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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준비 1호 일곱사람이 열 걸음을 내딛자

2001.10.11 12:00

정은교 조회 수:1736 추천:5

일곱 사람이 열 걸음을 내딛자

일곱 사람이 열 걸음을 내딛자

정은교(연구실장)

<이야기 하나>'한겨레'를 위한 '쓴 소리'
얼마전 한겨레 신문 '열한 돌 특집'호에, 몇몇 분의 '한겨레 비판'이 실렸더라. 대충 옮기자면 <<정보도 빈약하고 재미도 없소. 문화면에는 그나마 진취성이 살아있는데 정치면은 '영 아니올시다.' 정권 비판은 '술 탄 물'이요, 勞使관계는 속 편한 '兩非論'을 즐기누만요.(가령 지하철노조 파업때) "상황이 어려우니 정부도 어쩔 수 없지 않으냐. 나라 시책이 '경쟁력'엔 도움되나 '평등'엔 약간 문제 있다"는 식인데, 그러니까 "신자유주의를 계속하되, 부작용은 줄이자"는 투인데, 참으로 무책임한 발언 아니냐. 그러니까 '여당지'라는 비아냥을 듣지 않느냐. 당신네가 아무리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어도, 보수층한테는 여전히 '과격파' 소릴 듣는다. 변함없는 '구독률 꼴찌'를 벗어나기 위해서도'확실한 진보'편에 서야지 않겠느냐?허울좋은 '종합' 일간지를 벗어나서, 고단한 백성네, '왕따'당하는 少數者를 본때있게 대변하라. 그러면 값을 두 배로 올려 받아도 기꺼이 구독할 거다.>>'정보량이 빈약하고, 글읽는 재미도 덜하다'는 점은 큰 허물이 아니렷다. 힘과 재주가 딸린다는 데야 어쩔 텐가? 우리는 한겨레에게 그저 '길 잃지 말 것'만 바랄 뿐이어라. 앞으로 혹시나 전교조도 한겨레처럼 비아냥 소릴 듣게 되지나 않을까, 문득 전율하노니.

<둘> 지구촌 살림살이 이야기--채플린의 꿈을 아시는가?
자본주의에는 '공황'이라는 게 가끔 닥쳐 온다. 허리케인같은 거대 공황의 파도가 처음 밀려닥친 때는 '파리 콤뮌'이 생겨나던 1870년쯤이었단다. 두 번째 파도는 '영원한 번영의 신화'에 한껏 취해 있던 1929년에 낮도깨비처럼 찾아들었다. 그 해 10월 미국 뉴욕 주식시장에 오른 주식값이 870억 달러였는데, 4년 뒤엔 그 값이 아찔하게 190억 달러로 둔갑했지. 7백억 달러의 까마득한 돈이, 숱한 백성의 눈물과 한숨을 쏟아내며, 배춧잎 단풍잎 돈을 휴지 조각으로 날리며 마법의 허공으로 증발해 버린 것. 그때는 참 희안한 광경이 득시글했다더라. 공장 창고에는 밀포대와 옷과 석탄이 가득찼는데, 거리에는 굶주려 얼어죽는 사람들 투성이였다니! <찰리 채플린의 영화에 나온 '바나나 훔치는 소녀'의 가련한 모습>이 떠오르시는가? 그런데 우리는 이 얘기를 '옛날 옛적, 간날 간적, Once upon a time'의 얘기로만 치부할 수는 없게 된 시대에 살고 있다. 혹시 지구촌 곳곳에 세 번째 허리케인이 밀려닥치는 것은 아닐지, 그럴 때 그 재앙을 어찌 헤쳐나가야 할지 참으로 진중하게 살펴야 한다는 소리다.

