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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호 [열공] 학교 독서모임

2008.10.02 17:04

진보교육 조회 수:1057

학교 독서모임
                                                                                                           강주룡 ∥00고교

너무도 길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2008년이 흘러가고 있다.
2008년은 극우파가 권력을 장악하고 미국산 쇠고기 파동이 촛불집회로 이어지고 바로 파시즘적 반격으로 시작된 반동이 진행되면서 저물어가고 있는 것이다. 역사책에서나 읽었던 ‘반동’을 실제로 체험하면서 이것이 신체적 학살을 동반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면 어떠했을까를 상상하니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반동은 그야말로 전방위적으로 쓰나미처럼 밀려오고 있다. 지난 10년간의 자유주의 정권에 붉은 빛깔을 칠하며 전면적인 이데올로기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권력을 장악하고 그것을 구조화시켜 가는 과정에서 드러난 그들의 야비함과 치졸함을 보면서 새로운 저항의 가능성과 희망을 찾아본다. 단지 문제는 우리의 주체적인 역량을 얼마나 어떻게 복원할 것 인가가 관건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 글은 단위 학교에서 진행된 조합원들의 작은 노력과 아주 조그마한 성과에 대한 이야기이다.

조직의 근간인 분회의 역량은 두 가지에 근거해 있는 것 같다. 그 첫째는 분회원들 간의 인간적인 유대감이다. 소위 끈끈함으로 표현되는 조합원 간의 정서적․감정적 공감대를 확보하고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유대감의 형성과 강화에만 매몰되어 분회가 친목회의 형식과 내용에 머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다른 차원에서의 응집력이 필요하다. 거창하게 표현하면 정치의식이나 세계관으로 표현될 수 있는 인간과 사회 그리고 그것들의 연계와 관계를 조직화하고 있는 구조와 체제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인식의 공감대를 넓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교육은 물론 사회, 정치, 경제 등과 관련된 현안과 쟁점들을 중심으로 생각 나누기를 통해 관점의 공감대를 확대, 확산시켜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학교와 분회은 이런 노력과 활동을 어렵게 하는 많은 걸림돌들을 안고 있다.
첫째는 학교 문화의 개인주의화 경향이 두드러지고 교육 노동이 개별화, 파편화되면서 구성원 간 관계의 밀도가 떨어지고 의식적, 무의식적 상호 소외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둘째는 분회 모임이 형식화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점이다. 분회는 현안이 있을 때 상부에서 결정된 사항이 본부, 지부 그리고 지회 라인을 통해 최종적으로 하달되는 통로의 마지막 통로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하다. 마치 의사소통 방식이 조종례나 직원회의 같은 수준과 형식에 머물면서 대다수 조합원은 대상화되고 서명하고 성금이나 걷으며 지침에 따라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하수인이나 커다란 기계의 작은 톱니바퀴 중 하나로 전락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줄 수 없다.
세 번째는 따라서 조합원들 사이에 조직 문제나 각종 현안에 대한 진정한 만남과 소통의 기회가 부족한 것은 물론 조합원과 비조합원간의 의견 교환이나 생각의 나눔은 더욱 어려운 구조와 문화가 고착되고 있다. 특히 이런 상황은 새롭게 교육노동에 투신하는 신임교사들과의 소통 문제에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그들은 학교 현실이란 바다 속에 던져져 누구의 보살핌이나 배려도 없이 임용고사 준비 과정에서 익히고 습득한 지식 등에 기초하여 혼자의 힘으로 헤엄치고 살아나는 방식을 터득하도록 거의 방치되어 있다.  
넷째로 이런 현상은 끊임없이 컴퓨터 화면에 파묻혀 파편화된 일상적인 교육 노동에 매몰되어 학교 현안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는 물론 자신의 존재 근거나 이유 혹은 교육 활동 등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 교육 노동은 기계적이고 기술적인 활동이며 교육 노동자로써의 교사는 주어진 처방전에 따라 움직이는 기술자로 전락시키는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다.

