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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고츠키 교육학의 ‘평가 패러다임’ 그리고 ‘교원평가  


천보선 / 진보교육연구소


평가 전성시대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교육분야는 극을 달린다. 그렇지 않아도 온갖 시험에 허덕이던 학생들을 일제고사 신공으로 때려잡더니 교원평가까지 실시하면서 교육현장은 평가로 시작해서 평가로 끝을 맺는 평가 도가니가 되었다.
평가가 본래 행복할리는 없다. 그러면 그 고통을 무릅쓰고 허구 헌 날 하는 평가 덕분에 교육살이는 나아지고 있는가? 과연 나아질 가능성은 있는가? 답은 물론 아니다 이다
이쯤에서 우리는 근본적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과연 평가란 무엇이고 무엇 때문에 하며 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점수 측정과 평가의 구분
논의에 앞서 먼저 분명한 개념 설정이 필요하다. 교육평가나 교원평가를 둘러싸고 서로 다른 의미를 쓰는 경우가 매우 흔하고 이 때문에서 의사소통이나 논쟁 과정에서 혼란을 야기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한국적 상황에서는 보통 평가란 ‘점수를 매기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본래의 평가, 특히 ‘교육평가’라 할 때 평가는 이보다 훨씬 넓은 의미이다.

“교육평가” : 학습자의 행동변화 및 학습과정에 관한 정보를 수집·이용하여 교육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을 주거나 의사결정을 하는 과정. 교육평가는 첫째, 인간의 현실성보다 가능성에 더 비중을 둔다. 가능성을 부인하고 현실성에 집착할 때 인간을 심판·판단·범주화시키는 인간규정의 의식이 대두되며, 가능성에 더 의미를 부여할 때 인간이해의 평가개념이 성립된다. 교육평가의 목적은 행동증거를 수집하여 얻은 결과에 의해 현재 상황을 진단하고, 다음 단계의 목표를 설정하기 위한 자료를 제공하는 데 있다. 둘째, 평가자료와 대상과 시간은 무한하다. 학생이 남겨놓은 낙서 한 줄, 그림 한 장, 일기장 한 토막, 대화 한 마디가 모두 인간이해의 자료가 될 수 있다. 이러한 흩어진 자료를 교육평가의 자료로 쓸 수 있기 위해서는 그것을 이해하는 안목이 필요하다. 교사는 교과전문가이기 이전에 인간이해자여야 한다. 셋째, 계속적이고 종합적인 과정이다. 종합성(comprehensiveness)이란 평가의 과정이 한 학생의 전체에 걸쳐 폭넓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넷째, 인간이 갖고 있는 여러 가지 특성의 변산(variability)을 다룬다. 이것은 그 특성을 정확하게 측정·규명·변별해주는 것보다는 그것이 왜 발생하고 무엇이 그것을 발생시키는가를 분석함으로써 그것을 통제해 변산을 극대화하거나 극소화하거나 또는 0으로 떨어뜨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목적이 있다.(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밑줄 편집자주)

교육평가는 인간 이해를 바탕으로 교육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행하는 지속적이고 종합적인 교육실천의 한 부분이다. 교육평가에는 다양한 방식이 있으며 그 중 점수 측정은 비교와 서열화를 위해 사용되는 하나의 방편일 뿐이다. 이 글에서는 혼동을 피하기 위해 ‘평가’라고 할 때 넓은 의미의 평가로 쓰기로 한다.(그러나 교원평가의 ‘평가’는 사회적으로 주로 양적 측정이라는 좁은 의미로 통용되고 있으며 따라서 ‘교원평가 반대’는 교육노동을 점수화/서열화하는 것에 대한 반대의 의미이다)
새로운 평가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기존 평가론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점수 측정’으로 거의 보편화되어 있는 우리의 교육평가는 매우 편협하고 잘못되어 있다. 측정에 의한 상대평가를 옹호했던 쏜다이크의 ‘규준지향평가’는 오래전부터 신랄한 비판을 받아 왔다. 그렇지만 잘못된 평가 방식을 비판하는 것을 넘어서서 올바른 대안적 평가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교육관에 입각한 논의가 필요하다. 이에 핀란드 교육의 바탕이 되고 있고 현대 교육학의 새로운 흐름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비고츠키 교육학은 기존의 잘못된 평가를 극복하는 새로운 평가관을 마련하는데 있어 큰 시사점을 줄 수 있다. ‘발달’ ‘협력’ ‘자율성’ 등을 중시하는 비고츠키 교육학은 교육평가에 대해 새로운 차원의 관점과 지평을 열어 줄 것으로 생각된다.
이 글에서는 비고츠키 교육학에서 제기하는 교육평가 패러다임의 방향과 특징을 살펴보고 나아가 지금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 교원평가 문제도 함께 다루어 보고자 한다.

