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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를 위한 음악, 한스 아이슬러

 

송재혁(전교조 법외노조 탄압 해고자)

 

 

* 노동무크지 『현장과 광장』 창간호(2019.11)에 실린 글을 전재(轉載)함.

 

“모차르트, 베토벤 역시 싸워서 획득해야 하는 것이다. 건강한 주거생활, 훌륭한 식사, 의미 있는 일, 2세들에게 필요한 교육, 노후생활의 보장이 그런 것처럼”

 

20여 년 전 어느 날 동네의 유서 깊은 인문과학 서점이었다. 제목에 끌려 들추어 본 누렇게 바랜 책에서 위 글귀를 발견하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 ‘국민학교’ 시절부터 클래식 음악에 푹 빠져 살아왔음에도 모차르트와 베토벤 등은 가급적 멀리하는 게 건전한 삶을 위해 좋을 것이라는 막연한 자기부정적 도덕률을 깨뜨리면서, 모차르트와 베토벤을 아예 투쟁의 획득 목표로 제시하고 있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동독의 작곡가 한스 아이슬러(Hanns Eisler, 1898-1962)라는 이름을 처음 접하는 순간이었다. 표지에는 ‘음악의 혁명, 혁명의 음악’이라는 근사한 제목이 큼지막하게 박혀있었다. 독일의 알브레히트 베츠(Albrecht Betz)가 1976년에 낸 저서 『한스 아이슬러 : 곧바로 형성되는 시대의 음악(Hanns Eisler: Musik einer Zeit, die sich eben bildet)』의 일본어판을 도서출판 동녘이 1987년에 번역한 것이었다. 암울한 시대였기에 역자는 최승운이라는 가명으로 소개되어 있었는데, ‘그날이 오면’이라는 민중가요의 걸작을 만든 문승현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아이슬러를 처음 만난 서점의 이름도 ‘그날이 오면’이었다. 지금까지도 밑줄 친 부분을 다시 읽어보곤 하는 이 고마운 책은 노동자가 클래식 음악에 공감하는 것이 모순되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장려할 가치마저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했다.

 

민족예술인총연합회가 해오던 예술강좌를 2000년대 중반 다시 찾았을 때, 윤이상 선생의 제자인 홍은미 선생이 음악강좌를 열고 있었는데, 한 꼭지로 한스 아이슬러를 다루었다. 비로소 아이슬러의 음악을 제대로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우연히 온 것이다. 고상한 분위기가 감돌지만 조성이 모호하여 절대 따라 부를 수 없을 것 같은 어려운 합창곡에서, 따뜻한 휴머니즘을 소박한 규모에 담아낸 관현악곡, 그리고 처음 듣는 순간 절로 팔뚝질하고 싶어지는 노동가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에 걸쳐 다양한 모습을 펼치는 그의 음악에서는 예술성과 대중성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고 개인성과 사회성의 경계가 허물어져 있었다. 마침 동독 시절의 녹음을 담은 ‘베를린 클래식스(Berlin Classics)’의 음반들이 일부 들어오고 있었던지라, 음반 수입사를 직접 찾아가 아이슬러의 음반을 싹쓸이하고 아직껏 수입되지 않았던 것들을 주문했다. 이로부터 한동안 아이슬러는 다른 모든 작곡가를 밀어내고 가장 흥미로운 음악가로 자리하게 되었다.

 

