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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인간다운 삶을 위한 노동자, 민중의 '권리'

교육은 인간다운 삶을 위한 노동자, 민중의 '권리'

 

연구소 교육이론분과

 

Ⅰ. 한국의 교육시스템은 천부인권(天賦人權) 억압시스템

 

1. 교육은 천부인권 : 누구에게나 질 높은 교육을 평등하게 누릴 권리가 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난다. 즉,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 인간으로서 누려야 마땅한 권리들도 함께 가지고 태어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전면적으로 발달할 권리'이다.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건, 여성이건 남성이건, 어디에서 어떤 부모 밑에 태어났건, 한 인간이자 사회구성원으로 태어남과 동시에 '발달 권리'의 주체이기도 하다는 사실에서 어느 누구도 예외로 함부로 규정해선 안 된다.

교육은 '인간 발달'과 함께 '사회의 유지와 발전'을 도모하는 인간의 사회적 실천으로서 인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고 역사 변화에 따라 체계화된 형태로까지 변화해 왔다. 무엇보다도 인간에게 있어서 교육이 중요한 이유는 교육이 인간다운 삶의 영위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반드시 충족되어야 할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육에 대한 권리는 곧 인간다운 삶의 권리나 마찬가지이고 따라서 평등한 존재인 인간에게 있어서 배제나 차별은 용납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이는 사회적으로도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인권에 대한 각종 국제 선언 및 규약, 그리고 국내 헌법에서도 '교육권'은 '천부인권'의 하나로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누릴 권리이고 그 책임이 국가와 사회에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이처럼 교육에 대한 권리는 사회적 기본권이며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누려야 할 권리인 탓에 그에 대한 보장은 '사회가 책임질 일'이며 이 역시 보편화된 상식이다. 만일 경제력을 이유로, 출신지역을 이유로, 성별을 이유로, 장애여부를 이유로, 인종을 이유로 배제와 차별이 행해진다면 그것은 인류 보편이 추구해온 정의로운 상식에 대한 도발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권리에 대한 차별'은 공공연히 때로는 은밀히 행해진다. 아닌게 아니라, 상식을 무시하는 듯한 도전은 비일비재하다. 지배집단은 교육권이 보편적 권리임을 '명문화'하는 일에 합의하는데 그쳤을 뿐 더 나아가지 않는다. 노동자, 민중의 교육권을 실질적으로 보장, 확장하는 일에 그분들께옵서 몸소 애써 주신 바 없다. 다만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노동력의 공급과 사회의 안정적 유지 도모라는 테두리 내에서 노동자, 민중의 교육권에 대한 요구를 강력하게 제기되어야 마지못해 '수용'하는 제스츄어를 취한다.

1995년 5.31교육개혁안이 발표되고 신자유주의 교육재편의 흐름이 태동하던 시기를 떠올린다. 촉각을 곤두세울 문제는 당시부터 '교육권 개념'에 대한 재규정이 시도되었다는 점이다. 소비자주권론이 바로 그것인데, 그에 대한 비판이 만만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효력은 대단하다. 자유권적 해석, 소비권으로의 재규정 이래 지배세력의 교육권에 대한 반동적 언사는 끊이질 않았다. 능력(=경제력)에 따라 '자유롭게' 교육받을 권리를 구가하는 걸 제어하는 각종 규제를 없애라(=공공성의 해체)는 주문이 계속되어 왔다. 이러한 담론들로부터 많은 사람들은 영향받았다. 그러나, 그건 아니다.

요컨대, 교육에 대한 권리가 당연한 권리임에도 차별과 배제는 우리를 줄곧 따라다녀온 끈질긴 현실이다. 이 사회는 '천부인권'조차 체계적으로 억압하고 차별하도록 구조화되어 있을 뿐 아니라, 한 술 더 떠서 '어떤 교육을, 얼마만큼 받았는가'를 '사회적 차별'의 핵심 잣대로 삼을 뿐 아니라 차별을 정당화하는 데 활용한다. 이 지겹고도 끈질긴 현실과 어떻게 단절하느냐가 이 글의 문제의식이다.

