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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띠의 영원한 안식처 내쇼날리즘과 올림픽

                                                                                            진보교육연구소 해외동향분석팀

들어가면서
  벌써 몇 년전 일이다. 임지현 교수의 ‘민족주의는 반역이다’이다라는 책이 출간되어 화제를 몰고 왔었다. “5000천년 단일민족, 순수혈통...”의 대한민국에서 이 책의 출판은 지금까지도 논란이 벌어지고 있으며 민족주의 진영으로부터 따가운 질시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2008년 8월 8일 베이징 시간 오후 8시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화려한 불꽃 놀이로 올림픽이 시작되었다. 1000억원 이상의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 개막식에는 수 만의 인원이 동원되어 중국이라는 국가의 탄생과 현재까지의 모습을 ‘장려’하게 표현하였다. 화려함과 웅장함과 더불어 더운 한여름임에도 돋아나는 한기는 나만이 느끼는 것일까?
  올림픽 성화 봉송이 서울을 지나갈 때 우리는 두 번 놀랐다. 우선 엄청나게 많은 중국 학생들이 남한에서 유학을 하고 있었다. 어디서 무엇을 배우고 있을까? 그리고 두 번째 2002년 붉은악마를 벤치마킹했는지 빨간 옷과 붉은 오성홍기의 물결들.... 실은 붉은색은 중국을 상징하는 색이 아닌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2002년 서울은 시청과 광화문을 중심으로 붉은 물결이 넘실거렸다. 티셔츠에서 두건, 심지어 얼굴에도 붉은 칠을 한 붉은악마들에 의해 남한은 점령되었다. 때마침 축구팀의 선전도 있어서 예선전으로 끝나지 않고 길게 붉은 물결이 짧은 여름의 서울을 메웠다.
‘대한민국’을 목이 터져라 외치는 붉은악마에게 국가대표팀이 경기 선전에 대한 요구 조건은 ‘군면제’였다. 붉은악마들은 대한민국을 생각하면서 응원을 했지만 정작 선수들은 군대 면제를 통한 해외 리그의 진출이 목적이었다. 기막힌 동상이몽(同床異夢)!



  6년후 2008년 봄 서울시내에 베이징 올림픽 성화가 도착했다. 전국각지에서 공부하고 있던 중국의 유학생들과 이주 노동자들이 중국의 국기인 붉은 오성홍기를 들고 서울 시내로 쏟아져 나왔다. 19세기 중반이후 제국주의 열강에 의해 고통 받고 신음 했던 중국인민들의 올림픽 개최에 대한 희망과 기쁨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쁨의 표현에 대한 한국인의 반응은 싸늘하다 못해 남의 잔치에 재를 뿌리고자 하는 심산을 노골화 하였다. 원래 남의 민족주의와는 양립하지 못하는 것이 민족주의의 생리인가 보다.

올림픽의, 올림픽에 의한, 올림픽을 위한
  올림픽 개최지가 결정되면서부터 베이징은 대대적인 개조 작업에 들어갔다. 명나라, 청나라를 거치면서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문화와 멋을 가지고 있었던 시가지 중심부에 위치한 수많은 후통(胡洞)에 대한 ‘근대화’라는 이름의 철거가 시작되었다. 실은 후통은 사합원이라고 해서 전통적인 ㅁ 자 모양의 집들이 모여 있는 거리이자 동네이다. 20세기 격랑을 지내오면서 베이징의 거대해지고 인구가 밀집하면서 이 사합원이 단독주택에서 공동주택으로 변신을 하게 된다. 한 집에 많게는 10세대 이상 사는 공동주택이 되면서 쇠락을 하게 되었다. 좁고 냄새나는 거리, 칸막이도 없는 공중변소, 연탄을 이용한 난방문화 등등이 현대화를 상징하는 올림픽에 맞지 않다고 생각되었나 보다.
철거된 이 자리에는 수 십 층에 이르는 초현대식 빌딩과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서고 베이징의 스카이라인을 바꾸고 있다. 그 많던 후통에 살던 베이징의 민중들은 어디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잡고 정착할 것인가?
  베이징의 대기는 악명높다. 이른 봄에 시작된 황사와 한여름의 스모그 그리고 겨울의 화석연료의 연소로 인한 대기오염으로 1년 내내 가을철 며칠을 빼고는 파란 하늘을 보기 힘든 실정이다. 이에 중국정부는 특단의 조처를 내렸다. 베이징을 포함한 인근 주변의 모든 공장의 가동을 중지시킨 것이다.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중화학 공장은 물론이고 관계없는 중소규모의 경공업 공장에도 적용이 되어 많은 원성을 샀다. 공장주야 세금을 감면해주고 나름대로의 해택을 통해 살아가기에 별 문제는 없지만 이 공장들에서 일을 하는 노동자들에게 있어서 정부의 조처는 가뜩이나 힘든 생활에 짐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올림픽이 있기에 참아야 한다.
  중국인들은 8자를 좋아한다. 8의 발음이 재물을 불러온다는 의미의 發財(파차이)의 파와 같다고 해서 8자가 많이 들어있는 핸드폰 번호는 엄청난 프리미엄을 붙여서 거래가 이루어진다. 그래서 인지 2008년 8월 8일 8시에 개막식을 하였다. 날씨가 좋은 10월 달도 아니고 한참 무더운 한여름에 올림픽! 그래서 특단의 조처를 정부는 취했다. 수 조원을 쏟아 부어 베이징 주변의 구름을 향해 요오드 성분의 인공 강우 약품을 박격포와 항공기를 이용하여 뿌렸다고 한다. 덕분에 베이징 시민들은 올림픽이 열리기 전 한 여름에 매일 저녁 규칙적으로 내리는 비 덕분에 여름인데도 덥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베이징 주변의 농민은 비가 오지 않아 거북이 등짝마냥 갈라진 농토를 보면서 한해 여름 농사를 포기해야 했지만....  

