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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호 [기획] 청소년기 생각 발달과 개념 형성

2014.04.16 16:01

진보교육 조회 수:1587

[기획] 청소년기 생각 발달과 개념 형성

옮긴이 : 손지희(비고츠키교육학실천연구모임, 상신중)


이 글은 비고츠키 영문판 선집 5권 2장의 내용을 발췌식으로 옮긴 것이다. 영문판 제목은 "Development of Thinking and Formation of Concepts"이다. 발표 시기는 1930년 전후이다. 최후 저작인『생각과 말(1934)』에 견주면 피아제의 아동의 사고발달에 대한 연구를 비판적으로 점유하기 직전 단계로 보일 만한 내용들도 있다. 예컨대, 본문에서 개념적 사고 발달과 관련하여 비고츠키가 "지성의 사회화, 내적 말의 사회화" 등을 언급하는데,『생각과 말』에서는 "사회화" 대신 "개인화"라는 개념으로 재정립한다. 이로써 개념적 사고가 "주체적이고 체계적인 인식"을 위한 사고 수단임을 더 분명히 한 셈이다. 분명한 것은 피아제가 있었기에 비고츠키도 있었다는 것이다. 비고츠키는 피아제의 임상적 발견들을 발판 삼아 인간발달의 문제에 더 깊숙이 다가갔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피아제 이론의 철학적 한계에 대한 비판은 생각과 말 2장에서 자세히 펼쳐진다. 이른바 '내재적 비판을 통한 비판적 점유'라는 변증법적 과정을 비고츠키는 자신의 연구 영역에서 실천했다.
비고츠키는 심리 현상의 이면에 자리한 본질을 파악하는 방법론으로서 "발생적 방법"을 중시하였다. 인간의 고등정신기능의 본질을 규명하는데 실제로 발생적 방법을 중심적으로 적용하였다.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은 관계 속에서의 역동적 통일의 과정을 보는 것을 통해서라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철학과 방법론을 진정한 과학으로 여겼기에 발생적 방법을 중심에 놓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인간의 고유한 심리 기능으로서의 개념적 사고는 비고츠키가 매우 중시한 고등정신기능이다. 낱말의미를 개념으로 형성하여 생각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개념적 사고는 어린이가 어느날 갑자기 발견하여 수행하는 인간의 신비를 보여주는 현상이 아니다. 기계적으로 주입되는 것도 아니다. 낱말의미는 인생역정 속에서 혼합체-복합체-진개념의 단계로 발달해간다. 모든 낱말은 이미 일반화된 것이다. 일반화는 사고 작용이다. 그렇다면 사고 발달의 과정에서 관건적인 요소, 원천은 무엇인가? 이를 비고츠키는 '사회적 접촉'이라고 보았다. 비고츠키는 생각과 말 1장에서 "일반화와 사회적 접촉의 관계'를 논의하면서 일반화는 사회적 접촉을 전제로 하고 사회적 접촉의 가장 고등한 형태는 고차적인 일반화의 방식 즉 개념적 사고를 통해 가능하다고 보았다. 비고츠키에 따르면 고차적인 사회적 접촉을 위해 개념적 사고는 불가피한 것이다. 사실이 그러하다. 모순에 둔감하고 세상을 주관적으로 지각하는 개개인들이 의미있는 소통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린아이 같은 사고구조를 가진 성인과의 의사소통을 떠올려보자. 사회적 관계와 접촉 속에서 인간은 새로운 사고양식을 획득하고 개념적 사고를 통해 세계를 체계적으로 인식하는 주체가 되어 간다.
그렇다면 주체형성의 과정에서 이토록 중요한 개념적 사고가 시작되는 것은 언제인가? 당대의 여러 이론적, 실험적 연구들에 대한 검토와 동료들과의 실험적 연구를 기반으로 비고츠키는 개념적 사고는 학령기가 끝나고 청소년기가 시작되는 것이 맞물리는 과도적 연령기(12,13세)에 비로소 시작되어 청소년기 동안 형성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발생적 관점에서 비고츠키는 청소년기의 발달을 이전의 발달을 토대로 하면서도 '신형성'이 등장하는 시기로 보았기 때문에 어린이 발달의 특성과 많이 비교한다. 그래야만 질적으로 다른 신형성이 청소년기에 등장한다는 청소년기의 '긍정적 성취'를 공식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시대, 대부분의 사회는 청소년기를 감정에 이리저리 휩쓸리는 질풍노도의 위험한 시기라는 부정적 인식이 강하다. 현상적으로는 일면 옳은 관념이다. 비고츠키는 위기 속에서 싹트는 청소년기의 내적 변화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 긍정적 성취가 무엇인지 보고자 했다. 비고츠키에 따르면 청소년기는 개념적 사고가 형성되어 자기 자신과 타인, 세계에 대해 보다 체계적으로 인식을 할 수 있게 되는 수단을 획득하는, 주체로서 형성되는 과정에서 매우 중대한 시기이다. 하지만 개념적 사고 형성은 절대로 자연발생적, 일상적 과정에만 의존해선 이루어지지 않는다. 개념적 사고의 형성의 기제와 역동은 생각과 말 6장의 주제이기도 하다. 아쉽지만 이 글에서는 명료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이 글에서 하나 눈여겨볼 것은 비고츠키가 예로 든 사례들 중 많은 수가 '발달지연'을 보여주거나 이행적 성격의 특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점이다. 본문의 내용에 따르면 생물학적 연령과 어긋나는 지성에서의 '발달 지연'은 과거의 사고형태를 지속하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적지 않은 한국의 청소년들, 아니 청소년들뿐만 아니라 성인들의 경우도 개념적 사고역량을 획득하지 못한 채 어린이의 사고양식을 지속하는 경우가 있다. 개념적 사고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을 경우 세계에 대한 체계적인 인식이 불가능하며 모순에 둔감해진다. 나아가 새로운 내용을 주체적으로 흡수하는 데 굉장한 장벽을 만드는 셈이 된다.
이 점에서 한국 중등교육과정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교육과정은 과연 청소년 발달을 얼마나 의식적으로 파악하여 이를 교육과정 구성의 시금석으로 삼는 것일까? 청소년은 그 이전 시기와 달리 세계에 대한 관심과 집단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시기이며 또한 자아에 대해 생각하고 자신을 만들어나가는 시기이다. 이 모든 변화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개념적 사고의 형성이라는 비고츠키의 주장을 떠올린다면 지금의 교육과정을 포함한 학교교육 전반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달라질 수밖에 없고, 변화 방향도 한층 분명하게 보일 수 있을 것이리라 믿는다.
번역자가 외국어에 능통하지 못하고 비고츠키 이론에 대한 이해도 깊지 못하면서 읽기 힘든 글로 지면만 채우는 것이 아닌가, 두렵다. 하지만, 첫 시작은 당연히 불안정하고 미숙하지 않냐는 비고츠키의 말에 용기를 내어 싣는다.



청소년 지성에 대한 세 가지 입장
과도적 연령기 생각발달의 역사 자체가 지성의 성숙에 대한 과거의 구성물로부터 새로운 이해로 나아가는 과도적 단계에 있다. 말과 생각 그리고 발달의 심리적 본질 및 이러한 과정들의 구조적 기능적 상호관계에 대한 새로운 이론적 관점을 토대로 새로운 이해가 등장하고 있다.
이처럼 청소년 지성발달에 대한 이해는 과도적 단계에 있으며 새로운 이해로 나아가기 위한 오류 극복의 과정에 있다. 우선 어린 아동들의 생각과 비교했을 때 청소년의 생각에 본질적으로 새로운 것은 전혀 없다는 확신이 먼저 극복해야 할 오류다. 일부 극단적인 논자들의 경우 3세 어린이의 정신 조작과 청소년들의 정신 조작은 전혀 다를 바가 없다고 본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청소년기 성숙과정에서 생각 발달은 결코 핵심이 아니다. 하지만 누가 보더라도 청소년의 신체와 인격, 문화생활 등은 과도적 시기를 거치면서 눈에 띄게 격렬하게 전환된다. 그렇지만 위와 같은 관점을 지닌 논자들은 이러한 심층적 변화들이 청소년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며 이에 따르면 청소년의 위기와 성숙의 전체 과정에서 지적 변화는 거의 0에 수렴한다. 즉 변화가 없다는 입장이다. 혹은 변화가 있더라도 그것은 양적 변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청소년의 지성은 "발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편 청소년기 변화의 핵심을 논의하는 데에 전통적 관점은 아동기를 지성적 변화의 시기, 청소년기는 정서적 변화의 시기로 규정한다. 이들은 청소년기에 외적으로 명백하게 보이는 정서적 상태의 변화를 근거로 이러한 주장을 펼친다. 이들은 학령기 어린이들은 지각기능, 기억용량, 지성, 주의 등 지적 측면에서의 변화가 두드러지는 반면, 성적 성숙기의 청소년들은 "감정의 삶"을 사는 존재라고 여긴다. 하지만 이러한 입장에 따를 경우 청소년기의 지성 변화를 설명할 수 없게 된다. 청소년기의 모든 변화를 '정서'로 환원시키기 때문이다.
아울러, 생각의 변화를 인정하지만 생각의 형식과 내용을 분리하여 형식상의 변화는 없으며 다만 청소년기에 접하게 되는 내용의 차이가 사고능력을 (양적으로) 확장, 강화하는 것이라고 보는 입장도 있다.

생각의 형식과 내용의 문제
생각의 내용과 형식은 과연 분리 가능한 것일까? 생각의 내용과 형식에 대한 이원론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심리학에서는 형식과 내용의 관계를 그릇과 담기는 내용물의 관계로 여긴다. 하지만 사고의 형식와 내용은 변증법적 통일의 관계 속에 있다.
Spranger는 법, 정치학, 직업, 윤리, 과학, 세계관 등의 내용적 영역에서의 성장이 청소년 성숙 과정의 중핵이라고 보았다. 반면 생각 형태, 지적 조작의 구조 등 지적 기능은 마치 성별처럼 불변적이라고 가정한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사고 양식의 진화는 사고 내용의 진화와 단절되어 있을 뿐이다.
과학적 연구는 행동의 문화적 발달 과정에 생각 내용과 형식의 발달을 모두 포함한다. 생각의 내용과 형식은 상호의존적 결합 관계에 있기 때문에 형식논리적으로 인위적으로 분리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예컨대, 꿈의 내용은 논리적 사고와 조응하지 않으며 대수와 같은 과학적 내용은 3세 어린이의 생각구조와 조응하지 않는다. 새로운 내용은 새로운 형식을 전제하고 요구한다. 또한 새로운 형식 없이 내용적 발달은 이룰 수 없다.

