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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춤은 아이들과 함께!

 

바람꽃(진보교육연구소 회원)

 

이제 진짜 다 마무리하셨네요.”

마지막으로 출제한 시험지를 푸는 아이들을 둘러보고 시험 종료 소리를 들으면서 교무실로 내려오니 다들 한 말씀 하신다. 학교 안에서 누구라도 언제라도 어디서든 나와 눈이 마주치면 친절하게 마지막알람을 울려준다.

 

나는 마녀였다.

전교조 조합원이고, 지역대학을 나왔고 우리 세대에 흔치 않는 비혼에 여성이다. 이 낱개의 조합만으로도 마녀로 손색이 없는데 언제 터질지 모르는 다이너마이트처럼 고요한 학교에 평지풍파를 일으킬 때는 억센 사투리를 주술처럼 다다다다~ 쏟아내고 사태가 우중할 때는 눈에서 레이저 광선을 쏘아댔겠지? 게다가 나의 수업과 학급운영은 전체 시스템을 배반하고 의도적으로 차이를 드러내면서 아이들의 발달을 자극해보려는 야심 찬 실험장이었다. 일제고사 감독을 들어가 손에 넣은 답안지를 제출하지 않아 교감과 쫓고 쫓기는 진풍경을 연출하고, 어떤 교장은 내 안에 들어있는 마귀를 쫓기 위해 새벽기도를 했단다. 심지어 교원평가 순환등급이 부장들의 배신으로 무산되자 전쟁을 선포하고 대자보를 붙이다가 의자에서 떨어져 수술까지 받았다. 학교를 옮길 때가 되면 나를 본 적도 없는 교장들이 내가 올 자리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전근 가는 교사를 주저앉히고, 병휴직 못 내게 잡고, 학교 근처에 집이 있는 교사를 전입 요청하기도 했다. 마지막 학교마저 교육청 점거 농성을 하고 전근을 왔다. 징글징글하다. 매일 매일 철갑을 두르고 출전하는 장수처럼 학교로 출근했다. 그러니 나에게 학교는 피 터지는 전쟁터였다.

옳다면 행동해야 한다는 당위가 늘 우선이었다. 나를 규정하는 정체성이 행동의 정당성을 희석시켜 두터운 장막을 쌓고 걸림돌이 되었을 거라는 당연한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그저 머리를 꼬라박고 정면 돌파했다. 만약, 나의 정체성 중 어느 하나라도 권력의 반열과 닿아있었다면 나는 어쩌면 이 피 터지는 전쟁을 즐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진지했고 최선을 다했고 그래서 후회는 없다. 격렬했던 나의 전쟁터, 피 터지는 나의 노동현장이 드디어 마지막알람을 울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무거운 갑옷은 벗어 던지고 알람 소리에 맞춰 마지막은 아이들과 함께 힙한 마녀 춤사위로 마무리한다.

 

마지막 수업

코로나로 등교수업이 있는 날은 언제나 종소리가 나기 무섭게 교실로 들어가 아이들이랑 띠리릭 눈팅을 하고 바로 수업이다. 내 수업의 진미인 옆길로 새는 인문학은 보류했다. , 아이들의 상태가 위중하면 임팩있는 긴급 처치만 하고 바로 수업! 오직 진도를 위한 전진만이 있을 뿐! 옆길도 샛길도 없다.ㅋ 여기에 코로나형 수업! 들어봤나? 진도를 향해 장거리 마라톤으로 서서히 달리는 것이 아니라 장거리를 최단거리화해서 여러 번 반복하는 수업형태다. 첫 단원에서 끝 단원을 빠르게 여러 버전으로 반복하니 어떤 비상사태가 와도 끄덕 없다. 엄청난 가속력이 특징이지.ㅋㅋ 이 덕에, 교직 평생 진도 땜에 허덕이다가 막판에 전단원을 4번이나 반복하고, 활용 게임까지 하고도 기말고사가 1주일 남았다. 띠리리~ 이 정도면 기네스북에 올라야 되는 거 아님?

