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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창익 | 목포지회 통합정책실장


1. 들어가며

교원평가 저지투쟁이 숨 가쁘다. 천신만고 끝에 투쟁의 항로가 정방향으로 변경되는 듯 하더니 대의원대회의 결정이 중앙집행단위에서 비틀어지고 있다는 소식은 자다가 벌떡 일어나게 만든다. 이 글이 발표될 즈음이면 어떠한 모양으로 교평저지투쟁의 형질변화가 진행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불행하게도 실종되어버릴지, 아니면 다행하게도 투쟁의 기조를 유지할 수 있을지. 백척간두의 위기의식으로 전선에 서서 날밤을 지새우는 동지들의 형형한 눈동자를 상기하면서 목포지역 1천 조합원 대중과 함께 교원평가저지투쟁을 펼쳐온 지역사례를 일정과 사안을 중심으로 서술한다.

2. 논쟁의 시작-대안이냐, 저지냐?

4월 21일 공립 중등 제3차 집행위원회는 사뭇 긴장감이 감돌았다. 집행부에서 올린 교원평가 저지 투쟁안을 놓고 설왕설래 논박이 오고갔다. 본부의 대안 중심 투쟁과 저지투쟁으로 기조변경을 담고 있는 집행부안과의 비교에서 나오는 당연한 과정이었다. 당시의 조건이 교원평가투쟁의 초입단계인지라 충분하게 토론이 성숙되지 아니하였던 관계로 대안을 말하지 않고 저지만을 말한다면 여론에 밀려 고립을 자초할 것이라는 일부 분회장들의 우려는 감성적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집행부의 안이 본부안을 정면으로 반대하는 입장에 서있는 것이 아니고 2월 대대결정 사항과 본부의 기조를 이어받아 투쟁의 폭과 수위를 보강하는 전술적 보완에 있다는 설득이 더 주효하여 15인 집행위원회는 제안서에 담긴 조합원 거부선언의 내용을 학부모와 지역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내용, 비교육적 측면을 부각시키는 보다 부드러운 표현 등으로 교정하는 수준에서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또한 위원회는 ‘교원구조조정저지와 공공성 강화를 위한 목포지회 특별위원회 구성’안도 통과시켰다. 특위는 정책실 6인과 3개지회 사무국장을 비롯한 실무단위가 결합하여 구성하기로 했다. 아무튼 위원회는 교원평가투쟁의 시작점에서 커다란 결정을 내렸다. 일부의 시각차는 여전히 과제로 남겨둔 채.

네이스 투쟁 때에도 그랬었다. 그 때에도 한 분회장이 그랬었다. ‘네이스가 본격화되면 저절로 대중의 분노를 조직할 수 있다. 그때가 투쟁의 시점이다. 지금은 이르다. 네이스를 대중이 잘 모른다. 피부에 와 닿지 않은 사안을 가지고 집행부가 너무 앞서가면 대중과 유리된다. 천천히 가자’ 같은 맥락에 교원평가투쟁도 보고 있으며 같은 입으로 같은 논리를 반복하고 있었다. 교원평가가 본격화되면 그때 가서 투쟁을 조직해도 늦지 않다. 피부에 와 닿지 않는데 벌써부터 호들갑을 떨면 되느냐? 그들의 운동에 대한 진정성이야 누가 흠을 잡겠는가? 전선에 서서 십수년을 함께 해 온 동지들인데. 시각교정의 날은 오기나 할런지.

3. 조합원 거부선언-비상총회

4월 21일 3차 집행위 결의대로 5월 10일 교사의 날 1052명의 목포 교사들이 거부선언을 발표했다. 20일 남짓한 기간 동안 분위기가 상당히 전환되었다. 역사적인 5월 3일 공청회 무산 투쟁이 가져온 시너지 효과가 컸다. 신문지상에 사진과 함께 대서특필되고 조합원들이 기관지 ‘교육희망’이 아닌 일반 언론을 통해 어렴풋이나마 전선을 느끼게 되고 교원평가가 현장의 화두로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일련의 투쟁의 흐름 속에서 조합원 수를 넘어선 대중들의 거부선언 참여는 분회장들과 3개 지회 지회장을 비롯한 집행부들의 집중적인 현장접근노력의 결과로 나타난 성과였다. 목포의 거부선언은 전남의 타 지역에도 상당한 파급력을 형성하였으며 각 지회의 활동을 촉진하는 사안이기도 했다.

