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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호 [권두언] 한 점 우리네 인생

2016.01.11 23:22

미로 조회 수:467

[진보교육] 59(2015.12.15. 발간)

 

[권두언]

한 점 우리네 인생

 


 

21세기, 자네 실망일세

십진법으로 세월을 끊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부질없는 짓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21세기가 되면 많은 것들이 해결되어 있을 줄 알았다. 뭔가 억울하고 실망스럽다. 2015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 그래도 21세기라면 뭔가 좋게 변해 있을 거라 기대하며 맞이한 21세기도 홀랑 15년이나 지나버렸다.

없던 것들이 생겨나고, 예전보다 새롭고 자유로운 생각들이 펼쳐지고, 과학은 우주의 근원까지 파헤치기 시작했으며, 인간의 뇌에 대해서도 우리들은 더 많이 알게 되었다. 인간의 행동반경은 예전에 비해 훨씬 넓어졌으며 세상은 따라가기 어렵게 빨리 변해가고, 기술문명의 혜택을 누리게는 되었지만 기대했던 근본적 변화는 아직이다.

“20세기 소년이라는 만화가 있다. 이상한 그림이 그려진 복면을 쓴 채 스스로를 친구라고 칭하며 사람들의 영혼을 사로잡아버리는 얼굴 없는 권력에 맞서 20세기에 시작된 싸움이 세기가 바뀌고 세대를 이어가며 치열하게 전개된다. ‘친구의 권력은 더욱 막강해지고 사람들의 의식은 마비되며 그에 대항하는 세력들은 철저히 감시받고 제거되며 수상한 이들은 격리된다. 하지만 만화답게 수십 년 간에 걸친 싸움은 어느덧 노인이 된 ‘20세기 소년들의 끈질긴 투쟁으로 그럭저럭 해피하고 약간은 허무하게 만화는 끝난다.

 

 

국정화 사태, 그리고 약간은 아쉬움이 남는 대응

만화와 현실이 오버랩된다고 느끼는 건 기분 탓이겠다. 그런데 지극히 만화적인 일들이 펼쳐지고 있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차라리 만화 속 20세기 소년들처럼 기지를 만들고 멋지게 활극을 펼치며 친구의 심장부로 쳐들어갈 수 있다면 좋으련만 우리들은 만화의 주인공이 아니라 현실의 인간들일 뿐이다. 스스로를 만화의 주인공이라 착각하는 것은 그들일 뿐이다.

현실을 만화로 착각하고 영원한 집권을 꿈꾸고 말도 안 되게 실천으로 옮기려 드는 그들에게는 사실 빈틈이 많다. 10월말부터 급격하게 진행된 국정화 사태는 그들의 허술함과 과도함을 보여주는 결정판이었다.

일제 강점기 제국주의자들과 친일파들은 그들의 시대가 그렇게 끝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국정화를 밀어붙이는 만화 속 주인공들은 현실에서는 친일, 독재 미화의 의식에서 벗어날 수 없는 퇴행적 부류들일 뿐이다.

그렇기에 신자유주의가 더 이상 자기확장을 하기 어려워지고 자본 측이 미래를 걱정하기 시작한 이때 국정화 국면이 이러한 판세로 소강기에 접어들었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한국 사회 신자유주의 세력의 핵심이 결국은 친일, 독재를 자행했고 그것을 미화하기에 급급한 민낯이 드러났음에도 아직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노동개악과 국정화는 이질적인 것이 아님에도 국정화에 전술적 무게중심을 싣는 것을 주저했고 그래서 한 박자 늦게 대중전술이 구사되었으며 사람들의 격해진 정서를 제때 담아내어 상승시키지 못했다.

 

 

이보게, 아직 실망할 때가 아닐세

역사에 만약이란 없다. 객관적 정세 조건에 못미치는 결과가 나왔다면 그것은 주체의 역량이 그만큼이었다는 의미이다. 지금의 자리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 물론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는 단 몇 mm라도 진전된 상태라는 것은 미래의 역사 속에서 드러날 것이라 믿는 수밖에 없다. 과거를 살았던 그들도 우리처럼 매번 실패하는 듯하고 매번 제자리인 듯 실망하며 일상을 살아갔을 터이다. 우리도 그들이다.

