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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동자의 몽상록

 

무너지는 가족, 무너지는 세상

 

눈동자(진보교육연구소 회원)

 

“30만의 사람이 죽고 27만의 사람이 태어나다! 1인 가구家口가 다섯 중 둘이요, 2인 가구가 (거의) 넷 중 하나다!” 올 연말연시에 언론 지면(화면)에 올랐던 통계 숫자다. 출산 파업으로 인구 절벽이 가팔라졌고, 얼씨구나! ‘가족의 해체도 점입가경漸入佳境이 돼 버렸다는 얘기다.

왜 청춘들이 저희 2세 낳기를 단념하는지는 다들 너무나 잘 안다. -조선이라서! 코로나 충격에 더더욱! 방긋 웃는 갓난아이는 (부모에게나 조부모에게나) 하늘이 내려주신 천사이거늘....

그런데 왜 가족이 무너져 내리는지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다. 아니, 그런 물음을 스스로 던진 적이 별로 없을 거다. 앞엣 문제(=출산하느냐/마느냐)가 저 자신의 실존 문제인 반면, 뒤엣 문제는 제가 꼭 관심 품어야 할 것은 없는 전체 사회의 문제라서다. (그럴 거라고, 무너질 거라고 짐작은 가도) 궁리한다고 해서 내게 무슨 뾰족수가 생기겠는가. 장강의 도도한 물길을 거스를 수 있겠는가. ‘가족의 붕괴(축소)’는 한두 마디로 설명되기 어려운, 거대한 사회 변화의 문제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그래서도 궁금증을 재빨리 접는다.

하지만 근래 들어 환경 위기가 갖가지로 불거진 바람에(지구온난화, 대기오염, 물부족, 인수공통감염병), 사람들이 큰 답(원인)’을 떠올릴 채비쯤은 갖추었다. 가족제도가 무너지는 것도 조금만 생각해 보면 지구 생태계가 망가진 것이 그랬듯이, ‘썩을 놈의 자본주의와 얽혀 있음이 뻔하다.

 

다들 혼자서도 살 수 있는가?

 

우치다 타츠루는 일본에서 전통적인 혈연 공동체(대가족제도)와 지연地緣 공동체가 무너진 까닭은 풍요롭고 안전한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가 성공한 덕분이란다. 다들 도시에 나와 돈벌이를 곧잘 하게 돼서, 부모/친척/이웃에게 아쉽게 손 벌릴 일이 없어졌다. “저마다 저 혼자서 살아라! 그래야 자유를 누린다!” 이것이 2백년간 자본체제 지배층이 귀 따갑게 떠든 얘기(=성공 신화)가 아니냐. 혼자서 돈 벌려면 도시로 나와 품을 팔아야지? 그 아름다운 개인의 자유?’ ‘공동체의 붕괴는 그 필연적인(!) 결과다.

그런데 대가족이 핵가족으로 쪼그라든 것도 모자라, ‘1/2인 가구가 마구 늘어난 것은 꼭 자본주의가 성공했기 때문이 아니다. 한쪽에서 자본이 넘쳐나고(과잉 축적/생산) 다른 쪽에서 민중의 호주머니가 쪼그라들자(과소 소비), 자본이 제 물건 팔아먹는 데 눈이 벌갰다. 상품 팔러 폭주하는 자본은 눈에 뵈는 게 없다. 공짜로 대동강물도 팔아먹는다. 그러니 자본 체제의 병증病症이 깊어진 결과이기도 하다.

예전엔 소비 단위가 가족이었다. 큰 돈 들어가는 소비는 집안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가족을 무너뜨려야 뿔뿔이 흩어진 원자原子들한테 집도 여러 채, 냉장고/TV도 여러 대씩 팔아먹는다. 애들도 소비자다. 애들 호주머니를 털어라! 일본에서 소비 열풍1980년대 들어 거세졌다.

소비 자본주의의 확장 충동은 끝이 없다. 요즘 1인 가구에게는 무슨 소비를 부르꾀는가? 내구소비재 파는 데는 결국 한계가 있지만, 아이돌 굿즈, 넷플릭스 같은 문화상품의 판매(곧 소비)에는 끝이 없다. ‘한류를 요란하게 칭송하는 한국 지배층의 속뜻이야 뻔하다. 그거, 70억 명의 노다지 시장이란다! 그런데 돈 많이 벌어주는 것이 좋은 문화인가? 버림받고 소외된 노동을, 그 스트레스를 문화 소비로 푸는 주제에? 문화 생산은 기업이, 도박판의 양현석과 떼부자 된 방시혁이 도맡고?

