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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호 [담론과 문화] 영혼의 허기를 채우려는 이것, ‘국수’
2021.08.23 19:32
영혼의 허기를 채우려는 이것, ‘국수’
김진규(강원교육연구소 교육국장)
Ⅰ. 원본
국수 / 백석
눈이 많이 와서
산엣새가 벌로 나려 멕이고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 보다
한가한 애동들은 어둡도록 꿩사냥을 하고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가고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싸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이것은 오는 것이다
이것은 어늬 양지귀 혹은 능달쪽 외따른 산 녚 은댕이 예데가리밭에서
하로밤 뽀오얀 흰 김 속에 접시귀 소기름불이 뿌우현 부엌에
산멍에 같은 분틀을 타고 오는 것이다
이것은 아득한 녯날 한가하고 즐겁든 세월로부터
실 같은 봄비 속을 타는 듯한 녀름볕 속을 지나서 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 속을 지나서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으젓한 마음을 지나서 텁텁한 꿈을 지나서
지붕에 마당에 우물든덩에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여늬 하로밤
아배 앞에 그 어린 아들 앞에 아배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사발에 그득히 사리워 오는 것이다
이것은 그 곰의 잔등에 업혀서 길여났다는 먼 녯적 큰마니가
또 그 짚등색이에 서서 자채기를 하면 산 넘엣 마을까지 들렸다는
먼 녯적 큰 아버지가 오는 것같이 오는 것이다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枯淡하고 소박素朴한 것은 무엇인가
출처: 『정본 백석 시집』, 백석 지음 / 고형진 엮음, 문학동네, 2008(1판 5쇄). 148-147면.
Ⅱ. 발표 당시의 원본
국수 / 백석
눈이 많이 와서
산엣새가 벌로 나려 멕이고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마을에는 그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 보다
한가한 애동들은 여둡도록 꿩사냥을 하고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가고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싸서 은근하니 흥성 흥성 들뜨게 하며
이것은 오는것이다
이것은 어늬 양지귀 혹은 능달쪽 외따른 산녑 은댕이 예데가리밭에서
하로밤 뽀오얀 흰김속에 접시귀 소기름불이 뿌우현 부엌에
산멍에같은 분틀을 타고 오는 것이다
이것은 아득한 녯날 한가하고 즐겁든 세월로 부터
실같은 봄비속을 타는듯한 녀름 볓속을 지나서 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속을 지나서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으젓한 마음을 지나서 텁텁한 꿈을 지나서
집웅에 마당에 우물든덩에 함박눈이 푹푹 싸히는 여늬 하로밤
아배앞에 그어린 아들앞에 아배앞에는 왕사발에 아들앞에는 새끼사발에 그득히 살이워 오는것이다
이것은 그 곰의 잔등에 업혀서 길여났다는 먼 녯적 큰마니가
또 그 집등색이에 서서 자채기를 하면 산넘엣 마을까지 들렸다는
먼 녯적 큰 아버지가 오는 것같이 오는것이다
아, 이 반가운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 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枯淡하고 素朴한것은 무엇인가
출처: 『문장』, 3권 4호 폐간호, 1941, 4.
Ⅲ. 시어 의미 확정
‘산엣새’는 ‘산에 있는 새’라는 뜻. 백석은 ‘산새’와 ‘산엣새’를 구별해서 썼다고 한다.
‘벌’은 ‘넓고 평평하게 생긴 땅’을 이르는 말. 편평하고 넓게 트인 땅인 들과 비슷한 말이다.
그러니까 ‘벌’은 ‘들판=들녘=벌판’이다..
‘멕이다’는 ‘먹이다’라는 말. ‘먹이다’는, ‘먹다’의 사동사(使動詞)다. 사동사는, “문장의 주체가 자기 스스로 행하지 않고, 남에게 그 행동이나 동작을 하게 함을 나타내는 동사”다. 눈이 많이 와서 산에 있는 새가 먹이가 없어 먹이를 찾으러 벌판으로 계속 내려올 수밖에 없는 상황을 묘사한 말이다. 딱 들어맞는, 기막힌 표현 아닌가.
‘나려 멕이고’는, ‘내려 먹이고’, 즉 ‘계속 내려오게 되고’라는 뜻. ‘욱자지껄하며 멕이고’는 ‘욱자지껄하며 먹이고’, 즉 ‘계속 욱자지껄하고’란 뜻이다. ‘먹이다’엔 ‘풀을 먹이다’처럼 ‘어떤 작용이 이루어지게 하다’란 뜻이 있다. 백석의 수필 「무지개뻗치듯 만세교」에 “장진(長進)산골 날여멕이 바람이 강물을 스텨 희이한 선미(仙味)가 구름우에 떳구나”라는 대목이 있다. 이 문장의 ‘날여멕이’도 ‘내려오는’이란 뜻으로 사용된 것이다.
‘김치가재미’는 평북 사투리로, “겨울철에 김치를 묻은 다음에 얼지 않게 그 위에 지푸라기나 수수깡 따위로 만들어놓은 움막”이다. (정본 백석 시집 150쪽). 『조선말대사전』(2006) 증보판에 ‘김치가재미’를 ‘김칫독의 웃설미’로 풀이했다. ‘웃설미’란, ‘비바람이나 눈 따위를 막으려고 지붕이나 구조물의 꼭대기에 나뭇가지나 풀 따위로 꾸려 놓은 것’을 말한다.
‘양지귀’는 양지바른 한쪽 구석을 이르는 말이다. 양지귀는 ‘양지+귀(귀퉁이)’의 합성조어. 백석 시에는 ‘양지귀’ 외에 ‘마당귀’, ‘접시귀’, ‘삿귀’, ‘햇귀’의 ‘귀퉁이’를 뜻하는 어휘로서 ‘귀’를 붙인 합성어를 다양하게 구사한다. 백석 시 「석류」에서 “남방토(南方土) 풀 안 돋은 양지귀가 본이다/ 햇비 멎은 저녁의 노을 먹고 산다”와 같이 이 양지귀가 나온다. ‘능달쪽’은 ‘응달쪽’이라는 말. ‘응달’은 볕이 잘 들지 아니하는 그늘진 곳과 같은 음지(陰地)를 뜻한다. ‘평평한 곳’, 또는 어떤 특정 지역 이름으로 추정된다.
