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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교육] 61호 (2016.07.05. 발간)


[담론과 문화] 

타라의 문화비평

'마을' 전성시대


타라 - 문화연구분과





     곳곳에 마을이 대세다. 마을공동체, 마을미디어, 마을학교, 마을기업까지 등장하면서 마을을 수식어로 한 온갖 행사가 한창이다. 전국 각지의 마을사람들이 직접 출연하고 자체 제작한다는 전국마을영화제에서부터 10년 이상 이어져온 양평군 서종사람들의 우리 마을 음악회로컬푸드 축제’, 그리고 다양한 골목 축제까지, 그야말로 2010년대 한국사회는 마을의 전성기이다

     그런데 왜 하필 마을인가? ‘동네라든가 지역사회대신 마을이 번성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지 않을까? 전북 진안마을에서 활동하는 구자인은 그 유래를 일본의 주민참여형 도시계획인 마치즈꾸리에서 찾기도 한다. 1990년대 초에 마치즈꾸리를 마을만들기로 번역하여 사용해왔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책으로서 마을만들기는 지방자치선거가 시작되고 주민자치 생활운동이 일어나던 1992년경 권위주의형 도시계획에 대한 대안으로 도입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도 이미 1970년대에 허병섭목사의 밀알공동체를 비롯하여 복음자리마을, 활빈교회의 두레마을 등 마을공동체 운동의 역사가 있었다. 그리고 1980년대와 1990년대의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 등 사회운동 내부에서 우리의 일상의 문제가 녹아있는 삶터가 중요한 생활의제로 등장하며 생활공동체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된다. 이러한 흐름이 공동육아와 생활협동조합 등 지역에 밀착된 공동체 운동이다.

     마을과 동네는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동네동내(洞內)’에서 기원한 말로 자기가 사는 집 근처를 말하는 데 비해 마을은 주로 시골에서, 여러 집이 한데 모여 사는 곳을 일컬으며 이웃에 놀러 다니는 일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동의 유래를 고려시대 문헌으로 거슬러 올라가 살피는 이들은 우물을 공유하던 공동체를 동네의 기원으로 삼기도 한다. 여하튼 마을에는 사람들 간의 동적인 친교의 움직임이 담겨 있다. 그리고, 마을은 예측불허의 재난과 위험사회에 내몰린 사람들에게 따뜻한 공동체라는 이미지로 다가온다.

     마을 담론은 신자유주의 광풍이 휩쓸고 간 전장에서 이끼처럼 피어나는가 싶더니 들꽃처럼 퍼지고 있다. 세계도시와 창조도시를 외치며 도시재생 프로젝트에 열을 올리던 이들도 이제는 마을의 역사를 수집한다고 너스레를 떨며 후미진 골목에까지 눈길을 던진다. 그리고 도심 속 오아시스로 불리며 이색적인 풍경을 선사하는 그곳을 사람들은 보물찾기하듯 무리지어 몰려다닌다. 획일적인 도시화에서 빗겨난 탓에 예전의 흔적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허름한 공간들이 주목받게 되고, 세련되게 변신한 개발업자들은 아날로그적 감성을 촉발할만한 핫한 공간들을 찾는다. 그것도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한의 이득을 얻어낼 만한 마을 구석구석의 작은 공간들을.

     요즈음 내게 마을은 좀 각별하다. 어찌 하다 보니 옮겨 간 학교에서 맡게 된 업무가 마을결합형학교이고, 학교 밖으로는 지역 활동가와 학부모들과 함께 마을학교 씨앗모임을 시작하게 되었다. 전자는 서울시교육청 사업이고, 후자는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의 공모사업이다. 마을공동체학교가 학교교육의 혁신을 위한 작은 실험이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서 시작한 일이지만, 여전히 프로그램 일변도의 사업 집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갈팡질팡하고 있다. 그나마 학교 밖 모임은 올망졸망학교라는 이름을 내걸고, 모인 사람들과 다른 마을 사례들을 듣고 우리 동네의 소소한 이야기도 나누며 마을방과후 학교도 구상하는 중이지만 말이다.

