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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호 신자유주의 정책과 교육운동의 대응

2001.02.08 18:56

이종보 조회 수:1735 추천:3

신자유주의 정책과 교육운동의 대응

신자유주의 정책과 교육운동의 대응

이종보

Ⅰ. 서론

1990년대 후반 'IMF와 신자유주의'라는 단어만큼 우리 사회를 뒤흔들어 놓았던 말도 없었을 것이다. 1997년 말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한국 국민들은 IMF를 인식하기 시작하였으나 IMF가 세계화, 신자유주의와 혼용되어 표현됨으로써 단순한 국제기구가 아닌 '시대의 언어'가 되었다. 이 시기는 IMF사태를 경험하면서 한국사회문제에 대한 재조명 작업으로 몸살을 앓았던 시기이기도 하다. IMF사태의 원인을 찾아 각기 나름대로 해석하면서 원인과 결과에 대한 짝짓기가 무분별하게 이루어졌고 누적된 한국 사회의 병폐를 들춰내는 작업이 깊이있게 다루어지기보다는 감각적 표현과 과도한 논리비약으로까지 나아가면서 오히려 문제의 본질을 흐르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다. 한편으로는 외환위기를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IMF구제금융을 지목하기도 하였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구제금융의 대가성 요구라 할 수 있는 구조조정방안이 점차 제도화되면서 그 방안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았다. 이 둘은 실제 실천되어 가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는데, 전자가 IMF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안을 IMF사태의 주범으로 지목되어온 재벌의 개혁 논의와 동일시하여 개혁을 주도하는 담론을 형성했다면, 후자는 자본의 세계화 구도속에서 진행되어온 신자유주의의 의도와 결과를 문제삼아 거부와 저항의 불씨가 되기도 하였다. 이 둘은 경제 영역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 영역에서 충돌하고 있다. 교육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은 '개혁의 담론이 될 수 있는가?' 아니면 '저항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의 문제는 국민의 교육열과 한국교육의 특수성을 고려한다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 글에서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상당 부분이 개혁담론으로 등장하고 있고 주도면밀한 대중적 설득력을 형성하고 있다는 현실에 주목하여 단순한 '자본대 반자본의 구분짓기'와는 일정한 선을 긋고 성찰적 비판의 관점에서 글을 전개하고자 한다. 이 글은 먼저 신자유주의란 무엇이며 교육정책으로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몇 가지 논쟁을 중심으로 정리한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을 효율성과 형평성 관점에서 재평가해보고 교육운동진영의 대응과 준비를 모색해보고자 한다.

Ⅱ. 신자유주의 교육정책

'신자유주의'는 뭔가 다른 것이 있다. '자유주의'와 같으면서도 다른 '신'자유주의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먼저 중복되는 단어, '자유주의'에서 찾을 수 있는 속성을 보자.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 특히 사유 재산권을 적극적으로 보호한다. 이를 위해 국가의 경제개입은 배제되고 시장의 원리대로 운영되는 형태를 갖는다. 즉, 경제가 '시장중심적'이라는 점에서 공통의 속성을 띤다. 그렇다면 앞에 붙여진 '신'은 무엇이 새롭다는 의미인가? '신'자유주의는 과거에 있던 '자유주의의 재등장'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한 재등장이라면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뒤엣 것'이라는 의미는 앞 뒤 순서의 문제가 아니라 앞 뒤 사이에 있었던 역사적 경험을 거친 후의 것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2차세계대전 이후 케인즈 경제학이 주도한 세계경제는 호황을 누리게 된다. 하지만 7-80년대 경제불황과 그에 따른 기업 이윤 감소가 나타나면서 그 원인이 전후 합의 정치에 따른 복지국가 지향의 정부 개입에 있다고 보는 시각이 대두되는데 이는 구체적으로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라는 정책으로 표명화되었다. 자유주의 정치경제학에서 시장과 경쟁의 원칙은 최고의 원칙이며 자본주의 경제의 자기조정력은 믿을 만한 것이기에 국가의 규제나 지원은 최소화하여 시장에서의 경쟁구조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조건만 형성시켜주면 된다는 시각을 견지했던 것이 오늘날 신자유주의로 불리워지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기업경쟁력의 강화를 통한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무역투자 자유화, 탈규제, 공기업 민영화, 작은 정부, 긴축재정, 노동시장 유연화 등의 정책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들의 논의는 교육정책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데 자율화, 수요자 중심, 다양화, 특성화, 경쟁이 그것이다. 탈규제, 자유화 및 공기업 민영화는 기업적 경영방식의 도입, 학교선택권, 학교의 학생선발권, 농어촌학교 통폐합 등과 견주어 볼 수 있고, 긴축재정은 교육재정의 GNP대비 6%확보 포기, 교육세 폐지와 관련되어 있으며, 노동시장 유연화는 계약직 교사제(기간제 교사, 강사), 교원 정년 단축, 순회교사제, 교·사대 통폐합, 성과급제 등과 연관된다.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은 '교육부문의 시장경제화'로 요약될 수 있는데, 이는 7차 교육과정의 지원1)을 통해서 보다 공고화된다.(<그림1> 참조)