‘은댕이’의 뜻은 정확하게 알기 어렵다. 이동석(2007)이 ‘평평한 곳’이나 ‘우묵하게 파인 곳’, 이숭원(2008)이 ‘산비탈에 턱이 져 평평한 곳’으로 상상해 풀이한다. ‘은댕이’는 백석의 산문 「닭을 채인 이야기」에도 나오는데, 이 산문과 시어의 용례의 문맥을 감안해서 그런 풀이를 추론한 것이며 어학적 근거는 없다. ‘은댕이’의 ‘댕이’는 우리 고유의 땅 이름에 많이 붙은 ‘덤’이나 ‘더미’에서 온 말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은댕이’는 어떤 땅이나 지역을 지칭하는 말로 볼 수도 있다.
‘예데가리밭’은 ‘예제가리밭’이다. 예제가리밭은, ‘여기저기 갈아 놓은 밭’으로 추정된다. 예데가리밭의 뜻은 정확히 알기 어렵다. 다만, ‘예데(예제, 여기저기)+가리(갈이, 논밭을 갈고 김을 맴)+밭(田)’의 형태로 보아, 여기저기 갈아 놓은 밭 정도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즉, 계단식이나 물골을 따라 체계적으로 놓인 것이 아니라, 아무렇게나 산지의 여기 저기에 갈아 놓은 밭을 말하는 것으로 짐작된다. 또는 ‘예데’를 ‘대여섯’으로 보아 ‘대여섯 낮 동안 갈 정도 넓이의 밭’으로 추정해 볼 수도 있다. 이 경우 ‘예데가리밭은’ 하루갈이 밭, 사흘 갈이 밭과 같은 형태의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백석의 산문 「편지」에 “하루갈이 목화바테서”라는 구절이 나온다.
‘접시귀’는 ‘접시의 가장자리’다. 즉 ‘접시 귀퉁이’. ‘접시귀’는 ‘접시+귀(귀퉁이)’의 합성조어. 백석 시에는 ‘접시귀’ 외에 ‘마당귀’, ‘삿귀’, ‘양지귀’, ‘햇귀‘ 등 ‘귀’를 붙인 합성어가 다양하게 구사된다.
‘산멍에’는 산몽애로, ‘산무에뱀’의 고어다. 뱀과의 하나. 몸의 길이는 1.4미터 정도이며, 몸 빛깔은 어두운 갈색이다. 네 개의 검은 색이나 갈색 물무늬가 머리에서 꼬리까지 있다. 한방에서는 ‘화사(花蛇)’라 하여 문둥병이나 풍을 치료하는 약 또는 보신 강장제로 쓰인다. 한국·일본·중국에 분포하며, 낮은 산이나 풀밭·습지·물가에 산다.
‘분틀’은 ‘국수를 눌러 빼는 틀’이다. 재래식에는 반죽을 넣은 분통과 그에 맞는 공이가 있어 누르면 국수 가닥이 빠져나오게 되어 있다. ‘분틀’은 ‘국수분틀’, ‘국수틀’과 같은 말인데, 『평북방언사전』에 ‘분틀’이 등재된 것으로 보아, 평북 지방에서 이 말이 널리 쓰인 것으로 보인다. ‘산멍에 같은 분틀’은 분틀의 긴 나무 막대를 ‘산멍에’ 즉 ‘산무애뱀’에 빗댄 것으로 짐작된다.
‘들쿠레하다’는 ‘들크레하다’이다. 이 말은 ‘조금 들큼하다’라는 뜻. ‘들큼하다’는 ‘맛깔스럽지 아니하게 조금 달다’라는 뜻이다.
‘갈바람’은 ‘가을바람’(가을에 부는 선선하고 서늘한 바람)의 준말.
‘우물든덩’은 ‘우물둔덕’의 평북 방언이다. 우물둔덕은 우물 둘레의 작은 둑 모양으로 된 곳을 이른다.
‘여늬’는 ‘여느’라는 뜻. 즉 ‘다른 보통의’라는 의미다.
‘하로밤’은 하룻밤으로, ‘어느 날 밤’이라는 의미다.
‘아배’는 ‘아버지’의 방언이다. 경상도와 함북 지방에서 그리 불렸다.
‘사리우다’는 ‘사리다’에 ‘우’ 모음이 첨가된 것이고, ‘사리워’는 문맥상 피동으로 쓴 것으로 보인다. ‘사리우다’는 ‘사리다’, 즉 “국수·새끼·실 따위를 동그랗게 포개어 감다”라는 뜻이다. ‘새끼 사발에 국수가 담겨 나왔다’라는 의미. 원래 우리말에서 ‘우’는, 피동접사로 쓰이지 않는다. 따라서 ‘사리워’는, 표준 어법으론 ‘사리어져’나 ‘사려져’로 써야 맞는 말이다. 백석 시에 구사된 ‘사리워’라는 말은, 매우 독특한 어법의 시어라 볼 수 있다.
‘잔등’은 ‘등’의 방언이다. 황해, 경북, 경기의 방언이다. (『금성판국어대사전』). 사람이나 동물의 몸통에서 배의 반대쪽 부분을 지칭한다.
‘길여나다’는, ‘길러지다’라는 뜻. ‘길여나다’는 ‘기르다’의 피동형인 ‘길리우다’에 ‘나다’가 결합된 말인 ‘길리워나다’가 축약되면서 ‘ㄹ’이 탈락해 생성된 말이다. 북쪽 지역에서 사용하는 형태의 말이다.
