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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 그리고 그가 말하지 않은 몇 가지
-- 이철호(학벌없는사회 사무처장)

한국 사회에서 교사로 살아가는 데 여러 어려움이 있다. 이 어려움은 교사에 대한 처우나 급여의 문제가 아니라 대중이 학교 교육에 거는 입시교육이라는 기대에서, 교육정책 집행 과정에서 교사가 개혁의 대상으로 치부되는 데서 발생한다. 그러나 가장 큰 어려움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교육 문제에 관한 전문가라는 데서 온다. 대부분 사회가 그렇듯 한국사회 구성원 모두는 교육에 관한 한 관련 당사자이고 그만큼 전문가이다. 자기 나름의 근거와 예측을 통해 판단을 하고, 행동하고 있기에 교사로서의 전문성이 자리할 여지는 그만큼 위축되기 마련이다.
교육 문제 못지않게 모두가 당사자이고 전문가인 또 하나의 영역이 경제이다. 경제 economy의 어원은 가계의 삶을 나타내는 oikos 와 지배 혹은 관리를 뜻하는 nomos 의 결합으로 형성되었다. 가정에서의 삶을 관리하는 것이 바로 경제라는 의미이기에 경제문제는 삶의 문제이고 생활단위의 영역의 과제이기에 경제와 무관하게 사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서 새로운 문제에 부딪힌다. 경제가 마치 종교처럼 정신을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그가 누구인지를 그의 소유가 말해주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중세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신과 인간의 사이를 가로막아 신의 뜻을 팔아 권위를 유지했던 중세의 사제가 다시 부활하여 혹세무민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경제학자라는 이름으로 복잡한 수식과 숫자들을 나열하기 시작했고, 그들은 펀드매니저라는 둔갑술로 통계 그래프를 들이대었다. 무지몽매한 민중들은 일상의 언어들의 세계에 갇혀 살아야 했으며 라틴어 성경을 가진 그들은 %와 $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논쟁은 그들 사이에 진행되었으며 설령 그것이 틀렸다고 해도 따질 수도 없다. 아니 틀렸는지 조차 분명하지 않다. 이 신화에 파열구가 난 것은, 다시 말해 난해한 통계나 전문가의 해석에 의심이 가기 시작한 것은 2008년 금융 위기부터이다. 정확하게 반박할 수는 없지만 그동안 거짓말을 해 왔던 것은 틀림없는 확신으로 다가왔다. 그들이 애써 미국발 금융위기라고 축소해서 덮어씌우려 했지만 이어지는 전세계적인 동조와 남유럽까지를 거치면서 그들의 세계에 심각한 의문을 품게 되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분명하게 의심이 걷히지 않았는데 어느샌가 다시 그들이 세상을 해석하고 세상은 그들의 뜻대로 굴러가고 있다.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장하준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바로 그런 점에서 미덕이 많은 책이다. 그들이 거짓말쟁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무식해서라고 자조하고 있던 바로 그 점을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이 가지는 또 다른 미덕은 수긍하기 쉽다는 데에 있다. 단어를 어렵게 선택하지 않으며 가볍게 읽혀 나간다. 단순한 논리전개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도 두려운 상대를 가볍게 넘기는 재주에 문장 또한 경쾌하다. 사실 좌파를 자처하는 이들이 써 놓은 글을 읽어 보라. 얼마나 낯설고 구태의연하고 고리타분한 단어들을 늘어놓고 있는지. 한없이 늘어지는 문장들까지 도무지 난해하기가 이를 데 없다. 게다가 설교와 흥분까지 더하면 정나미가 떨어진다.
그리고 이 책이 끼친 공과는 자못 크다. 물론 서점에 가 보면 이제 각종 투자 전략과 실전테크닉을 설명하는 잡것들이 서가의 중앙에 자리잡은 지 오래지만, 이 책만큼 사회적으로 영향을 가진 것은 없었다. 이 책은 직접적인 비판의 대상에서부터 새로운 대안을 꿈꾸는 이들, 그리고 일반 대중들에게까지 자유롭게 놓아두질 않고 있다. 당연하게도 최근 한국에서도 벌어진 부자 감세 논쟁에서 진보진영에 좋은 무기를 제공하고 있으며, 또한 복지담론을 유포하는 데 이론적 무기를 제공하고 있다.