 

2. 교육권의 평등한 실현을 가로막는 시스템

 

한 마디로, 한국의 교육 시스템은 천부인권의 평등한 보장은 고사하고 체계적으로 차별하고 때로는 억압하는 비정상적 시스템이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국가교육 정책은 '민중의 교육권 실현, 확장'은 뒷전인 채 가진 자들의 입김대로 같이 놀아나며 '교육권 억압과 구별짓기'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다. 고도성장이 벽에 부딪치고 계급구조가 굳어지면서 서민들의 똥통학교(?)와 귀족학교를 갈라치는 '불평등 교육체제'의 도입 압력이 전방위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출구 찾기에 짜증이 난 부유층은 아예 '조기 유학' '미국시민권 획득'을 통하여 별개의 트랙을 개설해 나갔다. 한편으로는 과잉팽창한 대학 진학률과 깊어가는 경제위기로 말미암아 대학이 고학력 실업자들을 양산하는 '취업 대기소'로 전락했다. 한국 교육은 총체적인 위기 국면에 돌입해 있는 것이다.

총체적 위기에 돌입한 한국 교육의 비정상적 시스템과 권력구조를 혁파하고 모든 이를 위한 질 높은 공교육을 일구어낼 수 있는 주체는 누구이겠는가? 바로 노동자, 민중이다. 지금까지 노동자, 민중은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한 채 잘못된 교육시스템의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고서 삶의 질 하락을 감수하며 살아 왔다. 교육에 대한 노동자, 민중의 열망은 '기회를 형식적으로 확대'하는 것에 그쳤을 뿐이다. 겉보기에 기회는 늘었지만 불평등의 골은 깊어졌고 상대적 박탈감은 더해 간다. 내용과 질에 상관없이 너나 할 것 없이 '더 많이 교육을 받아야 한다. 대학을 가야 한다' 강박을 부추기며 유형, 무형의 에너지를 경쟁에 쏟아붓기를 강요하지만 막상 진정한 교육적 실현은 없다.

 

(1) 노동자, 민중의 교육기회 제약

① 교육비 부담구조

전체 공교육비 중 사부담 비율이 높으며, 엄청난 사교육비 지출이 이루어지는 구조다. 최근 발표된 OECD교육지표에 따르면 국내총생산 대비(GDP) 공교육비 지출 비율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반면, 초중등교육의 민간부담률은 OECD국가의 2배, 고등교육은 4배이상 높다. OECD 평균이 5.5%인데 반해 한국은 7.1%로, 미국(7.0%), 영국(5.3%), 일본(4.6%)보다 높으며 참가국중 최고이다. 반면 교육비 중 민간부담률은 초·중등의 경우 18%로 OECD 평균인 7%보다 2배정도 높으며, 고등교육 단계에서의 부담률은 76%로 OECD 평균인 20%와 비교해 볼 때 4배 이상 높다. 2001년 통계청이 발표한 전국 3만 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2000년 교육부문 사회통계조사 결과에 따르면 10가구당 7가구가 자녀 교육비에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 1이당 월평균 교육비는 22만 1000원, 한 집 당 교육비 지출은 한달 평균 37만 1000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자녀교육비가 벌이에 비해 부담스럽다고 대답한 가구는 전체 가구의 72.5%로 4년 전인 96년보다 5.8%나 늘었다. 교육비 부담요인은 각종 과외비가 56.0%로 가장 높았으며, 학교납입금 37.9%로 나타났다. 특히, 어린 자녀를 둔 30대의 경우 84.4%가, 40대는 50.2%가 과외비 부담이 크다고 밝혔는데, 이로써 사적 영역에서 의존해야 하는 '유아교육'이 주는 부담이 대단히 큼을 알 수 있다. 결국, 높은 교육비 부담은 가계 복지에 악영향을 미치는 결과를 빚고 있다. 우리나라의 초중등 전면 의무교육이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서 늦어진 데다, 유아교육의 공교육화가 전혀 실현되지 않고 있고, 고등교육기관의 70% 이상이 사립교육기관인 데 원인이 있다.

 