지금도 베를린의 국립 음악대학은 ‘한스 아이슬러’라는 위대한 이름을 포함하고 있다(Hochschule für Musik Hanns Eisler Berlin). 그런데 한스 아이슬러 국립 음대에서 공부했던 분에 따르면 이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조차 아이슬러를 잘 모른다고 한다. 하물며 우리나라에 그가 잘 알려져 있을 리 만무하다. 음반점에 가보면 작곡가별 분류에서 빠져있거나 현대음악 코너에 음반 몇 장이 소박하게 꽂혀있을 뿐이다. 하지만, 아마도 그는 클래식 작곡가 중에서 음악과 사회와 관계를 가장 적극적으로 바라본 사람 중 하나일 것이다. 그는 인류의 소중한 자산인 클래식 음악을 프롤레타리아 역시 이해하고 누릴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만들어 내는 일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아이슬러 평전에서 알브레히트 베츠는 “더 나은 사회관계를 기다리는 것만으로 음악가의 고립이 지양될 수 없으리라는 것은 곧 그 고립을 타파하는데 음악가 자신이 어떻게든 노력을 쏟는다는 뜻이다.”라고 썼다. 음악가에게 있어 그러한 노력은 더 나은 사회관계를 이룩하려는 데에만 머물지 않고 음악가 고유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되어야 할 것이다. 음악가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니, 민중을 위한 새로운 예술을 개척하고 이를 풍부하게 발전시켜나가는 과제를 지향해야 한다. 사회와 단절된 채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이해하거나 대다수가 이해하지 못할 이상하고 어려운 음악으로 고립을 자처하는 많은 현대 작곡가들에게 아이슬러의 음악은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아이슬러는 현대음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든 신 음악의 기수 아놀트 쇤베르크(Arnold Schönberg)의 제자이지만 스승과 다른 길을 걸어 노동 음악의 새로운 경지까지 개척해냈던 ‘변증법적 청출어람’의 작곡가였다. 기법만 진보적이지 내용 면에서는 그렇지 않았던 스승을 비판하였고, 스승의 12음기법을 유연하게 변형하여 대중성 있는 음악어법을 사용했다. 음악과 사회·정치의 불가분성에 주목하고 깨어있는 사회의식으로 비참한 현실을 개선하려 했던 그가 노동자들이 쉽게 부를 수 있는 노래를 작곡한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기능성 음악에서 드러나는 프로파간다 예술의 천박성을 그의 작품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민중의 의식과 감성이 그것을 담은 음악과 충돌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펼쳐진다. 정치적이지 않은 작품들도 기괴한 현대음악 기법에 천착하여 고립을 자처하는 음악이 아니라 이해되고 수용될 수 있는 신 음악으로 만들어졌다.

 

언제부턴가 집회나 문화제의 현장에서 몸짓패와 노래패 외에 합창 양식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2010년 5월 17일, 5.18 항쟁 30주년을 기념해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의 교향곡 2번 ‘부활 교향곡(Auferstehungs-Sinfonie)’이 시민 합창단과 광주시향, 그리고 구자범 지휘자에 의해 광주의 공연장에서 연주되었는데, 당시 김상봉 교수의 탁월한 우리말 번역은 5.18 정신을 연주회장에서 ‘부활’시켰다. 서울시청 광장에서 있었던 6.10 항쟁 30주년 문화제에서도 대규모 시민 합창단의 공연이 있었다. 전교조 결성 기념 교사대회와 세월호 추모제 등에도 합창이 등장했다. 평범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합창단이 진보 운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개인의 힘 있는 가창력에 의존하기보다는 작은 소리의 전체적인 어울림으로 호소하는 합창 양식은 나름의 독특한 매력이 있다. 음악의 나라 독일에서는 1920년대에 노동자 합창단에 결합한 사람이 50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의 노동자 합창단은 하이네의 시를 가사로 삼거나 19세기 민요를 부르거나 필요한 경우 ‘노가바’를 하는 등, 그들의 세계관을 담은 명실상부한 노동가를 갖고 있지 못했다. 그래서 아이슬러는 노동자들을 위해 필요한 노래들을 작곡해 주었는데, 누가 손만 흔들어 요구하면 즉석에서 곡을 써줄 정도로 열성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1933년 히틀러가 집권하자 반파시즘 노선을 견지했던 그는 여러 나라를 전전하며 망명생활을 해야 했다. 1938년에는 미국에 정착하지만, 1948년 반미행위를 했다는 죄목으로 탄압을 받는다. 그의 친구였던 채플린을 비롯하여 피카소, 작곡가 아론 코플랜드,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 등이 그를 구제하기 위한 노력을 했지만 결국 미국에서 추방되고 만다. 이후 독일민주공화국(동독)에 정착하여 새로운 음악 문화를 일구기 위해 노력하지만, 스탈린주의로 왜곡되어가는 동독의 예술정책과 현실에 대하여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게 된다.