1. 비고츠키 교육학의 평가 패러다임

비고츠키 교육학은 평가의 목적이 인간발달을 촉진하기 위한 가능성의 형성과 교수-학습 과정의 개선에 있음을 매우 분명히 한다. 이로부터 출발하는 비고츠키 교육학의 평가 패러다임은 ‘인간적 역능(발달기능) 중심의 질적 평가’ ‘잠재력과 가능성 중심의 미래 지향 평가’ ‘관찰과 상호작용 중심의 지속적, 역동적 평가’ 그리고 ‘소통 중심의 협력적 평가’를 지향하는 특징을 지닌다.



1) ‘중간고사 70점’과 ‘지도읽기 미숙’ : 발달 중심의 질적 평가

비고츠키 교육학에서 가장 근본적인 의제는 ‘발달’의 문제이다. 교육은 인간 발달을 지향하는 것이며 인간적 발달은 사회적 ‘협력’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본다. 발달은 지식의 양적 누적이 아니라 ‘고등정신기능’이라는 인간적 역능의 인지적, 정서적, 실천적 발달을 의미한다. 교육의 목적을 인간적 발달에 두면서 고등정신기능의 질적 변화 과정에 주목할 때 교육평가에 대한 관점은 완전히 새로워진다. 즉 지식의 양적 측정과 서열화가 아니라 고등정신기능의 발달 상황과 과정에 대한 진단에 초점을 두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기능의 구체적 발달 상황을 서술하는 질적 평가 방식으로 나타난다.

잠시 교육평가에서 양적 측정과 질적 평가를 비교해보자. 가령 어떤 학생이 중간고사에서 ‘지리 교과에서 70점을 받았다’라고 했을 때, 이것만으로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사실상 아무 것도 없다. 어떤 부분이 충분하고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그 학생이 열심히 공부를 한 것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다. 따라서 개선 방안도 내어 놓을 수 없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부모나 교사는 ‘다음엔 더 열심히 해서 80점을 받도록 해라’라는 식의 거의 하나마나한 조언에 그친다. 점수 측정에 비해 질적 평가는 훨씬 많은 설명력을 지니며, 교육적 개선에 연결된다. 예컨대 ‘한국의 지역 특색 전반을 이해하고 있으나 지도읽기에서 지형 파악 및 거리, 축적 계산이 능숙하지 못하다’라는 내용은 구체적인 진단과 개선 방향으로 연결될 수 있다.


기존의 논의에서도 양적 측정 방식이 학습 상황 개선에 매우 제한적이고 많은 부작용을 일으키며 따라서 질적 평가가 더 적합하다는 사실은 다양한 측면에서 지적되어 왔다. 그러나 입시교육의 현실에 짓눌리면서 보다 적극적인 비판을 전개하고 체계적인 질적 평가 방안을 제출하는데 한계를 보여 왔다. 이에 대해 비고츠키 교육학은 양적 측정/질적 평가 문제에 대해 보다 명료한 입장을 보이며 질적 평가와 관련 발달 기능(고등정신기능)이라는 분명한 방향성과 기준을 제시해 줌으로써 대안적 방안의 전망을 높여준다.

첫째, 점수 측정을 통한 ‘서열 매기기’는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교육적으로 해악적이라는 관점을 취한다. 발달의 관점에서 본다면 ‘서열을 매기는 일’은 매우 우스운 일이다. 발달 단계가 다를 경우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고 발달 단계가 같다면 불필요한 일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협력의 차원에서 본다면 점수 경쟁은 적대적이기까지 하다. 비고츠키 교육학에서는 협력 그 자체가 가장 효과적인 학습 과정인데 점수 측정을 통해 서열을 매기고 비교하는 것은 협력 자체를 파괴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핀란드 교육관계자들이 누누이 강조하는 “경쟁은 교육과 반대되는 것이다”라는 말의 의미는 바로 이것이다.

둘째, 질적 평가의 방향과 기준을 발달의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제시해 줄 수 있다. 비고츠키 교육학은 인간발달 과정을 4개의 발달노선(자연적, 사회문화적, 개체발생적, 미소발생적)의 연관된 결합과정으로, 발달단계에 따른 고등정신기능의 양적 성숙과 질적 비약의 과정으로, 정신기능을 인지적․정서적․실천적 측면의 결합으로, 소통과 협력을 통한 상호작용과정으로 보면서 총체적이고 전면적인 발달을 추구한다. 이 같은 논의에 기반하여 발달단계에 걸맞는 정신기능을 설정하고, 그 기능의 출현․성숙․내면화의 국면과 인지적․정서적․실천적 측면을 바라보면서 그러한 기능들이 협력을 통한 상호작용과정에서 어떻게 실현되어 나가는가를 관찰하고 평가할 수 있다. 발달 기능 중심의 진단과 개선 방향의 제시라는 질적 평가가 체계화될 수 있는 것이다.  

