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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호 마르크스『자본』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2003.07.14 10:49

송권봉 조회 수:1953 추천:4

전남 교육 노동운동의 과제와 전망

마르크스 『자본』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송권봉 ∥ 연구소 회원



1. 죽은 개로 보신탕을?

 

공자는 평생 '상갓집 개'라 조롱받았다. 지금의 마르크스는 '죽은 개' 취급당한다. 자본주의 찬양에 바쁜 입방아꾼들은 1980년대 말부터 급격하게 붕괴된 현실 사회주의권의 역사를 보라며 마르크스주의에 이론적·실천적 사망을 선고했다. 이 말을 반영하듯 마르크스 평생의 역작 『자본』은 헌책방 구석 먼지만 쌓이는 신세요, 한때 대학가를 달궜던 마르크스주의 학습 열풍은 흘러가버린 유행가처럼 여겨진다. 게다가 마르크스 『자본』에 대한 비판들은 어떠한가. 복잡노동을 단순노동으로 '환원'했다는 비판이나, 『자본』 1권의 가치개념이 『자본』 3권에서는 생산가격으로 '전형'되어 논리 정합성이 떨어졌다는 문제제기. '국가이론의 부재'나 '이데올로기의 동요' 등 『자본』을 중심에 놓고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과 논쟁은 그칠 줄 모른다. 이런 마당에 『자본』에서 현실 인식을 배우겠다는 말은 비웃음 사기 십상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마르크스 당대에도 그러했듯 백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자본』을 둘러싼 지속된 논쟁이야말로 마르크스 이론의 역사적 성격, 즉 '자본주의 착취분석'이라는 역사과학의 성격을 새삼 드러낸단 사실을 기억하자. 마르크스 당대에도 '잉여가치 개념에 대한 표절시비나 비판'이 있었다. 『자본』 2권과 3권 서문에서 엥겔스는 이런 비난에 대해 마르크스를 옹호한다. 『자본』은 출발부터가 계급투쟁 속에 뿌리박고 있었다. 애초 「정치경제학 비판」의 부제를 달고 태어난 『자본』은 자본주의 경제학 이론이 결코 우회할 수 없는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부는 어디에서 생겨났는가?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오늘날 우리에게 마르크스 『자본』을 현재의 착취에 대한 분석으로 개조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바로 현실 자본주의 착취를 분석하기 위해 마르크스주의를 어떻게 개조하고 전화시켜 나갈 것인가란 문제의식이다. 마르크스주의를 '과학'으로 복권시키기 위해 평생 노력했던 알튀세르와 그를 계승한 발리바르는 자본의 부제인 「정치경제학 비판」의 의미를 되살려, 마르크스주의의 두 변종인 '순수 경제학적 입장'과 '반경제학적 입장'을 벗어나자고 한다. 이제 마르크스 『자본』의 '정치경제학 비판 작업'이 과학적 분석과 비판을 위한 첫 번째 의미를 지니게 된다.

『자본』을 재해석하는 것의 두 번째 의미는 앞선 문제의식과 결부된다. 즉, 마르크스가 고전파 정치경제학과 대결했던 작업(분석의 대상과 방법)에서 현재의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비판의 대상과 방법을 사고할 수 있다. 마르크스의 착취 분석의 의미와 방법을 계승하고, 고전파 경제학에 대한 비판의 의미를 되새겨 구체 현실에 적용했을 때, 마르크스주의의 현실분석력과 비판능력은 제고될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무엇보다 마르크스 『자본』을 읽어야 하며, 알튀세르-발리바르의 마르크스주의 개조작업을 검토해야 한다. 또한 마르크스의 분석 방법을 계승해 '신자유주의 비판'으로 나아가는 쉬잔느 드 브뤼노프의 작업과 윤소영 교수 및 과천연구실의 '마르크스주의 일반화'까지 지평을 확장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진보교육연구소에서 진행한 두 번의 『자본』읽기 세미나의 산물이다. 또한 몇몇 지인들과 논의한 내용에 필자의 생각을 덧붙였다. 글 전개에서는 『자본』1권의 내용을 반추하고 재해석할 것이다.

 

2. 마르크스 『자본』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알튀세르는 마르크스 『자본』에 대해 매우 흥미로운 독해방식을 제시한다. 『자본』1권 제2편「화폐의 자본으로의 전화」부터 읽고, 제1편 「상품과 화폐」는 맨 마지막에 읽으라는 것이다. 왜냐면 제1편이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두 가지 곤란을 지적한다. 먼저 지식인과 학생이 쉽게 느끼는 정치적인 곤란. 직접적으로 착취를 경험하는 입장이 아니기에 착취 인식이 힘들다. 이에 반해 노동자는 이론적인 곤란을 겪기 쉽다. 『자본』이 순수 이론적인 저작이어서 경험만으로 읽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알튀세르는 위 [그림]과 같은 방식으로 『자본』을 읽을 것을 제안한다. 즉, 제1편 「상품과 화폐」가 아닌 제2편 「화폐의 자본으로의 전화」에서부터 읽기 시작할 때 모든 것이 명료해지는데, 바로 "『자본』의 심장부인 잉여가치 이론"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라고. 그 뒤를 제3편 「절대적 잉여가치 생산」과 제4편 「상대적 잉여가치 생산」이 잇는다. 이 편들은 "자본가계급이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사용하는 잉여가치의 근본적인 형태"를 다루고 있다. "노동일의 길이와 관련된 제3편"에서 마르크스는 자본가계급이 노동일의 길이를 가차없이 연장시킨다는 사실, 노동자계급의 투쟁은 이 연장에 대항해 싸우면서 노동일의 길이를 단축할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는 사실을 설명한다. 알튀세르는 제4편에서 마르크스가 "생산성의 발전에 의한 착취의 메커니즘을 증명"하고 있다고 짚는다. 더 나아가 제6편은 시간급 임금과 성과급 임금 등 "부르조아지가 노동자계급에게서 모든 계급투쟁의 의지를 파괴하기 위해 노동자들을 사로잡는 다양한 함정"들을 살피고 있다. 아래 [그림]은 이를 정리한 것이다.