이 글의 목적은 비판이므로 먼저 그동안 제기되었던 장하준에 대한 비판을 찾아보자. 장하준에 대한 비판은 크게 보아 두 가지 지점에서 다르게 전개되어 왔다. 이 책을 통해 직접적인 공격을 받은 이들은 허를 찔린 듯 허우적대면서 볼멘 항변을 하고 있다. 전경련 등은 장하준이 자원 배분 기구로서 시장보다 정부가 효율적이라고 주장하는‘반시장주의자’로 공격한다. 또한 그들은 정부개입이 자유시장의 효율성을 해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는 과대평가일 뿐이다. 마치 노무현이 좌파라는 것처럼. 장하준은 시장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자유시장이라 해도 언제나 일종의 규제가 있어서 규제된 시장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는 자유 시장은 추상일 뿐이며, 모든 시장에는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규칙과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시장과 정부에 대해서도 장하준은 시장만이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을 뿐이다. 때에 따라 정부가 시장보다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많고, 심지어 정부와 시장이 잘 조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기실 장하준은 시장 자체의 문제와 삶의 상품화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 인간의 삶의 실체적 터전인 노동, 토지, 화폐가 상품화 되어 가고 있고, 공동체의 영역이 시장의 지배하에 들어가고 있으며 바로 그 점 때문에 시장이 드러낸 폐해를 말하지 못하고 있다.
한편 참여연대 등의 진보 쪽에서 장하준 비판은 사실상 재벌 문제로 귀결된다. 장하준 등이 주장한 ‘사회-재벌 타협론’이 모호한 이유로 재벌을 편들고 있는 데 이것이 사실의 왜곡하며, 재벌 문제의 오해와 주주를 배척하고 있다는 것이며, 한국 사회 특유의 개혁 과제마저 무시한다는 것이다.
실제 장하준은 재벌을 부정하면 국제 금융자본이 들어와 단기 이윤을 위해 경제를 굴리게 된다. 이 체제는 저투자, 저성장, 저고용 그리고 고용불안을 불러온다. 이렇게 볼 때, 자본의 횡포에 저항하기 위해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재벌을 응징하는 것은, 여우를 잡으려고 호랑이를 들이는 격이다. 재벌총수 가문들을 쫓아내고 국제 금융자본이 우리 경제를 장악하게 되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며 재벌들을 옹호한다고 진보 쪽에서는 비판한다.
또한 장하준은 한국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제한적인 무역·산업정책 또는 민주적인 발전국가를 제안한다. 이에 대해 진보 쪽에서는 현재의 재벌들은 이미 1990년대 중반부터 한국이라는 국민국가의 틀을 벗어나 세계화에 편승하는 것이 자본 축적에 더욱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한국 정부도 산업정책을 통한 재벌들의 자본 축적보다는 세계화를 적극 추진함으로써 재벌들의 자본 축적을 가속화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글의 비판은 한 걸음 더 나간다.
장하준은 주주 이익을 극대화하는 ‘주주 자본주의’ 때문에 투자가 줄어들면서 일자리가 줄고 성장률이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투자를 늘리기 위해서는 국가가 각종 정책 수단(예를 들어 부자와 기업의 감세를 허용하는 대신 투자를 조건으로 제시)을 통해 부자들로 하여금 더 많이 투자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시대에 기업들이 주주에 대한 배당을 늘린 것은 사실이지만, 그 주주들이 대부분 기업 소유주 자신이었으며, 동시에 사내 유보 이윤 또한 증가했다. 국가는 온갖 규제를 없애고 부자 감세를 추진하며 기업 투자를 유도했지만 부자들은 파생금융상품 등 투기에 매달릴 뿐 생산적 투자는 회피했다. 이런 현실 앞에서 장하준의 주장과 신자유주의 사이의 차이점을 나는 발견하지 못하겠다.
장하준의 발전국가론은 이론적으로 ‘제도학파’에 기초해, 한국 자본주의의 고도성장과 1997년 경제위기의 원인을 일정한 ‘제도’나 그것의 변화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발전국가론은 민족주의에 기대어 호소력을 가지고 있지만, 신자유주의와 근본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김창근은 이에 대해 한겨레 21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첫째, 양자는 모두 ‘제도’에만 초점을 맞추고 계급 문제를 등한시하고 있다. 차이점은 단지 ‘좋은 제도’가 어떤 것인가 뿐이다. 둘째, 두 이론 모두 자본 편향적인 이론인데, 신자유주의는 자본에 유리한 ‘시장’을 조성하자는 것인 반면, 발전국가론은 국가의 보호와 혜택에 의한 재벌들의 자본 축적을 주장하는 차이가 있다. 셋째, 발전국가론은 자본주의 운동에 대한 ‘역사적 설명’을 목표로 하는데, 계급적 관점의 부재 때문에 어떤 특정한 제도가 왜 생겨나서 변화되고 다른 제도로 변화하게 되는가, 또한 어떤 제도는 어떤 시기에는 성공적으로 작동했는데, 왜 다른 시기에는 성공적으로 작동하지 않는가에 대한 설명을 할 수 없다.
