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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하지 않았다

 

이성우(구미사곡초)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우리나라에서도 번역되어 널리 알려진 베스트셀러 제목입니다. 책을 읽지 않았어도 이 한 문장은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이고 또 자명한 진리처럼 자리해 있는 실정이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교육학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는 낭설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저는 비판적인 관점으로 이 명제를 뜯어보고자 합니다. 이 명제는 몇 가지 면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우선, 번역상의 문제점입니다. 이 책은 세계 최대의 해양동물쇼업체인 씨월드SeaWorld의 조련사와 범고래를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책 제목은 조련사의 칭찬에 고래가 펄쩍펄쩍 뛰며 좋아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지만 이 책 어디에도 칭찬이 고래를 춤추게 한다는 문장은커녕 그 비슷한 표현도 안 나옵니다. 원 제목은 ‘Whale Done’인데, 이는 칭찬할 때 쓰는 영어 표현 ‘well done(잘했어)’을 살짝 변형한 것으로서 whale이 고래임을 생각할 때 탁월한 조어造語 기술이라 하겠습니다. 그 절묘한 어감을 우리 말로 살리기가 어렵겠습니다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로 옮긴 것은 마케팅 전략에 충실한 나머지 팩트를 벗어난 과도한 번역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원 책에 내재한 문제점에 대해 논하고자 합니다. 이 책의 요지는, 3톤이 넘는 거대한 범고래를 조련시켜 멋진 쇼를 성공시키는 비결이 칭찬 반응whale done response인데 주인공 남성(웨스)이 씨월드의 조련사로부터 이 기법을 배운 뒤로 회사에서 부하직원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며 성과를 거양해간다는 것입니다. 얼핏 그럴듯해 보이는 이 플롯의 허구성을 지적하기 앞서 범고래가 어떤 동물인지 살펴볼 필요를 느낍니다.

범고래는 인간 다음으로 높은 지능의 소유자로서 자아의식과 감수성이 고도로 발달해 있는 고등동물입니다. 그리고 ‘killer whale’이라는 영어 명칭에서 보듯 범고래는 해양 생태계에서 천적이 없는 난폭한 포식자이기도 합니다. 망망대해에서 시속 50km로 하루에 150km를 유영하는 이 품위 있는 거대동물을 좁은 곳에 가두어 사람들의 눈요기로 길들이는 과정에서 ‘whale done’ 기법이 주효했다는 보고서를, 고래 전문가이자 위대한 문학작품 [모비딕]의 저자인 멜빌이 읽으면 통탄해 마지않을 것입니다.

씨월드의 찌든 상혼에 범고래들이 희생되어가는 문제를 조명한 다큐물 [블랙피쉬]를 보면 고래 사냥꾼들이 범고래를 포획하는 과정이 비인간의 극치를 치닫습니다. 떼를 지어 헤엄쳐가는 고래들을 쾌속정이 굉음을 울리며 따라가고 고래들은 황급히 달아납니다. 쾌속정이 공중의 헬기와 교신하면서 고래 떼를 막다른 곳으로 몰아넣은 뒤 새끼만 포획합니다. 놀랍게도 새끼가 그렇게 잡혀갈 때 어른 고래들은 그 위험한 상황을 벗어나지 않고 자신들의 피붙이가 끌려가는 모습을 울부짖으면서 끝까지 지켜봅니다. 사냥꾼들은 새끼 범고래를 씨월드에 팔아넘기고 씨월드는 이 고래에게 인디언 어로 친구라는 뜻의 틸리쿰이라는 이름을 붙여줍니다.