알튀세르에 따르면, 제7편 「자본의 축적」에서 마르크스는 "항상 프롤레타리아트로부터 더 많은 잉여노동(잉여가치)를 수탈하기 위해서 자본은 끊임없이 '눈덩이처럼 증가한다'는 사실, 즉 항상 보다 확장된 토대 위에서 자신을 재생산한다는 사실을 설명한다"고. 그리고 제8편 「본원적 축적」은 최초의 자본가의 저축에 의해 자본의 출발을 설명하는 "부르조아적인 신비화를 폭로"하고 있다는 것이다. 알튀세르는 자본주의적 착취의 재생산 분석에 관심을 더 쏟는다. 특히 그는 "자본주의 생산관계는 어떤 조건과 방식으로 연속해서 재생산될 수 있는가?" 하는 분석을 진행한다.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 분석은, 자본주의적 착취조건의 재생산에 핵심 쌍으로 '가족제도-교육제도'에 대한 역사적 분석이 마르크스 『자본』에는 결여되어 있음을 밝혀주며, 동시에 현재의 분석을 위해서는 이를 보완해야 함을 알게 해준다.

 

3. 노동력 상품의 특수성과 잉여가치(『자본』 1권 제2편)

 

그의 나비로의 성장[즉 완전한 자본가로의 발전]은 반드시 유통영역에서 수행되어야 하며, 또 그러면서도 유통영역에서 수행되어서는 안된다. 이것이 바로 문제의 조건이다. 여기가 로두스 섬이다. 자 여기서 뛰어 보라!

― 마르크스, 『자본』 1권, p209

 

자본제 생산양식은 노동과 노동자의 소비에 대해 직접적 생산과정의 밖에서 그 외부로부터 강제를 행사함에 의해서가 아니라(전자본주의적인 공납, 지대 혹은 조세의 경우처럼), 물질적 제 수단이 항상 이미 노동력의 외부에서 결합되는 생산과정에다 상품으로서의 노동력을 직접적으로 합체시켜, 직접적 생산과정 내부에서 강제를 행사함으로써 초과분을 확보하는 것이다.

― 발리바르, 『역사유물론 연구』, 푸른산, p127

 

(1) 「제2편: 화폐의 자본으로의 전화」

 

제2편 제4장은 자본의 일반공식을 다루는데, 여기서 마르크스는 순환 C-M-C를 검토한다. 순환 양 끝 상품 C(Commodity)는 서로 질적으로 다른 사용가치를 갖는다. 화폐 M(Money)은 사용가치의 교환을 매개할 뿐이다. 이 관계를 뒤바꿀 때 순환 M-C-M이 등장한다. 구매[M-C] 후 판매[C-M]이다. M-C-M은 상품을 사고 등가교환에 따라 그것을 파는 유통의 일반 형태이다.

순환 M-C-M 양끝은 모두 화폐이며, 서로 질적인 차이가 아니라 오직 양적인 차이만이 의미가 있다. 결국 이 과정에서 실질적인 내용을 갖는 완전한 형태는 M-C-M´이다. M´는 최초에 투하된 화폐액에 어떤 증가분( M)을 더한 것이다. 마르크스는 최초의 가치를 넘는 초과분을 잉여가치(surplus value)라 부른다. 이제 스스로를 가치 증식시키는 운동에 의해 최초의 가치가 자본으로 전환된다.

제2편 제5장은 '자본의 일반공식의 모순'을 다룬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판매자이자 구매자"이다. 따라서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혼동"하거나, "등가가 아닌 것끼리의 교환"은 있을 수 없다. 화폐가 자본으로 전환하는 것은 '가치법칙'의 토대에서 전개되어야 하고, 따라서 등가물끼리 교환이 출발점이다. 애벌레(화폐)에서 나비(더 많은 화폐, 즉 자본)로 환골탈태하는 게 반드시 "유통영역에서 수행되어야 하며, 또 유통영역에서 수행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문제의 조건이고 자본의 일반공식의 모순이다. 자본은 유통에서 발생할 수도 없고 또 유통의 외부에서 발생할 수도 없다. 자본은 유통에서 발생해야 하는 동시에 유통의 외부에서 발생해야 한다.

제2편 제6장에서 마르크스는 모순을 해결한다. "노동력의 구매와 판매"를 통해 비로소 우리는 "상품의 사용가치가 가치의 원천이 되는 독특한 속성을 가진 상품"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노동력'상품'. 노동력은 이중의 의미에서 자유로운 인간이 존재할 때 '상품'으로 출현한다. 노동력의 소유자가 노예나 농노가 아닌 '인격적으로 자유로운 인간'이어야 하고 동시에 '노동수단/생활수단으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이어야 한다. 노동수단이나 생활수단이 없기 때문에 노동력상품을 팔아야만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노동력의 가치는 다른 모든 상품의 가치와 마찬가지로 이 특수한 상품의 생산과 재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 규정된다. 노동력의 생산이란 이 개인 자신의 재생산 즉, 그의 생활의 유지다. 또한 노동력의 소유자는 죽음을 면치 못하는데 생식에 의해 영구화되어야 한다. 노동력의 보충인원(노동자의 자녀들)의 생활수단 역시 노동력의 가치에 포함된다. 또한 일반적인 인간의 천성을 변화시켜 일정한 노동부문에서 기능과 숙련을 몸에 익혀 발달한 특수한 노동력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훈련 또는 교육이 필요한데 이런 비용 역시 노동력의 생산을 위해 지출되는 가치 속에 들어간다.

마치 정(제4장)→반(제5장)→합(제6장)의 논리전개처럼 빈틈없는 마르크스 『자본』 서술에 감탄할 밖에. 여기서 마르크스가 노동력의 가치를 '재생산비용'으로 설명한다. 그는 고전파 경제학이 '노동의 가치'와 '노동력의 가치'를 구분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노동력 가치에 대한 마르크스의 서술 역시 완벽한 것은 아니다.

『자본』에는 노동력의 가치에 대한 다른 설명이 있다. 즉, "노동자가 생산수단의 일부를 생산물로 전환시키고 있는 동안에, 그의 이전의 생산물의 일부는 '화폐'로 전환되는데, '화폐형태' 때문에 개별 노동자에게는 환상이 생겨난다". 노동자가 노동에 대한 대가로 임금을 받는다는 신화가 사실인 양 나타난다는 말. 그러나 마르크스에 따르면 "이는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 전체적으로 고찰하면 하면 곧 사라진다"고. "자본가계급은 노동자계급에게 후자가 생산하고 전자가 취득한 생산물의 일정한 부분에 대한 청구서를 화폐형태로 끊임없이 교부한다. 노동자는 이 청구서를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자본가계급에게 되돌려 주고, 그 때문에 자기 자신의 생산물 중에서 자기의 몫으로 되는 부분을 받는다. 거래의 이와 같은 진정한 성격은 생산의 상품형태와 상품의 화폐형태에 의하여 은폐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자본』에서, 한편으로는 '객관적 가치실체 곧 재생산 비용'을 갖는 노동력 상품이 다른 한편에서는 '화폐형태의 청구서'로 등장하고 있다. 노동자는 노동력'상품'을 판매한 대가로 '화폐임금'을 받는다. 하지만, 등가교환의 법칙에서 노동력'상품'의 객관적 실체인 '재생산비용'은 어떻게 보장되는가? 노동력 가치 이하로의 부단한 압력, 예컨대 산업예비군의 존재와 노동대중의 경쟁 등에 의해 임금이 재생산 가치를 보장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2) 독특한 '상품'으로서의 인간 노동력과 '노동력 가치'의 정정

