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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호 [진보칼럼] 2012년 대선 평가와 향후의 응전의 과제

2013.02.13 18:59

진보교육 조회 수:644

[진보칼럼]  

2012년 대선 평가와 향후의 응전의 과제

조희연 / 성공회대 교수. 민교협 상임의장

2012년 12월 대선에서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야권 후보인 문재인을 누르고 당선되었고, 이제 정권인수준비위원회가 가동하고 취임을 향한 각종 준비가 이루어지기 시작하고 있다.
차분히 대선을 돌아보면서, 진보개혁세력의 패배의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었는가를 이제 성찰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이번 대선에서 박근혜는 단순히 현재의 집권당인 새누리당 후보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40년전 한국을 지배했던 독재자인 박정희의 딸이자 그 말기의 정권의 핵심을 구성했던 인물이었다. 이러한 일종의 ‘2세 승계의 정치’는 일본정치에서는 사실--아버지가 자신의 국회의원 지역구를 아들에게 물려주는 것과 같은 형태로--익숙한 현상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대단히 예외적인 현상이었다. 물론 박근혜가 박정희의 후광으로만 당선된 것은 아니지만, 유신시대를 기억하는 많은 외국인들에게 박근혜정부의 출현은 한국에서도 ‘2세 승계정치’가 실현된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와 동시에, 박근혜정부의 출현은 ‘2세 승계정치’의 출현의 의미를 뛰어넘는 박정희 이후 시대의 복잡한 동학이 작용하고 있다. 즉 박근혜 후보가 대선에서 당선되는 데에는, 박정희 시대의 명암, 노무현정부시기의 명암, 이명박 정부 시기의 명암이 복잡하게 상호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이 3가지 효과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보기로 하자.

