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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에 따른 차별은 공정하다는 믿음에 대하여

 

산은(진보교육연구소 연구원)

 

2021년이 시작되었으나 여전히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겨울방학 기간에는 다음 교육활동 계획을 고민하고 세워야 할 때이나 어떻게 새 학기와 새 학년을 맞아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지난 2020년 학교는 언론에 보도되는 교육부 장관의 담화와 질병관리본부의 통제에 따라서 교육을 중단하였고, 때로는 휴대폰 문자의 지시에 따라 시늉만의 수업을 진행해 왔다. 학교는 그리고 교사는 교육부의 지침에 따라 학교를 폐쇄하고, 준비도 없이 온라인으로 개학을 했고, 원격수업을 진행했으며, 출석을 처리하고, 학생의 생활기록부를 작성했다. 때로는 방역 요원으로, 때로는 온라인 강사로, 아주 가끔은 대면하는 교사로서 부여된 역할을 요구하는 대로 사고 없이 수행해 낸 것이다. 이 모든 것의 마지막에는 수학능력시험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국가적인 재난이란 방역의 실패나 백신의 수입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학 입시를 치르지 못하는 것임이 너무나 분명해졌다. 이러한 과정의 결과 돌봄의 시급함과 교육격차의 확대, 발달의 지체가 현실로 드러났다. 우리는 무엇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강요된 멈춤 속에서 교육은 무엇인지, 학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교사는 어떤 존재인지에 관해 돌아보아야 했다. 그러나 이에 관한 여하한 사회적 논의나 어떤 대안적인 결론이 없기에 공황과 같은 상태에 여전히 있는 것이다.

조국이라는 이름은 이제 넌더리가 난다. 김용균의 어머니가, 이한빛의 아버지가, 세월호의 부모들이, 김진숙이, 장애인들이, 청소노동자들이 아무리 단식을 하고, 오체투지를 하고, 걷고, 차가운 바닥에 몸을 눕혀도 세간의 저널은 의제로 다루지 않는다. 조국과 그로부터 비롯된 탈법과 입시부정, 검찰 사건이 개혁의 이름으로 도배를 하고 있다. 처음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반복되어왔고 더 기승을 부리는 현상이다. 정유라 사건, 숙명여고 사건, 나경원 사건 등 무수한 사건들의 데자뷰다. 이른바 의제를 만들어 간다는 언론은 행여나 이런 일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두려운 듯 징그러울 정도로 반복해서 화면과 지면에 떡칠을 하고 있다.

이런 행태는 겉으로는 대중의 분노를 자극하여 들끓게 하고 있으나, 사건의 내면을 읽은 이에게는 그 메시지인 능력으로 인해 치명적인 좌절에 이르게 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그 누가 조국과 같은 능력(출신, 외모, 학벌, 재산 등)을 가지고 있는가. 자식이 출세해 자식의 덕을 보지 않더라도 이 불안한 세태에 저 먹고 살 길은 마련해 주고 싶은 간절한 부모들의 열망을 조국을 비롯한 저들은 비웃었다. 이 정도 능력으로 부모 노릇 해보겠다는 발버둥을.

그러면 공정하게 시합이 진행되어 능력에 따라 차등적인 결과를 받아들이면 되는 것인가. 무너져가는 지구에서 목숨을 연명하기 위한 최상의 가치는 아닐지라도 대중은 공정한 사다리의 신화를 신봉하고 있다. 그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지 못한 사람들은 그 사람들대로 자신은 부모 잘못 만나서 못 올라갔다고 분노하고, 이미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사람들은 자기 노력과 능력으로 겨우 올라온 사다리를 누군가는 쉽게 올라오려고 한 것에 분노한다. 소수자를 배려한 입시 전형이 수험생들의 반감을 사고, ‘전교 1을 자부하는 의사들은 공공 의대 출신 의사가 실력이 떨어질 것이라며 반대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정책은 공정하지 않다는 반발에 부딪힌다. 공정한 사다리는 계량화된 점수의 계단이 있고, 계단의 차이는 서열화된 대학에, 직업의 위계에, 고시를 통과해야 하는 전문직에, 정규직과 계약직에, 서울과 지방에 존재한다. 자신의 능력으로 오르는 것이므로 사다리를 오른 사람과 사다리를 오르지 못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 된다.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런데 정말 공정함과 사다리가 있을까? 애초부터 사다리 같은 건 없는 게 아니었을까?