이론과 방법론의 기저에 깔린 철학의 문제
과도적 연령기의 생각 발달의 문제 전체에서 열쇠가 될 이론과 방법을 찾아야 한다. 뷜러, 루빈스타인, 슈프랑거 등이 범한 크나큰 이론적 오류는 생각 내용과 양식의 진화를 분리해버렸다는 것에 있다.
고등정신기능의 발달은 생물학적인 것과 문화적인 것, 이 두 노선의 엮임과 짜임에 의한 것이다. 고등정신기능은 인류의 역사적 발달의 산물이자 개체 발생에서도 특정한 역사를 지닌다. 인간 행동은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이자 역사적 혹은 문화적 발달의 산물이다. 두 노선을 구분하되 개체 발생에서 두 노선이 복잡하게 얽힌 형태 즉 복잡한 역동적 종합이 바로 개체발생에서의 고등정신기능의 발달과정이다. 실제로 청소년기에는 새로운 기초기능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청소년기의 생각은 과연 기초기능이 진화(양적 확대)한 결과인가 아니면 고차적 기능으로의 변화인가? 두 노선의 구분 즉 뇌의 용량과 같은 생물학적인 것을 토대로 하는 지성 형태와 문화역사적인 것을 토대로 하는 지성 형태를 구분하지 않으면 청소년 지성 발달에서 질적으로 다른 단계가 전개되는 것을 인정하지 않게 된다. 두 노선을 구분하지 않고 생물학적인 변화와 새로운 역량을 대응시키는 경우 계통발생의 결과를 개체발생에 그대로 적용시키는 것으로 둘 사이를 평행적 관계로 취급하게 된다.
행동의 역사적 발달의 본질은 뇌의 무게 등 생물학적 변화와 연결되지 않은 새로운 역량의 등장 이른바 문명화에 있다. 평행이론의 관점에서는 생물학적인 것으로 모든 변화를 환원시킨다. 뇌의 무게를 변화의 원인으로 단일화할 경우 인간의 지성발달은 3,4세에 완성된다. 왜냐하면 뇌의 무게는 3세경에 출생 당시 무게의 3배가 되고 이후 전 생애 시기동안 출생 시의 4배까지만 증가하므로 이러한 현상만 보고 생물학적인 것의 변화와 문화적 역량의 변화를 평행한 관계로 놓으면 어린이는 생애 첫 3,4년에 모든 기본적인 정신기능을 획득한다는 가정에 도달하게 된다.
실제로 14세에서 20세까지 뇌의 외적 변화는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다. 따라서 생물학적 환원론의 입장에서는 청소년기 지성의 발달적 변화를 설명할 수 없다. 이러한 평행주의는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인 초등기능의 성숙에만 타당하다. 또한 외적 변화에 대한 기술일 뿐이다. 외적 변화의 기술로 그리고 그 요인으로 [청소년의 지성발달을] 환원시키면 고차적 생각의 출현 등의 지적 발달은 설명되지 않는다.
성적 성숙 시기에 집약되어 중점적으로 일어나는 지적 발달을 설명할 새로운 방도가 필요하다. 아동, 청소년의 문화적 발달의 토대를 이루는 요소는 이와 다르다. 사회적 삶, 문화 발달, 노동 활동 등이 개입한다. 외적 표현(표현형)에 대한 연구로부터 각 연령대의 서로 다른 생각(형식과 내용의 통일체로서의 생각)의 발생적, 기능적, 구조적 특성을 연구한다면, 즉 이들의 질적 차이를 드러낸다면 3세 어린이의 생각 작용과 청소년의 생각 작용을 동일시하는 전통적으로 확립된 관점을 거부하는 것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이렇게 양자의 질적 차이를 수용할 때라야 청소년기의 긍정적 성취, 달리 말해 청소년기 신형성의 등장을 공식화할 수 있게 된다.

청소년기 신형성 - 개념적 사고
어린이와 청소년의 생각작용이 질적으로 다름을 인정하는 새로운 연구들에도 오류는 있다. 이들은 청소년의 추상적 사고와 구체적이고 시각적인 것이 동떨어졌다고 주장한다. 즉 둘 사이에는 관계가 없다고 여긴다.
청소년기 생각에서의 신형성은 구체와 추상의 관계가 바뀌는 것에 그 핵심이 있다. 청소년기에는 생각을 구성하는 요인으로서 구체와 추상 간의 관계에서 완전히 새로운 형태가 등장한다. 어린이의 시각적 사고, 지각, 실행지능과 같은 지능들은 새로운 양식 속에서 종합된다. 이처럼 청소년기에는 신형성이 등장함과 동시에 과거의 것은 신형성으로 인해 완전히 새로운 토대 위에서 재편된다. 즉 구조적 변화가 일어난다.
하지만 전통적 이론은 내용과 형식을 분리하고 구체와 추상을 분리하는 이분법의 틀에 갇혀 있기 때문에 이러한 관계를 설명하지 못한다. 다른 한편, 전통적 이론은 기초와 고등을 구분하지 않는다. 사고 내용의 진화는 문화적 발달의 결과로 사고 양식의 발달은 생물학적 발달의 결과로 설명한다. 변증법적 통일 속에서 사고와 내용의 역동을 연구해야만 이분법을 극복할 수 있다. (강조는 옮긴이)
연구 결과, 청소년은 성적 성숙기에 지적 발달의 길을 따라 가장 중요한 진전을 이룬다. 복합체적 사고 단계에서 개념적 사고 단계로의 이행이 이 시기에 일어난다. 개념으로 생각한다는 것(개념적 사고)은 개념의 형성과 아울러 개념을 가지고 조작을 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청소년기에 성취하는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새로운 역량이다. 생각발달과 개념형성의 문제에 있어서 청소년기 개념형성은 내용과 형식 그리고 구체와 추상이 통일되는 과정이다. 그리고 개념형성은 생각발달에 있어서의 중심이며 핵심단위이다.
강조하건대, 개념적 사고는 "신형성"이다. 이전 단계의 지성 발달을 특징짓는 기초적 과정들이 양적으로 확대된 것으로 환원시킬 수 없다. 청소년기에 등장하는 개념은 연합적 무리의 확대, 풍부화가 아니다. "개념으로 생각하기"는 새로운 행동 양식이며 새로운 지적 체계이다. 하지만 전통적 청소년 이론에는 지성발달에 대한 양적 관념이 만연해 있다. 실험을 통해 생각의 구조는 크게 세 단계를 거치며 질적으로 다른 생각형식으로 발달해 나간다. 혼합체적 사고, 복합체적 사고, 개념적 사고의 질적으로 다른 생각 형태가 발생하여 성숙하는 과정이 생각 발달 과정을 이룬다. 개념 속에서 내용과 형식은 통일을 이룬다. 아동에게 있어서 개념으로 생각하는 것으로의 이행은 사고의 진정한 혁명이다.

청소년기의 모순
사고의 내용과 형식은 분리할 수 없으며 서로 의존한다. 결코 그릇에 담긴 물 정도의 관계가 아니다. 생각 내용의 토대는 개념 형성과 결합하여 형태와 구조가 재편된다.  
생각의 내용은 정지된 사물이 아니라 생각 주체와 결합되는 실질적인 내용으로서 성격을 갖는데, 내용은 아동발달 과정에서 아동의 내부로 이동한다. 신념, 희망, 관심, 세계관, 규범, 행동 규칙, 성향, 이상, 생각 방식 등 이러한 내용 모두 처음에는 주체의 외부에 있는 것이지만 (발달과정에서 주체와 결합하여) 내적인 것이 되어간다. 청소년이 발달함에 따라 생물학적 성숙과 환경 변화와 결합하여 새로운 내용을 숙달하는 과업을 수행하면서 청소년은 전진해 나간다. 청소년 앞에 펼쳐지는 일련의 과제와 함께 새로운 내용은 새로운 생각양식으로 청소년을 이끈다.
어린이는 확립된 문화적 실재인 세계를 지각하지만 그것의 창조에 실제로 참여하지는 않는다. 반면, 개념으로 완전하고도 깊게 표현된 내용을 충분히 흡수한 청소년은 자기 앞에 펼쳐진 문화적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창조적이고 능동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한다.
개념적 사고 없이는 현상의 기저에 있는 관계를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이(현상 기저의 본질)는 개념을 열쇠로 가진 이들만이 드러낼 수 있다. 새로운 내용은 결코 기계적으로 청소년의 생각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길고 복잡한 발달과정을 거친다.
생각 내용의 확장과 심화에 힘입어 과거, 현재, 미래, 자연, 역사, 인간 삶의 총체인 세계가 청소년 앞에 펼쳐진다. 블론스키는 아동의 역사 전체는 아동이 속한 환경의 점진적 확장의 역사라고 했다. 자궁에서 요람으로, 요람에서 방으로, 그리고 집으로... 환경의 경계는 점점 확장된다. 과도적 연령기 환경의 확장은 청소년에게 있어서 세계가 생각을 위한 환경이 되어간다는 사실로 연결된다. 환경에 있어서의 근본적인 변화는 사회적 생산에의 참여로 확장된다.
아동청소년기 계급 심리 발달, 즉 집단의식의 형성을 모방 본능에 기대어 설명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이다. 과연 외적 모방의 결과가 계급심리가 될 수 있는가? "계급적 유대는 외적 모방의 결과가 아니다. 삶(생활)과 활동과 관심의 공유에 의해 형성된다"는 것이 블론스키의 견해이다. 어린이의 계급심리 형성에서 가장 강조되는 것은 공동생활과 공동활동 특히 공동체의 노동활동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충분할까? 공동체 경험은 청소년에게는 풀어야 할 과제들의 위상을 점유한다. 그러한 과제 해결의 과정에서, 계급 심리는 발달하고 형성된다. 이 과정의 완성을 촉진하는 것은 지적 활동의 양식과 체계이다.
청소년의 지적 경향과 흥미는 서로 모순적이다. 블론스키는 청소년은 논리, 증명, 판단, 수학, 물리학, 철학 등을 선호하는 반면 생각에서는 이상주의적 경향을 띤다고 지적한다. 크레치머는 이를 "낭만적 사고"라고 칭했다.
우리가 보기에 발생적 설명이 정확한 답을 줄 수 있다. 이제 막 개념 형성기에 접어들었으므로 이러한 모순은 당연한 현상이다. 개념형성은 청소년이 이후 변증법적 사고로 나아가는 경로를 개척한다. Groos의 연구(1916)는 청소년기 생각 내용의 근본적 변화와 재구성을 잘 보여주는데, 개념형성, 새로운 형태의 특성은 아직 충분히 안정적이지 못하다. 불안정하며 아직 덜 발달되어 있는 즉 발달의 와중에 있다는 사실이 모순을 설명한다. 모순은 발달의 모순이자 과도적 형태의 모순이자 과도적 연령의 모순이다.
실재가 제거된 것이 추상적 사고가 아니다. 추상적 사고는 심층적이고 진리에 가깝게 가장 완전하게 청소년들 앞에 펼쳐진 실재를 드러내 준다. 청소년의 생각의 내용 변화와 관련하여 우리는 두드러지게 사고가 총체적으로 재구성되는 시기에 등장하는 하나의 영역을 우회할 수 없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내적 활동에 대한 의식적 파악(자각, 의식, 인식)이다.