어려서부터 핵가족만 보고 자란 신세대는 요즘의 쪼그라든 가족 실태가 친숙하다. ‘싱글맘 가정이든 ‘1인 가구든 그러려니(!) 한다. 문제의식을 덜 품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려서 대가족의 등쌀을 다 겪으며 자란 쉰 세대혼밥 혼술의 사회가 참으로 적막 강산이다. 사람 세상에 탈이 났음을 모를 수 없다. 이런 변화는 바람직한가? 무슨 변화든 다 은 아니다. ‘홀로살이쪽으로 사람의 본성이 바뀔 수도 있는가? 그럴 수도 있겠으나, ‘방콕사회가 바람직하게 굴러갈 리 없다. 그것은 어김없이 내리막길이다.

 

필자는 돌이켜 보자면 오랫동안 가족 해체의 흐름에 무신경했다. 노자勞資 싸움에나 눈길이 갔지, 그런 문제는 곁가지라 여겨 까맣게 잊고 지냈다. 개인사를 말하자면, 어릴 적 기제사忌祭祀로 만나는 친척 떨거지들한테 도무지 호감이 가지 않았다. “저 사람들은 세상 관심사가 오로지 울고불고 지지고 볶는, 집안 간의 지긋지긋한 인정認定 투쟁인가? 대처大處로 나가고픈 나는 빠이빠이 할란다!” 사라지는 옛것들에 연민의 눈길을 보낼 맘이 솔직히 없었다.

그런데 진보파 대부분이 나 몰라라한 가운데, 대가족이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래서 좋은 세상이 왔는가? 예전에는 전란戰亂을 딛고 힘겹게 일어서는 , , 눈물과 한 옹큼의 악다구니 말고도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이라는 것이 있었다. 지금도 대다수는 , , 눈물을 피할 수 없는데 지구촌을 휙휙 날아다니는 세계화된 마당에 그 희망, 포부, 이라는 놈은 오히려 곳곳의 촌구석으로 파편처럼 흩어져 쪼그라든 인상이 짙다.

필자의 어머니께서는 임종을 앞두고 친정 조카들과 한참 흐뭇하게 이야기꽃을 피우셨다. “우리 가문家門에 누구누구 계셨지...” 유한한 삶이 저무는 데 대한 위로를 거기서 받으셨다. 혈연공동체가 가늘히 영원으로 손 뻗을 다리가 돼 주었다. 공동체가, 비빌 언덕이 여지없이 무너져 내린 요즘, 앞으로 독거사獨居死할 숱한 넋들은 어디서 위로를 받아야 할까.

 

가족을 꾸려나갈 책임일랑 내버려도 되는가?

 

앞엣 글에, “(가족 붕괴 문제를) 진보파 대부분이 소 닭 보듯 했다.”고 적었다. 물증을 끌어온다. 데이비드 굿하트는 영국의 노동당이 somewhere의 처지는 건성으로 훑고, anywhere의 잇속/입맛에 들어맞는 편협한 방향으로 나라 정치를 요리해온 것에 대해 치열하게 자기 반성을 했다(그는 한동안 노동당에서 일했다). somewhere는 어느 곳(집안, 지역)에 뿌리 내려야만 간신히 살아내는 중하中下의 노동자이고, anywhere는 학력과 집안 경제력이 높아 지구촌 어디를 가든 번듯하게 정착할 수 있는 중상中上의 화이트칼라 노동자를 빗댄 표현이다. 사례 하나. 그 노동당은 이민노동자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이민자와 유학생 수입輸入이 자국 노동자들 처지를 어떻게 바꿔 놓을지는 괘념하지 않았다. “세계화 시대에 왜 이웃과 협력할 생각들을 안 해?”하고 호기롭게 훈계질까지 했다.

사례 둘. 영국의 소득세 시스템은 가구별家口別이 아니라, 사람별로 세금을 매긴다. 이 잣대는 가족을 꾸려나갈 책임을 외면한다. 맞벌이 가정의 합산소득보다 적더라도 외벌이 가정의 근로소득자가 더 높은 세율을 적용받는다. 곱씹어 볼 것은 이 사람별제도에 마거릿 대처의 페미니즘 시각이 투영돼 있다는 것이다. 대처 부하의 답변인즉슨 “<배우자간 공제한도 이전移轉>은 일터에 나가기보다 자녀 양육을 위해 집에 머무르기를 바라는 여성을 대처가 지지하지 않기 때문에 들여올 수 없다.”는 거다. 그 얼마 뒤, 노동당은 대처와 한 통속이 돼 버렸다.

 

취업한 여성의 처지를 더 두둔하는 정책은 anywhere 여성들의 잇속에 더 들어맞는다. ‘직장 내 성차별문제를 따지는 거야 물론 옳지만, 다소곳이 집안에 머무르는 가난한 여성들이 더 사회의 배려를 필요로 한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거창하게 들먹이는 사람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 “니들(여성), 취업해 봐! 돈도 벌고 자존감도 높아져!”하고 건방지게 가르치려고 든다. 짜샤, 그걸 누가 몰라? somewhere 여성들이 그걸 알면서도 왜 굳이 일터로 나서기를 꺼리는지 그들에게 찾아가서 물어보기는 했니? 그들의 일터 대부분이 자본에 억눌려 사는 소외된 곳, 억지로 출근하는 곳임을 헤아릴 맑은 눈(!)이 없지? 여자들 몽땅 취업하면(과잉 노동인구), 남녀 모두 임금이 확 떨어지는데 그거, 자본이 두 손 들어 환영한다는 사실은 생각해 봤니?

