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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호 담론과 문화> 김진규의 시이야기 - 시(詩)로 부르는 3월의 역사
2021.01.23 15:30
[다함께 시낭송] ― ‘3월에 아이들과 함께 읽은 시’
시(詩)로 부르는 3월의 역사
김진규(강원교육연구소 교육국장)
1. 불꽃 시인의 사랑과 저항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자타가 공인하는 이상화 시인의 대표작입니다.
“선생님의 대표작은 「나의 침실로」입니까?”
“그 작품이 여러 시선집에 실려 다니는 것을 보았지만 불쾌하다.”
“그러면 선생님의 대표작은 무엇입니까?”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동경에서」 「역천(逆天)」이며 그중에서도 「역천」이 나의 대표작이지.”
이 이야기는, 1948년 4월에 간행된 잡지 『무궁화』에 실린 이문기의 「상화의 시와 시대 의식」에서 이문기가 이상화에게 묻고 답하는 한 장면입니다.
작가의 대표작은 후세의 평론가와 독자의 몫인데, 이상화 시인은 저러한 상황이 벌어지는 바람에 자신의 대표작을 스스로 표명하게 됩니다. 최고의 대표작 「역천」, 그리고 「동경에서」는, 일반 독자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시인과 독자 모두 인정하는 공통적 대표 시는, 역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입니다.
매년 3월이 오면, “오등(五等)은 자(慈)에 아(我)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로 시작하는 「기미독립선언문」과 함께 많이들 읽히는 시는, 바로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일 겁니다. 올해는 3·1운동 102주년 기념의 해이며, 이상화 시인 탄생 12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 글에서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낭송할 수 있도록 시에 대한 분석 낭송 방법을 설명합니다. 아울러 3·1운동을 소재로 한 일본의 천재 시인 마키무라 히로시의 「간도 파르티잔의 노래」, 김남주의 「독립의 붓」, 허영자의 만세로 「가득찬 사나이」를 겹쳐 읽는 시로 제시합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고 나서 7년이 지난 1926년 6월 1일에 간행된 『개벽』 제70호에 발표되었습니다. 6월 10일 순종의 인산일에 일어난 ‘6·10만세운동’이 일어나기 9일 전입니다.
이상화는 1919년 서울에서 3·1운동이 일어나자, 3월 8일 장날을 기해 대구에서 학생만세운동을 모의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전에 발각되고 말았습니다. 이상화가 3·1운동 당시 대구에서 학생운동을 배후 조종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이 작품과 3·1운동의 관련성은 더욱 분명해집니다.
70호의 부제는 <조선 500년 대관(大觀) 호>입니다. 이상화의 시뿐 아니라, 민족주의적 감성을 자극할만한 기사도 대거 실렸습니다. 한국인 독자에게 대환영을 받았지만, 일제는 이 잡지를 압수합니다. 하여 호외를 두 번 더 발행합니다만, 호외마저 모두 압수당하고 맙니다.
오늘날에 맞게 바뀐 원문과 함께 1926년 발표 당시의 원문을 보며 그 느낌을 느껴보겠습니다.
2. 원문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는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국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쁜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보다.
그러나 지금은―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3. 발표 당시의 원문
앗긴들에도 봄은 오는가 / 이상화
지금은 남의―앗긴들에도 봄은오는가?
나는 온몸에 해살을 밧고
푸른한울 푸른들이 맛부튼 곳으로
가름아가튼 논길을라 속을가듯 거러만간다.
입슐을 다문 한울아 들아
내맘에는 내혼자온것 갓지를 안쿠나.
네가엇느냐 누가부르드냐 답답워라 말을해다오.
바람은 내귀에 속삭이며
한자욱도 섯지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조리는 울타리넘의 아씨가티 구름뒤에서 반갑다웃네.
고맙게 잘자란 보리밧아
간밤 자정이넘어 나리든 곱은비로
너는 삼단가튼머리를 앗구나 내머리조차 갑븐하다.
혼자라도 갓부게나 가자
마른논을 안고도는 착한도랑이
젓먹이 달래는 노래를하고 제혼자 엇게춤만 추고가네.
나비 제비야 치지마라.
맨드램이 들마꼿에도 인사를해야지
아주리 기름을바른이가 지심매든 그 들이라 다보고십다.
내손에 호미를 쥐여다오
살 젓가슴과가튼 부드러운 이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어도보고 조흔조차 흘리고십다.
강가에 나온 아해와가티
도모르고 도업시 닷는 내혼아
무엇을찻느냐 어데로가느냐 웃어웁다 답을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고
푸른웃슴 푸른설음이 어우러진사이로
다리를절며 하로를것는다 아마도 봄신령이 접혓나보다.
그러나 지금은―들을앗겨 봄조차 앗기것네
4. 시의 구조와 이해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짧지 않은 시입니다. 장시에 속하죠. 총 11연 29행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시의 구조적 특징은, 대칭 구조에 있습니다. ① ‘1연/11연’, ② ‘2연/10연’, ③ ‘3연/9연’이 서로 짝을 이룹니다. 4연부터 8연까지는 대칭되지 않습니다. 독자적으로 한 덩어리로 구성되었습니다. 하나씩 확인합니다.
첫째, ‘1연과 11연’의 대칭 구조.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1연).
“그러나 지금은―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11연).
1연에서 과거에 내 땅이었던 땅이 빼앗겨 남의 땅이 된 국토에 “봄이 오는가?”라고 묻습니다. 11연에서는 “들을 빼앗겨”서 “봄조차 빼앗기”게 생겼다고 합니다. 시적 주체는 ‘계절로서 봄’은 왔지만, 우리 민족의 ‘희망으로서 봄’은 오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국권피탈로 과거에 우리의 땅이 현재에 남의 땅이 되어서 계절로서 봄조차 느낄 수 없습니다. 절망적·체념적 정서입니다. 깊은 탄식이 묻어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만은 아닙니다.
빼앗긴 들에서 누리는 봄은, 진정한 봄이 아니므로 진정한 봄을 맞이하려면 ‘빼앗긴 들’을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와 정서가 배어있습니다.