교육과정은 교육정책의 토대가 되는 시스템으로써 일련의 교육정책 변화가 '어찌할 수 없는' 의도된 방향으로 귀결되도록 한다. "기본적으로 교육과정은 교육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이다. 교육과정은 교육의 역할과 의의, 교육권의 보장, 기본방향과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으며 교육내용과 방법, 교사의 전문성과 신분 및 근무조건을 규정하는 기본 틀거리가 된다. 교육과정은 가히 공교육의 거의 모든 것을 규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2)". 이러한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은 다음의 몇 가지 논쟁을 중심으로 서로 충돌하고 있다.

<그림 1>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과 교육정책

1. 학교의 공공성 논쟁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의 기본 논쟁은 학교가 공공영역에 (속하는가, 속하지 않는가가 아닌)속해야 하느냐 사적영역에 속해야 하느냐 하는 것이다.

천세영은 공공영역의 재화, 즉 공공재가 존재하는가에 대해서 "반드시 그렇지 않거나, 아니면 불확실하다"고 답한다. "종종 '공공재'는 국가와 정부관료를 위한 민간재로 둔갑되어 있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3)." 이들은 순수공공재의 평등주의적 특징은 하나의 환상이며 특정 민간재들이 공공재로 변경되어왔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다시말해서 교육은 본래 민간재의 변형된 형태이며 현재 국가의 공공영역에 속해있는 학교교육의 위치를 사적(시장경제) 영역으로 이동시키자는 주장을 한다. 학교교육도 사적인 상품의 교환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보울즈와 긴티스는 "사회생활의 영역이 '사회적으로 중대한 권력 행사'를 내포할 때 그것은 공공영역으로 봐야 한다4)"고 주장한다. 실제 "교육은 한 사람의 미래의 직업 지위에 큰 영향을 미친다5)."는 점을 고려한다면, 교육은 사회적으로 중대한 권력행사를 내포한 공공영역이다. "교육은 시장경제에만 맡겨둘 수 없는 공동의 자산이다. 따라서 지방분권화의 정도나 체제의 다양화 정도와 상관없이 국가는 그 국민에 대하여 모종의 책임을 져야 한다6)." 또한 "시장영역에서는 시민들이 교육의 평등화를 요구하거나, 시민들이 자신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중대한 교육에 관한 결정에서 평등한 발언권을 가질 수가 없게7)"되므로 오직 상품 소유 능력에 따라 배분되는 사적영역에서의 교육을 거부하고 공공영역에 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둘의 논의는 교육재정과 관련된 논쟁에서도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수업료의 결정에 있어서도 국가 간섭의 최소화를 주장하는 신자유주의자는 자립형 사립학교를 은근히 지지하고 반대론자는 교육재정의 GNP대비 6% 확보 포기를 중대한 사안으로 받아들이면서 부실한 학교 환경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2. 교육부문의 탈규제 논쟁 - 학교선택론을 중심으로8)

전통적으로 근대 공교육제도가 확립된 이후 학교선택에 대한 상반된 이론이 대립되어 왔다. 즉, 아담 스미스를 필두로 한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은 이미 국민의 교육기회는 보장되어야 하지만 그 운영 방식은 민간의 자율 영역에 맡겨두어져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였으며, 최근의 신자유주의자들에 의해 더욱 강화되고 있다. (학교 선택 옹호론자에 따르면) 학교의 실패는 경직된 관료제와 정부의 통제 때문인 것으로 파악된다. 그래서 프리드만은 정부는 관료기구의 죽은 손을 치우고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될 수 있도록 도와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코졸에 의하면 도심의 학교들은 돈은 많이 쓰면서도 학교성과는 문제가 많아서 시장경쟁하에서의 책무성 제고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교육만은 시장재가 아닌 만큼 강력한 정부의 개입을 통해 교육의 기회균등과 사회정의를 이루어야 한다는 주장이 대립되어 왔다. 비판론은 학교를 민간 시장의 선택에 맡기었을 때, 그 기회의 불평등이 결과적으로는 사회적 불평등으로 이어질 것이며, 그렇게 된다면 근대사회에서 성립된 평등이념이 침해를 받게 된다는 우려에서 비롯된다. 즉, 학교선택으로 인한 기회 불평등의 지속 현상은 사회적, 정치적 불안의 직접적 원인이 되며, 이는 나아가서 국가체제의 정당성을 침해하는 결과를 가져올 지도 모른다는 인식이다.

