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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교육] 62호 (2016.10.21. 발간)


[담론과 문화] 정은교의 몽상록 

괜찮은 대안교과서, 어디 없소?


정은교 (진보교육연구소 회원)


 

 

  정년 퇴직을 하고난 9월부터 동네 도서관에 다닌다. 30년 전 같았으면 시간을 금으로 여겨 더 왕성하게 탐독했으련만 삶의 긴장이 많이 풀린 지금은 대충 쉬엄쉬엄 서가를 훑는다. 각설하고, 요즘은 경제관련 서가書架 앞에 얼쩡대고 있는데 중고생한테 (읽어보라고) 추천할만한 경제 도서가 있는가둘러보고 싶었다. 그 중에 눈에 띄는 책 세 권을 소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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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일방적인 주장만 주입하는 교과서는 동작 그만) 논쟁하는 경제교과서라고 거창하게 제목을 붙인 책이 눈에 띈다. 중고교 교사 넷과 서울사대 교수가 함께 써냈다.논쟁이라고 제목을 붙인 만큼 마르크스와 스위지[20세기 중반의 마르크스주의 학자]의 얘기도 제법 자세하게 들려준다. (검인정) 경제교과서에서 다루지 않은, 변방의[=비주류] 목소리도 담아내고 있으니 그것보다야 훨씬 괜찮은 책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모든 얘기[=주류경제학 + 그 비판 학설]를 다 담아내려고 해서 내용이 너무 방대하다. ‘교과서야 학교가 강제로 읽히는 책이니까 애들한테 수월하게 읽히든 말든 신경을 꺼도 탈이 없겠지만 (실제로는 교과서가 아닌) 그 책이 팔릴지, (설령 팔린다 해도) 애들이 끝까지 다 읽을지는 미심쩍다. 이 책은 대화[방담] 형식으로 서술돼 있는데 그런 형식이라 해도 관련 내용을 웬만큼 숙지하고 있는 사람한테나 쉽게 읽힌다. 학문 초보자는 어떤 형식의 글이든 소화하기 어렵다.

 

일방적인 주장만 주입하는 교과서는 동작 그만?

 

  또 머리말이 마음에 걸린다. 제목부터가 낯설다. 우선 사실관계가 잘못 서술돼 있다. ‘교과서는 보수 일색一色의 것뿐이지, 진보쪽의 교과서라는 것은 현실에 없다. 진보쪽 사람들이 교과서라고 들이밀어봤자 검인정을 통과하지 못하니, 교과서를 쓸 엄두를 내지 못한다. 교과서 아닌 (개개인들의) 숱한 책이 있을 뿐이다.


  “기존의 경제 교과서는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한 쪽 얘기만 다루고 있다.

  (우리는 양쪽 얘기를 공평하게 소개할 터이니 어느 얘기가 옳은지 스스로 판단해 봐라)“

 

  경제 학설의 흐름을 보수와 진보로 나누는 것도 뜬금없다. 진보는 마르크스주의를 가리키는가? 아니면 제도주의 학파와 페미니즘 경제학, 불교 경제학 등등의 여러 (비주류 경제학의) 흐름을 죄다 가리키는가? ‘사다리 걷어차기를 쓴 장하준은 시장주의 경제학에 대해 매서운 비판을 퍼붓지만 자본주의 자체는 단호하게 긍정한다. 그는 보수냐, 아니면 진보냐? 민주당이 진보를 자처하고 있는 마당이고, 대학에선 장하준의 제도주의도 (그의 책이야 베스트셀러가 됐지만) 비주류로서 찬밥 신세를 겪고 있는데 그럼 장하준도 진보라 추어줄 일이 아닌가?


  현실에는 줄곧 시장이 으뜸이요!”하고 되뇌는 (신고전파의) 주류 경제학이 있고 정부도 큰 몫을 차지한다고 눈을 부릅뜨는 비주류 경제학이 있으며[이들은 개혁을 부르짖는다], 시장과 국가 자체에 의문을 던지는 사회주의 경제학이 있다[이 흐름에는 마르크스주의만 있는 게 아니다]. 이 셋을 옳게 구분해야지 뭉뚱그려서 보수와 진보의 이분법二分法을 들이대면 무슨 의미 있는 얘기를 할 수 없다.