말과 이해, 개념의 기능
낱말은 타인이해의 수단으로서 출발해서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수단이 되어간다. Kroh는 "성숙 중인 청소년 앞에 정신세계가 펼쳐진다"고 주장한다. 타인을 향하던 주의는 상당한 정도로 증가한다. 아동에게 닫혀 있던 내적 경험의 세계가 이제 청소년 앞에 열린다. 이는 그의 생각의 내용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영역을 제공한다.
내적 활동, 자신의 경험의 세계로 파고들어갈 때, 개념을 형성하는 기능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낱말은 타인을 이해하는 수단이듯이 낱말은 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수단이다. 처음부터, 발화자에게 낱말은 타인이해의 수단이자 자신의 지각을 지각하는 수단이다. 이러한 이유로, 개념을 형성해야만 자기 경험에 대한 내적 활동을 철저하게 인식하는 것이 발달한다. 훔볼트는 ‘생각은 오직 개념들 속에서만 명료해진다’고 하였다. 개념 형성과 더불어 청소년은 진정으로 자신과 자신의 내적 세계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개념 형성이 결여된 경우, 생각은 명료함에 도달할 수 없으며 생각은 개념이 될 수도 없다.
개념이 인식과 이해의 중요한 수단이 되어가면서, 청소년의 생각 내용은 근본적으로 변화한다.
첫째, 개념적 생각은 현실의 내적 관계와 작동 유형의 발견 등 현실 세계에 대한 인식의 기능을 한다. 낱말이 개념의 매개체(운반장치)가 되면서, 낱말은 대상에 대한 실제 이론이 된다. 개념은 '체계' 속에서 존재한다. 즉 개념은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네 개의 개념 A,B,C,D가 있다고 하자. 네 개의 개념이 형성되는 과정을 살피면 순차적으로 같은 과정을 반복하지 않는다. A가 형성되는 과정과 B,C,D가 형성되는 과정은 다르다. 첫 번째 형성된 개념 A는 열쇠의 구실을 하여 B,C,D는 이의 도움을 받아 형성된다. 이와 같은 개념 간의 상호연결, 내적 관계로 인해 개념은 외적 세계를 체계적으로 인식하는 기본 수단의 하나가 된다.
개념은 체계로 귀결될 뿐만 아니라, 외적 세계 인식을 돕는 근본 수단이 된다. 인류의 역사적으로 구성된 사회적 경험을 이해하고 흡수하는 근본적 수단이 된다. 오직 개념을 가지고 개념(체계) 속에서 청소년은 처음으로 사회적 의식의 세계를 체계화하고 종합한다. 사고의 완전한 사회화는 개념 형성 기능에 담겨 있다.
자기를 향한 의식 또한 발달한다. 낱말을 사용함으로써 자신을 향한 의식,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를 배운다. 어릴수록 스스로에 대한 이해(의식)가 적다. 어린이의 자아의식은 극도로 느리게 발달하며 생각 발달에 철저히 종속된다. 결정적 진전은 과도적 연령기에 개념 형성과 함께 일어난다. 이처럼 언어와 '이해'는 분리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언어는 타인과 세계 그리고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근본 수단이며 낱말이 개념으로 사용될 때 즉 개념적으로 사고할 때 세계와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와 인식, 의식에서 결정적인 진전이 나타나게 된다. 이 시기가 바로 청소년기이다.

사고의 내용과 개념적 사고의 관계 - Pashkovskaya의 실험연구 데이터 검토
Pashkovskaya의 연구는 FAS(공장도제학교)와 SCY(기독청년학교)의 청소년 수백 명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축적된 관념"(stock of ideas)을 알아보는 연구이다. 조사 결과 Pashkovskaya의 실험결과는 우리 가설을 확증해주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연구로 우리는 청소년의 생각 내용이 어떻게 풍부해지고 새로운 형식들이 획득되는지 드러낼 수 있다.
청소년의 지성이 작동하는 가장 단순한 행동의 단위는 표상이 아니라 개념이다. Pashkovskaya의 연구는 현실reality의 다양한 외적, 내적 측면들을 포괄하였다. 우리는 내용적 측면에서의 청소년의 생각에 관심이 있다. 우리는 청소년기 생각의 신형성-개념형성기능-과 청소년의 지적 활동 전체 내용의 근본적 재구성 간에 우리가 가정한 이론적 연결이 실제로 존재하는지를 보고자 했으며 내용의 견지에서 개념을 포착하고자 했었다. Pashkovskaya의 연구는 청소년의 다양한 경험의 영역들을 포괄했으며, 자연현상, 기술 발전과 도구, 사회현상, 심리적 본성의 추상적 관념들과 연결된 개념들과 관계된 개념연구를 포함했다. 기본적으로, 그 연구는 우리가 기대했던 관계들이 실재함을 확증했으며, 개념 형성 기능과 함께 청소년은 반영되는 현실의 측면들의 내용의 깊이와 범위에서, 체계화의 방식과 구조에서 역시 완전히 새로운 어떤 것을 획득함을 보여주었다. 이 연구로 인해, 우리는 청소년의 생각이 풍부해지고 새로운 형태들이 획득됨을 밝힐 수 있다. 이 속에서 우리는 전체 작업의 기본적이고 중심적인 결과들과 우리가 위에서 언급한 가설들의 직접적 확증을 본다.
개념에 관한 현대 심리학의 근본적 오류 가운데 하나는 이러한 조건에 대한 고려 없이, 개념들을 순수하게 형식으로만 간주하고 개념의 내용 속에 현존하는 새로운 영역과 체계를 간과했다는 것이다. 개념연구는 형태적 분석만으로는 뒷받침될 수 없으며 형태적 분석은 기능적, 발생적 분석과의 협력을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주어진 내용은 오직 특정한 형태 속에서 적합하게 현존할 것이며 주어진 내용은 생각의 특화된 기능들, 지적 활동들의 특정한 양식들의 등장과 함께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생각 내용에 대해 순수하게 형태적이고 현상적인 분석으로 나아갔다고 본다.
우리는 이미 과도적 연령기의 개념형성 기능이 아직 미숙하고 불안정한 지적 성취임을 지적했다. 이러한 이유로, 청소년의 모든 생각이 개념들로 물들었다고 상상하는 것은 잘못일 것이다. 이와 반대로, 우리는 그들이 정립되어 가는 과정 속에서만이 개념들을 목격한다. 그들(개념적 사고)은 과도적 연령이 끝날 때까지 생각의 지배적 형태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청소년의 지적 활동은 여전히 앞서 발생한 형태들이 차지한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우리는 청소년의 생각에서의 이러한 불완전함과 여러 많은 연구자들이 지목한 청소년 생각의 이상주의를 설명하고자 했으며 내용적 측면에서, 우리는 이러한 입장과 완전한 평행을 발견했다. 추상적 개념을 정의하는 과제에 직면했을 때, 순전히 구체적인 정의를 기반으로 반응하는 청소년들에 대한 연구는 흥미롭다. 그들은 세속적 의미 속에서 그 낱말을 취했고 가장 구체적인 예를 빌어 그것을 설명했다.
좋은 것(good)이 뭐냐는 질문에 대해 "가장 좋은 것을 사는 것, 그것이 좋은 거죠."(14세, FAS) "좋은 것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 뭔가를 했을 때죠. 이것이 좋은 거죠."(15세, SCY) 이보다 훨씬 더 자주 그들은 세속적으로 실행적인 정의를 했다. "좋은 것은 누군가가, 예를 들면, 아주 좋은 귀걸이나 시계나 바지 등을 갖게 되는 것이죠."(13세, SCY) 혹은 훨씬 더 구체적으로, "좋은 것은 우리가 가진 것, 즉 공책, 펜, 볼펜 등이죠."(14세, FAS) "결혼할 때 여자가 받는 장신구, 혼수감" (13세, SCY) 혹은 결국 "귀중품 (값나가는 물건)" 등.
사랑이 뭐냐는 질문에 대해 "사랑은 한 사람이 그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죠."(14세, SCY) "사랑은 이름이죠.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13세, SCY) "사랑은 결혼하고 싶어하는 누군가죠. 그래서 그는 여자와 나란히 앉아서 고백을 하고 그녀는 그와 결혼하죠."(13세, SCY) "사랑은 관계있는 아는 사람들 간에 일어나죠."(13세, SCY)
이런 식으로, 과도적 연령이 시작될 때에는 생각의 내용적 측면에서조차 우리는 구체적인 것의 동일한 우위를 발견하며, 추상적 개념을 명시적으로 보여주는 구체적 상황으로부터 추상적 개념에 접근하려는 동일한 시도를 발견한다. 본질적으로, 이러한 정의는 초기 학령기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여기에 우리는 중요한 유보조항을 붙여야만 한다. 우리가 과도적 연령의 전반기 동안 맞닥뜨린 현상으로써 언급했던 것은 본질적이지도, 특별하지도, 새롭지도 않으며, 이러한 이유로 발생적 측면에서 과도적 연령의 특질도 아니다. 그것은 과거의 잔존물이다. 비록 이러한 생각의 형태가 당장은 지배적일지라도, 청소년이 앞으로 전진해가면서, 그것은 안으로 숨어들어가 줄어들어 사라지게 될 것이다. 더욱 추상적인 사고를 향한 이행이 거기에는 있다. 비록 그것이 지금은 양적으로 우세한 형태는 아니지만, 그것은 과도적 시기의 특질이다. 청소년이 전진해감에 따라, 그것은 발달할 것이다. 과거는 구체적 생각의 소유이며 현재의 대부분도 그러하다. 추상적 사고는 현재에는 작은 부분만을 차지하고 있지만 미래에는 전부가 된다.
우리는 Pashkovskaya의 연구에서 두 가지 지점만을 말할 것이다.
(1) 개념들 간에 존재하는 연결과 관계들은 (청소년의 내부로) 들어온다. (60개의 답변을 분석한 결과 내적으로 유기적으로 모두 다른 답변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2) 우리는 내용이 생각의 내적 구성으로 어떻게 들어가는지, 어떻게 내용이 외적이고 직접적인 요인이기를 멈추는지, 어떻게 내용이 발화자의 자신의 이름 속에서 표현되기 시작하는지 보았다.
communia proprio dicere(일반은 특수를 통해 드러난다.)라는 라틴어 표현에 따르면, 생각의 내용은 발화자의 내적 신념이 되며, 그가 가진 생각, 관심, 행위 규범, 열망과 의도를 간단명료하게 나타낸다. 이는 우리가 동시대 사건들과 정치, 사회, 인생계획을 물었을 때 청소년이 한 답변을 다루면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것은 인격의 복잡한 내적 요인들과 통합되었으며, 그리고 이 시기에 객관적인 진술이 끝나는 곳과 개인의 신념, 관심, 그리고 행동의 방향이 시작하는 곳을 결정하는 어렵다.
내용은 생각에 대해 외적이고 주변적인 관계를 가지고 생각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빈 잔에 물을 채우듯이 내용은 하나의 혹은 또 다른 형태의 지적 활동을 채우는 것이 아니다. 내용은 유기적으로 지적 기능들과 연결된다. 내용의 모든 영역은 특정한 기능들을 가진다. 그리고 내용은 인격의 자산이 되어가면서 인격의 역동적인 일반적 체계 속에서 인격의 내적 요인들 중의 하나로서 인격발달 체계에 참여하기 시작한다.
명백히 흡수되어 청소년 개인의 생각이 되고 있는 생각은 그것의 논리와 그것의 역동에 더하여, 그것이 특정한 부분으로서 포함되는 생각의 개인적 체계의 발달의 일반적 형태들에 종속되기 시작한다. 심리학자의 과업은 이 과정을 정확하게 추적하는 것이며 인격의 복잡한 구조와 그것의 명백히 흡수된 생각을 포함하는 생각을 찾는 방법을 아는 것이다.
두 힘으로 이루어진 평행사변형의 대각선을 따라 움직이는 갑판 위로 던져진 공처럼, 이 시기 흡수된 생각은 서로 다른 두 힘을 반영하는 복잡한 평행사변형의 대각선을 따라 움직인다.