 

자본주의적 상품유통은 최종결제의 영역(사적 노동의 사회적 인정의 영역)이다. 그것은 자본가들 사이의 관계뿐만 아니라 자본가와 임노동자[임금소득자] 사이의 화폐적 관계를 수반한다. "자유로운" 임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을 구매하기 위해 화폐임금을 지불받는다.

― 브뤼노프, 『국가와 자본』, 새길, p85

브뤼노프는 노동력 가치를 둘로 나눈다. 하나는 '재생산가치'이며, 다른 하나는 '일상적 가치'로 부른다고 한다. 일상적 가치가 바로 고용된 노동자가 받는 가치로서 '임금'의 형태로 지불되는데, 이 임금이 재생산가치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의 출발점이다. 마르크스는 "재생산가치가 현실에서 과연 보장되는가? 반대로 임금이 재생산가치를 보장하는가?"하는 문제를 놓치고, 추상 수준에서 '재생산가치=임금'이라 규정짓는다는 지적이다. 윤소영 교수는 브뤼노프의 이런 문제의식이 『자본』의 문제의식을 계승하고 발본화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노동의 가치'로서 임금 또는 '무노동'에 대한 무임금은 바로 임노동제도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이는 노동력이라는 상품에 대한 부르주아적 '소유권'의 확대해석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노동력이 상품이 되는 특수한 조건, 형태, 메커니즘이 무엇인지를 질문해야 합니다. 임노동제약 개념을 통해 이미 얼마간 설명되었듯이 노동자 개인의 육체와 정신이 상품이 되는 것이 바로 계급투쟁의 최대 쟁점입니다. 나아가 노동력에 확대 적용되는 부르주아적 소유권을 어떻게 폐지하고 또 적어도 제한할 수 있는가도 질문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노동권 도는 노동의 권리라는 개념의 중요성이 제기되는 것입니다.

― 윤소영, 『알튀세르를 위한 강의』, 공감, p142-143

노동력이 상품이 되는 특수한 조건, 형태, 메커니즘이 무엇인가? 마르크스는 노동과 소유의 '분리'가 노동과 소유의 '동일성'에서 나온 것처럼 보이는 법칙의 필연적 결과라고 지적한다. 최초에는 소유권이 한 인간 자신의 노동에 기초한 것처럼 보이거나 적어도 이와 같이 가정해야 한다. 시장에서는 동등한 권리를 가진 상품소유자들만이 서로 대면하는데, 노동자로서 남의 상품을 취득하는 수단은 오직 자신의 상품을 양도하는 것일 뿐이요, 자기 자신의 상품을 얻는 유일한 길은 노동뿐이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그런데 유통영역의 교환을 지나면 이제는 자본가가 노동자의 생산물과 부불노동을 취득하는 권리를 갖고, 노동자는 자기 자신의 생산물을 취득하지 못하게 되는 것.

그러나 마르크스의 답변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브뤼노프는 '화폐-노동력-화폐의 순환'이 항상 '중단'될 위기에 처해있다고 지적한다. 화폐가 노동력과 결합하지 못할 가능성(M-C → M//C로 끊어짐)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화폐의 가치 혹은 재생산을 누가 보장할 것인가. 반대로 노동력이 화폐와 결합하지 못할 가능성(C-M → C//M로 끊어짐)이 존재하는 상태에서 노동력의 가치 혹은 재생산을 누가 보장할 것인가. 브뤼노프는 이 독특한 상품의 재생산을 보장하기 위해 사적 자본은 항상 국가의 개입을 필요로 한다는 테제를 제기한다. 이에 대해서는 제1편을 검토하며 자세히 언급하기로 하자.

마르크스는 『자본』에서 노동력 가치를 '노동의 가치'와 구별하고, 유통의 등가교환이란 조건에서 '잉여가치'가 창출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그러나 '재생산가치'와 '일상가치 곧 화폐임금'을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 브뤼노프와 윤소영 교수의 제기를 통해 이제 노동력 '상품'의 가치를 아래 [그림]과 같이 정정할 수 있다.

 

4. 자본주의 착취방식의 역사적 분석 (『자본』 1권 제3편, 제4편, 제6편)

 

모든 생산양식은 그것이 직접 생산자(생산적 노동자), 비생산자 및 물질적 생산수단 사이에 전제하고 재생산하는 제 생산관계의 성질에 의해 기본적으로 특징 지워진다. 그 기능(따라서 사회적 생산)의 유기적(필연적) 조건으로서 생산수단을 영유하는 비생산자계급의 존재와 활동을 내포하는 모든 생산양식은 바로 이 때문에 사회적 노동의 착취양식이다.

― 발리바르, 『역사유물론 연구』, 푸른산, p124-125

 

앞선 『자본』1권 제2편에서 마르크스는 '잉여가치'의 비밀을 밝혔다. 이제 마르크스는 『자본』의 서술을 다음과 같이 전개한다. "노동력의 소비과정은 상품의 생산과정이며 동시에 잉여가치의 생산과정이다. 노동력의 소비는 다른 상품의 소비와 마찬가지로 유통분야 밖에서 수행된다. 즉 "관계자외 출입금지"라는 팻말 뒤쪽의 은밀한 장소다. 이윤창조의 비밀은 이곳에서 밝혀질 것이다. 화폐소유자는 자본가로서 거만하게 미소를 띠고 사업에 착수할 열의에 차 바삐 걸어가고, 노동력의 소유자는 이제 노동자로서 자기 자신의 가죽을 시장에서 팔아버렸으므로 이제 무두질만 기다리는 사람처럼 겁에 질려 주춤주춤 걸어가고 있다(마르크스, 『자본』 1권, p222)." 유통과정 밖의 과정, 즉 생산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으로 들어간다. "관계자외 출입금지"라는 팻말로 굳게 감추어진 비밀의 현장으로.