그동안 우리 한국 백성은 소말리아, 르완다 백성 수백 만이 굶주리다 못해 제 몸뚱이를 독수리 앞에 바쳤어도, 멕시코시티 거리에 부랑자/노숙자 무리가 산더미로 넘쳐 났어도, 다 '남의 이야기'요, '강 건너 불'이려니 했다. 우린 다르다구요! 열심히 하니까 경제성장이 되잖아요? 얼른 '세계화'해서 선진국이 되자구요! IMF는 맞았어도 다시 정신차리고 뛰면, '금 모으기 운동'에 고사리 정성 모았던 식으로, 온 백성이 뜻과 손을 한데 모으면 다시 번영의 길로 갈 수 있다구요!!?? 하지만 우린 까맣게 몰랐다. 꼭 우리가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만 '고도 성장'을 누린 게 아님을. 우리네 '30년 호황'은 미국과 일본 경제에 악착스레 더부살이한 덕분에 드물게/예외로 얻은 행운임을. "박정희 또는 전두환 시절이 차라리 좋았니라"는 투의 헛된 미련을 품는다 해서 그 '예외적 성장'의 시절이 다시 돌아오지는 않음을. 세계 공황의 파도가 '럭키 코리아'라 해서 비껴 가지는 않을 것임을.

지금의 위기는 일찍이 70년대 중반에 비롯되었다. 밀치락달치락하는 한 소끔의 경기변동은 있었어도 그때이래 줄곧 유럽은 불황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다. "자본가 집단이 챙길 이문도 모자라는 판에, 백성 위한 복지 예산이 웬 말이냐!"하고 미세스 대처 따위가 험악스레 나선 것도 그 까닭에서다.(얼마전 대처는 피노체트와 열렬히 포옹했지.)남미? 위기는 이미 80년대에 폭발하여, 멕시코나 아르헨티나는 IMF의 신탁통치를 거치면서 세계 초국적자본에 민족경제가 고스란히 먹혀버렸네. 남미의 80년대를 '잃어버린 10년'이라 일컫는다누나. 아프리카? 그 참담함은 떠올리기조차 꺼려진다. 헌데, 생각 짧은 딴나라 백성들은 그 참상을 속편히 '저희들 못난 탓'으로 치부할지 몰라. 그래야 자기들 양심이 덜 불편할 테니까. 허나, 아프리카의 농업이 파산으로 몰린 뒷전에는 원자재 가격 폭락과 IMF의 구조조정 횡포가 도사리고 있다. 중심부 자본주의는 아프리카를 저희 틀에 멋대로 낑겨 넣어, 아쉬울 때 단물 빨아 먹고는 쓸모가 없어지자 내팽개친 셈이렷다. 이미 '장사꾼식 농사'에 중독돼 버린 그 가엾은 대륙을!

일본은 80년대까지도 떵떵거렸지. "일본자본주의에서 배우자!"는 켐페인이 미국/유럽, 한국의 신문을 새새틈틈이 도배질했다. "혹시, 미국마저 앞지르는 거 아냐?"하는 시샘마저! 헌데, 90년대로 들어와선 그 켐페인이, 늘 자랑삼던 <평생 고용/ 한 회사= 한 가족>신화와 더불어 깜깜히 사라졌다. 한국과 동남아? 일본의 번영에 힘입어 성장을 누려왔으나 지금 국제투기자본의 공격에 인도네시아는 온나라가 휘청댄다. 수하르토가 단박에 권좌에서 쫓겨난 것도 그 때문일세. 동남아시아는 '세계화'의 막차를 간신히 얻어탔으나, 몇 정거장 못 가서 그 고물 버스가 고장나 멈춘 꼴이다.러시아? 부패/무능한 국가사회주의 관료경제가 하루아침에 갱신될 일은 아니었다 해도, 무식한/눈먼 자본주의 보급이 사태를 훨씬 망가뜨렸다. 서방 진영이 그들에게 선물한 것은 '마피아 자본주의'뿐 아니었던가. 러시아는 요즘 들어 생활 수준이 50%나 깎여내리고, 기대수명이 5년이나 줄었다는데, 돈 한 푼에 몸파는 여자들이 줄지었다는데 서방 언론은 이 참상을 쳐다도 안 본다. 혹시나 지구촌에 난리가 퍼진다면 러시아발(發)? 또는 인도네시아발(發)? 아니면?