구체와 추상의 관계
형식과 내용의 이분법과 관련하여 흔히 나타나는 오류를 극복하기 위해 반드시 설명되어야 할 중심 지점 중 하나가 구체와 추상의 관계 문제이다. 개념과 실재reality의 관계에 대한 형식논리학적 관점과 변증법적 관점의 차이를 설명하겠다.
전통적인 형식논리학에서는 "개념은 정신의 추상적 구성물"이며 "구체적 현실의 풍부함으로부터 극도로 멀리 떨어져 있다"는 관념을 가지며 개념의 발달은 기본적으로 개념의 범위와 내용이 "반비례 법칙"을 따른다고 본다. 즉 (개념이 포괄하는) 범위가 확대될수록 담기는 내용은 협소해진다. 형식논리에 따른 개념 형성 과정은 극도로 단순하며 추상화와 일반화를 형식논리적인 관계로 단순하게 이해한다.
형식논리학에서는 추상화를 특성 추출로 단순화한다. 이에 따르면 개념은 특성 추출의 결과이다. 이 과정에서 추상성이 높아지면서 범위는 확대되지만 내용은 빈곤해진다는 것이다. 대상의 여러 특성 중 하나를 추출하면 대상이 지닌 다른 특성들은 버려지며 따라서 내용은 빈곤해진다는 논리이다. 형식논리학의 관점을 따를 경우 개념적 사고(추상)는 실재(구체)를 불가피하게 제거하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관념에서 개념은 구체를 배제한 순수 추상이다. 실재를 제거한 사물의 표상이 곧 개념인 것이다. 형식논리학에서 추상은 메마르고, 공허하며, 그 무엇도 아닌 회색의 이미지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거기에 없다. 개념은 일반적이 될수록 현상의 풍부함을 잃고 빈곤해진다. 형식논리학에서 진정한 개념이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물의 표상이다. 이는 필연적이다. 하지만 이는 개념의 본질을 심각하게 왜곡한다.
총체 속에서 그 사물(부분)을 인식할 때만이 즉 관계와 연결 속에서 인식할 때만이 그리고 이러한 다양성이 여러 겹의 판단작용으로 낱말(개념) 속에서 종합될 때만이 개념은 발달한다. 변증법적 논리에서 개념은 일반과 특수를 포함한다. 대상에 대한 직관적, 직접적 앎과 대조적으로 개념은 대상의 정의로 채워진다. 정의란 매개된 지식이며 지적인 과정의 결과이다. 개념의 도움으로 대상을 생각하는 것은 관계와 연결로 이루어진 복잡한 체계 속에 주어진 대상을 포함시킨다는 의미이다. 그리하여, 개념은 추상화의 기계적 결과로서 출현하는 것이 아니라 개념은 대상에 대한 기나긴 깊은 앎의(을 추구한) 결과이다.
맑시스트는 추상화는 마치 현미경 같은 역할을 한다고 여긴다. 심리학 연구는 개념 속에서 언제나 개념에 담긴 내용은 풍부해지고 심오해짐을 보여준다. 진정한 과학적 탐구에서는 개념의 도움으로, 우리는 외적으로 비춰진 현상의 겉모습을 경유하여, 현상에 나타난 외적 형태를 가로질러, 그리고 그것을 꿰뚫고, 현상의 기저에 숨겨진 연결과 관계를 보고 본질을 간파할 수 있다. 마치 현미경이 한 방울의 물 속에서 복잡하고 풍부한 생명을 보고 우리 눈에는 안 보이는 세포의 복잡한 구조를 볼 수 있듯이.
맑스의 유명한 정의에 따르면 "만일 사물의 현상과 본질이 직접적으로 일치한다면 모든 과학은 잉여적인 것이 될 것이다." 개념적 사고는 현실을 아는데 있어서 가장 적절한 방법이다. 왜냐하면 사물의 내적 본질로 뚫고 들어가기 때문이다. 사물의 본질은 하나의 대상이나 혹은 또 다른 것을 (별개로) 응시함으로써 드러나지 않는다. 그것은 연결과 관계 속에서, 대상의 역동과 발달 속에서 자신을 드러낸다. 사물들 간의 내적 관계는 개념적 사고를 통해 드러난다. 왜냐하면 어떤 대상의 개념을 발전시키는 것은 대상과 현실이 맺고 있는 복잡한 현상들의 일련의 연결과 관계를 드러내는 것이며 대상은 체계 속에 포함된다.
또한 개념 형성의 기저를 이루는 지적 메커니즘에 대한 전통적 표상은 변화한다. 형식논리학과 구심리학은 개념을 일반화된 표상으로 환원시킨다. 이러한 교의에 따라 개념은 논리적 조작과 동일시되어 구체적 표상으로부터 분리된다.
뷜러는 개념발달을 '논리적 조작'의 결과와 동일시한다. 뷜러에게 있어서 개념의 심리적 등가물은 논리적 조작이다. 지각의 절대성의 영향으로 개념이 형성된다는 주장을 펼친다. 실제로는 이와 반대이다. 개념의 영향으로 지각은 안정성을 획득한다. 하지만 뷜러는 지각의 안정성에 개념이 미치는 영향의 문제는 풀지 않는다. 문제는 이러한 주장은 기초과정에서의 지각과 생각의 관계에만 적합하다는 것이다. 뷜러의 이론에서는 초등형태와 고등형태 그리고 지각과 인식 간의 모든 경계, 모든 질적 차이는 제거된다. 개념은 단순히 수정된 안정적 지각이다. 뷜러 이론에서는 청소년의 생각의 질적 고유성이 인정되지 않는다. 청소년의 생각은 단지 3세 어린이의 생각과 동일한 것으로 치부되어 버린다.
개념의 심리적 등가물 연구에서 변화가 일고 있다. 심리학 연구는 논리적 추상화의 과정과 동일한 지적 조작의 영역에서의 등가물을 찾기 시작했다. 새로운 심리학 연구의 긍정적 측면은 개념을 사물이 아닌 과정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공허한 추상화가 아닌 복잡성과 다양성을 지닌 실재reality의 대상을 관통하는 반영을 경유한 것으로서 개념을 이해하려고 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완전히 다른 영역에서 개념의 등가물을 찾으려는 시도는 자연스런 것이다. 개념은 실재에 대한 독특한 반영(의 과정)이라는 시각의 대두로 인해 논리 속에서 존재하듯 한 측면이 아니라 실재 속에서의 개념의 형태를 탐구하게 되었다.
한 저자가 말하길, 개념은 존재하는 논리 속에서의 내용의 측면으로부터 만이 아닌, 낱말을 통한 현실 속에서의 활동으로서의 형태측면에서도 개념은 일련의 판단들, 행위들이 집적된 결과-판단, 통각, 해석, 인식-이다. 행위, 운동, 실재 속에서 취해진 개념은 통일성을 잃지 않으면서 그것의 본질을 반영한다. 일반화된 표상, 절대적 지각, 왜곡 없는 도식 속에서가 아니라 심지어 일반적 표상을 대신하는 구체적인 언어적 이미지로서가 아니라 개념이 스스로의 모습을 드러내는 판단체계 속에서 개념의 심리적 등가물을 찾아내야 한다. 개념을 일련의 구체적 특징들의 단순한 누적으로 나타내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
<개념의 심리적 등가물>은 몇 가지 사고 활동의 유형들의 조합과 과정이며 오직 <사고 활동의 체계>일 수밖에 없다. 개념이란, (1) 사물에 대한 객관적 표상이다. 즉, 지적인 표상 과정의 결과로서 개념은 등장한다. (2) 개념은 대상을 그것이 맺고 있는 연결과 관계 속에서 드러낸 결과이다. (3) 그(개념) 속에는 오랜 생각과 인지 과정이 응축되어 있다. 이와 같은 개념의 정의에 따르면, 심리적 측면에서 사고 행위 자체에 내재된 기나긴 실천으로서 개념을 지시하는 것은 매우 옳다.
뷜러는 교육받은 성인들에게 "포유동물"이라는 추상적 낱말은 모든 종류의 동물 형태의 표상일 뿐 아니라 대상들의 사진 무리처럼 기억 속에 기계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기능이 참여하여 개념이 체계 속으로 들어온다고 보았다. 개념을 풍부한 판단의 복합체라고 본 셈인데 이는 일부 옳다. 이 이론은 개념 형성의 단일한 형태들에 있어서 정확하다. 이런 점에서 개념은 순수한 연합의 산물일 수 없으며 지식의 관계망 속에서 위치를 가진다. 우리가 보기에는 두 가지 점에서 그르다. (1) 판단의 과정을 단순한 재생산으로 가정한다. 생각과 개념 간의 관계를 연합적 연결로 이해한다. (2) 개념을 판단의 일부로 본다. 하지만 개념은 복잡한 판단체계이다.
개념 체계는 고유의 원리를 갖는 단일한 총체적 형성을 나타낸다는 이러한 표상 속에서, 우리는 개념이 실현되는 바탕으로서 형식과 내용의 통일에 대한 주된 관념을 발견한다. 사실상, 체계 속으로 들어온 판단들의 총체는 위계화되고 연결된 형태로 특정한 내용을 나타내며 내용의 일련의 지점들의 단위이다. 또한, 단일한 전체로서 작동하는 생각 행위의 총체성은 특별한 지적 메카니즘으로서, 특별한 심리적 구조로서 구성되며 판단의 복합체 혹은 판단체계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리하여 어떤 단위로서의 사고 활동을 이루는 일련의 행위들의 조합은 생각의 특정한 형태, 어떤 지적 행위 양식을 나타낸다. 이를 가지고 우리는 청소년의 생각의 내용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검토, 결과를 정리할 수 있다.
우리는 내용에 있어서의 모든 변화들은, 반복적으로 지적했다시피, 필연적으로 사고 양식에서의 변화를 함의한다고 추정할 수 있다. 우리는 "새로운 내용은 빈 형식을 기계적으로 채우지 않는다. 내용과 형식은 지성 발달이라는 단일한 과정을 이루는 두 요인(측면)이다."라는 심리적 일반법칙에 도달한다. 낡은 부대에 새 술을 붓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것은 청소년기 동안의 사고에 완벽하게 적용할 수 있다. 사고 양식은 그대로이며 다만 새로운 내용이 채워지는 것일 뿐이라는 것이 기존의 관념이었지만, 우리가 보기에 생각의 내용과 변화하는 형식은 통일체로서 지성발달이라는 하나의 과정을 이루는 두 요인이다.