드뎌 꼬불셔놨던 옆길로 새는 영어 인문학수업시간이 돌아왔다. 마지막 수업 세레모니로 딱이지. 마침, 마지막 단원(Lesson)이 프랑스 도서관의 책더미 속에 들어있던 의궤를 찾아 한국으로 반환하고, 세계 최초 금속활자로 찍은 직지를 찾아 인쇄술의 역사를 바꾼 박병선 박사에 관한 일대기다.

 

적막한 밤을 흔드는 작은 불빛 하나, 한 여인이 뭔가를 간절히 찾아 헤맨다. 마침내 한 무더기의 책을 발견한 순간, 여인의 심장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것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고 물으신다면? 이것은 박병선, 의궤, 직지검색어로 찾은 모 방송사 영상자료의 첫 내레이션이다. 새 단원을 시작할 때, 엄청난 시간을 투자해서 관련 자료(영상, , 노래, 영화, 그림 등등)를 깨알같이 뒤져서 의도적으로 낯선 풍경을 보여주면서 인문학적 감수성을 자극하는 것이 내 수업 스탈. 이번에는 뭔가 세련되지 않은 신파극풍의 내레이션에 여인이란 고풍스런 단어에 삘이 꽂힌 거지.

 

지난번에 샘이 보여준 영상에 박병선 박사를 여인이라고 말했던 거 기억나지? 요즘은 그런 단어 잘 안 쓰는데 이상하지 않았어? 왜 박병선 박사를 여인이라고 했을까? 여자를 지칭하는 여자, 여성, 여인의 차이가 뭘까? ‘여자남자라는 상대어가 있고, ‘여성남성이라는 상대어가 있는데 여인의 대립 쌍은 남인(?)’이 아니잖아. ‘여자라는 단어는 생물학적인 신체구조에 의해 구분되는 기본 단위면서 여성이란 말이 사용되기 전에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하는 용어지. ‘여자가 어딜?’이라는 말은 해도 여성이 감히라는 말은 조합이 잘 안 되는 걸로 봐서 여자라는 용어는 경우에 따라서 여성을 비하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하지. ‘여성이란 용어는 여성이라는 성정체성을 담아낸 말로 여성학이라는 학문이 있을 정도로 학술적이고 중립적인 학술용어야. 근데, ‘여인은 대체 뭐 길래 세계적인 석학인 박병선 박사에게 갖다 붙였을까? ‘여인(女人)’을 한자로 풀어보면 여자 사람이란 뜻인데, 그냥 사람이라고 하면 안 돼? ‘사람(Man)’은 남성이면서 인간을 대표하기 때문에 당연히 남자로 연상되지만 여자사람에는 포함되지만 여남을 구분할 때는 사람(Man)’에 포함되지 않아. 특히, 여성이 사적 공간으로 치부되는 가정이 아니라 지적, 이성적, 정치적, 공적 영역에 들어오는 것은 낯선 풍경이기 때문에 사람이라고 하면 여성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남성으로 생각하지. 그래서 여자고상함정도를 입혀 여인이라고 한 거야. 아무리 고상함을 입혔다 한들 남자들이 일방적으로 여자들을 성적 대상화하여 호명하는 용어라는 것을 피할 수 없어. 아무리 인쇄술의 역사를 바꾼 영웅이라도 남자는 영웅이 될 수 있지만 여자는 결국 남자들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여인이고 어머니누나가 돼. 선생님이 어렸을 때, ‘유관순 열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유관순 누나라고 불렀거든. 결국 여자들도 남자의 시선으로 사물을 보게 되는데 이것은 우리 모두는 여자든 남자든 태어나서부터 줄곧 성차별적인 사고와 행동 양식을 받아들이도록 사회화되었기 때문이야. 그래서 성별에 상관없이 여자들도 성차별주의자가 될 수 있어. 그래서 페미니즘은 모든 성차별을 반대하는 것이지 단지 생물학적 몸의 차이 때문에 남혐·여혐하면서 젠더로 편을 갈라 싸우는 것이 아니야.”