올림픽의 정치화 그리고 신화화
  올림픽을 국가주의, 민족주의와 본격적으로 접목한 국가는 히틀러의 독일이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통해 1차 대전의 패전국의 이미지를 벗고 세계만방에 독일민족의 우수성을 선전하였다.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새롭게 건설된 백색의 스타디움에서 나찌식 경례를 하면서 입장하는 선수들에게 무한한 은혜(?)를 베푸는 지도자의 모습! 그리고 강인한 체력과 균형 있는 몸매를 보여주면서 전세계에 독일 민족의 우생학적 우월성을 과시하였다. 이 모든 사실을 우리는 레니 리펜슈탈이라고 하는 희대의 다큐멘타리 영화 감독의 ‘올림피아’라는 영화를 통해 볼 수 있다.
출전한 선수들에 대한 영광이 원조 올림픽의 전통이라면 이에서 벗어나 출전선수의 출신국이 도드라지게 되는 올림픽의 시작이 베를린 올림픽이다.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사건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이후 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면서 올림픽은 국가주의, 민족주의의 대결장을 넘어서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진영의 이념의 대결장이 되었다. 덕분에 남한의 사람들에게 적국이었던 소연방에서 열렸던 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은 이름만으로 존재한다.
  유난히 스포츠를 좋아한 대통령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처음 추진한 일이 올림픽 유치였다. 08년 베이징올림픽과 관련한 중국에서 일어난 일들이 20년 전 이미 서울에서 일어났었다. 서울 시내의 보신탕집이 철퇴를 맞고 서울시 외곽으로 쫓겨났다. 당시 대규모 빈곤층이 밀집되어 살고 있었던 상계동 지역이 주거 환경 개선이라는 이름으로 주민의 눈물겨운 투쟁에도 불구하고 폭력적으로 철거되면서 88년 서울 올림픽은 잠실과 더불어 ‘상계동올림픽’으로 기억된다.



고대로의 회기와 과거에 대한 노스탈지아
  히틀러의 제3제국이 붕괴될 때 수상이었던 괴벨스가 선전상으로 나찌즘을 선동하였다고 한다면 제3제국의 이상을 건축물로 구현하려 했던 히틀러에게는 제3제국 붕괴당시 군수상이었던 건축가 슈페어(A. Speer)가 있었다. 유명한 뉘른베르크 전당대회의 무대 세트를 기획했고 베를린 히틀러 총통부를 건축했던 히틀러가 아꼈던 건축가이다. 석재로 조성한 베를린의 웅장한 총통부는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시작된 베를린 재건축의 시작이었다. 마지막 전승기념탑과 거대한 돔의 건설은 수포로 돌아갔지만 도면과 모형으로 우리는 그 거대한 규모와 웅장한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만약 건축되었더라면 엄청난 폐건축물로 환경을 엄청 파괴했겠지만 다행이 건축되지 않아 다행이다. 아리안 족의 우수성을 철의 법칙으로 믿었던 히틀러와 나찌들도 고대 그리이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과 , 고대 로마의 판테온의 주랑, 그리고 가까이 중세 시대 피렌체와 로마의 산타마리아 델 피오리 성당과 산 파올로 성당의 거대한 돔 양식의 짬뽕을 그들의 정신을 구현하려 했던 건축물의 원형으로 삼으려고 하였다.
  중국 고대의 신화와 전설 그리고 수천년 전의 전제 왕정시대의 일들을 소재로 한 베이징 올림픽의 개막식 연출도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재의 비루하고 고통스런 모습에 대한 거울 이미지로 잊혀진 그리고 허구의 검증 불가능의 고대를 삼는 것은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의 공통의 고향이다.
우리의 경우는 어떠한가? 미국식 기업경영, 미국식 은행 운영, 어메리칸 스타일의 의식주 문화가 판을 치고 영어 몰입교육까지 시도되고 있지만 민족주의 진영의 영원한 고향은 고조선 단군이요, 고구려 주몽이다. 저 인도 아대륙 북쪽 히말라야 골짜기의 석가모니도 고대 한민족의 일족인 고리족의 왕자라는 말에는 ‘논어를 쓴 공자도 동이족 이다’는 깜찍한 애교로 보인다.

