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뽕짝 권하는 사회

 

이성우(구미 사곡초)

 

2010년이니 정확히 10년 전의 일이다. 어느 월요일 아침 학교 현관에서 동료 여선생님(->선생님)과 마주쳤는데 이 분이 못 보던 핸드백을 들고 다소 의기양양한 걸음으로 지나가셨다. 내 눈에 그 핸드백은 너무 볼품이 없었다. 디자인도 그렇고 색깔이 똥색인 것이 너무 촌스러워 보였다. 속으로 취향 참 후지다싶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후진 취향의 소유자는 그분이 아니라 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똥색의 그 가방은 무려 루이뷔똥이었는데 알만 한 사람은 다 아는 명품 메이커를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일고 있는 뽕짝 신드롬에 대해 심각한 유감을 품는다.

몸 글에 들어가기 앞서, 이 글에서는 트롯과 뽕짝을 구분해서 쓰고 있으며 뽕짝이란 용어는 천박한 트롯 음악을 지칭하는 표현임을 일러둔다.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음악 장르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피력하기가 조심스럽다. 아마도 나의 이러한 시각에 대해 다음과 같은 논거에서 반비판이 예상된다. 1) 취향은 개인의 자유라는 것. 2) 뽕짝은 우리 고유의 음악이니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것. 이 글에서 나의 논리 전개 또한 이 두 가지 관점에 대한 반박을 중심으로 펼쳐가기로 한다.

 

 

취향은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 아닌 사회적 소산이다.

초임의 여교사(->초임 교사)는 자기 한 달치 월급에 해당하는 거금을 들여 루이뷔똥 가방을 구매했다. 만약 취향이라는 것이 사회적 시선에 아랑곳없이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하는 문제라면 그렇게 비싼 돈을 주고 그것도 칙칙한 색깔의 가방을 구입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를테면 시골 할머니들은 누구나 몇 백 씩이나 하는 똥색 가방보다는 10만 원짜리 예쁜 가방을 고를 것이다. 하지만 젊은 여성(->젊은이들)에게 LV가 겹쳐진 로고의 메이커는 그것을 소유한 사람과 소유하지 못한 사람을 구분 짓는 매우 특별한 신호다. 이 특별한 신호의 사회적 가치를 인지한 사람에게 똥색 문양은 고품격 취향의 상징으로 각인되어 어떠한 대가를 치러서라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을 품게 된다. 이러한 취향은 학습의 결과이지 결코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한 결과가 아니다.

취향에 해당하는 영단어 taste의 흔한 뜻은 이다. 개인의 음식 취향 즉 입맛 또한 사회적으로 규정될 것은 당연하다. 개고기에 대한 음식 취향은 한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으며, 한국 내에서도 점점 이 취향이 입지를 잃어가고 있는 것은 사회적 조건의 변화에 말미암는다.

이렇듯 패션이나 음식에 대한 취향뿐만 아니라 개인의 음악 취향 또한 사회적으로 결정되는 바가 크다는 것이 이 글의 주제다. 관련하여, 필자가 경험한 또 다른 일화를 살펴보자.

 

1994, 면 단위의 시골 학교에 근무할 때의 일이다. 어버이날을 맞아 면사무소 주관으로 우리 학교 운동장에서 경로잔치가 열렸는데, 분위기가 무르익자 자유롭게 한 사람씩 나와 밴드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일흔 쯤 돼 보이는 할머니가 아주 특이한 노래를 부르셨다. 백두산에 푸른 정기 이 땅을 수호하고...... 너무 특이한 노래여서 악사도 반주를 못해 할머니 혼자 아카펠라로 노래를 부르셨다. 박정희 작사작곡의 이 노래는 술자리나 잔치마당에서 불릴 성격의 음악이 아니다. 이 인과관계가 어떻게 설명이 될까?

다카키 마사오와 오카모도 미노루라는 일본식 이름을 두 개나 지녔던 박정희가 김재규에게 암살당했을 때 전 주한일본대사였던 오카키는 대일본제국의 마지막 군인이 죽었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뼛속까지 일본인이었던 박정희가 지은 나의 조국은 철저히 왜색 풍의 노래다.

