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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차 산업혁명의 성격과 영향

 

교찾사 포럼운영위

 

1. 들어가며

 

한국사회에서 4차 산업혁명 담론은 과잉화되어 있다. 최근에는 거의 모든 사회 분야에서 4차산업혁명이 중심 화두가 되고 있다. 문제는 4차 산업혁명이 단순히 자본이나 보수의 담론이 아니라는 점이다. 진보와 보수, 자본과 노동 가릴 것 없이 4차 산업혁명이라는 미래담론에 준거하여 자신들의 입장을 전개한다.

미래담론과 기술혁신(경쟁력)담론은 그것이 유토피아적이든 디스토피아적이든 현실의 모순과 갈등을 은폐하는 경향이 있다. 기술담론들은 미래가 기술이라는 단일한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것처럼 주장한다. 개인과 사회가 할 일은 미래의 새로운 기술 혁신을 위해 매진하고 이에 적응하는 일뿐이다. 특히 교육은 미래 세대를 육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미래 담론에 더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미래의 기술 혁신에 대한 화려한 전망들이 등장하고 교육은 이를 위해 복무할 것을 요구받는다. 미래 기술혁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마치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않는 게으름뱅이로 취급되기 십상이다.

 

4차 산업혁명 담론은 이전의 지식-정보화 사회론, 인적자본양성론 등을 집약시킨 결정판의 성격을 띠고 있다. 철저한 분석이 필요하다.

첫째, 4차 산업혁명의 실체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어떤 성격의 기술적 혁신이 진행되고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둘째, 4차 산업혁명이 산업혁명이라는 호칭에 걸맞은 내용을 갖고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산업혁명은 일상적인 기술혁신과 다르게 자본주의의 중장기적인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종합적이면서 복합적인 기술혁신 체계를 의미한다. 과연 현재 진행 중인 기술혁신은 산업혁명을 초과하는지 아니면 미달하는지 판단해야 한다.

셋째, 비록 산업혁명에 미달한다할지라도 현재 진행 중인 기술혁신이 경제, 사회, 문화 등에 미칠 변화와 영향에 대하여 예측하고 판단해야한다.

이러한 판단에 기초하여 4차 산업혁명 담론이 사회 각 분야, 특히 교육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판단해야 한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 담론과 교육과의 관계는 다음 기회에 다룰 예정이다. 4차 산업혁명의 교육담론인 ‘역량교육’의 의미와 문제에 대한 면밀한 판단이 필요하다.

 

2. 제4차(?) 산업혁명(?)

 

2016년 1월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서 클라우스 슈밥이 현재 진행 중인 과학기술의 변화를 4차 산업 혁명이라 명명한 이후 4차 산업 혁명 담론이 급속하게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한국 사회는 2016년 3월 이세돌과 구글이 개발한 알파고(인공지능)의 바둑 대결에서 이세돌이 패배한 이후 인공지능과 더불어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관심이 급격하게 고양되었다.

이후 각종 국책-사설 연구기관들에서 4차 혁명과 관련된 보고서가 쏟아져 나왔고, 관련 외국서적들도 번역되어 히트상품이 되었다. 이제 정치인, 학자는 물론 일반인들까지 4차 산업 혁명을 언급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진 인물 취급을 받을 지경이다.

하지만 미래 담론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처럼 그 열기에 비하여 내용은 빈약한 경우가 많으며, 말 그대로 도래하지 않은 미래에 대한 예측이기 때문에 불확실성의 측면이 강하다. 또한 미래 담론으로서 4차 산업혁명은 특정한 흐름이나 징후를 과장하는 경우가 많으며, 한국 현실과 미래에 대한 실증적 연구보다는 수입된 외국 담론들을 소개하거나, 우리의 현실을 수입 담론에 끼워 맞추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과학이 현실의 특정한 대상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의 생산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면, 담론은 현실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일정한 틀(프레임) 즉 일정한 의미나 가치를 생산하는 이야기들의 결합체를 의미한다. 과학과 담론의 경계는 모호하며, 서로 혼합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미래를 대상으로 하는 이론들의 경우 대상이 실존하지 않기 때문에 과학의 성격보다는 담론의 성격을 많이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담론들은 진리성 여부와 관계없이 매우 강력한 권력 효과를 발생시킨다.(푸코의 고고학이 담론의 역사적 흐름을 추적하는 것이라면, 계보학은 담론이 어떤 권력 효과를 산출하는지를 추적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4차 산업혁명 담론은 국가-자본-지식인들의 주류 담론으로 자리 잡으면서 매우 강력한 권력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하였다. 경제는 물론이고 교육을 포함한 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에 4차 산업혁명 담론이 중심 담론의 위상을 차지하기 시작하였다.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과 구성원들은 4차 산업혁명에 적응하고, 대비하고, 4차 산업혁명을 촉진하는데 기여하도록 강제되고 있다.

 

현재 유통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 담론은 크게 다섯 가지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로, 자본주의 발전 담론으로서의 4차 산업혁명론이 존재한다. 산업혁명은 과학과 기술의 전면적이고 종합적인 혁신을 통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기술, 소재, 에너지(동력) 체제를 구축하고, 이를 통해 생산성의 비약적인 발전과 산업과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과 팽창을 가능케 하는 현상을 일컫는 개념이다. 따라서 산업혁명이라는 개념을 쓰는 것 자체가 이미 자본주의 경제의 비약적 발전 즉 자본주의 중장기적 성장이 새롭게 개시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 입장은 인공지능, 로봇, 사물인터넷, 블록체인 등으로 대표되는 신기술이 생산성의 비약적인 성장을 가져와 자본주의가 새롭게 도약할 것을 기대한다.

