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19호 특집_교육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위하여

2004.04.27 15:28

jinboedu 조회 수:1264 추천:35

(특집) 총선이후의 정세전망과 교육운동진영의 대응과제

교육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위하여

특집팀


1. 들어가며


1989년 전교조의 결성 투쟁은 교육 운동의 흐름에서 큰 분기점을 이루고 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이야기 하면 전교조 결성 투쟁을 기점으로 교육 운동이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이전에도 몇몇 교사들 사이에 교육 문제를 고민하고 이를 집단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실천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실천들이 대중성을 띠면서 사회적 관심으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고 교사가 지배세력이 부여한 고정된 역할을 뛰어넘어 이에 저항하고 이를 극복하려는 저항의 집단적 주체로 즉 교육 운동의 주체로 사회에 모습을 들어 낸 것도 바로 전교조 결성 투쟁에서 시작되었다. 나아가 전교조 결성 투쟁을 계기로 그동안 무권리 상태로 교육 정책 결정에 철저히 배제되어 있었던 학부모들이 학부모 단체를 결성하여 집단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였으며, 교육 관련 시민 단체들이 속속 결성되기 시작하였다. 드디어 교육 운동이 사회 운동의 한 부문으로 자리 잡았으며 교사와 학부모 등이 교육 분야에서 불완전하나마 시민권을 획득하기 시작하였다.
전교조 결성을 계기로 대중적 운동의 모습을 띠기 시작한 교육 운동의 연륜도 벌써 15년이나 되었다. 결코 짧은 세월이라 볼 수 없다. 만약 교육 운동의 성과가 미미하다면 시간의 부족함을 핑계 삼을 수 없을 만큼의 긴 시간이라는 의미에서 그렇다. 한국 사회의 교육 문제에서 가장 핵심적인 병리적 증상인 사교육비 문제만을 보더라도 교육 운동 15년의 세월 동안 더욱 악화되면 되었지 근본적인 해결은커녕 현상적인 완화도 이루어 내지 못하였다. 학교에서의 입시 위주의 교육도 전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자본의 무한 경쟁 이데올로기가 확산되고 경제적 위기가 겹치면서 교육은 더욱 더 철저하게 개인적인 지위 상승과  사적인 생존 수단으로밖에는 여겨지지 않고 있다. 중 고등학교 집중되었던 입시 교육이 아래로는 초등학교 위로는 대학으로-물론 대학에서는 취업 공부이지만 그 본질은 같다.-까지 확산되고 있다. 교육이 우리 사회 구성원의 다수의 행복을 위하여 그리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그 무엇으로 기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철저히 봉쇄되고 있는 것이다. 즉 현재 한국 사회의 교육에게 부과된 역할은 개별적인 노동력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 그리하여 노동 시장에서 자본에 선택되고 가능하면 유리한 조건으로 자본에게 구매되는 될 수 있도록 학생의 정신과 신체에 자본이 요구하는 것을 최대한 각인시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본이 국가 권력을 매개로 교육의 역할을 자본이 요구하는 노동력 양성-물론 이는 당연히 노동을 수행할 수 있는 기능 자체뿐만 아니라 자본의 지배에 순응하고 나아가 자본의 요구를 자기의 요구로 동일시 할 수 있는 정신적 정서적 태도 즉 이데올로기적 태도의 양성까지 포함한다.-으로 제한하려는 시도가 항상 학부모와 학생의 절실한 요구로 현상한다는 것이다. 1)  즉 자본의 교육에 대한 지배가 강압적이고 억압적으로 관철되는 것이 아니라 학부모와 학생의 자발적인 요구로 전치되어 나타난다. 이런 상황에서 자본의 요구를 학생의 정신과 신체에 각인시키는 교사의 노동은 학생에 대한 사랑과 교사로서의 성실함으로 인식된다. 설혹 자기 노동의 그러한 성격을 개별 교사가 간파한다 할지라도 그것을 개별적으로 뛰어 넘을 수 없다. 기껏 할 수 있는 일은 자본의 요구와 학생의 요구 사이에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틈새 사이사이에 자본이 요구하는 것 이외에 그 무엇을 끼워 넣는 것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그러한 노력은 그 틈새를 더욱 벌이기보다는 그 틈새가 봉합되면서 무력화된다.