장구한 역사에 비하면 한 인간의 일생은 지극히 짧고 기나긴 역사를 이루는 한 점에 불과하다. 무한과 유한은 서로 통한다고 했던가. 한 인간의 점과도 같은 인생역정이 장구한 역사를 이룬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어떤 의미에서든 역사적 존재이다. 21세기의 시간은 아직 85년이나 남아 있다. 우리의 인생이 대부분은 이보다 짧은 시간 밖에 남지 않았기에 조급해지기 쉽고 실망도 쉽게 할 수밖에 없지만 시간은 나에게 이렇게 속삭이는 듯하다.

 

이 사람아 벌써 실망하면 어찌하는가?”

 

정치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국정화 투쟁이 못내 아쉬움을 남기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 곧 열릴 정치적 공간에서 어떤 말과 어떤 행동들을 펼칠지 준비해야 할 것 같다.

이번 호는 약간 학술적인 느낌이 든다. 그만큼 방학을 맞이해서 자신을 돌아보며 내공을 쌓아보는 계기가 될 진보교육이 될 것이다. 정세와 투쟁방향을 다루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지만 2016년 첫호를 기다려주셨으면 좋겠다.

[기획1]은 한국사회에서 입시가 차지하는 비중 및 위치를 통해 우리사회의 현주소를 말하고 있다. 나아가 발달과 해방의 교육체제로 나아갈 것을 제시하고 있다. 모처럼 함께 읽고 토론해볼만한 글이다. 꼼꼼히 읽어주셨으면 한다.

[기획2]는 마르크시즘과 비고츠키교육학이란 주제로 그람시, 비고츠키, 프레이리를 다루는 글이다. 예전에 읽었던 글들이 비고츠키교육학과 결합되면서 새롭게 각인되고 해석되는 것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언급되는 사상가들 모두 관통하고 있는 전면적 인간 발달에 대한 해석이 제시되고 있다. 나아가 주체형성과 사회변혁에 대한 긴 호흡으로 나아갈 것이 제안하고 있다.

[맞짱칼럼]에서는 소위 진보교육감의 위치가 어디에 있는가를 함께 생각해볼 수 있는 글이다. 역사적 일화를 통해 현재 진보교육감의 행보에 대한 문제제기와 더불어 향후 진보교육감의 행보를 제시하는 글이다.

이번호의 [담론과 문화]도 매우 알차게 글을 담아냈다. 항상 좋은 원고를 보내주시는 필자들에게 감사드린다. 송재혁은 겨울잠에서 꿈을 긷는 음악에서 계절과 현시기를 연결시켜 우리가 들어볼만한 음악을 소개하고 있다. 방학을 맞이하여 꼭 한번씩은 들어보시길 권한다. 타라는 기억 저장소에 남아있는 것들을 통해 드라마 응팔과 영화 암살을 분석하고 있다. 국민들의 기억마저 조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대통령이 호령하고 있는 지금 우리가 인양할 기억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만하다. 눈동자는 앞으로 몽상록이란 주제로 글을 이어갈 예정이다. 이번글에서는 아이유논란을 통해 생각해볼 문제를 제시하고 있다. 나아가 교과서와 철학자들을 연결시키는 그의 통찰력에 존경을 표한다. 김윤주는 자신이 밝히고 있듯이 정말 육아일기 다운(?) 육아일기를 보내주셨다. 발달지연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가족들의 반응을 잔잔하게 보여주고 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없듯이 우리 사회의 부모도 함께 성장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비고츠키교육학이 재조명되고 있는 지금, 발달지연에 대해 과학적으로 해석을 내놓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열공][책소개]는 애플심포지엄 이후를 담고 있다. 지난 심포지엄에서 한국의 교육노동운동진영에 던지는 시사점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방학이 되었으면 좋겠다.

진보교육 59호가 확 달라졌다. ‘뭐가 달라졌나?’라고 질문하시는 회원이 계시다면 직접 찾아보는 즐거움을 느껴보시길. 진보교육의 발간 수가 늘어갈수록 연구소를 함께하고 계신 동지들도 나이가 들어간다는 생각을 해보며 권두언을 마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