  위엣 필자들은 보수와 진보, 둘다 일방적 주장을 퍼붓는다고 싸잡아 단죄했다. 물론 교과서들이 그렇다는 것이지 개개의 학자들을 겨냥한 말이 아니지만 어찌 되었든 자기들 쪽의 교과서를 학교에 배포할 힘이 없는 진보(?)쪽으로서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한테 얻어맞는 꼴이다.

 

  “보수는 시장경제가 몇몇 영역에서 부작용을 끼쳤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고, 진보는 시장경제가 (여지껏의 경제체제 가운데) 가장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부인한다.”

 

시장이 가장 효율적이고 역동적이라고?

 

  그래, 시장체제가 효율적인 것, 맞다. 자본을 위해서는! 하지만 사회 전체에 대해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그 효율이 2백년 전에야 이 됐지만 지금은 이 돼버렸다는 것을 모르는가? 데이비드 하비는 복률 성장의 개념에 주목하라고 일러준다. 지금은 성장의 지수 곡선이 갑자기 뛰어올라 놀라운 비율로 상승곡선을 그릴 때란다. 자본주의를 지탱하려면, 다시 말해 자본 축적을 지속하려면 지금 세계 전체가 피를 빨리고 뼛속의 골수까지 빨려야 할 시절이라는 얘기다. ‘시장체제가 참 역동적이라는 말은 흘러간 옛 노래다.

 

  물론 여러 이론을 견주는 것이야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위엣 책처럼 온갖 내용을 잔뜩 늘어놓기보다는 눈높이에 맞춰 생각거리를 건네는 게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이를테면 공유지의 비극얘기를 (지면을 늘려) 자세히 소개하는 게 괜찮다. ‘공유지의 비극1968년 개럿 하딘이 제시한 논문의 제목인데 공유지인 풀밭을 목동들이 저마다 사유화해서 망가진다는 간단한 줄거리다. 신자유주의의 정당성을 간명하게 일깨워줘서 (별 것 아닌데도) 유명해진 논문이다. “그럴 바에는 풀밭을 민영화[사유화]하라!” 그런데 그 설명은 오스트롬이 그 이론적/정치적 함의를 사납게 비판하는 논문을 내놨다는 얘기까지 덧붙여야 공정한 것이 된다. 하딘의 논문은 목동들이 저마다 사적私的/이기적으로 행동한다는 전제 위에서 연역해낸 것이니 기실은 동어반복의 얘기일 뿐이다. 목동들이 공공적 윤리를 관습으로 만들어낸다면 결론이 달라진다고 오스트롬이 설파했다. 오스트롬은 2009년 여성으로서 최초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으니 아무리 신자유주의자들이 경제학에서 텃세를 부린다 해서 함부로 묵살할 수 없지 않을까? 고교 사회교과서에도, ‘논쟁... 교과서에도 공유지의 비극이 소개돼 있는데 (다행히도) ‘하딘의 결론만 편파적으로 싣지는 않았다[생활과 윤리교과서는 하딘 것만 편파적으로 실었다]. 하지만 설명이 너무 소략해서 (그 설명으로는) 학생들이 배울 게 별로 없다.


  무릇 진정한 이론적 관심은 실천적 관심을 늘 동반한다. “지금 전지구적 자본주의는 무슨 문제를 겪고 있는가? 어찌해야 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하는. 그런데 두쪽[=보수+진보]을 싸잡아 비난[비판]하는 것은 공평하지도 않고[한쪽은 지금의 전지구적 자본주의 지배세력을 옹호해온 데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쪽이다], 전혀 실천적이지도 못한 태도다. 지금 세계 경제가 정말 위태롭게 돌아간다면 시장에만 맡기지 말라는 장하준의 얘기를 차분히 들려주고, 그러나 그 개혁정책만으로 과연 문제가 풀릴지도 날카롭게 짚어주는 것이 실천적인 태도가 아닌가? “보수주의도 나름의 완강한 근거를 갖고 있다는 말씀은 정말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진리는 당파적이라는 엄중한 사실을 잊지 마라. 내 얘기는 변혁만이 옳다는 게 아니라 신자유주의냐, 그 극복이냐사이에는 중립 지대地帶가 없다는 말씀이다. 점성술과 다를 바 없는 의사pseudo-과학인 신고전파의 자유시장 지상주의至上主義는 극복의 대상이지 절충의 대상이 아니다.