그렇다면 교육 운동 진영은 지난 15년 동안 이러한 교육의 본질적인 문제를 진지하게 대면하여 왔는가? 그리고 이러한 본질적인 문제로부터 파생되는 핵심적인 증상인 사교육비 문제나, 입시 위주의 교육을 해결하기 위한 나름의 방책을 마련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하여 노력해 왔는가? 만약 이러한 역할들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면 그 원인은 무엇일까? 이 글은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 현재의 교육 운동 진영을 진단해 보고 그 해결 방향을 모색해보려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교육 운동 진영의 평가는 주로 단기적인 사업 위주의 평가에 머물러 있었고 교육 운동 진영 내의 담론도 대부분 단기적인 사업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의 전술적인 문제로 제한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이러한 논의를 전개해 나갈 수 있는 풍부한 근거들이 부족하다. 더구나 문제의식을 지나치게 크게 잡으면 논의 자체가 추상적인 이론적 논의로 귀결되기 쉽다. 이 글은 분명 그러한 제한성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쯤 한 번은 교육 운동 전체를 커다란 시야 위에 올려놓고 진단하고, 중장기적인 방향성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논의의 활성화를 위해 문제를 제기해 본다.

2. 시민사회 시민운동
최근 들어 교육운동 진영 내에 일정한 이견들과 입장의 차이가 커지고 있다고 한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전교조'는 '교육개혁시민연대'에서 빠져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고 하는데 그 주요한 이유가 전교조는 시민단체가 아니고 노동조합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입장들이 내거는 표면적인 이유는 전교조는 노동조합이기 때문에 교육의 전반적인 문제보다는 교사의 이해를 우선시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반면에 교육 관련 시민단체들은 시민이라는 중립적인 입장에서 교육 문제를 바라볼 수 있고 전체 시민의 보편적인 이해를 대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산물인 시민 사회론과 이를 지탱하는 핵심적인 이념인 자유주의가 깊게 배어 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전체 사회 구성원들을 시민으로 주체화(호명)한다. 이 때 '시민' 이라함은 동등한 권리를 지닌 자율적인 개인들이다. 그들은 선거에서 누구나 똑같은 표를 행사하며, 시장의 게임에 동등한 자격으로 입장할 수 있다. 이들 자율적이고 평등한 개인들이 모여 있는 곳이 시민 사회이며 이곳에서 계급은 고려되지 않거나 매우 부차적인 정체성일 뿐이다. 즉 그가 자본가이거나 노동자이든,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남자든 여자든 시민 사회에서는 모두 동등한 개인으로 현상한다. 기회의 평등-사실은 매우 형식적이고 기만적이지만-이 보장된다면 결과의 불평등은 어느 정도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 결과의 평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개인의 자유와 자율이 침해받기 쉬우며, 시민 사회의 존립 자체를 위협할 수 있는 심각한 불평등은 시민사회의 도덕적인 힘에 의해 어느 정도 완화시킬 수 있다. 또한 시민 사회론에서 국가는 기본적으로 국민의 보편적 이해를 대변한다. 왜냐면 자율적인 시민의 힘으로 구성하였기 때문이다. 만약 국가가 그렇지 못하다면 그것은 국가가 자율적 시민들에 의해 구성되는 과정이 즉, 절차적 민주주의가 왜곡되었기 때문이지 국가 자체의 본질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의회도 마찬가지이다. 시민들의 공정한 선거로 뽑는다면 의회는 시민들의 정치적 대변 기구가 될 것이다. 하지만 국가권력과 의회는 오히려 자기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시민들의 보편적 이해의 대변자 구실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즉 예외 상황이 일상화된다. 그것은 국가나 의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도록 오작동을 일으키는 이질적인 요소들이 지속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국 사회에서 그것은 지역주의, 금권선거, 보스 중심의 비민주적 정당들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와 의회가 제 기능을 찾기 위하여 시민운동이 필요한 것이다. 시민운동은 끊임없이 근대적 시스템을 오작동하게 하는 이물질들을 제거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이는 정치적 분야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그것이 정치든, 경제든, 교육이든 마찬가지이다. 근대적 시스템 자체-그것이 대의제 민주주의든, 자본주의든, 공교육 체제든-는 문제가 없는데 단지 그것이 작동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시민운동이 지향해야 할 것은 시스템 자체의 변혁이 아니라 시스템의 작동을 정상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시민운동은 체제내적인 개량적 운동일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시민운동은 대의제 민주주의의 원활한 작동과 자본주의적 시장의 공정한 룰의 유지를 근본적인 목적으로 삼는다. 가끔 길거리 정치-요즈음의 촛불 집회처럼-도 벌어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스템의 원활한 작동을 위한 것으로 제한된다. 체제의 울타리를 넘쳐흐르는 에너지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질서의 재정립으로 귀결된다.  