20여 일 동안 지회는 서명운동을 전개함과 동시에 분회별 비상총회를 전개했다. 중앙여중, 제일중, 청호중, 목포여중 등을 비롯하여 거의 모든 중학교 분회와 기계공고 등 일부 고교는 총회를 통해 교원평가의 본질과 투쟁방향에 대하여 교선하고 의식을 공유하는 작업을 거쳤다. 일부 초등, 사립의 소규모 분회와 인문계 고교의 경우 조건상 모이기도 힘들고 총회형식을 갖지 못하였다. 내부강사를 통해, 주어진 파워포인트의 내용만으로 교선을 진행한 분회에서는 투쟁의 공감대가 충분하게 형성되지 못한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지회에서는 지회장, 사무국장, 교선부장, 정책실장 등 가용인원을 분산 배치하여 최대한 활용하였다.

이 과정에서 5.3 공청회 사태와 관련하여 5월 7일 지회는 “교원평가 공청회 무산에 따른 경찰 수사 방침을 규탄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보도 자료를 발송했다. 이는 전국 사안을 지회차원에서도 조직하여 현장의 역동성을 극대화하려는 원칙적인 노력이었다. 본부에서의 미적지근한 논평, 지부에서는 언급조차 없던 사안에 대하여 지회가 공청회 규탄성명이 나오자 일부 조합원들은 의아해하면서도 사태가 진전되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동안 지회는 민주노동당 목포시위원회 가족한마당-김혜경 대표 강연회-, 민주노동당 정치학교, 노동절 광주집회, 사이버 소식지 전망 2호 발행, 초중사립 사업조정회의체 7인회의[3개지회 지회장(3인), 사무국장(3인), 정책실장(1인)], 학교회계연구모임, 민중연대회의 등의 일정이 있었고 스승의 날 즈음하여 3개 지회 분회장 명의로 교육부조리 근절선언도 전개했다. 초등현장을 중심으로 아직 충분하게 받아들이기 힘든 비리근절선언은 발표되자마자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5월 10일 거부선언일에 하종강 선생 초청 강연회를 롯데마트 5층에서 가졌으며 15차 집행부 회의를 배치했다.

4. 전남교사결의대회 그리고 전국대의원대회

5월 13일은 도교육청 앞에서 ‘교원평가 저지와 단체교섭 승리를 위한 전남교사결의대회’가 열렸다. 중등 46명, 초등 12명, 사립 26명이 참가했다. 교사결의대회에 즈음하여 전남출신 전국대의원 23명의 연명으로 결의대회 참가자들에게 발의안을 담은 유인물을 배포하였다. 사태의 긴박성에 힘입어 뜻있는 동지들이 씨줄 날줄로 엮어 하루 이틀사이에 삽시간에 대의원 절반을 조직하는데 성공하였다. 이날 참여대중들은 5월 6월 사업의 상을 대의원안을 통해 대강이나마 보다 명확하게 각인하였으며 사태의 엄중함과 투쟁의 필요성을 공감하였다. 유인물은 앞길을 제시하고 투쟁의 기운을 고양시켰다는 평가가 있었다. 다음은 유인물 첫머리다.