 

(1) 절대적·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제3편, 제4편)과 임금(제6편)

 

마르크스는 "노동일의 연장에 의해 생산되는 잉여가치"를 절대적 잉여가치라 부르고, 이에 대비해 "필요노동시간의 단축에 대응되어 노동일의 두 부분들의 길이의 변화로부터 생겨나는 잉여가치"를 상대적 잉여가치라 부른다. 또한 알튀세르는 임금의 문제를 '생활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최종심에서 계급투쟁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결코 노동자가 자연스레 이득을 얻게 되는 '생산성'의 문제는 더더욱 아니라는 사실을 짚는다.

이제 마르크스는, "노동과정 전체를 그 결과인 생산물 입장에서 고찰하면, 노동수단과 노동대상은 생산수단으로 나타나며, 노동 그 자체는 생산적 노동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이때 노동은 소비과정이지만 개인적 소비와는 다르다. 생산적 소비의 결과 '소비자'와 구별되는 '생산물' 곧 상품이 산출되기 때문이다. 이 때 "(1) 노동자는 자본가의 감독 하에서 노동한다. (2) 생산물은 자본가의 소유물이지 직접적 생산자인 노동자의 소유물은 아니다." 또한 자본가 입장에서, 노동과정은 자기가 구매한 노동력 상품의 소비에 지나지 않지만 그는 이것을 생산수단과 결합시켜야만 소비할 수 있다.

생산수단(즉 원료, 보조재료, 노동수단) 부분은 생산과정에서 그 가치'량'이 변동되지 않는다. 마르크스는 이 부분을 '자본의 불변부분' 또는 간단하게 불변자본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노동력 구매에 들어간 자본은 생산과정에서 그 가치가 변동된다. "자신의 등가물을 재생산하고 또 그 이상의 초과분 즉 잉여가치를 생산"한다는 점. 가치가 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마르크스는 이를 '자본의 가변부분' 또는 간단하게 가변자본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잉여가치는 상황에 따라 크게도 작게도 될 수 있다. 잉여가치는 가변자본부분에서 비롯되며, 이는 간단히 S/V로 표현할 수 있는데 바로 잉여가치율, 곧 착취율이다.

이제 자본가는 노동자로부터 '잉여가치'를 쥐어짜기 위한 온갖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초과착취를 위해 인간의 기본권을 무시한 채 한없이 일을 시키는 것. 자본은 '흡혈귀'의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이를 마르크스는 19세기 공장감독관들의 보고서를 인용하며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방대한 역사적 사료를 여기서 다 인용하거나 간략히 요약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표준노동일을 제정하기 위한 노동자의 투쟁, 공장입법을 둘러싼 자본가와 그 이데올로기들의 투쟁 - 특히 시니어의 1노동시간이라는 궤변 - 등. 그러나 노동일을 무제한으로 늘리는 것은 한계가 있다. 첫째, 노동력의 육체적 한계가 있다. 24시간 동안 일정한 생명력을 지출할 수 있을 뿐이다. 둘째, 정신적인 한계이다. 노동자도 지적, 사회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며, 마르크스는 이게 문화수준에 의해 규정된다고 한다. 노동자가 노동하는 시간은 자본가가 자신이 구매한 노동력을 소비하는 시간이다. 알튀세르의 노동일 연장을 둘러싼 투쟁을 기억하라. 노동자는 정상적인 길이의 노동일을 요구한다. 즉 표준노동일 제정. 쌍방이 모두 동등하게 하나의 상품의 교환법칙에 의해 보증되는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쓴다. "동등한 권리와 권리가 서로 맞설 때 힘이 문제를 해결한다. 그리하여 자본주의적 생산의 역사에서 노동일의 표준화는 노동일의 한계를 둘러싼 투쟁, 다시 말하면 총자본과 총노동 사이의 투쟁으로 나타난다"고.

이런 계급투쟁에서 자연스럽게 상대적 잉여가치 생산 방식도 등장한다. 마르크스의 직선의 비유. 길이를 무한정 연장할 수 없다면, '임금부분'에 해당하는 길이를 줄인다는 생각.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듯, 자본가는 잉여가치'율'의 제고를 위해 온 머리를 쥐어짜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쓴다. "직선 A-B-C에서 AC를 연장하지 않거나 AC와는 관계없이 어떻게 잉여가치의 생산을 증대시킬 수 있는가? 즉 잉여노동을 어떻게 연장할 수 있을까? 노동일 AC의 한계는 주어지지만, BC의 길이를 점 A쪽으로 이동시킴으로써 잉여가치를 생산하고 잉여노동시간을 늘릴 수 있다. 이때 '잉여노동의 연장'에는 '필요노동의 단축'이 대응한다". 이제 달라지는 것은 노동일의 길이가 아니라 "필요노동과 잉여노동으로의 노동일의 분할"이다. 이렇게 되자 상품 가치는 노동생산성의 발전에 반비례한다. 하지만 상대적 잉여가치는 노동생산성의 발전에 비례하여 증가한다. 하나의 생산과정이 상품을 싸게 만드는 동시에 상품에 들어 있는 잉여가치를 증대시키기 때문에, 교환가치의 생산만을 염두에 둔 자본가가 왜 상품의 교환가치를 끊임없이 떨어뜨리려고 노력하는가 의문이 풀린다고 마르크스는 말한다.

마르크스는 이제 "협업 → 분업과 매뉴팩처 → 기계제 대공업"으로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에 대한 분석을 진척시킨다. 그에 따르면, 상호간 아무 관계도 맺지 않던 노동자들은 "노동과정"에서 비로소 "협업"을 시작하는데, 그때 이미 노동자들은 자기 자신에 속하지 않는다. 노동과정에서 그들은 자본에 편입되어 버리며, 이런 면에서 "협업은 언제나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의 기본형태"라고 한다. 더 나아가 마르크스는 매뉴팩처의 자본주의적 성격에 주목한다. "진정한 매뉴팩처는 이전에는 독립적이었던 노동자를 자본이 지휘와 규율에 복종시킬 뿐만 아니라, 노동자 자신들 사이에 등급적 계층을 만들어 낸다. 매뉴팩처는 노동자의 일체의 생산적인 능력과 소질을 억압하면서 특수한 기능만을 촉진하여 노동자를 기형적인 불구자로 만든다. 개별노동력은 오직 다른 노동력들과의 관련 속에서만 기능할 수 있는데 이 관련은 노동력이 판매된 후 자본가의 작업장에서 비로소 존재하게 된다. 분업은 매뉴팩처적 노동자에게 자본의 소유물이라는 낙인을 찍게 된 것이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매뉴팩처 시기 숙련노동과 미숙련노동의 분할은 등급구조를 이어지고, 부녀자와 아동에 대한 착취의 길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이는 숙련노동자들의 우세한 저항과 남성노동자들의 저항에 부딪치며 또 도제기간 같은 학습기간은 노동력에 대한 완전한 착취를 막는 역할을 한다. 16세기로부터 대공업시대에 이르기까지 자본은 매뉴팩처 노동자들의 이용 가능한 노동시간 전체를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데 성공하지 못했고 마르크스는 평가한다. 이는 공장제 기계공업의 시기에 가능해진다.