이러한 시민운동 적 관점에서 체제 변혁적인 계급 운동은 비합리적 운동으로 보일 것이다. 그것은 계급이라는 집단적인 힘으로 공정하고 자율적인 시민 사회를 파괴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즉 자율적이고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시민 사회에 입장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이라는 집단적인 힘으로 시민 사회에 입장하는 것은 시민 사회라는 개념 규정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들의 시야에는 계급 간의 권력의 불균형이 포착되지 않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시민운동은 부르조아 민주주의와 공명한다. 양자는 모두 직접민주주의보다는 대의제 민주주의를 선호한다. 대중의 자율성의 직접적인 발현보다는 항상 어떤 매개 과정을 통한 재현을 선호한다. 그것은 대략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첫째로 사실 그들은 시민들이 계급으로 분열되어 있음을 잘 알고 있으며, 직접 민주주의는 계급으로 분열되어 있는 사회에서 지급계급의 지배력을 급속히 침해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대의제 민주주의만이 지배 계급의 권력을 유지해 줄 수 있음을 직감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시민운동은 지배계급의 이익과 전면적인 충돌을 피하려 한다. 왜냐면 그것은 부르조아 민주주의의 산물인 시민사회의 장을 파괴하는 것인 동시에 지배 계급으로 거센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자기들의 존립 근거 자체를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시민운동의 존립 근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대중들의 직접인 진출과 대중들이 권력을 직접 전유하는 것은 국가(또는 자본)와 시민 사회의 조정자로서 시민운동의 존립을 위태롭게 만든다. 시민운동(또는 시민 단체)은 다른 국가 기관이나 정당과 다르게 권력을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에 권력을 지닌다. 특정한 대중을 조직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전체 대중을 대변할 수 있게 된다. 중립적인 조정자, 시민의 이해를 사심 없이 대변할 수 있는 대의체로서 시민운동(시민 단체)은 사실 부르주아 정당의 구멍을 메우는 역할을 한다. 권력 없는 권력체로, 대중없는 대중의 대표체로. 부르주아 정당들이 포획하지 못하는 체제를 넘어서려는 에너지들을 끊임없이 체제 내로 수렴하면서. 시민운동이 표면적으로 내걸었던 근대적 시스템의 정상적 작동은 언제나 실패한다. 왜냐하면 근대적 시스템의 오작동은 우발적인 증상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에 내재해 있는 모순의 발현이기 때문이다. 계급적으로 분열된 사회 속에서 민주주의는 온전한 모습을 갖추기 힘들며, 자본주의적 착취가 중단되지 않는 이상 시장에서의 공정한 게임은 불가능하다. 단지 시민운동이 항상적으로 성공하는 것은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를 신비화는 효과를 산출하는 것이다. 계급적 적대를 시민 사회 내의 정상적인 갈등으로-따라서 합리적으로 풀 수 있는 대립으로-, 국가의 계급적 지배를 중립적 통치 행위로-물론 국가가 중립성을 지키도록 시민운동이 항상 감시해야 하지만-, 이질적 계급을 동질적 시민으로, 대중의 역동적 투쟁을 선거와 올바른 대리자의 선택의 행위로, 주체적 민중을 계몽의 대상으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시민운동의 역할을 우리의 현실 속에서 부정적으로만 평가할 수 없다. 자본주의의 상부구조가 언제나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아니다. 오히려 자본주의의 상부구조로서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서구 사회의 예외적인 경험일 뿐이다. 자본주의는 전지구화 되었지만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전지구화 되지 않았다. 식민지 경험을 겪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피지배 계급은 기본적인 시민권을 획득하고 있지 못한 상태이다. 또한 일시적으로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쟁취했다 할지라도 파쇼 통치로 퇴행할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다. 따라서 시민 사회의 확대와 시민운동의 활성화를 통한 시민권의 확대와 파쇼 통치로 퇴행할 가능성의 봉쇄는 민중의 기본적인 삶의 보호와 변혁 운동의 발전을 위한 귀중한 토대이다. 단 현재 한국 사회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 시민운동은 이러한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들이 교차하는 시점에 놓여 있는 것으로 판단되며, 자본의 신자유주의 공세 속에서 민중의 이해를 옹호하는 입장에 서기보다는 오히려 계급적 적대의 현실을 시민 운동적 환상으로 대체하면서 지배 계급의 헤게모니 강화에 일조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우리는 시민 사회의 장을 일방적으로 외면하거나 부정할 수 없다. 최근에 우리가 탄핵 사태를 계기로 목격하였듯이 부르주아는 시민 사회라는 장 속에서 역동적인 헤게모니를 지속적으로 창출해 내며, 수많은 대중들은 이 헤게모니의 우산 아래 자발적으로 결집한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일방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더 많은 민주주의를 대중의 요구로 만들어 내는 것이며, 시민권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권만으로는 담아 낼 수 없는 민중의 권리에 대한 요구를 시민사회의 울타리를 넘어 흘러넘치게 하는 것이다. 부르주아가 시민 사회 내에세 헤게모니를 행사하는 것을 애써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 사회에 뛰어 들어 부르주아 헤게모니와 맞서면서 민중적 헤게모니를 창출하는 것, 이것이 변혁 운동 진영의 과제이다.

