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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호 민주적 교육공동체 구현을 위한 제언

2001.02.08 18:31

한만중 조회 수:2246 추천:3

민주적 교육공동체 구현을 위한 제언

민주적 교육공동체 구현을 위한 제언

한 만 중 (전교조 정책기획국장)

1. 논의에 들어가며

담론(譚論)은 현실을 개선해낼 때라야 쓸모가 있다. 지난해 하반기의 이른바 "교실붕괴" 담론은 아직 진행중이긴 해도 담론으로서 이미 얼마큼 구실을 했다.  학교의 위상과 역할을 살피는 계기가 되었고, 교육재정 확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넓히기도 했다.  전교조가 학교살리기 운동을 내걸고, 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가 교육살리기운동본부를 세운 것도 그 운동적인 수용이라 하겠다. 그러나 문제 해결 방안을 둘러싼 갖가지 목소리1)는 이론적 지향이 서로 달라서 좀처럼 좁혀지기 힘들다.

 지난 10월 24일 교육연대에서는 지금의 교육위기를 타개할 다양한 논의가 벌어졌다. 교실붕괴론을 본격 제기한 이인규 교육연대 정책실장이  그간의 논점을 정리하여 "시민사회 기반 학교혁신의 방향과 과제"를 내놓은 것을 비롯하여 공교육 강화론과 탈학교운동론쪽의 개혁론도 제출되었다. 이 자리에서 이인규는 자율학교 전면화를 대안으로 내놓았다. 미국의 차터스쿨(헌장학교)를 모델로 한 이 제안은 그 이론적 배경인 '시민사회의 역할론'과 더불어, 논의를 그 방법론과 주체의 문제로까지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러나 이 제안은 담론 자체의 자가발전이 아니냐는 의구심도 지울 수 없다. 현실의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교육운동 주체간의 인식의 차별성만 따지는 논쟁은 운동 주체간의 실천의 통합성을 가로막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글에서 한국의 교육현실에서 나타난 몇가지 징표들과 교실붕괴 담론의 연관성을 밝힐 생각이다. 모든 이론/담론의 판단 준거는 현실 그 자체이므로.  

2. 학교 붕괴의 사회학

현상 진단 1.

올해 상반기에 조기유학 허용 방침을 밝힌 교육부가 반발 여론을 감안하여 고등학교 이상에게만 허용한다고 입장을 바꿨지만 유학 알선 업체들이 연 유학 박람회에는 초 중등 학부모 3만여명이 구름처럼 개미처럼 몰려들었다. TV에서 '교실 붕괴'의 보도를 접한 중/상류층 학부모들 사이에 '이런 학교에 내 자식을 보낼 수 없다.'는 심리가 퍼져 나갔기 때문이다. 간디학교, 푸른꿈 학교 같은, 입시 교육을 탈피하려고 세운 대안학교의 경쟁률이 높아진 것도 그 맥락이다. (이른바 문제 학생이 아니라) 스스로 학교 교육을 거부한 학생과 학부모들이 탈학교연대 모임을 만들었고, 이들은 자신의 논리를 가다듬어 '학력 사회의 철폐'를 부르짖고 있다. 서태지 신드롬 이후에 '졸업장은 가지고 나가야 하지 않느냐'는 심리적 기제마저 무너지면서 이러한 움직임은 빨라지고 있다.

