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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호 [담론과 문화] 오래된 떡갈나무에 노란 리본을...

2012.03.22 15:47

진보교육 조회 수:1891

 

[음악으로 생각하기, 생각으로 음악 듣기]

오래된 떡갈나무에 노란 리본을...

 

이성우 / 진보교육연구소 회원

 

감옥을 주제로 한 마지막 노래로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e Oak Tree 오래된 떡갈나무에 노란 리본을...>을 소개한다. 이 노래는 1973년 Tony Orland & Dawn이 발표하여 오늘날까지도 한국인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팝명곡이다.

Tony Orland & Dawn은 리더 보컬 토니 올랜드와 두 명의 여성 백보컬로 구성된 그룹이다. 1944년 뉴욕에서 태어난 토니 올랜도는 16세에 음악계에 입문하여 캐롤 킹으로부터 받은 <Halfway to Paradise>를 히트 시키면서 성공적인 데뷔기를 갖는다. 그러나 그 후 10년 동안 이렇다 할 후속곡을 못 내며 슬럼프에 빠져 있던 중 백보컬 듀오 Dawn을 만나면서 전성기를 맞게 되는데 이들의 첫 히트곡이 1971년에 발표한 <Knock Three Times>이다. 이 곡은 매력적인 선율에다 그 시대의 보편적인 8비트의 흥겨운 리듬인 이른바 고고리듬으로 우리나라에서도 큰 인기를 누렸던 음악이다. 개인적으로 이 노래를 좋아하는 것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처럼 풋풋한 순수성이 묻어있는 노랫말 때문이다. 아래층에 사는 아가씨를 짝사랑하는 위층 총각이 만약 자기를 사랑한다면 천장을 세 번 노크해 주고(Knock Three times) 그렇지 않다면 배수 파이프를 두 번 노크 해 줄 것을 요청하는 내러티브 설정이 특별한 흥미를 끈다.

<Knock Three Times>에 이어 1973년 토니 올랜드는 자신의 최대 히트곡 <떡갈나무에 노란 리본을>을 발표한다. <Knock Three Times>도 그러했지만 이 노래는 소박한 민중적 정서를 자극하는 감동적인 서사구조를 지닌 노랫말이 흥미진진하고도 따뜻한 한 편의 드라마이다. 그 흥미로운 노랫말을 음미해보자.

 

1.

나는 곧 집으로 돌아갈 거예요. 내 형기(刑期)를 다 마쳤거든요.

지금 나는 무엇이 내 몫이며 또 무엇이 아닌지를 판단해야만 합니다.

내가 곧 감옥을 나가리라는 이 편지를 받고서 혹 당신이 아직도 나를 원하신다면, 당신이 해야 할 일이 뭔지 아실 거예요.

혹 당신이 아직도 나를 원하신다면 말예요.

 

(후렴)

오래된 떡갈나무에 노란 리본 하나를 달아주시길.

3년이란 짧지 않은 세월이 흘렀는데, 아직도 당신은 나를 원하시나요?

만약 떡갈나무 가지에 노란 리본이 보이지 않으면, 버스에서 내리지 않겠습니다.

못난 나 자신을 원망하면서 우리의 인연을 내 기억 속에서 지우겠습니다.

만약 떡갈나무가지에 노란 리본이 보이지 않으면 말예요.

 

2.

기사양반, 내 말 좀 들어 보실래요?

잠시 뒤 내 눈 앞에 펼쳐질 어떤 장면 때문에 불안한 마음 가눌 길이 없군요.

비록 몸은 풀려났지만 마음은 아직도 감옥에 갇혀 있는 것 같구려.

나를 풀어 줄 수 있는 이는 내 사랑 그녀이거늘

내 영혼의 자유를 위해 필요한 것은 노란색 리본 하나이건만......

(후렴) + (간주)

 

3.

와~ 지금 온 버스가 함성을 지르고 있군요.

나는 내 눈을 의심했습니다.

일백 개의 노란 리본이 떡갈나무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6학년을 대상으로 한 영어수업시간에 아이들에게 이 노래를 가르쳐준다. 3류 평론가의 해석을 곁들여 노랫말을 풀이해주면 아이들이 귀를 쫑긋 세우고선 쫙 빨려온다. 교육적 소재로서 이 노래가 지니고 있는 미학적 가치가 적지 않다.

 

♡ 바람직한 남녀 관계의 전범을 보여준다.

우리가 흔히 ‘사랑’이란 일컫는 남녀 간 애정관계는 지배와 종속의 관계맺음을 형태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사실상 이러한 관계는 본질적으로 사도-마키즘(sado-machism)에 가깝다. “넌 내꺼야”라는 식으로 남성이 여성을 향해 소유욕을 노골적으로 천명할 때, 남성은 자신이 여성을 열렬히 사랑하는 줄로, 여성은 그런 남성의 지배욕을 사랑으로 착각하는 한, 이 둘의 만남은 사디스트와 마조키스트의 관계와 다르지 않다. 문제는 대부분의 통속적인 대중가요가 이걸 부추기는 점이다. “오빠, 나만 바라봐. 이제 나를 가져봐.”라는 식의 노랫말은 교육적으로 ‘야동’보다 몇 백배 더 해롭다고 나는 생각한다.