     마을 공동체에 대해선 상반된 평가가 존재한다. 긍정적인 논자들은 마을 공동체 운동을 초국적 자본의 획일화된 시장체계에 대한 대항마이자 신자유주의 도시화에 저항하는 해방적 기획으로 간주한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논자들은 마을 공동체 기획이 더욱 구조적이고 광범위한 신자유주의 정치기획의 일환일 수 있음을 지적하면서 푸코의 공동체를 통한 통치(government through community)' 개념을 원용하여 마을을 행정단위 안으로 포획함으로써 관리의 효율성을 달성하려는 전략이라고 비판한다.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의 주도면밀함은 마을주민들마저 기업가적 주체로 세워서 자발적인 노력을 경주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득 생각해보면 혁신학교도입 초기에도 활동가들 사이에 비슷한 논조의 상반된 주장들이 있었고, 혁신학교 효과가 주목받는 요즈음에도 논쟁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생성되고 있는 이 하이브리드적인 구성체 속에서 어떤 사회를 상상하며 가능성을 부여잡고 함께 갈 것인지에 대한 전략적인 고민과 실천이 아닐까? 이후의 글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관심을 갖게 된 두 마을에 관한 내 나름의 간략한 스케치이다.

 


성미산 마을 - 마을에서 놀다


     성미산마을은 마포구청 뒤에 있는 성미산을 둘러싸고 자리잡은 마을이다. 행정구역으로는 성산동, 망원동, 합정동, 연남동, 서교동을 망라한다. 이 마을의 시작은 1994년 공동 육아를 위해 뭉친 20여 가구의 이주민들에서 비롯된다. 민들레 홀씨처럼 날아든 이들은 국내 최초의 공동육아 협동조합을 만들고, 출자금을 모아 우리 어린이집’(1994)나르는 어린이집’(1995)을 만든다. 그리고 1999년에는 협동조합 형태로 방과후 교실도 연다.

     친환경적인 먹거리에 대한 고민은 2001년 생활협동조합을 만드는 것으로 이어졌고, 이를 통해 공동육아 조합원들만이 아니라 다양한 지역주민들과 관계를 맺게 된다. 게다가 서울시의 배수지 공사에 반대하여 근 2(2001.7~2003.10)에 걸쳐 끈덕지게 싸웠던 성미산 살리기 투쟁은 공동체의 결속력을 최고조로 고양시키는 계기가 된다. 애초 87명으로 시작되었던 마포두레생협은 가입자 수가 투쟁 직후 급속히 늘더니 현재 5000가구에 이르고 15억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성미산을 지키는 밤샘 농성 중에 5가구가 대안학교를 찾아 이사간다는 말을 듣게 된 이들을 중심으로 대안학교 설립을 구상하게 되고, 2년여의 준비 끝에 20049월 초중고과정을 아우르는 성미산학교를 개교한다. “살면서 필요한 것 만들자를 모토로 하여 하고 싶은 걸 하고, 함께 하고, 즐겁게 한다는 공동체의 지론은 마을 놀이터이자 마을회관인 성미산 마을극장과 마을학교 꿈터’, 마을극단 무말랭이’, 록밴드 아마밴드’, 마을합창단, 풍물패 등의 문화예술 동아리를 만들었고, 도로를 점유하고 마을축제를 벌이기에 이른다.

