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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섭을 ‘해태’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2005년 9월 7일(수) 오후 3시 30분 대전지법 317호 법정

김영주 | 대전 교찾사 회원


가을 햇볕이 따가웠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아서 모처럼 유심히 하늘을 치어다보았다. 하지만 법원으로 가는 걸음은 무겁다. 누구라도 재판정에 서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니리라. 이번 일은 특이하게도 20개 사립재단이 스스로 형사 처벌을 청한 경우라서 더 더욱 그 결과가 궁금했다. 그 동안 사립재단과 단체교섭을 요구한 것이 8차례나 되었고 그 기간은 무려 3년이나 걸렸다. 처음에는 그들이 ‘왜 우리가 단체교섭을 해야 하느냐’며 귀찮다는 듯이 무시했다. 솔직히 그들 속내야 ‘어디 감히 교사 주제에 이사장에게 교섭을 하자고 덤비느냐?’ 자존심 상한다는 것이겠지. ‘내 재산 갖고 내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는데 누가 감히 토를 달아? 민주주의(?) 세상에서!’
한 시간 전부터 재단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상기된 얼굴로 서로 인사를 주고  받는 꼴이, 판결이 어찌 날지 점치는 듯 했다. 변호사가 나타나더니 출석여부를 확인한다. 빠진 사람들이 있자 “형사 재판에는 불출석하면 안 되는데…” 혼자 말처럼 중얼거린다. 서류를 들추는 표정이 상쾌하지 않다.
317호 법정은 이 사안 하나만을 위해 열렸다. 이사장을 모시고 나온 행정실장과 그 밖에 사람들로 좌석은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꽉 찼다. 법원 공무원이 나와, ‘판사가 확인하기 좋게 한다’면서 순서대로 피고인석에 앉게 했다. 한 이사장이 궁시렁댄다. ‘피고인석에 앉지 않겠다’는 거다. 법원공무원이 점잖게 타이르자 마지못해서 육중한 몸을 일으켰다. 피고인들 중에는  80이 넘으신 분들이 많았다. 혼자 화장실 출입하는 것도 도와드려야 하지 않을까, 걱정이 들 정도였다. 그런 분들이 스스로 ‘벌이 있으면 받겠다’고 재판정에 선 것이다. 그런 마음이 있다면 진작 아이들과 교사들을 위해서 정성을 쏟을 것이지.
女판사가 사건을 맡았고, 검사도 女검사였다. 전씨 성을 가진 남자 변호사는 서울에서 왔단다. 피고인들이 귀가 어두워서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자 女판사는 아주 쉽게 설명을 해준다.

“스스로 재판을 해달라고 요구하고서 안 나오면 궐석한 채로 재판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 또 한꺼번에 나오지 않으면 사실 조사를 여러 번 해야 해서 재판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그러니 꼭 재판 일정이 정해지면 나와야 한다… 알아들으셨지요?”

덧붙이는 말투가, 마치 어리고 앳된 손녀가 (귀, 눈이 어두워진) 할아버지를 챙겨주는 식이다.
피고인 20명 중 12명밖에 안 왔는데도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본적까지 모두 확인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그리고 변호사에게 피고인 번호 7번과 19번은 송달이 2번이나 되지 않았다며 주소 보존 요구를 하였다.
“질의에 사실이 아닌 경우에는 이야기를 하라”며 검사가 묻기 시작했다.
“사립학교를 경영하는 분들이시지요?”
“사립학교를 경영하는 이사장들이시지요?”
“단체교섭 요구를 여러 차례 받으셨지요?”
“여러 차례 응하지 않았다는데 맞습니까?”
그러자 한빛 이사장이 아니라면서,

“단체교섭을 요구하는 것이 법률에 위반이라고 생각했고, 사립재단들이 모두 설립이념과 건학이념이 달라서 의견을 조율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서 그러한 것이지 고의로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는 성실하게 준비하려고 했을 뿐이고, 해태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

검사가 다시 묻기를,

“단체 교섭 요구를 받아서 사립재단들의 건학이념을 조율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린 것이지 교섭을 해태한 것이 아니라는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냐?”
“그렇다.”

판사가 검사가 정리한 물음을 재차 반복 질문하고 변호사에게 변론을 하라고 하자 한빛 재단에서 말한 것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같은 말에 물음표만 붙인 격이었다. 그러면서 사실증거목록을 내었느냐고 검사에게 묻고 ‘없다’는 답이 나오자 낸 줄 알고 자신은 문답록을 준비해왔다면서 자랑하듯이 말했다.
판사가 빠진 사람이 많아서 재판을 다음에 하자면서 일정을 잡는다.
“9월28일이 어떠냐?”
“곤란하다.”
“재판 기일을 협조해야 한다. 피고인들이 재판을 받겠다고 한 것이니 기일을 지켜라 10월 5일 오후는 어떠냐?”
“그 날도 안 된다.”
“변호사님이 기일을 조정해서 잡아 주세요.”

그래서 변호사가 10월 12일은 어떠냐고 하니 사람들이 병원예약 때문에 어렵다고 하자 병원예약 일정을 조정할 수 없느냐고 하자 그 이사장은 한번 뒤로 미루면 한정 없이 뒤로 가서 안 된다고 못을 박는다. 결국은 10월 19일 오후 3시에 하기로 정한 뒤, 판사는 다시  한번 호소했다.

“여러분 그 날은 꼭 모두 나오셔야 합니다. 제가 이렇게 말한 것이 송달한 것과 같은 효과를 가지고 있는 겁니다.”

법정을 나서는 이사장들의 표정은 밝아 보이지 않았다. 변호사는 주소가 바뀐 사람과 연락이 닿지 않은 사람들을 점검하느라 분주해 보였다. 방청을 하느라 참여했던 지부 일꾼과 사립 일꾼들은 자기들이 재판해달라고 했으면서 참여조차 하지 않는 행태에 대해서 모두 한 마디씩 하였다. 가을인데도 돌아오는 길은 유난히 더 더웠다. ‘하지만, 이런 우여곡절을 겪어서라도 우리는 한 발짝 더 민주화의 길로 나아가겠지.’ 속으로 다짐했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동지들의 참여와 참관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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