청소년기 논리적 사고의 발달 - 청소년기 사고 양식의 중요한 변화
개념은 모종의 판단체계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개념 속에서 드러나는 통일된 활동은, 즉 체계가 드러나는 통일된 영역은 바로 논리적 사고이다. 논리적 사고는 개념들이라는 개별 요소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즉, 논리적 사고 발달은 개념을 양적으로 부가해가는 즉 개념 더하기 개념의 과정이 아니다. 우리는 논리적 사고를 "활동하는 개념"으로 정의한다. 즉 개념의 활동적, 기능적 형태가 논리적 사고이다. 청소년기에 일어나는 가장 중요한 사고 양식의 혁명적 변화는 개념 형성과 논리적 사고의 숙달이다. 오직 과도적 연령기만이 논리적 사고를 숙달한다는 것은 진정한 사실이다. 그리고 생각 내용에서의 심도 있는 변화는 오로지 논리적 사고 숙달 덕분이다.
Meumann은 14세경에서야 비로소 어린이들은 진정한 논리적 추론이 가능해진다고 보았다. 이에 대한 반박으로 더 이른 연령에 나타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대체로 학령기 끝 무렵인 11-12세에 나타난다고 주장하는데, 이 시기는 전논리적 사고형태의 끝무렵이자 논리적 사고의 숙달로의 진입하는 시기 즉 끝과 시작이 교차하는 시기이다. 모두 동의하는 지점은 학령기를 경유한 후에야 비로소 그리고 청소년기가 시작됨과 함께 실질적인 의미에서의 논리적 사고 형성으로의 이행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Meumann이 발달된 형태의 도착점을 거론한 것이라면 더 이르게 나타난다고 본 다른 학자들은 발달의 출발점을 거론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전혀 다른 견해의 학자들도 존재하는데 이들은 3세 어린이와 청소년을 똑같이 취급한다. 외적 데이터에 의존해서 3세 어린이의 발달된 논리적 사고를 기술한다. 이들은 논리적 사고가 개념 없이는 불가능하며 상대적으로 개념은 늦게 발달한다는 점을 간과한다. 그 이유는 의사개념 때문이다. 의사개념과 개념의 다름을 구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반박은 어린이의 생각과 청소년의 생각에 대한 비교-발생적 연구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어린이는 논리적 사고와 개념형성을 할 수 있는가?

어린이 사고의 특질
전학령기와 학령기 아동, 청소년을 발생적으로 비교해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1) 발생적 연쇄 속에 청소년의 생각을 위치시켜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2) 청소년의 생각에서 무엇이 새로운 것인지, 무엇이 발달하는지 밝혀야 하기 때문이다.
외적 이해에 매몰되면 청소년기 신형성이 새롭게 발달한다는 것을 과소평가하게 된다. 우리의 과업을 공식화하겠다. (1) 어린이는 본질적 의미의 논리적 사고를 할 수 있는가 (2) 어린이는 개념을 형성하는 기능을 갖고 있는가.
Uznadze는 전학령기(2세~7세) 어린이의 개념 형성에 대한 실험 연구를 했다. 개념형성과정의 두 기능인 추상과 종합에 대한 실험으로서 다양한 대상들을 분류하여 무리짓도록 하는 <분류과제>와 새로운 대상의 이름을 짓는 <명명, 일반화, 정의내리기 과제>를 실험대상자에게 요구했다. 발달의 이른 시기, 이른 단계인 전학령기 어린이의 개념의 등가물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들이 아직 개념을 숙달하기 전인데도 어른과 상호이해가 가능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러한 개념의 등가물은 어떻게 독특한가? 아동의 낱말의미의 구조 속에서의 내적 변화 과정을 차근차근 추적했다. 실험 결과, 3세 어린이의 낱말의미는 '혼합적 심상'이다. 3세 어린이는 개념을 향한 중요한 걸음을 내딛는다. 7세 어린이는 복합체적 사고를 한다. 복합체의 지배적 형태인 의사개념은 낱말과 구체적 대상과의 관계이다. 그는 4세에 일반 개념을 터득한다는 Stern의 연구를 반박한다. Stern의 입장은 주지주의적이다. 그는 외적 유사성을 토대로 발달된 논리적 사고를 어린 아동이 터득한다는 잘못된 결론에 이르렀다.
어린 연령대에서의 일반개념형성을 기술했다는 점이 Uznadze 연구의 업적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오류가 있다. 그는 (Stern보다 논리적 사고 숙달, 개념형성) 연령을 위로 이동시키기만 했다. Uznadze는 7세에 (개념형성을) 성취한다고 보았지만 이 시기는 의사개념 내지 잠재적 개념의 단계이다. 비록 7세에 (생각발달, 개념형성에서) 중요한 결정적 진전, 성취를 이루기는 하나 이 시기 아동은 아직 개념형성을 터득하지 못한 상태이다.

피아제의 연구 - 12세의 진전
피아제는 학령 초기 어린이의 개념 형성을 연구했다. 이 시기 어린이의 사고는 외적으로는 논리적 사고와 유사해보이나 질적으로는 사실상 논리적 사고 조작과 다른 사고구조이다. 학령기 이후인 12세가 추상적인 논리적 사고와 발생적으로 연결된다. 피아제는 "어린이는 작은 성인(성인의 축소판)이 아니다"라는 루소의 신조를 반복하기를 좋아했다. 피아제의 모든 연구의 바탕에는 이러한 신조가 깔려 있다. 초등(학령기)에서 중등(청소년기)으로 이행하는 시기에 사고의 발달은 이전 시기의 양적 성장, 풍부화, 형태의 확대를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그는 여긴다. 즉 질적 변화가 일어난다고 본다. 피아제는 어린이 사고구조 발달을 질적 문제로 바꾸어 위치시켰다. 이것이 피아제의 기여이다.
피아제는 Uznadze가 연구를 멈춘 곳에서 시작하여 학령기 아동과 청소년의 사고를 분석하여 다수의 질적 차이들을 정립하였다. 7세에 어린이는 주관적, 혼합적 연결에서 객관적, 복합체적 연결로 이행한다. 피아제는 어린이가 어른과 동일한 사고구조를 갖는 듯 보이는 것은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피아제가 연구를 통해 일반화시킨 결론은 형식적 사고는 오직 11-12세에 발달한다는 것이다. 7,8세와 11,12세 사이에는 혼합주의가 있다. 이 시기 어린이는 직접적 지각을 토대로 하지 않는 순수하게 언어적인 사고에서는 전적으로 모순을 나타냈다. 우리는 아동의 논리적 경험에 대해 논할 수 있다. 그렇지만 7,8세에는 매우 중대한 진전을 보인다. 이 시기에는 지각적 사고의 영역에서 논리적 사고 형태가 나타난다.
영유아기와 전학령기 어린이는 사고의 자기중심성이라는 특성을 보인다. 시각적 인상을 중심으로 전체를 연결하는 생각형태를 띤다. 7,8세에 중대한 전환을 맞게 되는데, 아동의 사고구조는 논리에 더 가까워진다. 하지만 여전히 이전 사고 형태가 남아 있다. 특히 순수하게 언어에 기반한 사고에서는 이전의 사고 형태(혼합주의)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7-12세 어린이의 사고의 두 영역에서는 두 가지 기본법칙이 나타난다.
(1) 전환 혹은 대체의 법칙이다. 시각적이고 인상의존적인 사고의 영역에서 어린이는 이전 시기의 특성(자기중심성, 혼합주의)을 보이지 않는다. 반면, 순수한 언어적 사고에서는 여전히 혼합주의에 종속되어 있다. 이 영역에서는 사고의 논리적 형태를 숙달하지 못한다.
학령기 어린이는 언어적 지평으로 이행한다. 이전에 이미 행동의 지평에서 숙달한 조작이 이제 언어의 지평으로 이행한다. 연합의 양적 증대와는 전혀 다르다. 마치 퇴행처럼 보이는데, 어린 아동의 사고의 특성은 결국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다만 어린이(유아적) 사고의 특성들은 구체적 사고의 지평에서 사라질 뿐이며 그 특성들은 언어적 사고의 지평으로 이동, 전환하여 그곳에서 표출된다.
(2) 의식적 파악의 법칙(혹은 깨달음의 법칙realization)이다. 유사성과 차이의 의식적 파악 발달에서 유사성이 차이보다 훨씬 늦게 출현한다. 전환의 법칙은 전학령기에서 학령기 기간으로 이행하는 동안 사고 발달이 왜, 어떻게 일어나는지 우리에게 설명해준다. 어린이는 자신의 조작을 깨닫기 시작하지만 단지 그럴 필요가 있을 때라야 그렇게 된다.
피아제는 사회적 요인의 엄청난 역할을 보여주기 위해 구체적인 예시를 든다. 피아제는 "어린이 사고의 구조적 기능적 발달에서 사회적 요인이 엄청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아동의 논리적 반성의 출현은 아동 집단에서 등장하는 논쟁의 직접적 영향에 의한 것이다. 외부적인 사회적 필요가 그들 사고의 올바름을 증명할 필요가 생겨날 때라야 어린이는 생각의 영역에서 똑같은 조작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논리적 반성은 실제 논쟁이 내적 측면에서 재생산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7,8세 이전에는 어린이에게 없었던 논리적 생각이 7,8세 무렵에 구체적 사고의 영역에서‘만’ 먼저 등장하며, 어린이는 언어적 생각의 지평에서는 전논리적 단계의 발달을 지속한다. 논리적 사고는 (자신의) 생각작용을 통제할 수 있을 때만이 가능하다. 즉 생각 작용들을 자신에게 종속시키고 통제하고 방향지울 수 있어야만 가능하다.
그리하여 피아제의 견해에 따르면 모든 생각을 예외 없이 논리적 사고와 동일시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논리적 사고는 다른 사고 형태와 비교했을 때 질적으로 새로운 성격에 의해 구분된다. 피아제는 "이것은 생각하는 존재로서 자신을 통제하는 인간의 경험이다." "논리적 사고는 자신의 조작을 의식적으로 파악하려는 노력이지 단순히 그 결과가 아니다. 그리고 논리적 사고는 그러한 조작들이 서로 모순이 없는지 확립하려는 노력이다."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논리적 사고는 숙달과 통제에 의해 특징지워진다. 피아제는 다음과 같이 논리적 경험과 심리적 경험을 비교한다. 논리적 경험은 타인과의 협력을 위한 도덕적 욕구, 강제와 관련되며 심리적 경험은 사실에 대한 욕구와 관련된다. 8-12세 아동의 사고는 이중적 성격을 보인다. 사고는 직접적인 시각과 실제 현실과 연결된다. 논리적, 형식논리적 사고를 어린이는 아직 할 수 없다. 대략 11-12세에 교육받지 못한 어른의 사고와 가까워진다.
논리적 사고는 자신의 생각에 대한 의식적 파악과 (의지적) 통제를 전제로 한다. 피아제는 그것이 가능한 이유로 직접적으로 어린이의 자기중심성의 결과인 논리적(형식적) 사고에서의 무능을 극복하도록 하는 사회적 요인을 강조한다.
12세 무렵, 삶의 방향은 새롭게 재편된다. 이는 어린이에게 어린이의 정신의 적응을 요구하는 전혀 새로운 문제들을 던진다. 어떻게 문제 해결의 과정에서 어린이는 더 새로운 사고의 내용을 이끌고 어떻게 새로운 내용은 그를 새로운 사고양식의 발달로 이끄는지 말해주는 명백한 사례가 있다. 아동 집단에서 논쟁의 발달과 형식-논리적 사고의 발달 사이에 존재하는 상호의존성이 이것의 명백한 가시적 사례이다.
(자신의 심리 조작을 의식적으로 파악함에 있어서 언어의 역할) 전환의 법칙을 보여주는 예가 있다. 비네-시몬 검사는 형식적 사고가 시작될 때 가능한 검사이다. 피아제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구체적으로 어린이에게 제시했다면 어린이는 틀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어린이는 숙고(언어적 사고, 말로 하는 생각)를 시작하자마자 실수를 했다. 자신의 조작을 깨닫는 것(의식적 파악)은 언어와 직접적이고 매우 밀접하게 관련된다. 그래서 피아제는 언어를 중요한 요인으로 언급한다.

