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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호 [책소개] 1. 어린이 자기행동숙달의 역사와 발달Ⅰ

2013.02.13 18:45

진보교육 조회 수:851

<책소개> 1
비고츠키 선집 3권
[어린이 자기행동숙달의 역사와 발달Ⅰ]
살림터, 2013년 살림터비고츠키연구회 옮김

손지희 / 상신중, 진보교육연구소 비고츠키교육학실천연구모임

  

『어린이 자기행동숙달의 역사와 발달Ⅰ』, 비고츠키 선집 한국어판 3권

2011년 『생각과 말-심리학적 탐구』, 2012년 『도구와 기호』에 이어 2013년 1월 비고츠키 선집 세 번째 책이 출판되었다. 무려 554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번역서이다. 해설이 절반 가량이니 분량에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영문판 비고츠키 선집은 총 6권이며 이번 한국어판 선집 3권에 해당하는 이번 책은 4권인 『고등정신기능 발달의 역사』의 3분의 1분량에 해당된다. 두 권이 더 번역되어야 한국어판 『역사와 발달』은 완성된다.
근데 이게 끝이 아니다. 앞으로 한국어 분량으로 7권 정도 번역작업을 더 해야 하고... 총10권이 되어야 "비고츠키 선집 드디어 한국어로 완역되다!"라는 감격스런 기사를 접하게 될 수 있을 것 같다. 읽기만도 벅찬데 번역작업을 5년째 해온 켈로그 교수를 비롯, 비고츠키 연구회 샘들께 꾸벅. 번역이라고는 하지만 그냥 한국어 문장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번역본을 살피고 러시아어 원문을 대조해가면서 누락은 말할 것도 없고 행여나 왜곡이 발생하지 않도록 했을 뿐 아니라 난해한 문장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해설과 필요한 배경지식들을 글상자에 넣어 읽는 이가 엄청 많은 공부가 되게끔 배려했다. 전반적인 흐름을 파악하는데 관심이 있다면 글상자를 과감히 점프하고 본문을 쭉 읽어내려가다가 막힐 때만 글상자를 참조해도 무방하다. 글상자에는 재미있는 이야기들도 많고 어마어마한 지식들이 들어 있으므로 완독에 한 번 도전해봄이 어떨까.