이러한 시류에 대해 조선일보와 매일경제신문은 획일화와 교직사회의 정체성을 그 원인으로 꼽고, 시장 경제 원리에 의한 학교의 재편을 내세운다.2)  공교육에 대한 불신은 중산층 이상의 학부모들 사이에서 특히 높아지고 있으며 이를 대변하는 이데올로기가 요란스레 나도는가 하면, 대안을 그리는 집단이 세력을 이뤄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움직임은 공교육의 위기 상황을 객관화하고 그 대안을 찾으려는 취지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보인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공교육의 강화 대신에, 시장 경제의 원리에 터한 교육 개편과 "선택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허울 아래 일부 계층의 교육적 욕구만 충족시키는 교육정책이 행세하는 한편, 학교 교육은 그 위상과 역할이 끊임없이 움추러드는 지경이다.3)

현상 진단 2

분당의 어느 중3 학생이 14등에서 16등으로 떨어진 것을 비관하여 자살한 일이 있었다. 이 학교에서는 벌써 3년 사이에 세명의 학생이 자살을 했다누나. 그러나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무한 입시경쟁 체제의 비평준화 지역이 평준화지역보다 오히려 학업성취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경기도 교육청이 한국교육개발원에 의뢰한 연구 조사 결과) "획일화된 학교와 입시체제가 공교육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학력수준의 저하를 불렀고, 수준이 다른 학생들을 획일적 수업으로 몰았기 때문에 학교가 붕괴되었다."는 몇몇의 주장은 이번 연구 조사 결과 설득력을 잃게 된 것이다.  

11월 7일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이재정의원은 초등 1학년 수학교과서를 가지고 나와 교육부 관료들에게 연습문제를 풀어보라고 요구하였다. 7차교육과정이 초등 1학년한테(!) 100단위의 연산 문제를 요구하는 것임을 까발린 것이다. 전교조가 한길리서치에 의뢰해서 전국의 800명에게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교사들은 7차 교육과정이 중단되거나 수정 고시되어야 한다는 의견에 65%가 동의하였고, 교육부의 원안대로 실시하여야 한다는 교사는 0.3%에 불과하였다. 조선일보, 문화일보 중앙일보에서 7차의 문제점을 집중 보도하자, 교육부장관은 7차교육과정의 수준을 낮추어 시행하겠다는 어정쩡한 입장을 보였다. 학생의 선택권을 보장하고 수업의 질 개선을 위해 들여왔노라던 7차교육과정이 본격 시행을 앞두고 좌초의 위기에 빠진 것이다.

한편 교육부는 지난 11월 3일 외국인 학교에 내국인 학생들의 입학 자격을 완화하려던 법 개정 작업을 철회한다는 입장을 공식으로 밝혔다. "내국인의 외국인학교 입학 자격을 현행 3년 이상 해외거주 학생에서 2년 이상 거주자로 완화할 계획이었으나 교원 및 사회 단체의 교육기회 불평등을 주장하는 거센 반발에 부딪쳐 이를 백지화한다" 는 것이다. 그간 교육부가 자립형 사립학교 도입과 함께 이른바 선택권을 보장한다는 구실로 밀고온 대표적인 정책 하나가 후퇴한 것이다.

현상 진단 3. 교실붕괴의 피해자에서 주체로서의 자기 선언

지난 11월 5일 경희대에서 '학생의 날' 맞이 청소년 대축제가 "2000, 다시 찾은 학생의 날" 이라는 제목으로 열렸다. 전교조 경남 창원지회에서 연 학생의 날 행사 "한얼제"에는 교사와 학생 5천여명이 참여하였고 학생들이 사회와 행사 진행을 맡아 진행하였다. 작년부터 전교조 문예위원회가 주관하여 연 청소년 영화제는 올해에는 작품수나 수준에서 괄목할 발전을 이뤘고, 한겨레신문사와 서울시 교육청이 주관하고 있는 동아리한마당은 각 학교의 동아리 모임을 활성화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다.

또 주목할 부분은 14만 명이 참여한, 인터넷 공간의 두발 자유화 요구 서명이다. 교육부는 이를 수용하여 '학교 단위의 토론회를 개최하여 학칙을 개정하라'는 지침을 내려보냈다. 학생들의 요구와 주장은 다음 글에 압축돼 있다.