600여 전남 동지들이 참가한 자리에서 배포한 유인물 속에 목포 지회 소속 대의원 4명 중 3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대대에서 내려오는 길, 한 동지가 한말이 귀에 아프게 쟁쟁거렸다. ‘발의한 사람들은 본부 뒤흔들기에 빠져있는 사람들로 투쟁의 에이비시를 모르는 한심한 사람들이다. 본부가 출범한지 얼마나 된다고 이러는가? 초등과 사립의 절절한 요구를 외면한 채 교원평가에 올인하여 무엇하자는거냐?’ 교원평가투쟁을 하자는 제안을 올인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대중의 요구를 조직하여 민족모순인 분단을 극복하는데 모아가야 하는데 …’라고 말을 잇는 그에게서 학생운동 시절 투철하게 통일운동전선에 복무한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그의 통일운동론이 여전히 지배적 담론이며 교육노동운동을 부분집합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자리였었다. 마음이 착잡했다. 그의 운동론이야 존중한다 쳐도 본부 집행부 뒤흔들기 정도로 치부하고 있는 매우 편협한 인식은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진영적 사고로 편을 갈라치기 할 수밖에 없는 조직현실 앞에서 점점 그 폭과 깊이는 더해만 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런 때일수록 정신 바짝 차리고 투쟁전선에 서야한다. 사실 네이스 투쟁을 전개한 3기 집행부는 들어서자마자 대정부 투쟁의 포문을 열 수밖에 없던 처지였다. 어정쩡한 2기 집행부 사업의 뒤처리하느라고. 그 때는 싸우지 말라고 발목을 잡더니 이번에는 싸우지 않겠다는 본부 집행부를 싸움판에 끌어들이는 일로 동분서주하고 있는 한편의 동지들은 분명 새벽을 열어제끼는 끝도 없이 투쟁해야만 하는 ‘시지프스’ 전사의 모습이다.

5월 15일 일요일은  ‘5월정신 계승 국민대회 및 패트리어트 철거 투쟁’이 빛고을 광주에서 있었다. 오전에는 망월동 묘역을 참배하고 오후에는 송정리 패트리어트미사일 기지타격투쟁으로 도시가 출렁거렸다. 목포에서는 초등․중등․사립 7명의 동지들이 민중연대 동지들과 버스 한대로 투쟁에 동참하였다. 뿌연 소화기 분말이 들녘을 가득 메웠다. 2중 3중으로 쳐져있는 기지 철조망이 밧줄에 감겨 넘어지고 경찰과 대치하는 아수라장에서 수백의 해직과 수천의 징계로 고통당하고 있는 전국공무원노조 동지들의 복장이 더욱 눈에 많이 띠었다. 그날 패트리어트 반미투쟁은 끝장보기로 가지는 아니하고 적당한 수준에서 멈추어섰다. 지도부의 판단이겠거니 하면서도 애매하게 내려오려고 하니 그저 찝찝하였다.

5월 16일 월요일은 제11차 7인회의가 열렸다.
5월 17일 화요일은 제13차 집행부회의가 목포역 국밥집에서 열렸다. 5․18 민중항쟁 전야제 날 비가 억수로 쏟아져내렸다. 사무실에서는 학교회계연구모임이 열리고 있었다.
5월 18일에는 유달중 분회 비상총회가 열렸으며 교선부장이 참석했다. 이날 역사적인 목포민중연대가 출범했다.
5월 19일 제4차 지회집행위원회가 열렸다.

5. 지회 농성투쟁 그리고 전국분회장 대회

5월 26일-27일, 우리는 지회농성투쟁을 조직했다. 집행위의 결의사항이다. 집행부는 할 수 있는 한 모든 투쟁을 조직하기로 합심했다. 지회 단위 사업으로는 다소 많은 게 아닌가 하는 부담도 있었지만 실무자들의 고충의 크기로 말하자면 현장에 파급되는 데는 아직도 미약하다고 보았다.
농성투쟁은 성공적이었다. MBC, KBS 지역방송이 모두 나와 농성 장면을 보도하였다. 지회장의 연설장면이 TV에 나오고 방송을 타니 조합원들이 한마디씩 거든다. 뭔가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농성 장면을 조금 더 들여다보자. 1부에서 교선부장이 제작한 파워포인트를 통하여 교원평가정책의 허구성과 한계를 낱낱이 밝히고 다시 투쟁결의를 확인하였다. 교선부장은 준비한대로 마음껏 말하지 못했다고 볼멘 소리를 하였으나 내 보기에 열심히 노력한 표정도 역력하며 이심전심으로 전달되었다.