인간 못지않게 지력과 감수성 그리고 가족애와 사회성이 고도로 발달한 탓에 범고래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가끔씩 돌발적으로 난폭한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범고래가 바다에서 사람을 공격한 사례는 없지만 조련 과정이나 쇼 상황에서 조련사를 공격한 사례는 20여 차례나 된다고 합니다. 2010, 틸리쿰은 씨월드의 부도덕성을 전 세계에 알린 사건을 일으키는데, 관객이 운집한 상황에서 조련사 던 브랜쇼를 공격하여 처참한 죽음을 안긴 것입니다. 브랜쇼는 22년 경력의 베테랑 조련사였고 더구나 틸리쿰과는 14년을 동고동락해 온 사이였습니다. 브랜쇼가 ‘whale done’ 기법을 사용하지 않아서 이러한 참사가 벌어졌다고 생각하는 조련사는 없을 겁니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123940001.bmp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500pixel, 세로 358pixel

(사진: 틸리쿰과 브랜쇼)

 

마지막으로, 이 책에 등장하는 칭찬의 주체들이 ‘whale done’ 기법을 활용하는 동기에 대해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 책에서 조련사는 퍼포먼스를 위한 훈련 목적 달성 외에 이 난폭한 거대동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whale done’이라 언급합니다. 말하자면, 자신이 살기 위해 고래를 칭찬하는 것입니다. 범고래로부터 목숨을 지키고 또 직장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whale done’ 기법을 씁니다. 그리고 주인공 웨스가 조련사로부터 이 기법을 배워 회사에서 써먹는 이유 또한 치열한 생존경쟁 대열에서 살아남기 위함입니다. 이렇듯 미사여구로 포장된 칭찬 전략이 정작 칭찬의 대상인 고래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 자체로 이 책은 교육적 명분을 상실하고 맙니다.

 

가정에서 부모 또는 학교에서 교사가 아동을 칭찬하는 동기는 조련사나 마케팅 팀장의 그것과 같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함이 아닌 아이들의 바람직한 성장을 위한 칭찬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사물에 내재한 두 측면을 동시에 바라보자(Both Sides Now!) 했는데, 칭찬도 두 측면을 지닙니다. 아이들에게 칭찬은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칭찬이 독이 되냐 하면, 씨월드의 조련사가 범고래에게 구사한 칭찬 전략이 아이들의 성장에 독이 됩니다. 이 책에서 조련사가 고래에게, 웨스가 팀원들에게 사용한 ‘whale done’ 기법은 행동주의심리학에서 말하는 정적 강화positive reinforcement의 원리가 전부입니다.

조련사나 팀장의 입장에서 고래와 팀원들이 바람직한 행동을 보였을 때 그 행동의 재발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정적 강화책으로 사용한 것이 ‘whale done’ 기법입니다. 이것은 고래에겐 머리를 쓰다듬어주거나 먹이를 주는 것이고 팀원들에겐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는 것일 텐데 간략히 말해 참 잘했어요(Well done)!”라는 칭찬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일정한 성취 수준을 보인 행동을 했을 때 참 잘했다거나 너 참 똑똑하구나”, “어쩜 그리도 문제를 잘 푸니?”라는 식으로 칭찬하는 것은 아이를 망치는 불상사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이는 열심히 노력하여 자기 역량을 발전시키기보다는 좋은 결과를 내는 것에 연연하게 됩니다. 어른들은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 주고 그것을 바탕으로 더 나은 발전을 좇는 도전정신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칭찬을 하지만, 아이는 전자를 지키기 위해 후자를 포기하기 쉽습니다.

드웩Carol Dweck5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간단한 시험을 친 뒤 결과와 무관하게 무작위로 두 집단으로 나누어 한쪽에겐 똑똑하다는 칭찬을 해주었고 다른 쪽에겐 열심히 노력한 것을 칭찬했습니다. 그 뒤 2차 실험에서는 1차 때와 비슷한 수준의 쉬운 문제와 좀 더 어려운 문제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노력에 대한 칭찬을 받은 집단은 90%가 더 어려운 문제를 선택한 반면, 똑똑하다는 칭찬을 받은 집단은 대부분 쉬운 문제를 선택했습니다(Po Bronson , 이주혜 옮김, 양육쇼크, 2009, 29). 어른들도 그렇지만 부모와 교사 따위의 의미있는 타자에 의존하는 아이들은 인정 욕구에 목말라 있기 때문에 자신의 성장보다는 어른들에게 자신이 어떤 아이로 비쳐지는가에 노심초사합니다. 어른들로부터 똑똑하다는 칭찬을 받은 아이는 자신의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심지어 부정행위를 저질러서라도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으려 할지도 모릅니다.