‘큰마니’는 할머니의 평북(및 함북·자강) 방언이다. 『조선말대사전』에 수록.
‘집등색이’는 ‘짚등석’이다. 짚이나 칡덩쿨로 짜서 만든 자리. ‘짚등색이’는 발표 당시의 원문엔, ’집등색이‘로 표기되어 있다. 백석 시에서 ’짚‘은 모두 ’집으로 표기되어 있다. 따라서 백석 시에서 ‘집’은 ‘집’일 수도 있고, ‘짚’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평북 방언에서 ‘집구석은 ’집구새기‘로 나타난다. 이러한 평북 방언의 음운 현상과 백석 시에서의 ’집‘의 표기를 감안할 때 ’집등색이‘는 ’짚등석‘을 가리키는 말이 된다. 이동순이 이 말을 ‘짚등석’으로 본 바 있다. 그러나 이숭원은 ‘집등색이’를 ‘집+등새기(등성이의 평북 방언)’으로 보아 ‘집의 높은 지대’로 풀이하여 다른 견해를 보인다.
‘자채기’는 ‘재채기’의 방언이다.
‘댕추가루’는 ‘고추가루’의 평안도 말이다.
‘탄수’는 식초를 일컫는 말이다.
‘삿방’은 ‘갈대를 엮어서 만든 자리=삿’을 깐 방을 말한다.
‘아르궅’은 ‘아랫목’을 가리키는 말이다.
Ⅳ. 「국수」에서 정확한 발음을 위하여
1. 표준발음
1) 명사
① 국수 [국쑤] ② 백석 [백썩]
③ 산엣새 [사네쌔] ④ 눈구덩이 [눈꾸덩이]
⑤ 밤중 [밤쭝] ⑥ 하로밤 [하로빰]
⑦ 녯날 [녣날] ⑧ 녯적 [녣쩍]
⑨ 겨울밤 [겨울빰] ⑩ 삿방[삳빵]
⑪ 봄비 [봄삐] ⑫ 녚 [녑]
⑬ 밭 [받] ⑭ 부엌 [부억]
⑮ 녀름볕 [녀름볃] ⑯ 넘엣 [너멛]
⑰ 짚등색이 [집등새기] ⑱ 이것 [이걷]
⑲ 육수국 [육쑤국] ⑳ 아르궅 [아르굳]
㉑ 무엇 [무얻]
2) 명사+조사(어미)
① 눈이 [누니] ② 마을에는 [마으레는]
③ 것이 [거시] ④ 애동들은 [애동드른]
⑤ 마을을 [마으를] ⑥ 즐거움에 [즐거우메]
⑦ 이것은 [이거슨] ⑧ 것이다 [거시다]
⑨ 밭에서 [바테서] ⑩ 속에 [소게]
⑩ 소기름불이 [소기름부리] ⑫ 부엌에 [부어케]
⑬ 분틀을 [분트를] ⑭ 속을 [소글]
⑮ 사람들의 [사람드릐] ⑯ 마음을 [마으믈]
⑰ 꿈을 [꾸믈] ⑱ 함박눈이 [함박누니]
⑲ 앞에 [아페] ⑳ 왕사발에 [왕사바레]
㉑ 곰의 [고믜] ㉒ 것같이 [걷가치]
㉓ 동티미국을 [동티미구글] ㉔ 것은 [거슨]
㉕ 수육을 [수유글] ㉖ 아르궅을 [아르구틀]
㉗ 무엇인가 [무어신가]
3) 부사
① 많이 [마니] ② 혹은 [호근]
③ 그득히 [그드키] ④ 그지없이 [그지업씨]
⑤ 같이 [가치]
4) 동사
① 멕이고 [메기고] ② 죽으며 [주그며]
③ 쌓이는 [싸이는] ④ 업혀서 [어펴서]
⑤ 길여났다는 [기려낟따는] ⑥ 들렸다는 [들렫따는]
⑦ 닉은 [니근] ⑧ 좋아하고 [조아하고]
⑨ 삶는 [삼는] ⑩ 끓는 [끌는]
5) 형용사
① 같은 [가튼] ② 아득한 [아드칸]
③ 듯한 [드탄] ④ 으젓한 [으저탄]
⑤ 텁텁한 [텁터판] ⑥ 부드럽고 [부드럽꼬]
⑦ 얼얼한 [어럴한] ⑧ 자욱한 [자우칸]
⑨ 더북한 [더부칸] ⑩ 소박한 [소바칸]
6) 형용사+보조사
① 어둡도록 [어둡또록]
2. 표준발음의 적용
국수[국쑤] / 백석[백썩]
눈이[누니] 많이[마니] 와서
산엣새[사네쌔]가 벌로 나려 멕이고[메기고]
눈구덩이[눈꾸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마을에는[마으레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거시] 오는가 보다
한가한 애동들은[애동드른] 어둡도록 [어둡또록] 꿩사냥을 하고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가고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즐거우메] 싸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이것은[이거슨] 오는 것이다[거시다]
이것은[이거슨] 어늬 양지귀 혹은 능달쪽 외따른 산 녚[녑] 은댕이 예데가리밭에서[예데가리바테서]
하로밤[하로빰] 뽀오얀 흰 김 속에[소게] 접시귀 소기름불이[소기름부리] 뿌우현 부엌에[부어케]
산멍에 같은[가튼] 분틀을[분트를] 타고 오는 것이다[거시다]
이것은[이거슨] 아득한[아드칸] 녯날[녣날] 한가하고 즐겁든 세월로부터
실 같은[가튼] 봄비 속을[소글] 타는 듯한[드탄] 녀름볕[녀름볃] 속을[소글] 지나서 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 속을[소글] 지나서
대대로 나며 죽으며[주그며] 죽으며[주그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사람드릐] 으젓한[으저탄] 마음을[마으믈] 지나서 텁텁한[텁터판] 꿈을[꾸믈] 지나서
