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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호 [진보칼럼] 국가보안법은 살아 있다

2008.10.06 20:56

진보교육 조회 수:1371

국가보안법은 살아 있다.
- 사회주의노동자연합 사건과 국가보안법 -

                                                                                                  고민택 ∥ 노동자의힘 회원

희대의 악법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며 정치적 동물이다. 정치사상의 자유와 정치활동의 자유가 인정되지 않고는 인간은 단 한 순간도 세계에 대해 주체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이 점은 특정 시대에 한정된 문제거나 또는 특정 정치 체제나 정파의 이해관계에 국한된 성격이 아니다. 인간 생존 또는 존재 근거와 관련된 매우 근원적인 문제이다. 생각, 즉 그것의 덩어리 또는 체계인 정치사상과 활동, 즉 그것의 집단화 또는 결사에 근거한 정치활동은 인간 본능에 속한 것이다. 인간의 정치사상과 정치활동은 마치 철새가 계절에 따라 이동하고 연어가 산란을 위해 고향을 찾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는 생존 본능으로부터 생성되는 것이다. 본능은 그 자체로 인정되어야 할 뿐 그를 놓고 옳고 그름을 가르거나 무엇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없는 것으로 그 자체가 목적일 뿐이다.
사상의 자유에 대한 최고의 경구는 볼테르에게서 찾을 수 있다. “나는 당신의 사상에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의 사상을 억압하는 것에 대해서는 맞서 싸울 것이다.” 국가보안법이 희대의 악법인 가장 중요한 이유를 말한다면 그것은 바로 국가보안법이 인간 양심을 억압하기 때문이다. 양심은 인간 최저 또는 최고의 행위이다. “너는 양심도 없냐?”든가, “양심에 손을 얹고 말하라”가 폐부를 찌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양심은 인간을 유지하고 지키는 최후의 보루이다. “양심에 찔린다.”라는 표현이 이를 말한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하는데 무슨 거창한 이론이나 복잡한 사고가 필요치 않다. 최소한의 문명이 존재하는 사회라면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이다. 여전히 수많은 문제와 한계를 지니고 있지만 어쨌든 자유민주주의는 인류가 도달한 나름의 소중한 가치이자 문명이다. 그런데 자유민주주의가 인류 역사의 산물로서가 아닌 특정 정파나 계급의 정치적 독점으로서 쓰일 때 그것은 일순간 야만으로 바뀐다. 나머지 정파나 계급의 정치사상과 정치활동을 억압하고 배제하는 무기로서 자유민주주의가 동원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하나의 논점이 발생한다. 하나는 어떻게 자유민주주의 아래에서 국가보안법이 존재할 수 있냐는 논리이고 또 하나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보존하기 위해 국가보안법이 필요하다는 논리이다. 이 둘 사이에 논리적 가교는 없다. 이 두 논리는 평행선이다. 말하자면 논리로서는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바리케이트 이쪽이냐, 저쪽이냐의 한편의 선택만이 있을 뿐이다.