둘째, ‘2연과 10연’의 대칭 구조.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2연).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보다.” (10연).
2연에서 시적 주체는 봄을 맞아 봄 햇살 받으며,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 지평선을 향해, 봄기운에 취해 ‘꿈속을 가듯’ 가르마같이 잘 닦인 논길을 걷습니다. 몽환적입니다.
10연에서 출현하는 ‘풋내’는 ‘새로 돋은 풀 냄새’라는 의미이며, ‘지피다’는 ‘사람에게 신이 내린다’라는 뜻입니다. “푸른 웃음”은 국토를 즐기는 기쁨입니다. 봄을 맞이한 조국의 들판이 너무도 아름다워서 걷기만 해도 절로 웃음이 터져나옵니다. “푸른 설움”은 국권을 빼앗긴 슬픔이겠습니다. 국권 상실만 생각하면 화자는 웃다가도 느닷없이 슬퍼집니다. ‘웃음’은 계절 봄을 맞이한 기쁨, ‘설움’은 희망 봄을 빼앗긴 슬픔입니다.
하여 ‘봄이 와서 기쁘지만, 또한 봄이 오지 않아서 슬프다.’라는 정서를 노래한 것입니다.
셋째, ‘3연과 9연’의 대칭 구조.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는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3연).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9연).
‘3연과 9연’은, 계절로서 봄이 왔지만, 희망의 봄이 오지 않아서 슬픈 정서입니다.
3연에서 시적 주체는 하늘과 들에 묻습니다. 필경 자신의 의지로만 이곳까지 온 것 같지 않은데, 누가 나를 불러 이끌고 왔느냐고 답답해하며 말을 해달라고 합니다. 이곳 지평선까지 어찌 오게 된 건지는 모르지만, 이곳은 빼앗기기 전 과거 내 땅의 봄일 듯합니다.
9연에서는 자신을 비웃으며, 자신에게 대답을 요구합니다. ‘너는 무엇을 찾는 것이냐?’, ‘너는 대체 어디로 가는 것이냐’라며 시적 주체가 찾아야 할 것과 나아야 할 방향을 묻습니다. 그것은 ‘빼앗긴 들(=국토)’이요, 빼앗긴 희망의 봄(=인간다운 삶)입니다. 시적 주체가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요. 하늘과 들도 침묵만 합니다.
‘희망의 봄이 오지 않아 슬프다’라는 정서와 답답함이 들어납니다.
넷째, 4연에서부터 8연까지는 동일한 구조입니다. 과거의 봄, 들을 빼앗기지 않은 내 땅에서의 봄과 우리의 자연을 의인법으로 노래하는 내용입니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국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4연).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쁜하다.” (5연).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6연).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들이라 다 보고 싶다.” (7연).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8연)
4연~8연에서는 시인의 섬세한 감각이 빛납니다. ‘가르마 같은 논길’, ‘입술을 다문 하늘과 들’, ‘삼단 같이 머리를 감은 보리밭’, ‘살진 젖가슴 같은 흙’ 등 빼앗긴 들을 온통 사랑스러운 여성의 몸에 비유합니다. 그러니 온몸에 햇살을 받고 이 들(판)을 발목이 저리도록 실컷 밟아 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 담겼습니다. 내 나라 내 땅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표현이요, 관능적 연애시의 옷을 입은, 지극한 애국 애족의 저항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4연에서부터 8연까지와 같은 내용이 펼쳐질 수 있었을까요, 어찌해서 시적 주체는, ‘과거의 봄 풍경’으로 풍덩 들어갈 수 있었을까요?
이 시의 최초의 구조는, ‘나와 남의 대립’입니다. 첫 연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서 ‘남의 땅’=‘빼앗긴 들’처럼 ‘남의 땅’과 ‘빼앗긴 들’이라는 등치 구조는, 지금의 ‘남의 땅’과 본래 내 것이었는데 ‘빼앗긴 들’의 등치 구조입니다. 지금-현재의 ‘남의 땅’과 과거의 ‘나의 땅’이라는 대립인데, 시간이 개입되며 ‘시간적 대립’이 생성됩니다. 이렇게 첫 행에서 시간적 대립이 성립되었다면, 뒤에 “봄은 오는가?”라고 하여 이 시간적 격차에 ‘봄’이 도입됩니다. 여기서 줄표 ‘―’는 시간적 격차를 나타냅니다.
이렇게 시간적 격차가 도입됨으로써 과거와 현재 사이의 대립 구조가 드러납니다. 그럴 때, “봄은 오는가?”라는 의문은, ‘과거의 봄’을 지금의 현재로 끌어들이는 ‘호명’의 역할을 하는데요, 호명은 3연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납니다. “입술을 다문 하늘”과 “들”에게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라고 하며 자연을 의인화하는 것으로 이 호명은 시작됩니다. 이러한 의인화에 기반해 “말을 해다오”라는 요청으로 4~7연에 이르는 봄의 풍경이 펼쳐집니다. 8연에서는 그런 들에서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고 합니다.
그러할 때 이 시에서는 세 가지의 시적 주체가 나타납니다. 하나는, “지금은 남의 땅”이라고 인식하는 ‘현재의 주체’와 둘은, 현재에서 ‘과거로 이행하는 주체’입니다. 그리고 셋은 ‘과거에 존재하는 주체’이지요. 현재의 주체는, 자신을 무화(無化)시키고, 지금-현재의 풍경까지 없애며 과거로 들어갑니다. 말하자면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의 주체는, 지금-현재의 풍경을 없애고, 이를 인식하는 그 자신마저 지우는 과정을 밟아가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완전히 자신이 사라지는 곳에서 ‘과거의 봄 풍경’이 나타납니다. 마법처럼! 이 시가 몽환적이라는 말은 이에 근거하는 것이겠지요.