덧대기 : 우자와 히로후미[1928~2014]는 신고전파 수리數理경제학에서 학문을 시작했다. 그러나 미국 유학을 가서 베트남전쟁 반대운동에 함께 하며 학문의 현실책임성을 깨달았고, 1970년대 일본으로 돌아가 자동차문명에 대해 성찰하면서 신고전파 이론으로 외부효과[=자본의 비용을 사회에 떠넘기기]를 파악할 수 없음을 알고는 사회적 자본개념을 세공細工했다. 이렇듯 양식良識 있는 학자는 보수에서 개혁으로 자기혁신을 꾀하는 법이다. 그런데 보수와 진보, 둘다 나빠!”하는 단죄는 둘다, 나름의 근거는 있다는 말로 얼마든지 뒤집히지 않는가? 지금은 어떤 패러다임을 통해서든 신고전파의 철옹성을 허무는 진보쪽의 연합운동이 절대로 필요한 시절이 아닌가? 히로후미가 쓴 경제학이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참고.

 

어떻게를 묻기에 앞서 를 물어라

 

  ‘시장체제를 두둔하는 사람들은 흔히 자기들 눈길을 국민경제에만 가두고서 입방아를 찧는다. “성장이 어떻고 저떻고... 낙수효과[=빈민들도 성장의 떡고물을 받아먹는다]가 어떻고 저떻고...” 그런데 세계 전체로 눈길을 돌리면 그런 얘기를 함부로 못 한다. 선진국의 시장체제는 그들이 아프리카와 남미, 남아시아를 등쳐 먹고[1990년대 IMF와 세계은행의 활약!] 중국이 눈먼 고도 성장으로 내달은 덕분에 한숨을 돌렸거늘! 자본체제 속에서 살아남으려고 다들 자기 블록을 쌓은 탓에 요즘 들어 세계대전의 위험이 날로 높아가고 있거늘! 경제를 정치와 도덕과 문화로부터 떼어내고, 그 경제도 자본가의 경제만 돌보는 쪽으로 눈길을 가둬 놓고는 세상, 그런 대로 굴러가노라!” 떠드는 꼴이다.

  얘기가 나온 김에, 유럽의 사회교과서에 대해서도 한 마디 덧보태자. 참실대회의 사회분과 모임에 가서 프랑스의 사회교과서를 잠깐 구경한 적 있다. 제법 풍부한 자료[사례 검토]가 담겨 있으니 대뜸 봐서 한국 것보다 낫다는 생각은 들었다. 사회교과모임의 교사들은 프랑스나 스웨덴 교과서를 언제 따라가나, 큰 부러움에 사로잡힌 듯했다. 하지만 나는 그쪽 것이 (우리것보다야 낫다 해도) 꼭 괜찮은 걸까, 의문이 들었다. 유럽 것이든 한국 것이든 온갖 사례[사실]를 늘어놓고는 어떻게 해야 하지?”를 묻는다.


  이에 대해, 데이비드 하비의 말을 떠올리자. 하비는 기성의 사회학[사회과학]1970년대 이후로 점점 ?”라는 질문을 하지 않게 됐다고 일깨워 준다. 2008년 세계대공황을 놓고 주류 경제학계에서는 왜 이것을 우리가 예측 못 했지?”하고 잠깐 반성이 일어났다. 엘리자베스 여왕한테서 핀잔까지 들었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왜 몰랐나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예측이 아니다. 언제 금융위기[공황]가 터질지는 마르크스주의 학자들도 사실 모른다. “터질 날이 가까워진 것 같다고는 내다본 점에서 (숫자에 밝다는 주류 경제학자들보다 오히려) 낫지만 말이다. 중요한 것은 그게 터졌냐는 질문이다. 그 질문에 대해 주류 경제학자들이 그런 대로 설명해냈는가? 신고전파 학자들은 공황이라는 개념 자체를 아예 폐기해 버렸는데 그럴 리가! 세상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과 사태에 대해 언론은 수많은 분석 기사를 써낸다. 그 글들에는 갖가지 원인과 요인이 다채롭게 등장한다. 단 하나, “자본주의 그 자체라는 원인만 빼놓고! 사회교과서는 수많은 정책’(가령 노령화 대책)에 관해 토론해 보라고 학생들한테 들이민다. 무슨 일이 왜 터졌는지도 모르는 햇병아리들한테 그 정책!”을 파악해 보라는 거다. 걷지도 못하는 애들한테 뛰라고 다그치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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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경제학은 권할 만하다

