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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 혹은 낡아감에 대하여

 

산은(진보교육연구소 연구원)

 

문제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발명된다.  청년시절의 한국사회 문제는 빈곤, 저임금이었다. 사회 현상의 변화에 의해 지금은 청년이라는 존재 자체가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물론 사회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들에게 해결을 떠넘기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현상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문제는 다르게 나타난다. 지금  시대의 사회 문제  다른 하나는 노인이다. 나이 듦이나 경험의 축적이 지닌 의미나 가치는  사상된  그저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혹은 연금으로 국가 재정을 파탄내거나 동정에 기대야하는 존재로 늙음은 전락하고 있다.

영화로도 나온 소설 ‘은교에서 소설  노인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늙음도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그렇게 항변을 한다한들 달라지는 것은 없다. 모두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늙음을 향해 한발 한발 나아간다. 늙는다는  상실을 의미한다. 육체적 상실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하나씩 박탈당한다. 직장을 떠나고, 말의 권위를 잃고, 자식을 품에서 떠나보내고, 배우자는 돌아오지 못하는 곳으로 떠나보낸다. 차라리  낡아 버리기 전에 기억을 잃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나이 들어 무언가를   없다 , 인정받지 못하는  무엇, 심지어 조롱이 되는  무엇 앞에 놓이게 되는 고통과 허무를 겪지 않으니 말이다. 기억의 상실이 초래하는 역설은 고통과 허무의 기억을 잃음으로 행복해지는 역설이다.

 

늙음에 대한 인식은 신체 변화에서 오는 무력감으로부터 온다. 몸의 무기력함은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하고, 세월의 무상함은 자신의 삶에 대한 비애로 이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조선의 선비인 명재(明齋) 윤증(尹拯:1629 ~ 1714) 시는 그런 무기력함을 담고 있다.

 

眼暗看書倦 눈은 어두워 책을 보기도 피곤하고 

神疲撫枕頻 심신이 피곤하여 베개를 자주 돋우네.

無心度永日 아무 생각없이  날을 보내노라니 

還愧鬪棊人 오히려 바둑 두는 사람에게조차 부끄럽구나.

 

시력이 나빠져서 책을 보는 것이 피곤하고 자꾸만 노곤해지는 몸은 베개를 찾아 눕고만 싶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 것에도 마음을 쓰지 않고 하루를 보내니, 자신의 상태가 바둑 두며 소일하는 사람보다도 못한 처지라고  것이다. 윤증은 무기력이 늙음이 찾아온 것에 기인함을 알지만, 무심하게 달리 말하면 욕심 없이 길고  하루를 보낸다. 무욕의 상태를 맛본 것이다. 그런데 이내 바둑을 두는 사람에게도 부끄럽다고 고백한다. 이러한 자기검열을 거쳐도 늙음에 대한 인식은 인생무상의 비애를 자각하게 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진솔하여 오히려  애잔하다.

늙음은 무엇보다 신체의 변화를 의미하기에 당사자에게는 상심과 충격이 동반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늙음에 대한 인식이 성찰과 초월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신체의 변화에 대한 자각과 그에 따른 상심과 충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하는지가 관건이 된다.

 

2.

늙어감에 대하여 - 저항과 체념 사이에서.  아메리 지음

 

늙어감에 대하여저항과 체념 사이에서 늙어감이 불가피한 인간의 실존과 운명에 대해 사유한다.  책이 질문하는 것은 “나이를 먹어가는 인간이 시간을, 자신의 몸을, 사회를, 문명을, 그리고 궁극적으로 죽음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가 하는 점이다.”

저자  아메리는 홀로코스트의 생존자로서, 고문과 폭력을 경험하고, 무수한 죽음을 목도하였다. 인간과 세계에 대해 치열한 사유는, 삶과 죽음이 서로 다르지 않았던,  쉬는  외줄타기와 같았던, 현실로 받아들일  없는 체험에서 기인할지도 모른다.

살아 있음과 덧없이 흐르는 시간 시간에 대해 성찰한다. 젊은이는 세계를 공간으로 인식하고 스스로를 외화(外化)하지만, 늙어가는 사람은 지나버린 시간을 인생으로 기억하고 내화(內化)한다. 늙어 감은 그의 안에 시간의 층이 점점 두꺼워짐을, 시간의 무게가 더해짐을 의미한다. 그래서 노인 자신은 바로 시간이다. 인생이 허무하다고 한탄하는 것은, 늙어가는 이에게  이상 세계와 공간이 허락되지 않고, 대신  안에 쌓이는 시간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되돌릴  없음을 실감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늙어가면서 새삼스럽게 발견되는 것은 시간과 더불어 몸이다. 아메리는 고통과 아픔을 호소하는 자아를 ‘새로운 자아또는 ‘진정한 자아라고 명명한다. 몸의 고통은 나의 진실이지만, 이것은 세상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할  아니라 내가 누리던 세계의 상실을 의미한다. 조금씩 변해가는 자신을 바라보는 나는 나로부터 낯섦과 소외감을 느끼고, 더불어 본래적 자아를 새롭게 발견했음에도 세상으로부터 부정되어야 하는 모순적 상황에 놓인다.

나이는 생물학적 의미를 지닐  아니라, 사회의 관습적 인식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사회적 요구에 따라  나이에 부합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타인의 시선 아래에서 사회적 연령에 부합하는 삶을 살다가 늙어가는 인간은 자신이 무엇을 하며 인생을 살았는지 생각해본 일도, 어떤  진정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었는지 도전해본 일도 없는 셈이다.

