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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교육 노동운동의 과제와 전망

공공성실현의 새로운 교육구조를 범사회적 운동으로 수립해 나가야

천보선 전교조 정책연구국장



교육문제 시스템개조 차원에서 접근해야

 

우리 사회만큼 교육문제가 심각한 나라도, 관심이 많은 나라도 없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교육문제에 대한 견해를 갖고 '교육논의'를 벌여나간다. 개인을 넘어 교육단체들이 나서고 시민단체도 논의에 한 몫 한다. 한마디로 '교육담론'의 과잉이라 할 만하다. 그렇지만 매우 오래된 이 논의의 중대한 결함은 교육문제를 하나의 전체적 시스템으로 바라보지 못한 채 주로 불거지는 사안들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다는 데 있다. '사교육비', '입시경쟁', '획일화된 교육방식', '대학서열화', '관료적교육행정' 등등의 주요 문제는 교육전체의 시스템차원의 연관하에서 빚어지는 것이며 각각의 독립된 사안으로 접근할 때 결코 '획기적 개선 방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교육부조차(현 시스템하에서) '사교육비를 절감할 수 있는 획기적 개선방안은 없다!'고 실토하기에 이르렀다. 근원이 되는 대학서열구조의 폐기 없이는 입시위주교육탈피도 사교육비절감도 사실 공염불에 불과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교육운동은 주로 사안 중심의 대응투쟁과 대안제시로 대응해왔다. 이 같은 실천은 매우 한계적이다. 0교시, 보충폐지를 외쳐도 입시위주교육이 있는 한 곧 다시 살아난다. 어떤 때는 각기 제기되는 요구 내용이 서로 아귀도 맞지 않는다. 무엇보다 매시기 각각의 실천적 성과를 모아나갈 수 있는 목표와 방향이 불분명했다. 신자유주의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존의 교육체제도 아닌 새로운 교육의 상을 의미있게 제시해내지 못했다. 여기에는 공교육시스템의 한 축을 이루는 대학교육개혁 문제를 논외로 치부해 온 탓이 크다. 잘 모르기도 했지만 문제의 핵심인 대학서열화를 깨는 것이 너무 어렵다고 보면서 아예 말하지 않는 '이론적 비겁함'도 한 몫 했다.

불행히도 교육운동마저 사안 중심 대응에 머물던 상황에서 오직 '신자유주의'만이 교육문제를 '시장원리'라는 일관된 전체적 원리의 문제로 접근해왔다. 그들은 시장원리의 적용이 효율적으로 굴러가는 새로운 교육시스템을 건설해주리라 믿으면서 지속적으로 교육의 시장화, 개방화를 추진해 오고 있다. 물론 우리가 목도하듯이 신자유주의 시장원리의 적용은 공공성의 파괴, 불평등의 심화만을 몰고 오고 있지만.

 

 3월 교육투쟁의 교훈

 

지난 3월의 교육개방양허안저지투쟁의 경험은 이제 우리의 투쟁이 신자유주의 개방화, 시장화를 반대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공교육시스템을 요구하는 공세적 투쟁으로 나아가는 것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는 것을 새삼스레 일깨워주었다. 나름대로 치열하게 싸웠고 무분별한 교육개방이 잘못된 것임을 알리고 사회적 쟁점화에도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공교육의 상을 제시하지 못함으로써 경쟁력 강화의 이데올로기적 기반을 넘지 못한 채 구체적 성과를 획득하는 데 실패했던 것이다. 그 이후 개방화, 시장화 공세는 다시금 전일적으로 강화되고 있다. 진보적 공교육의 이데올로기적, 정책적 우위가 부족한 상황에서 닥쳐오는 문제들에 대해 수세적이고 방어적인 저지투쟁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저들은 '경쟁력'이데올로기와 일관된 '시장원리'가 있는 데 반해 우리에게는 '반대'밖에 없는 것으로 비추어졌다. 돌이켜보면 지난 수년 간 우리는 그렇게 방어적으로 싸우면서 신자유주의 시장화, 개방화 정책에 조금씩 밀려왔다. 3월투쟁의 뼈아픈 교훈은 진보적인 새로운 공교육의 상을 제시하는 것이 이제 당면의 과제임을 일깨워준다. 교육운동의 지형을 내용적으로나 주체역량에 있어서나 새롭게 재편성해 나가야 한다.