② 천민적 수탈을 용인하는 학교 설립 구조 : 비정상적 사학비중과 그네들의 천민자본적 행태

우리나라는 사학이 유난히 많기로 유명하고 그 많고 많은 사학들의 100 중 99는 부패와 비리의 온상이다. 특히, 사립 대학의 경우 공적인 규제로부터 거의 벗어나 있어서 학교를 부의 축적과 세습의 수단으로 삼기에 딱 알맞다. 공적 통제로부터 자유로운 사학의 난립은 결국 노동자, 민중의 교육권을 박탈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상위 20% 계층을 제외한 모든 계층의 소득이 IMF이전에 비해 낮아졌으며 하위 10%에 해당하는 가구의 월평균 소득이 68만원 가량에 불과하다. 상황이 이 지경인데 사립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한국 교육시스템에서 대학 등록금은 나날이 치솟고 있다. 89년 등록금 자율화 조치 발표 이후 12년간(1999~2001) 등록금 인상률은 매년 평균 10% 이상이었다. 현재 사립대학 등록금은 연간 600만원, 등록금을 포함한 대학교육비는 한 학기 평균 600만원 가량이다. 따라서 하위 10%의 사람들은 한 푼도 쓰지 않고 1년을 모아도 한 학기 대학교육비조차 마련하지 못한다. 교육비가 엄청나게 비싸고 그 돈이 교육보다는 사유재산 축적에 샌다는 의혹이 짙은 사립대학이 80%가 넘는다는 것은 오로지 '경제적 이유' 때문에 대학진학을 포기해야 하거나 출혈적 지출을 감행하며 대학 졸업장을 따야만 하는 사람들이 다수임을 보여준다. 사립고등학교도 악명 높기는 마찬가지다. 온갖 탈, 불법을 감행하면서 재산불리기를 멈추지 않고 있으며 그 속에서 인격모독과 교육권 침해는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비정상적 사립비중은 결국 노동자, 민중의 교육권 침해와 경제적 불평등을 통한 교육기회의 차별, 공교육기관에서의 인권침해라는 현실로 이어지고 있다.

 

③ 부실한 교육환경과 지역별 계층별 격차 : 학급당 학생수, 교사 1인당 학생수 등

학급당 학생수는 2000년 기준으로 초등학교 36.3명 중학교 37.7명으로 OECD 평균(초등 22.0명ㆍ중등 24.0명)보다 10여명이나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멕시코의 초등 20.9명ㆍ중등 30명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교육 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지난 2년간의 노력을 감안해 현재 학급당 학생수를 초등학교 33.9명, 중학교 34.8명으로 간주하더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2002년 OECD 교육지표'에서도 OECD 국가 중 학급당 학생수가 가장 많은 나라로 지적된 적이 있다. 교원 1인당 학생수 역시 초등학교 32.1명, 중학교 21명, 고등학교 19.3명으로 OECD 평균(초등학교 17.0, 중학교 14.5, 고등학교 13.8명)을 훨씬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 중앙정부는 공교육의 질을 높이고 동시에 격차가 유발되지 않도록 해야 할 조정 역할을 방기하고 있다. 학교발전기금을 도입하여 지역별 교육비에서 차등을 앞장서 유도했는가 하면, 최근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에서는 학교설립기준 등 공교육의 질을 좌우할 중요 사항들을 지방의 권한으로 '이양'하려는 조치를 준비중이다.

 

④ 서열화된 고등교육체제에서 벌어지는 교육기회의 계층별, 성별, 지역별 격차

고등교육, 특히 상위 서열의 대학에 진학할 확률은 계층별로 다르다. 오히려 계층 구성비와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어, 상위계층에 의해 투자회수율이 높은 고등교육기회가 장악되고 잇는 형편이다. 단적으로, 현재 교육시스템에서 노동자, 민중의 자녀가 서울대에 진학할 확률은 고급관리직보다 무려 30배나 낮다. 서울대 학생생활연구소의 `2000학년도 신입생 특성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아버지의 직업이 기업체 경영주(5인 이상 고용), 고급 공무원 등 관리직이라고 답한 학생이 전체 응답자 4013명 가운데 1039명(26.6%).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이라고 답한 학생 907명(23.2%)으로 관리직과 전문직의 비율은 49.8%에 이르렀다. 반면 아버지의 직업이 공장노동자 등 생산직인 학생은 365명(9.3%), 판매직은 370명(9.5%), 농어업은 138명(3.5%)에 그쳤다. 단과대 별로는 음대가 `아버지의 직업이 전문직 또는 관리직'이라고 답한 입학생이 73.2%를 차지해 가장 높았고, 의예과가 70.7%로 뒤를 이었다. 출신 지역(주요 성장지역) 별로 보면 전체 응답자의 45.2%가 서울에서, 31.0%가 광역시에서 주로 성장했다고 답했다. 반면, 읍 출신은 59명(1.5%), 면 이하 출신은 72명(1.8%)에 불과해 지역편중이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전체 응답자의 59.3%가 자신이 중류계층에 속한다고 답했으며, 하류는 2.7%, 상류는 0.5%에 불과했다. 한 조사연구도 이러한 결과를 지지한다. 서울 소재 유명 o사립대에 진학한 학생의 계급 구성을 보면 자본가계급이 18.2%, 전문직/관리직은 50.6%, 하위사무직은 13.8%, 쁘띠부르주아계급 9.7%, 노동자계급 5.7%, 농민계급 2.0%로 나타났다.