고등정신기능 발달이라는 창을 통해 인격의 문제에 접근하고자 한 비고츠키

비고츠키 교육학을 주제로 한 이야기 자리에서 접하는 흔한 문제제기는 '고등정신기능'과 '발달'에 대해서이다. 명칭부터가 맘에 걸리는 것이다. 고등은 저등 혹은 하등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불평등한 개념, 차별적 개념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발달'은 듣기만 해도 피곤한 말이다. 학습은 고통이고 개발, 계발 등의 말은 신물이 나는데 인간발달을 전면에 내세우는 이론이 비고츠키 교육학이라니. "꼭 공부해야 해? 굳이 발달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강한 까닭은 아마도 경쟁시스템에서 우격다짐으로 지식을 꾹꾹 눌러담김 당하다보니 그리고 그것이 곧 발달이라고 오해되고 있는, 양적 발달 관념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리라. 역설적으로, 비고츠키는 양적 발달 개념을 근본적으로 비판한다. 비고츠키에 대한 개론서 정도의 정보를 단편적으로 접한 경우라면 한국적 상황과 결합되어 이런 오해가 생길 법하다. (구체적인 내용과 비고츠키가 현대 특수교육의 사상적 기초와 원리를 제공한 학자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이런 오해는 가신다.)
앞서 언급한 대로 러시아어 선집과 영문판 선집에서의 제목은 "고등정신기능 발달의 역사"이다. 맘에 걸리는 두 낱말이 다 들어있는 셈이다. 제목에 담긴 사연이 재미있다. 비고츠키 사후 미출간 원고 더미에서 이 책이 발견되었을 때 제목은 없었다고 한다. 이 책은 "고등정신기능의 발달의 역사는…"이라는 말로 시작된다. 그래서 무제로 남아 있는 작품에 첫 낱말을 따서 제목을 붙이는 전통을 쫓아 제목을 붙였다고 한다. 한국어판은 비고츠키가 고등정신기능 발달의 역사는 아직 쓰여지지 않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감안하여 고심 끝에 새롭게 "어린이 자기행동숙달의 역사와 발달"라고 제목을 지었다고 한다. 하지만 온전히 밝혀내지 못했을지라도 비고츠키가 이 책을 통해 집중적으로 다룬 주제는 고등정신기능과 그것의 발달이다.
고등정신기능이라는 말은 비고츠키가 처음 사용한 말이 아니다. 처음 이 용어를 쓴 학자는 실험심리학의 창시자인 분트라고 알려져 있으며 당시 심리학의 관심주제였다. 제대로 규명되지 않고 있을 따름이었다. 사실 알고 보면 고등정신기능은 대단한 것 같지만 별개 아니다. 많은 성인이 일상적으로 구사하는 기능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논리적 기억, 자발적 주의, 창조적 상상력, 개념적 추상적 사고, 심미적 예술적 취향 등의 고등정서, 계획, 숙고, 예측 등이 그것이다. 이렇게 나열하니 엄청난 것으로 보이지만 무슨 일에 앞서 계획을 세우고 뭔가에 대해 숙고하고 일어날 일을 예측해보고 메모해서 기억하고 글쓰기를 하고 암산을 하고 말로 생각하고 개념 체계를 이해하는 등등 이러한 행동의 내적 측면이 고등정신기능에 해당된다고 보면 된다.
물론 인간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보장되는 기능들은 아니다. 그런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그것은 가능성만을 열어줄 뿐이다. 이런 고차적 기능들은 생물적 특성에 기인하는 저차적 기능을 토대로 하여 기호 사용을 매개로 하는 문화적 발달과정과 엮이면서 획득된다. 비고츠키는 행동의 저차적 형태와 고차적 형태는 변증법적 지양의 관계에 있음을 설명한다.

[3-79] 바로 이 말(지양-글쓴이 주)을 사용하여 우리는 기초적 과정과 그것을 조절하는 규칙이 고등 행동 속에 묻혀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이들이 고등 행동 형태 속에서 종속되고 숨겨진 채 나타난다는 것이다. (…) 이런 의미에서 분석은 고등 형태와 저차적 형태를 굳어지고 무관하며 서로 다른 실체로 간주하는 형이상학적 사고방식에 대항하는 실제 무기가 된다. (역사와 발달, 362쪽)
[3-82] 저차적 형태 없이는 어떤한 고등 행동 형태도 불가능하지만 또한 저차적 혹은 보조적 형태들이 주된 것의 본질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 우리 연구의 과업은 이 주요 형태(고등형태-글쓴이 주)가 구성하고 있는 본질이 무엇인지 결정하는 것이다.(365쪽)

요컨대 고등정신기능은 인간 무리에서 고등한 존재를 구별하고 솎아내기 위한 엘리트주의에 물든 개념이 아니라 인간의 고유성을 나타내는 개념이다. 인간의 고유성이란 개별 인간에게 있어서는 주체성이자 인격이다. 비고츠키는 고등정신기능의 총체가 인격personality이라고 보았다. 이를 내 나름대로 풀어쓴다면, 정서, 의지, 지성이 기계적으로 산술적으로 더해진 것이 아니라 상호 의존하고 영향을 미치면서 총체적으로 결합된 산물이 바로 인격이다.
당대 심리학 지형은 아동발달에 있어서 자연적 노선과 문화적 노선을 제대로 구분하지 않고 생물학주의에 치우치거나 정신주의에 치우침으로써 고등정신기능 발달을 설명하는 데에 실패하고 있다는 것이 비고츠키 논의의 출발점이다. 그리하여 고등정신기능에 대한 새로운 연구의 의의와 방법론적 전환을 예고하며 다음과 같이 밝히면서 1장을 마무리한다.