2) 근접발달영역과 가능성을 중시하는 미래 지향적 평가

비고츠키 교육학의 매우 중요하고 독창적인 개념 중의 하나가 ‘근접발달영역’이다. 근접발달영역은 교사나 동료와의 관계 속에서 출현, 발전할 수 있는 잠재적 발달 가능성을 의미한다. 비고츠키는 살아생전 당시 유행하기 시작한 IQ 검사를 경멸하였다고 전해진다. 인간의 발달 가능성을 현재의 인지능력만으로 판단하고 고정화해선 안 된다는 것이었으며 교육은 근접발달영역의 창출을 통해 미래의 꽃을 피워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근접발달영역이라는 개념을 통해 분명히 하고자 했던 것은 교육이 현재 상황보다는 앞으로의 발달 가능성과 잠재력을 중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현재 수준 측정’에만 골몰하는 기존의 평가관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 준다. 미래의 발전 가능성에 대한 진단이야말로 평가의 주요 영역이 되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근접발달영역이라는 개념이 독창적이기는 하지만 실천적으로는 매우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교육실천은 기본적으로 발전 가능성에 입각해서 행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교육은 이미 알거나 잘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아직 모르거나 못하는 것을 상황과 단계를 고려하여 익힐 수 있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이어야 한다. 모든 형태의 교육은 가능성 속에서 행해지는 것이다. 교육의 본질에서 본다면 가능성과 잠재력에 대한 진단이야말로 교육실천과 직결되는 평가 영역인 것이다.

“근접발달영역과 관련된 변화를 파악하는 것, 평가하는 것은 교수-학습의 핵심 측면이다. 학습자의 고등정신기능이 어떻게 미래에 개화될 것인지를 살피는 것과 동시에 현재의 고등정신기능으로 교과의 지식을 어떻게 인식하는 지, 앞으로 어떻게 인식할 것인지를 진단해야 한다. 이는 지속적인 교수-학습 과정에 반영되어야 한다.”(배희철, 2010.)

80-90년대 이후 비고츠키 교육학이 세계 교육학계에 영향을 미치면서 잠재력 진단의 문제의식은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다. ZPD(근접발달영역) 진단기법도 개발되어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근접발달영역도 IQ 진단처럼 수치화되는 어떤 개인의 고정된 능력으로 오해되고 있기도 하다. 근접발달영역은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창출하는 문제이며 발달 과정에 대한 지속적 관찰 속에서 파악과 진단이 가능하다.


3) 개별학습자 만이 아니라 집단적 관계와 과정 평가

비고츠키 교육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평가의 주요 대상은 개별학습자의 발달 상황만이 아니라 동료 간에 형성된 관계와 상호작용 과정 그리고 교사-학생집단 과의 상호작용 과정도 중요한 평가 대상이 된다. 왜냐하면 가장 주요하고 효과적인 학습과 실천이 집단의 협력의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어떻게 하는 가는 개별 학습자에 대한 평가 지점이 될 수 있지만(핀란드교육에서는 각 교과에서 타인과의 상호작용 자체가 주요한 평가 지표가 되고 있다) 집단 전체의 관계형성과 협력과정, 교사와의 상호작용 과정을 평가하는 것은 교수-학습 과정을 개선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며 필수적이다.

4) 관찰과 대면 중심의 지속적(역동적) 평가

발달 상황과 가능성에 대한 진단의 주요한 방법론은 ‘지속적 관찰’과 ‘상호작용을 통한 역동적 파악’이 된다. 발달 과정과 가능성에 대한 파악을 한 두 번의 시험으로 파악할 수는 없다. 학습과정과 과제 수행과 협력과정에 대한 지속적 관찰과 구체적 대면(이야기하기, 질문하기 등)이 필요하다. 물론 관찰과 대면 외에도 필요한 경우 쪽지시험, 레포트 등 다양한 방법이 결합될 수 있다.
또한 발달 상황은 한 지점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을 통해 역동적으로 변화되기 때문에 관찰과 평가 지점 역시 역동적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상호작용 과정에서의 역동적 평가는 중간에 한 번 쯤 쪽지시험을 보는 기존의 ‘형성 평가’ 개념과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 지속적인 관찰, 대면, 대화와 결합하면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이다. 그를 통해 발달 상황과 가능성에 대한 구체적이고 종합적인 질적 평가가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다.

5) 소통을 통한 협력적 평가

평가의 방법론과 관련하여 관찰, 대면 외에 제기되는 것이 협력적 평가이다. 교사 일방만이 아니라 설정된 목표, 진행 과정 등에 입각하여 학습자와 소통하면서 함께 평가하는 것이다. 협력적 평가는 진단 내용에 대한 구체성과 동의의 수준을 높일 수 있으며 앞으로 수행해야 할 과제와 방향에 대한 주체적인 목표 의식을 훨씬 강화할 수 있다. 일부 북구 교육에서 개별학습자별로 교육과정을 설정하고 평가하는 과정은 ‘협력적 평가’ 방식을 수반하는 사례로 볼 수 있다.  
협력적 평가의 대상에는 개별학습자의 발달 상황만이 아니라 ‘교수-학습 프로그램’도 포함되며 어떤 주제학습이나 협력학습 등에 대한 어떤 점이 좋은지,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하는 소통을 통해 개선,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 특히, 교수-학습 과정과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교사 동료 간의 협력적 진단(‘장학’이라고 할 수 있음)이 매우 중요하며 이를 통해 지속적 개선과 변화, 발전이 가능해 진다.  