 

둘째로, 테크노피아적인 담론이 존재한다. 앞의 담론이 주로 자본주의적 경제체제와의 연관 속에서 4차 산업혁명을 논한다면, 이 담론은 새로운 기술 그 자체의 성격에 집중한다. 4차 산업혁명의 첨단 기술로 인하여 생산성의 비약적 성장이 가능하고, 이는 부의 비약적 확대와 노동시간의 단축 또는 소멸로 귀결될 것이다. 생명-유전 공학의 발달로 인간의 생명은 획기적으로 연장되고, 각종 기술의 도움으로 일상생활의 편리함이 최고 수준에 도달할 것이라 주장한다.

이런 기술-유토피아적인 입장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제러미 리프킨이다. 그는 ‘한계비용제로 사회’에서 매우 독특한 관점을 제시한다. 그는 현재 3차 산업혁명이 진행 중이라 주장하며, 주로 에너지(동력)의 생산과 소비 방식으로 산업혁명의 시기를 구분한다. 1차 산업혁명이 석탄-증기기관/2차 산업혁명 석유-전기동력/3차 산업혁명은 재생에너지 중심이다. 그는 새로운 에너지(동력)와 혁신 기술이 대자본 중심의 자본주의적 경제체제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앞으로 중심이 될 새로운 에너지인 재생에너지(태양열과 풍력, 지열 등)의 경우 개인 또는 소규모 공동체에 의한 생산과 소비가 일반화될 것으로 예상한다. 또한 P2P-사물인터넷-3D프린팅 기술이 발전하면서 거대 공장이 아니라, 소비자가 직접 개별 생산자가 될 것이며(프로슈머), 온라인 플랫폼-스마트 그리드를 통해 공여자와 수요자의 개별적 연결망이 구축되면서 유통 부문에서도 거대 기업의 입지는 좁아질 것이라 주장한다. 또한 디지털 기술은 희소성의 원칙에 지배를 받지 않고 한계비용이 제로로 수렴되기 때문에 이윤을 위한 생산체계인 자본주의와 어울리지 않는다.

새로운 에너지, 새로운 혁신 기술들 그리고 지식-정보재의 특성은 모두 거대 기업 중심의 이윤생산 체계인 자본주의와는 대립적이며 새로운 공유경제의 발전을 촉진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술의 성격변화가 새로운 경제체제 도래의 필요조건은 될 수 있지만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 사회체제나 경제체제는 결코 기술변화의 특성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경제체제의 변화를 추동하는 것은 서로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계급간의 투쟁이다. 자본은 새로운 기술변화를 끊임없이 자신의 힘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전유하려 할 것이다. 반면에서 노동계급은 새로운 기술변화의 흐름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활용하려 할 것이다. 이런 상반된 힘의 충돌의 결과가 미래사회의 윤곽을 결정지을 것이다. 지금까지 새로운 기술혁신의 결과는 공유 경제의 탄생보다는 자본의 독점적인 힘의 강화로 귀결되는 것처럼 보인다. 온라인 플랫폼은 사용자의 집중과 정보의 집적을 초래하여 분산보다는 독점효과를 가져온다.

 

셋째로는 테크노피아와 정반대의 담론으로서 디스테크노피아적인 담론이 존재한다. 이 입장은 새로운 혁신 기술이 지니고 있는 파괴적인 위험성을 강조한다. 기계가 인간의 육체적 능력뿐만(인간보다 육체적으로 뛰어난 능력을 지닌 동물들은 많다. 하지만 인간보다 더 뛰어난 지적 능력을 지닌 동물은 없다. 즉 인간의 고유한 탁월성은 육체적 능력이 아니라 지적 능력의 영역에 존재한다.) 아니라 지적인 능력까지 대체하면서 인간은 자신의 고유한 영역을 기계에게 침범당하며,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의미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내몰린다고 주장한다. 특히 인간의 지적 영역을 침범한 기계가 초(강한)인공지능으로 발달하여(특이점) 인간이 기계의 지배를 받거나 기계에 의해 인류가 멸망당할 것을 우려한다. (한국에서는 ‘알파고 충격’이라 불릴 수 있는 사회적 현상이 발생하였다. 알파고는 인공지능에 대한 경이로움과 동시에 두려움을 불러일으켰으며, 인간 vs 기계의 대립구도가 부각되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까지 기계는 인간의 수고로움을 덜어주고 인간 노동의 효율성을 증대시키는 수단으로 인식되었지만, 알파고는 기계에 대한 인간의 우위성을 보장해주는 지적 능력에서 인간을 능가함으로써 인간과 기계가 경쟁 구도에 들어섰다는 막연한 인식을 확산시켰다. 하지만 뒤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이는 매우 잘못된 인식이다.) 또한 유전공학, 디지털 기술의 생체 이식 등에 의해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사이보그) 인간의 정체성과 생명윤리에 혼란이 일어나고, 인간을 조작할 수 있는(신체는 물론 기억 등 정신까지) 가능성이 매우 빠르게 커질 것이다. 가상-증강 현실은 인간의 감각적 세계마저 왜곡하면서 가상세계와 실제세계의 혼란과 뒤섞임 등의 현상을 확대할 것이고, 이런 가운데 인간의 윤리성과 정체성에 커다란 혼돈을 초할 것이다. 등등.