무릇 에로스의 기본 바탕은 성애(sexual love)이다. 그리고 성애는 필연적으로 배타적 욕망을 함축하는 법이다. 그러나 ‘질투심’이란 이름의 이성에 대한 배타적 욕망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두 사람이 수평적으로 성애의 감정을 교환하는 조건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 조건에 변화가 생겨 둘 중 한 사람이 상대에 대한 애정이 식었다면 상대는 그 사람의 선택을 존중해줘야 한다. 그렇지 않고 나의 감정만을 소중히 여겨 상대를 구속하려 든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소유욕이고 지배욕일 뿐이다. 이러한 지배욕은 속성상 합리적인 이성보다는 우격다짐에 의존하는 바, 남성이 여성을 향해 행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 노랫말에 나오는 우리의 주인공은 현재의 자신을 냉철하게 대상화하여, “지금 무엇이 내 몫이며 또 무엇이 내 몫이 아닌지를 판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울러 여성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은 물론 그 의사표시를 하는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마을 앞 어귀에 있는 떡갈나무에 리본 하나를 달아달라는 부탁을 한다. 만약 “지금도 나를 사랑하느냐”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이 “No”라면 여성은 그냥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무슨 일로 죄를 짓고 3년을 감방에서 보냈는지는 모르지만, 이렇듯 여성을 배려할 줄 아는 섬세한 심성의 소유자였기에, 여인은 그의 귀향을 뜨겁게 환영한다. 사실 3년이란 세월이면 고무신을 갈아 신고도 남을 긴 시간이다. 더구나 감방에 간 남자를 일편단심 기다릴 여심이 잘 있겠는가? 이 순박한 두 선남선녀의 감동적인 해후의 모습은 사람을 사람 자체로 보지 않고 스펙이나 집안 배경을 통해 판단을 하고 선택을 하는 우리 시대 물화된 남녀 관계의 풍속도에 신선한 충격을 선사해준다.

 

♡ 민중의 따뜻한 공동체적 삶이 그려져 있다.

현대인의 삶에서 점차 사라져가는 개념들 중에 하나가 ‘공동체 의식’이다.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로 상징되는 현대인의 삶은 극도로 파편화되고 원자화 되어 개인은 무수히 많건만 ‘우리’가 없다. 개인주의는 팽배해 있으되 우리 의식(we-feeling)은 실종되어 간다. 특히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사회에서 이러한 경향성이 강하다. 공동체 의식을 되찾기 위해 우리는 가난해질 필요가 있는 것일까?

민중의 삶이 물씬 배어 있는 곳으로써 이웃끼리 아픔을 함께 나누는 커뮤니티로 이 노래에 등장하는 공간이 버스이다. 요즘 도시생활에서는 옆집에서 누가 죽어도 모르지만, 옛날 마을공동체에서는 옆집에 밥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서로 알고 있었다. 주인공 남자는 첨에 버스 기사에게 살짜기 자기 이야기를 건넸건만 사연이 너무 애틋하고 절박한 것이어서 버스에 탄 모든 사람들에게 공동의 관심사가 된다. 이 공동운명체의 절정을 이루는 것이 버스 승객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는 장면이다.

한편 남자의 귀향을 기다리는 여인의 삶터에서도 공동체 의식이 움트고 있었다. 1백개의 리본이라 하는데, 생각해보라, 무슨 밀림의 왕자 타잔도 아니고 연약한 여인의 몸으로 어떻게 나무에 올라가 그 많은 리본을 다 달았겠는가? 남자는 단 하나의 노란 리본을 요구했건만 여인은 하나의 리본만으로는 멀리 버스 안에서 남자가 식별하지 못할까봐 힘들게 여러 곳에 리본을 달고 있었는데, 이 애틋한 사연이 마을 전체에 퍼져 온마을 사람들이 줄을 서서 노란 리본을 매달아 떡갈나무는 온통 노란색 물결로 뒤덮였다는 후문이다. 이 노래의 이야기는 1900년대초에 실제 있었던 일을 1971년 리더스다이제스트에 게재되었고 1973년에 토니 올랜드가 노래로 부르면서 애틋한 민중적 사랑 이야기의 전설이 되었다.