 

지난번에 배운 ‘Listen & Talk’에 나오는 애니메이션을 볼까? 대화에 등장하는 두 사람의 다리를 잘 비교해 봐. 남자는 똑바로 서서 대화를 나누는데 여자 또는 여학생은 한쪽 다리를 살짝 구부리고 발가락 끝을 땅에 콕 찍은 불편한 상태로 말을 해. 여성을 여성여성하게 표현하려고 친절하게도 4컷 모두 이런 만행을 저질렀네?! 니네들은 이 미세한 차이를 눈치 못했지? 프랑스의 작가면서 철학자, 여성운동가인 시몬느 보봐르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라는 말을 했어. 이 애니메이션처럼 마치 가랑비에 옷 젖듯이 부지불식간에 여성화()가 진행되고 여성의 신체를 통제하고 억압한단다. 본문에 실린 삽화도 한번 볼까? ‘직지를 안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 박병선 박사가 있지. 남성은 합리적인 사고를 나타내는 이성을, 여성은 아무리 합리적인 이성을 갖춘 사람이라도 감상적인 감정을 남발하는 여성의 몸으로 치환되면서 차이가 차별로 이어지게 되지.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2 L8_pp.138-139-L&T 큰 그림.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306pixel, 세로 156pixel

사진 찍은 날짜: 2021년 12월 17일 오후 12:40

프로그램 이름 : Windows Photo Editor 10.0.10011.16384

색 대표 : sRGB

EXIF 버전 : 0221

 

 

‘Sexism’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 섹스주의? 섹시주의? 바로 성차별주의라는 뜻이야. ‘Racism(인종차별주의)’은 어렵게 공부하지 않아도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공분하지만 섹시즘은 사회문화적으로 추정하고 째려보지 않으면 눈치채기 어려워.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것도 볼 수 있으려면 안경이 필요하듯이 우리에게 페미니즘 안경이 필요한 거야. 페미니즘은 차별을 넘어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학문이지 어느 한 성()만의 행복이 아니라 모두가 행복해지는 키워드야.”

 

봄바다님께 드린 모카

머리가 조직적이지도 않는데다 그 와중에 해마가 망가져서 핸드폰을 손에 들고 핸드폰을 찾는 일이 다반사라 뭐든지 마음 갈 때 바로바로, 즉흥적으로 하게 된다. 오늘은 1,2교시가 비는 시간이라 벼루다 지른 비싼 예멘 모카콩이 없어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봄바다님께 대접해야겠다 싶어 화장실로 갔다. 아니나 다를까 의자 위에 올라가 창 틈새를 닦고 있다.

그동안 화장실이 폐쇄되어 힘드셨죠? 3일 전부터 암모니아 냄새와 물 내려가는 소리가 이상해서 학교에 이야기했는데 아무 조처가 없었어요. 그때 바로 수리했으면 역류하지 않았을 텐데 일을 키웠어요.’ 전문가적인 지식과 경험에서 나오는 해박함이 당당하면서 겸손하게 음악처럼 흘러나와 나도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진다. 복도나 화장실에 티끌 하나라도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다 보니 복도에 휴지 하나 떨어진 걸 본 적이 없고 화장실은 여자아이들의 수다 장소다. 학교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낡은 학교 건물을 보고 들어와서 복도하고 화장실이 너무 깨끗해서 놀랐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러자니 몸이 얼마나 힘들까 해서 얼굴만 마주치면 연신 쉬엄쉬엄하라는 말씀을 드린다. 학교라는 거대 장소를 이토록 빛나게 하지만 여성!노동자가 담당하기 때문에 마땅히 불러주는 직책도 호칭도 없다. 과거에 비해 임금이 나아지긴 했지만 저임금 장시간 노동은 여전하고 학교 안에 쉴 공간도 없는 학교가 허다하다.