2. 비고츠키 교육학 평가관의 의의와 과제

1) 새로운 교육평가 패러다임의 의의

학습자에 대한 구체적이고 분명한 진단과 교육적 처방
발달 기능이라는 분명한 지표를 기준으로 관찰과 대면을 통해 지속적으로 진단해 나간다면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한 교육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음은 자명하다. 더욱이 협력적 과정을 통해 동의의 수준을 높인다면 이후의 학습실천을 개선하는 교육적 효과 역시 더욱 분명할 것이다.

교육실천의 전문성 강화
‘발달단계에 입각한 고등정신기능’이라는 분명한 지표를 가지고 지속적인 관찰, 대면, 소통을 해나간다면 교육노동의 전문성 역시 크게 함양될 수 있다. 지금처럼 막연한 관찰을 통해 ‘00는 심성이 착하며 머리가 좋다’식의 이해가 아닌 ‘00는 현재 소그룹 상호작용이 발달할 단계인데 1대1 대화는 잘하지만 여러 명에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데는 아직 미숙하다’는 관찰 결과는 훨씬 구체적이며 학습자와 학부모에게도 실질적 도움이 된다.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관찰 등을 진단할 경우 학습자의 발달 상황에 대한 이해는 훨씬 구체화, 체계화, 전문화되며 지속적인 실천은 숙련도를 높일 수 있다.

교수-학습 과정의 지속적 변화, 발전 추구
기존의 교육평가는 개별학습자 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교수-학습의 상호작용 과정에 대한 논의와 따로 분리되어 있었다. 그러나 비고츠키 교육학의 평가 패러다임에서는 협력 학습 과정에 대한 개별 학습자의 상호작용은 물론이고 집단적 과정 자체가 진단, 평가의 대상이 됨으로써 교수-학습 과정에 대한 지속적인 변화, 발전의 추구가 가능하다.

교육적 본질의 추구
‘인간발달의 지향’ ‘가능성, 잠재력의 중시’ ‘협력적 과정’ 등 비고츠키 교육학의 핵심적 평가 지표들은 매우 본질적인 교육적 가치, 지향과 일치한다. 실제로 비고츠키 교육학의 핵심 개념들은 새롭지만 상식적이며 교육적 본질에 충실하다.

교수-학습 과정과 평가의 통일
관찰, 대면, 소통 등 비고츠키 교육학의 주요 평가 방법은 교수-학습 과정과 일상적으로 결합되는 것이다. 그것은 발달 과정이 상호작용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기 때문이다. 진단, 평가가 일상적으로 교수-학습과정과 결합된다고 해서 시도 때도 없이 시험을 보거나 직접적 평가를 남발하는 것은 아니다. 일상적 관찰과 소통을 통해 개별학습자와 학습집단의 상황을 진단하면서 능동적으로 교수-학습과정에 반영하는데 그 의미가 있다. 비고츠키 교육학은 평가 지상주의와는 명확히 대립되며 평가는 교육적 실천과 교수-학습을 개선하는 과정의 일부일 뿐이다.

협력하는 인간, 발전지향의 인간
교육적 인간관의 변화이다. 비고츠키 교육학은 ‘협력하는 인간’, ‘발전지향의 인간’이라는 인간관을 내포한다. 인간은 강제가 아니라 스스로의 발전을 지향하는 본질을 지니며 자신과 집단에 닥친 위기와 모순을 협력을 통해 해결하려는 본질을 지닌다는 것이다. 해결해야 할 새로운 과제의 등장은 아동, 학생들에겐 새로운 위기이자 모순이며 인간은 그 같은 상황을 극복하고자 하는 본질적 지향을 지닌다. 그리고 새로이 등장한 과제에 대해 아동과 학생들은 같이 고민하고 노력하면서 해결해 나간다. 협력은 새로운 위기와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며 발전의 경로이다. 그것이 비고츠키 교육학에 기반하는 핀란드의 ‘시험 없는 협력 교육’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교육적 성과를 낳게 되는 비밀의 열쇠이다.


3. 현대 교육평가 논의의 흐름과 새로운 평가 패러다임의 과제

1) 현대 교육평가 논의의 흐름

이론적으로는 그리고 일부 선진교육에서는 교육평가 논의가 비고츠키 교육학의 평가관이 제기하는 것과 유사한 맥락으로 변화, 발전되고 있다. 그것은 비고츠키 교육학이 알게 모르게 세계 교육학계에 영향을 미친 것도 있고, 또한 ‘인간적 발달’이라는 기본 지향에 교육적 논의가 수렴되는 힘도 있기 때문이다. 한순미는 오늘날 교육평가의 이론과 실제에서 일고 있는 변화의 흐름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움직임을 몇 가지 지적해보면, 객관식 선택형 검사를 통한 평가로부터 논술형 검사를 통한 평가로, 규준 지향 평가에서 준거 지향 평가로, 양적 평가에서 질적 평가로, 지필 검사 형태의 심리측정적 평가로부터 수행평가, 포트폴리오 평가, 참평가로의 변화.......새로운 패러다임의 특징을 살펴보면, 학습결과에 대한 평가(성취 검사)보다는 학습 과정에 대한 평가(학습평가)를 강조하며, 학습자를 분류, 선발하는 목적으로 평가를 이용하기 보다는 교수-학습을 개선시키려는 목적으로 평가를 이용할 것을 제기한다.”(한순미, 비고츠키와 교육, 교육과학사, 1999)