 

 공공성에 입각한 새로운 공교육체제의 상

 

진보적 관점에서 공공성에 입각하여 새롭게 세워내는 교육체제의 상은 무엇일까? 유아에서 대학까지 무상교육 실현, 대학서열의 폐지와 학문기지와 사회비판기능의 대학, 보편교육으로서의 초중등교육의 재정립, 변화된 사회문화적 조건에 맞는 새로운 학제로의 개편, 다양한 특기적성교육을 행할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 구축, 민주주의와 공동체 실현의 장으로서의 학교자치, 교육적 견지를 갖춘 교사를 양성할 수 있는 목적형 양성체제 등 서로 연결되면서 공공성과 민주주의, 민중교육권실현이라는 총체적 방향 속에 놓이는 새로운 교육시스템을 대강은 구상할 수 있다. 사실 그동안 대응과 논의 속에서 어렴풋하나마 새로운 교육시스템의 상을 우리는 조금씩 그려왔다. 다만 아직 전체적으로 일관된 체제로 엮어내지 못해온 것이다. 물론 어떤 부분은 대안적 상으로서 아직 부족한 점도 있다. 이제 그동안의 논의의 성과를 모으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면서 새로운 공교육시스템의 전체적 상을 그리고 사회적 논의를 붙여나가면서 본격적으로 새로운 공교육체제로 전진해 나가는 운동이 필요할 때다. 그래야만 분명한 방향과 목표를 갖고 개방화, 시장화의 잘못된 흐름도 막아내고 우리가 바라는 교육실현으로 나아갈 수 있다.

 

범국민적인 공교육개편운동 필요

 

공교육개편운동은 지금까지처럼 전교조나 일부 교육시민단체만의 힘으로는 이루기 어려운 과제이다. 왜냐하면 교육을 시장판으로 만들어가려는 시장만능론자들이 정책적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고, 보수언론을 통해 막강한 선전력을 갖고 끊임없이 경쟁력 이데올로기 공세를 펴고 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하게는 지금까지의 왜곡된 교육관행과 불평등한 서열구조 속에서 이득을 보는 기득권층의 거센 저항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장만능론자와 교육기득권층의 저항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은 오직 민중시민진영의 전체의 하나된 힘밖에 없다. 범국민적 운동을 통한 사회적 논의와 요구의 제출, 그를 통한 사회적 힘의 조직화와 정치적 결단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제 한국교육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교육시스템을 건설해 나가는 주체는 민중과 시민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더 이상 교사나 일부 교육단체의 특화된 운동 영역으로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그럴 때만 이 뿌리깊은 왜곡된 구조를 바로 잡아 나갈 수 있다.

 

 공교육개편 담론화는 공교육개편운동의 시작

 

공공성에 입각한 범국민적인 공교육개편운동을 어디에서 시작할 것인가? 민중, 시민진영의 진보적 공교육개편안 마련과 담론화가 그 출발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개편안 마련을 위한 논의과정에 교육관련 단체만이 아니라 문화, 노동, 농민과 제 사회단체까지 함께 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진보적 교육개혁 논의의 주체를 민중, 시민진영 전체로 넓히고 민중주체성을 강화한다. 그를 통해 교육권에 대한 요구가 바로 민중, 시민의 사회적 요구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둘째, 공교육개편안의 정식화 과정을 통해 새로운 교육체제의 상과 운동의 방향 및 목표를 분명히 하는 계기로 삼는다. 이는 아직 추상적인 것처럼 들리는 교육공공성담론을 체계화하고 구체화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셋째, 개편안 마련을 기초로 공교육체제 개편논의를 사회적 의제로 부상시킨다. 또한 한 단체나 분야의 의견이 아니라 민중, 시민진영이 함께 공유하는 교육개혁안을 제출함으로써 사회적 의제로서의 무게를 확보하며 향후 교육담론 지형을 바꾸어낼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다. 공교육개편안 마련은 본격적인 공교육개편운동을 여는 서막이며 이후 정치적인 사회운동으로 발전, 구체화해 나감으로써 실제적인 구조개편을 이루어 내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교육공공성실현을 위한 범국민교육연대의 힘찬 출발을 기대하며  

 

얼마전 WTO교육개방저지공동투쟁본부가 3월투쟁의 성과와 교훈을 바탕으로 앞으로 범국민적인 교육구조 개혁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면서 'WTO교육개방저지와 교육공공성실현을 위한 범국민교육연대'(이하 약칭 범국민교육연대)로 재출범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위한 준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범국민교육연대는 교육개방·시장화 반대·저지투쟁과 공공성에 입각한 공교육개편운동 전개 두 가지를 기본 과제로 설정하면서 앞으로 광범한 민중시민진영이 함께 하는 범사회적인 교육개혁운동을 이끌 수 있는 힘있는 주체가 될 것을 결의하였다. 그리고 산하에 '연구위원회'를 구성하여 제 단체가 함께 연구, 논의하면서 민중시민진영이 같이 공유할 수 있는 '공교육구조개편안'을 만들어 나가기로 하였다.

이제 시작되는 새로운 교육구조로의 개혁운동, 범국민적인 교육개혁운동이 왜곡된 한국교육현실에 고통받는 모든 민중과 국민에게 방향과 전망을 제출할 수 있고 나아가 그 같은 과제들을 '실제로' 실현해 나갈 수 있으리라고 기대해 본다. 또한 교육분야에서의 공공성논의가 확대되어 우리 사회 전체의 공공성논의로 발전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교육개혁, 이제 함께 하는 민중과 시민이 주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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