3. 교육운동의 흐름

한국의 공교육 체제의 형성 과정의 특징은 국가의 일방적 주도성이다. 해방 공간에서 변혁적 운동이 좌절된 이후 민중의 발언과 참여는 철저히 배제된 채, 국가 권력이 일방적으로 사회 시스템을 구축해 나갔다. 특히 박정희 정권의 압축 근대화 과정에서 공교육 체제는 비약적으로 팽창하였다. 하지만 국가 권력과 관료들이 모든 교육 정책의 결정권을 독점하였다. 교사는 자율성을 극도로 억압당한 채 국가의 요구대로 학생들을 교육시킬 것을 강요당하였으며, 학부모는 이미 주어진 교육 체제에 적응하면서 교육을 사적인 지위 상승의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회만 허용되었다. 교육에 대한 국가권력의 요구 2)  와 학부모의 사적인 지위 상승의 요구가 맞물리는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치열한 입시 경쟁과 입시 위주의 교육은 근대 교육 체제의  자연적 본성인 것처럼 인식되었다.    
이런 공교육 시스템에 대하여 최초로 문제 제제를 한 집단은 교사였다. 교사는 여러 교육 관련 주체들 중에서 학생과 함께 교육에 대하여 전면적인 이해관계를 갖는 집단이다. 초기 교사들의 교육 운동은 국가가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교육 내용에 대한 지식인적인 회의와 교육 관료의 억압적 학교 운영에 대한 집단적 분노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으며, 이는 참교육 운동과 교육 민주화 운동으로 표출되었다. 하지만 이 시기에 교사의 교육 운동이 교육의 사회적 역할-특히 자본주의 및 지배질서의 재생산-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과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체계적인 대안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였다. 대부분 개별적인 수준에서 교사 개인의 양심에 기초하여 국가가 강요하는 일방적인 교육 내용에 부분적인 변형을 가하는 수준이었다. 이는 90년대 초반 사회주의 이념의 퇴조와 함께 참교육 활동이 기술적인 측면으로 지나치게 경도되는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교육 민주화 투쟁도 공교육 시스템의 전반적인 변혁적 비전과 결합되지 못함으로써 대부분 단위학교 내의 교육 관료와 투쟁으로 전선이 협소화되었으며 관료적 학교 운영 방식이 부드러운 억압의 방식을 취하는 경우가 증가함에 따라 교육민주화 투쟁의 동력도 약화되는 경향성을 보이고 있다.