요컨대, 모든 이가 질 높은 교육을 누릴 물적 토대는 이미 있지만, 정작 중요한 교육권 보장 정책이 뒷전에 밀린 채, 계층, 지역, 성별, 장애여부에 따라 교육기회가 차별적으로 주어지고 있다.

 

(2) 지식과 기술에 대한 권리의 차등화 : 노동자, 민중의 전면적 발달을 가로막는 교육과정

첫째, 학교 지식의 규정과 교육과정 편성에서 노동자, 민중은 체계적으로 배제되어 왔다.

영, 브루디외, 번스타인 등은 학교 교육과정이 계급중립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가정은 허구에 불과하며 사실상 특정계층에게 유리한 내용과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밝힌 바 있다. 즉, 교육의 결과에서 차등을 유발하는 요인은 교육과정의 계급 편향과 관련이 있다는 의미이다. 어떤 지식이 학교의 '공식적 지식'으로 규정되는 맥락은 사회적 힘의 관계, 즉 계급 역관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직접적인 원인의 하나는 공식적 지식의 규정 및 그 지식을 학교교육과정으로 편성하는 과정에서 노동자, 민중, 사회적 소수자의 참여가 봉쇄되다시피한 현실 때문이다. 파시즘적 교육체제에서 우리의 학교교육과정은 정권 수호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었고, 기본적인 민주주의의 내용조차 공식적 교육과정의 영역에 들어올 수 없었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 민중이 교육과정에 개입할 여지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80년대 교육민주화 운동 이후 지금까지도 상황이 근본적으로 달라진 건 아니다. 7차 교육과정으로 대별되는 신자유주의적 교육과정 재편 과정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둘째, 지식, 기술의 분배가 차등적으로 이루어지고, 지식, 기술의 생산 과정의 통제권과 결과물을 지배집단이 특권적으로 장악하고 있다.

불리한 위치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 민중의 자녀들은 열악한 교육환경 속에서 지식 - 게다가 계급 편향적인 -의 차등적 분배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업무압력 및 학생통제의 압력에 시달리면서 정해진 진도를 나가야만 하는 교사가 처한 교실 수업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들이다. 게다가 수준별, 선택형이 골간인 7차 교육과정에서 이런 현상은 보다 노골화되고 있다. '가르기'를 교육과정의 기본원리로 삼는 순간, 지식의 차등적 분배는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린다.

현재의 학교교육 과정에서 벌어지는 이런 일들은 노동의 탈숙련화 경향과도 연관지을 수 있다. 지식을 배타적 소유의 대상으로 여기고 이윤추구의 기반으로 삼는 순간, 자본에 의한 지식독점이 일어난다. 지식의 생산은 공공의 힘으로 창출되고 축적된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자본에 의해 한 곳에 모이고 배타적으로 소유하게 되는 순간 다수 민중은 이에 대한 권리를 박탈당하게 되며 노동과정에 있어서는 구상과 실행의 분리가 심화되는 탈숙련화 과정이 나타나게 된다.

이는 결국, 지식과 기술에 대한 민중의 권리 박탈을 의미하는데 현재의 교육시스템은 이것을 적극적으로 만드는 방향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3) 기득권층의 탐욕과 이기주의가 판치는 담론 / 정책 생산 구조

안 그래도 민주주의의 토대가 허약한 의사결정 구조 위에, 경제부처, 재계, KDI, 보수언론 등 사회 기득권층(경제, 학벌 엘리트)이 교육정책 및 담론 영역을 장악하고 휘두르는 현상이 근래에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노동자, 민중은 '비전문가'라는 이유 및 갖가지 형태로 의사결정과정에서 체계적으로 배제되어 왔는데, 결국 노동자, 민중은 교육정책에 대한 공식적 발언기회를 박탈당한채 불리한 정책들이 양산되어 왔다. 국가교육정책 수립과정의 최우선 순위여야 할 교육권 보장 정책은 언제나 뒷전이었다.

우선 교육부는 교육정책에 대한 독점적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다. 정책결정과정에 노동자, 민중의 입장이 반영될 틈은 거의 없으며 교육부는 기득권 층의 이해를 대변하는 방식으로 정책을 수립해 왔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 민중의 몫으로 돌아오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교육정책에 대한 집단적 반발을 '이해 집단 간의 갈등'으로 깍아내리거나 그런 갈등을 유발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주목할 일은 최근 들어 정부 부처에서는 경제관료의 입김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KDI나 경제부처, 보수언론의 최근 2,3년 간의 담론 형태는 자본의 이해에 충실한 교육구조를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교육재편의 출발 당시 대중을 현혹시키는논리로 사용한 '소비자 주권'론의 '소비자'가 결국은 '자본'이었음이 보다 분명해지고 있다.

