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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과문화] 3

서울에서 별 보기 - 내 안의 우주, 우주 속의 나

이두표 / 개웅중, 진보교육연구소 연구원

지구가 오염되지 않았던 옛날에는 맨 눈으로 약 6000개의 별을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 서울의 밤하늘에서 볼 수 있는 별의 수는 계절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략 20~50개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제는 익숙해져서 원래 그런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사실 대기가 많이 탁해진 것입니다. 별 빛이 지구 대기를 통과하면서 약해져서 우리 눈을 자극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은하수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학생이 참 많으며 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천문회같은 단체에서는 별을 보기 위해 서울을 떠나 지방으로 가곤 합니다.

그렇다면 서울에 사는 우리는 별 보기를 포기해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적지만 서울 밤하늘에는 별이 분명히 보이며, 몇 개 되지 않아서 별을 구별하기는 오히려 쉽고 편리합니다.

저는 중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치는 교사입니다. 근데 물리를 전공한 제가 처음 교직 발령을 받아 중학교 3학년 학생들에게 천문학을 가르치게 되었을 때, 무척 부담스러웠습니다. 중학교 천문학이 뭐 그리 어렵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직접 별을 관찰해 본 경험 없이 가르친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도 했고,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정말로 별을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천문학 공부를 하면서 직접 별을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돌아다니기 싫어하고 컴퓨터를 좋아했던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은, 그냥 제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직접 하늘을 보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루 중에도 시간에 따라 크게는 계절에 따라 고정되어 있지 않고 움직이는 별이 도대체 무슨 별인지 알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프로그램은 자기가 사는 지역(사실 위도, 경도)을 선택하고, 날짜와 시간을 입력하면 제가 지금보고 있는 하늘의 별을 모양을 그대로 화면으로 보여주었습니다. 화면과 실제 하늘을 비교만 하면 별의 이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별을 꾸준히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높은 지역에 위치한 데다가 맨 꼭대기 층인 20층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시야가 트여 있었다는 것도 큰 장점이었습니다. 단점이라면 사방을 볼 수 없으므로 한 쪽 하늘만 지속적으로 보아야 했는데, 마침 집이 약간 남서향이라 계절별 대표 별자리를 보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근데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밤에 별이 거의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 서울의 밤거리는 각종 조명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주변의 불빛이 별 빛을 가리는 것이지요. 둘째로 서울에는 높은 건물이 많습니다. 좌우 어디를 둘러보아도 아파트나 빌딩이 가로 막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볼 수 있는 하늘은 전체 하늘의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바쁘게 생활하면서 어쩌다 올려다 본 밤하늘에서 별이 눈에 들어오기란 참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밤에 거리를 걷다가 어쩌다 하늘을 보면 아주 밝은 별 몇 개만 눈에 들어오더군요. 가능하면 불빛이 적고 시야가 넓은 곳으로 가야합니다. 근데 솔직히 아이들에게 밤늦은 시간에 인적이 드문 산 쪽으로 가라는 결론이 나와서 권장할 수는 없더군요.

별을 관찰하면서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이 감각으로 느껴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언 뜻 보면 별들은 색깔도 똑같고 밝기도 같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저마다 다른 색깔과 밝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별의 색깔은 별을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이며, 밝기는 별의 등급이라는 숫자로 표현됩니다. 컴퓨터 프로그램에 나타난 별과 직접 하늘에서 보고 있는 별을 비교하면서 저 별이 그 별이구나 하고 느낄 때 위치가 기본적인 판단 기준이 되지만, 밝기와 색깔은 그 느낌을 확신으로 바꾸어 주었습니다. 점점 색깔이 느껴지고 밝기가 구별되기 시작합니다. 이게 반복되면 나중에는 밝기와 색깔만 가지고도 그 별이 무엇인지 짐작하게 됩니다. 특히 서울에서 보이는 별들은 당연히 제일 밝은 별들이며, 그 때문에 익숙한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유명한 별자리 마다 대표적인 별들이 있는데, 서울에서 별자리 전체는 희미하게 보여도 대표적인 밝은 별은 뚜렷이 보입니다. 큰개자리 시리우스, 오리온자리 리겔과 베텔게우스(붉은색), 백조자리 데네브, 독수리자리 알타이르(견우), 거문고자리 베가(직녀), 전갈자리 안타레스, 처녀자리 스피가 등등등. 별자리는 전설이나 이야기들이 얽혀 있어서 그 이야기를 조사해서 읽어 보는 것도 재미가 있다고 하더군요. 물론 몇 번 관찰한다고익숙해지지는 않습니다. 저는 한 6개월 동안 지속적으로 관찰했던 것 같습니다.