 

  다른 책을 찾아보자. ‘논쟁... 교과서의 빽빽한 활자들에 질린 학생들한테는 한스 크리스토프 리스[벨기에 사학자]가 쓴 청소년을 위한 1010 경제학을 권할 만하다. 우선 저자는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만화로써 가상의 에피소드를 전달한다. 자전거 여행을 하다 숲 속에서 길을 잃은 그레타의 이야기는 자급자족 경제 체제를, 모든 규제를 철폐하며 국왕과 갈등을 일으키는 경제장관 K씨 이야기[국왕이 자본을 규제하려다가 오히려 쿠데타를 당해 감옥에 갇힌다는 줄거리]는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를 알기 쉽게 풀어낸다. 그밖에도 핀 장사를 하다 망해서 빵 가게를 차리는 주인, 아픈데도 병원에 가지 못하고 쉴 새 없이 일하는 공장 노동자 등의 이야기는 인류 역사의 흐름 속에서 경제문제를 생각하게 해준다. ‘논쟁...교과서보다 가독성可讀性도 훨씬 높고, 이상한 편견 같은 것도 들어 있지 않다.

  저자는 열 가지 질문을 던진다. “경제란 무엇이며, 시장경제는 어찌 탄생했는지? 자본가는 나쁜 사람이고, 자본주의는 착한 경제가 될 수 없는지? 인간은 어떻게 경제행위를 하며, 시장경제와 계획경제 가운데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경제위기는 왜 반복되며 국가가 경제에 끼어들면 안 되는지? 경제는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키며 경제위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와 애덤 스미스, 마르크스와 케인스와 프리드만, 칼 멩거를 불러낸다.

  이렇게 큰 질문을 던지는 접근법이 옳다는 사실부터 새기자. 경제 교과서는 경제라는 놈이 뭔지부터, 사회 교과서는 사회라는 놈이 뭔지부터 찬찬히 일깨워 줘야 한다. 성급하게 각론으로 들어가기 앞서 경제, 시장, 국가, 정치와 법과 이데올로기, 종교와 도덕...”이란 놈들을 차분히 들여다보는 게 공부의 기본이다. 이를테면 왜 자본주의 사회에선 경제와 정치가 따로 놀지? 왜 경제가 성역聖域이 됐지?” 또는 세상에는 법 없어도 살’ (착한) 사람들이 참 많은데 그렇다면 꼭 법이 필요할까?” 따위의 질문이 그것이다.

  학생들 대부분은 경제가 뭔지묻지도 않고 책장을 넘긴다. 이와 달리, 폴라니[1886~1964]는 경제의 기본 정의定義부터 따졌다. 지금의 경제 교과서들이 채택하고 있는 것은 형식적 정의. 희소한 수단[자원]들을 어떻게 선택하고 배치하느냐를 따지는 게 경제란다. 수요 공급 곡선을 긋고 일반균형의 가격을 찾는 게 경제학자들의 주된 업무가 돼 버렸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제economy는 사람들의 살림살이를 연구하는 것이었다. 삶을 꾸리는 데 필요한 수단들을 실제로 어떻게 충족했는지를 따진다. 이것이 실체적인 정의다. 그런데 효용[효율성]만 들이파는 신고전파가 득세한 뒤부터 경제의 실체(!)에 대한 관심은 뒷전으로 물러나고 형식적 정의가 판을 치게 됐다. 경제성장률만 높다면 그게 부의 재분배를 동반한 것이든, 극소수 떼부자들한테 몰아주기를 한 결과든 상관하지 않는다. 경제가 물신物神이 돼 버렸다.