1-149~150]"생물적 발달과 문화적 발달 형태는 단일한 연쇄 속에서 공존하는 것이 아니고, 각각의 발달 형태가 서로 평행한 위치에 놓이는 것도 아니며, 그 어떤 종류의 기계적 관련도 맺지 않는다. 반대로 이러한 고유하고 독특하며 서로 다른 발달 형태들은 가장 고등학고 복잡하면서도 통합된 전체로 합금된다. 이 합의 구성과 발달의 근본적 법칙을 밝히는 것이 우리 연구의 기본과제이다. 아동심리학은 고등정신기능의 문제 혹은 어린이의 문화적 발달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해왔다. 따라서 아동심리학에서 모든 심리학의 핵심적이고 중요한 문제인 인격과 그 발달의 문제가 닫힌 채로 남아 있다. (…) 오직 전통적 아동심리학의 방법론적 테두리 밖으로 걸음을 확고히 내디딤으로써 우리는 아동의 인격이라고 명명될 만한 이유가 충분한 고등정신 통합체의 발달에 대한 연구로 향할 수 있다. 어린이의 문화 발달의 역사는 인격 발달의 역사로 우리를 인도한다.(역사와 발달, 119~120쪽)


문제의 분석에 앞서 분석의 문제를 제기하는 비고츠키

2장과 3장에서 비고츠키는 1장의 말미에서 예고한 대로 방법론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이번 책은 거의 방법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으로 나올 책에서 지각, 주의, 기억, 의지 등의 정신기능들이 각각 다루어진다.
먼저 비고츠키는 당대의 심리학 분파들이 취하는 일견 다양해 보이는 방법들이 실은 하나의 토대 위에 있다고 비판한다. 바로 S-R(자극-반응) 도식이 그것이다. 대학 1학년 때 들은 교육학 개론 강의 내용 중 내 머릿속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도 S-R 이론이다. 2장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비고츠키의 논증과정과 그 결과이다. 행동주의, 반사학, 연합주의는 물론 이를 비판하면서 새롭게 등장한 형태주의 심리학 역시 따지고 보면 S-R의 도식을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음을 다소 길게 논증해간다. 현상을 통해 본질에 다가가기 위해 비고츠키는 철저히 변증법에 의존한다.
비고츠키가 보기에 S-R이론은 아무 것도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도식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당시 학자들은 여기에 전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에 고등정신기능이라는 문제의 핵심에서 벗어나 겉돌기만 했던 것이다. 특히 그들은 자극-반응 도식으로 구성된 각종 실험에서 두 가지 오류를 범했다. 첫째, 주어지는 자극(과제)과 별도로 실험자가 피실험자에게 하는 언어적 지시 즉 말의 독특한 역할을 간과했다. 이러다보니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고등 기능과 저차적 과정이 공통적 속성만 포착하고 말이 매개가 되는 고등정신기능의 고유한 특성은 놓칠 수밖에 없었다. 둘째, 연습에 해당하는 예비 실험의 결과는 싹 무시하고 본격적인 실험의 결과만을 가지고 분석하려 들었다. 말하자면 발생이 다 끝난 결과물만을 취한 셈이므로 정신기능이 발생하는 과정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에 내재하는 공통성은 인간 심리에 대한 자연주의적 접근이다. 이 대목에서 비고츠키는 엥겔스를 인용한다.

2-55] 이러한 관점들은 엥겔스에 따르면 "자연이 인간에 작용하고 자연적 조건이 어디서나 인간의 역사적 발달을 결정한다."는 것만을 내세우고 "그에 대해 인간 역시 자연에 작용하고, 변화시키며,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새로운 조건을 생성해 낸다."는 사실을 도외시하는 공통점을 지닌다. (역사와 발달, 176쪽)