1994년에 일흔쯤이면, 할머니는 일제강점기의 절정에 감수성이 한창 예민한 소녀시절을 보내셨으리라. 그 연세의 보통 할머니들의 교육이력은 소학교 졸업이 전부이다. 90년대에는 지금처럼 노인학교 따위의 평생교육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일이 없었으며 심지어 그 연령대의 어르신들은 TV와의 친화력도 잘 없는 것이 보통이다. 다시 말해, 음악적 자극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유행가 따위에 영향을 받을 일이 잘 없다. 그런데 칠십년대 박정희 집권기에 학교와 관공서에서 건전가요 부르기가 강제되고 있었다. 할머니의 입장에서 이것은 소학교 시절 이후 처음으로 음악세계에 노출된 계기로 작용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할머니의 18번곡이 앞마을 냇가에 빨래하는 순이로 시작하는 그리운 고향(이 곡은 Beach BoysSloop John B를 개사한 노래다)이 아닌 왜 하필 나의 조국인가 하는 것이다(잔치마당에서는 비장한 나의 조국보다는 흥겨운 그리운 고향이 훨씬 어울리련만).

94년에 일흔쯤이면 할머니는 1917년생인 박정희와 비슷한 연배로 볼 수 있다. 어린 시절에 입문된 정서 혹은 음악 취향이 평생을 가는 법이다. 한국의 대통령인 박정희가 의도적으로 왜색 풍의 노래를 작곡할 리는 없다(나는 이 음악의 기본틀은 박정희가 직접 지었다고 생각한다). 박정희가 자기도 모르게 왜색 풍의 노래를 지은 것이나 할머니가 이 노래를 필생의 18번곡으로 삼은 것은 비슷한 연배의 두 사람이 청소년 시절을 일제강점기의 한복판에 지나온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봐야 한다. , 이 두 사람의 음악 취향의 밑바탕에는 요나누키 마이너 스케일의 엔카가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음악 취향은 스스로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일제강점기라는 특별한 시대적 소산이다.

, 이쯤이면 음악 취향이라는 것이 시대와 사회를 초월하여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한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 논증되었으리라 본다. 이와 관련해서도 피아제는 틀렸고 비고츠키가 옳다는 것이 입증된다. 피아제는 음악 취향이든 뭐든 학습자 개인이 독자적으로 구성한다고 봤고(=개인적 구성주의), 비고츠키는 역사적으로 조건화된 사회문화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는다고 보았다(=문화역사주의).

 

 

트롯은 우리 음악이 아니다.

이 글에서 나는 우리가 일본 음악인 트롯을 좋아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팝송을 좋아하듯이 트롯을 좋아하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단지 이 음악이 일본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이유로 백안시하는 것은 편협한 국수주의적 발상에 다름 아니다. 이런 이유로 나는, 한때 NO JAPAN 운동이 과열 양상으로 치달은 것이나 지금 토착왜구운운하는 파시스트적 프레임이 난무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우려한다. 파시즘의 창궐은 이 글에서 내가 유감을 표명하는 뽕짝 신드롬보다 몇 곱절 더 해악하고 위험한 사회 병리현상이다.

그런데 그 어느 때보다 반일감정이 고조되어 아사이맥주 마시면 매국노 취급 받는 현 시기에 뽕짝 신드롬이 확산되고 있는 것은 왜일까? 이 황당하기 그지없는 당착이 아무렇지 않게 관철되고 있는 이면에는 뽕짝을 좋아하는 범국민적 정서 외에도 이 당착을 정당화하려는 어떤 지적 배경이 자리하고 있다. 그것은 트롯이 우리 고유의 음악이라는 믿음이다.

트롯 작곡자나 가수들이 철석같이 이렇게 믿는 것은 당연하다. 자기 존립의 사활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이렇게 믿는 근거는 두 가지다.

트롯의 원류는 엔카인데 일본 엔카의 아버지 고가 마사오(高賀政男)1970년대에 자기 음악 삶을 회고하면서 엔카의 뿌리는 조선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일본 국민가수의 이 충격적인 발언은 한국의 트롯 지지자들에게 엄청난 힘을 실어주었다. 하지만, 고가 마사오는 아무런 이론적 근거 없이 그저 자신의 주관적인 견해를 양심선언하듯 피력했을 뿐이었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되는 귤화위지(橘化爲枳)의 이치와는 반대로, 엔카는 현해탄을 건너 조선에 오면서 풍성한 음악으로 발전했다. 이것은 두 민족의 감정 그릇의 현격한 차이와 관계있다. 19978월에 김포공항을 출발한 대한항공 여객기가 괌 공항에 착륙하다 추락해 237명의 승객이 사망한 사고가 있었다. 사고 뒤 유족들이 현장에 달려갔는데, 혈육의 죽음을 맞이함에 있어 한국인과 일본인의 태도가 너무 달랐다. 한국인들은 장내가 떠나갈 듯 대성통곡을 하는 반면 일본인들은 감정 표현을 최대한 절제하며 차분히 슬픔을 이겨내고자 했다.