     말로만 듣던 이 마을을 내가 처음 가본 것은 2010년경이었다. 망원역에서 내려 망원시장을 둘러보고 마포 민중의 집을 거쳐 성미산마을과 성미산학교를 답사하는 일정이었다. 마을 초입에 있던 작은나무카페와 마을지도, 소극장 분위기의 마을극장이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최근에 또보자마을학교 탐방으로 다시 찾게 된 성미산마을은 여전히 주택가의 소소한 일상을 보여줬다. 그러나 대로변에 있던 되살림가게등이 마을 안쪽으로 밀려나 새로운 곳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으로 인한 탓인데, 주민들이 마을에 활력을 만들려고 시작한 활동들이 오히려 주민들의 공간을 뺏는 화근이 되어버리는 상황은 도시형 마을 공동체의 성장판을 닫는 난제이기도 하다. 좋은 뜻에서 시작한 일이 임대료를 올려 이 곳에 살고 있는 할머니를 쫓아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끔찍해요.” 최근에 청량리 일대 부흥주택에서 마을 만들기 활동을 하려다 포기한 청년들이 한 말이다. 그렇다면 그 대안은 무엇일까? 마을극장에서 열렸던 관련 포럼에서 Steve Clare는 공동체의 자산 소유와 공동체 기업의 성장을 그 답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마을에 새로이 들어서고 있는 공동주택 소행주는 이에 대한 실험으로 보인다. “소통이 있는 행복한 주택을 뜻하는 소행주는 4호까지 입주해있고, 현재 5호가 지어지고 있다. 자본의 49%는 외부에서, 51%는 마을에서 조성하고, 이사 구성의 60%는 마을 내 주주에게 할애하여 이익의 일부를 마을 사업에 환원한다. 몇 평씩 모아 공동의 공간을 만들고 이를 공유함으로써 작지만 넓게 쓰는 방법을 마련한 소행주가 개인의 주거문제를 공동의 협력으로 풀어내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성미산마을 공동체를 지탱해 온 힘은 무엇일까?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이 민주적인 소통 구조와 총유(總有) 성격의 마을자산이 형성되는 방식이 아닐까 싶다. 이들은 각종 회의에서 다수결이 아닌 합의제 토의 방식을 취한다. 모두가 합의에 이를 때까지 토론하는 끝장토론은 많은 시간과 번거로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의 의견을 존중하고 서로의 차이가 인정됨으로써 공동체가 와해되지 않는 최선의 의견을 도출해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들은 대의제 방식도 지양한다. 공동체의 대표나 운영진도 돌아가며 맡기방식에 따른다. 능력의 유무를 떠나 모두가 대표를 맡음으로써 대의제로 선출된 대표가 과도한 역할 행사로 그것이 권력으로 작용하는 것을 방지하고 오히려 구성원 모두가 십시일반으로 협력하고 단합하는 효과를 낳는 것이다. 이는 혁신학교의 교사회의 진행과 업무팀 구성 등 공동체 운영 방식과도 유사하다.

     친환경 반찬가게인 동네 부엌’, 마을카페 작은나무’, 동네식당 성미산밥상등은 모두 마을기업으로 조합원들이 십시일반으로 출자하고 품앗이로 일을 나누며 협동조합의 원리로 운영되고 있다. 그리고, 협동조합의 이익은 일자리 창출이나 마을 대소사에 필요한 자금으로 활용된다. 또한, 출자자들은 이익배당금을 받을 수 있고, 언제든지 조합을 탈퇴하여 출자금을 돌려받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유연하다. 이렇게 형성된 총유 방식의 마을자산은 마을공동체 활동의 토대가 됨으로써 공동체의 지속성을 보장한다.

     이 마을에도 갈등과 논쟁은 늘 있다. 초창기에 공동육아 어린이집의 분할이 그러했고, 정부 및 외부 단체들의 지원금을 받는 문제에서도 다양한 입장 차이들이 존재한다. 게다가 이미 만들어 놓은 마을에 최근에 이주해 온 새로운 세대들과의 문화 차이와 소통의 간극도 있다. 그러나 명분과 목표보다는 실제 생활의 필요와 욕구에 따라 움직여 온 사람들의 자발적인 문화가 그들의 유연한 연대를 도출해낸다. 마포연대와 지역방송인 마포FM 등 지역사회와의 연계도 그러하다.

 


성대골 마을 - 마을에서 배우다


     성대골 마을은 서울시 동작구 상도3동과 상도4동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다세대 다가구 밀집지역이다. 노점과 상점이 섞여있는 성대시장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마을카페 사이시옷’, 목공소 별난공작소’, ‘에너지슈퍼마켓이 있고 언덕에 마을공동체의 시초가 되는 성대골어린이도서관마을학교가 있다. 서울에서 보기 드문 정감어린 마을에 주민들이 스스로 만든 공간들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이다. 성대골 마을공동체의 특성은 주부들 중심의 커뮤니티라는 것이다.