비고츠키가 바닥까지 들추어낸 결과 S-R도식과 자연주의의 문제는 인간에 대한 관점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올바른 연구를 가로막는다. S-R도식과 인간 심리에 대한 자연주의적 접근은 인간 행동의 기본적인 특성으로서 수동적인 본성을 암시적으로 가정한다. 따라서 이들에게 있어서 동물이나 인간이나 외부 자극에 대해 수동적이므로 다를 바가 없어지는 것이다. 다만 더 복잡해지고 정교해질 뿐이다. 따라서 이러한 도식은 인간의 저차적 행동을 동물과 비교해서 양적 차이와 복잡화라는 차원에서 설명할 수 있을 지 몰라도 인간행동의 새로운 특질을 파악하는 데는 무능하다.
비고츠키는 인간의 능동성에 주목한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자유의지로 나타난다. 비고츠키가 보기에 이는 인간의 역사에서 명백한 사실로 드러났음에도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행동을 역사 밖에서 탐구하려 한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이야기하기 위해 비고츠키는 뷔리당의 당나귀 우화로 말문을 연다. 당나귀 입장에서 선택이 도저히 불가능한 똑같은 자극(똑같이 맛있는 같은 양의 건초더미)이 동시에 주어질 때 당나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죽고 만다. 재미있게도 파블로프는 이를 진짜로 실험했다. 개는 즉시 광란에 빠졌다. 요즘 말로 개는 멘붕된다. 몸을 끊임없이 움직이고 침을 끊임없이 흘려댄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도 선택하지는 못한다. 이런 실험을 거친 불쌍한 견공은 약물치료를 통해 회복을 도모했어야 한다고 한다. 비고츠키는 묻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궁지에 처해서 인간은 실제로 어떻게 대처하는가? 실험 속의 개처럼 그리고 우화 속의 당나귀처럼 되고 말까? 실제 상황에서 인간은 인위적 자극을 스스로 도입하여 궁지의 상황을 벗어났다. 이것과 관련한 즉 선택과 관련한 인류의 오래된 흔적기능(비고츠키가 설명을 위해 도입한 용어로서 현재에는 실질적 가치를 잃어버렸으나 그 흔적은 남아 있는 기능들)은 제비뽑기이다. 이것이 심리적 측면에서의 '자유의지'의 원형인 셈이다. 인간은 인위적인 자극을 스스로 도입하여 스스로의 행동을 결정해왔다. 아주 오래전부터.
다시 분석의 문제로 돌아오면, 비고츠키는 당대의 분석 경향을 '요소로 분해'하는 것이라고 비판적으로 검토한 후 고등 행동 형태에 대한 심리학적 분석의 과업은 이 세 가지 계기에 의지해서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하면서 기존의 연구경향과 대비하여 각각을 설명한 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3-37] 사물이 아닌 과정 분석, 단순히 과정의 외적 징후를 하나하나 구분하는 것이 아닌 진정한 연결과 관계를 드러내는 따라서 기술적이 아닌 설명적 분석, 그리고 마지막으로 출발점으로 되돌아가서 심리적 화석화를 거친 어떤 형태의 발달 과정을 모두 복원하는 발생적 분석. 이 세 계기는 모두 함께 취해지며, 고등 심리 형태를 기술심리학이 가정하듯 순수하게 정신적인 현상으로 보거나, 연합 심리학이 주장하듯 기초적 과정들의 단순한 누적으로 보지 않고, 발달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질적으로 고유하고 진정 새로운 형태라고 보는 새로운 이해로부터 기인한다.(역사와 발달 324쪽)


문화적 발달 즉 고등정신기능의 발생 법칙

이 책은 전체 5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고등정신기능 발달의 문제(문제의 명료화), 2장 연구의 방법, 3장 고등정신기능의 분석, 4장 고등정신기능의 구조, 5장 고등정신기능의 발생 이다. 앞서 3장까지의 내용을 개략적이나마 소개했다. 다음 4,5장 그리고 앞으로 번역될 부분에서 비고츠키가 진력을 다해 설명하는 부분에 해당하는 것은 내가 보기에 다음의 문장이다. 고등정신기능 발달 즉 인간의 문화적 발달의 발생 법칙이다. 비고츠키 관련 책과 글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문장이기도 하다. 비고츠키가 '법칙'이라고 공식화한 몇 안 되는 것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기도 하다.  