잘 된 집안은, 가지나무에 수박 열린 집은 어디인가? 미국만이 90년대 들어와 여태껏 약간이나마 호황을 누려 왔지. 허나, 이 번영이 '속 빈 강정'일지 모른다는 걱정이 무척 높다. 유산 계급을 뻔뻔스레 편든 레이건의 신자유주의 노선 덕분에 미국은 두 사회로 섬뜩하게 갈리어 따로 논다. 미국의 실업률이 유럽보다 훨씬 낮다는 선전이 요란하지만, '유연화'된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언제 쫓겨날지 가슴을 쥐고 산다는 점을 떠올리면 그 통계는 허깨비렷다. '아메리칸 드림'의 나라에서 절대빈곤에 놓인 백성이 무려 3-4 천만명이나 된다. 73-94년 사이에 미국의 GNP가 ⅓ 올랐으나, 노동인구의 ¾을 차지하는 노동자 계급의 평균총액임금은 그 사이에 19% 떨어졌다고 한다. 호황의 열매는 몇몇 부유층이 죄다 긁어간 셈이다. 오죽하면 딱히 '진보 언론'이라기 어려운 '뉴스위크'마저 '임금과 일자리를 죽여나가는 미국 자본주의'를 일컬어 '킬러 자본주의'라 개탄했을까. 엄청나게 거품이 낀(=자산이 과대평가된) 주식시장만이 미국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데 그 거품이 꺼지는 날엔 미국도 더 이상 세계 불황의 마지막 버팀목 노릇을 떠맡기 힘들어진다.

여러분! 이 심상치 않은 세계 공황의 조짐에서 헤어날 길은 무엇일까? '자본'쪽이 내놓는 방안은 참 단순하고 속편하다. 부도기업은 무너지게 냅둬! 노동자 내쫓는 것도 막지 마! 수없이 기업이 무너지고, 실업자가 와글와글 들끓어야 '살아남은 (독점)자본들'의 이윤이 풍성해지고 경쟁력이 생겨난다. 공황은 '자연법칙'이다! 그 뜨거운 불세례로 막대한 생산력을태워없애야 자본주의는 다시 소생한다. 경배하나니, 오, 공황이여, 자본주의를 맑혀주고, 갱생케 하는 불의 여신이여! 19세기와 20세기 전반에 자본주의가 '공황'에서 회복돼 나간 길은 대충 이런 길이다. 쳇바퀴 돌 듯 다시 그 길로 가야 할까? 그러면 희망봉이 모습을 나타낼까? 그럴 수도 있겠지. 중소 기업이 와르르 닫고 제 목숨 끊는 실업자가 꼬리를 물어도, 그 덕분에 독점자본은 너끈히 살아남지. 인도네시아의 자본은 죽어도, 그 덕분에 미국의 독점자본은 살아남겠지. 그리하여 한바탕 회오리가 지난 뒤, <국내외> 독점자본이 싹쓸이에 나서서 다시 호황을 불러올 수도 있겠지. 허나, 그렇게 소생하는 경기라는 것은 <세계화의 덫>의 글쓴이가 '촌철살인'으로 정식화했듯이 <20 : 80의 사회>로 틀짜여진 가운데 천식 환자처럼 그렁그렁 힘겹게 숨을 잇는 호황일 뿐이다. 빈자(貧者)들의 골목시장은 사막처럼 말라붙고, 부자(富者)들 백화점만 격양가를 뽐내는 일그러진 경제일 따름이다. 항상 '실업자'들이거리에 넘쳐나야 하고, 백성 복지의 엄청난 후퇴, 지구 환경의 야만스런 파괴를 대가로 치러야만 간신히 보장받는 그런 식의 경제제도 / 생산양식! 누구 좋으라고 우리가 그 길로 가야 할까?

자본의 패권에 맞서 세계 백성이 서로 손잡는 노력들은 일찍부터 조금씩 있어 왔단다. 이를테면 '주빌리2000' 단체는 제3세계 나라 외채 탕감 운동을, 'ATTAC' 기구는 '자본에 더 엄중한 소득세를! 국제금융거래에 세금을!' 매겨서 '카지노 자본주의'도 잠재우고 제3세계도 도우려는 활동을 벌여왔다 한다. 물론 이쯤의 소박한 대안만 갖고서, 국제 금융거래의 98%가 상품/서비스 교역과 무관하게 오가는 '카지노 자본주의'의 '미친 소동'은 얼마간 가라앉힐 지언정, 자본 축적의 본원적 모순(...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이윤율 저하⇒주기적 과잉생산/축적...), 그리고 자본주의의 끝모를 불균등발전의 법칙에서 비롯되는 끊임없는 '체제 불안'을 단결에 지울 수는 없겠지. 그렇긴 해도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으로 휘둘러온 신자유주의 패거리들의 기세를 당장 눌러놓는 게 시급하다는 점에서 참으로 소중하다. 이러한 실천들 없이 우리는 밀레니엄의 희망을 떠올릴 수 없다.