우리 학교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교사들은 30대 후반에서 40대 중반까지의 여교사들이다. 그러니까 소위 386세대라고 명명되는 여교사들의 층이 두터운 편이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80년대의 역사적 격동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세대이다. 그리고 그들은 초등학교나 중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키우면서 가사 노동에도 매달려야 하는 이중고의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그래서 그들은 누구보다 일상적인 스트레스로 힘겨워 하며 이를 잊거나 덜어내고 서로를 위로하기 위해 틈틈이 수다를 떤다. 일상적 소재를 중심으로 아줌마 선생님들이 군데군데모여 짧은 시간 동안 반짝 수다를 떨다가 흩어지는 모습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소재는 그야말로 천차만별이었다. 아이들 이야기, 남편 이야기, 자녀 키우는 이야기, 관리자들 씹기, 연예인 이야기 등등 물론 때때로 정치적인 현안이나 교육적인 쟁점들을 나름대로의 관점에서 나누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때로는 자신이 최근에 읽은 책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였다. 이 과정에서 인기를 끈 책이 「남자 아이, 여자 아이」였다. 남성과 여성의 유전자적 차이와 그에 따른 기질의 차이를 제시하면서 그 특질의 차이에 따라 어떻게 아이들을 키우고 교육시킬 것인가를 다룬 흥미있는 책이었다. 누군가 이 책 이야기를 하면서 내용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그때 또 다른 누구인가 이렇게 외쳤다. “우리 수다의 질을 높여볼까? 우리의 수다를 논리적으로 다듬어보자!” 그리고 곧바로 반응이 왔다. “그래 우리 이 책 읽고 서로의 생각과 경험을 나누어 보자.” 그러자 또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그래 나도 요즈음 그 책 읽고 있는데 너무 재미있고 집과 학교에서 아이들 교육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고 있어. 이거 한번 같이 읽어보자?” 이렇게 해서 문이 열렸다. 그들의 대부분은 이미 대학시절 세미나로 단련된 몸이었다. 따라서 함께 책을 읽고 생각과 느낌을 나누는 행위는 너무 익숙하고 일상적인 활동이었다. 그래서 내가 나섰다. “내가 쿨 메신저 날려 희망자 받고 시간과 장소를 정할게. 그런데 매주 한번은 어렵겠고. 응 … 그래 한달에 한번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물론 이전부터 분회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독서모임의 필요성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누군가 총대를 메는 문제와 과연 척박한 근무 조건 속에서 몇 명이나 참가할지를 고민하면서 차일피일 미루어 두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우리 학교 독서모임은 이렇게 2007년 5월에 시작되었다.

준비과정에서 커리와 참여 대상 범위, 주기와 회수, 그리고 회비 등 몇 가지 기술적인 문제들을 처리하기 위해 준비팀을 구성하게 되었다. 모여서 피자를 시켜 놓고 난상 토론을 벌였고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1) 월 1회로 한다.
2) 발제자는 가능한 다수(多數)로 한다.
회당 발제자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대부분의 교사들이 물리적인 시간의 부족으로 부담스러워하는 측면도 있고 또한 책임감을 갖고 참여할 수 있도록 강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3) 월 1만원씩 회비를 걷는다.
4) 토론 교재는 매달 독서토론 후 논의하여 정한다.
5) 신임교사들의 참여를 적극 유도한다.
6) 대상은 전체 교사로 한다.
7) 학교 동호회 지원 기금을 활용한다.
8) 뒷풀이는 무조건 한다. 단, 참석은 자유다!