폴라니는 역사적인 관점을 들여왔다. 근대 이전 시대에 경제는 사회 속에 묻어 들어가있었지 저 혼자 따로 굴러가지 않았다는 게다. 경제[자본주의]가 사회로부터 자립하고나서 서로 충돌하는 두 힘[운동]이 생겨났다. ‘스스로 굴러가는 시장의 깃발을 쳐들고 모든 것을 제 발밑에 복속시키려는 운동과 (그 힘에 맞서) 사회를 보호하는 운동! 이렇게 굵직한 역사의 흐름을 먼저 짚어주지 않는 교과서는 어린 학생들한테 왜 경제를 배워야 하는지그 동기를 부여해 주지 못한다. 경제이론에 앞서 경제사가 먼저요, 그 경제사도 정치사와 종교사상사와 통합된 것으로서의 역사여야 한다.


  ‘...1010경제학을 쓴 리스는 신자유주의 반대가 확실하다. 이를테면 멩거[신고전파 창시자]한계 효용개념을 소개하고는 자유시장경제로 다들 잘 살 수 있나? 멩거는 이 물음에 대해 변변히 답을 하지 못한다.”고 점잖게(간단히) 덧붙였다. 그러고는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를 길게 소개했다. 그 길이 가장 무난한[현실적인] 길이라고 선호하겠지. 2차대전이 끝난 뒤 독일은 (‘사회적 시장경제라는 깃발을 내걸고서) 시장도 계획[나치 국가의 경제]도 아닌 3의 길을 추구했다. “취업인구의 수입 25%를 거둬서 사회적 약자들의 보호에 힘쓰자!” 그렇다고 저자가 섣부르게 무슨 이데올로기적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내건 것이 절대로 옳아!”하고. 요즘은 노년층이 크게 늘어나서 독일 사민주의의 길이 걸림돌에 맞닥뜨렸고, 독일도 1990년대부터는 신자유주의의 길을 뒤쫓고 있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서술한다.

  그는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경제위기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애쓸 뿐이라고 체념(아니 달관)한다. 예전에 그랬듯이 지금의 경제위기도 얼렁뚱땅 극복할 수 있다고 속 편하게 예단할 수도 없댔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기상변화(지구온난화)와 생태계 파괴와 빈부양극화에 대처하는 문제란다. 태평양 한복판에는 중앙유럽[독일+오스트리아+스위스]만한 크기의 쓰레기더미가 떠오른 적 있댔다. 이것이 정말 사실인지 놀랍다.

  그의 결론을 들어보자. “지난 몇 세기동안 인류가 꾸린 경제체제와 경제이론은 죄다 실패했다. 지난 200년의 짧은 시간 안에 지구[인류]파멸의 위기와 맞닥뜨렸다. 즉각 성장을 멈춰야 한다. 세계 금융시장에 온갖 것이 빨리는[탈취당하는] 흐름을 막고 저마다의 지역이 자급자족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지역통화제도LETS의 보급도 한 가지 방안이 된다.”

  리스[=‘1010 경제학의 저자]가 서술한 얘기는 군데군데 따져볼 대목이 있다. 가령 그는 자본주의 성장을 분리하자고 했는데 자본주의를 폐절하지 않고서 과연 성장 멈춤이 가능한지 따위. 하지만 이 책은 중딩이 고딩이를 위한 입문서다. 애들 앞에서 따질 일은 아니겠다. 애들한테는 여전히 딱딱한 얘기라 해도 그런대로 쉽게 읽히도록 서술했고, 글이 안 읽히는 애들은 만화에라도 눈길을 붙이라고 배려했다. 그러니 기꺼이 권장 도서로 삼을 만하다.