헌데, '최초의 정권 교체'를 으스대는 우리의 '국민 정부'는, 70-80년대 민주화투쟁에 헌신한 '맑은 피(?)'들을 적지않이 수혈(輸血)한 국민회의 정권은, 이 지구촌의 엄중한 현실을 어떤 눈/관점으로 내다보고 있을꼬? '주빌리 2000'이나 'ATTAC'만큼이라도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알아보았는고? 그들만큼이라도 소박한 휴머니즘을 실천해 왔는고? 아니면 세계 곳곳이 난리 치르는 지금에도 여전히 "시장에 맡겨라! 그럼 낙원이 온다!" 이 우직한 논리를 돌쇠처럼 끄떡없이 <복음>으로 믿고 있을꼬? 허울을 걷고 나면 그 얘기가 "국내외 독점자본에게 세상을 맡기라!"는 뜻으로 번역된다는 사실을 그렇게도 모를꼬? '세계화'는 우리가 손댈 수 없는 '자연 현상'이다? 그저 '적응하는 길'밖에 딴 도리가 없다? 아프리카, 아시아 나라들이 코쟁이들 빚 갚지 못해 기둥마저 와르르 무너져도 그건 어쩔 수 없다? IMF의 신탁통치는 120% 받아들여야 한다? "어이, 너희들! 우린 너희 빚 못 갚겠어! 탕감해줘! (....아니면 속된 말로 '배 째!')....."하는 위험천만한 얘기는 뻥긋도 해선 안 된다?

 '인권 대통령'을 모시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았다는 '국민 정부'여! '전향서'를 강요하고, 예나제나 '국가보안법'을 신주단지로 모시는 까닭은 누구를 짓누르기 위해서입니까? 일터 잃은 이가 정부 통계로 165만, 민주노총 통계로 457만(....실망실업자 212만, 월18시간 미만 노동자 50만, 숨겨진 무급가족종사자 30만을 더한 숫자...) 명을 웃도는데(⇒98/7월 통계), 기업의 구조조정 비용으로 (98년에) 100조 원을 퍼부으면서(⇒국민 부담) 실업자 기금으로 8조 원이 고작이요, "정리해고는 얼마든지 시키라!"니 '대중 경제론'을 설파하는 분들이여! 당신네는 대중을 떠받드는 정권, 맞습니까?

<이야기 셋> 영국에서 배우자!

얼마 전 EI 간부들 몇과 만나는 자리가 있다길래 쫄래쫄래 찾아가 말석(末席)에 걸터듬었네. 주로 '성과급'을 얘깃거리로 삼았는데, 이것을 둘러싸고 온세계 학교에 전선(戰線)이 쳐져 있다며 그 친구들이 열을 올리더라. 얘깃결에 영국 친구가 불쑥 '사과'를 하더군. <<신자유주의가 기승을 부린 나라가 영국입니다. 세계 대부분의 정권이 영국을 본따려고 하지 않습니까? 영국의 교원들도 보수화의 물결에 제대로 맞서지 못해 나쁜 선례를 남긴 것 같군요. 딴나라 분들이여, 죄송합니다! (.....영국교원들도 우리네 못지않게 박봉과 고된 업무에 시달려서 교단을 떠나는 이가 줄줄이었단다. 블레어 정부의 '사기 앙양책'이란 게 '유능 교사' 집단을 따로 뽑아 2배의 월급을 선사하는 '슈퍼교사제'! 교원단체들은 '보이콧' 방침을 밝혀 놓았다. 세상에, 교원들 집단도 양반/상것으로 가르다니!....)>> 그런데 솔깃한 얘기 한 도막을 덤으로 얻어들었어요. 뭐냐면 영국 교원들이 맥을 못 춘 까닭의 하나가 바로 '교원단체 간의 분열' 탓이라는 거야. 교원단체들끼리 서로 견제하느라 정권에 대해, 핏대 높일 것 별로 없는 일에는 핏대를 높이고 정작 투쟁해야할 때는 투쟁을 게을리한 때문에 갈팡질팡해 왔었노라고 털어 놓더군. 선거때의 '무조건 통합론자'들이 이 얘길 들으면 "거 봐라! 우리 얘기가 맞지?" 목청을 높일지 모르겠다만, 그 대꾸는 잠깐 미뤄두고 얼마 전 한교총쪽의 서명운동을 놓고 전교조가 쩔쩔맸던 일을 이 '선례'에 비추어 되살펴 보자구.