박정희와 노무현의 긍정적·부정적 유산을 배경으로
먼저 이번 대선에는 박정희시대의 긍정적 이미지와 부정적 이미지가 동시에 작용했다. 박근혜 후보진영은—진정성 문제는 차치하더라도—박정희 시대의 부정적 이미지에 대해서는 사과와 약속으로 그 그늘을 걷어내고자 했다. 문제는 박정희 시대의 긍정적 이미지이다. 역사적 박정희 시대의 긍정적 이미지의 부활은 역설적으로 박정희에 대항해서 싸웠던 반독재 민주세력의 ‘실패’와 연관되어 있다. 사실 박정희체제의 붕괴한 직후 1980년 등장한 전두환 정권은 자신의 재임 기간 박정희를 ‘망각(忘却)’의 영역에 위치시켰다. 민중의 저항에 의해 붕괴한 박정희를 계승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정치적으로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아서 어떻게 보면 모른채 했던 것이다. 그후 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군부정권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민주화에 궤도에 오른 이후, 92년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상징적인 지도자인 김영삼이—군부세력과 연합하여—대통령에 오르게 된다. 박정희의 긍정적 이미지의 복원은 바로 반독재 민주화운동 지도자가 이끄는 문민정부가 외환위기를 초래하고 그로써 통치세력으로서의 공신력이 의문시되는 상황에서 부상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2002년 출범한 노무현 정부 이후 더욱 극적으로 부각되게 되었다.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김대중 정부에 의해 도입된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들—파견근로자의 양성화 등 비정규직 노동자의 확대, 정리해고의 확대, 경제적 양극화의 확대 등—이 노동자와 민중에게 사회경제적으로 파괴적인 결과를 낳게 되고 이로써 반독재 민주정부의 ‘경제적 신뢰성’이 추락하게 되면서 반사적으로 ‘성공한 경제적 지도자’로서의 박정희가 부활하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에 ‘위기라는 말을 달고 살았던’ 노무현 대통령이 ‘통치세력으로서의 정치적 신뢰성’을 의심받게 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고, 그 결과 박정희식 대규모 국가토건 사업을 ‘4대강 개발’이라는 새로운 형태로 들고나온 이명박이 2007년 대선에서 당선되었던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말기적’ 상황이 만들어낸 쟁점을 중심으로 한 선거
물론 2007년 이후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대중들은 박정희식 국가개발전략이 만능이 아니며 그것이 이명박과 같은 탐욕적 지도자에 의해 추진됨으로써 사회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파괴적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을 체험했다. 주지하다시피 이명박은 비록 과거의 독재적 방식은 아니나 권위주의적 방식으로 대중을 통제하고자 했으며, 상층계급·기업·재벌에 편향된 성장정책을 주도해나갔으며, ‘권력을 사유화’하고 치부함으로써 그의 주된 측근들이 거의 구속되는 ‘말기적’ 상황까지 보여주었다.
이러한 ‘말기적’ 상황은—이명박 정부 하에서 더욱 악화된--민생, 복지, 경제개혁, 양극화 해소 등으로 표현되는 사회경제적 의제들을 대선의 핵심적인 쟁점으로 만들었다. 즉 이처럼 사회경제적 의제들이 핵심적인 정치적 의제로 부각되게 된 것은, 반독재 민주정부 10년에서 해결되지 못하고 오히려 악화된 대중의 사회경제적 문제점들이 이명박 정부 하에서 더욱 첨예화되면서 이에 대한 새로운 해결을 대중이 분노와 좌절 속에서 요구하는 상황—이것이 복지나 경제개혁 혹은 재벌개혁을 주된 의제로 되게 만들었다—이 출현했기 때문이었다. 즉 이명박정부의 실패로 인한 분노와 좌절을 배경으로 해서, 그리고 분노와 좌절을 치유하기 위한 대안적인 사회경제적 문제들이 대선쟁점이 되는 방식으로 대선이 치루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은 또다른 효과를 만들어냈다. 노무현 정부 시절 그의 정치적·경제적 공신력에 의문을 보내던 대중은—2009년 5월 그의 ‘비극적 죽음’이라는 사건을 체험하면서—노무현과 노무현정부의 진정성과 개혁성을 새롭게 재인식하게 되었고, 그를 추종하는 세력들이 이른바 ‘친노(親盧)세력’이라는 이름으로 부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른바 친노세력이 지금도 제1야당 민주통합당의 주도세력이 되어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남긴 이러한 양면적인 유산—이명박에 의해 역으로 대중의 사회경제적 삶의 의제들이 쟁점이 되고 이명박의 대척점에 선 노무현 전 대통령과 진보의 공신력이 회복되는 기조--위에서 2012년 대선이 치루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복지 대 반복지세력’의 대결구도에서 ‘현실적 복지세력 대 전면적 복지세력’의 대결구도로
이러한 쟁점을 중심으로 하여, 후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번 대선은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와 반(反)박정희 세력을 대표하는 노무현의 최측근인 문재인의 대결로 치러졌다. 역사적 박정희와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노무현이 각각 두 중요후보에 강력한 ‘후광 이미지’가 미치는 속에서 치루어진 선거였다.
이러한 의제를 둘러싼 대선경쟁에서, 박근혜는 조국근대화의 위업을 성공적으로 성취한 지도자로서의 아버지의 이미지를 적극 차용하고 나아가—반박정희 진보세력에게는 진정성이 없고 허구적이기는 하지만--민생, 재벌개혁, 경제개혁, 양극화 해소 등의 의제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그것의 해결자로서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전략을 구사하였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보수 대 진보’의 구도가 ‘복지반대세력 대 복지세력’의 대립구도에서 ‘현실적 복지세력 대 전면적 복지세력’의 대결구도로 치환할 수 있었다. 여기서 현실적 복지라고 하는 것은 야권이 약속하는 것처럼 전면적 복지정책을 다 수용하지는 못하지만 ‘복지병(病)’에 따지지 않으면서 국가재정적자를 고려하여 복지를 점진적으로 확대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결국 박근혜는 박정희가 보유한 성공한 경제적 지도자의 이미지에 박정희의 최대의 약점인 현실적 복지와 현실적 경제개혁의 리더로서의 이미지를 결합할 수 있었다. 이명박에 의해 추락한 보수의 이미지에 대해서는 그와의 ‘거리두기’전략을 통해서 극복해나가고자 했다.
반면에, 야권 후보 문재인은 보다 전면적인 복지 확대, 재벌개혁 등 보다 철저한 경제개혁 등을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정부 시기에 드러난 ‘통치세력으로서의 공신력’의 문제를 정면으로 해결하지 못하였다. 노무현 대통령 사후 그의 진정성이 대중에 의해 광범위하게 공감되게 되면서, 그의 통치세력으로서의 정치적 공신력은 회복되었지만 경제적 공신력을 이번 대선에서 그를 따르는 문재인 후보가 충분히 재구성해내지 못하였다. 이것은 반박정희세력이 노무현 정부 하에서 상실해버린 ‘통치세력으로서의 신뢰성’에 대한 의문을 해소시켜 주면서, 대중의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적 비젼을 제시하는 과제를 충분히 대중들에게 납득시키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이러한 과제를 둘러싼 각축에서, 문재인은 패배하고 박근혜가 승리를 했던 것이다.