 

넷째로는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사회경제적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담론이 존재한다. 디지털 산업의 특성상 승자독식의 성격이 강하고, 4차 산업혁명의 기술적 특성이 새로운 일자리의 창출보다는 자동화로 인한 인간 노동의 대체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극단적인 사회 양극화가 진행되고 실업자가 양산될 것이라 예상한다. 또한 저숙련-중숙련은 물론 일부 고숙련-지적 노동까지 기계가 대체하면서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을 소유한 전문 인력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간의 기술-지식 격차가 확대될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매우 불안정한 플랫폼 노동자로 전락하거나 노동에서 아예 배제된 잉여 인간이 되는 등 심각한 사회경제적 문제가 나타날 것이라 주장한다. 결국 로봇과 인공지능, 온라인 플랫폼 등 생산수단을 독점한 소수의 자본가와 그들과 결탁한 테크노크라트 등이 모든 사회적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다수의 일반인들은 모든 권리로부터 배제된 벌거벗은 자가 될 것이다. (이런 입장에서 기본소득, 로봇세, 노동시간 단축 등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한편, 부의 편중과 노동의 축소는 세계 자본주의의 장기 침체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으며(수요와 시장의 부족, 과잉경쟁, 고정자본 중심의 생산-자본의 유기적 구성도의 초고도화-으로 인한 이윤 감소 등), 그 고통은 노동자 등 사회의 중하층 계급들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높다. 극단적인 형태는 신노예제 사회의 등장을 예견하기도 한다. 이윤과 상품(교환가치)생산을 위한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무너지고, 기존의 자본가들이 노예(현대 사회에서는 로봇과 인공지능) 소유자들로 전환되면서 사용가치 생산과 축적을 위한 새로운 경제체제가 도래할 것이다. 사용가치의 생산에서 배제된 대중들은 결국 노예주의 온정에 의존하여 생존을 유지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마지막은 ‘4차 산업혁명은 없다’라는 입장이 존재한다. 자본주의에서 기술혁신은 항상 존재하는 것이고, 산업혁명이라 불리기 위해서는 기술혁신의 존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생산성의 비약적 성장, 생산과 소비의 폭발적 증가, 산업과 사회의 심대한 변화가 수반되어야 하는데, 지금의 기술혁신은 산업혁명에 미달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진행 중인 디지털 혁명은 본격적인 산업혁명이라기보다는 산업혁명에 후속하는 교통-통신 혁명에 더 가까우며(상품유통 속도의 증가, 지식-기술의 소통의 양과 속도의 증가 등) 새로운 첨단기술의 효과도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손빨래에서 세탁기로의 전환(2차 산업혁명)은 혁명적 변화이지만, 세탁기에 인공지능을 탑재하는 것은 그리 혁명적인 변화는 아니며, 단지 편리성이나 효율성이 약간 상승한 것뿐이다. 실제로 새로운 디지털 기술혁신에도 불구하고 노동생산성의 상승은 매우 미미한 것으로 관찰된다.

 

슈밥의 4차 산업혁명 담론

 

 현재 전세계적으로 가장 표준적인 4차 산업혁명 담론은 세계경제포럼 회장 클라우스 슈밥의 담론이다. 그는 2016년 다보스 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에 대해 개괄적으로 정리한 팜플릿을 발표하였으며, 그 이후 슈밥의 담론이 표준담론으로 기능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설명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지금까지의 산업혁명을 크게 4단계로 분류한다.

 

- 1차 산업혁명 : 기계(공장제 기계공업)에 의한 생산

- 2차 산업혁명 : 전기와 생산조립 라인으로 대량 생산

- 3차 산업혁명 : 반도체, PC, 인터넷 등의 디지털 혁명

- 4차 산업혁명 : 유비쿼터스 모바일 인터넷, 다양한 센서, 인공지능과 기계학습, 로봇공학

 

사물인터넷, 디지털- 물리학- 생물학의 상호 교류

 

슈밥은 4차 산업혁명의 경우 기술혁신의 속도가 선형적 속도가 아니라 기하급수적 속도로 전개되고 있으며(대표적으로 무어의 법칙), 디지털 혁명을 기반으로 다양한 과학기술의 융합 현상이 전개되고 사회 전체 시스템의 변화를 수반하기 때문에 4차 산업혁명이 앞선 1~3차 산업혁명보다 훨씬 커다란 변화를 수반할 것이라 주장한다. 한마디로 “이번만은 다르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주장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1차 산업혁명에 대해서는 폭넓은 동의가 존재한다. 이전까지의 생산 활동이 주로 인간의 힘과 간단한 도구에 의존하는 것이었다면 1차 산업혁명에 의해 동력과 기계를 연결하는 새로운 생산형태가 등장하였으며, 이에 기초하여 노동자들을 대규모 공장에 집결시켜 생산하는 공장제 기계공업이 확립되었다. 또한 노동하는 사람들이 생산 수단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하는 노동자가 되고 자본소유자들이 이를 구매하여 상품을 생산하는 자본주의적 경제체제가 확립되었다. 즉 1차 산업혁명은 단순히 기술상의 혁신뿐만 아니라 생산방식과 경제체제 전반의 변화를 불러왔다.