협업과 분업으로부터 생기는 생산력은 자본가에게 아무런 비용도 드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기계제 생산은 노동자들에게 미치는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A. 자본에 의한 추가노동력의 취득, 즉 여성노동과 아동노동. B. 노동일의 연장. 특히 기계의 자본주의적 사용은 한편으로 노동일의 무제한 연장에 강력한 새로운 동기를 제공하고, 또 노동방식 자체와 사회적 노동유기체의 성격을 변혁시켜서 노동일을 연장시키려는 경향에 대한 모든 반항을 좌절시킨다. 다른 한편으로, 기계의 자본주의적 사용은 부분적으로는 노동계급 중 종전에 자본가의 손이 미치지 않았던 층들을 자본가에 복종시킴으로써, 또 부분적으로는 기계에 의하여 쫓겨난 노동자들을 하는 일 없게 만듦으로써, 자본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을 수 없는 과잉 노동인구를 생산한다.  C. 노동의 강화(p521). 점차 증대하는 노동계급의 반항에 따라 의회는 노동시간을 강제적으로 단축하도록  표준노동일을 명령하게 되어, 노동일 연장에 의한 잉여가치 생산의 증가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바로 그 순간부터, 자본은 기계체계 발전을 한층 더 촉진시킴으로써 전력을 다하여 상대적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데 몰두한다.

 

(2) 자본주의 재생산과정에 대한 역사적 분석으로!

 

마르크스는 제3편과 제4편의 자본주의 착취방식 분석에서 노동대중의 분할에 대해 명시적으로 언급한다. 기계제 대공업에서 완전한 착취를 위해 부각되는 '관리·감독' 노동이나 장인의 몰락과 작업의 단순화에 조응하여 '유입'되는 아동노동과 여성노동. 노동의 분할과 그 분할을 정당화하는 신화로서 임금(제6편)에 이르기까지 마르크스의 작업은 '노동과정착취의 역사적 분석'임에 분명하다. 또한 알튀세르의 말처럼 마르크스『자본』의 독해를 통해 우리는 잉여노동 착취를 둘러싸고, 한편으로는 노동일의 연장과 축소를 둘러싼 계급투쟁이, 또 한편으로는 임금의 축소와 확대를 둘러싼 계급투쟁의 현실이 있다는 점을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알튀세르는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자본주의적 착취가 유지되는 비밀은 무엇인가?

발리바르는 "프롤레타리아트는 그 자신으로부터 직접적·연속적인 자손에 의해 재생산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주어진 생산과정의 상태가 결정하는 사회적 제 조건의 총체에 입각해 재생산된다는 주장이다. 예컨대 학교교육과 직업훈련, 가족조직, 노동자의 경쟁과 이주. 그런데 이런 조건들은, 오늘날 자본주의제국의 대부분에 있어서 그러하듯이, 생산과정과 모순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학교의 위기나 가족의 위기, '청년'의 위기 등은 노동력재생산의 일반화된 위기의 징후라고 발리바르는 지적한다.

발리바르가 말한 '노동력 재생산이 어떻게 이뤄지는가' 하는 관점에서 『자본』을 다시 읽어보자. 마르크스는 공장입법을 둘러싼 투쟁을 다루며 아동노동의 초과착취를 '보호'한다는 공장법의 교육조항을 간략히 언급하고 있다. 공장입법에 저항하는 자본가는 보호입법을 무시하거나 없애 버리려 노력한다. 그는 아동노동 교육시설을 공장 안에 제대로(!) 갖추지 않거나 가동하지 않는다. 공장감독관들이 감독의무를 태만(!)했음에도 그 보고서에는 공장주들의 온갖 실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런데 공장법의 교육조항은 아동노동자에게 그리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노동시간에 대한 대가로 임금을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 아침 몇 시간은 돈을 벌 기회를 박탈한다고 여기기 때문에. 또 하나 사례. 농업 자본가는 농업 노동자의 집단 합숙소를 마련하고, 그들의 똥오줌은 퇴비로 사용할 수 있기에 자신의 재산으로 간주한다. 비록 단편적인 예지만, 이처럼 자본은 노동대중의 일상과 재생산 영역까지 자신의 치부를 위해 사용할 줄 아는 영악함을 지닌다.

노동력 재생산을 위한 주거환경이나 교육 등은 사적 자본가가 담당하기 어렵다. 설혹 공장입법을 지키는 양심적인 자본가가 있다면, 경쟁에서 도태되기 십상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에서, 이런 재생산과정에 대해 구체적인 분석을 진행하지 않는다. 우리로서는 몇몇 구절에서 착상을 얻을 뿐이다. 노동대중의 분할이 어떻게 유지되는지에 대해서도 언급을 찾기 힘들다. 알튀세르가 자본주의 재생산을 위한 중요한 결합태로 지적한 '가족-학교'의 구체분석은 사실 마르크스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발리바르의 설명을 좀더 따라가자.

그는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분할 문제"가 "자본주의 생산양식 분석에서 기본적인 역사적 정치적 문제"라 지적한다. 발리바르는 "특히 자본주의가 학교교육에 부여하는 역할 때문에 그것들이 자본주의 속에서 '융합되어 버릴' 때조차 혼동될 수는 없다. 자본제 생산양식에 이르기까지는, 착취 제조건의 재생산에서 항상 기본적인 역할을 수행해 온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분업은 본질적으로 생산조직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적어도 거기서는 부차적 역할밖에 수행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발리바르에 따르면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분할"은 본질적으로 아직 노동자와 생산수단의 근본적 분리를 내포하지 않는 "생산"과 생산 이외의 "상부구조" 사이에서 이뤄진다고 한다. 그는 마르크스가 강조한 것처럼 몇 개의 복합적 결합을 낳는 형태들을 검토하자고. "경영노동과 조직기능 간의, 기술적 연구와 제 조건의 분업형태 뿐만 아니라 또 몇 가지 형태의 '경영' 노동 사이의 분업형태, 따라서 점점 증가하는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분업 없이는 착취과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말할 것도 없지만, 계급분할과 분업 사이에 기계적 대응은 존재하지 않는다."