 

아이슬러의 작품 중 가장 먼저 기억할만한 것은 동독의 국가, ‘폐허에서 부활하여(Auferstanden aus Ruinen)’다. 기능성 음악이지만 작위적인 느낌이나 위압감이 적고 온화함이 깃든 노래로, 아름다운 선율과 화성을 갖추었고 부르기도 쉽다. 베를린 클래식스(Berlin Classics)에서 나온 성악곡집 음반의 마지막 트랙에서 이 곡을 발견할 수 있다(Nationalhymne der DDR). 관현악과 합창으로 연주되는데, 각 절 마다 악기 편성을 조금씩 달리 한 섬세한 오케스트라 편곡이 돋보인다. 합창 음악 해석이 탁월한 헬무트 코흐(Helmut Koch)가 지휘한 베를린 방송 합창단, 베를린 방송 솔리스트 협회, 베를린 방송 교향악단의 1968년 녹음이다. 휴대전화의 기상 알람을 이 곡으로 설정해 두고 매일 아침 들은 지 오래이지만 그 상쾌하고 따스한 느낌은 여전하다.

 

1949년에 만들어진 이 노래의 가사는 후일 동독 문화부 장관을 지낸 시인 요하네스 R. 베혀((Johannes R. Becher, 1891-1958)가 썼다. 나라가 지향하는 밝은 미래를 표현하지만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는 억지스러움은 없다. 일본제국주의의 괴뢰국이었던 만주국을 위한 찬가를 작곡하고 일본과 독일의 문화 동맹 공간에서 ‘에키타이 안’이라는 일본인으로서 지휘 활동을 했던 안익태의 음악을 여전히 국가로 불러야 하는 처지에서는, 비록 사라진 나라일지라도 동독 사람들이 불렀던 국가가 차라리 부럽게 여겨진다.

 

▲ Hanns Eisler - Choral Songs; Children's Songs; Popular Songs (Berlin Classics)

 

 

 

 

독일민주공화국 국가, ‘폐허에서 부활하여’ 가사

 

(1절)

폐허에서 부활하여

미래를 향하고,

우리로 유익이 되게 하라,

독일, 통일 조국이여.

옛 고난을 굴복시켜야 할 때니,

우리 하나 되어 그것을 굴복시키리,

우린 틀림없이 성공하리니,

태양이 전에 없이 아름답게

독일 위에 빛나리라,

독일 위에 빛나리라.

 

(2절)

행복과 평화가 통지될지라

독일, 우리 조국에.

온 세계가 평화를 갈망하리,

인민들에게 너희의 손을 건네라.

우리가 형제처럼 하나가 되면,

인민의 적을 부수리라!

평화의 등불이 빛나게 하라,

더는 어머니가

그 아들로 인해 곡하는 일이 없도록,

그 아들로 인해 곡하는 일이 없도록.

 

(3절)

갈아라, 세워라,

배우고 이루라, 한 번도 못해 본 바를,

자신의 힘을 믿으며,

한 해방세대가 솟아오른다.

독일 청년이여, 우리 인민의

최상의 노력이 네 안에서 하나 되나니,

네가 독일의 새 삶이 되면,

태양이 전에 없이 아름답게

독일 위에 빛나리라,

독일 위에 빛나리라.

 

 

그가 남긴 대표적인 노래로 ‘연대의 노래(Solidaritätslied)’가 널리 알려져 있다. 1931년에서 32년 사이에 만들어진 영화 「쿨레 밤페, 혹은 세상은 누구의 것인가?(Kuhle Wampe oder: Wem gehört die Welt?)」를 위한 노래로, 가사는 아이슬러와 작업을 지속했던 시인 겸 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d Brecht)가 썼다. 영화 「쿨레 밤페」는 에이젠슈타인의 「전함 포템킨」과 같은 다큐멘터리적인 몽타쥬 영화의 영향을 받는 것이었다고 한다. 알브레히트 베츠의 아이슬러 평전에는 영화가 이렇게 소개되어 있다.