이후 자본주의 기업들은 경쟁에서 승리하고 좀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즉 초과이윤 획득(동종의 다른 기업에 비해 뛰어난 기술을 가짐으로써 취할 수 있는 특별 이윤)과 노동자들의 저항을 약화시키기 위해(노동자에게 체화되어 있는 숙련을 기계로 이전하여 노동의존을 약화시키기 위해) 기술혁신에 매진하였다. 즉 기술혁신은 자본주의의 특정 시기에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일상적인 특징이다. 따라서 일상적으로 지속되는 기술혁신 중에 어떤 부분을 떼어내어 새로운 버전의 산업혁명이라 일컫는 것은 항상 논란이 따를 수밖에 없다.

 

2차 산업혁명은 에너지원으로 석유, 범용적 동력으로서 전기, 포디즘-테일러리즘으로 일컬어지는 생산조립라인의 도입, 운송 수단으로 내연기관인 자동차의 일반화 등을 특징으로 하는 대량생산 체계이다. 전기 동력의 사용은 증기기관과 다르게 간단한 전선으로 기계에 직접 동력을 공급함으로써 매우 효율적인 생산조립라인의 설치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하였으며, 일상생활에서도 모든 공간 특히 가정 내에 손쉽게 동력을 공급할 수 있게 되어 생활혁명을 불러왔다(전구,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제품의 일반화). 또한 석유를 사용하는 내연기관을 자동차-비행기에 장착하면서 철도가 닿을 수 없는 곳까지 상품과 사람들을 운반하면서 자본주의 시장을 확대하고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최대한 제거하는 시공간의 압축 현상이 발생하였다. 그리고 과학과 공학이 생산 과정에 적용되는 융합현상이 강화되었다.

 

1,2차 산업혁명은 사후적으로 명명된 역사적 사실이다. 이미 완결된 변화를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한 결과이다. 하지만 디지털 혁명을 기반으로 하는 기술혁신은 현재 진행형이고 따라서 산업혁명이라 명명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사실 우리는 3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을 거의 듣지 못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4차 산업혁명 운운하니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실제로 슈밥이 규정한 3차-4차 산업혁명은 디지털 기술을 베이스로 하는 단절보다는 연속성에 기반한 기술체계이다. 구태여 3차와 4차로 구분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독일에서 인더스트리 4.0이라는 명칭을 이미 사용하고 있지만, 이는 독일 제조업에서 자동화를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산업 전략에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개념이다.

슈밥이 3차와 4차 산업혁명을 구분하고 특히 4차 산업혁명을 이전 산업혁명과 다른 전혀 새로운 형태의 산업혁명으로 규정하는 이유는 다분히 자본주의의 기술적-사회적 혁신 능력의 의미를 과장하고 자본주의 체제의 미래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 또는 소망이 숨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슈밥이 3차 산업혁명이라 명명한 시기는 자본주의 경제의 비약적 성장기가 아니라 장기침체와 구조적 위기의 시기였다. 따라서 슈밥이 같은 기술적 베이스를 가지고 있음에도 구태여 3차 산업혁명과의 단절성을 강조하는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함으로써 새로운 디지털 기술 혁신이 자본주의의 낙관적인 미래를 가져올 것이라는 희망을 설파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또한 4차 산업혁명의 위력을 강조함으로써 모든 사회와 국가가 4차 산업혁명의 기술 혁신에 적응하는 것을 지상의 과제로 제시하여 자본의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3. 디지털 기술 혁명의 특징

 

20세기 후반기부터 등장한 새로운 기술혁신은 디지털 기술을 토대로 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진행 중에 있는 기술 혁신을 디지털 혁명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은 어떤 정보나 데이터를 아날로그처럼 양의 연속적인 흐름으로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1과 0이라는 2진수와 같은 유한 자리수로 나타낸다. 이런 디지털 신호체계는 기계 언어로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았으며(전기적 신호의 on-off 시스템 등), 연산이나 정보처리에서 기계(즉 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따라서 디지털 기술은 일정한 공간을 점유하는 물질(원자)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기술이 아니라 지식이나 정보, 데이터 등을 대상으로 한다. 이전의 기계가 주로 육체노동의 대상인 물리적 자료들을 가공하는 데 있어서 인간의 육체적 힘의 한계(힘의 강도와 속도와 정교함의 한계)를 극복해주는 역할을 했다면, 컴퓨터나 디지털 기기는 인간의 지적 노동의 대상인 지식-정보-데이터 등을 가공하는데 필요한 인간의 지각적-지적 능력을 보완하거나 대체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가장 단순한 디지털 기기는 계산기이다. 계산기는 인간의 머리보다 계산의 속도와 정확성에서 훨씬 뛰어나다.)

그런데 지식-정보-데이터 등을 대상으로 하는 디지털 정보 산업은 물리적 자료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전의 제조업과 경제법칙의 양상이 사뭇 다르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물리적 상품은 누군가가 소비하면 다른 누군가가 사용할 수 없는 희소성의 원칙의 지배를 받는다면, 지식과 정보는 누군가의 소비에 의해 다른 사람들의 사용이 방해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희소성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오히려 지식과 정보를 공동으로 사용하면서 새로운 지식과 정보가 추가되는 확장성의 지배를 받는다.