지붕에 마당에 우물든덩에 함박눈이[함박누니] 푹푹 쌓이는[싸이는] 여늬 하로밤[하로빰]
아배 앞에[아페] 그 어린 아들 앞에[아페] 아배 앞에는[아페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아페는] 새끼사발에 그득히[그드키] 사리워 오는 것이다[거시다]
이것은[이거슨] 그 곰의 잔등에 업혀서[어펴서] 길여났다는[기려낟따는] 먼 녯적[녣쩍] 큰마니가
또 그 짚등색이[집등새기]에 서서 자채기를 하면 산 넘엣[너멛] 마을까지 들렸다는[들렫따는]
먼 녯적[녣쩍] 큰 아버지가 오는 것같이[걷가치] 오는 것이다[거시다]
아, 이 반가운 것은[거슨] 무엇인가[무어신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부드럽꼬]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거슨] 무엇인가[무어신가]
겨울밤[겨울빰] 쩡하니 닉은[니근] 동티미국을[동티미구글] 좋아하고[조아하고] 얼얼한[어럴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조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조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수유글] 삶는[삼는] 육수국[육쑤국] 내음새 자욱한[자우칸] 더북한[더부칸] 삿방[삳빵] 쩔쩔 끓는[끌는] 아르궅을[아르구틀] 좋아하는[조아하는] 이것은[이거슨] 무엇인가[무어신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으저탄]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거슨]은 무엇인가[무어신가]
이 그지없이[그지업씨] 고담하고 소박한[소바칸] 것은[거슨] 무엇인가[무어신가]
Ⅴ. 소리의 길이와 세기―‘고저장단(高低長短)’
1. 장음
1) 완전장음
① 눈 [ˈ눈ː] ② 많이 [ˈ마ː니]
③ 산엣새 [ˈ사네ˈ쌔ˑ] ④ 빠지기도 [ˈ빠ː지기도]
⑤ 김 [ˈ김ː] ⑥ 속 [ˈ속ː]
⑦ 녯날 [ˈ녣ː날] ⑧ 실(絲) [ˈ실ː]
⑨ 세월(歲月) [ˈ세ː월] ⑩ 대대(代代)로 [ˈ대ː대로]
⑪ 사람 [ˈ사ː람] ⑫ 먼 [ˈ먼ː]
⑬ 녯적 [ˈ녣ː쩍] ⑭ 동티미국 [ˈ동ː티미국]
⑮ 담배 [ˈ담ː배] ⑯ 탄수 [ˈ탄ː수]
2) 반(半)장음
① 토끼 [ˈ토ˑ끼] ② 함박눈 [ˈ함박ˈ눈ˑ]
3) 장고모음 ([ˈ¯ː])
① 그지없이 [그ˈ지ˌˈ업ˑ씨]
4) 표현적 장음
① 그 [ˈ그·] ② 구수한 [구ˈ수ː한]
③ 은근하니 [은ˈ근:하니] ④ 흥성 흥성 [ˈ흥성: ˈ흥성:]
⑤ 아득하다 [아ˈ득:하다] ⑥ 한가하고 [ˈ한가:하고]
⑦ 들쿠레한 [ˈ들쿠레:한] ⑧ 푹푹 [ˈ푹:푹]
⑨ 그득히 [그ˈ드:키] ⑩ 조용한 [조ˈ용:한]
⑪ 히수무레하고 [히ˈ수:무레:하고] ⑫ 수수하고 [수ˈ수:하고]
⑬ 슴슴한 [ˈ슴슴:한] ⑭ 쩡 [ˈ쩡:]
⑮ 쩔쩔 [ˈ쩔:쩔]
5) 보상적 장음
① 갈바람 [ˈ갈:바ˈ람]
6) 개방연접―‘복합어 읽기’
① 백석 [ˈ백+ˈ썩] ② 소기름불이 [소+기ˈ름+부리] ˈ
③ 왕사발 [ˈ왕+사ˈ발] ④ 새끼사발 [새ˈ끼+사ˈ발]
⑤ 꿩사냥 [ˈ꿩+사ˈ냥] ⑥ 겨울밤 [겨ˈ울+빰]
2. 강세
1) 첫음절의 강세
① 국수 [ˈ국쑤] ② 반가운 [ˈ반가운]
③ 한가한 [ˈ한가한] ④ 애동 [ˈ애동]
⑤ 꿩사냥 [ˈ꿩ˑ사ˈ냥] ⑥ 엄매 [ˈ엄매]
⑦ 밤중 [ˈ밤쭝] ⑧ 김치 [ˈ김치]
⑨ 들뜨게 [ˈ들뜨게] ⑩ 양지귀 [ˈ양지귀]
⑪ 능달쪽 [ˈ능달ˑ쪽] ⑫ 외따른 [ˈ외따른]
⑬ 은댕이 [ˈ은댕이] ⑭ 예데가리밭 [ˈ예데가리밭]
⑮ 뽀오얀 [ˈ뽀오얀] ⑯ 접시귀 [ˈ접시귀]
⑰ 뿌우연 [ˈ뿌우연] ⑱ 산멍에 [ˈ산멍에]
⑲ 분틀 [ˈ분틀] ⑳ 봄비 [ˈ봄삐]
㉑ 으젓한 [ˈ으저탄] ㉒ 텁텁한 [ˈ텁터판]
㉓ 어린 [ˈ어린] ㉔ 아들 [ˈ아들]
㉕ 사리다 [사ˈ리다] ㉖ 잔등 [ˈ잔등]
㉗ 업혀서 [ˈ어펴서] ㉘ 큰마니 [ˈ큰마니]
㉙ 짚등새기 [ˈ집등새기] ㉚ 자채기 [ˈ자채기]
㉛ 닉은 [ˈ니근] ㉜ 댕추가루 [ˈ댕추가루]
㉝ 싱싱한 [ˈ싱싱한] ㉞ 그리고 [ˈ그리고]
㉟ 육수국 [ˈ육쑤꾹] ㊱ 삿방 [ˈ삳빵]
㊲ 끓는 [ˈ끌는] ㊳ 고기 [ˈ고기]
㊴ 살틀하니 [ˈ살틀하니] ㊵ 친한 [ˈ친한]
2) 둘째 음절의 강세
① 더러 [더ˈ러] ② 마을 [마ˈ을]
③ 무슨 [무ˈ슨] ④ 어둡도록 [어ˈ둡또록]
⑤ 가난한 [가ˈ난한] ⑥ 어늬 [어ˈ늬]