 

비참한 생활 속에서 연대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그러나 그러한 생활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연대 행동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가를 대조시키면서,

집단적이고 조직으로 일치단결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의식하면서 싸우지 않는 한

변혁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꽤 선동적이고 전투적이고 도발적인 노래이며, 반복되는 후렴구가 특히 인상적이다. 1932년 베를린에서의 녹음이 남아 있는데, 에른스트 부쉬(Ernst Busch)가 부르고 아이슬러가 스튜디오 오케스트라를 직접 지휘한 기록이다. 녹음 상태는 다소 열악하지만 당대의 연주 양식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 Hanns Eisler - Historic Recordings (Berlin Classics)

 

 

‘연대의 노래’ 가사

 

전진, 그리고 잊지 말라

우리의 강고함의 실체를 향해!

굶을 때나 먹을 때나

전진, 결코 잊지 말라,

연대를!

 

일어나라, 그대들, 이 땅의 인민들이여,

이러한 뜻으로 하나가 되라

이 땅이 지금 그대들의 것이 되고

위대한 부양자가 되도록

 

전진, 그리고 잊지 말라

우리의 강고함의 실체를 향해!

굶을 때나 먹을 때나

전진, 결코 잊지 말라,

연대를!

 

검은머리, 흰머리, 갈색머리, 노랑머리!

학살을 끝내라!

비로소 스스로 인민을 이야기하고,

어서 하나가 되어라.

 

전진, 그리고 잊지 말라

우리의 강고함의 실체를 향해!

굶을 때나 먹을 때나

전진, 결코 잊지 말라,

연대를!

 

우리는 그것에 어서 도달하기를 원하며

우리는 여전히 서로 친밀할 것을 요한다.

같은 처지에 있는 자를 내버려 두는 자는

오직 자기 자신만을 내버려 둘 뿐이다.

 

전진, 그리고 잊지 말라

우리의 강고함의 실체를 향해!

굶을 때나 먹을 때나

전진, 결코 잊지 말라,

연대를!

 

우리의 주인들, 주인이라고 하는 자들은

우리의 불화를 즐기며 본다.

왜냐면 그들이 우리를 분열시키는 한

그들은 어차피 우리의 주인으로 남기 때문에.

 

전진, 그리고 잊지 말라

우리의 강고함의 실체를 향해!

굶을 때나 먹을 때나

전진, 결코 잊지 말라,

연대를!

 

만국의 무산계급이여,

단결하라, 그리하여 그대들이여 해방되어라.

그대들의 위대한 통치는

모든 폭정을 꺾어버리리!

 

전진, 결코 잊지 말라,

질문이 구체적으로 제기된다.

굶을 때나 먹을 때나

이 아침은 누구의 아침인가?

이 세상은 누구의 세상인가?

 

 

1934년 작곡되어 1948년 개작된 ‘통일전선의 노래(Das Einheitsfrontlied)’도 유명하다. 인터넷에 보이는 일부 정보에서는 ‘통일전선의 노래’가 독일의 ‘통일’을 열망하는 노래로 잘못 소개되어 있는데, 히틀러 정권의 대두 시기에 브레히트가 쓴 가사는 파시즘의 거짓 선동에 속지 말 것과 자기 인식에 바탕 한 통일된 노동 전선을 구축할 것을 노동자들에게 호소하는 내용이다. 아이슬러의 합창 음악을 모은 음반 「Choral Music」의 마지막 트랙에서 이 곡을 만날 수 있다. 디트리히 크노테(Dietrich Knothe)가 지휘한 베를린 대 방송관현악단과 베를린 노래 아카데미의 연주다. 그의 작품이 이처럼 대규모 관현악을 동반한 합창 양식으로 연주되는 것은 2차 대전 후 동독에서부터 가능해졌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대규모 관현악과 합창이 어우러진 양식은 매우 강력한 호소력을 지닌다. 그의 또 하나의 관현악-합창 음반인 「Vocal Symphonic Music」에서는 「레닌 진혼곡」을 들을 수 있다.