이 시에서 봄 풍경의 생생함은, “말을 해다오”라는 요청에 따라 활력화되어 자연이 살아 움직입니다. ‘내 귀에 속삭이는 바람’, ‘반갑게 웃는 종달새’, ‘어깨춤을 추는 도랑’과 같이 이 ‘봄’의 풍경은, 온통 의인화된 자연으로 넘쳐납니다. 이는 활유법입니다. 이로써 인간이 아닌 것들이 목소리를 얻는 동시에 ‘말하는 사람이 제거’됩니다. 이 시에서 성립한 4연에서 7연까지 봄의 풍경은, 결국 ‘말하는 사람을 삭제하고서야 성립되는 풍경’입니다. 이는 자연의 사물이 각각 생생하게 살아나 움직이는 풍경으로, 지금-여기의 주체가 사라짐을 통해서만 가능해집니다. ‘과거’의 봄은 지금-현재의 결여 상태를 ‘채우기’ 위해 도입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금은 없는 기원에 대한 생생한 묘사’입니다.
따라서 낭송자는 자신을 지우고, 아니 자신과 자연이 하나 되는 느낌으로 이해하고, 낭송해야겠습니다.
5. 시어 의미의 확정 ― ‘들마꽃과 맨드라미’
낭송 방법을 설명하기 전에 시어에 대한 한마디만 하고 넘어가야겠습니다.
□ 우리가 잃어버린 말 ‘들마꽃’은, 이른 봄에 피는 ‘제비꽃’
세상에 이름 없는 꽃은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모를 뿐이죠.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 나오는 ‘들마꽃’은, 우리가 잃어버린 우리말입니다. 사전에도 등재되어 있지 않아 어떤 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여러 가지 추측만 있었습니다.
‘들마꽃’을 미승우는 ‘들마을의 꽃’, 이상규는 ‘메꽃’이라 하고, 이기철은 ‘들마꽃’이 없는 낱말임을 지적하며, “마음 없는 한 포기 꽃, 즉 맨드라미에게도 인사를 해야지”라고 해석해도 별 무리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미승우는 ‘들마꽃’을 경북지방의 방언으로 분석하며, 경북지방에선 ‘마을’을 ‘마’라고 하여 ‘산마을’은 ‘산마’, ‘들마을’은 ‘들마’, ‘아랫 마을’은 ‘아랫마’, ‘윗마을’은 ‘윗마’로, ‘들마꽃’은 ‘들마을의 꽃’이라 한 것입니다.
이상규는 ‘들마꽃’ ‘메꽃’의 대구의 방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메꽃’이나 ‘마꽃’은 봄에 피는 꽃이 아닙니다. 여름꽃이죠. 계절과 꽃이 연결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시어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김권동 교수는, 두 가지 근거를 찾아 들마꽃이 제비꽃의 다른 이름이며, 또 방언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잃어버린 우리말 하나를 새로 발견한 것입니다.
1925년에 발간한 잡지 『신통(申通)』에 녹성(필명)의 시 「버들과 들마(菫花)」이 실렸는데, 제목 중 들마꽃을 ‘근화(槿花)’라 표기하고, 본문에 ‘들마꽃’이 두 번, ‘마꽃’이 두 번 나옵니다. 그러니까 들마꽃은 ‘근화’입니다. 근화는 다름 아닌 제비꽃입니다. 근화는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제비꽃을 이르는 말입니다. 따라서 들마꽃은, 제비꽃이라는 추론은 타당합니다. 녹성의 작품에 형상화된 표현은 ‘들마꽃(=제비꽃)’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녹성의 「버들과 들마꽃(菫花)」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가한 근심에/ 느러진 버들/ 봄바람 어지러워/ 부댓기도다// 도흥색에빗최여/ 눈을버들/ 그마암에 머리숙인/ 어린들마// 버들은 마에/ 넉을 일엇고/ 마은버들을/ 밋고잇건만// 박힌발슈업셔/ 가도못하고/ 구든몸 못굽히니/ 팔이 잛도다// 아츰으로 밤으로/ 안개는와셔/ 행여나 남볼셰라/ 가려주건만// 들마 어리고/ 두팔은 버/ 안탁 가워 봄날에/ 눈물지도다// 봄날이지나고/ 여름이 되어/ 두팔자라거든/ 안으렷더니/ 여름이도라와/ 팔기른이날/ 들마은 이미/ 사라졋도다// 긔막힌가슴을/ 재우랴 하니/ 요란히 들리는/ 리 노래// 그 뒤엣일/ 버들실 느리고/ 봄빗을 려/ 황금북 놀니난/ 쳐자의 가슴// 닙 시내물/ 붉게 흐르니/ 말업시 바람만/ 흘려보도다// 어즈런 도/ 다지나고/ 리쇼리도/ 머러진 이// 웬일인지 황금북도/ 아니보이고/ 베든쳐자죠차/ 사라졋는데// 버들만 망당이/ 셔셔잇고/ 는느진/ 가을이러라” (녹성 「버들과들마(菫花)」 전문)
김권동 교수는 또 하나의 근거를 듭니다. 괴테의 시 「이별(DER ABSCHIED)」을 박용철의 번역시가, 1932년 3월에 간행된 『문예월간』 제2권 2호에 실렸습니다. 3연 3행에 출현하는 제비꽃(=violet)의 독일어 ‘Veilchen’을 ‘들마꽃’으로 번역했습니다. 다음은 박용철의 번역시와 괴테의 원문입니다. 이는 들마꽃이 제비꽃의 다른 이름이었음을 추론할 수 있는 근거입니다. 제비꽃은 이른 봄에 피는 봄꽃입니다.
