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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평가가 던지는 메시지

 

코난(진보교육연구소 회원)

 

인터넷에 찾아보니 우리나라에 수행평가가 도입된 것은 1999년입니다. 저는 수행평가를 학생 입장에서 경험하지는 못했습니다. 1999년에 중학교 1학년이었던 학생들의 현재 나이가 36살이므로, 현재 30대 중반 이하의 선생님들은 학창 시절부터 수행평가를 자연스러운 평가로 받아들인 세대라고 보아도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교사 입장으로 마주한 새로운 평가 방식인 수행평가에 대한 저의 인상은 처음부터 그다지 좋았던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학창 시절 지필평가만 받아보았던 저에게 수행평가는 생소하였고, 교육청에서 해마다 내려 보내던 수행평가에 관한 지침(비율을 올려라 내려라, 이래라 저래라)은 교사로서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으로 여겨져 그야말로 짜증스러웠습니다. 어쨌든 입시위주 지필평가에 대한 보완책으로서 수행평가는 이러 저러한 문제 제기와 소소한 개선을 거치면서 지금까지 내신 성적에 반영되는 공식적인 평가 형식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특히 활동 수업을 중시하는 선생님들은 발표, 토론, 실험 실습, 논술 등의 다양한 평가를 가능하게 해준 수행평가를 더욱 환영했던 것 같습니다. 입시교육이나 교육 여건 등 여러 가지 현실적 문제로 인해 수행평가를 달가워하지 않던 선생님들도 수행평가의 취지 자체에는 공감하며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대학입시를 위해 학생을 줄 세우는 교육(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에 신물이 났던 우리들에게, 그 주요 수단이었던 지필평가(특히 선택형)는 절대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온갖 어려움을 뚫고 수행평가 비율을 높이려는 노력은 계속되었고, 뭔가 찝찝해도 수행평가 자체를 부정하는 목소리는 거의 찾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2015개정교육과정에서 요구하는 과정중심평가로 인해 더욱 복잡해졌지만, 해마다 모든 학교는 1학기 초에 교과협의회를 통해 수행평가 기준과 항목 등을 정합니다. 해마다 4월 과학의 달에 행사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방식으로, 행사 참여 여부나 결과를 수행평가에 반영하던 관행이 많이 사라진 이후(지금도 참여자에게 가산점을 주는 방식으로 운영하거나, 과고 진학을 원하는 학생의 스펙용으로 대회를 진행하기도 합니다), 중학교 과학 교과의 수행평가는 주로 태도평가와 실험평가로 진행되었습니다.

 

교과협의회에서 가끔 쟁점이 되곤 했던 것은 급간의 점수 차이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수행평가는 지필평가와 달리 평가 기준이 필요한데 그 기준을 명확히 세우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점수에 민감한 학생들을 중심으로 수행평가 후 평가 결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선생님들은 이러한 이의 제기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자, 전체 평가에서 수행평가가 차지하는 비중을 최소화하거나, 그나마 영향력을 줄이고자 평균 점수를 높게 주는 경향이 생기게 됩니다. 제 경험으로는 지필평가의 경우 평균 목표를 70(100점 만점)으로 잡아도 실제 평균이 60점이 안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수행평가 평균이 80점 아래로 내려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또한 같은 이유(기준 불명확)로 수행평가 급간을 넓게 잡아 점수를 부여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컨대 20점 만점에 3점 간격으로 A20, B17, C14, D11(기본 점수), E0(평가 불참)을 부여하는 식입니다. 평균을 높이고 싶으면 2점 간격으로 A20, B18, C16, D14(기본 점수), E0(평가 불참)를 부여하면 됩니다. 절대 평가의 명확한 기준이 없으므로 고무줄처럼 급간 점수 조정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공정성 등을 이유로 급간 점수를 세밀하게 하자는 의견이 많아졌습니다. 보통 조별 평가를 하는 실험평가의 경우 무임승차, 정답 베끼기 등을 적발하기 쉽지 않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그 아이들에게 페널티를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그럼에도 수행평가의 특성상 정량 평가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아 기준을 정하기가 쉽지는 않았으나, 방법은 있었습니다. 예컨대 위의 경우와 같이 A, B, C, D 등의 급간 점수는 그대로 둔 상태에서 다양한 사유로 감점 사유(11, 22)를 두면, 실제 점수는 1점 간격으로 배열이 가능해 집니다. 아니면 실험평가에서도 점수 차이를 세밀하게 부여하기 위해 뒷부분에 관련 문제 풀이를 더 많이 제시하여, 실제적으로 정량 평가가 가능한 지필평가의 효과를 얻기도 하고, 더 나아가 아예 평소에 실시하는 쪽지시험(사실상 간편한 지필평가)으로 수행평가를 대체하는 경우도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태도 평가의 경우 정의적 영역 평가라는 명목으로 진행되었는데, 실제로는 과학적 태도(이거 평가하기 막막합니다) 등을 평가한다기보다는 공부 습관 형성 등을 이유로 공부를 하기 싫어하는 학생을 억지로라도 수업에 참여시키거나 통제하는 도구로 활용된 측면이 많다는 생각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수업에 활용하는 학습지 검사나 공책 필기 검사를 주기적으로 실시하여 점수를 부여하며, 수업 시간에 졸거나 떠들 경우 감점을 하는 방식으로 평가가 진행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학교에 다니는 학생에게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태도(교과서, 필기도구 등 챙기기, 수업에 성실히 참여)를 수행평가라는 형식으로 강제하는 것의 부작용은 당연했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 항목에서 무난하게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점수에 민감한 학생들에게는 어쩌다 준비물을 챙기지 못해 불이익을 받는 것은 무척 억울하고 속상한 일이 되었습니다. 반대로 점수 받기를 포기한 일부 학생들에게는, 불성실을 정당화하는 기제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내가 내 점수를 포기하고 불이익을 받겠다는 데 무슨 문제냐는 식입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들의 대처는 다양합니다. 첫째 괘씸한 놈,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며 혼낸다. 둘째 논리적으로 보면 맞네. 니 맘대로 해라. 난 점수만 깎는다. 셋째는 불이익을 감수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안타까워하며, 반복적으로 회유하고 설득합니다. 그래서 이름만 쓰면 기본점수를 주겠다며 평가를 거부하는 학생들을 쫓아다니기도 합니다.