이러한 발전국가론은 국가와 재벌의 역할만을 강조할 뿐, 냉전과 같은 대외적 요인, 반공 이데올로기에 기초한 노동자들에 대한 억압 및 초과 착취라는 내부적 요인들은 주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실제 한국 경제는 미국과 일본의 자본과 기술을 특혜로 제공받은 기업들, 주로 재벌기업들이 억압적 반공체제 아래에서 노동자들을 초과 착취해 제품을 생산하고 관대한 미국 시장에 수출해서 성공했다. 이를 통해 보면 한국형 발전국가 모델은 유리한 대외 조건, 강력한 국가, 억압된 노동이라는 특수한 상황의 결과이기에 이에 대해서는 보다 정확한 평가가 필요하다.  
장하준은 “인터넷보다 세탁기가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는 충격적인 표현을 통해 탈산업사회가 아니라고 강변한다. 그리고 현재 장기 침체의 원인을 ‘제조업 투자 부진’에서 찾고, 또한 투자 부진의 원인을 단기적인 주주이익에 주로 봉사하는 영미식 금융 시스템에 돌린다. 하지만 한국 재벌들이 현재 자금이 없어 투자를 못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투자가 되지 않는 그리고 산업자본이 투기금융화 되는 이유는 1백50여 년 전에 마르크스가 분명하게 지적한 자본주의의 ‘이윤율 저하 경향’으로 분석해야 한다. 전 세계 자본주의는 1960년대 말 이후 이윤율이 떨어져 왔다. 복지ㆍ임금 삭감과 부자 감세 등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부자들의 이윤 몫을 늘리려는 시도를 계속해 1980년대 이후 이윤율이 조금 올랐지만 그 수준은 1960년대 수준으로 회복되지 못했고 따라서 투자도 회복되지 않았다.  
또한 자본주의 체제에서 투자는 자본가의 역할이다. 이는 사회발전의 동력을 자본가의 역할에 모든 것을 기대게 하는 결과에 이르게 된다. 지금 한국사회 진보 운동에게 장하준은 새로운 출구가 되고 있는 듯 하다. 복지담론이나 선거연합의 중심 이데올로기가 되고 있다. 그러나 자칫 성급하게 우려를 더하면 장하준의 복지는 자본의 이익이 노동자에게도 좋다는 논리, 자본의 파이가 커지고 그 일부를 노동자에게 시혜로 베풀어 주는 신자유주의 논리의 복사가 될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해 그의 복지국가와 더 나은 자본주의에 대한 아름다운 그림은 노동자 민중의 주체적 실천을 배제하고 있다. 23가지나 장황하게 나열하고 있는 소 제목을 유심히 들여다 보라. 문제와 실천적 대안은 자본에게만 있다. 노동은 단 한번도 주체의 자리에 있지 않다.
과학에서 도그마가 되는 것은 직관적이고 경험적인 세계와 다른 데에 있다. 신자유주의는 경험과 다르면서도 경험이나 직관에 의존하고 있다. 파이가 크면 나누는 것도 커진다거나 비용이 적게 들면 이익이 더 많이 남는다는 것은 직관의 세계이다. 그러나 살아온 현실에서 경험한 세계는 아무리 자본가가 많은 이윤을 남겨도 결코 노동자에게 돌아오는 파이는 없다. 현실이 직관에 위배되는 결과를 나타낸 것이다.

장하준은 무책임한 주주자본주의와 기업의 소유와 자본을 위한 운영방식에 문제를 제기한다. 타당한 지적이며 박수를 치며 환호한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한국사회와 신자유주의에서 소유의 문제는 단지 주주 무책임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권력, 재벌권력 자체의 무책임에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사적 소유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근원적 처방은 사회공동체적 소유로 전환하는 것이며, 기업이 공적인 제도, 사회공동체를 생산시설로 자리잡는 것이다. 이럴 때에야 산업에 대한 투자와 생산의 결과가 복지라는 결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장하준은 또 다른 종류의 직관의 세계에 의존하고 있다. 그는 자본주의는 가장 좋은 경제 시스템인데 문제는 단지 지난 30여 년간 세계를 지배해 온 특정 자본주의 시스템이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다. 하기에 이 책이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듯이 그가 가고자 하는 길은 더 나은 자본주의의 길이다. 자본주의의 지배자는 자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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