전교조 합법화 이후 합법적 노동조합으로서 다양한 수준에서 정책적 개입의 여지가 증가하였지만 오히려 조합원들의 급격한 양적 팽창과 조합원 간의 이질성의 증대는 대중노선을 둘러싼 다양한 입장들이 충돌하면서 전교조 운동을 실리주의적, 개량주의적 경향으로 흘러갈 수 있는 위험성을 증대시켰다. 이는 뒤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한국 노동조합운동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조합의 지도부가 적절한 협상과 적절한 투쟁을 배합하여 성과를 따내어 일반 조합원 대중들에게 선물함으로써 대중의 지지를 획득할 수 있다는 속류 대중주의의 경향성이 전교조에도 예외일 수 없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런 속류 대중주의는 대중의 역동을 체제내적인 개량의 한계로 묶어두고, 대중을 투쟁의 주체로서가 아니라 수동적인 지지자로 전락시킴으로써 변혁 운동의 흐름을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한편 학부모 운동은 이미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전교조 운동의 태동과 더불어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학부모 운동은 주로 중간 계층의 학부모들이 주도하였다. 교육 당국은 물론이고 교사와의 관계에서도 일방적인 순종을 강요당하였던 학부모들이 교육의 일주체로서 권리를 요구하는 투쟁을 전개하여 왔으며, 이는 구체적으로 교육 정책 결정 과정과 학교 운영과정에서 학부모의 참여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하지만 학부모 운동도 학생과 학부모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공교육 체제의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접근보다는 체벌, 촌지, 공동 교복 구매, 앨범 사업, 급식 문제 등 개별 사안 중심의 사업 3)  에 주력하였으며 학교운영위원회 결성 이후에는 운영위 참여와 운영위 활동 지침을 회원들에게 교육시키는 사업 위주로 벌여나갔다. 최근에 교육 당국의 정책 결정 과정에서 형식적 절차적 과정을 중시함으로써 학부모 단체의 상층 간부들이 정책 결정 과정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가 증대하였다. 하지만 대중의 힘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은 협상의 참여는 사실상 상대방의 요구를-그것이 부당하든 그렇지 않든- 일정 정도 수용할 수밖에 없음을 사전에 전제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항상 절충적인 결론이 나오기 쉬우며, 때때로 결국 교육 당국의 정책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흔히 '합리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는 타협성은 대중적 기반의 부재와 계급적 한계를 반영하는 것이며, 현재의 학부모 운동은 이런 경향성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교육관련 시민 단체의 경우 아직은 활동력과 대중적 영향력이 강하지는 않지만 점차 활동의 영역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그리고 교육이 대다수의 국민들이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공공적 의제이기 때문에 교육관련 전문 단체가 아닌 일반 시민 단체의 경우에도 교육 문제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교육관련 시민 단체의 경우 고유한 조직 대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중적인 조직기반을 갖추기 있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이념적 지향성과 활동 내용의 선택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 실제로 교육관련 시민 단체는 보수적인 단체에서부터 진보성향의 단체까지 좌 우로 광범위한 이념적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교육관련 시민 단체들은 다른 부문의 시민 단체와 -예를 들어 환경, 통일, 여성, 인권 등등- 조금 다른 위상을 가질 수밖에 없다. 다른 부문과 다르게 교육 부문에서는 교사와 학부모라는 일반 시민적 입장보다 교육에 훨씬 깊은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주체들이 존재하고 이들 주체들이 대중조직을 건설하여 교육 운동을 전개해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른 분야의 시민운동과 달리 교육관련 시민 단체들이 교육 운동 부문에 있어서 독자적인 주도성을 발휘하기는 힘들 수밖에 없다. 결국 교사나 학부모 조직과 어떻게 관계를 설정할 것인가가 교육 관련 시민단체의 운동 방향을 설정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지금까지 교육 관련 시민 단체들은 전교조와 긴밀한 공조 관계를 유지하여 왔다. 주로 시민 단체들은 토론회, 공청회, 성명서 발표 등을 통하여 여론전을 수행하고, 전교조는 대중적 힘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투쟁을 전개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최근에 이런 공조 사이에 부분적인 균열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정부의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 차이가 발생하고 있으며, 노무현 정권과 관계 설정에 있어서도 입장의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아무래도 대중적 기반이 부족한 시민 단체의 경우 협상과 참여가 그들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이 된다. 반면에 대중 투쟁의 동력을 지니고 있는 교사 운동의 경우에는 절충적 타협의 가능성이 높은 협상과 참여가 우선적인 방법이 될 수 없다. 