국가보안법의 본질

우선 국가보안법은 단순한 하나의 법률이 아니다. 알다시피 국가보안법은 사실상 헌법의 상위법이다. 국가보안법은 한국의 정치체제 그 자체이다. 헌법이 자유민주주의 또는 한국의 정체성을 밝히는 하나의 정치적 수사라면 국가보안법은 자유민주주의의 실체 또는 한국 정치체제의 실상을 떠받치고 있는 실질적 무기이다. 국가보안법이 남용이 얼마든지 가능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어 ‘귀에 걸면 귀 거리, 코에 걸면 코 거리’가 되기 때문에 법률적으로도 심각한 허점을 지니고 있다는 비판은 차라리 기술적 문제에 불과하다. 물론 그렇다고 엄격한 적용을 요구하는 것이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엄격한 적용’ 자체가 이미 임의적 판단을 가능케 하는 구실이 될 수 있다. 법률적 판단이 아닌 정치적 판단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언제나 열려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주장하고 있기로 국가보안법은 분단의 산물이다. 이는 결코 틀린 진술은 아니다. 그러나 검찰이 주장하고 있듯이 ‘국가변란’ 적용은 분단, 즉 북과의 관계 또는 북에 대한 태도와 직접 연결시키지 않고도 얼마든지 국가보안법의 효력이 발휘될 수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번 사회주의노동자연합 사건도 이러한 맥락 위에서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국가보안법은 그 본질에 있어 자유로운 정치사상 또는 정치활동에 근거한 체제에 대한 사회 구성원의 자유로운 선택권을 억압, 배제, 박탈하는 것이다. 북을 적으로 상정한 위에서의 ‘친북’ 또는 ‘이적행위’도 이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는 그것이 한편으로는 하나의 (정치)체제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무엇을 하나의 방법 또는 수단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는 오로지 체제로서만 강요될 뿐 결코 무엇을 위한 방법 또는 수단으로서는 조금도 용인되고 있지 않다. 자본주의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있다. 국가보안법이 체제 수호법이라고 할 때, 그것의 분명한 대상은 실은 자본주의이다. 따라서 앞에서 말한 논점은 실은 제대로 된 논점이 아니다. 기껏해야 반 정도만 성립하는 논점이다.
따라서 국가보안법이 겨냥하고 있는 ‘반북’ 또는 이의 연장선 위에서의 ‘반공’이라는 것도 그 근원에는 자본주의에 존재적으로 적대를 이루고 있는 ‘노동자계급’ 또는 ‘노동운동’에 대한 억압, 배제, 탄압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자계급’ 또는 ‘노동운동’이 지향하는 바가 오로지 ‘친북’ 또는 ‘현실사회주의’와 동일하다는 규정은 성립하지 않는다. 자본주의를 문제 삼거나 반대하는 것이 곧 ‘친북’ 또는 ‘현실사회주의’를 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직 자본주의를 문제 삼거나 반대하는 것 자체를 원천 봉쇄하는 것이다. 오늘날 자본주의 선진국, 그 본질에 있어 제국주의가 강요, 강제하고 있는 것도 자본주의 체제이다. 그들이 내세우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확산도 실은 대외적으로는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강행과 자국 자본의 이해를 극대화하기 위한 정치적 수사, 명분일 따름이며, 대내적으로는 정치적 수단일 뿐이다. 만약 그 수단이 여의치 않을 경우 언제든지 그것은 거두어들일 수 있다. 파시즘은 그 극단적 사례일 뿐이다. 국가보안법이 한편에서는 분명 한국 자유민주주의의 후진성/폭력성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자유민주주의의 한 전형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의 진전만을 일면적으로 주장하는 것으로는 이번 사회주의노동자연합 사건의 정치적 성격과 국가보안법의 본질을 놓칠 수 있다. 자본주의 이행과 연관시킬 때만이 비로소 그 진면목을 온전히 볼 수 있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지난 노무현 정권 시기에 의회에서 국가보안법을 폐기할 수 있는 산술적 가능성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자유주의 정권의 한계 또는 본질만을 보여준 채 그 기회는 사라졌다. 물론 일부에서는 ‘진보정당’을 포함한 운동진영의 미숙함을 함께 탓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러한 생각은 매우 단편적이고 일면적인 태도이다. 국가보안법 폐기가 한 측면에서 관제 고지를 탈환하는 것임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바로 그를 위해서라도 의회 의존적인 방식으로는 돌파하기 어렵다. 이미 국가보안법은 다양한 모습을 띠고 각종 다른 법률의 형태로 전이되고 있다. 정보통신비밀보호법은 그 한 예이다. 테러방지법 입법 기도, 전자여권 시행 기도 등 우리 생활 깊숙이 국가보안법은 변형된 형태로 계속해서 밀려오고 있다. 국가보안법 폐지 투쟁의 일상화, 대중화, 지속화가 형성되어야 한다. 국가보안법이 일부 또는 특정 소수 정파에만 해당하는 또는 그들과 정권 내부의 공안세력과의 다툼이라는 제한된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동안 국가보안법 폐지 투쟁은 주로 민족주의 운동진영만의 문제로만 인식되거나 사건별 대응으로만 한정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이 겨냥하고 있는 대상은 무차별적이다. 선택권이 우리에게 있지 않다. 국가보안법은 단지 사건 당사자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여 모든 정치적 억압을 위한 출발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국가보안법이 노리는 정치적 효과이다. 이번 사회주의노동자연합 사건은 이명박 정권이 촛불정국에서 탈출하기 위한 노림수이자, 각종 ‘친자본법’, ‘친부자법’을 밀어붙이기 위한 출발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공정택 서울시 교육감의 ‘단협폐기’ 가능성 시사나 정부의 학교별 전교조 선생 공개 방침도 간접적으로는 이와 연동되어 있다.
다른 한편으로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는 이제껏 진정한 의미에서 공론의 장에서 정면으로 부딪쳐 본 적이 없다. 그것은 단지 사건으로만 다가왔을 뿐 전사회적 문제로 떠오르지 못했다. 적어도 과거의 제3자개입법이나 집시법을 문제 삼았던 수준만큼으로 전선이 형성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많겠지만 그 중 결정적 원인의 하나는 자본주의 이행 운동이 아직 대중적으로 성립되지 않은 데 있다. 비록 민주노동당 강령과 한국사회당을 통해 일부 표출, 표현된 바가 없지 않지만 그들 운동은 사실상 국가보안법 아래에 존재했던 것으로 결코 국가보안법을 거슬러 올라가는 운동으로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그렇다보니 국가보안법은 사실상 특정 사건 당사자 문제로 환원될 뿐 운동진영 전체의 문제로 성립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고는 의회를 중심으로만 돌아갔으며, 대중투쟁도 의회를 압박하기 위한 수준에서 제한, 제약되었다. ‘진보정당’이 의회 내 다수당이 되어야 국가보안법을 폐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어야 그나마 ‘진보정당’이 의회에 진출할 수 있으며, 그러기 위해서라도 ‘진보정당’ 운동 자체가 국가보안법을 거슬러 올라가는 정치적 대안과 활동 방식을 들고 나와야 한다. 이는 결국 신자유주의 지구화가 몰고 오고 있는 야만에 맞선 새로운 세계 건설 운동을 성립시키는 길밖에 없다. 국가보안법 폐지 투쟁의 일상화, 대중화, 지속화도 그 때에야 비로소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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