두 거대한 주체 사이에 선 박근혜정부의 딜레마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당선되었다는 것이 향후 박근혜정부의 성공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며 박정희의 현재적 부활이 곧 상승곡선을 그리리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박근혜정부의 등장은 비록 박정희의 후광이 중요한 한 요인을 이루고 있지만, 박근혜정부가 그 후광의 허구성을 드러내고 오히려 남한사회의 보수적 헤게모니를 균열시키게 될지, 아니면 박정희에 이어 남한사회의 보수적 헤게모니를 강화하게 될 지는 현재로서 단언할 수 없다. 박근혜의 등장이 남한에서 반독재운동으로 균열되었던 보수의 헤게모니가 보전(補塡)되게 된다면 일본의 ‘1955년 체제’와 같이 보수패권적인 체제로 갈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박정희 체제를 통해서 한국사회에는 두 거대한 사회주체가 출현했다고 본다. 한편에서는 박정희체제의 막강한 전략적 지원 속에서 성장한 거대한 ‘계급적·사회적 기득권세력’이며, 다른 한편에는 박정희체제의 억압을 뚫고 성장한 ‘’높은 평등주의적 기대를 갖는 대중‘이다. 2012년 대선에서의 박근혜의 각종 ’전향적‘ 공약들은 높은 평등주의적 기대를 갖는 대중의 지지를 획득하기 위한 것이었다. 사실 이명박 정부의 실정(失政)에 의해 자신들의 삶이 피폐해진 대중들의 좌절과 분노가 엄존하는 상황에서, 그러한 좌절과 분노의 대중을 획득하기 위해 박근혜 후보는 보수후보로서는 일종의 ’최대주의적 공약‘을 내걸었던 것이다. 일종의 강제된 ’보수의 진화‘이다. 그러나 그 공약들은 바로 자신의 아버지가 만들어낸 ’거대한 계급적·사회적 기득권세력‘의 특권적인 기득권 구조의 개혁과 변화 위에서 비로서 가능한 것이다. 즉 자신의 아버지가 만든 기득권세력을 넘어서야 실현되는 공약을 들고 그는 국민 앞에 서 있다.