또한 제품을 개발하거나(주로 소프트웨어의 형태를 갖는다.) 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초기 고정비용도 제조업에 비하여 크지 않고, 특히 초기 고정 비용 이외에 추가 생산에 필요한 한계비용이 매우 적거나 제로에 수렴하는 경향을 보인다. (수확체증의 법칙/한계비용제로)

초기의 디지털 혁명은 PC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다. 새로운 디지털 기술은 주로 인간의 정신노동 중에 사무관리 업무의 효율성 증대(각종 사무업무의 효율성을 높여주는 프로그램이 내장된 개인 컴퓨터의 사용으로 인한 각종 데이터 처리와 분류, 문서의 생산과 보관 등에서 효율성 증대)/ 지식과 정보의 생산, 유통, 검색 속도의 증대와 편리성 확대/ 다양한 디지털 컨텐츠의 생산과 복제 기술의 비약적 발달/ 유통 분야에서의 인터넷 기반 플랫폼의 활용에 의한 소비자의 선택 폭의 확대와 유통 속도의 증대/ 인터넷을 통한 글로벌 금융-생산 연결망의 속도와 규모의 확대 등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아직 디지털 기술은 아직 산업 전반에 걸쳐 범용화의 수준에 이르지 못했고, 특히 실물세계와 지식-정보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가 매우 제한되어 있어 경제적 파급력이 미약했다.

 

그러면 슈밥이 명명한 4차 산업혁명이라 칭한 새로운 기술혁신의 특징은 무엇일까?

우선, 디지털-정보 기술의 발달로 디지털 기술과 물질(원자)이나 생명(세포)을 다루는 실물 산업과의 융합이 확대되고 있다. 즉 기존의 디지털 기술들을 제1‧2차 산업혁명의 결과물인 제조업과 유통업에 적용해 생산성 향상을 추구하고 있으며 나아가 생명(농업과 의학 등)산업 분야로도 디지털 기술의 접목이 확장되고 있다. 이를 통해 오프라인과 온라인 연결이 강화되고 확대된다(O2O).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인간의 노동은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이 결합되어 있다. 이전의 생산과정은 기계가 인간의 육체노동의 많은 부분들을 대체하였다면, 이제는 인간의 육체노동은 물론 정신노동의 일부까지 기계(디지털 기기)가 대체하면서, 육체노동을 대신하는 일반기계와 정신노동을 대신하는 디지털 기기가 결합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정신노동의 경우 인간이 노동과정을 주도하면서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에 육체노동은 기계가 주도하는 흐름에 인간의 노동이 보조적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둘째로, 디지털 기술의 확장으로 자동화의 경향성이 강화되고 있다. 이전에는 주로 사무공간에서 업무 처리를 위해 컴퓨터를 활용하는 정도였다면, 이제는 생산현장에서 로봇, 기계, 제품(원료포함), 공간 등에도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센서와 태그 등이 부착되어 사물 간의 상호 연결이 확대되고, 중앙정보처리 장치와 각 사물 간 연결성이 강화되어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하면서 사물 간 교통에 의한 자동생산 시스템(자동제어 시스템)이 발전하고 있다. (사이버물리시스템) 최근에는 서비스업에서도 인간의 업무를 로봇이나 디지털 기기(자동주문기기 등)로 바꾸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이는 새로운 현상이라기보다는 자본주의의 고유한 기술혁신의 특징인 노동절약적이고 자본소비적인 편향적 방식이 더욱 강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셋째로, 모든 산업 분야에서 디지털 기술이 적용되면서 최근에는 육체노동을 대체하는 기술과 기계의 혁신보다는 인간의 정신노동을 보완-대체하는 지식-정보-데이터 처리 능력의 혁신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생산력의 중핵이 지식-정보 분야로 이동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지나치게 과장하는 최근의 흐름을 경계해야 한다. 지식과 정보를 처리하는 디지털 기술의 비중이 증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각종 상품을 제작하는 공작기계의 성능이나 생산과정 전체를 효율적으로 조직하고 운영할 수 있는 현장의 노하우가 중요하다. 독일이나 일본이 높은 생산성을 유지하는 것은 디지털 기술이 아니라 후자의 기술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또한 물질재와 지식-정보재의 경계가 약화되고 있다. 예를 들어 정통적으로 물질재로 인식하고 있는 기계나 자동차도 점차 지식-정보재의 성격을 띠게 된다. 기계 장치의 경우, 기계의 물리적 제작에 필요한 기술 못지않게 기계에 장착할 소프트웨어가 더욱 중요해지는 경향이 있다. 로봇의 경우도 로봇의 하드웨어 제작만큼 로봇에 장착할 소프트웨어 개발이 중요하다. 자율주행자동차의 경우도 핵심은 자동차의 물리적 기계장치가 아니라 자동차의 주행을 제어하는 소프트웨어이다. 따라서 점차 대부분의 생산수단이나 제품이 물질재의 성격과 지식-정보재의 성격이 혼합되는 양상을 보이게 된다.