3. 교육 노동의 유연화 논쟁

신자유주의자들이 강조하고 있는 '수요자 중심의 교육'은 교육도 하나의 서비스 상품이며 따라서 교육의 소비자(학생·학부모·기업)는 보다 질 높은 교육 내용을 요구할 권리가 있고, 이에 대해 교육의 공급자(정부, 교육관료, 사학재단, 그리고 교사)는 상호간의 경쟁을 통해 교육 소비자에게 최대한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기본적 입장에 서있다. 강요된 교육이 아닌 소비자의 입맛에 맞는 맞춤식교육이 가능해진다는 얘기다.

"사회가 변화하게 되면 교육에 대한 수요가 변화하고 이에 따라 교육내용의 수정이 불가피해진다. 교육내용의 수정 요구는 곧 교과의 선택제 확대로 나타나고 이에 따라 교과 교사들의 고용 변화는 불가피해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계약직 교사제 도입이 불가피해진다9)." 즉, 7차교육과정의 선택중심 교육과정(과목선택형 수준별 교육과정 포함)은 교육노동의 유연화를 지원하게 된다. "수요가 공급을 창출해"내 듯 소비자의 수요에 따라 공급 시장은 많은 변동을 수반한다. 이것이 곧 교육 노동 시장의 유연화이다. 교육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몇 가지로 나뉘어 분석할 수 있다. 수량적 유연성은 계약직 교사제, 수습교사제로, 기능적 유연성은 순회교사제, 교·사대 통폐합으로, 재정적 유연성은 연공서열식에서 성과급제(연수·연구 학점제, 교원평가위원회 설치)로의 전환으로, 아웃소싱은 농어촌 학교의 통폐합, 무능력 교사 퇴출로 나타난다.

비판론은 "학생을 수요자로 볼 경우 교사들의 교육 행위를 불안정하게 한다는 점10)"을 지적하고 있다. 수요자 중심의 교원 정책은 "노동의 강화, 긴장의 극대화, 교사에 대한 위엄의 손실, 전문가 조직에 대한 근원적 도전11)"이 나타나 교사의 정체성을 심각하게 위협할 것이라는 얘기다.

Ⅲ. 교육운동진영의 대응과 준비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의 논의 과정을 보고 있으면 진보와 보수가 역전된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과거의 보수 세력은 오늘날 개혁을 진행하는 진보세력이 되고 지금의 진보 세력은 개혁을 반대하는 보수세력이 된다. 이는 신자유주의 정책이 개혁 담론을 주도하고 있는 것에 비해 그에 대한 저항 담론은 원론적인 수준을 벗어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진보 세력에 대한 성찰적 비판을 제대로 진행한 바가 없다. 세상이 변했어도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사실에 대해 분노만 하고 있을 뿐 저항담론은 아직도 과거 군부독재 정권 시절에 행해졌던 바와 같이 도덕적 우위에 기반한 모습을 크게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국민으로부터 심정적 지지는 얻어내고 있는지는 몰라도 실제적 지지는 형성되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다. '교육부문의 시장 경제화를 우려한다'는 원론적인 담론은 보다 치밀해지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로부터도 지지를 얻어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시장경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과연 '시장경제화'가 그렇게 위협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겠느냐"라는 현실적 의문이 든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속에 들어있는 논리를 신자유주의자의 논리대로 분석해보는 것은 저항 담론의 치밀성을 위해서도 의미있는 작업이다.

1.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 평가

(1)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은 효율적인가?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이 폭넓은 지지층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간의 학교교육에 대한 불신이 크게 작용한 탓이다. 일반적으로 공교육이라 하면 학교 교육을 연상하는데 저항의 담론으로 공교육의 정상화를 내세우게 되면 학교교육의 강화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즉, 신뢰받지 못하는 교육을 강화한다는 주장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저항 담론의 허약성을 드러내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은 그러한 국민의 심리를 포착하여 파고들었다. 이들은 "한국교육은 하나의 거대한 국영산업으로 부실경영의 표본12)"이라고 단정짓고 교육부문의 시장 경제화를 통한 개혁을 주장함으로써 두터운 지지층을 형성해내고 있다. 그러나 "교육을 시장의 논리에 맡기게 되면 그것이 과연 국가가 관리하는 경우보다 반드시 나은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봄직하다. 지금까지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이 '효율적일지는 몰라도 평등성에는 어긋난다'는 주장만을 되풀이하면서 효율성에 대한 의심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나는 그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고교 평준화를 예를 들어 보자. 평준화는 신자유주의자에게는 영재교육을 가로막는 불신의 씨앗이 되었고 일부 학부모에게는 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는 자신의 자녀를 생각해서 반대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자에 따르면, 경쟁의 원리에 입각한 평준화 해제는 학생으로 하여금 더욱 열심히 공부를 할 수 있게 하고 학부모들은 그러한 소위 일류 고등학교를 선택하게 할 수 있다. 하향평준화에서 나타났던 학력 저하 현상이 사라지고 경쟁력을 갖춘 학생들이 집중적으로 육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학력 저하 현상에 대한 검증은 확실하지 않다. 교사의 자의적인 판단이거나 과거와 비슷한 난이도로 출제된 모의고사의 점수대를 비교해보는 것 아니면, 서울대 합격률로 비교한다. 앞의 두 가지 기준이 일반인들이 접근하기에는 모호한 면이 있기 때문에 서울대 합격률이라는 기준을 놓고 보자.