현재, 이런 지저분한 커넥션은 결국 민중의 교육권을 억압하고 자본의 이해에 맞는 교육구조의 창출을 강제하는 핵심이다.

 

(4) 그래서 결국, 지금의 교육시스템은 사회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기제

빈곤이 날로 심해지고 빈부격차의 골이 깊어지는 가운데, 교육을 통한 지위 대물림 현상이 고착화되고 가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10월 12일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2000년 현재 다섯 가구 중 한 가구 꼴로 무직자 가구(18.8%)로 나타났다. 5년 사이(1996년 11.4%) 무려 7% 넘게 늘어났다. 민생파탄이 계속되었다는 걸 감안하면 2003년인 지금 무직자 가구는 훨씬 늘었을 게다.

한편, 도시 가구 10가구 중 한 가구(10.1%) 꼴로 최저 생계비(4인 기준 92만원)도 못버는 절대빈곤층이라 한다. 5년 만에 (1996년 5%) 두 배로 늘어난 셈이다. 무직자 가구와 마찬가지로 절대빈곤가구도 3년을 경과한 지금은 훨씬 많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 모두가 이런 게 아니다. 상층은 오히려 부를 더 늘려가고 있어서 빈부차는 몇 년 사이에 더 크게 벌어져왔고, 상대적 박탈감은 날로 커지고 있다.

빈곤층이 날로 늘어가고 빈부격차도 심해지는 가운데, 교육은 가계부담을 가중시키는 중요한 요인으로 자리잡았다. 우리나라의 학부모는 가계지출의 11%, 연간 243만원을 교육비에 쏟아붓고 있다. 올 2사분기 교육비는 작년대비 17%나 증가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다 알다시피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드러나지 않는 사교육비가 연간 30조원이 넘는다. 그것까지 합치면 아이들 교육시키는 데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써야 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애들 교육 때문에 아이를 낳지 못하고, 아이들 과외비를 벌기 위해 파출부로 나가야 하는 것이 오늘의 비참한 현실이다.

학력, 학벌의 '차이'는 단순한 차이로 그치지 않고 성별, 장애여부 등과 결합되어 사람들을 '차별'하는 중요한 기제가 된 지 오래다. 신자유주의 교육재편은 이러한 '차이'를 공교육제도에서 만들어 내려는 각고의 노력을 해왔다. 대표적인 것이 자립형사립고, 자율학교, 외국교육기관 등을 공교육 체제에 들이밀고 평준화를 해체하려는 도발적 움직임이다. 더불어 수준별, 선택형 교육과정 등 차등적 교육과정 구조를 만들려는 흐름이 몇 년째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정책들은 보편교육단계에서부터 '차이'를 생산하고 이 차이가 차별로 고스란히 이어지도록 만들려는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 노동자, 민중의 교육의 권리 확대와는 하등 관계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치명적인 것들이다. 지금까지의 '소비자 선택권 확대' 정책은 교육을 통한 '차별'을 영원히 고착화시키고자 하는 계층에게만 유리하게 작용했을 뿐이다. 게다가 경제적 격차가 교육받을 권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교육구조 속에서 삶이 더 어려워진 노동자, 민중은 삶의 질 하락을 감수하면서 출혈적인 지출을 감행해야 한다. 하지만 그 결과는 비참하기만 하다. 앞서 밝힌 대로 상층의 교육기회를 누가 더 많이 차지하느냐만 보아도 분명한 현실이다.

이처럼 교육은 경제적 불평등, 빈곤을 대물림하는 기제로서 꾸준히 역할해 왔으며, 신자유주의 사회 재편, 교육재편이 시작된 이래 그것을 점점 더 극단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구조화되어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등은 큰 소외를 경험하고 있다. 특수교육진흥법에서는 장애유아의 교육을 무상교육이라고 규정하고 있으나 이는 법률상의 문구일 뿐 유아특수교육기관의 절대부족으로 인하여 현재 3∼5세의 장애 영유아 중 4%만이 국가에서 실시하는 조기 특수교육을 받고 있고 대부분이 비용부담이 높은 사교육에 의존하여야 하는 형편이다. 장애아동의 특수학교(급) 취학률은 43.4%에 불과하여 많은 수의 장애아동들이 교육기회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이 또한 사립(64.3%)의 비중이 높으며 상급학교로 진학할수록 취학률이 떨어진다. 저임금으로 3D업종에서 착취당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자녀들은 공교육기관에서도 박대를 당하고 있다.