이 치명적인 체념과 절망을 지탱하는 이데올로기는 능력주의다. 능력주의는 개인의 능력에 따라 사회적 지위를 분배하는 보상과 안정 시스템이다. 능력주의 이데올로기가 평등의 이념을 대체하면서 불평등과 차별을 바로잡자는 운동 역시 능력주의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능력주의는 분명한 차별이지만 차별로 인식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공정하게 여겨진다.

 

투명가방끈의 활동가인 공현은 능력주의를 이루고 있는 논리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 개인에게 속하는 고유한 능력(지능/재능과 노력 또는 성취)이 존재한다.

- 능력은 시험과 같은 적절한 절차로 정확하게 측정하고 평가할 수 있다.

- 현대 사회는 (학교 교육을 통해) 동등한 출발선, 즉 성장과 능력 발휘의 기회를 평등하게 보장한다.

- 각자의 능력은 오직 개인의 책임이다.

- 사회의 불평등과 차등은 대부분 능력의 차이에 따른 것이다.

-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많은 보상을 받고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지는 것, 즉 능력에 따른 차등 대우는 정당하고 바람직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능력에 따른 차별이 공정하다는 믿음은 그 능력이 개인적이지 않으며, 능력의 출발이 사회 경제적 격차에 따른 결과임을 은폐한다. 능력 있음의 지표는 시험 점수와 스펙이다. 능력주의 사회에서 능력을 가시화하기 위해서는 가족이 동원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능력은 개인의 성취가 아니라 상속받은 유산과 같은 것이다. 정유라나 조국이 웅변으로 증명하고 있다. 사다리 같은 건 집단적인 미신이었을 뿐이다.

 

능력주의와 불평등 - 능력에 따른 차별은 공정하다는 믿음에 대하여

지은이 : 홍세화, 채효정, 정용주, 이유림, 이경숙, 박권일, 김혜진, 김혜경, 문종완, 공현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mem000006b80001.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500pixel, 세로 724pixel

 

이 책은 능력주의의 기본 개념과 이에 대한 비판 논리, 한국 사회의 현실 등을 저명한 학자가 아니라 현장에서 실천하는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로 들려주고 있다. 저자들은 학교 교육, 시험/평가, 학벌주의와 지식/금융 자본주의의 문제, 노동의 위계화, 의사 집단의 엘리트주의와 공공성 문제, 페미니즘 실천 속 능력주의적 경향성 등 다양한 영역에서 능력주의 이슈를 통찰함으로써 능력주의를 근본적으로 비판하고 극복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여는 글에서 박권일은 능력주의가 지향해야 할 목표로 여겨지고 진정한 능력주의를 요구하는 현실을 벗어나, 능력주의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요청한다.

 

1시험과 학교, 능력주의의 산실은 주로 교육 제도와 시험에 관련된 능력주의 문제를 다룬다.

청소년운동 활동가인 공현은 현재 능력주의 논리가 평등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으며, 능력주의가 학교 교육과 시험과 밀접하게 결합해 있음을 지적한다. 그는 위에 인용한 능력주의의 주요 요소를 정리하며, 교육에서부터 탈능력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능력주의의 대표적인 비유는 달리기 등의 경주이다. 이때 우리는 출발선(기회)이 같았는지, 규칙(과정)은 공정한지, 이로부터 도출된 서열과 승패(결과)가 정당한지를 보게 된다. 하지만 우리 사회나 삶은 개개인이 참가하는 경주나 시합이 아니다. 사회와 삶 전체를 경주로 보면 결국 우리는 끊임없이 서로의 속도와 기록을 재기 위한 시험과 평가로 생애를 채워 나가야 한다. 불필요한 경쟁과 무의미한 고통이 다수에게 요구된다. 이에 집중하다 보면 평가와 차별의 룰을 만들고 시행하는 권력은 가려지게 된다.