비평준화 지역인 울산의 경우 "우수학생이 학성고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학성고의 서울대 합격자 수가 울산 전체 서울대 합격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에 비추어 울산 지역이 평준화 지역인 진주, 마산, 창원에 비해 서울대 진학생 수가 오히려 낮다.(표1참조) "13)는 통계치가 있다.

<표1> 연도별 서울대 진학생 수


95년

96년

평준화지역

진 주

동명고 33명
진주고 31명

대아고 23명
동명고 21명

마 산

마산고 26명
경상고 22명

경상고 21명
창신고 21명

비평준화지역

울산 학성고 38명

울산 학성고 40명

이를 두고 신자유주의자는 현행 내신제도에서 학교 가중치가 부여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며 오히려 내신의 가중치 부여까지 주장하고 있지만, 또 다른 예로써 비평준화 지역인 경기도 부천고 재학생들의 얘기를 직접 들어보면 이와는 다른 반응을 보인다. 중학교에서 전교 석차 1-2등에 있었던 학생들이 부천고에 가서는 전교 100여등으로 밀리는 경험을 하면서 오히려 공부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고 답하는 학생들이 많다. 어렸을 때부터 과도한 경쟁에 부딪치면서 학생들의 자신감 상실을 부추겼던 것이다. 신자유주의자는 공부를 더 잘할 수 있는 아이들이 형평성을 중시하는 평준화제도에 밀려 학력저하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평준화는 비효율적인 교육제도라고 비판하지만 앞의 사례는 신자유주의자의 논리를 효율성 차원에서 접근한다고 하더라도 근거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평준화 해제는 서울대의 경우에서 보듯이 고등학교에도 유례없는 강력한 독점을 유발할 뿐이다. 순위에서 뒤떨어진 학교의 "우리가 들러리냐"라는 감정섞인 반응은 접어두더라도 보다 유능해질 수 있는 많은 학생들을 더욱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여 그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사회적 침체의 상황은 과연 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교육 노동 시장의 유연성에 대한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계약직 교사가 정규교사 보다 더 잘 가르친다는 보장은 쉽게 받아들여질 수 없다. 교수학습이 단순히 강의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훌륭한 강사의 수업장면을 담은 비디오 몇 편을 보여주면 가장 효율적일 것이다. 하지만 수업은 학생과 교사가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해야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므로 수업부분에 대해서만 책임지는 계약직 교사가 아닌 학생의 생활영역까지 파악하고 있는 정규교사가 전인적으로 수업을 지도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다. 이는 담임교사에 비해 교과담당 교사가 학생 지도에 더 많은 어려움을 겪는 현장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순회교사는 여러 학교를 순회하기 때문에 딱히 어느 학교 소속이라고 부르기가 어렵다. 따라서 다른 교사에 비해 업무분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더 일할 수 있는 자원을 방치함으로써 오히려 교사 조직 운영의 비효율을 낳는다.

성과급제(연수·연구 학점제, 교원평가위원회 설치)의 도입은 교사들을 점수따기에 골몰하게 만든다. 점수보다는 순수한 의지로 연수를 받는 경우마저도 졸면서 시간만 때우는 다수의 교사로 인해 연수의 성과가 저하되기까지 한다. 교육대학원은 넘쳐나는 교사들 덕분에 고액의 등록금을 벌어들일 수 있는 기회가 되어 대학의 자산만 늘릴 뿐이다. 교사는 대학원에 다닌다는 이유로 시간적 정신적 여유를 학생보다는 대학원에 더 많이 할애하고 있다. 교육대학원의 학습내용이 학교 수업에 피드백이 된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교육대학원생들은 앞서 제시한 연수와 마찬가지로 수업떼우기에 몰두하다 보니 과제부여가 적고 학위를 쉽게 부여하는 대학원을 찾아 몰리는 기현상이 나타나기까지 한다. 농어촌 학교가 통폐합되면서 농어촌의 붕괴는 더욱 가속화되고 지역사회의 구심점을 잃으면서 지역사회의 효율성을 저하시키며 도시의 비대성만 증가시켜 도시는 도시대로 농어촌은 농어촌대로 비효율성만 증대된다. 교육의 공공성 포기로 인해 학부모의 선택은 과대한 교육비 지출을 낳고 경쟁이 증폭되면서 교육비 인플레만 일으킴으로써 생산적으로 쓰여져야 할 자원이 거리에 버려질 따름이다.