이러한 민족성의 차이는 음악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같은 현악기지만 일본의 샤미센에 비해 우리의 가야금은 농현 주법(비브라토의 일종)에서 음정의 변화폭이 매우 크다. 판소리에서도 일본의 전통 성악에서는 볼 수 없는 소리를 떨거나 꺾는 창법이 발달해 희노애락의 감정을 훨씬 깊이 있게 표현할 수 있다. 이러한 여러 조건의 차이에 비추어, 세파에 지친 인간의 애잔한 감정선을 묘사하는 신파적 속성을 생명으로 하는 엔카는 일본인보다는 한국인이 훨씬 유능하게 소화해낼 수 있는 것이다. 요컨대, 고가 마사오의 발언은 민족의 성격상 엔카가 일본인보다 한국인에게 훨씬 어울리는 음악이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고가 마사오가 그저 심정적으로 한국인의 편을 든 것과 달리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연구소의 민경찬은 나름의 이론적 근거를 들어 엔카의 한국 기원설을 주장한다. 민경찬은, 한국의 트롯이 일본 엔카의 영향을 받아 생성이 되기는 했지만 요나누키 단음계는 일본의 영향이 아니더라도 자연히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숙명을 지니고 있다는 황당한 주장을 펼쳤다. 이 논리가 엉터리임을 알자면 요나누키 단음계에 관한 이해가 필요하다.

다문화 시대를 맞아 요즘 초등학교 음악교과서에도 여러 나라의 음악이 소개되는데, 중국 음악이나 아랍 음악을 들으면 이국적인 정서가 물씬 풍겨온다. 이를테면 아랍 음악을 들으면 항아리에서 코브라가 나와 춤을 출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아랍 음악과 중국 음악, 그리고 일본 음악은 무엇 때문에 그 나라 특유의 정취가 느껴지는 것일까? 그것은 그 나라 음악을 구성하는 음정의 배열인 스케일(음계)과 관계있다. 유념할 것은, 일본음악의 음계는 매우 특이한 구성을 취한다는 점이다.

일본 엔카 음악의 스케일은 단음계의 경우 ----5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솔의 자연단음계에서 4음과 7음이 빠져 있기 때문에 요나누키’(=4, =7, 누키=‘빼다는 뜻)라 일컫는 이 음계는 일본 전통음악인 미야코부시 단음계를 그대로 계승한 것이다. 모든 나라의 민속 음악이 대부분 펜타토닉 스케일(5음계)로 구성되어 있는데, 다섯 음 가운데 미-파와 시-도의 단2(반음)2쌍이나 들어 있는 요나누키 단음계는 매우 독특한 편이다. 따라서, “일본의 영향이 아니더라도 우리 음악은 필연적으로 요나누키 음계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다고 한 민경찬의 논리는 납득하기 어렵다. 전 세계에서 일본 음악에서만 볼 수 있는 음계를 그 식민지였던 나라에서 독자적으로 똑같이 사용하게 되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신중현의 미인에 나오는 유명한 기타 프레이즈 라솔미레 도레미레도라솔 라도도레 미미라는 우리나라 전통 펜타토닉 마이너스케일(계면조)로 이루어져 우리 음악 맛이 진하게 우러나온다. 이 프레이즈를 요나누키 단음계로 치환하면 레-(4-7)을 빼야(누키)하니 라파미도 도미파미도시라 시도미미파 도시라가 된다. 두 가락을 비교해보면 깍두기와 단무지의 차이가 확연히 느껴진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03e8427ae.bmp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837pixel, 세로 632pixel

 

요나누키 음계의 곡이라고 해서 모든 음이 ----로만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3 음악교과서에 수록된 일본동요 토끼는 요나누키 단음계 음악이지만 맨 마지막 바로 앞 음은 이다. 4-7(-)음이 쓰이더라도 빈도가 낮고 또 강박 아닌 약박에서 경과음으로 쓰이면 요나누키 음계를 구성하여 일본 음악의 색채가 짙어진다.