“눈으로 이별은 전하게하소/ 입에 무슨말 차마할런가/ 오 어려움 이를 참기 어려움/ 나도 씩씩한 사나이거늘.// 가장 달큼한 사랑의 노름/ 이는 그마저 서툰짓이어/ 네입에 키스도 싸늘하거든.// 얼핏수머 건네든 너의키스/ 내마음 참으로 날더니라/ 이른봄 은 들마하나도/ 우리깃븜의 샘이든 것을.// 내 이제 테를 아니만든다/ 널위해 장미를 지안는다/ 이것이 봄이라냐 내사랑아/ 내게는 서른 가을인 것을.” (박용철 역, 괴테의 「이별」 전문)
“Laß Mein Aug’ den Abschied sagen,/ Den mein Mund nicht nehmen kann!/ Schwer, wie schwer ist er zu tragen!/ Und ich bin doch sonst ein Mann.// Trauring wird in dieser Stunde/ Selbst der Liebe süßtes Pfand,/ Kalt der Kuß von deinem Munde,/ Matt der Druck von deiner Hand.// Sonst, ein leicht gestohlnes Mäulchen,/ O Wie hat es mich entzückt!/ so erfreuet uns ein Veilchen,/ Das man früh im März gepflückt.// Doch mich pfücke nun kein Kränzchen,/ Keine Rose mehr für dich./ Frühling ist es, liebes Fränzchen,/ Aber leider Herbst für mich!” (괴테 「DER ABSCHIED」 전문)
우리는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를 낭송할 때, 눈앞에 민들레와 제비꽃을 떠올려야 합니다. ‘맨드라미’는 ‘민들레’입니다. 지면의 제한으로 맨드라미가 민들레가는 분석은 다음 기회로 미룹니다. 맨드라미는 여름꽃이라는 사실만 말씀드립니다. 여름에 피는 시뻘건 닭의 벼슬처럼 생긴 꽃이라는 사실만 밝힙니다.
지금부터는 자연스럽고, 전달력 있으며, 감동을 줄 수 있는 시낭송을 위한 기본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6. 표준발음
시낭송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중요한 것은, ‘전달력’입니다. 전달력은 정확한 발음에서 나옵니다.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서 쓰인 문자와 다르게 발음되는 단어는 다음과 같이 68개입니다. 문자언어와 음성언어를 비교하면 천천히, 또랑또랑 읽으며 익혀야 합니다.
(1) 빼앗긴 [빼앋낀], (2) 들에도 [드레도], (3) 봄은 [보믄], (4) 지금은 [지그믄], (5) 남의 [나메(믜)], (6) 온몸에 [온모메], (7) 햇살을 [핻(해)싸를], (8) 받고 [받꼬], (9) 들이 [드리], (10) 맞붙은 [맏뿌튼], (11) 곳으로 [고스로], (12) 같은 [가튼], (13) 논길을 [논끼를], (14) 꿈속 을[꿈쏘글], (15) 가듯 [가듣], (16) 걸어만 [거러만], (17) 입술을 [입쑤를], (18) 하늘아 [하느라], (19) 들아 [드라], (20) 맘에는 [마메는], (21) 것 [걷], (22) 같지를 [갇찌를], (23) 않구나 [안쿠나], (24) 끌었느냐 [끄런느냐], (25) 답답워라 [답따버라], (26) 말을 [마를], (27) 바람은 [바라믄], (28) 속삭이며 [속싸기며], (29) 자국도 [자국또], (30) 섰지 [섣찌], (31) 옷자락을 [옫짜라글], (32) 같이 [가치], (33) 반갑다 [반갑따], (34) 웃네 [운네], (35) 고맙게 [고맙께], (36) 보리밭아 [보리바사], (37) 넘어 [너머], (38) 감았구나 [가맏꾸나], (39) 논을 [노늘], (40) 안고 [안꼬], (41) 착한 [차칸], (42) 젖먹이 [전머기], (43) 들마꽃에도 [들마꼬체도], (44) 기름을 [기르믈], (45) 바른 이[바르 니], (46) 싶다 [십따], (47) 손에 [소네], (48) 젖가슴 [젇가슴], (49) 흙을 [흘글], (50) 발목이 [발모기], (51) 밟아도 [발바도], (52) 좋은 [조은], (53) 강가 [강까], (54) 없이[업씨], (55) 혼아 [호나], (56) 무엇 을[무어슬], (57) 찾느냐 [찯느냐], (58) 웃어웁다 [우서웁따], (59) 답을 [다블], (60) 풋내 [푼내], (61) 웃음 [우슴], (62) 설움 [서룸], (63) 걷는다 [건는다], (64) 신령 [실령], (65) 지폈나보다 [지편나보다], (66) 들을 [드를], (67) 빼앗겨 [빼앋껴], (68) 빼앗기겠네 [빼앋끼겓네].
위에서 문자언어 옆에 음성언어를 비교해 제시된 것을 보고 익힌 뒤에, 아래에서 음성언어로만 제시된 시 전문을 익혀봅니다. 헷갈릴 때는 위에 제시된 것을 수시로 참고하면 됩니다. 문자언어와 음성언어가 달리 표현되는 부분은, 짙은 글씨로 처리했습니다. [/]는 행, [//]는 연의 기호입니다.
빼앋낀 드레도 보믄 오는가 / 이상화
“지그믄 나믜 땅―빼앋낀 드레도 보믄 오는가// 나는 온모메 핻싸를 받꼬/ 푸른 하늘 푸른 드리 맏뿌튼 고스로/ 가르마 가튼 논끼를 따라 꿈쏘글 가듣 거러만 간다.// 입쑤를 다문 하느라 드라/ 내 마메는 나 혼자 온 걷 갇찌를 안쿠나!/ 네가 끄런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따버라. 마를 해 다오.// 바라믄 내 귀에 속싸기며./ 한 자국또 섣찌 마라 옫짜라글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가치 구름 뒤에서 반갑따 운네// 고맙께 잘 자란 보리바사,/ 간밤 자정이 너머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가튼 머리터를 가맏꾸나, 내 머리조차 가쁜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노늘 안꼬 도는 차칸 도랑이/ 전머기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꼬체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기르믈 바르 니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십따.// 내 소네 호미를 쥐어다오./ 살진 젇가슴과 가튼 부드러운 이 흘글/ 발모기 시도록 발바도 보고, 조은 땀조차 흘리고 십따.// 강까에 나온 아이와 가치/ 짬도 모르고 끝도 업씨 닫는 내 호나/ 무어슬 찯느냐, 어디로 가느냐, 우서웁다. 다블 하려무나// 나는 온모메 푼내를 띠고,/ 푸른 우슴 푸른 서루미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건는다. 아마도 봄 실령이 지편나보다.// 그러나 지그믄―드를 빼앋껴 봄조차 빼앋끼겓네.”