덧대기 : LETS는 자본주의 극복과 관련한 (1980년대부터 유럽과 북미 대륙에서 싹튼) 소중한 실천이다. 일본인 여럿이 함께 쓴 엔데의 유언을 참고하라. 이 책은 미카엘 엔데가 쓴 동화소설 모모[1973년 작]’에 담긴 철학사상을 해설한 것이다. 모모에 나오는 시간도둑은 임금노예를 생산하는 자본체제 자체를 뜻하겠지만 엔데는 화폐 물신의 극복에 주로 눈길이 꽂혔다. 엔데는 발도르프학교를 세운 루돌프 슈타이너[1861~1925]돈이 돈을 낳는 시스템의 극복을 궁리한 실비오 게젤[1862~1930]한테서 큰 감화를 받았다. 두 사람은 노화老化하는 돈이라는 개념을 내걸었다. 가령 그 돈은 다달이 액면가의 1%가 감가[=가치 감소]된다. 제 값을 보전하려면 다달이 스탬프를 사서 붙여야 한다. 이자利子를 없애면 돈의 순환이 훨씬 빨라진다. 실제로 1932년에 오스트리아의 뵈르글 시에서 이 낯선 돈을 발행하여 큰 효과를 거뒀는데 오스트리아 국가의 탄압으로 실험이 중단됐다. 그러고 보면 애들한테 읽힐 동화로 모모만큼 무게 나가는 것이 없다. 알기 쉬운 해설을 덧붙여 모모가 재발간돼야 하겠고, 그러기 전에라도 교과 수업에 활용돼야 한다. 독일 녹색당은 실비오 게젤의 이론을 바탕에 깔고 있다.

 

 

위험한 자본주의도 좋은 책

 

  이 책은 일본의 마르크스주의 학자 마토바 아키히로가 쓴 책으로 작년에 나왔다. 우선 목차目次부터 살핀다.


1: 자본가와 노동자 

2: 자본축적에 이용되는 교육 

3: 민주주의와 개인주의 

4장 세계화와 자본주의 사회

5장 다양화하는 세계

6장 사회주의는 끝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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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일러둘 얘기는 이 책이 중딩 고딩을 위한 입문서로는 문턱이 높다는 것이다. 저자가 가나가와 대학생들한테 강의한 내용을 책으로 옮겼으니 다룬 주제도 방대하고 당연히 어렵다. “자본주의 판도를 뒤흔드는 중국, 현대판 십자군 전쟁 우크라이나 사태, 노동자 공동투쟁이 불가능한 이유...” 최신 국제정세의 흐름부터 마오쩌둥 얘기까지 다 망라했으니 배경지식이 얕은 학생한테 권하기는 어렵다[교사들한테는 꼭 일독을 권한다]. 하지만 현실 사회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이 싹튼, 학구열 높은 고등학생한테는 조심스럽게 권할 만하다[일부 모르겠는 대목은 건너뛰라면서]. 왜냐면 교실에서 말한 그대로, 사태의 핵심만 짚어서 입말투로 서술해서 아주 쉽게 읽히기 때문이다.

 

  몇 가지만 간추린다.

중세 말기에 상속권을 인정해서 부를 대물림하게 하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대교와 이슬람교가 만들 수 없었던 자본주의를 기독교만 만들어낼 수 있었다.

공적 보험제도를 없애려는 민간 보험회사들의 음모

일본의 교육개혁은 같은 교육과정으로 대충 우수한인재를 양성하려는 속셈이다.

3개의 지점을 봉쇄하여 중국과 러시아를 고립시키려는 미국의 전략 : 그러나 러시아가 세계의 자본들에게 조세 도피처 대국大國이 돼 준다면 달러 패권은 금세 무너질 것.

일본도, 한국과 베트남과 필리핀과 태국도 궁극적으로는 주권이 없다

프랑스 극우파/자본이 역사교과서에서 프랑스혁명 내용을 제한하는 법을 만들려한 까닭

 

  위엣 책의 한 대목만 뽑아 읽는다.