오히려 대중 투쟁이 중심적인 운동 방법이며, 협상과 참여는 대중투쟁을 기반으로 하는 부차적인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이러한 분열을 일으키는 더 근본적인 이유는 교육문제 나아가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에서 기인하고 있다. 한국 교육의 병리적 증상에 대해서는 현상적인 진단이야 일치하겠지만 그 근본 원인에 대한 인식, 교육 문제를 바라보는 계급적 위치, 향후 우리 교육 또는 우리 사회가 지향해할 방향 등에서 차이를 노정할 수밖에 없다. 특히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진전될수록 운동의 방향, 방법, 노선 등을 둘러싸고 개량적 노선과 변혁적 노선 사이의 갈등은 더욱 커질 것이다. 하지만 교육 부문에서는 노무현 정권이 한국 교육의 형식적인 공공성마저 파괴할 개방화 시장화를 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공세를 강화하고 있고, 한국 교육의 병리적 현상에 대한 단기적인 처방에 있어서도 무능력을 노출하고 있기 때문에 공조와 연대의 틀은 당분간 계속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단 노무현 정권이 내용적으로는 철저히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을 공세적으로 진행하면서도, 형식적 면에서는 교육 주체-특히 교사를 제외한 학부모와 시민단체 등-의 참여와 절차적 민주성을 확대하는 포섭 전략을 구사하면서 교육 운동 주체들의 분열을 기도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까지 논의를 토대로 현 단계 교육 운동의 흐름을 정리하면,
첫째로 한국의 교육 운동은 교육 주체의 교육에 대한 시민적 권리 확대의 요구와 정부의 교육 정책에 대한 단기적인 대응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한국 공교육의 본질적인 모순에 대한 문제제기는 물론 이로부터 파생되는 핵심적인 병리적 현상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제기도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못한 상태이다. 한국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누구라도 교육 문제 때문에 고통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 운동 진영은 교육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부각시키는 데 한계를 보여 왔다. 이는 물론 교육 운동 진영의 역량의 한계에 기인하는 바가 크지만 교육 운동을 단기적 대응 투쟁의 수준에서 장기적인 교육 체제의 변혁 투쟁으로 상승시키려는 의식적이고 체계적인 노력의 부재가 더욱 중요한 원인이다.
둘째로 같은 맥락에서 현재의 교육 운동은 정부의 교육 정책에 대한 반대 투쟁에 머물러 있으며 수세적인 국면을 돌파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현재의 역관계에서 교육 정세를 주동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지배 세력이다. 따라서 교육운동이 지배 세력이 조성하는 교육 정세에 대응하는 투쟁에 집중될 수밖에 없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반대 투쟁을 넘어 총체적인 대안을 마련하고 이러한 대안을 교육 운동 주체의 요구 나아가 국민 대중의 요구로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배세력의  신자유주의 교육 재편 의도가 교육체제의 전반적인 개편에 대한 관심 즉 교육체제에 관련한 거대 담론에 대한 관심과 논의를 활성화하는 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더욱이 교육 운동 진영은 교육에 대한 거대 담론을 제시하고 이를 확산시킬 수 있는 이론적 실천적 역량을 일정 정도 갖추고 있다.
셋째로 교육 운동의 상층(중앙) 연대 전선에서 민중 세력의 참여는 미약한 반면, 중간 계급-시민 운동적 세력-의 주도성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지금까지는 교육 운동의 연대는 교육 권한의 관료 독점에 대항하여 교육 민주화의 필요성을 공감하는 정도의 이념적 공유를 토대로 유지되었다. 교사 운동 진영을 제외하고 대중적 토대가 허약하기 때문에 교육 운동 연대체가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주로 개별적 사안에 대한 여론화 작업이 중심을 이루었다. 또한 이념적 공유의 수준이 낮았기 때문에 전체적이고 장기적인 대안 마련에 일정한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었으며 단기적 대응 투쟁에 있어서도 주체적 지위의 차이와 이념적 지향성의 차이 때문에 갈등과 대립이 때때로 표출되었다.        
넷째로 교육 운동의 지역 연대가 활성 되고 있으나 개별 사안과 지역 사안의 울타리를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 물론 지역 단위로 이루어지는 하층 연대는 우선 지역의 구체적 사안을 중심으로 연대활동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 하지만 한국 공교육의 모순이 교육 제도와 정부의 교육 정책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지역 단위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교육 문제는 그리 많지 않다. 또한 지역의 교육 문제를 풀기 위한 노력은 필연적으로 중앙의 교육 제도와 교육 정책과 부딪힐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상층(중앙) 연대가 허약하기 때문에 지역의 다양한 교육 운동 연대체들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지 못한 채, 지역 연대체들이 고립 분산적으로 존재하는 경향성이 강하다. 각 지역과 영역에 따라 교육 단체들의 주관심사와 당면의 과제는 다를지라도 좀 더 높은 수준에서 교육 운동 세력을 통합시킬 수 있는 운동의 전망과 조직적 틀을 제시하는 것이 교육 운동 진영의 시급한 과제이다.