7. 소리의 길이와 세기, 높이
1) 긴소리 ‘완전장음(完全長音)’
완전장음은 다음과 같이 모두 18단어입니다. 완전장음의 기호는 [ː]입니다. 장음의 음절 오른쪽에 표시합니다. 장음에는 강세가 붙습니다. 강세 기호는 [ˈ]입니다. 강세가 붙는 음절의 왼쪽 위에 표시합니다.
(1) 들[ˈ들ː], (2) 온몸[ˈ온ː몸], (3) 맘[ˈ맘ː], (4) 네가[ˈ네ː], (5) 끌었는냐[ˈ끌ː었느냐], (6) 말[ˈ말ː], (7) 해[ˈ해ː], (8) 웃네['웃ː네], (9) 고맙게['고ː맙게], (10) 고운['고ː운], (11) 감았구나['감ː았구나], (12) 안고['안ː고], (13) 제['제ː], (14) 제비['제ː비], (15) 좋은['좋ː은], (16) 모르고['모ː르고], (17) 없이['없ː씨], (18) 웃어웁다['웃ː어웁다].
2) 높은 소리 ‘장고모음(長高母音)’
장고모음은 다음과 같이 모두 3단어입니다. 장고모음의 기호는 [ ̄]입니다. 장고모음 음절 위에 표시합니다. 장고모음에도 미약한 강세가 붙습니다.
(1) 절며['절ː며], (2) 걷는다['건ː는다], (3) 설움['설움].
3) 제1, 제2 강세가 있는 단어
제1, 제2 강세가 있는 단어는 아래와 같이 한 가지 단어입니다. 제2강세의 기호는 [ˌ]입니다. 제2강세가 붙는 음절의 왼쪽 아래에 표시합니다.
(1) 아주까리[아'주까ˌ리].
4) 합성어 구분을 위한 장음
성과 이름은 붙여 읽습니다. 그러나 성과 이름을 구별하기 위해 성을 장음으로 읽습니다. 경계를 구분하는 방법입니다. 이름 ‘상화’에서 강세는 ‘상’에 있습니다. 받침이 있는 음절에 강세가 붙기 때문입니다. 표현적 장음 기호는 [:]입니다. 표현적 장음이 붙는 음절의 오른쪽에 표시합니다.
(1) 이상화[이:ˈ상화],
5) 첫째 음절에 강세가 있는 단어
첫째 음절에 강세가 붙는 단어는, 아래와 같이 33가지입니다.
(1) 햇살[ˈ햇살], (2) 받고[ˈ받고], (3) 같은[ˈ같은], (4) 논길[ˈ논길], (5) 꿈속[ˈ꿈속], (6) 입술[ˈ입술], (7) 혼자[ˈ혼자], (8) 답답워라[ˈ답답워라], (9) 속삭이며[ˈ속삭이며], (10) 옷자락['옷자락], (11) 흔들고['흔들고], (12) 종다리['종다리], (13) 울타리['울타리], (14) 간밤['간밤], (15) 삼단['삼단], (16) 조차['조차], (17) 가쁜하다['가쁜하다], (18) 가쁘게나['가쁘게나], (19) 착한['착한], (20) 젖먹이['젖먹이], (21) 달래는['달래는], (22) 깝치지['깝치지], (23) 맨드라미['맨드라미], (24) 들마꽃['들마꽃], (25) 젖가슴['젖가슴], (26) 살진['살진], (27) 발목['발목], (28) 흘리고['흘리고], (25) 싶다['싶다], (26) 강가['강가], (27) 밟아도['밟아도], (28) 찾느냐['찾느냐], (29) 닫는['닫는], (30) 풋내['푼내], (31) 띠고['띠고], (32) 신령['신령], (33) 지폈나보다['지폈나보다].
6) 둘째 음절에 강세가 있는 단어
둘째 음절에 강세가 붙는 단어는, 아래와 같이 48가지입니다.
(1) 빼앗긴[빼ˈ앗긴], (2) 푸른[푸ˈ른], (3) 하늘[하ˈ늘], (4) 맞붙은[맞ˈ붙은], (5) 가르마[가ˈ르마], (6) 따라[따ˈ라], (7) 걸어[걸ˈ어(거러)], (8) 다문[다ˈ문], (9) 하늘[하ˈ늘], (10) 부르더냐[부ˈ르더냐], (11) 바람[바ˈ람], (12) 아가씨[아'가씨], (13) 구름[구'름], (14) 반갑다[반'갑다], (15) 자란[자'란], (16) 보리밭[보'리밭], (17) 자정[자'정], (18) 넘어[넘'어(너머)], (19) 내리던[내'리던], (20) 머리[머'리], (21) 가자[가'자], (22) 마른[마'른], (23) 도랑이[도'랑이], (24) 노래[노'래], (25) 어깨춤[어'깨춤](어깨['어깨]), (26) 나비[나'비], (27) 마라[마'라], (28) 기름[기'름], (29) 지심[지'심], (30) 호미[호'미], (31) 쥐어다오[쥐'어다오], (32) 부드러운[부'드러운], (33) 시도록[시'도록], (34) 아이[아'이], (35) 무엇[무'엇], (36) 어디로[어'디로], (37) 가느냐[가'느냐], (38) 하려무나[하'려무나], (39) 웃음[웃'음], (40) 어우러진[어'우러진], (41) 사이[사'이], (42) 다리[다'리], (43) 하루[하'루], (44) 아마도[아'마도], (45) 그러나[그'러나], (46) 지금은[지'그믄], (47) 빼앗겨[빼'앋껴], (48) 빼앗기겠네[빼'앋끼겓네].