의식적 파악과 내관 - 논리적 사고의 심리적 원천
심리적 측면에서, 추상적 사고 발달을 방해하는 본질적 요인이 무엇인가?
학령기 아동은 자신의 사고 작용(심리조작)을 충분히 의식하지, 즉 의식적으로 파악하지 못한다. 피아제 실험에서 보았듯이 학령기 어린이는 내관을 잘 할 수 없다. 논쟁과 반대의 압력에서만 어린이는 타인의 눈앞에서 자신의 관념을 확인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생각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즉, 내관을 하기 시작한다.
간단한 산수문제에 답을 한 7-10세의 어린이들에게 그 답을 얻게 된 동기, 이유를 물었더니 어린이들은 자신의 생각이 취한 경로를 재생하지 못했다. 즉 생각의 전 과정이 내관과 병행되지 않았다. 어린이는 자신의 사고를 의식적으로 파악하지 않는 듯 보였다. 혹은 알아차릴 수 없는 것으로 보였다.
(예) "50분 보다 5분 이른(빠른) 시간은?" "45분" "어떻게 그 답을 얻었니?" "내가 그것을 봤어요." 어떻게 생각했는지 계속 물어보면 "내가 45를 찾았어요." "10더하기 10 더하기 10더하기 10 더하기 5를 했다"고 대답.
어린이는 자신의 내적 조작을 의식적으로 깨닫지 못한다. 그리고 자신의 내적 조작을 통제, 조절할 수 없다. 그리고 이것은 어린이가 논리적 사고를 할 수 없는 원천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내적 과정을 지각하는 내관은 내적과정을 통제하는데 필요한 요인이다. 행동 통제와 숙달은 자기 자신에 대한 지각(자신의 행동 과정에 대한 반성)에 기반한다.
논리적 사고 발달에서 중요한 진전은 내관의 발달에서 비롯된다. 즉 자신의 내적 과정에 대한 지각에 기반한다. 논리적 사고는 의식적인 것이며 동시에 내관에 의존하는 생각이다. 하지만 내관은 늦게 발달하며 주로 사회적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아동에게 주어진 문제가 이에 영향을 준다. 자신의 내적 조작을 의식하거나 내관하는 능력의 부재는 논리적 사고 능력 결여로 나타난다. 내관은 사회적 요인과 문제의 영향을 받는다. 아동은 살아가며 점증하는 복잡한 문제에 대한 해결능력이 (아직) 없다.
<연구사례> 어린이는 어떤 심리조작의 내적 구조보다 외적 형태를 일찍 숙달(터득)한다. 예컨대, 수세기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오래 전에 어린이는 수를 센다. 언어에서는, 접속사 "왜냐하면"(인과율) "만약"(조건율) "비록"(배반율) 등을 오랫동안 (그 의미를 숙달하지 못한 채) 사용한다. 이렇게 어린이는 인과율, 조건율, 배반율 등을 의식적으로 깨닫기 전에 (일상에서) 사용한다. 이렇듯 어린이 말에서 논리적 범주보다 문법적 발달이 앞서듯이, 논리적 생각의 외적 형태 숙달(터득)은 특히 외적인 구체적 상황에 실행적, 시각적 사고의 과정에서 적용되듯이, 논리의 터득보다 앞선다.
11-12세 이전 연령 아동에 대한 피아제의 연구에서 대립관계는 아동의 말 발달에서 매우 일찍 등장한다. 구체적 상황에서 매우 일찍 사용하는 반면, 대립관계의 의미 자체에 대한 (논리적) 이해에 도달하는 것은 이에 비해 상당히 늦다. 문장완성 검사에서 13세 어린이의 96%는 평균적 이해 수준에 도달했다.
피아제의 연구에 상응하는 레온티에프의 연구에서는 11세-15세 연령의 아동, 평균 12-13세 어린이만이 마침내 인과관계와 대립관계를 완전히 구체적 상황들에서 숙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콜리야는 극장에 가기로 마음 먹었다. [왜냐하면 비록] 그는 돈이 없었다." "수레가 떨어져 부서졌다. [비록] 그들은 그것을 고치지 않을 것이다." "벨이 울린 후 모두 의회로 갔다. [왜냐하면 비록] 거기에서 회합이 있다."