(2) 교육의 형평성 문제는 무시할 성질의 것인가?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은 학부모와 학생에게 소비자로서 선택의 권한을 준다. 자신의 능력만 있으면 명문고등학교를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공평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는가를 되짚어봐야 한다. 서울 강남의 8학군이 명문으로 꼽히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돈'이다. 그곳이 풍수지리가 좋아서 태어나는 아이들이 모두 머리가 좋게 되는 게 아니라면, 농촌지역이나 하층지역과 그렇게 성적 차이가 날 까닭이 없다. 이 판단을 내리기까지는 아주 단순한 과정이 필요할 뿐이다. 고액과외에다, 덥고 추운 날 냉난방시설이 잘 되어 있는 곳에서 공부하는 아이와, 그렇지 못한 환경에서 공부하는 아이가 하는 경쟁이 과연 공평한가? 왜 농촌지역이나 학생들의 대학진학율은 그리도 낮은가? 결국 경제적 능력에 따라 학교 선택이 결정된다. "소비자라고 해서 동질적인 집단은 아니고, 사회계층에 따라 구분된다. 소비자간에 교육상품의 차별적 소비가 일어날 수 있다. 또한 소비자는 학교교육을 변화시키기 위해 학교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은 보장받지 못한다. 한 예로 학교의 교육과정에 불만이 큰 학부모를 생각해보자. 이 학부모가 학교에 시정을 요구해도 들어주지 않으면 아이를 퇴교시키고, 가능하면 더 좋은 학교에 아이를 보낼 것이다. 이 학부모에게 열려있는 기회는 교육과정을 개선해줄 것을 요구하는 '발언'(voice) 아니면 '퇴장'(exit)이다. 시장에서는, "중이 절이 싫으면 절을 떠나면 된다"는 식으로 퇴장의 선택을 강요받게 된다. 우리 학교현실로 봐서 학부모들이 학교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퇴장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발언과 참여를 통해서 학교를 변화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14)" 늘어놓은 교육 상품에 대한 선택이 갖는 한계가 본질적으로 존재한다. 그 어떠한 (신자유주의자의 논리에 따른 표현을 쓰자면) '교육상품'도 학교 구성원의 민주적 참여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학교선택권은 결국 이윤을 추구하는 상품제공자의 몫을 적극적으로 보장하는 결과만을 초래하게 된다. 물론 신자유주의 정책 옹호자는 학부모, 학생의 적극적 참여를 보장하는 학교를 상품으로 내놓을 수도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학교 참여는 생활의 여유가 있는 학부모들만의 독점 영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따라서 맞벌이 가정, 농어촌 지역, 그밖에 생계유지에 어려움을 겪는 학부모와 학생은 적극적 참여가 보장되는 학교를 선택한다고 하더라도 실질적 참여의 길은 여전히 좁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참여하는 학부모들은 학교 운영에 있어서 어떠한 의사결정을 내리겠는가? 수준별교육과정 도입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우열반 편성을 적극 지지하지는 않을까? 이는 합법적으로 계급 불평등을 조장할 것이다. 교육불평등은 신자유주의자가 거론하는 것과 같이 그렇게 무시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 무슨 일이 있어도 해결해야 할 중요한 사회문제이며 이는 사회체제의 존재이유를 강하게 문제제기 한다.

2. 교육운동 진영의 딜레마와 대안 모색

김기수는 우리 나라 입시문제와 과외교육비의 문제의 모든 근원은 군부독재정권의 고등교육에 대한 획일적인 통제 때문이라고 고발하고 있는데, 신자유주의자들은 고등교육을 넘어서서 초중등교육에 대한 국가의 통제까지를 반대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정책이 한국교육의 문제를 개혁하는 기회요인이 된다 함은 결국 국가 간섭의 공교육제도가 안고 있는 관료제적 비효율성이 혁파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15) 어쩌면 "시장과 자본의 세계화는 한국의 군부 독재가 학교와 대학에 끼친 가장 유해한 폐단 중의 하나를 제거할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고 보인다.16)" 이들의 논의는 상당히 개혁적이어서 민주운동진영을 빠르게 흡수한다.

그러나 "우리 근현대사에서 과연 자유주의자들이 낡은 체제와 질서를 무너뜨리는 얼마나 기여했나17)" 생각해볼 일이다. 군부독재정권의 획일적 통제가 낳은 입시위주의 교육으로 아이들의 자살이 빈번할 때 이들은 한번도 대정부투쟁에 적극적이지 못했다. 단지 입시교육을 개탄하고 있었을 뿐이다. 폭압적인 정치체제 아래서는 순응적이었던 신자유주의자들의 행동을 살펴보건데 이들의 논리는 행동의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 수면아래에 있던 이들이 되살아났던 것은 군부독재 정치의 장막이 거친 이후의 일이다. 시기적으로는 87년 6월 항쟁이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통성 시비는 논의의 진전을 위해서 일단 접어두자.