 

♡ 예술적 완성도

앞서 잠깐 소개한 <Knock Three Times>와 마찬가지로 토니 올랜드의 노래는 듣는 재미보다 읽는 재미가 참맛이다. 흥미와 감동을 겸한 노랫말의 서사구조 자체로 이 곡은 이미 절반의 성공이 보증되어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아름다운 이야기의 가치를 잘 살려 적절히 음악적으로 배치하는 것이다. 장르상으로는 소프트 록 또는 팝 락에 해당하지만 이 노래는 리듬이나 악기 구성면에서 포크(folk)를 지향하여 민중적 색채를 내려 애쓴 듯하다. 경쾌한 폴카(polka) 리듬은 이야기의 결말이 해피엔딩임을 예고하는 가운데 정겹게 다가온다. 노래는 총 3절로 구성되어 있는데 2절에서 3절로 넘어가기 전에 하모니카와 스트링(현악기)이 4마디씩 주고받으며 솔로(solo)를 연주한다. 이 솔로는 버스가 떡갈나무에 다다르기 전에 긴장을 이완하기 위한 간주곡의 역할을 맡는데 음악을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과연 리본이 걸려 있을까’ 하는 호기심을 유발한다. 8마디 솔로가 끝남과 동시에 이야기의 클라이막스가 전개되는데 음악이 멈추면서(페르마타) 보컬이 천천히 나레이션을 읊는다. “와~ 온 버스의 승객들이 함성을 지르는군요. 내 눈을 믿을 수 없네요.” 라는 대사이다.

아이들에게 이 노래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 간주 부분에서 “과연 떡갈나무에 리본이 걸려 있을까?” 각자 추측해보라고 운을 띄운다. 그리고 영어수업인 만큼 이 페르마타 부분부터 보컬의 가사를 리스닝해서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발표하라고 한다. 같은 부분을 여러 번 반복해서 들려주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 행복한 결말에 대한 감을 잡는 가운데 똑똑한 몇몇은 1백개의 리본이 달려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이어서 교사가 “A hundred yellow ribbon...”의 뜻을 설명해줄 때 온 교실에 행복한 기운으로 충만된다. 이 시점에서 내 눈엔 늘 이물질이 고인다. 그런 선생의 눈을 아이들이 쳐다보면서 내가 갖는 감동을 아이들도 함께 나눈다.

 

 

‘노란 리본’의 유래 또한 흥미롭다. 노란 리본은 군대나 감옥에 간 남편 또는 연인을 기다리는 여인이 딴 맘 먹지 않고 꿋꿋이 남자를 기다리겠다는 일종의 충성서약의 징표이다. 서구 문화사에서 노란 리본의 역사적 기원은 로마의 네로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화산폭발로 매몰된 폼페이 유적에서 최근 노란 리본이 달려 있는 나무에 한 남자가 서 있는 벽화가 발굴되었다고 한다.

영국의 청교도 시대에는 “그녀는 노란 리본을 달고 있었다 She Wore a Yellow Ribbon”이라는 노래가 유행했는데, 미국으로 이주해간 청교도 개척민들이 이 노래를 퍼뜨리면서 미국전역에서 유명해졌다. 이때부터 노란색은 미국 기병대를 상징하는 색깔이 되었고 노란 리본은 군인 간 남편 또는 애인을 기다리는 여인의 정절을 상징하게 되었다. 이 노래와 똑같은 제목으로 웨스턴 무비의 거장 존 포드 감독은 자신의 황금 콤비 존 웨인을 주연으로 내세운 영화를 만들어 ‘노란 리본’의 신화를 현대 미국인들에게 계승시키는 데 일조를 하였다.

그 뒤 토니 올랜드의 이 곡이 유명해지면서 노란 리본은 베트남 전쟁이나 최근의 이라크 전쟁에 참전한 미군 병사들이 집으로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는 가족들의 소망을 상징하게 되었다. 이 곡이 발표된 해인 1973년은 미국이 명분 없이 개입한 베트남전쟁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거나 심각한 부상을 당해 귀국함으로써 정부에 대한 불만과 반전의 분위기가 고조되던 때였다.

 

‘기다림’이란 그 자체로 아름답고 숭고한 인간의 자질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이 따뜻한 영혼을 표상하는 색채로 ‘노란색’ 이외에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기다림은 곧 무엇을 소망함이다. 기다릴 사람도 소망하는 무엇도 없는 회색빛 삶은 곧 죽음이다. 요즘 교육희망전교조엔 노란색이 실종되고 회색빛만 가득한 것 같아 우울하기만 하다. 그래서 나는 연말에 있을 두 선거가 기다려진다. 이번엔 제발 착한 지도자를 뽑아 내년 봄에는 교육운동 진영에 노란색 희망의 물결이 넘실거리기를 기대해본다.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e Oak Tree>

I'm coming home. I've done my time.

Now I've got to know what is and isn't mine.

If you received my letter telling you I'd soon be free,

Then you'll know just what to do if you still want me,

 

If you still want me,

Oh,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e oak tree.

It's been three long years.

Do you still want me?

(Still want me?)

If I don't see a ribbon 'round the ole oak tree,

I'll stay on the bus,

Forget about us,

Put the blame on me,

If I don't se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e oak tree.

 

Bus driver, please look for me,

'Cause I couldn't bear to see what I might see.

I'm really still in prison, and my love, she holds the key.

A simple yellow ribbon's what I need to set me free.

 

I wrote and told her please,

Oh,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e oak tree.

It's been three long years.

Do you still want me?

(Still want me?)

If I don't see a ribbon 'round the ole oak tree,

I'll stay on the bus,

Forget about us,

Put the blame on me,

If I don't se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e oak tree.

 

Now the whole damn bus is cheering,

And I can't believe I see,

A hundred yellow ribbons 'round the ole oak t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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