학령기 어린이 생각의 특질
학령기 어린이의 사고구조에는 아주 어린 아동의 생각의 약점이 잔존해 있는 동시에 청소년의 생각(구조)와도 구분된다. 이를 피아제는 언어적 혼합주의verbal syncretism라고 표현했다. 5세 어린이는 "왜 태양은 땅으로 떨어지지 않니?"라는 물음에 "구름이 주변에 있기 때문이에요." "태양은 왜 뜨겁니?" "높기 때문이에요." "주변에 구름이 있기 때문이에요."라고 대답했다. 아동에게 동시에 지각된 이러한 인상들(높다, 구름이 있다)은 단일한 혼합적 이미지로 결합된다. 그리고 아동에게 이러한 초기의 혼합적 연결은 발달되고 차별이 있는 시간적, 공간적 인과관계와 논리적 연결과 관계를 대신한다. 동시에 아동에게 주어진 다양한 인상들의 혼합은 그의 지각의 핵을 구성한다.
학령기 어린이는 점차 혼합주의를 극복해나간다. 하지만 어린이는 혼합주의를 처음부터 완전히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 실행적, 시각적인 (구체적인) 사고의 영역에서부터 점차 극복해나간다. 이렇게 혼합주의는 완전히 극복되지 않은 채 언어적 추상적 영역으로 이동해서 그곳에서 나타난다.
(피아제의 속담-구문 연결 실험) 8-11세 어린이는 주어진 속담과 그것의 뜻을 나타내는 문장을 연결하는 과제에서 객관적 의미에 따라 연결시키지 않고 혼합적, 도해적, 언어적 (즉, 주관적, 인상적으로) 연결을 했다. 공통의 도해적 요소를 연결하는 등 혼합적 패턴으로 연결했다. 8세 어린이는 속담과 문장이 따로 주어졌을 때는 각각의 (객관적 의미를) 이해했으나 함께 주어져서 연결시키는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는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반응했다. "고양이가 떠나자 쥐들이 춤춘다." - "일부 사람들이 소동을 벌이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레온티에프의 지도하에 우리 연구진은 피아제의 실험을 수정하여 학령기 아동의 사고 특성인 "언어적 혼합주의"에 관한 실험을 수행했다. 몇 가지 함정(난관)을 삽입했다.
언어적 혼합주의가 아동에게 나타나는 이유는 아동의 사고 수준보다 이 검사가 어렵기 때문이었다. 제시된 문항들이 어려운 것은 그것이 구체적인 형태로 추상적인 사고를 요구한다는 것에 있다. 즉 구체와 추상의 결합을 요구하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다. 속담(구체)-문장(구체) 각각은 구체적이고 시각적, 도해적이다. 하지만 둘 간의 연결(관계의 파악)에서 요구되는 것은 추상이다. 속담의 상징을 이해해야 해결이 가능하다. 어떤 관념의 상징적 속성을 다른 구체적 내용으로 돌리는 것은 추상적 사고와 구체적 사고의 (복잡한) 통합을 요구하며 이는 오직 청소년기에 실현가능하다.
이 실험은 아동이 구체와 추상이 통일된(결합된) 사고를 하는 것을 어려워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지, 실험에서 보여준 어린이의 생각 특성을 모든 어린이 사고로 전이시키고 절대시하여 일반화시키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다. 또한 어린이들이 도해적 의미에 의해 도움 받는 경우 외에 다른 말로 표현된 의미의 동일성을 연결시킬 능력이 없다고 하는 것도 터무니없는 일이다. 단지 어린이는 특정한 실험 상황, 의도적으로 난관을 배치한 경우 추상적-구체적 사고의 통일에 어려움을 가진 실험 상황에서만 이러한 특성(언어적 혼합주의)가 지배적인 특성으로 나타난다.
발달이 지연된 경우, 과도기 연령에서 정신지체인 경우, 정상적인 아동이 학령기 초기에 보여준 모습을 계속해서 나타내는데 이처럼 발달지연은 발달이 되지 않은 채 과거의 사고구조를 유지하는 형태를 보인다. 발달이 지연된 13세 어린이(정신연령 10세)의 경우 설명을 요구하면 짝을 지은 과정이 아니라 특정 문구를 근거로 제시했다. 정확히 각각의 문장을 이해하고 있어도 그들 간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려워한다. 도해적 사고는 언어적 지성에서 지배적인 형태로 상당기간 지속되는데 이것은 관계를 정립(파악)하는데 걸맞지 않는 사고 형태이다. (예) "Not all that glitters is gold." - "Gold is heavier than iron." 두 문장에 각각 내포된 의미가 상당히 다른데도 주어 상의 공통점, 이미지 상의 공통점을 기준으로 연결시키고 관계 지음. 서로 모순되는 의미를 표현한 문장을 잇는 경우도 있음. 아동은 숨어있는 모순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두 문장을 동일하게 취급했다. 오로지 공통된 이미지에 이끌려 같은 의미로 취급하였다.(언어적 혼합주의)
학령기 어린이의 언어적 사고의 전형적 형태는 마치 전학령기 어린이의 시각적 사고와 같은 <연합적 연결>로 나타난다. 언어적인 사고에서는 관계를 파악하여 정립하는 것을 어려워하고 모순에 둔감하고 객관적 의미에 의해서가 아니라 주관적 연결에 따라 혼합적으로 연결한다. "어린이는 사실적인 것(사실에 입각한 연결. 대장장이, 탈 것, 말 간의 연결)과 논리적 정당화를 구분하지 않는다. 사실(여기서는 어린이가 지각한 것이 사실. 본질이 아닌 현상에 의해 판단하는 것)에 입각한 연결에 만족한 어린이는 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어린이는 종종 우리가 보기에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을 연결한다"(피아제).
이러한 어린이의 독특한 관계 연결을 블론스키는 어린이 생각에서의 <일관성 없는 연결>의 혼합주의라고 지칭한다. 어린이는 자신이 제시한 답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신의 결론에 맞춰서 원래 의미를 바꾸기도 한다.
실험을 통해 레온티에프가 도달한 중요한 사실은 아동은 "왜 그런 답을 했는지" 설명을 요구받을 때 자신의 결정을 종종 다시 생각해본다는 점이다. 연결을 정당화하고 언어로 표현하고 타인을 향해 판단의 과정에 착수할 필요(욕구)는 다른 결과로 이끌었다.
(논리적 사고 발달에서 말의 역할) 혼합적으로 두 문장을 연결한 어린이는 그것을 말로 소리 내어 설명해보라는 요구를 받았을 때,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리고 정확한 답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관찰 결과 어린이 자신이 한 것을 정당화하는 것은 단지 낱말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어린이의 생각의 전체 과정을 새로운 토대 위에서 표현한다. 말은 결코 평행하게 부착된 보조물이 아니라 그것은 언제나 과정을 표상한다.
'말'의 역할을 확증하기 위한 실험에서 두 방식 간의 차이를 비교했다. 학령기 어린이는 두 방식에서 큰 차이를 나타냈다.
(1) 첫 번째 사례 : 속으로 혼자 생각하기 방식. 속담 - 문장 연결하기를 혼자서 생각하며 내적 말에 의존하는 과정으로 진행하였다.
(2) 두 번째 사례 : 소리내어 말하며 생각하기 방식. 소리내어 말하며 생각하고 이유를 말하도록 요구하였다.
혼합주의적으로 연결하던 어린이는 그것을 소리내어 설명하기로 바꾸자 곧 객관적 연결에 따라 속담과 문장을 짝짓기 시작했다. 문제해결과정에서 바뀐 것은 내적 말에서 외적 말로의 변화였고 이렇게 바뀌자 문제해결과정의 성격자체가 변화되었다.
(내적 말의 발달 시기) 우리는 내적 말이 일반적으로 학령기가 시작될 무렵에만 발달된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했었다. 그것(내적 말)은 어리고, 약하며, 불안정한 형태이며, 아직 충분히 기능적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학령기의 내적 말과 외적 말 사이의 어긋남(불일치)은 학령기 어린이 생각의 가장 특징적 모습들이 나타나는 이유이다.
생각하기 위해 학령기 어린이는 타인에게 소리 내어 말해야만 한다. 외적 말은 의사소통 기능을 하는 것으로서 내적 말보다 일찍 아동에게 사회화되지만 아동은 아직 내적 말을 터득하지 못했다는 점을 우리는 안다. 정당화, 증명, 논쟁 등 사회적 요인이 토대가 되는 사회적 말은 더 지적이 되고, 더 논리적이 된다. 학령기에 내적 말과 외적 말은 분리된다.
○ 내적 말 : 관념에 대한 혼합주의적 연결의 지평 위에서 움직이고 여전히 자기중심적 사고의 특성을 간직한다.
○ 외적 말 : 논리적 지평을 따라 이동하며 이미 충분히 사회적인 것, 인식되는 것.
<소리내어 말하며 문제풀기의 효과> 학교교사는 아동이 문제를 잘 못 풀 경우의 방책으로서 소리내어 말하며 풀도록 하곤 한다. 터무니없는 답을 했던 학생이 소리내어 문제를 풀었을 때, 교사는 그 자신의 조작을 의식적으로 하게끔 가르친다. 즉 자신의 생각의 조절하고 통제하도록 한다. 자신의 생각 과정을 통제하도록 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교사는 어린이의 생각을 혼합주의적 지평에서 논리적 지평으로 바꾼다.
어린이들이 내관에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피아제의 산수문제 풀이과정에 대한 관찰을 떠올리자. 맞게 풀든 틀리게 풀든 그는 자신의 생각과정을 의식하지 않는다. 이 단계 어린이들의 사고는 비자발적involuntary이라는 특징이 있다. 자신의 생각 작용에 대한 의식의 결여는 역시 정확히 논리적 생각 부재의 심리적 등가물이다.
(어린이의 발달 과정에서) 낱말의미는 변화(발달)한다. 사물의 속성 중 하나였다가 사물의 이름이 되었다가 상징이 된다. 초기 학령기가 끝날 무렵 어린이는 자신의 조작을 낱말의 도움을 받아 수행할 때 자신의 조작에 대해 의식한다. 언어의미의 자의성(즉 상징성)을 이해하지 못하다가 11-12세경 어린이에게서 언어의미의 자의성에 대한 인식이 출현한다. 그 전까지는 이름과 이름 붙여진 대상을 구분하지 못한다. 자신의 조작과 낱말기능에 대한 비의식성은 (생물학적으로는) 성적 성숙의 단계에 있지만 문화적 원시성을 지닌 청소년에게서 지속된다.
(예) 14세 소녀. 가난한 농부의 딸. 카자흐 지방. 문맹.
"개가 무엇이지요?" - "그것은 더럽고 사람이 아니예요. 먹을 수 없어요. 그것은 더럽고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개예요."
14세 소녀. 보통의 농부의 딸. 약간 읽을 수 있음.
"참새가 뭐지요?" - "날개가 있는 나는 것이예요. 그것은 작기 때문에 참새예요. 카자흐 말로 그건 동물이라고 불러요."
"토끼가 뭐지요?" - "그것은 동물이예요. 작고 하얗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토끼라고 불러요."
"개가 뭐지요?" - 그것 역시 동물이예요. 그것은 더럽고 먹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개라고 불러요."
12세 소년. 반문맹인 부농의 아들.
"바위가 뭐지요?" - "자연에 의해 땅에서 나온 것이예요."
"초원이 뭐지요?" - "처음부터 창조되었던 것이예요. 물론, 초원은 만들어진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초원이라고 불러요."
"모래가 뭐지요?" - "아주 처음부터 모래는 지구 밑에서 형성된 것이예요. 그래서 모레라고 불러요."
"마멋(다람쥐)이 뭐지요?" - "그것은 특별한 동물이예요. 처음부터 그것은 마멋으로 만들어졌어요. 그래서 그것은 굴을 파고 거기서 살기 시작했어요. 내가 어떻게 이걸 알겠어요? 마멋이 새끼를 가지고 있어요. 그가 마멋을 만들었다고 저는 결론을 내렸죠."
이 사례에서 낱말은 사물의 속성으로 간주된다. 사물의 속성 중의 하나로써 그것은 자명하다.
어린이 사고의 사회화 과정(사회적 접촉, 교류)이 있어야 만이 지성화는 일어난다. 언어적 상호작용의 과정에서 자기 자신과 타인의 생각을 의식하게 되면서 어린이는 자신의 생각을 의식하기 시작하고 생각의 방향을 결정하기 시작한다. 내적 말과 생각에서 진행되는 사회화(사회적 접촉, 교류)는 과도적 연령기 논리적 사고의 발달에 있어서 기본적인 요소이다. 그리고 이는 청소년의 지성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의 중심적, 기본적 사실이다.
우리는 학령기 어린이는 구체적 사고의 지평에서만이 진정한 말뜻 그대로 논리적 사고를 한다는 것을 보았다. 언어적 사고의 지평과 추상적 사고의 지평에서 학령기 어린이는 여전히 혼합주의의 영향을 받기 쉬우며 모순에 둔감하며, 관계를 지각할 수 없으며 변환을 사용할 수 없다. 즉, 생각의 기본책략으로서 특수로부터 특수를 이끌어낸다.(일반화를 하지 못함.) 어린이는 개별(특수) 사이에 존재하는 공통적 관계를 추론하지 못한다. 일반과 특수의 관계를 학령기 끝무렵까지 터득하지 못한다. 타인과의 교류 없이는 어린이는 자기 자신을 의식할 수 없다. 어린이의 개념은 의사개념이다. 위계성과 종합이 결여되어 있는, 보편과 특수의 관계가 정립되어 있지 못한, 즉 체계가 없는 개념들의 무리이다. 그래서 모순에 둔감하다.

은유와 비유, 추상과 구체, 사회적 요인의 영향
이 연령기 사고 형식의 특성은 청소년의 인격구조 전반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Graucob의 연구는 두 가지 점에서 우리의 관심을 끈다.
(1) 우리가 앞서 방어하려던 생각과 같은 것을 보여주면서도 조금 다른 측면에서 보여준다. 우리는 전학령기 어린이도 학령기 어린이도 개념적 사고를 할 수 없음을 보였다. 그것은 과도적 연령이 되기 전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수의 연구는 과도적 연령 동안에 논리적, 추상적인 개념적 사고형태가 여전히 지배적인 형태가 아니며 다만 이제 막 발달하기 시작한 미숙하며 아직 안정적이지 못한 것임을 보여준다.
완전히 의식적이고 언어적으로 형식화된 생각은 청소년기의 지배적인 생각 형태가 전혀 아니다. Graucob가 정확히 지적했듯이 대단히 자주 우리는 결과로 나아가는 과정들을 의식적으로 파악하지 못하면서 단지 결과만 뚜렷이 개념으로 공식화되는 생각의 형태를 발견한다. Graucob의 표현에 따르면 이 시기 청소년의 생각은 산맥을 닮았다. 아침 햇살을 받은 봉우리는 환하게 빛나지만 그 밖의 모든 것들은 어둠 속에 감춰져 있다. 이것은 청소년의 자연발생적 생각에 대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학교교육과 관련된 청소년의 생각은 이보다 훨씬 체계적이고 신중한 형태이다.
(2) 과도적 연령기의 새로운 생각양식은 추상적 사고와 구체적 사고의 결합이다. 은유가 등장하고 낱말을 비유적 의미로 사용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Graucob는 청소년의 생각이 여전히 부분적으로는 전언어적 형태로 흘러간다고 지적한다. 사실, 이러한 전언어적 생각은 대개 단일한, 시각적으로 주어진 대상을 향하지 않으며 어린이들처럼 외적이며 비자발적이며 직관적인 시각적 심상을 향한다. 그것은 어린이의 시각적 사고와는 다르지만, 우리가 보기에 Graucob는 그 문제를 아주 정확하게 공식화하지는 않는다. Graucob는 이런 생각을 형이상학적 생각의 유형으로 간주하는데, 형식과 관련하여 그것은 신비주의자나 형이상학자와 유사하다. 우리는 전언어적 그리고 몇몇 후언어적 사고가 종종 언어의 전적인 참여와 더불어 일어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이 이어지는 장에서 언어의 토대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Potebnya는 낱말 없는 사고를 장기판을 보지 않고 하는 체스 게임에 비유한다. 그는 유사한 방식으로 낱말 없이 생각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말한다. 예컨대, 과학에서 부분적으로 공식이 낱말을 대신한다. 그러나 그는 결코 낱말 없이 인간다운 방식으로 생각하는 방법을 아는 것은 오직 낱말을 통해서이며 말하는 교사 없는 농아 없는 농아들이 영원히 동물에 가까운 상태로 남게 됨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덧붙인다. 이러한 추론은 대단히 옳다. 낱말 없이 인간다운 방식으로 생각하는 법을 아는 것은 오직 낱말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다음 장에서 우리는 언어적 생각이 시각적, 구체적 사고에 미치는 영향을 자세히 검토할 것이다.
과도적 연령기 동안 이루어지는 말과 생각의 결합은 아동기 때보다 훨씬 견고하다. 말을 점차 숙달하는 가운데, 그리고 새로운 개념을 통해 말이 풍부해지는 가운데, 그러나 무엇보다도 추상적 사고가 형성되면서 직관적 경향이 제거되는 것이 여기 결합되는 가운데 말과 생각은 더 단단히 결합된다. Graucob는 아동 초기를 제외하면, 인간 생애의 어떤 단계에서도 과도적 시기에서처럼 명백하게 생각의 발달이 말의 발달과 함께 앞으로 이동하는 것을 볼 수 없다고 믿는다. 더 새롭고 더 날카로운 차이를 만드는 것이 가능해진다. 괴테는 "언어 그 자체가 창조적이다."라고 했다. 생각의 언어적 형태화와 함께 청소년기 동안 은유와 비유적으로 낱말을 사용하는 것이 등장하는 것을 연구하면서, 그 저자는 이러한 구체적이고 추상적인 사고의 독특한 결합은 청소년의 새로운 성취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매우 정당하게 지적한다. 청소년의 언어 조직은 훨씬 더 복잡한 구조를 자랑한다.  
대등관계와 종속관계의 연결이 나타나며,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언어적 구조는 점점 더 복잡해지지만 충분히 정교화되지는 않은 생각의 표현이다. 그리고 다른 한 편으로 지성이 더 발달하기 위한 수단이다.