5-59] 우리는 문화적 발달의 일반적 발생 법칙을 다음과 같이 공식화할 수 있다. 어린이의 문화적 발달에서 모든 기능은 무대에 두 번, 두 국면에서, 즉 처음에는 사회적으로, 그런 다음 심리적으로 나타난다. 처음에는 사람들 사이에서 정신 간 범주로, 그런 다음 어린이 내에서 정신 내 범주로 나타난다. 이것은 자발적 주의, 논리적 기억, 개념 형성 그리고 의지 발달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우리는 표현된 입장을 하나의 법칙으로 간주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물론 외부로부터 내부로의 전이는, 구조와 기능을 변화시킴으로써 과정 자체를 변화시킨다. 모든 고등 기능과 그 기능 간 관계의 배후에는 발생적으로 사회적 관계, 즉 사람들 사이의 실제 관계가 존재한다. 그러므로 인간 의지의 주요 원칙 중 하나는 사람들 간의 기능 분리의 원칙, 지금은 하나로 합쳐진 것을 두 부분으로 분할하고, 고등정신과정을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드라마로 실험적으로 재현하는데 있다.(역사와 발달, 490쪽)
5-65] 피아제와는 반대로 우리는 발달이 사회화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가 정신 기능으로 변형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믿는다. (역사와 발달, 493쪽)

이 진술 속에는 비고츠키가 창안한 문화역사주의 심리학의 요체가 담겨 있다. 이와 같은 공식화는 마르크스의 입장을 심리학적으로 공식화한 것이라고 간주할 만하다. 비고츠키에 따르면 "인간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라는 마르크스의 진술은 문화적 발달의 역사가 우리에게 가져온 것(문화역사적 주체 형성-글쓴이 주)에 대한 가장 완벽한 표현이다.