그리고 나아가 ‘정적 평가’에서 비고츠키의 근접발달영역 개념과 상호작용 개념에 영향을 받은 역동적 평가로 변화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교사-학습자의 상호작용 중시하는 역동적 평가는 “아동의 문제해결과 사고과정을 탐구하면서 아동의 문제해결 전략이 변화, 향상되는 방식을 조사하기 때문에 교수에 대해 유용한 정보 제공”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같은 논의를 통해 파악할 수 있는 것은 교육평가 이론에서는 상당한 변화들이 일고 있으며 ‘질적 평가로의 변화’, ‘성취검사보다는 학습평가로의 변화’ ‘분류, 선발보다는 교수-학습의 개선 목적’ ‘상호작용 중시의 역동적 평가’ 등 비고츠키 교육학의 평가 패러다임에 상당히 접근하는 방향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아직 한국적 현실과는 거리가 멀지만 이 같은 논의들과 비고츠키 교육학은 핀란드 등 일부 교육선진국의 실제 교육평가와 최근에는 PISA 의 핵심 교육지표 설정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2) 핀란드 살펴보기

핀란드 교육에서는 기본적으로 학생평가에서 절대평가와 질적 평가를 중시하며 교수-학습 과정을 개선하기 위한 ‘장학’이 활성화되어 있다. 핀란드교육 전반의 교육평가를 살펴보기는 무리이고 약간의 예시만 살펴본다. 다음은 핀란드 초등교육 2학년 <국어>의 학업 성취 기준이다.

- 상호작용 기능 발달
◇ 말로 자신을 표현하는 데 익숙하며, 청자가 설명을 따라갈 수 있도록 자신의 관찰과 경험을 소그룹에게 이야기하는 방법을 안다.
◇ 일상적인 말하기 상황에서 적절히 행동할 수 있다. 교사와 다른 학생의 말고 토론을 이해하고, 말하거나 토의할 때 상호작용하려고 노력하며 생각과 의문을 가지고 들은 것에 반응할 수 있다.
◇ 표현 연습에 집중하며 참가한다.

- 읽기와 쓰기 능력 개발
◇ 초기 읽기 단계에서 기본 기술이 강화된 단계로 발전한다. 연령 그룹에 맞는 텍스트를 읽을 수 있을 만큼 독서가 풍부해진다.
◇ 읽는 동안 자신이 읽는 내용이 이해되는지 관찰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읽고 있는 것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 글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고 일상생활에서 글쓰기 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 글쓰기에 자신의 상상력을 활용할 수 있다.
◇ 손으로 쓸 때 글자를 연결시킬 수 있으며, 컴퓨터에서 원문을 만들 수 있다.
◇ 단순하고 익숙한 어휘를 정확하게 쓸 수 있으며, 문장 부호를 이용하기 시작하고, 문장을 대문자로 시작할 수 있다.

- 문학과 언어의 관계의 구체화
◇ 적절하고 흥미로운 읽을거리를 찾을 수 있으며, 즐거움과 정보 양쪽 모두를 위해 읽기 기능을 활용할 수 있다.
◇ 자신의 읽기 능력에 알맞은 (최소한 몇 권의) 어린이용 책을 읽을 수 있다. 미디어 활용 능력은 연령층에 맞는 프로그램을 따라갈 만큼 충분해진다.
◇ 언어에 관한 연령 그룹의 특성에 맞는 관찰을 할 수 있다. 단어의 음성학적 구조와 음절 구조를 분석하는데 흥미를 가지며, 알파벳순으로 글자를 나열하고 알파벳순으로 활용할 수 있다.
◇ 언어와 텍스트에 대해 이야기할 때 배운 개념을 활용하는 데 익숙해진다.