2부에서 현재 전남지역 최고의 화두 중의 하나인 J-프로젝트 사업 관련하여 정책실장이 민중연대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사업경과를 보고하였다. 행담도-S-프로젝트-J-프로젝트와의 상관관계를 탐색하고 기업도시특별법에 근거하여 신자유주의적 개발 질서를 정착시키려는 음모를 폭로하고 저지하는 투쟁을 조직하는데 여념이 없다. 프로젝트 지지투쟁은 교육개방저지투쟁의 맥락 속에서 지역에서 조직해야하는 무거운 과제임에 틀림없다. 자본과 정부가 퍼뜨린 신개발주의 이데올로기에 오염된 지역민들의 환상을 깨뜨리는 작업이 만만치 않다. 보건의료, 교육 등 공공성파괴가 눈앞에 보인다. 지역의 투쟁은 반세계화 반 신자유주의 중앙전선과 함수관계에 놓여있다. 지역의 투쟁기운은 아직 미약하다. 득표 전략에 포박당한 진보 정당도 뚜렷하게 반대 입장만을 이야기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전선체들에 대한 설득작업이 효과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조사연구팀을 조직하고 간부대오에 대한 교육사업부터 시작하자는 결론이었다.

지회장은 MBC 라디오에 출연하여 교원평가투쟁의 의의와 전망에 대하여 인터뷰하였다. 지회장이 올해 들어와 자주 언론에 등장한다. 다 투쟁 덕이다.  독도 수업 때도, 촌지거부 선언 때도 지역 언론은 목포지회를 찾았다.
5월 28일 전국 분회장 대회에는 버스 두 대를 조직하였다. 공립 1대 초등, 사립1대, 총 60여명이 참가하였다. 남단의 항구도시에서 새벽밥 먹고 부지런히 올라갔으나 대회시간에 맞추지 못하여 지각하였다. 7인회의의 평가는 다채로운 문화행사 중심 등으로 화려했으나 교원평가저지투쟁을 기조로 하는 대회의 초점이 흐릿하고 공청회 투쟁에 대한 언급이 공식적으로 제기되지 않은 점 등은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 있었다.

6. 특위 체제-투쟁 속보-현수막 걸기-거리 선전전

5월 30일 7인회의에서 특위를 중심으로 교평저지투쟁을 전개하기로 재차 결의하였다. 위원장으로는 통합정책실장이 맡고 정책실 성원 6명과 초등 사립 중등 사무국장 등 약간 명으로 특위를 구성했다. 사업이 다종 다기하니 특화하여 추진하자는 취지다. 특위는 우선 교원평가 투쟁속보 3호를 발행하기로 하고 속보제작팀을 조직했다. 정책실 성원을 팀장으로 지회 교선부장들을 성원으로 하여 매주 1회씩 발행하기로 결의했다. 사실 지회에서는 본부보다 더 빨리 속보를 발행하였으며 현장에 배포했다. 또한 학부모 통신을 실정에 맞게 재수정하여 분회장과 조합원앞으로 보내기로 했다. 본부 통신이 추상적이고 초점이 흐릿하여 설득력이 조금 부족하다는 중론이이어서 다시 쓰기로 했다. 사립은 사립정책부장이 맡고 초등은 이미 제작하여 발송했다.  

6월은 광고투쟁이 중심에 섰다. 투쟁기금으로 1000만원을 모으기로 결의했다. 500만원은 6월 초반에 나머지 500만원은 6월 10일 서남권 집중광고투쟁 이후에 운동을 벌이자고 했다. 광고는 3개 지회가 통합으로 박스광고를 내기로 했다. 나머지는 플랑을 제작하고 선전지 등을 제작하는데 쓰기로 했다. 투쟁기금은 순조롭게 모금되고 있다. 제일중 분회는 아침조회 때 분회장이 취지를 설명하고 그 자리에서 1만원씩 전원이 동참하였다. 어느 학교에서는 교감도 선뜻 광고투쟁에 동참했다가 이름만 빼달라는 해프닝도 있었다.

지회별 결의대회는 하중을 느끼므로 대국민 거리선전전으로 변화시키기로 했다. 오는 6월 22일 오후 17시 30분부터 19시까지 초등 중등 사립 별도의 장소에서 선전전을 펼치기로 했다. 처음에는 교육청 앞 집회를 해볼까 했으나 외진 곳에 있고 선전의 효과라 떨어진다는 판단아래 거점을 중심으로 선전활동을 펴기로 했다. 초등은 빅마트 앞, 사립은 평화광장, 공립은 목포역 광장에서 투쟁을 전개할 예정이다.