‘보수의 진화’에 대응하는 두가지 병행전략
이는 박근혜가 당선을 위해서 전략적으로 천명한 민생, 경제개혁, 재벌개혁의 과제들은 보수적 지배블록 내에서의 갈등과 딜레마를 촉발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해준다. 바로 여기에 박근혜 정부의 딜레마와 도전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대선 이전에 엄존했던 쟁점들—철탑농성과 정리해고 노동자의 자살 등—을 가지고 치열하게 싸워야 하지만, 동시에 그가 공약한 것을 액면 그대로 실현하도록 요구하는 것 자체가 폭넓은 국민적 투쟁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런 점에서 ‘보수의 진화’에 대응하는 두가지 병행전략이 필요한 셈이다. 박근혜 정부가 대선경쟁 과정에서 천명한 정책들이 단순히 쇼에 해당하는 것이었으며 ‘보수의 성형수술’에 불과한 것이었다는 점이 밝혀진다면, 오히려 보수의 정치경제적 신뢰성이 더욱 균열되서 진보개혁적·좌파적 세력이 대중의 핵심요구인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주체로 다시 서서 한단계 높은 급진민주주의적 질서를 출현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박근혜 정부가 성공하기를 빈다. 그것은 한국사회가 한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보수가 앞으로 진화해간다면 당연히 중도자유주의세력이나 진보좌파세력 모두 앞으로 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명박이 5년 전에 국민을 ‘홀린’ 이른바 ‘선진화’라는 것이 진정으로 그런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명박은 그것을 당선되기 위한 트릭으로 사용한 후 헌신짝처럼 버렸고, 그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대중들이 큰 고통을 받고나서야 분노하고 좌절하게 되면서 그 ‘분노와 좌절의 위협’이 박근혜를 최대주의적 공약으로 불가피하게 나아가게 했다고 생각한다. 보수의 최대주의적 공약은 분노와 좌절을 경험하는 대중의 최대주의적 분노에 의해서 강제된 것이다. 나는 남한 사회의 계급적·사회적 기득권세력의 천민성과 졸부(猝富)적 성격을 고려할 때, 박근혜 정부가 자신의 공약들 자체만을 올곳이 실현하기도 대단히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 정부가—물론 나는 박근혜정부를 박정희 정부의 부활로만 보는 것에는 반대하지만—보수헤게모니를 강화하는 경로로 나아가기도 어렵다고 생각한다. 후자의 경로가 장기적으로 실현된다면, 반(反)박정희 진보세력에게는 박근혜 정부 5년이 한단계 높은 민주주의와 사회진보로 가는 준비기였다고 평가될 것이다. 돌이켜 보면, 79년 박정희가 측근에 의해 살해되고 박정희 체제가 붕괴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화를 향한 대중적 동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독재에서 민주주의로의 '직행(直行)'하지 못하고 80년 ‘신군부정권’이라고 하는 우회로로 진입했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이 정치적 민주주의를 실현했다고 하면 이제 남한 사회는 사회경제적 의제를 포함하는 한단계 높은 이른바 ‘민주주의 2.0’으로 가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의 출현은 어떤 의미에서 ‘민주주의 2.0’으로 가는 대중적 동력이 부족하여 박근혜정부라고 하는 우회로로 들어선 것일 수도 있다. 역사만이 남한 사회가 어떤 경로를 겪고 있는지 밝혀줄 수 있을 것이다.