그때 나는 한교총쪽에 '공동투쟁'을 제안해서 (한교총쪽에) '역습'을 퍼붓거나, 아니면 우리 나름의 투쟁 일정을 앞당겨서 저쪽이 얻을 '싸움의 열매'를 뺏어 와야 한다고 부르짖었는데, 어떤 이는 이 말을 듣더니 대뜸 "아니, 그 골수 어용 세력과 공동투쟁을 벌이자니 말이 되냐?"고 볼멘 소릴 내더군. 허허허. 괜한 염려는 붙들어 매시구랴. "서명에 머물지 말고 싸움을 더 발전시키자!"고 제안해서 그쪽이 도리질하면 '애걔걔! 교총쪽 싸움이란 게 겨우 <찻잔 속 태풍>일 뿐이구먼!'하고 저쪽 위신 깎아내리는 소재가 될 터이요, 만의 하나, '그럽시다!'하고 받아들인다면 뭘 걱정하남? 정부에 맞서 함께 잘 싸우면 되지. 한교총이 '반정부 싸움'에 나서다 보면, 서로 동질성이 높아지니까 '무조건 통합론자'들이 희구하는 '통합'의 조건도 좀더 성숙해지는 거구. 내 말에 딴지 건 이가 헤아리지 못한 점이 뭐냐면, '사물은 발전한다'는 거야. 한국노총이 그랬던 것처럼, 한교총도 옛날엔 그저 깡보수 꼴통어용세력이었지. 허지만, '합법노조'가 생겨나는 마당에 저들이 한가로이 교장/관료들 이익<만> 대변하고 앉았으면 평교사 아랫것들이 와르르 쓸려 나갈 판인데, 뭔가라도 평교사를 대변하는 시늉을 안 하고 배기겠어? 앞으론 '어용으로<만> 놀 수는 없다'는 것을, 가끔은 평교사의 목소리도 내야겠다는 사실을 저들이 돌머리가 아닌 담에야 왜 모르겠어? 한교총도 얼마간은 탈바꿈하리라는 점을 차분하게 짚어야지. 아무튼 우리가 <주된 적>을 헷갈려서는 안 돼요. 이 사실을 영국의 교원단체들이 '반면(反面) 교사'로 깨우쳐 주는 것 아닐까?

아, 참! <무조건 통합파>에게 대꾸함: 교총/전교조 분열은 일찍이 89년에 시작되었네. 우리가 딴살림 차려 나왔지. 아마 그때 "왜 교원 사회를 분열시키느냐?"는 공박이 우리한테 퍼부어진 것으로 기억하는데, 여러분, 그렇게 비난한 자들이 대관절 누구였소? 그 비난에 대해 우리가 찔끔했어야 할 일일까? 무턱대고 합쳐야 한다면 전교조를 띄우지 말았어야지. 서로 다르면 갈라서야 하고 그걸 비난할 권리는 아무한테도 없다. 다만, 서로 딴 살림으로 지낸다 해도 다툴 일은 다투되 크게 비난할 꺼리가 아닐 때는 비난을 삼가서 쓸데없는/어리석은 신경전을 줄이는 게 바람직하다는 얘기는 꺼낼 수 있겠지.