중요한 것은 신자유주의자의 교육정책은 교육 운동 진영이 늘 주장해왔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교육운동진영의 위치를 협소하게 만들고 있다. 교육 운동 진영은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에 대해 반박하지도 못하고 환영하지도 못하는 사상의 진공상태라는 혼란을 느껴야만 했다. 신자유주의자들과 연대도 투쟁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될 수밖에 없는 원인은 역사적 경험에서 찾아볼 수 있다. 7-80년대는 국가권력에 대항하면서 '민주 대 반민주'라는 비교적 단순한 대립구도를 형성할 수 있었다. 정권의 탄압이 폭압적이어서 역학관계에서는 밀렸지만 담론의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나 오히려 사상의 혼란은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87년이후 불완전한 민주화 이행기로 접어들면서 대립전선은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는 시대'가 되었다. 저항 담론의 응집력은 크게 약화되었고 국가 종속적이었던 자본은 상대적으로 자율성을 확보하게 되면서 정부와 운동진영사이의 혼란의 틈새를 주도면밀하게 관철시켜 자기 논리를 전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세계 자본 운동에 따라 거부할 수 없는 현실임을 강조하기에 이른다. 많은 진보 인사들이 수세적 입장에서 글쓰기를 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씨에틀에서의 저항은 "세계화가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수용해야 할 필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우리가 정치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하나의 정치적 기획이라는 사실을 드러내 주었다."18) 그런데 문제는 "한국의 시민운동은 오히려 신자유주의적 재편에 편승하려는 경향을 보이고"19)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민운동진영과의 연대를 통해서 지금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낙관적인 기대는 하지 않는다. 다만 연대의 제의는 식민화되어 가는 공공영역을 강제해낼 필요성이 있으며 지금 현재로서는 이것마저 하지 않는다면 마지막 순간에 저항의 영역에 남고자하는 자는 몇 명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절박함 때문이다. '이것마저'라는 표현을 썼지만 사실 시민운동진영과의 연대는 쉬운 일이 아니다. 성명서 한 장 발표하는 것이 연대일 수 없고 그것마저도 내부의 진통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한국 시민 운동진영은 진보적 관점의 종합적 운동을 여전히 표명하고 있다. 따라서 언론 등 공공영역에 파급되는 효과는 긍정적이라고 본다. 지난 총선 시기 낙천·낙선 운동의 성과를 보면 알 수 있다. 물론 직접 정치와 거리를 두려는 모습과 정치권의 공방 때문에 한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공공영역의 담론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만큼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그 점을 주목해야 한다.

신자유주의에서는 작고 강한 정부를 추구한다지만 자본의 이익, 즉 사적 소유권을 지키기 위해서 노동자, 민중이 누렸고 또 누려야 할 제반 사회적·민주적 권리를 삭제함으로써 정부의 역할이 작아진 것이 아니라 실제 '시장의 강화를 위한 국가 기구의 강화'20)를 추진하면서 정부가 자본을 강화하는 쪽(반노동자적)으로 역할을 조정하였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교육 운동 진영은 "국가개입의 축소에 동조할 것이 아니라 국가가 방기한 부문에 대한 지적과 이를 개선하기 위한 대안 제시에 계속 경주해야 한다."21) "진보적 교육개혁의 대안을 수립하고 이를 교육현장의 좁은 차원을 넘어 시민 사회 전체가 관심을 갖고 참여할 수 있는 '사회적 의제'로 발전시켜 나가는 일이 필요하다.22) 시민운동진영과 연대해서 '사회적 권리'라는 지점에서 충돌시킬 때 공공영역에서 신자유주의의 헤게모니를 대체할 수 있다.

교육 운동 진영이 혼란스러워 하는 기저에는 87년 이후 역사적 헤게모니를 장악하지 못한데서 오는 결과이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의 공공영역 담론이 아직도 지배이데올로기에 무기력하게 흡수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공공영역의 헤게모니 장악을 위한 대안은 구체화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라도 "교육문제는 단순히 학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문제이며, 사회개혁 없이 교육개혁이 있을 수 없다"23)라는 관점을 견지해야 한다. 따라서 시민운동진영과 연대를 통한 극복이 다시한번 강조되지 않으면 안된다. 조세 개혁을 통한 교육재정 확보, 환경과 생태를 고민하는 시민운동 진영과의 연대로 교육과정의 방향 전환 등이 모색되어져야 한다. 이 두 가지를 교육운동진영의 대안으로 선정한 데에는 동의, 전망, 실천 자원이라는 점에서 고려되었다. 어떤 사안이 중요하다고 생각되지 않으면 누구도 그 부분에 대해 운동하지 않는다. 이것을 '동의'라 한다. 동의는 그 대상에 대해 사람들이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조세개혁, 환경 및 생태는 우리 사회의 중요한 동의지점이다. 교육과정의 중요성은 앞에서 제시했듯이 정책 변화의 기본 틀거리이다. 그 교육과정의 내용이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 가에 대한 동의 지점은 연대를 통해서 보다 명확하게 자리 잡힐 수 있을 것이다.