조금씩 별에 익숙해지다 보면 별자리와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천체에 눈이 갑니다. 밤하늘에 보이는 천체 중 독특한 것은 단연 달입니다. 달은 엄청 크고 밝기 때문에 다른 별과 완연히 구별되고, 모양이 변한다는 것도 쉽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달의 모양 변화와 뜨고 지는 시간의 변화가 관련이 있다는 것이 태양, 지구, 달의 상대적 위치 변화 때문(음력 날짜로 판단하면 됩니다)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실제로 관찰하면서 몸으로 느끼는 것은 색다른 경험입니다. 그 법칙에 익숙해지면 달의 모양과 높이를 보면 대충 시간을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행성이 눈에 들어옵니다. 행성은 달과 달리 겉보기에는 별과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행성이 다른 별과 구분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위치의 독립성입니다. 다른 별들은 상대적 위치가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 전체 모양을 유지합니다. 그래서 눈에 띠는 모양을 가진 별 무더기에 이름을 붙이고 하늘의 공간을 구분해 놓은 것이 별자리의 근원인 것입니다. 그런데 행성은 다른 별들과 상대적 위치가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도 겉보기에는 똑같이 보이지만 뭔가 다르다는 것을 알고 행성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별들과 구별했습니다.  별들 사이를 돌아당기는 것처럼 보여서 ‘행성行星’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일까요? 어쨌든 육안으로 보이는 행성은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5개입니다. 별자리 프로그램을 보면 때때로 이런 행성이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행성들은 지구와 똑같이 태양주위를 공전하기 때문에 아무 때나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내행성인 금성과 수성은 한밤중에는 볼 수 없고 초저녁과 새벽에만 볼 수 있습니다. 금성, 화성, 목성, 토성(붉은색)은 꽤 밝기 때문에 등장만 하면 하늘에서 찾기가 어렵지 않았습니다. 근데 문제는 수성이었습니다. 수성은 금성보다 더 안쪽에 있는 내행성이므로 해가 진 후 잠깐만 보입니다. 이 때 주위가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았고 금성보다는 어두워서인지 저희 집에서는 맨 눈으로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그 때 동원한 것이 집에 있던 30년쯤 된 쌍안경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앞 아파트 건물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던 수성을 보고 뿌듯했던 기억이 납니다. 고생해서 보면 그 만큼 성취감이 크다고나 할까요?