 책이 주는  하나의 발견은 늙어 감을 육체와 사회적 범주에 한정하지 않고 문화적 범주까지 확장하고 있는 데에 있다. 바로 문화적 노화이다. 문화적 노화란 빠르게 변모하는 세상에 대한 이해 불가능성이다. 현대사회에서 현재의 문화적 현상을 자신의 시대였던 과거라는 관계 지점에 따라 해석하려는 늙어가는 사람은 점점 세상으로부터 소외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의 문제를 우리는 풀어야 한다.

 

3.

늙어감에 대하여 - 유한성의 철학. 오도 마르크바르트 지음.

 

자기 자신과 자기를 둘러싼 세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살아감이 바로 철학의 주제다. 이점에서 철학은 전문적인 학문이라기보다는 자기 삶을 반추하면서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늙어감에 대하여 – 유한성의 철학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던 독일의 실존철학자 오도 마르크바르트가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해 회상하고, 자신의 늙어감과 죽음에 대한 사유를 펼치는 책으로, 강연과 인터뷰를 모았다는 점에서 대중과의 소통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그는 철학자로서 자신이 한평생 무엇을 대상으로 철학을 해왔는지를 밝힌다. 그의 철학의 대상은 오로지 자신의 삶이었으며, 그가 마지막으로 천착한 대상은 바로 자신이 직면한 ‘늙음 ‘죽음이라는 사태였다.

점차 고령화되어 가는 현대 사회에서  이상 장수는 축복이 아니고, 늙음은 그저 하나의 사회적 문제로만 인식될 뿐이다. 사람의 가치를 오로지 쓸모와 효용성으로 재단하는 세상에서 무엇도 생산할  없는 늙은이는 혐오와 배제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경제적, 정치적인 관점에서 늙음을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만 바라보다 보니, 정작 늙음이라는 사태에 놓인 인간은 통계숫자로만 다루어질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늙음은 우리 모두가 거쳐야  과정이며, 벗어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제 ‘늙음이라는 사태를 받아들이고, 이것의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물어 보아야 한다. 마르크바르트는 늙음 자체를 다룰  아니라 늙어가는 자신에 대해 사유한다.  마지막에 실린 인터뷰에서 그는 늙음이 현실에 대한 감각을 날카롭게 한다는 점을 언급하면서도, 늙음이 무거운 짐처럼 느껴진다고 토로한다. 하지만 생을 오로지 젊음과 늙음이라는 이분법으로 나누며, 안티 에이징에 골몰하는 현대인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젊음은 덕이 아니며 영원한 젊음에 대한 이야기는 화려한 무의미일 뿐입니다. 사람들이 이에 의지하면 할수록, 젊음을  이상 유지할  없을  자신의 생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점점  어렵게 됩니다.”

그는 젊음을 무조건적으로 동경하지도 않고, 늙음 자체를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다. 늙음이라는 사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뿐이다. 늙은이에게 미래는 점점  짧아질 뿐이다. 이점에서 늙은이는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있는 젊은이와 달리 미래보다는 현재를 중시하며, 현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고 한다. 늙음 속에서 많은 사물들의 가치는 사라져가고, 죽음이 생을 스쳐  때에 비로소 자신의 유한성에 대해 절감하게 된다. 이렇게 늙음은 환멸적인 통찰의 눈을 뜨게 한다.

 

4.

 

조선의 선비인 성호 이익은 「노인의 좌절  가지 서술했다.   가지란, 대낮에는 꾸벅꾸벅 졸음이 오고 밤에는 잠이 오지 않으며, 곡할 때에는 눈물이 없고, 웃을 때에는 눈물이 흐르며, 30  일은 모두 기억되어도 눈앞의 일은 문득 잊어버리며, 고기를 먹으면 뱃속에 들어가는 것은 없이 모두  사이에 끼며,  얼굴은 검어지고 검은 머리는 도리어 희어지는 것이다.

사람들 대부분은 나이 드는 것을 남의 일로 생각하며 인생의 상당 부분을 보낸다.  역시 마찬가지다. 부모의 늙음을 걱정하다가 어느  친구의 부고를 받았다.  신체의 일부분이 기능을 상실함으로서 낡아감이 나의 문제로 갑작스레 등장하는 사태를 맞았다.

오늘날 가장 많이 언급되는 단어  하나가 웰빙( 있음, 참살이)이다. 그런데 요즘 웰빙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늙어감well-aging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늙어가야 하는 걸까? 고대 동양의 사유에서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자아의 완성인 군자와 진인을 향한 여정으로 보았다. 동양의 옛사람들은 청춘이 지나가며 맞이하는 생물학적인 늙음으로 인한 심신의 쇠잔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자 했다. 늙어 감은 결코 쓸모없음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덕이 깊어지고 성숙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한국 사회에서 그동안 늙음은 지혜와 연관되어 있다고 여겨져 왔다. 하지만 지금은 늙음에 대해 온통 조롱, 혐오, 빈곤에 대한 걱정뿐이다. 경로(敬老) 비꼰 단어인 혐로(嫌老) 등장하고 노인들을 ‘틀딱충’(틀니를 딱딱거리는 벌레), ‘할매미’(매미처럼 시끄럽게 떠드는 할머니), ‘연금충’(나라에서 주는 연금으로 생활하는 벌레) 등으로 비하하기까지 한다.

나도 언제부턴가 벌레가 되었다. 학교에서 학생들은 나를 직접 그렇게 부르지는 않지만 진지충이거나 설명충으로 여긴다. 이제 연금충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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