여기서 알 수 있듯 핀란드 평가 기준의 특징은 ‘상호작용’ ‘읽기와 쓰기’ ‘문학과 언어의 관계’라는 질적 발달 기준을 설정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부 영역 역시 ‘말로 자신을 표현하는 데 익숙하며, 청자가 설명을 따라갈 수 있도록 자신의 관찰과 경험을 소그룹에게 이야기하는 방법을 안다.’ 등과 같이 활동 기능 중심으로 설정한다.
이 같은 기능들을 수행하는 정도를 진단, 평가하기 위해선 활동 중심의 교수-학습 과정이 진행되어야 하고, 지속적이고 구체적인 관찰이 필요하다. 실제로 핀란드 교육에서는 활동과 협력 중심의 교수-학습과정이 이루어지고 지속적 관찰을 통한 평가가 진행된다. 쪽지시험이나 과제 수행 등에 대한 평가도 함께 진행되면서 종합적으로 이루어지지만 지속적인 관찰이 가장 중요하다. ‘발달 기능’을 주요 기준으로 ‘관찰’을 중심으로 하는 질적 평가의 장점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며 핀란드 교사들이 지닌 전문성의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가 바로 ‘관찰을 통한 정확한 진단, 평가’의 전문성이다.

핀란드교육을 탐방하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는 현상 중의 하나가 수업장면에서 보여주는 핀란드 학생들의 놀라운 집중력이다. 자유스러운 분위기일 거라는 많은 사람들의 예상과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핀란드 교육은 자율성을 강조한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수업 장면에 집중한다. 많은 교육관계자들이 부러워하는 이러한 상황이 가능한 것은 비고츠키 교육학에서 강조하는 ‘자발적 주의 집중’ 기능과 관련이 깊다.
‘자발적 주의 집중’은 한 개인을 둘러싼 다양한 현상과 자극 속에서 주체적으로 자신의 의식과 감각을 조절할 수 있는 인간적 고등정신기능의 한 형태이다. 핀란드에서는 초등학교에서부터 이러한 ‘자발적 주의 집중’을 키우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인다. 많은 노력에도 집중력 형성이 잘 이루어지지 않을 때는 특수 교사가 결합되어 최대한 문제를 해결한다. 결국 학년이 올라갈수록 ‘자발적 주의 집중’이라는 고등정신기능이 형성, 내면화되어 수업과정에 대한 집중력이 올라가며 교수-학습의 효과 역시 커지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은 억압과 통제로 집중을 강요하는 한국의 교육현실과는 크게 대비된다. ‘자발적 주의 집중’의 문제는 발달 기능을 중심으로 교수-학습과정과 지속적인 관찰, 상호작용을 통한 진단과 개선 활동이 결합하는 비고츠키 교육학의 특징과 타당성을 잘 보여주는 지점의 하나이기도 하다.  

3) PISA

PISA의 논의에서도 교육 목표 및 평가 기준의 변화가 일고 있다. 최근 피사에서는 현대 교육이 핵심역량을 키우는 것을 지향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핵심역량이란 역량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묶음으로 지칭한 것으로 인간이 전면적으로 발달하는데 핵심이 되는 기능이다. PISA는 주요 핵심 역량으로 ‘도구(언어 등 상징적 도구 포함) 활용 능력’, ‘이질 집단과의 협력’, ‘자율적 실천’ 등을 제시하면서 핵심역량의의 심장을 성찰(반성)로 설정하고 있다. PISA가 제시한 핵심 역량의 구조는 표와 같다.



‘문화적 도구’, ‘이질집단에서의 상호교류와 협력’, ‘자율성’ 등 피사의 핵심역량에 대한 개념과 논의는 내용적으로 비고츠키 교육학의 ‘발달’과 ‘협력’ 지향 관점과 맥락이 닿는다. 핵심역량으로 제시된 비판적 ‘성찰’ 개념 역시 마찬가지이다. “비고츠키는 ‘사춘기 성격의 구조와 역동성’(Vygotsky,1998;167-185)에서 자아 형성에 미치는 반성적(성찰적) 사고 능력을 부각시켰다. 의지, 창조적 사고 능력, 논리적 기억력, 자발적 주의집중, 자기 통제 능력, 인격, 세계관 등은 비고츠키가 고등정신기능 발달과 연결하여 설명하고 있는 개념들이다. 비고츠키가 이미 80 여 년 전에 언급한 내용들이 이제 교육 선진국에서 채택되고 있다.”(배희철.2009)

새로운 교육 목표와 기준에 대한 피사의 논의는 핀란드 만이 아니라 세계적 차원에서 비고츠키 교육학의 영향이 빠르게 확대, 적용되기 시작했음을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머지않아 한국에서의 교육논의에도 직, 간접적인 영향들을 끼쳐 나갈 것이다.


3. 비고츠키 교육학과 교원평가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교원평가에 대해서는 문제점과 부작용에 대해 이미 많은 문제제기들이 제기되어 왔다. 비고츠키 교육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현실적으로 발생하는 문제점을 넘어 ‘협력적 교수-학습’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교육관계를 파괴하는 반교육적인 제도로 규정된다. 그리고 교육상황 개선을 위한 ‘교육평가’라는 차원에서 분리된 관점의 교원평가가 아닌 교수-학습 상호작용 과정에 대한 ‘교사-학생 간 소통’과 ‘교사 간의 장학’이 활성화되어야 함을 제기한다.