<자본가들은 대중의 불안과 갈망을 먹고 산다. ‘뭔가가 늘 부족하다고 느끼며 날마다 쫓기는 생활을 하는 우리[민중]의 팍팍한 삶이 그들한테는 활력의 원천이 된다. 모든 사람이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아름답다’ ‘사람은 외모로 평가돼선 안 된다고 여기면 미용관련 상품은 팔리지 않는다. ‘여름이니까 더운 것이 당연하다싶으면 에어컨도 팔리지 않는다.... 직원들을 일찍 퇴근시켜 주는 사장이 늦도록 부려 먹는 사장보다 얼마나 나을까? 다들 회사를 나와서 쇼핑을 가고, 노래방에 가고, 자녀 성적 챙기는 데 열을 올리면 그 직원들은 자본주의를 탈없이 굴리는[=재생산하는] 데 한 몫 하는 셈이다. 진정한 자유[여가]는 그런 것이 아니다. “오늘은 일을 생각하지 말자. 게임도, 스마트폰도 내려놓고 진짜 인생에 대해서 생각하자는 식이 돼야 참된 자유다. ‘3년 잠꾸러기라는 만화가 있다. 일도 하지 않고 내처 잠만 자던 주인공이 어느날 문득 일어나서 위기에 빠진 사람들을 구출한다는 내용이다. 옛날 일본인들은 다음의 사실을 알고 있었다. “되도록 일하지 않는다. 되도록 소비하지 않는다. 답이 나올 때까지 내 머리로 생각한다. 그게 행복의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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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대기 : 그런데 ‘(경제) 입문서보다 더 먼저 학생들이 접해야 할 것은 세상이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지갖가지 사실을 귀에 담는 일이다. 그래야 경제는 이런 것이라고 차분히 들려주는 입문서入門書들이 눈에 들어오고 머리에 남는다. 그러니까 먼저 건네야 할 것은 책이 아니라 다큐멘타리 같은 것들이다. 다큐 화씨 9/11’, ‘식코를 찍은 마이클 무어는 최근에 다큐 다음 침공은 어디where to invade next’를 펴냈다. 수업자료로 적극 추천한다. 마지막 장면이 생생하다. 미국과 영국의 신자유주의를 흉내내다가 나라 살림을 거덜낸 아이슬란드의 어느 여성 기업인이 눈을 부릅뜨고 입을 열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정말 싫어요. 그 나라에 우리는 없고 만 있어요. (제게 질문을 던진 미국인한테) 제 말씀이 불편하게 들리시죠? 불편을 느끼셔야 해요.” 세상 공부는 그렇게 생생한 육성을 듣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영혼이 깨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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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5 [담론과 문화] 수지클리닉 이야기_ 우리 아이들 - 한 달 간의 관찰교류기 file 진보교육 2017.04.06 212
1064 [교단일기] 416 기억 수업 file 진보교육 2017.04.06 274
1063 [교단일기] '17강림44' 교실에서 보내는 편지 file 진보교육 2017.04.06 282
1062 [권두언] 촛불혁명, 민주주의를 말하다 file 진보교육 2016.12.20 258
1061 [특집] 2017 한국사회 전망과 교육노동운동의 방향 : 1. 격변의 시대 - 한국사회의 새로운 재편의 길로 file 진보교육 2016.12.20 271
1060 [특집] 2017 한국사회 전망과 교육노동운동의 방향 : 2. 전교조 선거결과의 의미와 교육노동운동의 향후 투쟁방향 file 진보교육 2016.12.20 383
1059 [기획] 1. 핵심역량과 '발달-해방'의 교육 file 진보교육 2016.12.20 997
1058 [기획] 2. 학력 개념을 정립하자 file 진보교육 2016.12.20 577
1057 [기획] 3. 구성주의 교육학과 신자유주의 file 진보교육 2016.12.20 661
1056 [담론과 문화] 송재혁의 음악비평 - '순진한 바보', 세상을 구하다 file 진보교육 2016.12.20 442
1055 [담론과 문화] 정은교의 몽상록 - 마른 잎 다시 살아나 - 역사 공부에 대한 잡설 file 진보교육 2016.12.20 438
1054 [담론과 문화] 코난의 별별이야기 - IT기술과 인간 - 지적재산권 file 진보교육 2016.12.20 214
1053 [현장에서] 기간제교사로 살아가기 - 차별의 벽과 맞서 싸우기 file 진보교육 2016.12.20 865
1052 [현장에서] 페미니즘으로 본 학교 file 진보교육 2016.12.20 13762
1051 [만평] 나는 너를 기억할 것이다 file 진보교육 2016.12.20 190
1050 [사회변혁이론 고찰] 스피노자, 발리바르 - 이성과 정념의 정치적 인간학 file 진보교육 2016.12.20 4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