과도적 연령과 아동기의 은유와 비유는 질적으로 어떻게 다른가?
어린이의 언어에서조차도 어린이의 직관을 향한 경향을 강화하는 그림에 견주는 것은 존재한다. 하지만 이것들은 추상적인 어떠한 것도 수반하지 않는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은유는 어린이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어린이에게, 은유는 인상의 실제적 연결이다. 청소년은 이와 다르다. 여기에는 구체와 추상의 독특한 관계가 있다. 구체와 추상의 관계는 더 높은 수준으로 발달한 언어를 토대로 할 때만이 가능하다.
보통 구체와 추상을 잘못 비교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두 생각의 형태는 실제로는 대립적이지 않으며 상호 연결의 관계에 있다. 우리는 모순적으로 보이는 결과에 도달한 걸일까? 추상적 사고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것과 발맞추어 나란히 직관이 점차 사라짐에도 불구하고 청소년들의 언어에서 구체적인 시각적 비유가 증가하고 최고점까지 도달하고 그 후 성인의 언어에 가까워지면서 그것들이 감소하기 시작한다.
(Graucob) 어린이의 은유들은 객관적이고 본래적인 어떤 것의 인상을 남긴다. 은유들은 주관적 과정의 열매이다. 은유에서, 대상들은 원래 그대로 연결되지 않고, 지성의 도움을 받는다. 그리고 은유는 종합적 응시의 토대 위에서 발달하는 것이 아니라 내관의 토대 위에서 발달한다. 이런 이유로, 구체와 추상적 사고의 화해(결합)는 과도적 연령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서정시에서조차, 청소년은 반영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그의 운명은 사상가이자 시인이어야 하며, 시인이자 철학자로서 수행해야 한다는 그 사실에 있다.
동떨어진 추상적 개념들은 단순하고 구체적이고 가까운 것들을 명료하게 해야만 한다. 이러한 은유들에서, 추상적인 것은 구체적인 것의 도움으로 명료해지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것은 종종 추상적인 것의 도움을 받아 명료해진다.
청소년의 생각에 담겨있는 추상과 구체라는 요인들은 학령기의 생각에 그것들이 담겨있는 것과 질적인 관계에 있어서 다르다는 사실에 우리는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생각발달에 환경이 미치는 영향) Kroh는 과도적 연령기에 대한 이론들이 생각 발달을 대체로 저평가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청소년기 지성 발달은 학령기 끝무렵 시작되는데 외적인 원인들에 의해 영향을 받아 생각에서의 차별화의 과정이 진행되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확립했다. 과도적 연령기만큼 생각 발달에 환경이 미치는 영향이 매우 특별하게 중대한 의미를 점유하는 시기는 결코 없다. 지성이 발달하면서, 지역(도시/농촌), 성별(소년/소녀), 아동이 처한 다양한 사회 계급적 수준은 점점 더 차별화된다.
명백하게, 이 나이 때의 생각 발달 과정은 사회적 요인들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다. 이 속에서 우리는 청소년의 생각발달에서의 주된 성취가 생각의 문화적 발달의 형태를 띤다는 사실을 확증하고자 한다. 환경(사회적 요인-성별, 지역, 사회 계급)이 지성발달에 미치는 영향은 특히나 청소년기에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지성의 생물학적 발달이 아닌, 역사적으로 발달된 생각의 종합적 형태들을 숙달(터득)하는 것은 이 연령에서 일차적 내용을 구성한다. 이것은 다른 사회적 계층에서의 지적 발달과정이 어떻게 다른 그림을 보여주는지를 보여주는 일련의 Kroh의 논문을 인용한 이유이다.
지적 발달을 형성하는 외적 요인들은 과도적 연령에서 결정적인 의미를 가지는 듯 보인다. 지성은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이 아닌 생각의 사회화의 산물인 행동양식들을 획득한다.
Kroh는, 우리가 보았듯이, 주관적이고 시각적인 이미지들이 15-16세 무렵에 가까워지면서 사라지기 시작함을 확립했다. 저자의 견해로는, 이의 주된 이유는 청소년의 언어 발달, 그의 말의 사회화, 그리고 추상적 사고의 발달이다.
말을 위한 시각적 토대는 감소한다. 낱말을 위한 토대인 개념들은 그들의 특정한 의미를 잃는다. 어린에게 있어서, 시각적 경험은 내용을 결정하고 종종 아동의 표현의 형식 또한 결정한다. 성인에게 있어서는, 말은 훨씬 더 자기 스스로의 토대에 훨씬 많이 의존한다. 낱말-개념에 있어서, 그것은 문법과 구문, 공식화의 표준적 규칙 속에서 그것의 실체를 가진다. 언어는 점점 더 시각적 개념[착상]과 분리되며 의미의 수준으로 점점더 독립되어 간다. Kroh의 가정처럼 말의 자동화(시각으로부터의 독립. 대상과 의미의 분리)의 과정은 과도적 시기에 현저하게 일어난다.
E. Jaensch(직관주의eidetism에 대한 연구)는 역사적 인간이 되어가는 동안 원시적인 생각에서 발달된 생각으로 이행함에 있어서, 말은 시각적 이미지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도구(수단)으로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정확하게 지적한다.
이와 연결되는 과도적 연령기의 생각의 또 다른 특성이 있다. 그것은 청소년의 주의가 내적인 삶으로, 그리고 구체적인 것에서 추상적인 것으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청소년의 생각에 추상화가 점차 침투하는 것은 과도적 연령 동안 지성의 발달에 있어서 중심적 요인이다.
그러나, Kroh가 정확히 지적했듯이, 사물들의 복합체에서 특성을 추출, 분리하는 것은 이미 어린 아동들에게도 가능하다. 하지만 추상화가 특성 추출이라는 의미에 국한된 것이라면 동물들도 추상화를 할 수 있다. 달리 말해, 이런 종류의 추상화는 정확히 말해 과도적 연령에 획득되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일반화로서의 추상화는 특성추출로서의 추상화와 구분되어야만 한다. 그것은 아동이 여러 구체적 대상들을 하나의 일반적 개념(의 하위)에 종속시킬 때 등장한다. 하지만 어린이는 이런 종류의 개념을 극도로 일찍 형성하고 사용한다. 분명히 이것은 청소년의 사고에 속하는 것, 새로운 것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다. 일반화로서의 추상화는 아동으로 하여금 시각적 지각에 접근할 수 없는 내용을 생각하도록 이끈다. 사람들은 청소년이 처음으로 추상의 세계에 스스로 들어간다고 이야기할 때, Kroh가 말했듯이, 그러한 진술은 이러한 추상화의 형태가 단지 이 연령에서만 접근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대체로 청소년들은 유사한 개념들 간의 상호관계를 파악하는 것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 추상적 특성들을 분리하는 것 자체에 접근할 수 있게 되는 것보다는 특성들의 연결들, 관계들 그리고 상호의존성들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 청소년은 개념들 간의 관계들을 확립한다. 판단들을 통해, 청소년은 새로운 개념들을 발견한다.
우리가 보기에, Kroh의 실수는 시각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속담과 추상적 표현의 사용이 구체적 사고에서 추상적 사고로 이행하는 과도적 단계로 설정했다는 것이다. Kroh는 이러한 형태가 다른 연구자들에게 포착되지 않았으며, 게다가 그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추상적 생각의 발달의 마지막 단계라고 믿었다.
나중에 더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추상과 구체의 결합에 아동은 접근할 수 없다. 구체적인 사고로부터 추상적 사고로의 이행도 마찬가지로 아동은 할 수 없다. 하지만 구체적인 생각이 변화하는 독특한 형태는, 유사하게 추상적인 것을 토대로 이미 등장한 형태에 접근한, Potebnya가 말한 대로 낱말 없이 생각하는 방법을 아는 것은 최종 분석에서는 낱말에 의해 결정되듯이, 똑같은 것이 논리적 결과들 속에도 포함된다.
Deuchler가 지적하듯이, 이러한 결론들은 4세 어린이에서만큼이나 일찍이 명백하다. 얻어진 결과에 합당한 논리적 필요조건에 어린이는 여전히 접근하지 못한다. 보통의 아동에게 이러한 조작은 오로지 성적 성숙의 시기동안 가능해진다. 논리적-문법적 생각을 지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오직 이 시기에 발생한다. 어린이의 경우, 문법의 터득은 주로 언어에 대한 느낌, 말하는 습관, 유사성의 형성을 기반으로 한다.
Kroh는 정당하게도, 청소년의 생각에서의 이러한 성취들과 수학 영역에서의 성취를 연결한다. 그는 증명과정과 수학법칙과 조건들의 독립적 발견을 이해하는 과정은 사실상 과도적 연령 동안에만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청소년의 생각 내용의 일련의 변화는 형식적 생각의 이러한 특징들과 쌍을 이룬다. 타인들에 대한 이해와 심리적 범주들을 터득, 통제하는 것에 의해 준비된 자신에 대한 앎(자기-지식)이라는 과업은 청소년으로 하여금 그의 주의를 점점 더 외적 삶의 측면을 향하게끔 한다.
청소년에게 있어서 외적 세계로부터 내적 세계를 분리하는 것은 그가 당면한 발달과 함께 욕구, 과업과 관련하여 필연적이다. Kroh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삶의 계획을 창조하는 과업은 시간이 흐를수록 비본질적인 것으로부터 본질적인 것을 분리할 것을 요구한다고 믿는다. 논리적 진화 없이는, 이는 수행될 수 없다. 이러한 점에서, 지적 활동의 더 높은 형태들로 발달하는 것은 과도적 연령 동안 그토록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물론 즉각 등장하는 과정은 아니다. 어린이는 이미 시각적으로 자료들과 사물들, 의미들, 행위들의 비교적 복잡한 연결을 지각하는 방법을 알았다. 과도적 연령기는 오직 그것을 가지고 추상적 내용들과 일반적 내용을 지적으로 상호 관련시킬 수 있게 된다. 이것과 더불어 진정한 논리적 역량들이 발달한다. Kroh는 아동의 환경은 이러한 생각에 결정적인 영향을 행사한다고 되풀이한다. 저자의 관찰에 따르면, 소작농의 환경에서, 우리는 자주 학령기 아동의 지적 수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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