칭찬을 남발하여 아이들을 망치는 전형적인 사례는 연구학교나 시범학교에서 교육실적을 과시하기 위해 학생들에게 칭찬 스티커를 제공하는 국면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독서기록장을 나눠주고 일정한 쪽수의 책을 읽을 때마다 스티커를 붙여주면, 아이들이 책 읽는 것에 재미를 내는 것이 아니라 스티커 받는 것에 재미를 냅니다. 독서 분량을 늘이는 데 혈안이 되어 책을 건성으로 읽거나 학년 수준 이하의 책들을 선택하는 어처구니없는 풍경이 빚어집니다.

 

물론, 칭찬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교육적 상황에서 정적 강화물로서의 칭찬은 아동의 행동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효율적인 전략으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틱 장애를 겪고 있는 아이가 틱 증상을 보일 때 주의를 주는 것(=정적 처벌)은 아이를 주눅 들게 할 뿐 행동 개선에 아무 도움이 못 됩니다. 그보다는 틱을 보이는 전형적인 상황에서 평소와 달리 틱을 보이지 않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칭찬을 하면(=정적 강화) 틱을 자제하는 행동의 빈도가 늘어날 수 있습니다. 또한, 인사성이 없는 아이에게 인사를 잘 하지 않는다고 나무라기보다 어쩌다 인사를 건네올 때 칭찬을 해주면 앞으로 인사를 더 잘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잘못된 행동에 대한 비난은 관계를 악화시킬 뿐 아무런 교육적 효과가 없지만, 정적 강화 책략으로서의 칭찬은 아이의 행동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단순한 행동이나 습관을 교정하는 것과 달리 아동의 정신적 성장을 도모하는 맥락에서 무턱대고 칭찬하는 것은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에게 힘을 줄 수 있는 것은 결과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과정에 대한 관심의 표명입니다. “그림을 잘 그렸다”, “글을 잘 썼다는 식의 평론은 아이에게 부담을 줘서 자신의 진솔한 모습을 숨기게 만들지만, 작품의 주제나 표현에 대한 아이의 생각에 관심을 품고 질문을 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은 상호 간에 신뢰도 형성되고 아이가 결과에 부담을 갖지 않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시도를 하는 용기를 주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습니다.

 

정리하면, 단순한 행동이나 습관을 교정할 때는 정적 강화물로서 칭찬이 약이 될 수 있습니다. 씨월드에서 조련사가 범고래를 훈련시키는 기제가 이런 것이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바람직한 행동의 재발 가능성을 증가시키는 강화처벌보다는 바람직할지언정 결국 사람을 길들이는 것입니다. 행동주의심리학의 용어로 조건화시키는 것conditioning입니다.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1퍼센트 지점은 생각하는 국면입니다. 사고가 요구되는 국면에서 인간을 길들이는 것은 도덕적이지 못할뿐더러 교육적으로 역효과만을 파생시킬 뿐입니다. 귀하디 귀한 우리 아이들을 어른들의 칭찬에 길들여지게 해서는 아니 될 일입니다. 사회적 약자인 어린이들이 힘과 권위를 지닌 어른으로부터 자신이 어떤 평가를 받는지 조바심을 갖게 만드는 칭찬은 결국 아이들로 하여금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지 못하고 타율적인 존재로 전락시키는 위험이 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저도 과거에 아이들의 성장을 위한답시고 칭찬 스티커를 남발한 적이 많았습니다. 아이들이 독서량에 구애 받지 않고 독서 자체에 흥미와 보람을 느끼도록 했어야 했는데 아이들을 그릇되게 길들였습니다. 반성합니다. 존경하는 저의 후배 선생님들과 부모님들께서는 저를 반면교사 삼아 우리 아이들이 이런저런 외적 강화물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자신의 이유로 꿋꿋하게 자기 삶을 살아가는 자유인으로 길러주시길 바랍니다.

 

덧붙임) 제가 존경하는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인데, 자유(自由)는 자기(自己)의 이유(理由)로 살아가는 것이라 합니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123942e6e.bmp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262pixel, 세로 237pixel

(사진: 신영복의 그림과 글 자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