4. 향후 교육운동 진영의 과제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지금까지 교육 운동은 주로 지배계급의 교육 정책에 대한 개별적이고 수세적인 대응 수준에 머물러 있었으며, 대응의 이데올로기적 지평도 시민운동 적 관점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교육 운동 역량의 꾸준한 성장 결과 사회의 여타 다른 부문과 달리 지배 세력의 일방적인 정책을 막아낼 수 있는 억제력을 지니고 있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민중과 시민들이 잘못된 교육 때문에 받는 고통은 점차 심화되고 있으며, 지배세력의 신자유주의 공세가 맞물리면서 한국의 공교육 체제는 더욱 왜곡될 위험에 처해 있다.
이런 교육 모순의 심화는 공교육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변혁의 열망도 더욱 강화시킨다. 미시적인 미봉책으로는 더 이상 중병을 알고 있는 한국의 공교육의 병리적 현상을 단기적으로도 완화시킬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지고 있다. 문제는 공교육 체제의 근본적인 변혁을 원하는 대중의 잠재적 요구를 가시화시키고 현재화시킬 수 있는 교육 운동 진영의 역량이다.  
우선 교육 운동 진영은 한국의 공교육 체제를 전체 사회 구조와 유기적 연관 속에서 구조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이론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이론적 역량이 전제되어야지만 공교육 체제의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총체적인 대안을 마련할 수 있으며 단기적인 전술과 장기적인 전략, 부분적인 과제와 총체적인 대안, 대중 노선과 변혁적 침로 등을 유기적으로 결합할 수 있다.  
교육 운동의 장기적인 전략 방향은 지배 질서의 재생산과 자본이 요구하는 노동력을 생산에 교육의 역할을 제한시키려는 지배세력의 의도를 저지하고 개인의 전인적 발전과 사회의 진보에 기여할 수 있는 교육의 역할을 최대한 확장해 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전략적 침로가 곧바로 현실화될 수는 없다. 교사든 일반 시민이든 대중이 가장 민감하게 느끼는 현실적 문제로부터, 그들의 요구가 쉽게 결집할 수 있는 첨예한 문제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것은 과열 입시 경쟁과 입시 위주의 교육의 문제이다. 그런데 이는 지배세력이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요구와 맞물려 있다. 즉 지배 세력은 지배질서의 재생산과 자본이 필요로 하는 노동력의 생산을 경쟁 기제와 입시를 통한 선별 메카니즘을 통해 관철하고 있다. 따라서 입시 경쟁과 입시 위주의 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학부모와 학생들의 고통을 현상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넘어 지배 세력의 의도를 저지하고 해방적인 교육의 가능성을 확대해 나가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이 문제는 반드시 교육 과정 투쟁과 결합될 수밖에 없다. 입시 경쟁 체제의 타파가 입시 제도의 개혁과 대학 평준화, 학벌 폐지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면, 입시 위주의 교육을 극복하는 것은 새로운 교육 과정의 건설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지금까지 지배세력들은 경쟁과 선별 기제를 통해 공교육에 대한 강한 통제력을 행사해 왔다. 따라서 경쟁과 선별 기제를 타파하는 것은 결국 지배 세력의 통제력을 약화시키는 것인 동시 새로운 교육의 가능성의 공간을 확장하는 것이다. 교육은 지배 세력이 직접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항상 학교와 교사를 매개로 할 수밖에 없으며, 교육 내용의 선택에 있어서 보편성과 사회적 합의-물론 지금까지는 국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였지만 근대 공교육의 이념상 교육 내용의 선정과 교육과정의 결정은 국가가 아니라 시민사회의 몫이다.-의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다. 전자는 학교나 교사의 자율적 공간의 확대 여부에 따라 항상 새로운 교육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후자는 교육 내용과 과정을 국가 권력이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못하도록 개입해 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과열 입시 경쟁과 입시 위주의 교육의 타파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문제는 얼마나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는 대안을 만들어 내고 이를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도록 실천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입시 교육 이후의 대안적 교육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입시 위주의 교육을 대신할 수 있는 대안의 교육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쉽게 의견이 모아질 수 없다. 이 때 대안 교육에 대한 상이 기본적으로 갈라지는 지점은 결국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세계관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참교육 운동이 단순히 수업 기법이나 학급 운영 기법으로 제한될 수 없고 오히려 교육의 지향해야 할 목표가 무엇인지, 또한 그런 고민을 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필요한 인간과 사회에 대한 탐구를 포함해야한다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문제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육 운동 진영은 교육과 직결된 구체적인 정책적 대안을 마련하는 이론적 역량을 키워나가는 동시에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에 대항할 수 있는 대안적 세계관을 확립하고 이를 확산시키기 위한 노력도 함께 해나가야 한다. 