     공동체의 시작은 2009풀씨모임에서 비롯된다. 마을주민이자 두 아이의 엄마였던 A씨가 주민자치센터 마을문고에 책을 빌리러 다니다가 소개받은 지역 활동가들 B(좋은세상), C(희망동네)과 함께 모임을 하게 되었고, 당시 붐을 일으켰던 어린이도서관 만들기에 착수하게 된다. 출판사와 저자들에게 기증을 부탁하고, 일일호프와 다양한 모금활동으로 201010성대골어린이도서관이 문을 연다. 마을에 아이들이 갈만한 도서관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필요가 이들을 움직인 것이다.

     엄마들이 공유하고 있던 또 하나의 절박한 문제는 이 마을에 초등학교가 없다는 것이었다. 동작구와 관악구의 경계에 위치한 탓에 성대골 아이들은 가파르고 위험한 언덕길을 넘어 멀리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주민들의 지속적인 요구에도 불구하고 부지 선정과 행정상의 이유로 학교 설립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엄마들은 20124월 마을학교를 개교한다. 그 주축은 도서관의 책 읽는 엄마들이었고, 내가 그들을 처음 만난 것도 그 즈음이었다. 당시 혁신학교를 준비하던 전교조 교사들과 엄마들은 비고츠키와 프레네 교육학 등을 함께 공부했다. 이후에 개교학교의 도서관을 만들고 운영하는 중에 난 그 분들의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마을학교는 엄마들이 마을교사로 참여하여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보는 생활공부방 형태로 운영되는데, 재능이 있는 동네 주민들도 명예교사로 뮤지컬과 숲 체험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한다. 한편, 20113월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마을에서도 무언가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녹색연대의 초청 강연과 에너지 프로젝트(숲과 바람과 태양의 학교)에너지 절전소운동으로 발전했고, 2012년에는 서울시의 에너지자립마을이 되기에 이른다. 에너지 절약과 효율개선을 통해 소비량을 줄이고, 생산량을 높여 에너지 자립도를 높여가는 마을 공동체가 된 것이다.

     20124월 성대골에 서울시의 <살기좋은 마을 만들기 공모전>을 준비하던 청년들이 찾아온다. 그들이 처음 만난 주민이 A씨였다. 이후 <주택개선사업>의 일환으로 마을에 대한 연구와 조사 작업이 이어지고, 청년들은 청년 기업인 블랭크(BLANK)를 설립하고 아예 주거지를 마을로 옮긴다. 새로운 주민이 된 청년들과 엄마들은 청춘플랫폼이라는 공유 공간에서 음식을 나누며, 에너지 자립마을 축제 등 많은 것들을 기획해낸다. 엄마들은 나눔부엌에서 음식 만드는 것을 가르쳐주고, 청년들은 에너지카등을 설계하고 제작한다. 협동조합형 마을기업인 마을닷살림과 도심 속 에너지 자립운동의 거점이 된 에너지 슈퍼마켙도 여기서 창안된 것들이다.

     내가 만난 두 마을의 사람들은 마을 만들기라는 말 대신에 마을살이혹은 마을하기를 즐겨 쓴다. 외형적으로 그럴싸하게 인위적으로 공간을 디자인하는 새 마을 만들기를 거부하는 까닭이다. 두 마을 모두 교육에 대한 절박함에서 모인 사람들이 스스로 필요한 우물을 판 꼴이다. 그것이 시작점이 되어 함께 할 공간을 마련하고, 그곳을 사랑방 삼아 모이게 되면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생겨나고, 하고 싶은 일이 기획되기 시작한다. 이제 사람들은 마을에서 놀고 마을에서 배운다. 유쾌한 공동체를 작당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로 충분한 걸까?

     실제로 마을에서 사회, 공공, 공동체 등 사회적인 가치는 개인, 이익, 경쟁 등의 시장 중심적 가치와 대조를 이루며 절대화되고 있다. 그런데 마을은 낭만적인 상상적 공동체가 아니다. 그곳은 사람들의 필요와 욕구가 부딪히고 에 대한 욕망이 중첩되어 있는 곳이다. 그리고, 딛고 선 땅바닥에는 마을을 지키려고 폐타이어를 쌓아놓고 밤새 투쟁하던 신대방동 철거민 투쟁과 용산4구역 남일동 참사와 같은 역사가 켜켜이 쌓여있다. 마을을 채우는 것은 잘 설계된 공간들이 아니라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이런 흔적들인 것이다




05-담론과 문화(34-71).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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