중립적인 거대한 자아로서의 민족과 국가

19세기 민족주의 발흥의 원인과 유래를 개인적 심리적 측면에서 찾아보면 니체의 경구가 떠오른다.

“ ‘원한의 인간’은 숨는 것, 비밀통로들 그리고 뒷방을 좋아한다. 그는 어떻게 침묵하는지를 ,어떻게 잊지 않는지를, 어떻게 기다리며 그리고 어떻게 임시변통적 자기 비난과 자기 비하를 하는지를 이해함으로써 모든 가려진 것들에 의해  그는 그만의 ‘세계’, ‘안정’, ‘상쾌함’이 전부인양 주술에 걸린다. ” (니체 ‘도덕의 계보’에서 )

라고 하면서 19세기에 도래한 시민사회와 시민사회의 ‘시민들’을 폄하하면서 아울러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이런 인간은 ‘삶을 긍정하는데’에는 거의 관심이 없는 본능적인 자기 확신과 자기 보존에 의해 추동된 자기 중립적이고, 독립적인 ‘주체’- 자아-의 믿음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
(니체 ‘도덕의 계보’에서 )

  니체의 나찌즘과의 연관성은 지난한 논쟁거리이다. 니체를 옹호하는 쪽은 뇌혈관 문제로 쓰러져 식물인간으로 병석에 누워 있을때 그의 누이에 의해 국가주의로 왜곡되었다고도 하니까 논쟁은 접어두어야만 한다. 그리고 시민사회의 문제 이전에 자본주의적 사회 경제적 구조를 도외시 한 부분도 접어두자. 단지 우리는 여기서 나찌즘에 이용되기 전 젊은 철학자 니체가 본 이른바 시민사회에서의 일반적인 시민들의 의식 경향과 멘탈리티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과 비관적인 판단을 엿볼 수 있다.
  ‘원한의 인간’들로 구성된 사회에서 삶의 긍정과 주체성은 거세되고 본능적인 자기 확신과 보존의 원칙만 강조된 상태에서 자신만의 ‘세계’, ‘안정’ 그리고 ‘상쾌함’의 주술 속에서 안주하지만 자신의 짐승적인 비루함에 갈증을 느끼고 결국 자기중립적이고  자기독립적인 주체나 자아를 필요로 하는데 바로 이 주체나 자아가 민족 내지는 국가가 되는 것이다.
즉, 시민사회에서 민족이나 국가는 도덕과 가치관의 까다로운 기준과 잣대에서 벗어나서 오직 경제적 동물로만 살아가는 인간에게 있어서 부족한 그 무엇(인간다움?)의 대체물로서 만들어지고 이것을 중립적이고 독립적인 자아와 동일시한다고 볼 수 있다.
매일같이 반복적인 삶 속에서 주체성과 삶의 긍정은 어느덧 사라지고 매일매일의 노동과 의식주 해결이라는 동물적인 욕구만이 강요되는 상황에서 거대하고 웅장한 커나란 또다른 나의 모습을 국가와 민족에서 찾고 여기에 속절없이 희망을 건다.

고향의 파괴,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생각하면서
  안온함 또는 가정의 따뜻함이 독일어로 heimlich이다. 이 말과 고향을 뜻하는 Heimat는 동일한 어원을 같는다. 올해도 어김없이 짧은 명절 기간에도 고속도로는 고향으로 향하는 귀성차량으로 붐빈다. 부산 사직 구장에 롯데 자이안츠를 응원하는 관람객이 한해 130만을 넘어섰다고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현재 개인의 삶과 경제는 unheimlich하다. 가계빚이 600조를 넘어서고 있으며 환율 폭등에 주가 폭락 등의 외재적 변수로 자영업자들이 울상이다. 의식주에 대한 비루함을 넘어서 노력의 여하와 관계없는 몰락의 징조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1차 대전 이후 공포스런 인플레이션 상태에서 나찌즘이 등장하였다. 아울러 1차 대전 상황에서  일방적 정전 선언을 한 러시아에서는 사회주의 혁명이 시작되었다. 두 개의 서로 다른 길이 있다.
  상해의 호화판 주상복합 아파트의 값의 폭락이 강남의 아줌마들의 입에서 한숨과 섞여 나오고 중국 펀드를 통한 투자 손실이 사무실 밖 흡연구역에서 직장인들의 담배 연기 속에 떠돌고 있다. 막연한 기대와 믿음의 대상으로의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에 대한 도전이 다시금 시작되려고 한다. 그 정점으로 국가주의, 민족주의라는 마지막 배를 중국은 베이징 올림픽을 통해 탄 것은 아닐까? 우리는 이 배에 타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타려고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내려야만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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