7) 표준발음과 장단음을 결합한 전문
빼ˈ앋낀 ˈ드ː레도 보믄 오ˈ는가 / 이ˈ상화
“지ˈ그믄 나메(믜) 땅―빼ˈ앋낀 ˈ드ː레도 보믄 오ˈ는가// 나는 ˈ온ː모메 ˈ핻싸를 ˈ받꼬/ 푸ˈ른 하ˈ늘 푸ˈ른 ˈ드ː리 맏ˈ뿌튼 고ˈ스로/ 가ˈ르마 ˈ가튼 ˈ논끼를 따ˈ라 ˈ꿈쏘글 가듣 거ˈ러만 간다.// ˈ입쑤를 다ˈ문 하ˈ느라 ˈ드ː라/ 내 ˈ마ː메는 나 ˈ혼자 온 걷 ˈ갇찌를 ˈ안쿠나!/ ˈ네ː가 ˈ끄ː런느냐, 누가 부ˈ르더냐, ˈ답따버라. ˈ마ː를 ˈ해ː 다오.// 바ˈ라믄 내 귀에 ˈ속싸기며./ 한 자국또 섣찌 마라 '옫짜라글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가치 구'름 뒤에서 반'갑따 '운ː네// '고ː맙께 잘 자'란 보'리바사,/ '간밤 자'정이 너'머 내'리던 '고ː운 비로/ 너는 '삼단 '가튼 머'리를 '가ː맏꾸나, 내 머'리'조차 '가쁜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노늘 '안ː꼬 도는 '차칸 도'랑이/ '전머기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ː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ː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꼬체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ˌ리기'르믈 바'른 니가 지'심 매던 그 '들ː이라 다 보고 '십따.// 내 소네 호'미를 쥐'어다오./ '살진 '젇까슴과 '가튼 부'드러운 이 흘글/ '발모기 시'도록 '발바도 보고, '좋ː은 땀'조차 '흘리고 '십따.// '강까에 나온 아'이와 '가치/
짬도 '모ː르고 끋또 '업ː씨 '닫는 내 호나/ 무'어슬 '찬느냐, 어'디로 가'느냐, '우ː서웁다. 다블 하'려무나// 나는 '온ː모메 '푼내 '띠고,/ 푸'른 우'슴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ː며 하'루를 '건ː는다. 아'마도 봄 '실령이 '지편나보다.// 그'러나 지'그믄―'드ː를 빼'앋껴 봄'조차 빼'앋끼겓네.”
8. 휴지(休止, pause)
1) 붙여 읽기
어디에서 왜 띄어 읽어야 하는지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전에 붙여 읽는 게 더 중요합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띄어 쓰인 곳에서 띄어 읽지만, 어법과 문법은 같지만은 않기 때문에 띄어 쓰였지만, 붙여 읽어야 할 곳에서 붙여 읽는 건 매우 중요합니다. 동일한 의미 단위에서 붙여 읽지 않으면, 전달력이 떨어집니다. 발화자나 청자 모두 의미 파악이 어려워집니다. 우리는 흔히 띄어 쓰인 곳에서 대체로 띄어읽는 오류를 많이 범합니다.
관형어는 명사를 꾸며주는 역할을 하는데, 이 관형어에 이어 명사가 올 땐, 다음과 같이 붙여 읽어야 합니다.
(1) 빼앗긴 들 [빼ˈ앋낀ˈ들ː], (2) 푸른 하늘 [푸ˈ른하ˈ늘], (3) 푸른 들 [푸ˈ른ˈ들ː], (4) 맞붙은 곳[맏ˈ뿌튼곧], (5) ~같은 논길 [~ˈ가튼ˈ논낄], (6) 다문 하늘[다ˈ문하ˈ늘], (7) 고운 비 ['고ː운비], (8) ~같은 머리 [~ˈ가튼머'리], (9) 마른 논 [마'른논], (10) 착한 도랑 ['차칸도'랑], (11) 달래는 노래 ['달래는노'래] (12) (기름을) 바른 이 [바'르니], (13) 살진 젖가슴 ['살진'젇까슴], (14) 좋은 땀 ['조ː은땀] (15) 푸른 웃음 [푸ˈ른우'슴], (16) 푸른 설움 [푸ˈ른'설움], (16) 어우러진 사이 [어'우러진사'이].
지시 관형사 ‘이/그/저’ 뒤에 명사가 올 때도 역시 붙여 읽어야 합니다. 이렇게 선택적 의미가 있을 때는, 다음과 같이 붙여 읽어야 합니다.
(1) 그 들(野)[그·ˈ들ː], (2) 이 흙[이흙].
지시 관형사 ‘그’는 본래적인 어휘적 장음은 아닙니다. 그러나 표현적 장음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표현적 반장음으로 조금 길게 읽어야 합니다. ‘저’는 표현적 완정장음으로 길게 읽습니다. 그렇게 읽을 때 원근감을 전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는 화자에게 가장 가깝기 때문에 짧게 읽습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지시 관형사와 명사 사이에 관형어가 끼어 읽을 때 즉, “그 아름다운 들”과 같은 문장에선, 지시 관형사 ‘그’ 다음에 띄어 읽어야 합니다. 물론 관형어 ‘아름다운’과 명사 ‘들’은 붙여 읽고요. 그러니까 [그·# 아'름다운ˈ들ː]처럼 읽습니다. 특히 부분에서의 오류가 많이 나타납니다.
의존 명사 ‘것’은, 앞 음절과 붙여 읽어야 합니다. ‘온 것’은 [온것]처럼 붙여 읽습니다. ‘한 자국’ 역시 [한자국]처럼 붙여 읽어야 합니다. (꽃) ‘한 송이’는 [한송이], (배) ‘한 척’[한척]처럼 읽습니다.
소유관계에서도 다음과 같이 붙여 읽습니다.
(1) 남의 땅 [남의땅], (2) 내 맘(=나의 마음) [내맘], (3) 내 머리(=나의 머리) [내머리], (4) 내 손에 [내손에], (5) 내 혼(나의 혼) [내혼], (6) 봄 신령(=봄의 신령) [봄신령].