⑦ 혹은 [호ˈ근] ⑧ 하로밤 [하ˈ로빰]
⑨ 부엌에 [부ˈ어케] ⑩ 즐겁던 [즐ˈ겁든]
⑪ 녀름볕 [녀ˈ름볃] ⑫ 지나서 [지ˈ나서]
⑬ 죽으며 [주ˈ그며] ⑭ 마음을 [마ˈ으믈]
⑮ 지붕 [지ˈ붕] ⑯ 마당 [마ˈ당]
⑰ 우물든덩에 [우ˈ물+ˈ든덩에] ⑱ 쌓이는 [싸ˈ이는]
⑲ 여늬 [여ˈ늬] ⑳ 아배 [아ˈ배]
㉑ 사리다 [사ˈ리다] ㉒ 길여났다는 [기ˈ려나따는]
㉓ 좋아하고 [조ˈ아하고] ㉕ 내음새 [내ˈ음새]
㉖ 수육 [수ˈ육] ㉗ 자욱한 [자ˈ우칸]
㉘ 더북한 [더ˈ부칸] ㉙ 아르궅 [아ˈ르굳]
㉚ 고담하고 [고ˈ담하고] ㉛ 소박한 [소ˈ바칸]
3) 제1·2 강세
① 부드럽고 [부ˈ드ˌ럽고] ② 그지없이 [그ˈ지ˌ업ˑ씨]
3) 가락의 적용
국수[ˈ국쑤] / 백석[ˈ백+ˈ썩]
눈이[ˈ누ː니] 많이[ˈ마ː니] 와서
산엣새[ˈ사네ˈ쌔ˑ]가 벌로 나려 멕이고
눈구덩이[ˈ눈ː꾸덩이]에 토끼[ˈ토ˑ끼]가 더러[더ˈ러] 빠지기도[ˈ빠ː지기도] 하면
마을[마ˈ을]에는 그[ˈ그·] 무슨[무ˈ슨] 반가운[ˈ반가운] 것이 오는가 보다
한가한[ˈ한가한] 애동[ˈ애동]들은 어둡도록[어ˈ둡또록] 꿩사냥[ˈ꿩+사ˈ냥]을 하고
가난한[가ˈ난한] 엄매[ˈ엄매]는 밤중[ˈ밤쭝]에 김치[ˈ김치]가재미로 가고
마을[마ˈ을]을 구수한[구ˈ수:한] 즐거움에 싸서 은근하니[은ˈ근:하니] 흥성 흥성[ˈ흥성: ˈ흥성:] 들뜨게[ˈ들뜨게] 하며
이것은 오는 것이다
이것은 어늬[어ˈ늬] 양지귀[ˈ양지귀] 혹은[호ˈ근] 능달쪽[ˈ능달ˑ쪽] 외따른[ˈ외따른] 산 녚 은댕이[ˈ은댕이] 예데가리밭[ˈ예데가리밭]에서
하로밤[하ˈ로빰] 뽀오얀[ˈ뽀오얀] 흰 김[ˈ김ː] 속에[ˈ소ː게] 접시귀[ˈ접시귀] 소기름불이[소+기ˈ름+부리] 뿌우현[ˈ뿌우연] 부엌에[부ˈ어케]
산멍에[ˈ산멍에] 같은 분틀[ˈ분틀]을 타고 오는 것이다
이것은[이거슨] 아득한[아ˈ드:칸] 녯날[ˈ녣ː날] 한가하고 즐겁든[즐ˈ겁든] 세월[ˈ세ː월]로부터
실[ˈ실ː] 같은 봄비[ˈ봄삐] 속을[ˈ소ː글] 타는 듯한 녀름볕[녀ˈ름볃] 속을[ˈ소ː글] 지나서[지ˈ나서] 들쿠레한[ˈ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 [ˈ갈:바ˈ람] 속을[ˈ소ː글] 지나서[지ˈ나서]
대대로[ˈ대ː대로] 나며 죽으며[주ˈ그며] 죽으며[주ˈ그며] 나며 하는 이 마을[마ˈ을] 사람들의[ˈ사ː람드릐] 으젓한[ˈ으저탄] 마음[마ˈ음]을 지나서[지ˈ나서] 텁텁한[ˈ텁터판] 꿈을 지나서[지ˈ나서]
지붕[지ˈ붕]에 마당[마ˈ당]에 우물든덩에[우ˈ물+ˈ든덩에] 함박눈이[ˈ함박ˈ눈ˑ] 푹푹[ˈ푹:푹] 쌓이는[싸ˈ이는] 여늬[여ˈ늬] 하로밤[하ˈ로빰]
아배[아ˈ배] 앞에 그 어린[ˈ어린] 아들[ˈ아들] 앞에 아배[아ˈ배] 앞에는 왕사발[ˈ왕+사ˈ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사발[새ˈ끼+사ˈ발]에 그득히[그ˈ드:키] 사리워[사ˈ리워] 오는 것이다
이것은 그 곰의 잔등[ˈ잔등]에 업혀서[ˈ어펴서] 길여났다는[기ˈ려나따는] 먼[ˈ먼ː] 녯적[ˈ녣ː쩍] 큰마니[ˈ큰마니]가
또 그 짚등색이[ˈ집등새기]에 서서 자채기[ˈ자채기]를 하면 산 넘엣 마을[마ˈ을]까지 들렸다는
먼 녯적[ˈ녣ː쩍] 큰 아버지[아ˈ버지]가 오는 것같이 오는 것이다
아, 이 반가운[ˈ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히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수ˈ수:하고] 슴슴한[ˈ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겨ˈ울+빰] 쩡[ˈ쩡:]하니 닉은[ˈ니근] 동티미국을[ˈ동ː티미국] 좋아하고[조ˈ아하고] 얼얼한[어럴한] 댕추가루[ˈ댕추가루]를 좋아하고[조ˈ아하고] 싱싱한[ˈ싱싱한] 산꿩[ˈ산+꿩]의 고기[ˈ고기]를 좋아하고[조ˈ아하고]
그리고[ˈ그리고] 담배[ˈ담ː배] 내음새[내ˈ음새] 탄수[ˈ탄ː수] 내음새[내ˈ음새] 또 수육[수ˈ육]을 삶는 육수국[ˈ육쑤꾹] 내음새[내ˈ음새] 자욱한[자ˈ우칸] 더북한[더ˈ부칸] 삿방[ˈ삳빵] 쩔쩔[ˈ쩔:쩔] 끓는[ˈ끌는] 아르궅을[아ˈ르구틀] 좋아하는[조ˈ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조ˈ용:한] 마을[마ˈ을]과 이 마을[마ˈ을]의 으젓한[ˈ으저탄] 사람[ˈ사ː람]들과 살틀하니[ˈ살틀하니] 친한[ˈ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그ˈ지ˌˈ업ˑ씨] 고담하고[고ˈ담하고] 소박한 [소ˈ바칸] 것은 무엇인가
Ⅵ. 「국수」의 리듬