 

5. 자본주의적 축적의 법칙(『자본』 1권 제7편, 제8편)

 

마르크스는 "아주 명료한 제7편(「자본의 축적」)"에서 "수탈한 잉여가치를 끊임없이 자본으로 전화"한다고 설명한다. 또한, "『자본』 1권을 마감하고 있는 제8편(「본원적 축적」)"에서 "몇몇 '대부자'들 사이에 막대한 화폐가 '축적'된 이후에야 비로소 서방세계에 자본주의가 발생할 수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이 축적은 몇 세기에 걸친 강탈과 원정과 도둑질과 약탈 그리고 전 인민(예컨대 잉카인의 후예들과 황금광산이 풍부했던 전설적인 페루의 또 다른 원주민)에 대한 학살의 꾸밈없는 결과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알튀세르는 이를 '눈덩이'와 학살로 표현한다.

알튀세르의 설명은 발리바르의 '자본의 과잉과 노동의 과잉' 개념과 연결된다. 한쪽에서는 자본주의적 부가 축적되어 가는데, 다른 쪽에서는 빈곤이 더욱 심화되고 있는 역설적 상황에 대한 표현이다. 더 나아가 발리바르는 『자본』의 경제법칙을 '자본의 추상화와 노동의 구체성'으로 요약한다. 즉, 자본주의의 성립과 유지를 둘러싼 계급투쟁(원인)이 '이념적 평균의 자본주의 분석'이란 추상범주에서 '착취'로 드러나는 상황(결과)을 말한다. 알튀세르와 발리바르가 파악하는 『자본』의 법칙은 아래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역사는 자본이 어떻게 노동을 '포섭'해 나가는가 하는 점이다.    

윤소영 교수는 『자본』의 경제법칙을 두 가지 차원으로 설명한다.  먼저 '기본 경제법칙'으로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상승하면서 한편으로는 "자본의 집적과 집중"을 낳고, 다른 한편으로는 "상대적 과잉 인구의 창출"을 형성한다는 점.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법칙'이라 일컫는 법칙이 이 기본법칙이라고 말한다. 경향이 있다면 반작용이 있는 법. 기본경제법칙에 대한 반작용을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부른다고 한다. 즉, 생산의 사회화 및 노동자연합을 전제로 하는 '자기 자신의 소유'로서 개인적 소유의 확립과 집합 노동자 내에서 '지식노동과 육체노동의 분할'의 지양이 그 본질이라고 설명한다.

다음으로 기본 경제법칙으로부터 '파생된' 경제법칙. 자본주의적 축적의 시장적 조건을 표현하는 평균이율율의 형성과 저하가 바로 그것이다. 이는 기본모순으로부터 '파생된' 잉여가치의 생산과 실현 사이의 모순을 표현한다고 말할 수 있다. 윤소영 교수는 "마르크스가 말하는 공황의 '궁극적 원인'이 잉여가치의 생산과 실현 사이의 모순, 축적과 그 시장적 조건의 모순이 공황을 통해 표현된다는 사실을 가리킨다"며, 이를 "종합하는 법칙이 바로 평균이윤율의 형성과 저하"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그의 설명에 따르면, 마르크스는 파생된 경제법칙, 특히 공황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생산력의 발전에 따른 생산관계의 전화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한다고 짚는다. 이 때문에 윤소영 교수는 "발리바르가 지적하듯이 『자본』에는 '자본주의의 지양'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역사'에 대한 분석이 결여"되어 있다고 말한다.

 

6. 노동력과 화폐에 관한 이론과 '숨겨진 국가'(『자본』 1권 제1편)

 

상품과 화폐(특히 가치와 사용가치 또는 추상노동과 구체노동의 이중성)는 '자본에 의한 노동의 포섭'(또는 '자본의 추상화, 노동의 구체성')을 전제한다. […중략…] 논리주의적 해석이 강조하는 상품의 가치형태 분석은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화폐와 노동력 분석을 위한 전제로서의 의의를 갖는 것이고, 게다가 화폐와 노동력 분석에는 '관습'이라는 형태로 '역사적·도덕적 요소'가 개입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자본』은 자본의 이론이 아니라 오히려 특수한 상품으로서 화폐와 노동력의 이론이라고도 할 수 있다. 또 이런 특수한 상품으로서 화폐와 노동력을 분석하기 위해 『자본』은 상품일반의 분석에서 시작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 윤소영, 『경제학 비판』, 공감, p27

 

(1) 「제1편: 상품과 화폐」

 

알튀세르가 제안한 독해방식에 따라 읽으며, 이제 우리는 마르크스 『자본』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렵다는 제1편에 도달하게 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지배하는 사회의 부는 상품의 방대한 집적으로 나타나며, 개개의 상품은 이러한 부의 기본형태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우리의 연구는 상품의 분석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쓰고 있다.

상품은 두 가지 가치를 갖는다. 먼저 어떤 상품이든 '쓸모'가 있어야 하며, '인간의 특수한 욕망을 충족'시키는데 이를 '사용가치'라 부른다. 그런데 이 사용가치는 상품들간 서로 '질적인 차이'로 표현된다. 또한 모든 상품은 교환을 전제로 태어나는데, 가치를 매개하는 동질성이 존재한다. 바로 '인간노동의 투여'이다. 상품에서 사용가치를 빼버리면 그 가치는 객관적 실체인 '교환가치'로 표현된다. 마르크스는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이렇게 비교한다. 즉 "사용가치로서의 상품은 무엇보다 질적으로 구별되지만, 교환가치로서의 상품은 오직 양적 차이만을 가질 수 있다"고. 이런 상품의 이중적 성격은 C-M-C의 양 끝 서로 다른 사용가치가 일정한 비율에 따라 상호간 등가로 교환된다는 면으로 간단히 요약된다.

상품의 이중성의 연원을 마르크스는 노동의 이중성에서 찾아낸다. 마르크스는 『자본』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모든 노동은 한편으로 생리학적 의미에서의 인간노동력의 지출이며, 이 동등한 인간노동[또는 추상적 인간노동]이라는 속성에서 상품의 가치를 형성한다. 모든 노동은 다른 한편으로 특수한 합목적적 형태에서의 인간노동력의 지출이며, 이러한 구체적 유용노동이라는 속성에서 사용가치를 생산한다."

