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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호 [맞짱칼럼] 모이를 거부하는 새가 창공을 가른다

2013.04.15 16:53

진보교육 조회 수:992

모이를 거부하는 새가 창공을 가른다


박옥주 / 전교조충북지부장

  2013년 1월 박근혜가 당선되자마자 교육부와 노동부는 ‘해고자 조합원 인정’관련 규약을 개정하라고 종용하며 법외 노조화를 전교조탄압의 전면에 내세웠다. 조직은 초긴장했다. 2012년 내부적으로 치밀하게 대비했던 사안이 아닌 상황에서 규약시정명령 대법원 패소에 따른 수구세력의 압박과 교육부와 노동부의 강한 태도 때문이었다. 전교조집행부의 고민은 법외 노조화 관련 상황에 대해 현장 조합원들이 구체적인 내용을 잘 모른다는 것과 당장 노조결격시정명령이 떨어지면 준비 없이 당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강했다.
  노동부는 2월 23일 전국대의원대회를 전후해서는 당장이라도 ‘노조결격시정명령’을 내릴 것처럼 애기했고, 연일 언론에 관련 내용이 보도가 되었다. 본부와 지부에서는 집행간부들과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대책 논의가 이어졌고 규약개정과 투쟁에 대한 논쟁에 불이 붙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규약시정명령의 근거가 되는 것이 행정부처가 만든 시행령일 뿐, 결국, ‘노조설립을 취소할 모법이 없다는 사실’, ‘해외 교원노조의 해고자 인정’ 등 법외노조화 책동의 법적 미비점과 해고조합원 인정의 정당성을 찾아냈다. 이어 발 빠르게 인권위권고와 국제노동기구의 긴급 개입 등을 이끌어냈다. 3월 한 달은 전국적으로 교선단연수를 진행하고 현장방문을 통해 결코 합법 전교조를 법외노조화 할 수 없다는 것을 공유하고 투쟁의지를 다졌다.  

해고자 복직을 위해 만드는 것이 노동조합 아닌가요?

  그런데, 우리 내부에서 규약개정을 통해 조직을 지킬 것인가? 법외노조화를 불사하고 싸워야 하는가 논쟁을 벌이던 당시, 우리 지역의 젊은 여성활동가는 이렇게 말했다. “말도 안 돼! 다들 해고자가 생기면 해고자 보호하고 복직시키려고 노동조합을 만드는데, 해고자를 조합원에서 배제하라는 게 말이 되요?” 그렇다. 우리 지역의 청소노동자, 광고지노동자, 택시노동자들은 부당한 해고가 벌어지면 민주노총에 가입한다. 그 때부터 사측과 협상하는 것을 배우고 여러 사람 앞에서 서투른 발언을 해가며 노동조합을 단단히 일구어 간다. 그래서 매 번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 운영위 때마다 새로운 노조가 가입을 해 온다. 굳이 외국의 교원노조에 해고자나 예비교사를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예를 들지 않더라도 보통의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은 조합원 보호를 위해 전체를 내놓고 투쟁하는 조직이었다.

규약 개정하라는 것 아니잖아요?

  최근 현장을 다니며 조합원을 만날 때도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각오하고 있음을 느낀다.. “박근혜가 규약을 제대로 고치라고 우리를 압박하는 것 아니잖아요? 쟤들은 전교조를 죽여야 지들이 산다고 생각하는 거잖아요?” “언론과 교육을 죽이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교육을 통해 자신들의 역사와 치부가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 하니 전교조를 그냥 두고 싶지 않겠지요.”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시국선언, 일제고사, 민주노동당 후원, 서울 교육감 선거 관련 해직과 단협 일방 해지 등 온갖 탄압을 겪은 조합원들은 자본과 권력의 저의가 전교조의 경쟁교육제도 반대투쟁과 참교육실천을 무력화시키는 일이라는 것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다.

맞설 ‘용기’를 내자!

  정작 위축되어 있는 이들은 그동안 앞서 왔던 활동가들이다. 이명박을 이은 보수 정권에 싸워서 막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예전과 다른 현장의 조합원들을 설득해 또 다시 험난한 싸움에 맞서기 어렵다는 진단, 학교 내에서 외롭게 싸울 수밖에 없는 고달픈 현실, 보수언론에 왜곡된 국민의 싸늘한 시선까지... 오랫동안 투쟁다운 투쟁을 하지 못하고, 승리의 경험을 쌓지 못한 것이 우리에게 깊은 패배주의를 남겼음을 부인할 수 없다. 엄기호는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다고, ‘용기’를 내자고 말한다. ‘용기’란 응원하는 동료와 공동체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말한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우리가 잘 못 산 게 아니다. 충분히 잘 싸웠고 잘 버텨왔다. 긴 호흡으로 당당히 맞설 용기를 내자!  

  법외노조화 상황이 구체화된다면 조합이 위축될 것이다. 부정할 수 없다. 조합 탈퇴가 늘어날 것이고, 단협 해지, 전임자 현장 복귀 요구와 사무실이전 요구가 곧바로 들어올 것이다. 그동안 힘든 현장활동가의 역할을 좀 더 떠안았던 전임활동가의 현장 복귀는 그러지 않아도 위축된 조직에 가장 큰 타격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규약개정을 하고 해고조합원이 탈퇴서를 쓴다고 해서 박근혜 정부가 전교조를 오롯이 인정해 줄 것인지, 또 우리 조직이 그 이전처럼 당당한 투쟁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규약개정 수락이 곧 합법노조의 지위를 지킬 수 있는 약속인가? 규약개정거부가 곧 법외노조화인가? 둘 다 아니다. 최선은 무엇인가? 노동조합의 자주성과 정체성을 지키라는 시대의 요청과 요청에 답하는 우리의 현재 투쟁의지와 태도이다.  

모이를 거부하는 새가 창공을 가른다

  전교조는 그동안 자본과 권력의 교육정책이나 제도의 본질을 간파하고 그 본질에 대항하는 투쟁을 해 왔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당했다. 또한 단 한 명의 조합원이 탄압을 당해도 조직의 이름으로 맞서 싸웠다. 하물며 조직에 헌신한 해고조합원은 우리 조직 자체이며 역사이며 자산이다.

지난해 시카고에서는 25,000명의 교원노조원들이 교원평가 등을 반대하며 9일간 파업을 벌였다. 아이들과 교사가, 학교 직원의 자살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고 있는 잔인한 학교 현장에서 파업하고 싶은 순간이 얼마나 많은가!

지난한 투쟁이 될 것이다. 교사 노동자가 노동기본권을 쟁취하는 투쟁은. 그러나, 힘겹게 싸운 날들이 지나고 일제고사 폐지처럼 승리를 축하하는 날이 반드시 올 거라고 믿는다. 청년 전교조, 머리가 허연 백발이 되어서 회고할 때 당당히 싸웠노라고 자부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모이를 거부하는 새가 창공을 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