넷째로, 지식-정보-데이터가 유통되고 집중되는 공간 즉 온라인 플랫폼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PC보급을 넘어 유비쿼터스 모바일 기기인 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되면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지식-정보-데이터를 소비하는 동시에 생산하는 주체가 되고 있다. 그런데 정보의 흐름은 리프킨의 예상처럼 P2P를 통해 수평적 네트워크의 망을 따라 유통되는 흐름도 있지만, 오히려 특정한 온라인 플랫폼을 경유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일정한 계기로 특정한 플랫폼에 정보와 데이터가 집중되면 더 많은 유저들이 몰려드는 플랫폼 독점 효과가 발생한다. 이에 따라 거대 플랫폼에 지식-정보-데이터 등이 집적되면서 플랫폼 소유자의 권력이 막강해지고 있다. 최근에 거대 기업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대부분의 회사들은 플랫폼 독점 효과를 누리는 경우가 많다. 플랫폼이 공유지의 성격이 아니라 독점지대의 성격을 띠게 됨으로써 자본의 독점 이상으로 지식-정보-데이터의 독점을 통한 사회적 불평등의 현상이 강화되고 있다.

 

4. 4차 산업혁명은 자본주의의 구세인주인가?

 

자본주의 경제 성장과 관련하여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도식은 아래와 같을 것이다.

기술의 혁신 → 생산성 향상 → 자본의 이윤 증가 → 경제 성장.

하지만 현실 사회에서는 이런 단순한 도식이 쉽게 작동하지 않는다.

초기 디지털 혁명(PC와 IT를 기반으로 하는 3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는 동안 자본의 수익성 증가는커녕 노동 생산성 향상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미국은 1970년대 노동생산성이 정체된 이후 1990년대 ICT 장치에 대규모 투자가 이루어진 90년대 중반에 노동생산성이 2%대로 증가하였다가 2005년 이후 최근 10년간 연간 1%의 노동생산성 증가만 이루어졌다(백악관 보고서). 또한 이 기간 동안 일어난 2008년 미국발 세계금융공황 이후 세계 경제는 장기 침체에 빠져들고 있다.

3차 산업혁명의 과정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기업들은 정보통신 관련 기업들이다. 1990년대부터 성장한 마이크로소프트, 2010년을 전후하여 성장한 애플,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은 2016년 5월 기준 시장가치가 2조 411억 달러에 이른다.

그런데 정보통신 기업의 성장의 경제적 파급력은 이전 기업들에 비해 매우 약하다. 예를 들어 구글은 기업의 시장가치가 430조원인데, 종사자는 고작 5만 4천 명이고, 설비는 자산의 20%밖에 되지 않는다. 세계 1위 자동차기업 도요타는 기업 가치가 340조원이며, 종사자는 32만명, 자산의 절반 정도가 설비이다. 구글은 시장가치에서 도요타보다 크지만, 고용이나 다른 기업에 대한 연계효과는 도요타보다 한참 낮다.

3•4차 산업혁명의 총아인 디지털 기술 중심의 정보통신 기업들은 전후방 효과가 매우 낮은 특성을 지니고 있다. 자동차 산업은 그 자체로 엄청난 설비투자의 확대/ 철강, 고무, 유리, 전기기기 등 각종 소재 부품 산업의 발전/ 석유 등 에너지 산업/ 도로 확충 등 사회인프라 확장을 위한 건설업/ 보험업, 자동차 수리업 등 굉장한 파급효과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 정보통신 기업들이 다른 분야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미미하다.

미국에서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정보통신기업들의 수익률은 다른 분야의 기업의 수익률보다 훨씬 높게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이들 기업들이 과연 높은 수익률만큼 사회적 부를 창출하는지는 의심스럽다. 특히 서비스 산업이 성격이 강한 정보통신기업의 경우 더욱 그렇다. 세계 최대의 검색엔진인 구글은 어떤 방식으로 사회적 부의 창출에 기여할까? 구글 검색을 통해 얻은 지식과 정보가 과연 사람들의 노동과정에서 생산성 향상에 기여하고 있을까? 물론 자료를 찾거나 특정한 정보를 찾을 때 구글 검색이 시간을 절약해주고 풍성한 정보를 제공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다양한 검색 엔진은 노동과정에서의 생산성 증가보다는 일상생활에서의 호기심 충족이나 소비나 여가 생활에서의 유용한 정보를 찾기 위해 더 많이 사용된다.

마찬가지로 페이스북 등 SNS는 자신이 원하는 다양한 정보나 기사를 쉽게 접하고, 친구들이나 주변사람들과 소식을 공유하고 정보를 전달할 수는 있다는 측면에서는 많은 유용성을 지니고 있지만, 역시 페이스북이 사회적 부를 창출하는데 커다란 기여를 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다면 구글이나 페이스북은 어떤 식으로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을까? 현재까지 구글이나 페이스북은 광고 수입이 전체 수익의 80~90% 정도에 이른다. 많은 사람들이 구글이나 페이스북을 이용한다는 점 때문에 높은 광고 수입을 누리고 있으며, 때로는 고객들의 정보를 가공하여 팔아서 수익을 올리고 있기도 하다. 즉 이들은 자신들이 직접 부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기업들이 창출한 이윤을 자신들의 광대한 네트워크와 플랫폼의 이점을 활용하여 일정 부분 수취하는 것이다(마치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명동의 건물주들이 높은 지대를 수취하는 것처럼). 즉 지대 수취의 성격을 다분히 가지고 있다.

아마존과 최근에 뜨고 있는 에어비앤비, 우버, 알리바바 등 유통 분야의 플랫폼 기업들(한국의 알라딘, 카카오 택시, 배달기업 등)은 판매자와 구매자를 연결해주면서 수취하는 수수료가 주 수입원이다. 이 역시 다른 기업의 이윤을 이전받는 상업 이윤의 성격을 띠고 있다.