어떤 부문 운동도 그 자체로 완결적일 수 없다. 심지어 최근에 교육 운동 진영 일각에서 나타나고 있는 어떤 전술적 과제 하나만 해결하면 마치 모든 운동적인 과제가 저절로 해결될 것처럼 주장하는 경향성은 매우 위험하다. 그런 경향성은 너무나 쉽게 변혁적 전략의 침로를 상실하고 개량화 되고 체제 내화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공교육 체제를 총체적 바라볼 수 있는 전략적 시야를 확보하고 이를 통해 교육 문제에 대한 개별적, 현상적 접근을 넘어 교육의 전반적인 문제에 대한 총체적인 대안마련과 교육 시스템의 전반적인 구조 개혁을 추구하는 중장기적 계획 속에 구체적인 사업과 전술들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
좀 더 실천적인 문제는 교육 운동 연대에서 민중 진영의 헤게모니 강화 문제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지금까지 교육 운동 연대에서 시민운동 적 헤게모니가 주를 이루었다. 이는 교육 운동의 발전 단계 나아가 전체 우리 사회의 발전 단계를 반영하는 것이다. 아직 노동계급을 비롯한 민중들이 사회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며, 교육 운동 진영 특히 교사 운동이 변혁 지향성을 분명히 띨 만큼 성장하지 못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선 노동자성을 갖기 쉬운 교사 운동의 변혁성과 계급성을 강화해 나가야 하며, 교사 운동 과 진보적인 지식인 단체와 연대를 강화하여 민중 운동적 정체성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지금까지 이름걸기식의 형식적 연대에 머물러 왔던 민주노총, 전농 등 민중 단체와 연대가 더욱 내실 있게 강화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교육 운동 진영 내에서 민중적 헤게모니 블록을 의식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물론 이는 시민운동 진영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 운동 진영이 보다 적극적으로 투쟁하고,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조직적 역량을 확대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시민운동의 논리나 활동방향, 활동방식을 비판하고 견제하는 부정적인 방식이 아니라 시민운동이나 개량의 틀을 흘러넘치는 대중의 교육과 민주주의에 대한 변혁적요구와 실천의 흐름을 만들어 내는 것을 통해 시민운동 진영과의 연대를 강화하고 그들을 일정하게 견인해낼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지역 단위의 다양한 연대활동을 그 독자성을 충분히 인정하는 속에서도 전체 연대의 전선에 결집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중운동 진영이 힘 있는 투쟁을 전개하고 위력적인 조직 활동을 벌여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지배세력의 신자유주의 공세를 뚫고 교육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민중 교육권을 확대할 수 있는 새로운 교육 운동의 지평을 열어야 한다. 우리의 역사는 교육 운동 진영에게 민중이 주도하는 사회운동의 전범을 만들어야할 과제를 떠안기고 있는 것이다.

--------------------------------------------------------------------------------------------
1) 물론 학교 교육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교육 행위가 자본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현실에서는 자본이 요구하는 노동력과 인간이 생존과 삶을 위해서 필요로 하는 노동 능력이 명쾌하게 분리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생산력이 반드시 자본만을 위한 생산력은 아니지만 결국 자본이 생산력의 성과를 전유하는 것처럼 교육을 통해 양성된 노동 능력은 자본의 재생산에 필요한 노동력으로 전유된다. 단적으로 도구 교과의 과대한 확대와 문화 교육의 철저한 축소, 서열적인 평가가 교육과정을 지배하는 전도되 현상, 이를 통한 차별화 배제 기제의 작동 등은 교육의 이러한 성격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돌아가기

2) 물론 국가 권력의 요구의 핵심적인 부분은 우리가 다 알듯이 자본의 요구이다. 근대 사회에서 자본의 요구는  국가 권력을 매개로 해서 간접적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럴 때만이 자본의 요구는 사회 전체의 보편적인 요구로 현상한다. 국가 권력의 진정한 능력은 자본의 요구를 얼마나 보편적 요구로 변환시킬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돌아가기

3) 물론 위에서 언급한 문제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며, 운동의 발전 초기에는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문제를 풀어 나가는 것이 조직의 확대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문제들은 대부분 구조적인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에-예를 들어 촌지 문제의 경우 과열 입시 경쟁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교사와 학부모에 대한 도덕적 계몽만으로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운동의 과제가 점차 상향될 수밖에 없다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