7. 대중의 역동성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목포지회는 교평저지투쟁과 관련하여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 을 가능한 한 모두를 찾아서 투쟁을 전개해왔다. 목포 공립 중등의 조직률은 76.7%(427/575)에 이른다. 10 명중 8명 가량이 조합원이다. 중등의 집행력이 중심에 서고 초등과 사립이 함께 한 구조이다. 3개 지회의 사업을 합의하고 조정하는 기구인 7인회의의 위상과 역할은 또한 중요하다.

교평저지투쟁의 전개과정 전반에 있어 비교적 안정적인 각종 회의기구를 통하여 확인하고 결의를 해왔다. 집행부 회의-집행위원회-7인회의-교평저지 특별위원회 등 지도집행력의 중심에 선 동지들의 명확한 관점과 활동들이 선행되었다.

이에 비하여 현장 조합원 대중들은 아직 확실하게 활동 내용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분회비상총회에 참여-교원평가문제가 심각한 사안임을 인식하는 과정을 거쳐 구체적으로 서울 분회장 대회에 참여하는 동지들에 대한 투쟁기금 거출-보통 1만원씩-분회별로 차이는 있으나 전국대회에 참여하지 않는 조합원은 1만원의 투쟁기금을 내는 것을 당연한 의무로 생각하고 있다- 광고투쟁에 동참하는 일. 학부모에게 통신을 보내는 일, 이후 리본달기투쟁, 사이버 투쟁, 거리선전전, 6.25 대회 등이 남아있다. 남아있는 투쟁일정도 사실 피부에 와 닿아있는지 확인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상층투쟁이 중요한 시기라는 점만 인정하고 있을 뿐. 지금 시기는 그래서 상층투쟁이 중요하다. 상층에서 뚜렷한 관점 없이 무너지면 교원평가저지투쟁은 실패로 끝나고 말 것이다. 대중의 역동성을 확인할 겨를도 없이.

지금 목포에서는 6.25대회가 성사되면 분회별로 버스 한대씩을 대여해서 교직원 야유회 겸해서 안면도쯤에서 하룻밤 자고 상경투쟁을 벌이자고 분위기를 모아가고 있다. 대회의 성사여부와 상관없이 분위기를 고양해야할 단계라고 본다. 또한 분회별 릴레이 1인 시위 등을 조직하여 거리로 나서는 투쟁을 조직할 수 있으나 아직 몸소 충분하게 성숙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이는 추후 검토할 만한 사업이다. 중앙전선에 명확하게 그어지면 이는 가능한 투쟁이다. 투쟁의 기운을 대폭 상승시켜나갈 수 있는지의 여부는 지도부의 사업에 대한 관점과 자세와 직결되어있다. 네이스 투쟁 때 평생 처음으로 아이를 안고 거리에 나섰다는 주부 선생님의 청아한 시선이 떠오른다.

8. 나가며

목포는 면면한 투쟁의 항구다. 일제하 부두노동자 제유공장 노동자들의 대투쟁과 암태도 농민항쟁의 자랑찬 역사를 이어받고 8.15 해방 직후의 자주적 공동체 건설의 경험을 되새기며 민중이 주인 되는 사회를 위한 투쟁을 계속 이어오고 있다. 25년 전 5.18 목포지역 민중항쟁의 씨앗 또한 헛되지 않아 오늘도 민중연대의 깃발을 새롭게 잉태하며 새 세상을 향하여 뚜벅뚜벅 나아가고 있다.
1989년 목포, 전교조는 42명의 해직교사를 세상에 내놓았다. 비합법시기 전남교육운동의 중요한 축을 담당했었고 94년-98년까지 5년간 전남지부 사무실이 있었던 관계로 집행력을 주로 담보해야만 했었던 목포, 재작년 네이스 투쟁에서 끈질긴 투쟁으로 명성이 드높았던 목포. 2005년 현재 교원평가 저지투쟁을 승리로 마무리하고 다음 투쟁을 예비하고 싶다. 반세계화 반신자유주의 전선에 올곧게 서서 해방 투쟁의 역사를 계승하고 싶다. 해야 할일이 많다. 제발 상층에서 무너지지 않기를 바란다. 지회장, 분회장 등 동지들이 중앙집행위원회의 올바른 결정을 촉구하는 투쟁을 견결하게 잘 벌여주어야 할 터인데. 이상한 투쟁도 다 있다. 중집을 향한 투쟁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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