또한 MS 등의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정보통신 기업들도 지적재산권이나 특허권 등을 활용하여 독점적인 특별 이윤을 누리고 있다. 이는 지식-정보재의 특성인 수확체증과 낮은 한계비용의 법칙을 인위적인 독점 제도를 통해 거스르는 것이다. 즉 이들 기업들은 사회적 생산성의 향상의 기회(지식-정보의 자유로운 사용)를 억누르는 대가로 높은 수익을 얻는 것이다.

 

이렇듯 디지털 기술 혁신들이 노동생산성과 자본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사회적 부를 확대하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는 객관적인 증거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미래의 기술혁신이 자본주의의 장기 침체를 구해줄 구세주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물론 최근에 디지털 정보통신 기업들이 사업의 다각화를 시도하고 있다. 독점적 플랫폼 운영 중심에서 인공지능이나 자율자동차 개발, 로봇 제작 등 좀 더 생산적 분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주창자들은 이런 현상들을 거론하면서 이전의 디지털 기술과 다르게 앞으로는 실물산업과의 결합이 강화되기 때문에, 기술혁신이 자본주의 경제의 활성화로 귀결될 것이라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로봇 등을 이용한 공장자동화가 꽤 많이 진척되고 있지만 자본의 수익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는 보고는 접하기 어렵다. 자율주행자동차의 생산이 2차 산업혁명 당시 자동차 산업이 수행했던 전체 산업에서의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정리해보면, 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디지털 기술혁신이 자본의 수익률(이윤율) 상승에 커다란 효과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첫째, 기술혁신이 이루진다고 하여 반드시 자본의 수익률 향상에 기여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최근의 디지털 중심의 기술혁신은 노동절약-자본소비의 편향성이 너무 강하여 고정자본의 규모는 커지지만 잉여가치의 증식은 이에 미치지 못해 오히려 수익률을 하락시키는 경향이 있다.(물론 최초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한 기업은 일정기간 초과이윤을 누리겠지만)

둘째, 디지털 기술 혁신이 노동생산성-자본생산성 향상에 기여하는 바가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 비해 크지 않다. 교육의 예를 들면, 처음 학교를 설립하여 대중교육을 시작하면 기술교육과 지식교육의 성과 즉 유능한 노동력 양성의 성과가 매우 크다. 하지만 교수-학습 과정에서 디지털 기기나 다양한 교육 소프트웨어를 이용한다고 하여 학생들의 기술과 지식 습득의 효율성에 비약적 증대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디지털 기술은 외형적으로 보이는 화려함(각종 기기와 자료를 사용하는 현란한 교수 학습) 때문에 그 생산성의 효과가 과장되는 경향이 있다.

셋째, 최근의 기술혁신은 노동절약적인 특성이 너무 강하고,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정보통신기업들은 전후방 파급 효과가 미약하다. 1~2차 산업혁명 때는 기계도입으로 절약되는 노동력을 새로운 분야의 일자리 창출로 충분히 흡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의 기술혁신은 노동력은 급격하게 감축하는 반면 전후방 효과는 미비하기 때문에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 쉽지 않다. 결국 항상적인 고용불안을 야기하고 과잉노동력을 양산하는 경향이 존재한다. 결국 새로운 기술혁신이 경제 전체의 활력을 제고하기보다는 오히려 불안정성을 증가시키는 경향이 존재한다.

넷째, 디지털 베이스의 정보통신기업 중에 다수가 아직은 생산성의 향상을 통한 잉여가치의 증식이 아니라 지대적-상업적 이윤에 의존하고 있다. 대부분 플랫폼 독점 효과를 통한 광고비나 거래 수수료 등이 주 수입원이다. 이는 금융자본과 마찬가지로 일정한 기생성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금융자본의 높은 수익률이 금융자본의 생산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정보통신기업의 높은 수익률이 이들 기업의 높은 생산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1990년대 미국은 신경제라는 이름으로 디지털 기술 혁신에 열광하였다. 하지만 혁신의 외형적 화려함에 비해 내실은 빈약하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이는 2000~1 버블닷컴의 붕괴로 귀결되었다. 지금의 디지털 기술 혁신이 이전과 다르게 사회 전체의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다는 어떤 새로운 증거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최근에 인공지능이 생산력의 비약적 성장을 가져올 듯이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마치 버블닷컴 시대에 PC와 IT가 지식-정보 혁명을 통해 생산력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킬 것이라는 기대와 매우 흡사하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적 노동의 일부분을 보완할 것은 분명하지만 이것이 사회적 생산성과 자본 수익성의 비약적 증대를 가져올 것이라 주장하는 것은 근거가 부족하다.)

 

5. 디지털 혁명을 중심으로 하는 기술혁신의 문제

 

새로운 기술혁신이 가져다 줄 장밋빛 미래에 취하기보다는 이들 기술혁신이 가져올 변화와 문제에 대한 진단이 필요하다. 새로운 기술 혁신은 현재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고, 사회적 불평등과 양극화를 더욱 극단화할 위험이 존재한다.