2) 띄어 읽기
아주 긴 띄기는 [///]로 표시했습니다. 장면과 상황이 바뀔 때 ‘가장 긴’ 포즈를 취합니다. 긴 띄기는 [//]로 표시했습니다. 한 연이 끝날 때 ‘긴’ 포즈를 줍니다.
다음으로는 한 행 내의 포즈입니다. 한 행 내의 짙은 [#] 표시는 ‘호흡을 동반한 포즈’입니다. 짙지 않은 [#] 표시는 무호흡 포즈입니다. [#]보다 거리가 짧은 보통포즈입니다. 마지막으로 [√]는 짧은 포즈입니다. [√]포즈는 때때로 “쉼이 있는거야?”, “포즈의 길이가 전혀 없잖아?!”라고 느낄 정도로 짧을 때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를 ‘순간 포즈’ 또는 포즈의 길이가 전혀 없이 소리를 낮추었다 올리는 것으로 포즈를 대체하므로 ‘억양 포즈’라고도 합니다.
중요한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포즈의 길이는, 물리적 거리가 아니라 ‘심리적 거리’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포즈의 ‘길이’는 모두 서로 다르다는 점입니다. 만일 포즈의 길이를 일률적으로 한다면 어색한 발화가 되고 말것입니다. 이는 시낭송에서 흔히 범하는 오류인데, 이 점을 염두에 둔다면 낭송에 유리하겠습니다.
빼앗긴들에도#봄은√오는가///이·'상화///
지금은√남의땅―#빼앗긴들에도#봄은√오는가///
나는√온몸에#햇살을√받고/
푸른하늘#푸른들이√맞붙은곳으로/
가르마같은논길을√따라#꿈속을√가듯#걸어만간다.//
입술을√다문하늘아#들아/
내맘에는√나혼자# 온것같지를√않구나!/
네가√끌었는냐,#누가√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내귀에#속삭이며/
한자국도√섰지마라#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울타리너머#아가씨같이#구름뒤에서#반갑다웃네//
고맙게#잘#자란보리밭아,/
간밤#자정이√넘어#내리던고운비로/
너는#삼단같은머리를√감았구나,/ 내머리조차#가쁜하다.//
혼자라도√가쁘게나#가자./
마른논을√안고도는착한도랑이/
젖먹이달래는노래를√하고,#제혼자√어깨춤만√추고가네.//
나비√제비야#깝치지마라./
맨드라미√들마꽃에도#인사를√해야지./
아주까리기름을바른이가√지심매던#그들이라#다#보고싶다.//
내손에#호미를√쥐어다오./
살진젖가슴과같은부드러운이흙을/
발목이√시도록#밟아도보고,/좋은땀조차#흘리고싶다.//
강가에나온아이와같이/
짬도√모르고## 끝도없이닫는내혼아/
무엇을√찾느냐,#어디로√가느냐,#웃어웁다.##답을√하려무나///
나는√온몸에#풋내를√띠고,/
푸른웃음#푸른설움이√어우러진사이로/
다리를√절며#하루를√걷는다./아마도#봄신령이√지폈나보다.///
그러나#지금은―##들을#빼앗겨#봄조차#빼앗기겠네.
9. 겹쳐 읽는 시 세 편
3·1운동을 소재로 가장 먼저 창작된 시는, 「간도 파르티잔의 노래」입니다. 시적 화자는 한국인입니다. 그런데 시를 쓴 이는, 정작 일본의 시인 마키무라 히로시입니다. 시인을 일본인이라고 밝히지 않고 시를 소개한다면, 아마도 한국의 시인으로 착각할 정도입니다. 장시라서 부분을 제시합니다.
“(전략) 추억은 나를 고향으로 나른다/ 백두의 봉우리를 넘어, 낙엽송 숲을 넘어/ 갈대 뿌리가 검게 얼어붙은 늪의 저편/ 검붉은 대지에 거무스레한 오두막이 이어지는 곳/ 꿩이 골짜기에서 우는 함경의 마을이여// 눈 녹은 오솔길을 밟고/ 지게를 지고 낙엽을 모으리/ 누나와 올랐던 뒷산의 졸참나무 숲이여// (중략) 오오, 3월 1일/ 민족의 피가 가슴을 치는 우리의 그 누가/ 무한한 증오를 한순간에 내동이친 우리들의 그 누가/ 1919년 3월 1일을 잊을쏘냐!/ 그날/ 「대한독립만세!」 소리는 방방곡곡을 뒤흔들고/ 짓밟힌 일장기 대신/ 모국의 깃발이 집집마다 휘날렸다/ 가슴에 다가오는 뜨거운 눈물로 나는 그날을 생각한다!/ 반항의 우렁찬 소리는 고향마을까지 울려 퍼지고/ 자유의 노래는 함경의 봉우리마다 메아리쳤다.// (...중략) 우리들은 함경도 사내와 여자/ 착취자에 대한 반항으로 역사를 새로 쓰는 내 고향의 이름에 맹세코/ 온 조선 땅에 봉화를 올렸던 몇 차례 봉기에 피를 흘린 이 고향의 흙에 맹세코/ 고개를 숙이고 순순히 진지를 적에게 넘겨줄 수 있단 말인가// (중략) 바람이여, 분노의 울림을 담아 백두에서 쏟아져오라!/ 파도여, 격분의 물방울을 높이 올려 두만강에서 용솟음쳐라/ 오오 일장기를 휘날리는 강도들아/ 부모와 누나와 동지들의 피를 땅에 뿌리고/ 고국에서 나를 쫓아내고/ 지금 칼(劍)을 차고 간도(間島)로 몰려오는 일본의 병비(兵匪: 병사 비적떼)여!/ 오오, 너희들 앞에 우리가 다시 굴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려는 거냐/ 뻔뻔스런 강도들을 대우하는 법을 우리가 모른다고 하는 거냐/ (후략)” (마키무라 히로시, 「간도 파르티잔의 노래」 부분)
다음은 원문입니다.