1. 문장의 통사적 반복에서 생성되는 리듬
리듬은 동일한 음소와 음절 그리고 단어나 마디가 반복되는 곳에서 생성된다. 그 뿐 아니라, 동일한 성격의 ‘통사적 반복’에서도 리듬은 만들어진다. 리듬은 또한 규칙적 반복 뿐 아니라, 불규칙적 반복에서도 생성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 통사적 리듬이 1연에서 두 가지로 나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이것은 ~것이다’와 둘째, ‘~것은 무엇인가’ 두 가지다. 이 두 통사적 반복이 각각 다섯 번씩 반복된다.
1) ‘이것은 오는 것이다’
(1) “이것은 오는 것이다[이거슨 오는 거시다]◀” (1연 8행)
(2) “이것은[이거슨] 어늬 양지귀 혹은 능달쪽 외따른 산 녚 은댕이 예데가리밭에서▷ 하로밤 뽀오얀 흰 김 속에 접시귀 소기름불이 뿌우현 부엌에▷ 산멍에 같은 분틀을 타고 오는 것이다[오는 거시다]◀” (1연 9~11행)
(3) “이것은[이거슨] 아득한 녯날 한가하고 즐겁든 세월로부터▷ 실 같은 봄비 속을 타는 듯한 녀름볕 속을 지나서 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 속을 지나서▷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으젓한 마음을 지나서 텁텁한 꿈을 지나서▷ 지붕에 마당에 우물든덩에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여늬 하로밤▷ 아배 앞에 그 어린 아들 앞에 아배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사발에 그득히 사리워 오는 것이다[오는 거시다]◀” (1연 12~16행)
(4) “이것은[이거슨] 그 곰의 잔등에 업혀서 길여났다는 먼 녯적 큰마니가▷ 또 그 짚등색이에 서서 자채기를 하면 산 넘엣 마을까지 들렸다는▷ 먼 녯적 큰 아버지가 오는 것같이 오는 것이다[오는 거시다]◀” (1연 17~19행)
2) ‘~것은 무엇인가’
(1)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거슨 무어신가]◀”
(2)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거슨 무어신가]◀”
(3) “겨울밤 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거슨 무어신가]◀”
(4)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거슨 무어신가]◀”
(5) “이 그지없이 고담枯淡하고 소박素朴한 것은 무엇인가[거슨 무어신가]◀”
3) 자음 [ㄱ]-[ㅅ] / [ㅅ]-[ㄱ] 계열체
시 제목 ‘국수’의 자음은 ‘[ㄱ]-[ㅅ]’이다. 시적 주체는 다섯 번이나 묻는다. ‘이것은 오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인가’라고. 청자는 안다. 그것이 국수라는 것을…! 이 시는 수수께끼 형식을 취한다. ‘이것은 이러이러하게 오는 것인데, 이것은 무엇인가~?!’라면서 이것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펼친다. 이것은 응당 국수다. 영혼의 허기를 채우려는 음식이며, 나아가 공동체 의식이고, 대대로 살아온 우리 민족의 수수하고, 슴슴한, 고담하고 소박한 심성이다. 전통을 회복해야 하는 당위성까지 나아간다. 수수께끼 형식은 이렇듯 힘이 세다. 호기심과 흥미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쩜 시의 형식과도 자매 같은 성격이 수수께끼 형식이다.
그런데 이 질문에도 음운론적으로 ‘국수’가 배어 있다. “이것은 무엇인가”는 [이거슨 무어신가]로 읽힌다. 국수의 자음 [ㄱ]-[ㅅ]이 ‘이것은[이거슨]’에서 ‘것은[거슨]’의 초성 자음 ‘[ㄱ]-[ㅅ]’은 국수의 자음 ‘[ㄱ]-[ㅅ]’과 동일하다. 이러한 반복에서도 리듬이 생성된다. 리듬은 외려 동일한 성격의 반복이 아니라, 외려 유사 반복, 유음 반복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수수께끼 형식이 그러하듯이. 이 시에서 “이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이미 그 속에 답을 저장해 두었다. 이것은[이‘거슨(ㄱ-ㅅ)’] ‘국수(ㄱ-ㅅ)’인 것이다. 따라서 [ㄱ-ㅅ] 계열이 리듬을 강화하고 그 소리와 뜻을 하나로 묶어내는 역할을 한다.