 

얼마 전 음악 선생님이 교내 메신저로 담임선생님들에게 수행평가 미참여(거부 포함) 학생의 명단을 돌린 일이 있었습니다(워낙 많아서?). 담임선생님들은 명단을 확인하며 우리 반은 많거나 적다며 비교하기도 하고, 어떤 학생은 그럴 줄 알았다며 탄식도 합니다. 어떤 선생님은 리코더로 노래 한 곡을 연주하는 음악 수행평가는 30점 만점에 소리를 한 번만 내도 12점의 기본점수를 준다는데 어떻게 그걸 하지 않을 수 있느냐며 한탄합니다. 게다가 리코더를 가지고 오지 않아서 수행평가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위생 문제, 게다가 코로나로 인해 리코더를 빌리는 것은 불가능한 듯합니다), 그 경우 0점을 줄 수밖에 없다고 했는데도 오히려 그냥 0점을 받겠다는 학생이 있다며 더욱 답답해합니다. 심지어 이에 동조하는 학생까지 생기니 선생님들은 그 학생들이 더욱 괘씸하고 야속하기만 합니다. 작년에 코로나19로 온갖 학교 수업이 파행으로 진행될 때도, 내신 산출을 위해 수행평가는 등교수업 진행되어야 했기에 학생들이 학교에 오는 짧은 등교수업 시간은 온갖 수행평가로 가득 찰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때 아프거나 코로나 증상으로 몇 일간 학교를 오지 못한 학생은, 등교 순간 온갖 과목의 선생님들로부터 수행평가 호출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거꾸로 선생님들은 미쳐 수행평가를 못한 혹은 거부하는 학생들을 쫓아다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평가가 교육의 수단이 아니라 평가가 교육의 주인임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인터넷 위키백과에서는 수행평가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수행평가(遂行評價)란 제시된 학습 과제를 학생이 직접 해결하게 하여 수행 과정과 결과를 평가하는 것을 뜻한다. 대한민국에서는 1999년부터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에 도입되었으며 창의력과 실제문제 해결능력 배양을 목표로 한다(위키백과).

 

거꾸로 말하면 기존의 지필평가는 지식을 외워서 기계적으로 정답을 찾는 데 익숙한 학생들에게 유리하여, 현대 사회가 실제로 요구하는 창의력과 실제 문제 해결 능력을 가진 학생들을 키우지 못했기 때문에 도입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수행평가가 창의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가진 학생들을 키우기는커녕, 공정성과 이익에만 민감한 학생을 키우는 경우가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은 의식적 존재입니다. 즉 스스로 생각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의식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인 심리학이 등장합니다. 철학도 인간의 생각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심리학 실험은 원래 실험 자체의 목적과 무관하게 다른 것에 대한 실험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심리학 실험의 목적을 의식하는 피험자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평소와 다르게 행동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플라시보 효과나 노시보 효과를 고려해야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일부러 실제 실험 목적은 숨기고 다른 목적을 내세워 실험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피험자가 두 수를 읽을 것을 고려하여 실험자는 한 수 앞을 더 내다보고 세 수를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을 평가할 때, 우리가 원하는 것을 평가하지 않고 실제로는 다른 것을 평가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원을 목적으로 실시하는 평가(진단 포함)라 할지라도 피험자가 이해관계를 의식하는 순간 평가는 왜곡될 수 있습니다.