 

‘통일전선의 노래’의 첫 두 마디는 전교조를 대표하는 노래인 주현신 작곡 ‘참교육의 함성으로’의 첫 두 마디와 매우 유사하다. 아마도 작곡자가 이 곡에서 선율을 착안했을 것이다. 박근혜 정권이 서슬 퍼렇게 살아있던 2016년 5월 28일 법외노조 상태로 전교조 결성 27주년 기념일을 맞아야 했던 전교조는 그 어느 때보다 비장한 마음으로 전국교사대회를 꾸렸다. 이를 위해 전국의 조합원들로 ‘528 합창단’을 구성했는데, 무대에는 세 곡의 합창이 올랐다. 이소선 합창단의 임정현 지휘자가 지휘했고, 편곡은 이현관이 있다. 편곡자 이현관은 미국에서 작곡을 전공한 분인데, 공연 며칠 후 뒤풀이에서 대화를 나누다 보니 1990년대 언젠가 세종문화회관에서 인상적으로 보았던 악극 ‘금강’의 작곡자임을 알게 되었다. 당시 연출은 문호근이었다. 민중적인 내용을 담은 창작음악이 세종문화회관과 같은 기성 공연장에서 연주된다는 사실 자체가 뿌듯한 감동을 주었을 뿐더러, 우리 음악의 발전 방향과 가능성을 예고했던 좋은 공연으로 기억된다. 이현관은 클래식 음악가와 민중 음악가가 함께 공동 작업을 했던 1990년대를 그리워하면서 이후 양자의 분리로 인한 음악계의 손실을 아쉬워했다. 우리가 시도했던 전교조 합창단이 양자의 독자성을 유지하면서도 다시 만날 수 있는 교류의 장을 만들려는 시도였다고 ‘해몽’해 볼 수도 있겠다.

 

이날 노래 된 ‘참교육의 함성으로’는 유튜브에서 시청할 수 있다(검색어 : 참교육의 함성으로). 수백 수천 번 부르고 들었던 ‘참교육의 함성’이지만 이렇게 잘 된 편곡은 처음 접한다. 필자가 참여해 불렀던 베이스 파트에 주어졌던 막판의 상승조는 엄청난 고양감을 머금고 있다. 아마도 한스 아이슬러가 이 공연을 봤더라면 참 잘 된 변용이라며 칭찬했을 것이다. 공연은 트럼펫의 ‘과감한 삑사리’로 시작된다. 그렇다! 역사의 진전은 ‘삑사리’에서 시작되곤 하는 법이다. 30년 전인 1989년 전교조는 1500여 명이 해직되는 아픔을 딛고 깃발을 세웠다. 이렇게 생각하니 빗나간 소리가 다시 들어도 살갑게 여겨진다.

 

▲ Hanns Eisler - Choral Music (Berlin Classics)

 

▲ Hanns Eisler - Vocal Symphonic Music (Berlin Classics)

 

 

통일전선의 노래

 

(1절)

인간은 인간이기에

그 때문에 먹을 것이 필요하다? 별말씀을!

그런 헛소리가 인간을 배부르게 하지는 않는다.

그게 먹을 걸 가져오는 게 아니다.

 

(후렴) 그러니 좌로, 둘, 셋!

그러니 좌로, 둘, 셋!

그대가 있을 자리, 동지들이 있는 곳으로!

노동자 통일전선에 합류하라,

그대 역시 노동자이기에.

 

(2절)

인간은 인간이기에

그 때문에 옷과 신발 또한 필요하다!

그런 헛소리가 그를 따뜻하게 해주지도 않으며

그것을 얻으려 발 구르게 하지도 않는다.

 

(3절)

인간은 인간이기에

그 때문에 아첨하는 표정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 아래 어떤 노예도 보이기를 원하지 않으며

자신 위에 어떤 주인도 보이기를 원하지 않는다.

(4절)

프롤레타리아는 프롤레타리아이기에

그 때문에 다른 누구도 그를 해방시키지 않으리.

오직 노동자 스스로만이

노동해방을 이룰 수 있다.

 

여기 소개하는 가사들은 인터넷에 게시되어 있는 기존 번역을 참조하되 오역으로 판단한 부분을 고쳐 다듬은 것이다. 아이슬러는 가사가 없는 기악 작품도 많이 남겼다. 아이슬러의 기악 작품이 지닌 특징을 잘 드러낸 곡으로 「겨울전투 모음곡(Winterschlacht-Suite)」을 꼽을 수 있다. 2차 대전 중 소련과의 겨울 전투와 독일의 패전을 동독의 입장에서 다룬 작품으로, 요하네스 베혀(Johannes R. Becher)의 텍스트 낭송이 곁들여진다. 전체적으로 과장 없이 소박하게 비장미를 드러내는 점이 인상적이다.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고발한 알랑 레네 감독의 다큐멘터리 ‘밤과 안개(Nuit et brouilliad)’에서 이 곡이 배경으로 흐르는데, 소박한 기조에 때로는 밝은 분위기까지 자아내는 음악과 잔인하고 끔찍한 영상 사이의 극심한 부조화가 외려 역설적인 호소력을 이룬다.

