treasure your life. 말로 하는 것은 쉽지만 일상에서 지켜지기 어려운 것. 그 어려운 것을 해내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는.

 

올 한해도 너무나 고생하신 선생님들께, 존경의 말씀을 드리며, 새해에는 더 평안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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