 

자의식이 아직 덜 발달한 어린이에게는 가능한 평가가, 자의식이 발달하기 시작하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에는 왜곡되고 오히려 반대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특히 그 평가가 피험자의 이해관계와 얽힐 경우 그 경향은 심해질 수 있습니다. 게다가 피험자를 위한다는 생각(온정주의)으로 그 이해관계를 피험자에게 끊임없이 상기시켜 그러한 왜곡을 오히려 조장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이거 성적에 들어간다). 더구나 결과가 아닌 과정을 강조하며 태도까지 정확히 측정하겠다고 일상에 미세 현미경을 들이대는 순간 아이들은 마음을 숨기고 외면을 꾸미거나 그 평가의 가치에 맞게 스스로의 사고를 내면화할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중고등학교의 수행평가는 원래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다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됩니다. 첫째는 이익에 민감하라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그 일은 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둘째 불이익만 감수하면 안 해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이 경우 오히려 학교 교육이나 교사의 지도를 거부하는 면죄부가 되기도 합니다.

 

게다가 수행평가는 과정을 평가하기 위해서 평소에 실시됩니다. 지필평가 사이사이에 수시로 전 교과에서 실시합니다. 게다가 대학입시에 수시가 도입되고 생활기록부 기재 사항 하나하나가 중요해지면 학생들의 입장에서 평가는 일상이 됩니다(너의 삶을 보고 있다). 삶의 구석까지 어쩌면 영혼까지 잠식하는 온갖 평가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세상을 이해관계로 바라보게 됩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은 모든 활동을 손해인지 이익인지로 판단합니다(축제에서 공연하면 생활기록부에 써 줘요?). 학교는 끊임없이 이익을 따져야 생존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세상은 실제로 그렇게 되어가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이는 더 나아가 지식의 실용성을 점점 강조합니다. 나에게 뭔가 직접적인 이익이 되거나 도움이 되지 않은 지식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제 수행평가에 반영되지 않는 일상의 숙제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아무런 유인책도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모든 상황은 자사고, 외고, 과고와 같은 특권학교가 늘어나면서 고등학교를 넘어 중학교로도 확산되고 있습니다.

 

또한 내신 성적에 반영되는 모든 것이 점점 더 다툼의 대상이 됩니다. 학생은 늦잠을 자서 늦게 와도 내신 성적에 감점을 받지 않기 위해 아파서 지각했다고 말합니다. 반복적 거짓말이라는 의심이 많아질수록 교사는 학생에게 병원이나 약국의 증빙서류를 더욱 강하게 요구합니다. 평소에는 멀쩡하고 건강해 보이는 학생이 무슨 재주인지 상습적으로 병원의 증빙서류를 내고 당당하게 결석이나 지각을 반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에 따라 교사는 증빙서류 없이 학생을 믿고 질병 결석이나 조퇴를 인정하기는 점점 힘들어집니다(최근에는 증상이 없는데도 코로나 검사를 이유로 학교를 빠지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내신 성적에 반영되는 출결이 민감해 지면서 출결도 더 많은 공정성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봉사활동은 더 말할 것이 있을까요? 내신 성적에 반영된다는 이유로 거짓, 불성실 봉사활동이 늘어나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로 보입니다. 아이들은 봉사조차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학생들이 수행평가에 대해 실제로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엿볼 수 있는 사이트를 찾아보았습니다. 다음은 2008년 개교한 경기도의 한 일반계 공립 고등학교에서 만든 와키피디아에 나온 수행평가 항목의 일부입니다.

 

1. 개요: 학교 교육과정에서, 지필평가를 제외하고 성적에 반영되는 모든 점수를 의미한다. 남학생들의 성적을 깎아먹는 주범

 

2. 목적

일단 수행평가의 가장 큰 목적은 학생들을 괴롭히는 것 학생들이 평소에 수업에 올바른 태도로 임하고, 과제 등을 수행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

 

3. 특징

이러한 이유로, 지필평가에서 비슷한 성적을 거둔 우리들과는 거리가 먼 최상위권의 싸움에서는 수행평가에서의 1~2점 차이로 석차가 갈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허나, 각박한 수행평가를 극복하고 즐거운 학교생활을 즐기려는 정시성애자들은 수행평가와 내신을 던지고 뜻깊은 학창생활을 보낸다고 전해진다.

 

학생들이 수행평가로 많이 힘들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학생들에게는 지필평가도 힘들겠지만, 수형평가는 수시로 다양한 내용을 다양한 방식으로 평가하기에 더 힘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무위키 수행평가 항목에는 더 신랄하고 냉소적인 내용이 많습니다.