이 곡이 수록된 관현악 작품 2집에는 매우 흥미로운 음악이 함께 실려 있다. 쉴러의 ‘빌헬름 텔’ 무대음악 중 전주곡과 노래 ‘바다가 미소짓는다’라는 1962년 작품이다. 격렬하게 연주하는 첫 부분은 재미있게도 리하르트 바그너의 장대한 악극 「니벨룽의 반지」 중 「발퀴레」 1막 전주곡의 첫 부분을 의도적으로 뒤집어놓은 것처럼 들린다. 바그너에서의 단조의 하강조와 정반대로 장조의 상승조로 되어 있다. 아마도 바그너에 대한 그의 비판을 음악적으로 표현한 부분이 아닌가 싶다.

▲ Hanns Eisler - Orchestral Music, Vol. 2 (Berlin Classics)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히는 「독일 교향곡(Deutsche Symphonie)」은 순수한 기악곡이 아니고 성악이 포함되어 있다. 가사는 브레히트 등에 의한 것이며, 1930년대 망명기의 반파시즘 음악이다. 이 작품에 대하여 그는 “감상적이지 않으면서도 비탄을 전하고, 군국주의적 음악을 사용하지 않고도 투쟁을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다. 스산한 분위기로 시작하는 첫 곡 전주곡을 들어보면 “감상적이지 않으면서도 비탄을 전하는” 방식이 어떤 것인지 느껴진다. 이 교향곡은 나치의 방해로 인해 동독 정착 이후인 1959년에 이르러서야 연주될 수 있었다. 아돌프 프리츠 굴(Adolf Fritz Guhl)이 지휘한 라이프치히 방송 교향악단의 1974년 녹음(Berlin Classics)이나, 최근 우리나라에서 바그너의 음악을 연주했던 로타 차그로제크(Lothar Zagrosek)가 지휘한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1995년 녹음(DECCA)으로 접할 수 있다.

 

 

 

▲ Hanns Eisler - Deutsche Symphonie (Berlin Classics)

 

1987년에 나왔던 알브레히트 베츠의 아이슬러 평전 번역판을 더 이상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에 대한 이해를 돕는 우리말 저작으로는 서울대 서양음악연구소 음악학 총서 중 ‘20세기 작곡가 연구’ 제2권에 실린 이경분 박사의 한스 아이슬러 편이 유용하다. 음반도 일부는 인터넷 서점에서 구할 수 있다. 아이슬러는 가사를 중시하여 음악이 가사의 표현을 방해하지 않도록 유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작품 대부분의 가사는 여전히 번역되지 않았으며, 그의 작품이 우리나라에서 연주되는 것을 본 적도 없다. 누군가가 한스 아이슬러라는 소중한 보고를 활짝 열어 젖혀준다면 클래식 음악계가 가진 고리타분한 병폐를 치유할 뿐 아니라 우리 노동음악, 민중음악을 더욱 풍부히 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프롤레타리아의 환경에서 라디오나 카세트테이프에 매달려 클래식 음악을 들었던 어린 시절에도, 낮에는 투쟁 집회 갔다 저녁에 음악회장에 들어앉았을 때에도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은 불편함이 늘 따라다녔다. 과연 클래식 음악이란 진보 운동에 해악을 끼치는 부르주아 문화에 불과한가? 인생의 중반기까지 따라붙었던 물음은 이제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음악을 음악으로만 보는 순수하지 못한 순수주의를 배격하고 음악의 사회적 맥락을 중시하면 기존의 음악도 새롭게 재발견될 수 있으며 현재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설사 부르주아에 속한 것이었을지라도 그 예술적 가치가 높다면 얼마든지 프롤레타리아의 문화를 풍부히 하는 재료가 될 수 있다. 부르주아 음악이냐 프롤레타리아 음악이냐, 대중 음악이냐, 엘리트 음악이냐는 구분은 지배 계급의 ‘구별짓기’ 전략 아래에서나 유효할 뿐, 노동자 민중이 모든 음악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다면 그러한 구분은 이미 무의미해진다. 클래식 음악이 내 것이 아닐 때는 ‘재수 없는’ 음악이지만, 일단 내 것이 되면 ‘제법 괜찮은’ 음악이 된다. 안타깝게도 우리 진보 진영의 음악은 1980~90년대 이후 퇴화하고 있는 것 같다. 노동자・민중은 자신의 세계관에 걸맞은 음악적 표현력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는가? 노동자・민중의 의지와 정서를 한갓 군가나 진배없는 곡조에 얹어 노래할 수는 없는 일이다. 자기를 감동시키고 우리를 감동시키고 저들마저 감동시킬 수 있는 음악으로 나아가면 좋겠다. 한 시대 음악의 정수가 담긴 클래식을 포함하여 기존의 다양한 음악 유산을 한껏 자기 양분으로 삼아내면서 이를 토대로 ‘우리’ 음악의 내용과 형식을 변증법적으로 상승시키는 방도를 찾아야 할 때다. 음악을 사회적 맥락에서 재해석하여 기념비적인 연주를 진행해 온 구자범 지휘자가 최근 ‘클래식(classic)’과 ‘클래스(class)’의 어원이 서로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냐고 물었다. 요즈음 개그 유행어 중에 “클라스가 다르다”는 말이 있다. ‘우리’의 클래스는 충분히 자랑스럽지만 ‘우리 음악’의 클래스가 달라진다면 우리는 이마저도 충분히 자랑스러워하게 될 것 같다.