가족/공동체 붕괴, 시민의 원자화를 영국 노동당이나 일부 페미니스트나 또 누구누구 탓으로 돌리는 것은 터무니없는 비난이다. 그거야 영혼 없는 자본체제가 마구 밀어붙인 결과가 아니냐. 하지만 그 폐해를 일찍이 깨닫지 못한 정치/사회운동에 대해서는 일침一針을 놓아야 한다. 그래서 차근차근 지혜를 넓혀야 고칠 것투성이인 세상에서 (혁명은 언감생심이라도) 한 옹큼의 개혁이라도 해낸다.

 

어른이 없다

 

역사를 돌아본다. ‘다들 혼자서도 살 수 있다고 뽐낼 사회는 근대 이전에 털끝도 없었다. 지금도, 앞으로도 예외적인 경우에나 생길 수 있다. 전통적인 공동체 윤리를 악착같이 붙들고 있는 이슬람사회를 보라. (미국/유럽의 이념/문화 패권에 항복하지 않고) 왜 그렇게 악착같이 버티는지 역지사지易地思之해 보라. ‘예외는 꽉 막힌 이슬람사회나 우익 포퓰리즘이 휩쓰는 러시아/동유럽이 아니다. 그들은 잘못된 세상에 잘못된 방식으로 반응하고 있을 뿐이다. 적어도 그들은 병증病症을 앓고(깨닫고) 있고, 대국大國의 행패에 반발할 줄도 안다. 예외는 오히려 권세에 대한 욕망으로 영혼을 떠나보낸 미국/유럽의 지배층 사회가 아닐까? 망쪼로 치닫는 세상을 예나제나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보도寶刀로 다스릴 수 있다고 믿는, 똑똑하게 눈먼 청맹과니들! 과거도, 미래도 괘념 않고 오직 현재(의 자본 축적)에 올인하는 돌-아이 기관차!

 

우치다 타츠루는 일본 사회를 지독하게 비관한다. “여기 열도列島에는 어른이 씨가 말랐어요!” 사회를 변변히 굴려가려면 시스템이 무너지는 것을 내 일처럼 나서서 수습할 어른들(!)이 일정 숫자 필요한데 눈 씻고 봐도 그 어른이 잘 보이지 않는단다. 진취적인 사회세력이 성인成人 다섯 중에 하나는 있어야겠는데(그래야 선봉 구실을 맡을 텐데) 스물 중에 겨우 한 사람이 될까/말까란다. ‘-교양-지성’, ‘역사歷史에 대한 무지無知가 판치는 동네. 일본 대학생들이 어려졌다! 우리는 선봉이 몇이나 될까. 한국 대학생들의 기상은 어떠한가? 제국주의의 단물을 덜 맛본 (또 북한이라는 아픈 옆구리를 동반한) 우리 사회는 일본보다야 사정이 낫겠지만, 각자도생各自圖生의 투기 광풍이 몰아치고 있어 (‘영끌에 넋 놓은 젊은이들이 제 정신으로 살아갈지) 도무지 안도할 수 없다. 우리는 미래 세대로부터 소환 당하는 일이 없을까? “세상을 왜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놨소?”하고. 여지껏 씌여진 역사책이 미래에, 불과 30년 뒤에 무더기로 폐기 처분될지도 모른다.

 

가족의 붕괴만 놓고 봐도 옛 윤리에 안쓰러이 매달리는 쪽과 옛것 타파에만 그저 몰두하는 두 쪽이 있다. 둘을 비판적으로 아울러서 새로운 시스템을 창조할 줄 알아야 어른답겠다. 그 대안이야 새로운 확대가족을 만들어 가자.”는 쪽이 될 거다. 이혼한 사람끼리도 자식을 위해 유대를 잇고, 피붙이가 아니라도 제 식구로 받아들이고 등등... 하지만 그런 대안이 있다 해서 가족의 해체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될 수는 없다. 그 대안이 관념으로야 쉽게 떠올리지만 현실에 넓게/힘차게 뿌리내리는 일이 쉬울 리는 없기 때문이다. 망하는 거야 순식간이지만 다시 흥할 날은 까마득하다. 망해서 잃는 것이 헬 수 없이 많다. 그러니까 세상 일을 (특히 somewhere의 처지에서) 두루 살펴 고심의 타개책을 찾는 것이 긴요하다. 어른 노릇하기가 정말 겨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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