이제 마르크스는 상품의 교환을 분석한다. '우연적인 가치형태' → '전개된 가치형태' → '일반적 가치형태' → '화폐형태'로 전개. 마침내 자본주의적 교환을 매개하는 화폐가 등장하고, 상품의 물신적 성격의 비밀과 화폐의 물신적 성격의 비밀이 밝혀진다. 사회적 관계를 사물의 관계로 전도시킨다는.

여기서 일단 멈추자. 제1편의 논리적인 순서에 감탄하기보다는, 왜 상품일반의 분석에서 출발해서 노동의 이중성으로 나아가는지. "상품의 목숨을 건 도약"이라 마르크스가 표현하는 C-M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좀더 고민해 보자. 마르크스가 등가교환의 법칙을 전제하고, 교환과정에서 '잉여가치'가 산출되는 것이 아니라 생산과정을 분석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을 거슬러 올라갔던 것처럼. 우리의 질문은 이것이다. "화폐 M과 상품들 C가 존재하는 관념의 바다에서 이 결합을 보장하는 것은 무엇인가?" 특히, 독특한 상품으로서의 노동력과 화폐가 결합해야만 자본주의적 축적이 이뤄진다는 걸을 염두에 둔다면.

 

(2) 노동력과 화폐에 대한 '국가개입'

 

앞서 노동력 가치의 일상가치로서 '화폐임금' 분석을 통해 잠깐 소개했던 쉬잔느 드 브뤼노프는 위 질문을 던진다. 이는 그녀의 저서 『국가와 자본』의 질문이기도 하다. 그녀 주장은 "사적 자본은 항상 자본의 대표자로서 국가의 개입을 필요로 한다"는 테제로 요약된다. 특히 노동력과 화폐의 독특한 성격 때문에 이는 자본축적에 필수적이라는 주장이다.

브뤼노프는 "국가와 자본의 접합의 조건과 형태"를 분석한다. 그녀는 국가의 경제적 개입의 주요 축으로서 노동력과 화폐라는 두 특수한 상품의 재생산의 국가관리에 주목한다. '순환(circuit)'으로서 '자본의 일반적 정식'이 표현하는 자본의 상품적 조건과 관련하여 국가개입의 외재성('비자본주의적' 성격)과 내재성(자본주의에의 '적응'), 사전성(예: 본원적 축적)과 사후성(예: 공장입법)이 각각 확인된다. 이는 노동력과 화폐, 또는 그것들의 관계 속에 국가개입을 요구하는 어떤 것이 있으며, 또 국가개입의 내재성이 그 동시성을 기초짓는다는 것을 뜻한다. 브뤼노프에 의하면 이런 국가관리는 일정한 조건 속에서 '경제정책'이라는 형태로 출현한다.

노동력과 화폐는 양자 모두 상품들 세계에 속하지만, 그 세계 속에서 특수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고, 이러한 지위가 국가개입을 요청한다. 이것이 자본주의 국가의 경제적 행동의 기초이다. 그러나 경제정책은 계급간 관계의 변화와 더불어 발전할 따름이다. 예를 들어 노동력이 노동자계급이 되고, 노동자계급이 하나의 경제적 주체로서 화폐수입의 형성과 배분을 표상하는 플로우의 순환 속으로 통합될 때, 경제정책이 발전되었다. 경제정책이 된 국가의 경제적 행동과 정치 일반 사이의 관계는 이제 새로운 형태를 취하고 있고, 이에 대한 검토가 요구된다. 이것들이 이하의 장들에서 전개될 주제이다.

― 브뤼노프, 『국가와 자본』, 새길,  p17-18

브뤼노프는 노동력 가치의 재생산을 누가 보증하느냐고 질문을 던진다. 사적 자본은 이를 보증하지 않는다. 착한 자본가라 할지라도. 그녀에 따르면 제8편 「이른바 시초축적」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국가는 사전적으로 노동력 관리에 개입하고, 자본주의 역사에서는 '사회보장'의 형태로 일반화된다고 한다. 또한 화폐는 화폐피라미드를 통해 국가관리를 받는다고. 민족국가 중앙은행권과 결합된 세계통화와 개별 은행권의 층위가 바로 그것이다.   

결국 브뤼노프는 "국가의 '경제정책'이란 용어는 종별적인 행동유형을 지시하지만, 그것은 경제의 전체적 운동에 대한 국가조절의 다양한 영역의 전략적 통합의 필요를 가리킨다"고 짚는다. 그녀는 유통수준에서 거래의 중단이라는 일반적 위기를 예로 든다. 순환 M-C는 M//C로 단절된다고 가정하자. 한편에서는 '금융위기'를 다른 한편에서는 '실업'을 표현한다. 노동력과 화폐의 국가관리는 양자가 서로 분리되어 있다면 무능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M-C 관계의 일정한 변모가 있어야 하고, 그 구성요소들은 어느 정도 서로 융합될 수 있는 동질적 플로우로 취급되어야 한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화폐가 지불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는 능력은 이제 은행신용이 임금지불 - 이는 이제 소비재에 대해 지출될 수 있다 - 로 전화될 수 있는 정도에 의존한다. 이번에는, 소득의 "전략적" 형태로서의 임금은 은행융자에 의해 육성된다. 따라서 경제정세의 관리로 이해되는 경제정책은 화폐와 노동력의 국가관리를 변모시키고 포괄한다. 그러나 화폐가 신용과 다르고, 임노동에 부여되는 형태와 이데올로기적 표상이 아무리 변화한다고 해도 노동력이 임노동과 동일하지 않은 한, 국가의 경제적 행동의 이 두 가지 핵심영역은 여전히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브뤼노프는 마르크스주의 화폐분석이 난관에 빠졌다고 꼬집는다. 가치없는 화폐로서 법정불환화폐를 분석하지 못한다는 점. 전통적으로 마르크스주의 가치론에서 화폐는 '금'을 의미한다. 그러나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 이후 달라진 조건에서 출현한 법정불환화폐에 대해 마르크스주의가 분석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그녀의 지적이다. 윤소영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브뤼노프는 '사회적 가인정' 개념을 통해 국가관리의 필연성을 도출하고 있다. 노동력의 경우는 '사회보장'의 형태로, 화폐의 경우는 '법정불환화폐'로 그 가치의 재생산을 국가가 보증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런 사회적 가인정이 곧 완전한 재생산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회보장'은 자본주의의 만성적 실업의 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법정불환화폐는 인플레이션을 통해 과잉생산의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지연시킬 뿐이다. 브뤼노프의 문제의식은 다음 그림처럼 정리할 수 있다.