 

수행 비율이 늘어나는 만큼 학생들의 삶은 피폐해져만 간다. 이렇다보니 순서가 밀리거나 해서 시험기간과 겹치면 그야말로 지옥이 펼쳐진다. 실제로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학사일정이 크게 틀어진 2020학년도에는 수많은 수행평가와 정기고사 일정이 겹치는 바람에 시험 바로 전주에도 수행을 봐야하는 사태가 벌어져 학생들이 죽어나는 학교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20202학기에는 코로나19로 인해 되도록 수행평가를 하지 않도록 하는 교육부 지침으로 일부 과목의 지필 비율이 100인 학교가 있다. 정확히는 20202학기의 수행평가 폐지를 학교별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시행하여 지필 100% 평가를 진행한 일부 학교의 학생들은 대체로 정기고사에 대한 부담이 커져 마음이 불편하긴 하지만 수행평가가 사라지니 교과공부를 하거나 휴식을 취할 시간이 늘어 좋다는 반응을 보였다. (나무위키 수행평가)

 

또한 창의력과 문제 해결력을 키우기 위한 과정 평가라는 목적과 달리 오히려 암기력 테스트가 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요즘 수행평가는 지필평가보다 더 단순한 암기력테스트가 되고 있다. 미리 양식에 맞춘 연습 보고서를 작성하고 그걸 외워서 써내는 학생들이 많다. , 탐구 및 조사 능력과 자료의 수준보다는 누가 글자를 많이 외우나 싸움이 된 것이다. (나무위키 수행평가)

 

또한 학생들의 협력을 유도하여 창의력이나 문제 해결력과 함께 의사소통 능력까지 키울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조별 수행평가는 때로 지옥이 됩니다. 동료는커녕 웬수가 됩니다.

 

4. 조별 수행평가의 지옥: 팀 프로젝트의 경우 나머지 조원들이 에라 모르겠다식으로 나오면 대부분 우등생인 조장이 혼자서 다 하고 전부 떼어줘야 한다. 조원이 불성실하면 성실한 조원도 감점당하기 때문이다. (나무위키 수행평가)

 

또한 수행평가는 상위권, 하위권 학생에 따라 다양한 양상으로 부정적 영향을 미칩니다. 상위권 학생일수록 수행평가는 큰 부담이 됩니다. 특히 최상위권을 유지하려면 지필평가는 물론 수행평가도 만점을 받아야 한다는 부담을 갖게 됩니다. 수행평가는 지필평가의 부담을 덜어주기는커녕 잦은 평가로 더 큰 부담이 된다. 공부만 잘 하는 것이 아니라 달리기도 잘하고 저글링도 잘 하고 연기, 편집, 기획, 논술에 연주나 공작을 넘어 인성까지 훌륭해야 합니다. 힘들었던 만큼 그 결과를 빼앗기고 싶지 않게 되며, 스스로 그 결과를 누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공정성에는 더욱 민감해 집니다. 점수는 잘 받으려 하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무임승차자를 두고 보기는 점점 힘들어집니다.

하위권 학생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노력을 해도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는 경험이 반복되면서, 모든 걸 내던지고 수행평가를 거부하거나, 그나마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별생각 없이 친구의 것을 베끼기도 하고 무임승차를 하기도 합니다. 이 학생들 대다수는 성적이 나쁘다는 이유로 교사나 부모들로부터 유무형의 압박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점수 받기를 완전히 포기한 학생들은 아무리 쉬운 수행평가에도 백지를 내거나 평가 자체를 거부합니다. 이들을 다시 학업에 끌어들이기는 무척 힘이 듭니다. 학습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고 이 학생들은 학교에서 별다른 지식을 얻지 못한 채 졸업을 하게 됩니다.

대다수의 착한 중위권 학생들은 많은 것을 수용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상위권은 부럽지만 따라 잡기는 힘이 듭니다. 그 학생들에게 학교와 세상은 원래 이런 곳입니다. 때론 불만도 있고 원망도 생기지만 다른 세상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고 생각해 본 적도 없습니다. 대다수는 무기력하게 그저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고 결과를 수용합니다.

 

물론 모든 학생이 제가 위에 쓴 내용대로 살고 그런 마음을 갖는 것은 아니겠지만, 수행평가가 학생들에게 실제로 주는 메시지의 부정적 영향이 너무도 크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협력말고 경쟁이 거스를 수 없는 자연법칙이라 믿는 어른들 속에서, ‘생존만이 삶의 목표가 된 대다수의 학생들은, 삶이 힘들어도 세상을 원망할 줄도 모르고 스스로를 탓하며 묵묵히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