황당하게도, 반일운동의 선구자적인 노래 독도는 우리땅이 그 전형적인 모습을 취하고 있다. “울릉도 동남쪽 뱃길따라 이백리 외로운 섬하나 새들의 고향 그누가 아무리 자기네땅이라도 우겨도 독도는 우리땅에서 경과음으로 쓰인 딱 한 음을 빼고 전부 요나누키 스케일의 음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작곡자가 이 음악을 일부러 엔카 스타일로 지었다면 할 말 없다. 하지만 이것은 기모노 차림에 일장기 흔들며 독도는 우리땅! 외치는 것만큼이나 코미디에 가깝다. 마찬가지로, NO JAPAN 운동이 가열차게 펼쳐지고 집권정당 비난하면 토착왜구소리 듣는 이 시기에 때 아닌 뽕짝 신드롬이 확산되는 것 또한 심각한 자가당착이다.

 

 

뽕짝 권하는 사회, 무엇이 문제인가?

앞에서 개인의 음악 취향은 스스로가 선택한 것이라기보다 당대의 역사와 문화를 변인으로 하는 사회적 영향에 말미암는다고 했다. 나는 현금의 뽕짝 신드롬이 확대일로를 치닫는 이유 또한 대중매체를 중심으로 한 과도한 사회적 자극 탓으로 본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 사회를 뽕짝 권하는 사회로 규정하는바, 이 단락에서는 이것이 뭐가 문제인지 나름의 의견을 피력해보겠다.

사실 한국사회의 근대화 과정에서 일본이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내가 뉴라이트의 식민지 근대화론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식민지 근대화론의 맹점은 일본이 조선의 근대화에 기여한 이유가 경제 수탈을 목적으로 한 제국주의적 야욕에 기초하고 있음을 간과하는 것이다. 제국주의 침략은 경제 분야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 침탈을 위해서는 식민지의 문화도 바꿔야 한다. 이를테면 비누를 팔아먹기 위해서라도 목욕이나 머리감기를 좀처럼 안 하는 조선인의 생활 습관을 개조시키기 위해 상투를 자르게 하고 위생 관념 따위를 주입시켜야 한다. 마르크스가 자본가는 자신의 모습대로 세상을 개조한다고 한 것은 이런 뜻이다.

제국주의 일본의 영향으로 한국인의 일상은 일본의 모습대로 바뀌어 갔다. 우리 상식으로는 일제강점기에 우리 국민의 대부분이 나라 잃은 설움으로 실의에 빠져 있고 일제가 이식한 외래문화에 반감을 품었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1930, 서울 한복판에 미츠코시(三越)백화점이 개업 했을 때 시민들이 밀어닥쳐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리고 전국 방방곡곡의 딴스홀(댄스홀)에는 모던 걸과 모던 보이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우리 대중음악사에서 최초로 트롯이 자리하게 된 배경이 이런 것이다.

일제강점기의 우리 트롯 음악은 나름 품격이 있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현해탄을 건너온 트롯이 한국인의 손을 거치면서 훨씬 발전적인 모습으로 재탄생했다. 일본 엔카의 아버지 고가 마사오는 유년기와 청년기를 조선에서 보냈는데, 아마 같은 트롯 작곡자이자 기타리스트인 박시춘의 작곡 능력이나 연주 실력이 자신을 능가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시기 한국에서 생산된 음악들은 트롯의 발상지인 일본 음악계에선 볼 수 없는 주옥같은 명곡이 즐비했다.

대중음악은 그 시대 사회상을 반영한다. 일제강점기의 트롯 음악들은 식민지 백성의 비통한 심정이나 처량한 신세를 노래하는 경우가 많았고 때론 슬픔이 지나쳐 허무주의로 치닫기도 했다. 건강한 예술적 형상과는 거리가 있지만, 대중음악의 보편적인 통속성에 비추어 볼 때 이 시기의 트롯음악은 미학적으로 나름 음미할 가치가 있는 수준이었다. 민중의 소박한 정서를 대변하는 트롯 음악의 이러한 순기능은 해방 이후 1960년대까지 이어져왔다.