 

3. 노동자, 민중이여 현재의 불안을 대면하고 해체하라!

 

모순을 확대재생산하며 수십 년 째 돌아가고 있는 불평등 시스템의 최대 피해자는 다름 아닌 노동자, 민중 자신이다. 우리의 미래인 노동자, 민중의 아이들이다. 그러나 민중진영에서는 아직까지 자신의 당연한 권리인 민중교육권 실현을 당당히 요구하지 못해왔다. 교육을 통해 지위가 대물림된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거의 눈뜨고 지켜보고만 있었다. 아니, 어떻게든 교육을 시키기 위해 뼈빠지게 노력했지만 그 결과는 참담하다. 그들이 만들어놓은 게임의 룰을 바꿀 생각보다는 그 속에서 농락당해온 것이다.

이는 결코 노동자, 민중이 교육의 문제를 소홀히 바라봐서가 아니다. 교육문제만큼 사회경제적 처지와 불평등이 뼈아프고 가슴 저리게 하는 문제도 드물다. "교육에서조차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고, 나의 처지를 대물림해야만 하는가!"라는.... 그럼에도 잘못된 상식과 뿌리깊은 패배주의가 '정당한 요구'를 우리 스스로 꺼내기 힘든 '황당한 요구'로 인식하게끔 만들어 왔던 것이다.

과연, 누가 '교육평등'을 이야기할 때 힘이 실리겠는가? 하지만 교육권에 대한 민중의 비주체성은 지금까지 교육논의에 대한 지형에서 근본적 한계를 규정지워 왔다. '산업수요에 부응하는 교육' 등 자본은 거침없이 나서는데 노동자, 농민 등 대항의 근본 주체는 없고 일부시민단체와 교사만이 나서는 형국이었다. 자본이 나서는 교육논의의 진정한 대항주체는 민중이며 이제 민중이 나서야 한다.

인간적 권리의 실현은 권리의 주체가 나설 때라야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음이 지금까지의 교훈이다. 그들이 만든 게임의 룰에 더 이상 가랑이 찢어져라 쫓아가지 말자. 더 이상 상처받고 힘들어하지 말자. 그들이 만든 쓰레기 같은 현실과 단절하고 민중이 교육의 주인의 주인이 되자. 그러기 위해서는 민중이 교육운동의 주체로 당당히 나서야 한다. 민중이 나서서 민중적 교육개혁을 이야기하고 '민중적 교육대안'을 제시하고 힘의 관계를 바꾸어내는 실천을 할 때 교육은 바뀔 것이다.

다시 강조한다. 교육권은 노동자, 민중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반드시 쟁취해야 할 기본적 권리이다. 낭만적인 자유권도, 얄팍한 소비권도 아니다. 이제 노동자, 민중은 교육권의 주체로서 인간다운 삶을 위한 교육권의 내용을 본질적으로 사고해야 한다. 노동자, 민중의 교육적 권리 실현은 모든 이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노동해방, 인간해방'과 다른 얘기가 아니다.

 

Ⅱ. 교육권의 민중주체성, 그 정당성과 중요성

 

왜 노동자, 민중이 교육권의 주체로 나서야 하는가

교육권의 주체는 노동자, 민중이며 질 높은 교육을 모든 이가 평등하게 누릴 권리를 실현할 주체도 노동자, 민중이다.

첫째, 법에 명시된 교육권의 수준에도 못 미치는 현실, 법과 현실의 괴리가 지속되어 왔다. 최근에는 교육권에 대한 법 조항에 대한 '새로운 해석' 마저 내어놓으며 교육권을 사회권적 기본권이 아닌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권리로 재해석하는 시도마저 나타났다. 그러면서 평준화는 위헌이고 과외금지도 위헌이라는 주장을 거리낌없이 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제 현실과 법의 괴리를 넘어 '왜곡'까지 나타나고 있는 위험스런 사태가 연출되고 있다. 부유층은 공교육에 계급 경계선을 만들고 특정 지대에 안주하기 위해 교육권을 소비의 자유를 누릴 권리로 해석하는 과감성을 보이고 있다. 그들이 원래 지니고 있던 '한 치도 손해볼 수 없다'는 뻔뻔스러운 욕망을 신자유주의 교육재편 흐름은 한껏 치켜세웠다. 반면 노동자, 민중은 교육권의 주체가 바로 우리들 자신이며 기득권층의 교육권에 대한 재규정이 결국은 노동자, 민중의 희생을 담보로 하는 것임을 자기 목소리로 이야기하지 못해왔다. 노동자, 민중이 나서서 그런 움직임에 대응하고 눌러앉히지 않는 한 그들은 끊임없이 아전인수권 교육권 해석을 들이밀면서 현실의 교육에 계급적 울타리를 제도화하려는 시도를 계속해서 감행할 것이다.