헌데, 선거때 '무조건파'가 내놓은 문건을 보면, '통합을 서두를 필요성'을 애면글면 설득하려다 보니 말표현이 헛나간 것으로 너그러이 봐줄 일이겠다만, 마치 <전교조가 교총쪽 평교사조직(??)과 '무조건 통합'을 이루지 않는다면 '분열의 주범'이 될 수도 있다>고 험담하는 투의 뉘앙스가 배여 있어서 좀 얹짢았다.(....내가 '오독'한 것이라면 용서를 빈다...) 벗들이여, 교원 집단/단체는 지금 새삼스레 분열된 게 아니여! 그리고 '분열'이라는, 가치판단이 함축된/ 감정을 자아내는 낱말을 함부로 쓰는 게 아녀!두 단체는 '병존', 또는 '분립'하고 있을 따름이지. 노동자 계급이, 교사 집단이 다들 '우리는 하나'로 모여든다면 오죽이나 좋을꼬? 그것은 우리도 당신네 못지 않게 희구하는 바여! 허나, 백성들이 '진보의 청사진'을 품고 하나의 단체로 구름처럼 모여드는 광경을 40년 철권 지배세력이 그냥 멀끔히 쳐다만 볼 거라 여긴다면 그건 참으로 순진/우매하기 짝이 없는 생각일세. 자, 지배엘리뜨들은 교사 집단을 평교사와 부장교사로 분할 통치할 작심으로 일찍이 '부장'제를 제도화했지. 교총쪽에 모여 있는 평교사들은 대부분 '부장(--해바라기)'이거나 '부장 지망생'들이네. 우리와 의견을 같이 할 부분도 많지만 진보적인 사회의식이 썩 짙지 않은 게 분명허이. 우리가 해야할 일이 그저 '교사들의 처우 개선'뿐인가? 이쪽이 말발이 세니까 설득하면 다 이끌 수 있는가? 너무들 <쉽게> 생각하누만. 또, '노조'가 해야할 일을 너무 <좁게> 보는 듯하이.

민주노총쪽에도 '한국노총과 합치자!'는 목소리가 더러 일었던 적 있다네. '무조건파'의 출현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라 하겠군. 우리가 해야할 일은 참으로 많은데, 기회주의 기질이 완연하여 보수 지배세력에게 억병으로 취하여 휘둘릴 게 뻔한 집단과 그저 합치는 데에만 골몰한다면 그 벌거벗은 통합노조가 무슨 희안한 갈짓자 걸음을 걸을지 예상조차 하기 어렵네. 민주노총이든 전교조든 조합원 대중이 그 '설익은 조합주의'에 신뢰를 거의 보내지 않으니 다행이네만.

<넷>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더 낫다?

 '무조건파'의 문건에는 위엣 격언이 '구호'처럼 내걸려 있었다. 이 말씀은 그네들만의 專有物이 아닌, '대중 노선'을 내거는 분들 공통의 표어이니, 꼭 '무조건파'를 떠올려서가 아니라, 이 말씀에 큰 호감을 간직하신 분들 모두에게 잠깐 사설을 늘어놓고 싶다. 논리학책을 들추면 <'비유'는 '논증'이 아니>라는 얘기가 나온다. 그것은 제 의견이 옳고 상대방은 형편없는 엉터리라고 '선동'하는 말일 따름이다. 열 사람이 '한 걸음'이라도 함께 내딛는 것은 참 감격스런 '거대한 진보'임이 분명하고, 혼자 외로이 열 걸음 앞질러 간다 해서 역사를 뒤바꾸기 어렵다는 사실도 다들 안다. 옳으신 말씀! 허지만, 이 비유는 다음과 같이 맞대꾸하면 쉽게 무너진다. "그래, '교총과 합치기'가 '열 사람의 한 걸음'이라 칩시다. '교총 평교사들 상당수를 전교조 품으로 끌어들이기', 즉 '전교조 중심의 통합론'이 '한 사람의 열 걸음'이라구? 참말로 얼토당토 않구려. 우리가 무슨 대학생들 비밀결사같은 선도투쟁 조직을 만들었단 말이우? 좋소. 그 흐릿한 비유를 굳이 본뜨자면 우린 '일곱 사람의 열 걸음'쯤은 되우. 어느 쪽이 더 힘차겠수?"