그러나 1970년대에 이르러 트롯은 퇴조기에 접어든다. 이전까지의 대중음악은 트롯이 전부였지만, 60년대 말부터는 이지리스닝 음악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 장르를 주도한 대표적인 가수로 최희준과 김상희는 트롯 가수들과 달리 고학력의 엘리트들이었다. 또한 이 시기에는 미국에서 발발한 히피즘이 청년문화를 꽃 피우며 전 세계로 확산되어 우리나라의 음악계에서 포크 붐을 일으켰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포크 음악도 대학가를 중심으로 급속도로 번져갔다. 결국 이때부터 트롯은 상대적으로 저급한 음악, 책가방 끈 짧은 사람들의 음악이라는 인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내가 볼 때 트롯은 이 때쯤 우리 대중음악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게 좋았다. 이런 글을 쓰지만 나는 어릴 때 트롯을 많이 들으며 자랐기 때문에 트롯에 대한 애정을 품고 있는 편이다. 지금도 나는 애수의 소야곡이나 목포의 눈물과 같은 일제강점기의 트롯을 비롯해서 60년대 배호의 음악을 좋아한다. 그런데 80년대를 지나면서 트롯은 고유의 품위를 잃고 천박하디 천박한 뽕짝으로 전락해갔다. 이때부터 요나누키 음계의 단조 트롯 대신 장조 트롯이 주류를 이루는데 기존 트롯 음악의 주요 콘텐츠인 인간 삶의 성찰적 측면이나 애잔한 비극미 따위는 사라지고 경박하고 노골적인 사랑타령이나 퇴폐 향락을 부추기는 음악으로 변질되었다. 신사동 그사람이나 비내리는 영동교의 배경은 모두 술집밀집 지역인데, 자정을 지나 새벽이 되도록 이곳에 머무르는 노랫말 속의 인물들은 결코 선남선녀로 볼 수 없다.

 

다시, 음악은 그 시대의 사회상을 반영한다. 80년대 중반 이후 3(저금리, 저유가, 저환율)의 호재에 힘입어 우리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해갔다. 이때부터 우리는 전 세계에서 제일 열심히 일하는 국민으로 살아오고 있다. 물질적 풍요를 좇기 위해 오직 앞만 보고 달려가는 영혼 없는 사회에서 뽕짝 음악은 필요악으로 기능했다. 주량이 역량으로 통하는 직업전선에서 23차에서 고주망태가 되도록 마시고 마지막으로 노래방에서 미친 듯이 흔들고 악을 쓰며 노래 불러야 개인이 살아남고 회사와 공장이 돌아간다. 이런 묻지마 친목질에서는 삶을 성찰하고 자연을 관조하는 노래는 금물이다. “어머나 어머나 이러지 마세요. !” 하며 망가질 줄 아는 사람이 집단 내에서 인정받는다.

이러한 시대 분위기에 편승하여 트롯 음악은 지금껏 한국의 대중음악사를 이끌어온 품위와 자존을 버리고 오직 망가짐의 음악으로 신분세탁을 하였다. 이 변신은 우리 대중음악 수준이 전반적으로 발전함에 따라 경쟁력을 상실한 트롯이 살아남기 위한 고육지책일 수도 있지만, 프로이트 심리학의 용어로 퇴행그 자체일 뿐이다.

 

현진건의 소설 술 권하는 사회에서 주인공은 술 때문에 망가져간다. 인텔리 출신인 이 남성은 서열과 권위주의로 아귀다툼을 벌이는 치열한 생존경쟁에 찌든 영혼을 달래기 위해 매일 술을 마신다. 주인공의 삶은 술로 망가져가지만 작가는 술에 의지하는 사람보다 술 권하는 사회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적 관점을 제시한다.

나는 술 권하기와 뽕짝 권하기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본다. 덴마크와 스웨덴을 여행할 때 놀랐던 것은, 저녁 8시가 되면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고 거리가 한산한 풍경이었다. 술 한 잔 하고 싶어 아무리 돌아다녀도 술집처럼 생긴 곳이 잘 없었고 하다못해 마트에서 캔 맥주라도 사려 해도 8시 이후엔 문 연 곳이 없었다. 요컨대 이곳은 술 권하는 사회와 거리가 멀었다. 이곳 사람들도 친목활동 할 때 가끔씩 노래를 부를 것이지만...... 확신컨대 뽕짝비슷한 것은 절대 내지르지 않을 것만 같다. 왜냐하면, 술 권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개인이 굳이 망가진 척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이 나라에서는 공사판에서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도 행복해 보였다. 그의 얼굴에서 찌든 분위기는 전혀 엿볼 수 없었다. 그의 삶이 망가지지 않으니 술이나 뽕짝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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