둘째, 노동자, 민중이 나서지 않는 한 한국교육의 모순은 계속해서 확대재생산될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과 부유층은 자신의 이해를 교육에서 관철시키는 일에 직접 나서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아주 뻔뻔스러울 정도이다. 관료와 자신들 편에 서있는 전문가 집단을 대리시키는 우회적 방식으로 그치지 않고 있다. 평준화 해체를 당당히 이야기하고 외화유출을 막고 교육의 경쟁력을 살리기 위해 외국교육기관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야기도 서슴지 않는다. 교육을 경제에 종속시키고 지위의 대물림에 안정을 기하려는 시도에 그들은 아무 거리낌없이 나서고 있다. 민중이 나서 처참한 현실, 그리고 그런 현실을 만들어내는 자들과 직접 맞서지 않는 한 노동자, 민중을 소외시키는 모순의 확대재생산은 필연일 수밖에 없다. 노동자, 민중은 '생존을 위한' '인간다운 삶을 위한' 투쟁인 반면, 그들의 투쟁은 기득권을 조금도 포기하지 않으려는 추악한 이기주의의 발로에 불과하다. 노동자, 민중이 나서지 않는 한 불평등 재생산 시스템인 한국교육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칠 방도는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노동자, 민중이 나서지 않는 한 그들은 아무 장벽도 느끼지 않고 자신들의 계급적 이해를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일사천리로 관철시키려고 들 뿐이다.

셋째, 나아가 노동해방, 인간해방의 실현을 지향하는 방향의 교육시스템 변화는 노동자, 민중의 절실한 요구이자 바램이다. 자본가가 해방을 바라겠는가? 꼴보수 정치가가 해방을 바라겠는가? 해방을 가장 간절히 바라는 이는 억압받는 노동자, 민중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일을 실현할 주체도 바로 노동자, 민중일 수밖에 없다. 다만, 노동자, 민중 스스로가 나서야만 '해방'을 앞당길 수 있다는 새삼스러운 진리의 각인이 필요할 뿐이다. 노동자, 민중의 인간다운 삶의 실현, 즉 노동해방, 인간해방은 너그러운 권력자의 시혜로 이루어질 일이 아님은 너무도 분명하다. 그리고 그들은 교육을 통한 사회통제를 끊임없이 구상할 뿐이다. 자비로운 자본가의 자선에 기댈 일도 아니다. 그들은 교육을 통한 부려먹기 좋은 양순한 노동자의 공급과 계급재생산, 교육을 통한 이윤 창출에 열정을 다할 뿐이다. 그들은 노동자, 민중이 바라는 방향의 교육의 변화를 결코 바라지 않는다. 교육을 두고 일어나는 다툼은 엄연한 '계급투쟁'이다. 이 투쟁에서 노동자, 민중의 양보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곧 생존의 위협을 의미하는 것이며 인간다운 삶의 포기요구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얄팍한 온정적 시혜의 '대상'이 아닌 구상하고 통제하는 권리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

민중 스스로가 알게 모르게 내면화해온 교육권에 대한 거리감을 극복해야 한다. 교육권의 주체인 노동자, 민중이 교육운동의 주체로 나서야 하며, 소극적인 교육 '받을' 권리 보장 요구에서 더 나아가 교육시스템을 구상, 기획하고 통제하는 적극적, 주체적 권리의 실현을 목표로 인식해야 한다.

 

Ⅲ. 민중교육권의 의미와 권리의 내용 : 이제 본질적 요구를 들이밀 때

 

민중교육권이란 말에는 교육의 주인은 노동자, 민중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진정한 주인된 상태는 교육을 구상하고 그 구상을 실현할 권리, 즉 교육에 대한 통제권까지 가진 상태다. 따라서 노동자, 민중이 교육의 진정한 주인으로 선다는 것은 교육권의 주체인 노동자, 민중이 교육의 통제권까지 가진 상태를 의미한다. 그간 노동자, 민중의 교육에 대한 요구는 '취학기회의 확대' 정도에 그쳐왔다. 이제 노동자, 민중은 인간다운 삶을 위한 권리로서 교육에 대한 본질적 요구를 들이밀어야 한다. 이제 양적인 차원을 넘어 교육의 질과 교육의 내용에 대한 요구를 해야 한다. 인간다운 삶의 기초로서 앎과 가치에 대한 노동자, 민중의 권리를 쟁취해야 한다.