진보좌파세력이 대안적 희망으로 다시 설 수 있다면
이러한 우회로를 통과하여 87년으로 가는 거대한 힘을 당시의 진보좌파세력들이 만들어냈던 것을 기억하자. 반독재 중도자유주의정당이 독재세력과 ‘타협’하려고 하는 길목 마다, 진보좌파세력---당시에는 NL이나 PD, 민족·민주·민중혁명론 등으로 표현됨—이 전투적인 투쟁을 통해 타협을 좌절시키고 87년 6월 항쟁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 이제 진보좌파진영이 중도자유주의진영의 재정렬에 앞서서 선도적으로 자신의 전열을 재정비하고, 박근혜식 보수통치의 균열을 내면서 한단계 높은 사회진보와 민주주의로 가는 길을 열어야 할 것이다. 물론 대선에서보여진 진보좌파진영의 사분오열의 모습은 이러한 재정렬의 전망을 어둡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대선 이후 여이은 노동자의 자살은 박근혜식 보수정부가 노동자에게 희망이 아니라 ‘절망’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는 박근혜식 보수정부 하에서 노동자투쟁과 민중투쟁의 거대한 잠재력이 존재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수동혁명적 이행에 대응하는 대중운동의 새로운 혁신과제
여기서 이러한 잠재력을 거대한 대안적 희망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진보대중운동의 몫이라고 하겠다. 정당은 특정한 지형에서 득표경쟁을 하는 기구이며, 운동은 그것을 확장하고 변화시키는 집단적 실천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여전히 정치의 대중적·사회적 지형을 변화시키는 대중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대선에서 박근혜가 ‘온정적 보수’로서의 최대주의적 공약을 한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보수가 이른바 ‘좌클릭’을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대선에서 보수후보가 진보의 의제와 이미지, 담론을 ‘좌클릭적으로 전유’하는 전략을 썼던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보수의 좌클릭’에 대응하여, 더 좌측에서 혹은 더 급진적인 입장에서 보수를 비판하고 대결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지형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이것이 실패하게 되면, 위로부터의 수동혁명적 재편이 위기를 피해갈 수도 있다. 수동혁명적 재편은 아래로부터의 요구의 억압이 아니라—지배를 위협하지 않는 수준에서 보수적 방식의—선택적 수용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바로 위기에 직면하지 않는다. 단지 새로운 위기는 아래로부터의 도전에 의해 그러한 재편이 도전을 받게 될 때이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정확히 그러하였다. 보수의 그러한 선택적 수용을 넘는 대중적 정치가 출현하게 됨으로써 그 선택적 수용의 한계지점에서 위기가 출현할 때, 2차 신보수정부는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명박 정부 5년 동안에 대중은 이명박정부로 상징되는 ‘우파 신자유주의정부’의 사회경제적 정책에 의해 좌절하고 분노하게 되었고, 이것이 ‘정치의 대중적·사회적 지형’을 ‘좌(左)’로 이동시켰다. 그 결과 보수 후보인 박근혜 마저  복지, 민생, 경제민주화를 이야기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박근혜 정부 하에서 대중운동의 동력이 새롭게 확충됨으로써 그 힘에 기초하여 ‘정치의 대중적·사회적 지형’이 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대중운동의 혁신, 그 중에서도 노동운동의 혁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래로부터의 대중투쟁의 역동성을 상층 노조운동이 받아안으면서 탈(脫)기득권적인 선도적인 투쟁조직으로서의 위상을 회복하는 것이다.
사실 노동운동의 역사는 보수적 지배세력과 자본세력에 의한 노동자계급의 '탈주체화적 해체전략'에 맞서서, 주체의 확장적인 재구성을 해내는 것이다. 이미 87년형 민주주의의 성과로 대기업 노조와 노조운동은 자기 이해를 방어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 보면 '노동운동이 노조운동으로, 노조운동이 이익단체운동'으로 왜소화되어갔다. 대중운동의 재구성은 바로 이러한 한계를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않된다. 기존의 대기업 노조 중심의 자기이해 방어적인 운동에서 스스로를 조직적으로 방어할 수 없는, '노동의 시민권'으로부터 '외부화'되어 있는 중소기업 노조,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노동자, 여성노동자, 정리해고 노동자들의 이해를 끌어안는 방향으로 그 조직과 투쟁이 혁신되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서 불가피하게 대기업 노조의 자기이해방어적인 운동에서의 양보와 개방화가 필요하다.
다음으로, 중단기적으로 민주노총 내부에서 중간파-좌파 연합을 복원하여 반미자주파의 헤게모니의 균열 상황에서의 리더쉽의 붕괴를 보완하면서 민주노총을 '실행력'있는 조직으로 복원하는 것이다. 2012년 통진당 사태 이후, 그리고 그 이전부터 민주노총 내에서의 상층 헤게모니 구조에서 반미자주파의 다수파적 지위가 약화되게 되었다. 이것은 그나마 반미자주파의 헤게모니 하에서 일정하게 실행력을 갖는 조직이 거의 모든 의제에서 강력한 실행력을 상실하는 조직으로 변화하게 만들었다. 대선 국면의 과도기적 상황이 향후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그럴 경우 위력적인 결정을 할 수 없고, 경우에 따라서는 책임있는 결정을 할 수 있는 조직으로 '표류'할 가능성도 있다. 그것의 단적인 위기양상이 2012년 대선에서 민주노총이 대선의 정치적 방침을 결정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음을 보았다. 민주노총을 포함한 대중운동의 재구성은—노동자들이 죽음으로까지 표현하고 있는—대중의 좌절을 대중투쟁의 복원을 통해서 수렴하는 것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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