이 쯤 되면서 약간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별을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어졌습니다. 쌍안경은 잠시 볼 때는 괜찮은데 팔이 아파서 오래 들고 보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천체 망원경이 필요해 집니다. 그 당시 우연히 성능이 좋지는 않았지만, 천체 망원경을 얻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별들은 워낙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천체망원경으로 보아도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냥 점으로 보입니다. 단지 시야가 좁아지면서 별이 움직인다는 사실(일주 운동)이 몸으로 느껴집니다. 한 참 보다보면 망원경 시야 밖으로 나가기 때문에, 좌우로 움직이는 망원경을 조작하여 비스듬히 움직이는 별을 쫓아가며 관찰하는 것은 상당한 인내심을 요구합니다. 근데 쌍안경이나 망원경으로 달과 행성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특히 초승달을 망원경으로 보면 태양 빛이 비스듬히 비추기 때문에 명암의 차이로 달이 입체적으로 보입니다. 달의 표면에 높고 낮은 부분이 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지구 바깥에 있는 물체가 구체적 사물로 느껴지는 경험은 참으로 색다른 느낌을 줍니다. 그리고 성능과 배율에 따라 다르겠지만 망원경으로 보면 다른 별들과 달리 행성은 부피가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더 이상 점으로 보이지 않게 됩니다. 부피를 느끼는 것과 함께 행성의 특징에 따라 재미있는 관측거리가 있습니다. 목성은 위성이 매우 많은데 그 중 4개가 워낙 커서 어지간한 망원경으로도 다 관측이 가능합니다. 갈릴레이가 최초로 발견했다고 합니다. 망원경으로 목성을 잘 관찰하면 목성 주위에 4개(목성 뒤에 위치한 위성이 있으면 적어질 수도 있겠지요?)의 점이 보입니다. 그리고 토성은 고리가 보입니다. 갈릴레이는 처음에 토성의 고리를 보고 토성에 귀가 달려있다고 했다던가요? 그리고 금성의 경우 달과 같이 위상 변화가 보인다고 하는데, 저는 아직 못 보았습니다. 그 후 10년 이상이 흘러 요즘은 별로 별을 보지는 않지만 우주에 대한 관심은 내부 깊숙이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하늘과 땅을 다르게 생각했습니다. 하늘의 질서와 땅의 질서는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과 운동 법칙을 통해 천체의 운동 법칙과 지상의 운동 법칙이 똑같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하늘이 땅으로 내려옵니다. 옛날 사람들은 흔히 신이 세상과 생명을 만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생물은 무생물과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화학에 따르면 세상의 모든 물질은 동일한 원소로 이루어져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생물과 무생물은 똑같은 원소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생명의 기원이 물질에 있다는 것입니다. 지질학과 고생물학이 발달하면서 지구가 오랜 세월을 거쳐 끊임없이 변화했다는 것과 생물도 변화했다는 것을 밝혀냅니다. 그리고 생물 변화를 다윈은 진화론을 통해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생물학에서 세포가 발견됩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도 다른 생물과 똑같이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분자생물학의 기원을 열었던 DNA 구조 발견은 화학과 생물학을 같은 근원으로 확고하게 연결시켰습니다. 물리학은 물질의 근원에 대한 연구로 더 나아가 원자를 쪼개고 있습니다. 쿼크라고 불리는 입자를 비롯해 다양한 소립자들이 계속 발견되고 있다고 합니다. 근데 소립자에 대한 연구가 우주 탄생의 이론인 빅뱅이론과 밀접한 관련을 이룹니다. 마르크스인가 엥겔스는 “자연은 인간을 통해서 자기 자신의 의식에 도달한다. 즉 자연이 자연을 인식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끊임없는 자연의 변화가 우리 인간을 낳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아직도 현재 지식만으로 그 변화의 모든 간극을 완벽히 메꾸고 설명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이 독특한 생명체인 인간이 자연의 산물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때때로 그것을 몸으로 느낀 이야기를 들으면 제 몸과 마음도 함께 떨릴 때가 있습니다. 몇 년 전에 수유+너머에서 박문호 박사라는 분의 강의를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때 그 분이 한 말씀 중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 지구에서 우리가 우주 속의 한 행성에 살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는 곳이 있다. 두 군데를 이야기 했는데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하나는 미국, 또 하나는 호주의 사막이었던 것 같습니다. 광대하고 탁트인 황량한 사막 한 복판에서 쏟아질 듯이 떠 있는 별들로 가득찬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자신이 우주 속의 한 행성위에 살고 있다는 것이 몸으로 느껴진다고... 어쩌면 그 순간이 내 안의 원숭이, 물고기, 세포, 원자, 별, 우주를 느끼는 순간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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