 

1. 노동자, 민중이 쟁취해야 할 교육에서의 권리들

 

공교육은 민중교육권 실현의 아주 중요한 통로다. 이제 노동자, 민중은 교육에 대해 본질적 요구를 들이밀고 힘을 모아 기득권층의 저항을 제압하고 교육권 실현에 나서야 한다. 현재로서는 공교육이라는 틀을 어떻게 민중의 가치를 실현할 그릇으로 만들고 그 내용을 어떻게 채우느냐가 과제일 것이다. 이 일을 이루기 위해 공교육개편운동에 노동자, 민중의 힘을 어떻게 모으느냐가 교육운동 주체들에게 부여된 숙제이다.

기본 얼개는 다음과 같다.

(1) 공교육의 지향 : 인간의 전면적 발달 + 사회진보 (노동해방, 인간해방)

(2) 노동자 민중의 교육권 실현을 위한 핵심 고리 : 교육에 대한 민주적 민중통제

(3) 교육권 실현의 본질적 영역 : 지식과 기술에 대한 권리 획득

(4) 주요 과제

   완전무상교육실현

   공교육내실화 (교육과정 전면개편+질 높은 공교육)

   대학개혁과 대입제도 전면개편

   보편교육에 입각한 단선형 학제 (평준화)

   현장중심의 민주적 교육자치

   소수자의 교육권 실현을 위한 영역 강화

   공공의 사회문화적 교육기반 확충

 

2. 공교육개편운동과 민중교육권

 

공교육개편운동이 시작되었다. 노동자, 민중의 교육에 대한 요구를 시스템으로 구성하여 사회에 제기하는 일은 그동안 없었다. 아직은 시작에 불과하지만, 노동자, 민중의 요구를 구체화하고 그 일을 몸소 해나갈 주체의 역량을 결집해가기 시작했다는 데에서, 그리고 비로소 민중주체성의 중요성을 자각하고 교육시장화에 맞설 중심주체로 노동자, 민중을 세우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는 크다.

첫째, 민중교육권 쟁취는 공교육개편 운동의 목표이다.

공교육개편을 왜 이야기하는가? 그건 누누이 지적한 대로 '민중교육권'의 쟁취는 이제 우리 교육을 민중교육권을 실현하는 틀로 바꾸는 일 없이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천부인권 억압시스템을 혁파하고 인간의 전면적 발달, 사회진보를 지향하는 교육시스템을 노동자, 민중의 힘으로 만들 때 민중교육권은 쟁취할 수 있다.

둘째, 민중교육권은 노동자, 민중을 교육운동의 주체로 세우는 개념이다.

노동자, 민중이 나서지 않는 한 교육은 올바른 방향으로 바뀌지 않는다. 노동자, 민중이 나서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주인임을 자각하고 그에 맞는 운동의 틀을 세워야 한다. 민중교육권이라는 개념은 노동자, 민중이 바로 교육운동의 주체임을 이야기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그래서 노동자, 민중이 인간다운 삶의 실현을 위해 교육운동에 나서도록 촉구하고 주체화 하는 것이 바로 민중교육권인 것이다.

민중교육권의 개념을 정립하는 것은 이 모든 일을 출발일 뿐이다. 그러나 민중교육권의 깃발을 노동자, 민중이 들고 나서는 건 아주 중요한 시작이다. 그 깃발을 꺾으려는 시도는 무수히 많을 것이다. 하지만, 용기와 확신을 가져야 한다. 지금까지 교육운동을 일구어온 주체들이 부딪힌 벽은 노동자, 민중과 함께 하지 않으면 돌파할 수 없다는 것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자본과 기득권층의 일그러진 욕망에 철퇴를 가할 주체는 노동자, 민중이다. 노동자, 민중이 전면에 나서서 교육평등을 이야기하고 인간다운 삶의 권리를 이야기할 때만이 세상은 움직이고 세상은 바뀐다. 노동자, 민중이 중심에 서서 민중교육권 쟁취를 목표로 한 공교육개편운동을 벌일 때, 인간다운 삶은 시작된다. 그것이 모두가 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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