 

첫째, 자본소유의 독점 심화와 더불어 지식-기술 격차의 확대

리프킨의 예상과 다르게 공유경제(최근에 유행하는 공유경제는 리프킨의 의미와 다르다.)가 활성화되기 보다는 오히려 자본소유의 독점화가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생산과정에서 노동이 더욱 축소-배제되면서 자본과 첨단기술 소유자들의 부의 독점 현상이 강화될 것이다. 또한 첨단기술이 소수 전문가의 수중에 집중되고 자동화 경향이 맞물리면, 중간 수준 기술자들의 입지가 좁아지면서 기술격차가 더욱 커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첨단 과학-공학 기술을 습득하여 인공지능이나 로봇 등을 설계하는 소수의 사람들과 매우 단순한 반복노동에 종사하는 탈숙련 노동자들과 노동으로부터 아예 배제된 실업자들 간의 기술과 지식의 격차는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둘째, 사회적 필요노동의 감소로 인한 실업이나 불안정 고용의 증가

최근의 기술혁신은 노동절약과 자본소비적 편향이 더욱 강하다. 또한 그 자체의 고용창출 효과도 적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전후방 효과도 미약하다. 따라서 노동 과잉의 상태가 일상화될 것이다. 사회적 생산력을 노동계급이 통제하지 못하는 한 노동자들은 항상 과잉(잉여)의 존재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 첨단 기술의 발달과 강력한 자동화 경향은 두 가지 극한을 예상하게 한다.

첫째로 신노예제의 도래를 예상하는 입장이 존재한다. 제정 로마 시대와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 노예는 물론 오늘날에는 인간이 아니라 로봇과 기계이다. 로마 시민은 일반 대중들이며, 노예소유주였던 로마의 귀족들은 오늘날은 자본가와 첨단과학자들의 연합세력일 것이다. 로마가 정복사업에 성공하여 대량의 노예를 유입하면서 일반 시민들(대부분 농민)은 생산의 영역으로부터 배제되었다. 노예경영과 정복사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귀족들은 생산으로부터 배제된 로마 시민들에게 빵과 서커스를 제공하면서 그들의 불만을 무마하였다. 신노예제는 로봇과 인공지능 등 첨단 생산수단(노예)을 독점적으로 소유한 자본가와 생산으로부터 배제된 다수의 시민들의 존재를 예상한다.

둘째로 리프킨류의 정반대의 극한이 존재한다. 한계비용 제로로 수렴되는 과학기술의 발달에 의한 사회적 부의 빠른 팽창, 자동화로 인한 고역으로서의 노동의 종말, 사회적 부의 평등한 향유, 여유로운 대중들에 의한 민주정치-공동체적 사회활동의 활성화. 등등

물론 이 두 극한이 빠른 시일 내에 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단지 이런 경향성은 계속 강화될 것이고 시간이 흐르면서 이에 대한 대응이 점차 현실적 과제로 부각될 것이다.

 

셋째, 플랫폼 노동 - 긱노동 등 불안정 노동의 증가

강력한 자동화의 경향성은 상시 고용 노동자의 필요로 더욱 감축시킨다. 또한 디지털 플랫폼 기술의 발전은 필요할 때만 노동자들을 고용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을 제공할 것이다. 이에 따라 플랫폼-긱노동자의 비중이 계속 증대할 것이다. 또한 디지털 연결망의 발달은 자본에게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제거하였다. 자본은 전 세계에서 가장 값싼 노동력을 찾기 위한 강력한 유동성을 확보하였다. 자국의 노동자뿐만 아니라 전 세계 노동자와 경쟁해야 하는 노동자들의 처지는 더욱 열악해지고 있다.

 

위의 세 가지 요소의 결합에 의한 사회적 불평등 심화, 부와 권력과 기술-지식의 편중과 양극화 현상이 더욱 강화될 것이다. 또한 디지털 문화 확산에 따른 인간의 정체성-윤리성의 혼란, 정보인권의 침해, 디지털 중독증(특히 유아와 청소년에게는 발달 지체), 인공지능-전투로봇 등 위험성이 증가하는 문화적 문제도 심각해질 가능성이 높다.

 

이 문제들의 중심에는 결국 자본과 기술을 누가 소유하고 통제할 것인가의 문제가 놓여 있다.

자본의 이윤추구의 족쇄에 갇혀 있는 생산력(특히 지적 재산권과 특허권에 의해 봉인되어 있는 지식과 기술)을 해방시켜야 한다. 자본-지식-기술을 인류 전체의 행복과 지속가능한 생태를 만드는데 사용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노동자들의 연합체가 경제(특히 생산과정), 사회(특히 다양한 연합체) 그리고 국가(새로운 민주주의를 통한)를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과도기 과제로서 기본소득제, 로봇세, 임금감축 없는 노동시간 단축 등도 신중히 검토되어야 하며, 노동자의 세계 연대 문제도 고민되어야 한다.

 

우리는 자본이 주도하는 기술혁신의 과정과 그것이 경제와 사회 그리고 교육에 미칠 영향을 면밀하게 분석해야 한다. 또한 새로운 기술혁신에 대한 적응 문제로만 좁혀진 사회적 담론들을 비판하고, 이미 새로운 기술혁신들이 초래하고 있는 부정적인 사회적 현상들을 폭로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담론으로 표상되고 있는 디지털 기술 혁신은 현재의 사회 문제와도 긴밀하게 연동되었다. 따라서 미래의 기술 혁신 문제는 현재의 모순을 지양하는 과정 속에서 사유되어야 한다. 자본주의의 계급적대의 현실 밖에 별도의 중립적인 기술문제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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