2. 자음·모음 계열체가 형성하는 리듬―‘프로조디(prosodie)’
(1) 모음 [ㅜ] 계열체
1연 15행은 눈 내리는 어느 날 밤의 풍경을 이렇게 묘사한다.
“지붕에 마당에 우물든덩에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여늬 하로밤”
이날 밤의 사건은, ‘눈이 내린다’에 있다. 이날은 ‘지붕’에, 마당에, ‘우물든덩’에 ‘함박눈’이‘푹푹’ 쌓이는 밤이다.
우리는 1연 15행에서 모음 [ㅜ]가 반복돼 리듬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함박눈’에서 ‘눈’의 모음 [ㅜ], ‘지붕’에서 ‘붕’의 모음 [ㅜ], ‘우물든덩’에서 ‘우물’의 모음 [ㅜ/ㅜ], ‘푹푹’의 모음 [ㅜ/ㅜ]처럼 모음 [ㅜ]가 반복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모음 음소 [ㅜ]가 속한 음절이 바로 강세를 품은 리듬의 거점이 된다. 리듬은 왜, 어떻게 생성되는 것인지를 파악해야 리드미컬한 낭송을 할 수 있는 출발점에 설 수 있다. 그저 “리듬감 있게 낭송하세요~!”라는 조언은 하나마나한 말씀이다. 이런 막연하고 모호한 시낭송 지도에 못내 드러내지 못한 짜증을 속으로 꾹꾹 누르는 강습자가 적지는 않으리라 여긴다.
‘모음 [ㅜ] 계열체’는, 내리는 눈의 운동성과 그 시각적 모습까지 강조한다. [ㅜ] 모음의 저 하강하는 느낌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는 눈의 운동을 재현하는 효과를 톡톡히 내기 때문이다. 특별히 ‘푹푹’은 의미적 강세를 이루기 때문에, 이러한 음성적 특성이야말로 눈이 쌓이는 모습을 더욱 실감 나게 한다. 그러니까 모음 음소 [ㅜ]가 눈 내리는 광경의 리듬을 넉넉히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모음 [ㅜ] 계열체에 강세를 넣어 리드미컬하게 읽어 보자~!
“지붕에 마당에 우물든덩에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여늬 하로밤”
이어서 ‘2연 4행’도 살펴보자.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저 2연 3행에서 ‘[ㅜ] 계열체’의 자음 ‘수’가 반복되는 현상에 특별히 주목해야 한다. ‘탄수·수육·육수국’을 구성하는 음절 ‘수’는, 물(水[수])을 의미한다. 하여 물에 삶은 고기 ‘수육’에서도 물의 이미지가 환기된다. 프로조디에 따라 리듬이 구성되고, 그로 인해 의미마저 재편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소리와 뜻이 하나이기 때문이다.
[ㅜ] 계열체는 행이 진행되며 ‘자욱한’과 ‘더북한’에서 그 정점을 형성한다. 또 그러면서 수식의 초점은 ‘아르궅’에 모아진다. 주어 ‘이것’이란, 물론 국수인데, 쩔쩔 끓는 아랫목을 ‘좋아하는 이것(=국수)’에 의미의 중핵이 자리 잡는다. 아르궅은 삿방에 있다. 삿자리를 깐 방에는, 시방 담배·탄수(=식초)·육수국 냄새가 가득하다. 냄새로 가득한 ‘삿방’의 상황을 드러내는 단어가 바로 ‘자욱한’과 ’더북한‘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ㅜ] 계열은, 아랫목을 좋아하는 ’이것‘, 곧 국수의 특성을 여실하게 표현하는 데 기여한다.
또한 동사 ‘좋아하다’의 목적어 ‘아르궅’과 문장의 전체 서술어 ‘무엇인가’에도 모음 [ㅜ]가 있다. 긴 휴지로 템포를 조정하면서 율동적 리듬을 구현하는 2연 4행은, 긴 휴지에 의해 구획된 ‘이것’의 속성을 중첩시키는 소단위 관형구에 [ㅜ]가 사용된 것이다. 모음 [ㅜ] 계열체는 국수의 특성을 수식하는 핵심 의미소로 기능한다. 이 시의 제목이자 제재인 ‘국수’도 [ㅜ] 모음으로 구성되지 않았는가.
역시 이 행도 강세를 넣어 리드리컬하게 읽어 보자!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2) 자음 [ㅎ] 계열체
□ [ㅎ]의 음가가 그대로 실현되는 음절
자음 [ㅎ]은, 구강 통로 전체에서 공기를 마찰시켜 발음되는 ‘마찰음’이다. 이 음절은 발화되는 과정의 길이가 길다. 응당 긴소리로 구분된다. 이런 음성적 특성으로 인해 [ㅎ]은, 긴 면발의 움직임을 연상케 하는 「국수」의 리듬 구조에서 핵심 시어로 작동된다. 의미론적 핵심 시어에는, 강세를 품은 리듬의 거점이 되므로 이 음절에 강세를 넣어 낭송해야 한다는 것이다.
[ㅎ] 계열체에는, 음가가 없는 ‘많이[마니]’와 ‘끓는[끌는]’도 포함된다. 이 음절에는 강세가 아니고, 반향이다.
자음 [ㅎ] 계열체의 음가가 그대로 실현되는 음절은, ‘한가한/흥성흥성/혹은/하로밤/흰 김/한가하고/함박눈/하로밤/히수무레/뿌우현/그득히’다. 이 음절은 ‘강세’를 품은 리듬의 거점이다.
그리고 [ㅎ] 음절의 음가가 실현되나, 강세가 아니라 ‘반향’을 일으키는 음절로는, ‘하고/가난한/구수한/은근하니/하며/들쿠레한/하면/수수하고/슴슴한/좋아하고/얼얼한/싱싱한’
□ [ㅎ]의 음가가 없는 음절
시어 ‘많이’와 ‘끓는’은, 각각 [마니]와 [끌는]으로 발음한다. 발화에서 자음 [ㅎ]의 음가가 없다.