1) 비고츠키 교육학의 핵심 ‘협력’의 파괴

점수로 비교하는 학생평가도 고쳐야 하는데 교사까지 점수 평가?
점수 측정으로 전일화된 학생평가도 발달 중심의 질적 평가로 바꾸어 가야 하는데 교사까지 점수로 평가하는 것은 극단적 역주행이라 할 수 있다. 교육노동의 점수화는 측정할 수 없는 것을 점수로 측정하려는 곤란함을 넘어 온갖 비교육적 부작용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협력적 교육본질의 파괴
교원평가에 담겨 있는 잘못된 근본 전제는 교사-학생-학부모 그리고 교사 간의 관계를 협력의 관계가 아니라 경쟁과 감시, 통제의 대립 관계로 설정하는 것이다. 다면적 교원평가는 다면 갈등을 의미한다. 이미 점수 경쟁으로 학생 간 관계는 협력이 아닌 경쟁의 관계로 구조화되어 있다. 그런데 교원평가는 학생 간 협력관계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하는 상황을 넘어 교육 관계 전체를 경쟁과 갈등의 도가니로 몰아넣게 된다.
비고츠키 교육학에서 ‘협력’은 그냥 좋은 교육적 가치와 지향이 아니다. 가장 본질적인 교육과정으로서 필수적일 뿐 아니라 교육적 성과를 가장 효과적으로 형성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교육을 통해 발달해야 할 핵심적 고등정신기능이다. 핀란드를 넘어 PISA에서도 현대 교육이 추구해야 할 핵심역량으로 협력적 기능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교원평가가 마치 현대교육의 새로운 추세인 양 선전하고 있지만 사실은 거꾸로 시대의 추세를 거스르면서 감행되는 대표적 제도이다. 비고츠키 교육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냥 잘못된 제도의 차원을 넘어 교육의 본질 차원에서 마땅히 폐기시켜야 할 제도이다. 나아가 교원평가 문제를 넘어 기존의 학생평가의 개선을 포함한 교육평가 전반에 대한 새로운 대안적 논의가 필요하다.  

2) 바보야, 문제는 ‘상호작용 과정’이야!!

교원평가 실시를 정당화하는 이유로 제시되는 것이 ‘교육력 제고’ 즉 교수-학습 상황의 개선이다. 만약 교수-학습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면 교원평가는 초점을 엉뚱한 데 두는 것이다. 평가론의 측면에서 본다면 교원평가는 ‘측정할 수 없는 것을 측정’한다는 잘못 외에도 대상을 잘못 설정하는 오류가 있다.
교원평가에 담겨있는 잘못된 중요한 전제 중의 하나는 교사와 교육실천을 ‘교사-학생’ 관계, '교수-학습‘ 과정에서 따로 떼어 내어 분리시킨다는 것이다. 따로 떼어 낸 교사의 ’교육실천‘을 별도로 평가할 수 있다는 관점은 교육실천을 ’공급‘으로 학생의 반응을 ’소비‘로 보는 시장주의적 관점과 연결되어 있다. 공급의 질에 따라 소비의 질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탑재된 ‘수업 동영상’을 보고 교원을 평가할 수 있다는 발상은 교육실천을 방송강의나 인터넷 강의처럼 상호작용 없는 일방적 행위와 동일시하는 대표적 사례이다.
그러나 이 같은 분리된 사고는 매우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교사의 교육실천은 학습자와의 상호작용이 결합되는 구체적인 ‘교수-학습’ 과정과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적인 교육적 성과는 교수-학습 과정에서의 교사와 학생 그리고 학생 상호 간의 상호작용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상호작용 과정은 매우 다양하며 역동적이다. 따라서 교사의 동일한 행위도 학생의 상황 및 관계 설정에 따라 다르며 같은 학생과도 상황에 따라 다른 영향을 미친다.

비고츠키 교육학에서는 ‘교수-학습’ 과정을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과정으로 본다. ‘교수-학습’으로 번역되는 ‘obuchenie'라는 러시아어는 하나의 단어로 되어 있다. 즉 교수-학습은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상호작용 과정이라는 것이다. 교수-학습 과정을 하나의 통일된 과정으로 보는 관점은 분리된 관점에 비해 교육적으로 타당할 뿐 아니라 또한 실제적이다. 학습자의 상황에 따라서 적합한 방안을 찾으며 상호작용 속에서 유연하고 역동적으로 대응해 나간다. 그러한 과정에서만 효과적이고 실제적인 교육적 성과가 만들어 질 수 있다. 따라서 교육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면 교사를 따로 떼어 내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초점은 교수-학습이 전개되는 ’상호작용 과정‘에 두어져야 한다. ‘교사-학생’ 그리고 ‘학생 간’의 ‘상호작용’ 과정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살펴보고 지속적인 변화와 개선을 추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속적인 ‘교사-학생 간의 소통’을 통한 협력적 진단과 ‘교사 간의 장학’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교사-학생 간의 소통’은 때로는 별도의 진단 프로그램이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교수-학습 과정 자체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역동적 평가의 의미가 바로 이것이며 그 방식이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소통적, 협력적이어야 하는 것이다. ‘교사 간의 장학’은 교수-학습 과정 및 프로그램에 대한 집단적, 전문적 논의를 의미하며 교육 과정의 체계적 개선으로 연결된다.