“思ひ出はおれを故郷へ運ぶ/ 白頭の嶺を越え、落葉から松の林を越え/ 蘆の根の黒く凍る沼のかなた/ 赭ちゃけた地肌に黝ずんだ小舎の続くところ/ 高麗雉子が谷に啼く咸鏡の村よ// 雪溶けの小径を踏んで/ チゲを負ひ、枯葉を集めに/ 姉と登った裏山の楢林よ// ...... お三月一日!/ 民族の血潮が胸を搏うつおれたちのどのひとりが/ 無限の憎悪を一瞬にたゝきつけたおれたちのどのひとりが/ 一九一九年三月一日を忘れようぞ!/ その日/ 「大韓独立萬歳!」の声は全土をゆるがし/ 踏み躙られた旗に代へて/ 母国の旗は家々の戸ごとに飜った// 胸に迫る熱い涙をもっておれはその日を思ひ出す!/ 反抗のどよめきは故郷の村にまで伝はり/ 自由の歌は咸鏡の嶺々に谺した// ...... 風よ、憤懣の響きを篭めて白頭から雪崩れてこい!/ 濤よ、激憤の沫きを揚げて豆満江に迸れ!/ お、日章旗を飜す強盗ども!/ 父母と姉と同志の血を地に灑ぎ/ 故国からおれを追ひ/ 今剣をかざして間島に迫る××(14)の兵匪!/ おゝ、お前らの前におれたちがまた屈従せねばならぬと言ふのか/ 太てしい強盗どもを待遇する途をおれたちが知らぬといふのか” (槙村 「間島パルチザンの歌」 원문 부분)
마키무라 히로시는, 마키무라 고우라고도 불립니다. 「간도 파르티잔의 노래」는 장시여서 일부만 발췌해 실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아직 번역·출판되지 않았습니다. 실력 있는 일본학자나 일본어와 일본학에 능숙한 시인이 번역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7년 전 열흘 간 일본여행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일본 대학가 부근을 탐방할 때마다 고서점을 뒤져봤는데, 결국 찾지 못했습니다.
일본인이 윤동주를 기리듯 한국인이 사랑하고 기려야 할 일본인이 있다면, 단연코 마키무라 히로시를 꼽습니다. 물론 후세 다츠지, 이다, 미야게와 같은 일본인들도 한국인의 영원한 친구일테지만 말입니다. 마키무라는 일본에서도 잊힌 시인인 듯합니다. 천재 시인이 양국에서 이리 묻혀 버리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마키무라의 시를 서정주의 「마쓰이 오장 송가」과 견주 보면, 참으로 진정한 시인이란, 어떠한 것이지 단박에 비교가 되겠습니다. 마키무라는 진정한 일본인이자, 진정한 동아시아인이요, 동시에 세계 평화를 염원한 세계인이었습니다.
“독립의 붓을 들어 그들이/ 무명베에 태극기를 그린 것은/ 그 뜻이 다른 데에 있지 않았다// 다른 데에 있지 않았다 그 뜻/ 밤을 도와 살얼음이 강을 건너고/ 골짜기를 타고 험한 산맥을 넘고/ 집에서 집으로 마을에서 마을로/ 민족의 대의를 전한 것은// 일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한 사람이 일어나고/ 열 사람이 일어나고/ 천사람 만백성이 일어나/ 거센 바람 일으켜 방방곡곡에/ 성난 파도 일으켜 항구마다에/ 만세 만세 조선독립만세/ 목메이게 한 번 불러보고 싶었던 것이다// 빼앗긴 문전옥답 짓밟힌 보리와 함께 일어나/ 빼앗긴 금수강산 쓰러진 나무와 함께 일어나/ 왜놈들 주재소를 들이치고 손가락 쇠스랑이 되어/ 왜놈들 가슴에 꽂히고 싶었던 것이다// 동해에서 서해까지/ 한라에서 백두까지/ 삼천만이 하나로 일어나/ 벙어리까지 입을 열고 일어나// 우렁차게 한번 외치고 싶었던 것이다// 만세// 만세// 조선독립만세!” (김남주 「독립의 붓」 전문)
“기미년 3월 1일/ 우리나라 천지는/ 만세! 만세! 만세!로/ 가득 넘쳤습니다// 산도/ 바다도/ 강물도/ 뭇 짐승 초목들도/ 만세! 만세! 만세!로/ 우줄거려 춤을 추었습니다// 만세를 잡으려고/ 일본 순사의 구둣발이 달려오고/ 만세를 꺾으려고/ 번뜩이는 총검이 달려오고······// 그러나/ 만세! 만세! 만세!는/ 구둣발도 총검도 아랑곳없이/ 도도히 도도히 흘렀습니다// 그날 밤 자정에/ 한 사나이가 경찰서로 잡혀왔습니다/ 흰 무명 바지저고리에/ 지게를 짊어진 농군이었습니다// 순사의 노한 눈길이/ 사나이를 노려보았습니다/ 그보다 더 노한 형형한 눈길이/ 유치장 창살 너머로/ 순사를 노려보았습니다// 지게꾼 사나이는/ 유치장 마당에서/ 만세!를 외쳤습니다/ 순사는 사나이의 지게 막대를 빼앗아/ 사나이를 마구 때렸습니다// 때리면 때릴수록/ 맞으면 맞을수록/ 사나이의 만세! 만세! 만세!는/ 더 우렁차고 높았습니다/ “바보 같은 녀석!/ 만세를 안 부르면 안 맞을 것 아니냐”/ 순사가 씩씩거리며 뇌었습니다// 그러자/ 그 대답은 이랬습니다/ “이 녀석아/ 내 속에는 지금 만세가 가득 차 있다/ 네가 때리면/ 때릴 때마다/ 내 속에 가득 찬 만세가 튀어나오누나”// 이 호통소리 하나에/ 순사는 혼비백산/ 유치장은 갑자기/ 만세! 만세! 만세!/ 눈물로 목메인 만세!로 넘쳤습니다// 박순천(朴順天) 할머니로부터 들은/ 이 ‘만세로 가득 찬 사나이’ 이야기를/ 나는 보물처럼 소중히/ 늘 가슴에 새겨두고 있습니다.” (허영자 「만세로 가득찬 사나이」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