□ [ㅎ]의 음가를 내포한 음절
반면 문자 언어에는 [ㅎ]이 표면상 드러나지 않으나, [ㅎ]의 음가를 내포한 음소가 있다.
‘분틀’에서 ‘틀’의 [ㅌ]은, [ㄷ+ㅎ=ㅌ]이 그것이다. 또 ‘앞에서’는 [아페서]로 발음된다. 둘째 음절 ‘페’의 자음 [ㅍ]은, 연음되는 특징으로 인해 [ㅂ+ㅎ=ㅍ]으로 보아 [ㅎ] 음가를 지닌 시어로 파악 가능하다.
리듬을 살리려면 저 ‘음가 없는 음절’과 ‘음가를 내포한 음절’을 내치면 안 된다. 다 품어 안고 흘러야 한다.
결국 [ㅎ] 계열체는, 흰색의 ‘국수’ 속성을 나타내는 “뽀오얀[ㅎ] 힌[ㅎ] 김”, “뿌우연[ㅎ] 부엌”, “함[ㅎ]박눈”과 같은 시어에서 볼 수 있듯이, 「국수」 전체의 수식어 중에서 핵심적 의미망을 구성한다.
자음과 모음 계열체인 프로조디 중에서 모음 [ㅜ] 계열체는, 국수의 특성을 수식하는 ‘눈’ 의 특징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핵심 의미소로 기능하고 동시에 역동적인 리듬을 형성한다. [ㅎ] 계열체는 텍스트 전체에서 주목된다. 그 불규칙적 산포 양상에도 불구하고, 작품이 전개되면서 강세 기능을 담당하는 한편 의미에 호응하는 리듬을 형성한다. 프로조디를 통해 우리는 표층의 규칙적 반복에 따라 형성되는 리듬과 함께 텍스트의 심층 구조에서 발현되는 리듬의 출처를 파악할 수 있었다. 프로조디는 불규칙적 리듬, 감춰진 리듬이다.
리듬은 「국수」의 시·공을 통합하며, 리듬에 의해 통합된 시·공을 확장해 나간다. 「국수」에서 느껴지는 삶의 무한한 지속에 대한 찬미와 언어적 율동의 아름다움은, 바로 이런 리듬의 힘에 기인한 것이다.
프로조디를 시에 적용해 읽어 보자.
눈이 많이 와서
산엣새가 벌로 나려 멕이고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 보다
한가한 애동들은 어둡도록 꿩사냥을 하고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가고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싸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이것은 오는 것이다◀
이것은 어늬 양지귀 혹은 능달쪽 외따른 산 녚 은댕이 예데가리밭에서
하로밤 뽀오얀 흰 김 속에 접시귀 소기름불이 뿌우현 부엌에
산멍에 같은 분틀을 타고 오는 것이다
이것은 아득한 녯날 한가하고 즐겁든 세월로부터
실 같은 봄비 속을 타는 듯한 녀름볕 속을 지나서 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 속을 지나서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으젓한 마음을 지나서 텁텁한 꿈을 지나서
지붕에 마당에 우물든덩에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여늬 하로밤
아배 앞에 그 어린 아들 앞에 아배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사발에 그득히 사리워 오는 것이다
이것은 그 곰의 잔등에 업혀서[어펴서] 길여났다는 먼 녯적 큰마니가
또 그 짚등색이에 서서 자채기를 하면 산 넘엣 마을까지 들렸다는
먼 녯적 큰 아버지가 오는 것같이 오는 것이다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枯淡하고 소박素朴한 것은 무엇인가
이상 백석의 국수를 낭송하기 위해 원문과, 발표 당시의 원문, 시어 의미 확정, 표준발음과 고저장단 그리고 ‘소리와 뜻’으로 번역할 수 있는 ‘프로조디’의 관점에서 리듬을 분석했다.
그러나 낭송에서 중요한 어조, 모음 소릿길, 포즈도 무척 중요하나, 지면의 한계로 서술하지 못했다.
시는 노래다. 노래가 시고, 시가 노래다. 안타깝지만 우리는 시를, 운문을, 정형시가 아닌 근현대의 자유시를 어떻게 읽는지 알지 못했다. 20여 년 전 밴브니스트의 언어학과 리듬 연구를 이어 프랑스의 앙리 메쇼닉의 프로조디의 개념을 통해 각각의 시마다 고유의 리듬을 지닌 현대시의 리듬을 궁리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 ‘내재율’이라는 불가지론에 빠져 사실상 방기된 현대시의 리듬을 다시 고민하고 궁리할 시기가 왔다.
시는 눈으로 읽히는 것이 아니다. 눈으로만 읽는다는 건, 마치 음악연주회에 모여 앉아 각자 악보를 보여 음악을 상상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한 음악은 세상에 온전히 존재하는 것을 볼 수 없다. 연주자가 악보를 보고 그를 익혀 연주할 때만이 음악은 세상에 현실적으로 온것통것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시도 마찬가지다. 소리내어 읽혔을 때만 이 세상에 온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어에서 ‘읽다’라는 동사가 ‘에필레게스다이’다. 즉 문자에 소리를 덧붙인다는 말이다.
내년은 백석 탄생 110주년이 되는 해다. 백석은 그 흔해 빠진 문학관 하나 없다. 월북작가의 문학관도 있고, 김소월문학관도 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최고의 시인이요, 시인중의 시인이라는 백석은 정작 남북 어디에도 그의 문학관은 없다. 심지어 살아 있는 문인의 문학관마저 있는데, 백석의 문학관은 없다. 그에 대한 학술 세미나라거나, 그를 기념하고, 혹은 추모하는 행사도 찾아보기 어렵다.
전교조의 국어 선생님들부터 두팔 걷고 나서주신다면, 혹여 웰터 옹의 말처럼 제2의 구술시대가 열리는 가운데 우리 시문학의 새지평이 열릴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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