동의가 행동으로 옮겨지려면, 필요한 게 하나 있는 데 그것은 '전망'이다. 전망이 없다면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거릴지 몰라도 함께 행동하기는 주저한다. 전망은 현실성과 미래지향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앞에서 제시한 두 가지 방법은 시민운동진영과 교육운동진영에서 각각 자기 조직의 존립 근거로서 제시한 내용들이기에 현실적 전망을 문제삼기는 어려울 것 같다. 우리 사회의 첫 번째 과제로 제시되는 사회부정부패 척결(조세개혁)과 마음 속 한 켠에 늘 자리잡고 있는 내용(환경 및 생태)으로 구성되어있기에 미래지향적 전망 또한 밝다. 교육운동진영에 있어서도 교육재정 확보는 교육복지를 가능케하여 교육의 불평등을 막아내고 학급당 학생수를 줄임으로써 효율적 학습과 고용 창출을 가능케 한다. 조세 개혁을 통한 교육재정 확보, 환경과 생태를 고민하는 시민운동 진영과의 연대로 교육과정의 방향 전환은 그 전망이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끝으로 동의와 전망이 있어도 지속적인 '실천 자원'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중도하차하기 마련이다. 실천자원은 대중동원력 뿐만아니라 내용적인 면의 자원을 포함한다. 시민운동진영이 대중동원력은 부족하지만 이는 교육운동진영의 자원을 흡수함으로써 극복될 수 있고 교육운동진영은 환경 및 생태라는 내용적인 면의 자원을 시민운동진영으로부터 끊임없이 제공받아 충전될 수 있다.

시민운동진영과 교육운동진영과의 연대는 '대응'이라는 관점에서 표출되었다. 하지만 대응은 단발적인 것이기에 자본의 세계화에 따른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을 막아내는 데에는 일회성 사업으로 그치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지속적인 저항은 지금의 위기를 바라보는 시각부터 재조정할 것을 요구한다. 지금의 경제 위기를 수익성의 위기로 보고 경쟁력 강화를 위한 효율성에 초점이 맞춰진다면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 흡수될 수 있는 위험을 함께 내포한다. 따라서 오늘날 경제와 교육을 삶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위협받는 '총체적 삶의 위기'24)라는 측면으로 봐야 한다.

"시장화와 신자유주의적 요구는 정치를 억제하려고 한다. 그것은 정치를 선택과 소비라는 윤리에 즉 모든 정치를 경제에 환원시키려 든다."25) 상품 중심 사회에서 정치적 권리는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것이 아니라 흥정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은 삶을 가꾸는 교육이 아니라 어떤 상품을 선택하고, 어떠한 상품을 생산해내며, 스스로 어떠한 상품이 되느냐에 중점을 둔다. 이러한 교육은 삶을 더 이상 풍요롭게 하지 못한다. 거대한 상품 중심 사회에 맞선다는 것은 삶 자체가 변하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다. 이것은 하나의 '준비' 기획이라 할 수 있다. '준비'는 생태계 보호만을 의미하는 한정적 기획이 아니라 생태적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생태계에서는 어떤 부분만을 선택해서 살릴 수 있는 방법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26) 우리 사회가 생태적 삶으로부터 괴리되어 있기 때문에 생태계의 원리와 어긋나는 여러 정책들이 도출되는 것이다. 따라서 삶 자체가 생태적으로 변한다면 신자유주의 교육정책들은 거센 도전에 직면하고 붕괴되어갈 것이다.

Ⅴ. 결론

지금까지 신자유주의란 무엇이며 교육정책으로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몇 가지 논쟁을 중심으로 정리하고 간단한 평가를 통해 그 충돌의 지점을 분석하였다.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은 공공영역에 있는 학교를 사적영역(시장경제)으로 이동시킴으로써 상품논리에 따라서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재생산하도록 한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은 그들의 논리를 충실히 따른다고 할지라도 효율성이 결여되어 있다. 고전적인 문제제기라 할 수 있는 사회불평등을 심각하게 조장하며 무한 경쟁을 추구하는 상품사회에서 삶의 질은 살아남을 수 없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교육의 실종이라는 문제 의식이 널리 확산되어 있는 한국사회에서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은 대중적 설득력을 지닐 수 있었고 국민의 교육열은 적극적인 지지 자원이 될 수 있었다. 이는 교육운동 진영마저 흡수하면서 대응의 혼란을 빚어왔다. 교육운동진영의 적극적 대응이 어려운 또 하나의 딜레마는 보충수업, 자율학습의 부활과 같이 또다시 일고있는 보수주의로의 회귀를 우려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헤게모니 장악에 실패한 교육운동진영이 교육을 학교문제로 국한시킬 때 해결의 실마리는 찾을 수가 없다. 학교는 사회구조의 문제가 깊숙이 개입되어 있기에 사회변혁운동과 함께 고민되어야 한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에 맞서는 방식 또한 시민운동 진영과의 연대를 통한 '대응'이 적절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여준 연대의 틀은 단발적이고 형식적인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기에 자본의 논리에 맞서는 데에는 불충분하다. 따라서 삶의 체질 변화라는 근본적인 '준비'가 요구된다. 대응과 준비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 대응만으로는 지속적이고 근본적인 변화가 어렵고 준비만으로는 사람을 움직이지 못한다. 대응과 준비의 유기적인 관계형성이야말로 올바른 대안이며 변혁의 지향점이 될 것이다.