비고츠키와 대화하면서 읽기

제한된 지면에 꾸역구역 책내용을 마저 소개하기보다는 비고츠키를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몇 가지 포인트를 제시하고 글을 마치고자 한다.
첫째, 전이의 문제와 비판적 점유의 문제에 주목하면서 읽기이다. 외적 활동이 내적 심리 기능으로 전이되지 않는다면 학교에서 하는 모든 활동은 의미를 잃어버린다. 예를 들어보자면, 연합주의 심리학자인 손다이크는 물론 우리와 비교적 친숙한 철학자인 듀이 역시 전이를 부정했다. 전통주의 비판과 이분법의 극복이 그의 철학적 과제의 중심이었다. 듀이는 전통주의의 모든 것을 비판하고 버렸다. 이는 학교에서의 활동이 생활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이런 생각은 너무도 많다. 실제 상황 그 자체를 고스란히 경험하는 교육활동이 아니면 쓸모없다는 실용주의적 생각은 아주 폭넓다. 하지만 비고츠키는 형식교과이론을 전부 버리지 않았다. 그 긍정성과 올바른 부분, 즉 전이라는 아이디어를 취했다. 이른바 비판적 점유이다. 학교에서의 여러 활동들이 어떤 내적 기능으로 전이되는지 생각하면서 읽는다면 교수학습의 발달적 의미에 새롭게 눈뜰 수 있을 것이다. 비고츠키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지 않았으며 그것이 가능하다고도 올바르다고도 여기지도 않았다. 당대 심리학 이론과 전통적 이론의 긍정적 부분을 비판적으로 점유함으로써 발전을 이루어냈다. 항상 그는 역사 위에서 시작한다.
둘째, 변증법에 주목해서 읽기이다. 비고츠키가 심리학을 도약시킬 수 있었던 데에는 비판적 점유와 더불어 변증법적 방법의 역할이 크다. 나는 변증법을 몰랐다. 그리고 여전히 잘 모른다. 비고츠키를 공부하면서 중요하다고 인식하기 시작했고 더 알고 싶어졌으며 그렇게 사고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비고츠키의 개념을 빌어 표현하면 변증법은 아직 내게 진개념이 아니라 '복합체'인 셈이다. 중요하다, 어렵다, 알쏭달쏭하다 등의 이미지와 정반합, 양질전화, 부정의 부정,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 마르크스가 헤겔의 변증법적 관념론을 뒤집었다 등의 개별적 사실들이 체계 없이 머릿속에 나열되어 있을 뿐이지 사고의 방법으로 전유하지 못한 상태이다. 현상으로부터 본질을 알아내고자 한다면 사고의 방법은 변증법이어야 함을 비고츠키를 보면서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다. 마르크스가 변증법적 유물론을 무기삼아 자본론이라는 업적을 이뤘다면 비고츠키는 마르크스의 유물론을 통해 인간의식의 자본론을 시작했다. 변증법에 주목하면서 비고츠키를 공부하면 변증법이 조금은 분명히 다가오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낭만적 과학자인 비고츠키와 대화하면서 읽기이다. 독자이자 학생의 입장이 되어 비고츠키와 대화한다고 생각하고 읽는 것도 의미 있는 독서방법이다. 선집 번역을 이끌고 있는 켈로그 교수는 교사를 누가 가르쳐야 하는가라는 마르크스의 질문에 대해 "그것은 바로 비고츠키다"라고 하였다. 프레이리는 비고츠키를 공부하지 않고서는 가르칠 준비가 충분히 되었다고 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 문제와 더불어 "왜 공부해야 하지? 굳이 발달해야 해?"라는 반감 내지 의문과 관련하여 비고츠키의 제자이자 동료인 루리야(1902~1977)의 책 『사라진 기억을 쫓는 남자』를 권한다. 1941년 2차 세계대전 독일군과의 전투에서 총상을 입고 뇌의 일부가 손상된 한 남자의 이야기인데 루리야는 25년간 이 환자와 교류하면서 그의 불굴의 노력을 돕는 친구이자 의사였으며 한편으로는 뇌손상으로 인해 벌어진 일을 꼼꼼히 기록하고 분석한 과학자이다. 그는 말할 수 없이 극심한 고통을 이겨내면서 정말 의지적으로 25년간 2천 페이지에 달하는 일기를 쓴다. 그나마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기도 했다. 엄청난 고통을 감수하면서 이 남자는 자신의 기억을 찾기 위해 투쟁한 이유는 하나였다. 인간다운 존재이고 싶어서였다. 낭만적 과학자라는 모순적 개념은 비고츠키가 루리야와 공통으로 지향한 바였다. "지식의 구조"로 유명한 제롬 브루너는 "루리야가 세운 전통에 따르면 관찰자는 단순히 실험을 가하는 외부자가 아니라 일종의 동역자로서 그 대상에게 다가간다."라고 하였다. 제롬 브루너는 말한다.

"루리야의 정신 덕택에 오늘날 우리는 청각 장애인, 시각장애인, 뇌졸중 환자, 절단수술 환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즉 그들을 단순히 '의학적 문제'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인간 조건의 어려움을 잘 해결한, 혹은 잘 해결하지 못한 동료인간으로 간주하게 된 것이다."(루리야,『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242쪽 1987년 영문판 해제)

루리야는 "고전적 과학과 낭만적 과학의 두 가지 입장 가운데 과연 어떤 것이 생명체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지 혼란을 느껴 왔다. 사실 내가 비고츠키에 이끌린 주 원인 중의 하나도 그가 이러한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기 때문이었다."라고 말한다. 비고츠키와 루리야가 함께 세운 가슴 뭉클하고 아름다운 연구전통과 자세를 토대로 '인간이해의 전문가인 발달과 협력의 교사상'을 정립하는 이론적, 실제적 실천이 현장의 교사들 사이에서 활발히 일어나고 교류되기를 기대해본다.

비고츠키는 말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이 되는 것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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