 

위에 소개한 ‘연대의 노래’의 마지막에서 화자는 다음과 같이 묻는다. “Wessen Morgen ist der Morgen? Wessen Welt ist die Welt?”(이 아침은 누구의 아침인가? 이 세상은 누구의 세상인가?) 물음에 대한 답을 찾은 우리는 노래에 대해서도 이처럼 물을 수 있을 것이다. “Wessen Musik ist die Musik?”(이 음악은 누구의 음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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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4 특집1-2] 2020 교육노동운동의 방향과 과제 - 교육개편의 동력 강화와 교육혁명의 재추동 file 진보교육 2020.01.17 11
1263 특집1-3] 대학체제 개편의 기조와 현 시기(2020~2025) 대학통합네트워크 구성 경로 file 진보교육 2020.01.17 18
1262 특집2-1] 자본주의 위기의 심화와 ‘발달과 해방의 교육사상’의 정립 file 진보교육 2020.01.17 20
1261 특집2-2] 자유주의 교육담론의 오류와 문제점 file 진보교육 2020.01.17 12
1260 담론과 문화> 한송의 미국생활 적응기 - 2019~2020, 생의 한가운데 file 진보교육 2020.01.17 12
1259 담론과 문화> 두 마녀의 성, 동백과 술라 file 진보교육 2020.01.17 9
1258 담론과 문화> 세대론을 호출하는 사회 file 진보교육 2020.01.17 18
1257 담론과 문화> 포토 에세이 - 사람의 동네 file 진보교육 2020.01.17 5
» 담론과 문화> 노동자를 위한 음악, 한스 아이슬러 file 진보교육 2020.01.17 76
1255 담론과 문화> 漢字한자, 쬐끔은 새겨둬야 file 진보교육 2020.01.17 6
1254 [만평] 빼어날 수 있을까 file 진보교육 2020.01.17 6
1253 현장에서> <2019강림41 ‘좋은숲동무들’ 살아가는 이야기> file 진보교육 2020.01.17 6
1252 현장에서> 고입 복마전 - 특성화고 특별전형 file 진보교육 2020.01.17 6
1251 현장에서> 기간제교원 실태조사 및 운영 개선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읽고 file 진보교육 2020.01.17 9
1250 [책이야기] 글을 읽는다, 문자를 본다 file 진보교육 2020.01.17 9
1249 권두언> 강고한 투쟁과 담론으로 자유주의를 넘어 새로운 전망을 진보교육 2019.11.16 32
1248 특집1-1> 조국사태와 대입제도 개혁 file 진보교육 2019.11.16 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