지난주에 6반 부담임이라 학급회의 보강을 들어갔더니 아이들이 화장실에 암모니아 냄새가 많이 난다는 건의를 하길래 봄바다님에게 들은 말을 전하면서 자연스럽게 봄바다님을 소개했다. 학교라는 무대에 등장하는 학생, 학부모, 교사라는 주연 외에 무대 뒤에서 극을 빛나게 하는 조연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봄바다님의 청소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에 대해 말하고 복도에서 만나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인사해야 한다고. 또 어제처럼 폭설이 내린 다음 날 학교에 쌓인 그 많은 눈을 치우고 등굣길을 내는 분들이 학교에 계시다는 것도 덧붙였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작은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작은 것을 살필 줄 알아야 한다고 하면서. 천하의 개구쟁이 녀석들이 갑자기 숙연해지더니 어울리지 않는 깊은 침묵에 빠졌다. 이게 뭐지? 순간 당황. 깊음에서 어떻게 빠져나올지 몰라 헛기침을 했다. 종은 왜 빨랑 안치는지.

 

우리들의 빚, 서희와 담이

서희는 친구가 없어서 점심시간만 되면 영어교과실로 온다. (친구가 없다는 소리는 안 한다.) 영어 시간에는 거의 엎드려 있는데 일어나라고 하면 잠깐 일어났다가 다시 엎드린다. ‘나 쌤 말도 씹어. 나 좀 나가거든!’ 뭐 이런 걸 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중이다. 인정 욕구는 강한데 이렇다 하게 내세울 게 없다 보니 센 척하고 싶어서 의상에 꽤 신경을 쓴다. 검은 파카를 즐겨 입고, 누가 말을 걸면 퉁을 주면서 무시한다. 친해지면서 속에 있는 소리를 가리지 않고 한다. 언제부터는 같은 반에 있는 진우가 찐따인데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둥 문제가 많다더니 며칠 전에는 진우가 꼴아 봐서 뭘 봐?’하면서 겁을 줬다고 하고, 또 며칠 전에는 진우가 과학실로 가면서 어깨를 세 번이나 치고 갔는데 사과를 안 해서 화가 난다고 난리다. 마침, 그날 우연히 복도를 지나다가 진우 뒤에 바짝 붙어서 쫓아가는 서희를 봤지만 모르는 척하면서 살살 타일렀다. ‘진우는 니한테 1도 관심이 없을걸. 니들 때는 도끼병이 있어서 다들 너를 보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남한테 그닥 관심이 없어. 남한테 어떻게 보일까 신경 쓰지 말고 너를 들여다 봐라고 해도 며칠째 같은 말을 하면서 등장한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진우를 앞에 앉혀놓고 삼자대면을 했다. 내가 앞에서 갔는데 어떻게 어깨를 치냐, 오히려 나를 때리고 갔단다. 진우가 가고 난 뒤, ‘네가 한 행동은 학교폭력이다. 앞으로 괴롭히면 안 된다.’고 했더니 장난이었단다. 원래 학교폭력은 가해자는 장난이고 피해자는 상처 입는다는 것을 설명하고 담임에게 상황을 알리고 상담 선생님께 내년을 부탁했다. 서희는 외로운 거였다. 점심시간에 영어교과실에 올 핑계를 대려고 계속 똑같은 말을 한 거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아이들에게 약속한 매트릭스를 보여줬다. 영화를 상영하기 전에 매트릭스를 감상하는 팁을 소개했다. ‘매트릭스가 뭔지, 영화 속에 숨어있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플라톤의 동굴의 이데아, 현실 속의 매트릭스 찾기, & 곁다리로 매트릭스로 영어 공부하기 등등영화를 소개하는 시간만 족히 20. ㅋㅋ 짜식들아~ 쌤이 걍 영화만 틀어줄 줄 알았지? 절대 그런 일은 없다. 화면을 띄우고 영화를 보는데 갑자기 담이가 큰소리로 꽉 찬 화면으로 바꿔 달란다. 일 년 내내 긴 머리로 얼굴을 가리고 잠만 자던 담이가 눈을 반짝이면서 똘방 똘방 하게 말을 하네? 신통방통. 수업 종이 울리니까 이제는 뽀로록 달려와 자기 의견를 말한다. ‘선생님, 역시 영화는 설명을 듣고 봐야 해요. 이해가 잘되니 영화가 머리에 쏙쏙 들어와요. 이건 한 번 보고 마는 영화가 아니예요. 철학이 담긴 영화예요. 저는 이런 영화를 좋아해요. 그리고 선생님, , 이제 생활 리듬을 찾아서 수업 시간에 안 자요. 그리고 3학년 때 공부 열심히 할께요하는 거다. 담이가, 늘 수면 중이던 그 담이가, 이동수업을 할 때 어떤 교실로 가는지 몰라 혼자 헤매던 그 담이가 맨 정신으로 도대체 오늘 몇 문장을 말하는 거야? 신통도 하여라. “사랑해, 담이야. 선생님이 니가 어떻게 자라는지 더 지켜보고 싶은데 이제 못 보지만 잘 할 수 있지?”라고 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돈다. 얼른 눈물을 삼키고 담이를 꼭 안았다.