 

 

보론: 브뤼노프의 최근 논의 소개

 

브뤼노프는 'ATTAC(금융거래 과세를 위한 시민연합) 프랑스'에서 속해 활동하며 신자유주의 비판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그녀는 특히 마르크스주의와 케인즈주의의 '접합'을 통해 금융세계화에 대항하기 위해 '토빈세 도입'을 실천적으로 제안한다. 브루노 제틴과 공동으로 작업한 「토빈세와 자본운동 규제」(「Tobin Tax and The Regulation of Capital Movement」)란 글에서 그녀는 토빈세의 목적과 한계 및 유용성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다. 아래에서 이 글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제 국제 금융시장에서 당사자가 프랑(franc)을 달러(dallar)로 바꾼다고 가정하자. 그(녀)는 이 거래에 대해 0.1%의 세금을 내면 된다. 만일 거래 당사자가 나중에 달러를 프랑으로 바꾸려면, 0.1%의 동일한 세금이 다시 매겨진다. 그처럼 "내외" 거래가 하루만에 이뤄진다면, 그 해 말 거래당사자가 내는 세액은 48%에 달한다. 만약 그런 거래가 주 단위로 이뤄진다면 1년 간의 세금 납부액은 10%가 될 것이며, 한 달 단위로 이뤄진다면 2.4%가 될 것이다(J. Tobin, 1996, p. 11). 대신 토빈세는 단기투자자본과 장기투자자본을 "필터링"하기 때문에 장기 투자에는 거의 손실을 입히지 않는다고 그녀는 설명한다. 따라서 기업들은 투자를 장기간 거래로 바꾸게 될 것이며, 단기간 금융자본의 이동 요인은 크게 낮아진다고 한다.

브뤼노프는 토빈세 도입에 따라 두 가지 부가적 이익이 생긴다고 말한다. 첫째로 각 국가는 현대 통화 흐름에서 잃었던 자율성의 일부를 회복하게 된다. 환투기를 방어하는 업무에서 한시름 덜게 된다는 얘기이다. 환율이 급등하는 비율에 맞춰, 이윤율을 연동시켰던 정책도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된다고. 두 번째 이익은, 토빈세의 특정 기간(단기간)이나 세금율이 가변적이라는 사실이다. 만약 토빈세율이 너무 높다면, 아마도 조세 회피를 낳을 것이다. 토빈세에 찬성한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해외 거래 세금 수입에 흔히 부과되는 정도에 맞게 0.1 - 0.25% 범위를 제안하고 있다. 이처럼 세율이 낮기 때문에, 잠재적인 세금 수입은 줄어들지만 환율 안정 효과는 전적으로 남는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토빈세 역시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브뤼노프는 그 한계를 지적한다. 특정 통화에 대한 거대 투기꾼들의 공격을 막을 수 없다는 점, 이전 국제 통화 시스템이 소멸됨에 따라 아직 그 자리를 대체하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점.

 

브뤼노프는 토빈세 도입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먼저, 이것은 두 부문 간 법적 규제조치가 매우 상이한 공적 사적 부문과 깊이 연관되는 세금이다. 더 나아가 통화위기가 발생하기 전에 막아내는 예비조치이다. 대부분의 다른 개혁들은 사후적인 위기 관리, 그것도 실패한 시장 시스템을 구하고자 노력을 의미한다. 시장과 무역거래자들은 과거 이래로 수없이 많이 구제 받아 왔다. 한 예로 1998년 미 연방준비제도 이사회가 취한 조치가 있었는데, 월가를 지탱하게끔 금리를 세 차례 낮추었다. 전적으로, 미 연방준비제도 이사회는, 국제 대형 은행들과 미국 헤지 펀드의 채권자들에 압력을 넣고 있다. 신자유주의자들(자유시장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조치들을 묵인한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까지도 토빈세를 인정할 수 없다고 여긴다. 왜냐하면 이것이 도입되면 단기 자본 운동을 통제할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성격상 전 세계적이면서도 동시에 각 나라가 그 중요성에 대해 책임을 지는 협력적인 조치이다. 따라서 세계 주요 통화국들이 지배해 온 위원회에 의해 실행되지는 못할 것이다. 모든 통화 단위들, 즉 왕 노릇을 하는 달러에서부터 신하 역할에 불과한 통화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관련될 수밖에 없다. 이는 또한 민족주의에 의존해 완전하지 못한 거래를 할 수밖에 없었던 나라들을 설득해서 멈추게 하는 이득이 있다. 더 나아가, 핵심 통화들 간 경쟁을 줄이는 것은 국제 금융 관계의 안정성을 추구하는 개혁의 주요 과제 중 하나이다.

셋째, 토빈세는 국제 금융 시스템의 불안정성이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 알려준다. 즉, 세계 통화 시장의 거대 행위자들이다. 어떤 면에서는 투기가 안정을 가져다준다는 궤변도 있으나, 이는 금융행위의 동학을 설명하지도 그 내적인 논리를 해명하지도 못한다. 이런 논리를 비판함으로써, 토빈세는 신자유주의적 성격을 지닌 통화정책 합의를 공격하고, '자본의 자유로운 유통에 세금을 매길 수 있어서 이윤의 척도가 되니 이득'이라는 사고방식을 반박한다.

토빈세가 자본축적의 본질적인 부분인 금융규제철폐에 맞선 세계적인 수준의 만병통치약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세금을 연구하고, 이것이 공격당하는 경로를 분석하는 것은 중요한데, 왜냐하면 이런 비판들은 그 자체가 정치적 대립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1997년 가을 이래로, 세계적 통화 금융 시스템의 새로운 규제를 포함하는 견해들이 많이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최근 위기로 인해 자본 금융 시스템이 과도하다 인정하는 징후들일 뿐이다. 경제학자들은 통화거래 세금에 대한 논의를 진지하게 시작했다. 이 개념은 일정하게 대중성을 획득했는데, 특히 유럽에서 단기 자본 운동에 대한 통제권을 요구하면서. 더욱 더 많은 민중들이, 금융적으로 시장을 1997-98년 금융적 위기로 몰고간 투기꾼들의 행위를 처벌하는 것에 찬성한다. 대중은 더욱 투기적인 버블의 형성과 그 붕괴를 예방하기를 원한다. 이는, 정치적인 개혁이 금융 전문가들의 업무나 혹은 정부만의 것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로부터 침해받는 민중들이 논의하고 결정할 것이기에 특히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