'비유'는 곳곳에 함정을 품고 있다. 조합원들이 <함께 친교 나누고, 문화교양 쌓기>만 즐겨 할뿐, 정치권력과 중간관료에게 결연히 맞서기를 꺼릴 경우, '다같이 한 걸음'이 중요하다 해서, 정권이 밀어붙이는 교원정책('성과급'이나 '계약직')에 대해 결연히 맞서기를 삼가야 할 노릇일까? 그건 다들 분노하는 사안이니 괜찮을 거라구? 그럼 '국가보안법'은? 이것, 파시즘의 끔찍스런 '보도(寶刀)'인데, 소련이 무너졌을 때 덩달아 무덤 속에 들어갔어야 하는 건데, 아직도 벌건 대낮에 활개치고 다녀요. 진보 세력이 여태 골골거리고, 민주운동 했다는 사람들 대다수를 국민회의나 한나라당 주변에서 얼찐거리게 만든 핵심 원인이 바로 이 악법이여. 이 걸림돌 걷어치우지 않고서는 한국이 세계에서도 드물게 '보수 정치세력끼리'만 판치는 정치 후진국 처지를 벗어날 수 없어요. 진보세력이 정치적 교두보를 확보하지 않고서는 노동조합이건, 시민단체건 길게 보아서, 힘 받을 건덕지가 없어요. <'노조' 하는 사람들은 '노조'만 열심히 하면 된다! 그러니 딴 데 눈길 돌리지 말자!>하고 고집부리는 걸 무슨 思想이라고 부르나요? 바로 '조합주의'라 일컬어요! 노동운동, 민중운동에 '조합주의', '시민운동론'만 판칠 경우, 진보정치가 일떠서겠어요, 아니면 보수세력들이 민중운동을 길들일 공산이 더 커지겠어요? 조합원들 대다수의 정치의식은 소박한(?) 편이요, 국가보안법 폐지 싸움은 너무 선진적인(?) 것이니 부담스럽다며 이 싸움에 그저 '나 몰라라!' 한다면, 떳떳한 노릇일까요? '열 사람'이 함께 어깨동무했다는 사실만 흐뭇해 해야 합니까?

우리는 요즘 전교조 안 여기저기에 혹시 '합법 노조의 위력에 대한 단꿈/환상'이 은근슬쩍 퍼져 있지나 않은지 저어합니다. "우린 노동 2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한교총과 다르다. 우리 품으로 오라!"고 큰소리 퍼뜨리려는 뜻에서 <단체교섭의 힘>을 강조하는 취지는 알겠고요, 예전에 쥐꼬리만한 권력들을 나눠 갖고서 우리 조합원들한테 꼴볼견으로 위세부리던 관료 패거리와 당당히 맞설 수 있게 되었으니 '교섭 테이블에 정좌하는 것만도 얼마나 대단한 일이냐!'고 흐뭇해 하는 것도 좋습니다. 허나, 설문조사 열심히 해서 '단체교섭' 자리에 나가기만 하면 '전교조 할 일은 100% 다 한 것'이라며 태평스레 사업 계획을 세워서는 참 아슬아슬합니다. 단체교섭은 '사업의 피날레'가 아닌 '사업의 첫 걸음'이지요. <보수주의가 판치는 나라에 노동운동이 활보하는 경우는 없다. '단체행동권'도 없는 노조가 무슨 단꿈을 꾸느냐?>며 저들이 우릴 능욕하려 할 때에 아무런 '전투 결의'도 미리 다져 두지 않았다면 무얼 얻을 수 있겠습니까?한용운의 시 '님을 보았습니다'에 나오는 여인처럼 그때 가서야쏟아지는 눈물 속에 '님'을 찾으시렵니까?