전체 교사에게 메일을 날렸다. 시간이 촉박하여 과연 몇 사람이나 신청할까 걱정이 되었다. 특히 초임교사들을 참여를 어떻게 유도할 것 인가 고민한 끝에 고전적인 방법을 동원하기로 하였다. 모든 인연(因緣)을 활용하여 이렇게 저렇게 찔러 보았다. 그런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2007년 초임 발령자 전원과 2년차 한명이 흔쾌히 참여에 동의하였다. 그리고 끊임없이 답신 메일이 쇄도하였다. 총 정리 해보니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교사는 조합원과 비조합원 합쳐 20여명 전체 교사의 거의 1/3에 육박하는 대성공이었다. 준비팀은 첫 모임부터 무거운 주제나 어려운 교재를 피하고 이야기를 쉽게 이끌어 가고 흥미를 높일 수 있는 것으로 정하기로 하면서 「남자 아이, 여자 아이」가 독서모임 첫 교재로 채택이 되었다. 우선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 단체 주문을 하니 자연스럽게 20% 할인 구입이 가능해 졌다. 내친 김에 우리의 존재도 알릴 겸 연구부에 교사 동아리 지원금을 요청하였다. 바로 온 회신에는 1인당 1학기에 1만원 지원 가능이었다. 이렇게 첫 번째 교재는 거의 공짜로 구입하였다. 소식을 들은 참여 교사들은 입이 벌어졌다.
그리고 5월 마지막 금요일 5시 학교 특수반 너른 안방에 큰 상을 사이에 두고 20여명이 둘러앉았다. 발제와 토론이 끝없이 이어지고 3시간 가까운 진지한 나눔 끝에 첫 독서모임이 끝났다. 대성공이었다. 평소 분회 총회 때도 속도전을 벌려야 끝까지 함께 했던 분회원들까지 3시간 동안 어떤 불만도 표시하지 않고 버티고 앉아 자기 이야기기를 끝없이 쏟아냈다. 그리고 근처 호프집으로 내달았다. 못다한 이야기를 풀어 놓다 보니 10시가 넘었다. 정말 기분 좋은 하루였다. 자신감과 희망이 보인다.
이어지는 독서모임 방학을 제외하고 꾸준히 진행되었다. 우리는 「88만원세대」, 「위기의 학교」,「배움으로부터의 도피」, 「얘들아, 너희가 나쁜 게 아니야」,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등을 읽고 웃고 울면서 격정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2008년 구성원 중 일부가 이동을 하고 동일한 방식으로 새로운 회원을 맞이하였다. 여전히 20여명의 수준이 유지되고 있다.

눈에 띄는 성과는 조합원의 증가였다. 독서모임에 참여했던 신임교사와 2년차 교사 전원이 2088년 신학기 시작과 함께 모두 조합에 가입하게 되었다. 물론 가입 결정의 결정적인 배경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독서모임이 중요한 계기와 변수가 된 것은 분명하다.
두 번째는 분회원들의 자신감이 눈에 띄게 높아졌고, 분회 활동이 보다 활발해졌다.
예를 들어 2007년 순환등급제와 성과급 1/n은 2명을 제외한 전체 교사가 참여하였다. 이런 성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독서모임은 심도있는 논의와 그 확산의 중요한 장이 되었었다.
마지막으로 전반적으로 구성원들의 교육문제에 대한 논의력의 분석력이 향상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위기의 학교」,「배움으로부터의 도피」는 실패한 영국과 일본의 신자유주의적 교육개혁을 분석하고 있는데 이 책들을 토론하는 과정에서 모임의 구성원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한국의 신자유주의적 교육개혁과 연계를 시키면서 그 문제점을 정확히 집어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특히 2008년 이명박 정권과 공정택의 교육 정책을 논의 과정에서도 독서모임 참여자와 비참여자 간에는 분명한 차이를 보였는데 이는 투쟁 전술의 선택에도 영향을 미치는 경향이 강하였다.  

끝으로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학교 독서 모임을 진행하면서 느낀 점 몇 가지를 제언하려고 한다.
첫째는 일부 활동가들은 독서모임을 조직화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커리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 학교에서도 일부 교사들이 연간 커리를 체계적으로 세워 보다 목적의식적으로 참여자들의 의식을 고양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하였다.  물론 이 주장은 대상자가 핵심 활동가 층일 때는 유효할 수 있다. 그러나 대중적인 활동의 성격을 띤 독서모임의 경우 지나치게 경직된 커리를 강조하다 보면 참여자들의 흥미와 관심을 도외시할 수 있고 이는 필연적으로 참여율의 하락과 모임의 지속성 유지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참여자들이 흥미와 관심을 갖고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토론 과정에서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가고 문제를 분석하고 해석하며 토론을 풀어나갈 때 보다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차원과 시각으로 논점을 만들어 가느냐가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만남과 소통의 기회를 정기적이고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 자체도 매우 중요하다. 교사들의 독서모임은 그 성격상 토론 과정에서 학교생활이나 교육 문제가 주요한 이야기로 꺼리로 등장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 시기의 교육적 쟁점이 논의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어떤 내용이나 방향을 미리 정해 놓고 그것을 반드시 선전, 선동하겠다는 생각에 집착하기 보다는 어떻게 만남과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 지속적으로 유지하며 어떻게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가 독서모임 조직화의 중심 고민꺼리가 되어야 할 것 같다.

학교 독서 소모임은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이론, 구체적인 삶과 부대끼지 않는 공허한 이론, 언어유희로 전락한 이론 등을 극복할 수 있는 작은 대안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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