평가 대상의 오류는 ‘쓸모없는 일’을 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협력적 관계를 구조적으로 파괴하는 것 외에도 교육실천 자체의 왜곡과 변형을 가져 온다. 주어진 평가기준에 따른 교육실천의 획일화를 가져 오기 쉬우며 평가의 압박이 교육적 목적을 대신하게 될 것이다. 그 동안 학생평가의 획일성이 누누이 비판받아 왔는데 이제 과연 모든 교사들이 인터넷 스타 강사들처럼 ‘예능 기법’을 숙달하여 시행하면 한국교육의 교육력이 과연 제고될 수 있을까? 답은 물론 ‘결코 아니오’이다. 일방적 교수는 아무리 좋은 기법으로 무장하고 있더라도 좋은 과정을 이끌 수 없다. 오히려 상호작용 없는 일방적 교수야말로 가장 나쁜 교육행위이다.


4. 나가며...

교육적 상식과 기본으로 돌아가야
비고츠키 교육학은 결코 특이하거나 심오하지 않다. ‘인간적 발달’, ‘협력’, ‘자율성’ 등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교육적 가치에서 출발하고 돌아온다. 다만 정당한 교육적 가치와 방법을 훼손하는 잘못된 논의들에 대해 분명하고도 체계적인 논의를 전개할 뿐이다. 그렇지만 지금의 교육현실이 너무도 왜곡되어 있기 때문에 비고츠키 교육학은 매우 새롭기도 하다. 최근 비고츠키 교육학이 세계적 차원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현실의 변화는 말의 변화에서부터
그 동안 ‘공동체 교육’이든 비고츠키의 새로운 교육학이든 이야기할 때 대부분의 반응은 ‘말은 좋지만 현실은 다르다’는 식이다. 맞다. 한국적 현실은 너무 다르다. 그렇지만 ‘현실은 다르다’가 아니라 ‘말은 맞다’에 방점이 두어질 때 변화는 시작될 수 있다.
교육 문제와 관련된 논의 과정에서 가장 당혹스럽고 문제가 되는 것은 현실에 대한 무력감이 아니라 ‘판단의 이중성’이다. 예를 들어 평가론과 관련하여 점수 측정/상대 평가 위주의 평가를 옹호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다른 차원의 교육 문제로 조금이라도 이동하는 순간 순식간에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이 학업성취도라는 점수/상대평가가 되어 버리곤 한다. 일제고사를 통해 전국 차원의 점수와 서열을 알아야 한다거나, 점수로 교원을 평가해야 한다거나 혹은 일제고사는 안되지만 교원평가는 옳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이런 이중성은 ‘학벌’, ‘학생인권’ 등의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이 같은 판단의 이중성에 대해 사람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교육 현실을 총체적으로 바라보지 못할 때 불가피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교사, 교육학자, 교육관료 등 교육관계자나 지식인층에서 나타나는 이중성은 실천적으로 매우 심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당장의 현실은 어쩔 수 없겠지만 이중성만 벗어나도 ‘대안적 담론’ 만큼은 크게 앙양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럴 때 변화가능성도 비로소 현실화될 수 있다.



아닌 건 아닌 거다. 그리고 비고츠키 교육학의 실천
일제고사, 교원평가 등 미친 경쟁교육이 극을 달리고 있다. 비고츠키 교육학에서 추구하는 상식적이면서도 새로운 교육시스템을 당장에 실현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아닌 것은 아니다’라는 목소리를 내야 변화의 싹은 마련된다. 그 목소리가 사람들의 판단과 실천을 일깨우는 일종의 근접발달영역 창출인 것이다.
그리고 비고츠키 교육학의 이러저러한 작은 실천들을 어려운 조건에서나마 실험하고 실천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작은 학교나 입시에 직접적이지 않은 초등교육에서는 일정하게 가능할 수 있다. 예컨대 단계에 맞는 발달 기능을 중심으로 지속적인 ‘관찰’만 하더라도 지금보다 아동, 학생을 훨씬 더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으며, 학부모와도 훨씬 의미있는 내용으로 상담할 수 있을 것이다. 학습자를 체계적으로 더 잘 이해하는 순간 상호작용도 구체적으로 진행되며, 교수-학습 과정도 제대로 개선해 나갈 수 있다. 비고츠키 교육학이 요청하는 교육실천의 전문성은 대단하고 복잡한 전문 지식의 습득이 아니라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지속적인 관찰을 통한 ‘학습자에 대한 교육적 이해’라는 전문성이다. ‘관찰을 통한 이해’ 등 비고츠키 교육학의 작은 실천을 전개하고 조직할 수 있다면 교육개혁의 새로운 바람과 동력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의 ‘입시 교육학’과 비고츠키의 ‘발달 교육학’은 양적 차이가 아니라 질적 차이를 갖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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