<덧붙이는 글> 민주주의는 온몸으로 밀고 가는 것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이 터져나오기까지 우리 사회는 '어용 노조'가 판치는 곳이었습니다. 해방 정국의 '거대한 패배'를 딛고 새로 움터 오르던 노동운동이 넘어야 했던 첫 고개는 '노조 민주화 싸움!' 권력의 든든한 빽을 업고, 자본가들에게 빌붙어 영화를 누려 오던 어용 노조 지도부를 몰아내는 일이었지요.(그들 상당수는 뒷골목 깡패 출신!) 그로부터 열두어 성상이 흘러, 노동자 세력이 이 사회의 어엿한 주체로 웬만큼은 자라난 지금, 우리는 '노조 민주화' 문제로 크게 힘겨워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운동의 무슨 전략적인 당면 과제는 아니라는 얘기지요. 전교조처럼 어용 교총을 제치고, 권력의 폭압을 뚫고 일어선 단체의 경우, 더 말할 것도 없어요. 허나, 민주주의는 '어용'이라는 딱지를 뗐다 하여 금세 '완성'되는 그런 손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무슨 한때의 성과물도 아니요, 무슨 조직 기구와 동의어(同義語)도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끼리 늘 부대끼며 그 과정에서 빚어내는 '살아있는 관계'라고나 할까요? 그러기에 "이만하면 됐다!" 속편히 마음을 놓아 버릴 수는 없어요. '매사(每事)에 불여(不如) 튼튼'이란 말처럼 아무리 '소소한' 관행일지라도 민주주의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라면 그 옳고 그름을 진중히 따져야지요. '만의 하나'라도, 우리가 입으로는 민주주의를 읊조리면서 몸은 옛 시대의 버릇을 따라 하지 않는지. 일찍이 김수영 시인은 <시(詩)란 온몸으로 밀고 가는 것>이라 갈파하였던 바, '민주주의'도 그저 바깥에다 입 벌려 구호 외치기가 아니라, 우리네 일상 생활로 증거해야 하는 것, <민주주의도 온몸으로 밀고 가는 것>임을 우리가 이따금 잊지는 않았는지.

이렇듯 어렵사리 서두를 뗀 까닭은 '통신망의 의사소통'에 꼭 '검열의 잣대'를 디밀어야 할 경우가 있다면 과연 어떤 경우일지, 숙고해야 한다고 부르짖는 분들 말씀을 귀동냥으로 들었기 때문입니다. 서로 비판을 주고받는 것이 자칫 '조직의 내분'을 불러 올 수 있다는 노파심의 말씀도 귀담을 노릇이겠으나, '말길/ 언로'를 막는 일은 되도록 삼가는 게 좋다는 원칙주의자들의 말씀도 꽤 무게 나가는 말씀 아닐까요? 동냥꾼으로쬐금 말을 거들자면, 비판의 공방이 불붙은 그 사안이 과연 '조직의 내분'을 불러올 만큼 심상치 않은 것이었는지, '구체적으로 따져서' 판단할 필요가 있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언로 폐쇄가 되도록 삼가야 할 일이라면, 같은 결정이라도 여기저기 의견을 물어, '다수의 여론'을 근거로 단행했어야 더 설득력이 있었겠습니다. 흘러간 일의 시시비비야 덮어둘 수 있어도, 또 비슷한 경우가 생길 때, 어찌 판단해야 할지 숙제꺼리가 아닐 수 없기에 이렇게 설핏 문제를 던져 둡니다.

 한 마디 더: 예전의 글에서 저는 '단일 노조의 운영에 원심력으로 작용하는 경향'에 대해 간단히 짚은 적 있습니다. 그런데 유념해야 할 점은 '그런 경향'을 비판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그런 생각을 품은 분들을 차분히 설득할 수 있다면 그야 더없이 좋은 일이겠으나, 문제는 그런 경향이 까닭없이 생겨나는 게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무언가 현실의 조직 운영에 삐걱대는 곡절이 있기에 그 해결책으로 이런저런 제안들이 생겨납니다. '단일 노조의 위력'은 그저 원심력을 제어하는 일에만 허덕여서는 발휘될 수 없어요. 여러 부문의 의견이 늘 시원히 소통될 수 있게끔 사려깊게 조직을 운영하는 것이야말로 으뜸 처방이 아닐까요?

벗이여, 전교조 십 년 고단한 세월 묵묵히 견뎌온 벗이여! 통크게 대중을 얻을 기회가 눈앞에 닥쳐 왔습니다. 우리 실천이 과연 올바른 생각에 근거하고 있는지 치열하게 반성하는 기풍이 일어날 때라야 이 기회는 현실의 산을 옮겨다 줄 것입니다. 합법화에 들뜰 때는 이미 지난 것 같습니다. 그럼 건투를 빕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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