 

서희와 담이는 이주 배경을 가진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이 한국에서 태어났는지, 언제 이주해 왔는지 알 수는 없다. 그래도 여느 아이들처럼 학교라는 문턱을 처음 넘었을 때 생기는 두려움과 설렘이 묘하게 뒤섞인 기분 좋은 긴장이 있었을 게다. 그때는 자신을 둘러싼 차별과 편견, 경제적, 사회적 조건들이 보이지 않았겠지. 그런데 이 두 아이가 거쳐 온 학교는 이들이 가지고 있던 긴장, 그 희망씨를 멋지게 싹틔워 키워내지는 못하고 있다. 그동안 이 둘은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니면서 학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게 되었을까? 학교가 지금은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나는 이 아이들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중학교에 있으면서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직감한 적이 있다. 그때가 고교서열화인 자사고도입이 본격화되던 2001년도였다. 성적이 우수하고 가정 배경이 좋은 학생을 독점 선발하는 자사고와 나머지 학생들이 모이는 일반고로 나누어지는, 교육생태계를 위협하는 재앙이 예고되면서 아이들은 두드러지게 점수에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점수보다 친구의 점수를 깎아내리려고 하거나 시험문제에 대한 시비도 많아졌다. 자사고나 외고를 희망하는 상위그룹 아이들의 날선 경쟁은 하위그룹 아이들에게 상실감으로 다가왔다. 특히 취약 가정의 아이들은 전의를 상실한 듯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현실을 부정하거나 자신을 봐달라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소리 없는 외침으로.

 

학교는 아이들이 만나는 첫 세상이다. 그 세상에서는 누구나 자기 색깔로 존재감을 빛나며 행복하게 성장해야 한다. 비단 서희와 담이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에게!! 고교서열,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아이들을 억압하는 입시 구조를 덜어내고 아이들을 발달로 이끄는 교육혁명은 계속되어야 한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학교와 아이들을 떠나지 못할 것이다. 새로운 세상은 아직 오지 않는 세상이다. 그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아주 이상하고 신기한 힙한 할머니 마녀의 춤사위는 계속된다. 속편을 기대하세요. 모두 안녕!^^

 

덧붙임 : 00 담임선생님은 우리학교가 첫 발령지인 교직 3년차다. 마지막으로 교과실에 초대해서 커피를 내려드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들을 살핀다고 살피는데도 솔직히 정서를 잘 모르겠다. 요즘,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도 대체 아이들은 왜 이런 거야?”하는 보상심리가 불쑥불쑥 찾아온단다. 많이 지치셨나보다. 아무래도 코로나상황이다 보니 아이들 파악이 어렵기도 하지만 선생님은 너무 잘하고 계신다고 칭찬해드리면서. '아이들 문제는 학교 안에서 일어나지만 결국 입시나 교육과정의 문제라 해결책은 학교 밖에 있다. 개인보다는 연대로 풀어야하고 선생님은 똑똑하시니까 언젠가 전교조를 만날 꺼다. 평생 몸담았던 전교조가 우리시대 낭만으로 끝나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최근 미국 젊은이들이 코로나상황에서 스스로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뉴스를 봤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결국 길을 찾게 된다. 젊은 분들이 잘 판단해서 찾아가겠지만 선생님은 열심히 하시니까 언젠가 전교조를 만나게 될 꺼다. 천천히 고민해봐라.'는 말을 마지막 작별 인사로 건냈다.^^

아침에는 2반 아이들이 편지와 선물을 갖고 왔다. '강하신 **샘 정말 정말 사랑해요' 귀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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