교육학자인 이경숙은 시험/평가체제가 인간을 등급화·서열화하는 현실을 말하며 현 헌법교육권 조항의 능력주의적 요소를 읽어 낸다. 그리고 과연 교육권이 능력에 따라제한되는 것이 정당한지를 논의한다. 20세기, 의무교육 제도가 확산되고 사회에서도 사람을 선발 배치하면서 동서양에서 능력주의를 작동케 하는 가장 일반적인 기제는 시험이었고, 능력의 현실태는 점수였다. 21세기 오늘날은 시험과 시험 결과가 점점 세계 공용의 언어로 표기되고, 세계 어디서나 성적표들이 통용되고 있다. 능력의 현실태인 점수는 인간을 오직 하나의 비교 값으로 투명하게 만든다.

초등 교사인 정용주는 가상의 빈곤 가정 학생인 현수의 예를 들어 그 학생은 독립적 개인이 될 수 없음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능력주의의 문제점과 능력주의 비판의 논거를 제시한다. 능력주의는 현 체제 내에서 모든 사람은 성공할 수 있는 동등한 기회를 가지고 있고, 따라서 모든 결과물은 개인의 능력과 노력 그리고 자격에 기반한다고 믿게 한다. 교육은 이러한 믿음을 공고하게 한다. 현수도 12년 동안 학교에 다니면서 부의 불평등과 빈곤을 공정하고 정당하며 바람직하다고 여기게 될 것이다. 교육을 통한 사회 이동이 가능하다고 배웠고 개인의 노력을 보상하는 정책들이 공정하다고 배웠기에, 성공 여부는 동등한 기회와 개인의 노력에 따른 것이고 운이나 출생·성장 환경과 같이 외부적 요인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전 학벌없는사회 운영위원이자 정치학자인 채효정은 학벌은 끝났는가?’라고 물으며, 신자유주의의 변동 속에 학벌 자본의 가치가 어떻게 변했는지 분석한다. 이를 통해 학벌없는사회 운동이 놓친 것을 반성하고 시장화와 계급 재생산을 추동하는 능력주의의 흐름을 고찰한다. 그는 학벌주의는 해체되지 않고 능력주의 언어를 통해 강고해졌다고 단언한다. 지식 자본주의 시대에는 지식이 환금성을 갖게 되면서 학벌은 정규직 고소득 전문직종으로 진입하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학벌은 능력주의 사회의 신분증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과거와 달라진 점은 학벌이 빼앗기보다 지키기를 위한 방어적 수단이 되었다는 점이다. 상승의 욕망보다 하강의 공포가 더 커진 상황에서 학벌이 사다리를 오르는 수단이 아니라 사다리를 걷어차는 수단이 된 것이다.

80%가 대학에 가는 사회에서 학력 인플레이션은 대학 졸업장의 일반 가치를 떨어뜨리지만 반대로 상위권 극소수 대학의 학벌 가치는 그만큼 더 높아진다. 참여자가 많아지면 경쟁률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 착시 효과는 상위권 대학 합격자들을 더 뛰어난 능력자로 인정받게 만든다. 대학이 많아지면 경쟁이 완화될 것이라던 주장은 주택 공급을 늘리면 집값이 내려갈 것이라는 예측만큼이나 엉터리였다. 대학기업화의 본질은 대학이 금융사업체가 되어 금융자본의 투기, 약탈, 지대수익 모델을 충실히 따르는 것이다. 청년도 노인도 모두 대출의 노예가 되어, 벌어서 교육시장 주택시장에 갖다 바치며 살게 하는 구조다. 독재의 칼날이 아니라 도래하는 원리금 상환일이 민주주의를 압살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반신자유주의 투쟁에서 빠짐없이 교육 개혁이 중심에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도 대학 서열 해체하고, 입시 철폐하고, 대학 등록금 무상화하자고 역설한다.

 

2능력주의는 왜 해로운가는 사회 여러 영역에서 능력주의가 초래하는 문제를 다룬다. 박권일의 글은 공정성 내전혐오 담론화한 능력주의등 한국 사회 능력주의의 양상을 짚어 낸다. 그는 능력주의에 관한 네 개의 질문을 통해 능력주의 비판이 왜 필요한지 밝히며, 능력주의로 가장한 세습주의와 지대 추구를 폭로하고 비판하는 것과 동시에 능력주의에 대한 근본적이고 내재적인 비판이 필요하다는 이중의 과제를 제시한다.