저항 담론의 구조가 허약한 것은 파시즘적 체제아래서 폭력·억압적 구조에 따라 저항의 지형 자체가 위축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체제에 저항하는 진영조차 반사적으로 철저한 언더화에 따른 비밀과 규율이 요구되어 짐으로써 국가권력과 닮아 있다. 이렇게 경직되어 있는 의사소통 구조로는 불만을 갖고 있으면서도 기어이 국가 명령을 수행해내고야 마는 교사집단을 비롯한 국민의 문화구조를 조직과 참여의 길로 묶어 세우기란 가능하지 않다. 자본의 논리에 잠식되어 있고 내부 의사소통구조는 여전히 취약한 현실 인식으로부터 진지한 방향 모색이 필요한 시점이다. 내부의 의사소통 구조를 깊이있게 파악하는 현실인식작업은 본 연구가 더 고민해야할 과제이며 보완되어야 할 내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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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7차교육과정의 기본 골격은 다음과 같다.
  ①  국민공통기본 교육과정의 편성과 선택중심 교육과정의 도입 : 초등-고교 1학년까지 국민공통기본교육기간, 고교 2, 3학년은 선택 중심 ② 수준별 교육과정의 도입 : 단계형, 심화보충형, 과목선택형 ③ 기타 : 재량 활동의 신설, 확대, 학습량 수준 조정, 정보 능력 배양, 교육과정 평가체제 마련, 외국어 교육의 강화 등
2) 천보선, 「이제는 교육과정 투쟁이다」, 진보교육연구소, 『진보교육』(2000. 5호), 16쪽.
3) 천세영, 「신자유주의와 교육의 공공성 문제」한국교육연구소, 부산교육연구소, 광주교육연구소 주최, 『신자유주의 정책과 교육』자료집, 1998. 참조.
4) 김천기, 「신자유주의와 교육의 공공성 문제 토론」한국교육연구소, 부산교육연구소, 광주교육연구소 주최, 『신자유주의 정책과 교육』자료집, 1998.에서 재인용.
5) 한국산업사회학회, 『사회학』, 한울아카데미, 1998. 198쪽.
6) 유네스코 21세기 세계교육위원회, 『21세기 교육을 위한 새로운 관점과 전망』, 오름, 1997, 206쪽.
7) 김천기, 앞의 글, 참조.
8) 천세영, 앞의 글. 참조.
9) 이인규, 「신자유주의 흐름과 교원의 자율성·책무성」,한국교육연구소, 부산교육연구소, 광주교육연구소 주최, 『신자유주의 정책과 교육』자료집, 1998. 참조
10) 이인규, 같은 글, 참조.
11) 제리 카츄어, 「신자유주의적 교육개혁과 교원」,한국교육연구소 주최, 『교육개혁과 교원 노조의 역할』1999.6.26.
12) 윤봉준, 「교육위기 타개는 공교육의 민영화로」제2회 자유주의 워크샾, 1997.7.9.
13) 심항일, 「부천 고교 입시 평준화에 대한 찬성 입장」, 경기도 부천시 고등학교 입시제도 개선 방안 토론회 자료집, 2000년 10월 19일
14) 김천기, 앞의 글. 참조
15) 천세영, 앞의 글. 참조.
16) 김기수, 『아직 과외를 그만두지 마라』, 민음사, 1997. 262쪽
17) 김동춘외, 『자유라는 화두』, 삼인, 2000. 104쪽.
18) 반다나 시바, 「시애틀의 역사적 의의」, 『녹색과 평론』(2000년 3-4월호) 129쪽.
19) 김성구 외, 『자본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문화과학사, 1998. 24쪽
20) 김성구 외, 같은 글. 참조
21) 전재걸, 「6월 항쟁 10년 교육개혁의 현주소」, 『동향과 전망』(1997 .여름호)
22) 심광현, 「진보적 교육개혁의 과제와 전망」, 『문화과학』, (1999. 가을호)
23) 김동춘, 「김대중 정부 100일의 평가: 사회정책부문」, 한겨레신문-참여연대 공동기획 대토론회 자료집, 1998년 6월 9일, 1-18쪽.
24) 강수돌, 『작은 풍요』이후, 1999. 참조.
25) 마이클 애플,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잊은 것: 문화자본과 공식적 지식」, 『문화과학』(1999. 가을호) 84쪽.
26) 홍성태, 「자본주의 지식사회와 신지식인론 비판」,『문화과학』(1999. 가을호) 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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