노동운동가인 김혜진은 능력주의가 성과급제 등으로 일터에서도 전면화되고 있고 시험만이 아닌 직무 위계와 차별, 성과 경쟁 등으로 구현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노동에서의 능력주의 문제를 노동자 집단의 보편적 권리와 평등의 관점에서 극복하고자 한다. 청년 정규직이 공정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공정하다고 믿어서가 아니다. 사회가 불공정하기 때문에 자신처럼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시험을 통해서만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매달리는 것이다. 이 시험마저 의미가 없어지면 평범한 사람에게는 그 어떤 기회도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 자신이 노력하고 고생한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격렬하게 반대하도록 만드는 요인이다.

다른 생각을 가진 의대생/전공의의 김혜경·문종완은, 의사 집단 진료 거부 사태 당시 표출된 엘리트주의가 의사들이 학교 교육에서부터 내면화한 능력주의 논리로 인한 것임을 지적하며, 능력주의가 공공성과 민주주의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한다.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는 개인의 성공을 오로지 개인의 내재적 능력과 노력의 결실로 간주한다. 2020814일 거리 집회에서 나온 박지현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의 교과서 사는 데에 10원 한 푼 보태 준 적 없는 정부라는 발언은 능력주의 이데올로기가 한국의 파워 엘리트의 정신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보여 주었다. ‘내가 내 돈 내고 내 의지로 열심히 해서 얻은 나의 지위인데, 아무것도 한 게 없는 사회가 무슨 자격으로 나에게 책임을 요구하는가!’

페미니스트 이유림은 디지털 페미니즘의 신자유주의적·능력주의적 실천과 서사를 검토하여, ‘청년 담론의 사각지대에서 개인으로서 성공하기를 요구받지만 동시에 차별받는 청년 여성의 모순된 삶의 조건이 능력주의를 선망하게 한다고 분석한다. 그러면서 능력주의적 전망을 넘어 능력을 규정하는 권력과 자원을 분배하는 기준에 정치적으로 도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글은 소수자들에게 능력주의가 어떤 의미로 작용하는지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마지막으로, 홍세화의 닫는 글에서는 부르디외가 말한 지적 인종주의개념을 소개하며, 불평등과 그 세습을 정당화하는 능력주의가 교육과 사회에 해악이 된다는 것을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 ‘가장 교묘하고 알아차리기 어려운인종주의로서 능력주의를 극복해야 할 이유를 담고 있다.

 

학벌주의와 능력주의 이데올로기, 공정성의 허구, 입시교육으로 인한 불평등 문제는 진보적인 교육자나 교육혁명운동진영이 오래전부터 주장해 왔던 것이어서 관련된 논문이나 책들은 많이 있지만 더해서 외국의 책만 간단하게 몇 권 소개한다.

최근에는 정의란 무엇인가를 쓴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 The Tyranny of Merit: What's Become of the Common Good? (2020)’이 출간되었다. 직역하면 능력주의의 폭정: 과연 무엇이 공동선을 만드나?’. 샌델은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너무나도 당연히 생각해왔던, 개인의 능력을 우선시하고 보상해주는 능력주의 이상이 근본적으로 크게 잘못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샌델이 보는 능력주의는 곧 '세속적 성공과 도덕적 자격의 결합'이다. 능력주의가 공공선인 사회에서 노력과 능력은 개개인의 부와 성공에 대한 알리바이가 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세속적 성공을 이룬 삶은 겸양을 기를 필요가 없고 가난한 이들은 비난의 화살을 스스로에 돌린다. 샌델은 종교의 섭리론과 역대 미 대통령들이 조성한 담론을 통해 현재의 능력주의 사회가 형성된 배경을 분석하고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대니얼 마코비츠(Daniel Markovits)엘리트 세습 - 중산층 해체와 엘리트 파멸을 가속하는 능력 위주 사회의 함정 The Meritocracy Trap: How America's Foundational Myth Feeds Inequality, Dismantles the Middle Class, and Devours the Elite (2020)’을 펴냈다. 예일대 로스쿨 교수로서 엘리트 코스를 걸어온 자기 자신을 비롯해 오직 엘리트에만 유리한 쪽으로 사회가 조작되고 있다는 주장을 이 책에서 펼친다. 불평등 문제의 원인은 능력대로 공정하게 보상받는다는 능력주의(meritocracy)’ 그 자체이며, 이는 거짓이라는 것이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들인 스티븐 J. 맥나미, 로버트 K. 밀러 주니어는 능력주의는 허구다 - 21세기에 능력주의는 어떻게 오작동되고 있는가. The Meritocracy Myth(2015)’에서 21세기 능력주의 신화의 문제점과 그 부작용, 위험 등을 파헤친다. 능력주의는 개인의 능력이 성공의 토대가 될 수 있다고 가정하지만, 지금의 세상은 개인의 능력과는 무관한 비능력적 요인들이 우리 삶에서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능력주의는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다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이 비능력적 요인들은 개인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따라잡을 수 없는 것들이다. 특히 일반적으로 능력주의의 핵심 동력이라 할 수 있는 학교와 교육을 불평등한 삶을 자녀 세대에까지 대물림하는 데 일조하는 잔인한 매개체라고 비판한다.

20 VS 80의 사회 - 상위 20%는 어떻게 불평등을 유지하는가 Dream Hoarders (2019)’에서 저자 리처드 리브스는 최상위 1%와 나머지 99%의 대결 구도를 고수하는 기존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상위 20%, 즉 중상류층을 중심으로 불평등 구조를 분석하면서 불평등에 실제 책임이 있는 상위 20%가 어떻게 사회를 망치고 있는지 비판한다. 자녀의 양육과 교육을 통해 인적 자본을 키우고, 이를 통해 고소득 전문직 일자리를 물려주려는 중상류층의 위선적인 태도와 불공정한 행위를 지적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격차는 확대되고 사회적 지위는 대물림된다. 이른바 수저론 등으로 표현되는 한국 사회의 현상은 이와 같은 맥락이다.

 

이 글을 쓰는 도중에 정부는 코로나 국면에서 공공의료 논란을 일으킨 의사국시 거부의대생에 추가 시험 기회를 부여하겠다고 발표했다. 의과대학 본과 4학년 2,700여 명이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신설 등의 정부 정책에 반발해 국시 실기시험 응시를 거부했으며, 당시 정부는 공정성이나 국민 여론 등을 이유로 추가 응시가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정부는 그들의 의사 국가시험 재응시를 허용하면서, 방역의 필요와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었다는 이유를 들었다. 멍청한 공공의대와 똑똑한 의대생, 자신들이 이 자리에 온 건 오직 자신들의 능력과 노력이었다는 그들의 주장에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었다고 정부가 선언한 형국이다. 그리고 이 정부 결정에 대한 비판의견 또한 공정과 형평이라는 이데올로기에 근거하여 과도한 특혜라는 비난이 주류를 이룬다. 능력에 따른 차별은 공정하다는 믿음에 근거한 것이다.

노동자나 세월호 부모들, 장애인들에겐 집단이기주의라고 한없이 강력하게 비난하던 정부가 의대생들에겐 한없이 너그럽다. 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바로 그들의 자식들이기 때문이라면 과도한 판단일까? 여기에는 정치적으로 진보를 주장하던 그렇지 않건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이를 바라보는 대중은 시험 점수가 낮은, 그래서 능력이 없는 자신들에 대한 한탄과 체념밖에 남지 않는다.

 

재난은 멈춤과 돌아봄의 과정을 통해 일상을 다르게 볼 수 있다. 이 과정을 잘 거치면 현실의 문제를 극복할 대안들이, 평소에는 과도한 상상이나 비현실적이라고 내쳐졌던 것들이 공론의 장에서 논의되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 긴급재난지원금으로 기본소득 논의가 진전된 것처럼. 이는 성장이데올로기에서 잠시 멈추고 자신의 선 자리를 돌아볼 때에 가능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질주를 멈추고 자아와 세계를 되돌아볼 성찰과 다른 세계를 상상할 시간이다.

코로나19가 야기한 혼란과 일상의 균열은 코로나 이후의 학교에 대해 전면적인 성찰을 촉구하고 있다. 학교 문이 닫히니 그간 유예돼 온 질문들과 감춰졌던 틈이 가차 없이 들춰졌다. 코로나19로 인해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이며, 무엇이 우리 삶에 필수적인 것인가, 우리 교육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코로나가 진정된다하더라도 다시 이전의 학교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를 대체할 새로운 형태의 학교는 그리고 당장 2021년 봄에 학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논의되고 있지 않다. 이대로 2020년을 반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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