청소년 왭연대 with가 어른들에게 드리는 글 중에서

『..... 14만명의 서명인단과 2만개가 넘는 게시판의 글은 단순히 머리를 기르고 싶어서, 혹은 반향을 위한, 반란을 위한 목소리가 아닙니다. 선생님의 제자로서, 부모님의 아들·딸로서, 미래의 주인공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동반자로서 인권을 말하는 겁니다. ....중략....

학생이 학교의 주인이라고 입버릇처럼 말만 하시지 말고 학교 운영에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해야 합니다. 시행착오를 겪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또한 배우는 과정이며, "교실붕괴"로 인해 사제 간에 무너졌던 신뢰를 회복할 기회입니다.

50명이 선풍기 4대로 여름을 이겨내야 하는, 한달에 한 번씩 자신의 물건을 모두에게 내보여야 하는, 잘못을 시정받기 전에 매부터 맞아야 했던 학생들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동반자로서 인정받아야 합니다. 대학을 가기위해 현재의 삶을 포기할 것을 강요받는 존재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기본권을 가지고 있는 존재입니다...』

열악한 교육환경과 입시위주 교육의 폐해로 최소한의 인권조차 빼앗겼던 학생들이 주체선언을 통해 자신을 교실 붕괴의 해결 주체로 내세우고, 자각적인 행동에 들어간 것은 기특한 일이다.

3. 교실붕괴와 공교육 와해 전략의 상관성

전교조가 결성되던 1989년은 해마다 2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입시경쟁 교육의 희생양이 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참담한 상황이었다. 학생의 전인적 발전을 북돋고 사회성을 길러주어야 하는 학교 교육이 학력간의 임금 격차가 구조화된 사회에서 입시제일주의 교육으로 전락함으로 하여 학교가 아이들을 죽이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문제가 그대로 남아 있는 가운데, 학교 밖에서 불어온 변화의 바람, 특히 정보 문화 산업의 급속한 발전으로 말미암아 청소년은 감각적 소비 문화의 주체로 탈바꿈하였다.4) 반면에 IMF 사태 이후 더 깊어진 빈부 격차는 교육에 의한 계급재생산 구조를 굳혔다. 가난한 집안 학생들의 성공담은 한갓 신화임을 학생들도 너끈히 깨닫게 되었다.5) 앞에서 살펴본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은 부모의 경제력이 학생의 학습력과 문화수준을 결정하는 것을 정당화하고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할 점은 학교 붕괴 현상이 실업계 학교와 서울 등 대도시의 학교에서 널리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현상은 이미 교육을 통한 신분 상승의 희망조차 잃어버린 실업계 학생들과 학교 교육을 단지 내신성적과 졸업장을 타내는 곳으로만 여기는 부유계층의 학교에서 가속이 붙었다. 유아교육의 공교육화도, 중학교 의무교육도 제대로 실시하지 못하는, 허약한 우리 공교육은 수행평가의 과제까지도 대행해주는 기민한 사교육의 창궐로 하여 더 약해지고, '교육을 통한 신분 개편'의 신화도 IMF 뒤로 무너졌으니 학교 붕괴는 필연적인 경로가 아닐 수 없었다.

현 정부가 2000년에 들어와서 본격적으로 추진하고자 했던 조기유학 허용, 자립형 사립학교 도입, 외국인학교에 내국인 자녀 입학 허용 등의 일련의 정책은 획기적인 교육재정 투자와 교사 충원, 교사와 학생들이 요구하는 교육과정의 도입 등 교육에 대한 국가의 책무성을 각 개인들에게 떠넘기는 정책으로 일관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정책은 그나마 부실한 공교육의 토대를 더욱 약화시키면서 공교육의 위기를 부추기게 된 것이다.6)

또한 현 정부는 그간의 암기위주의 평가를 지양하고 학생들의 다양한 특기와 적성을 고려한 입시정책으로 전환하였다고 뻗대고 있지만 실제 학생과 학부모는 한 줄 서기에서 '여러 줄 서기'로 형식만 살짝 바꾼 입시제도에서 오히려 더 무거워진 사교육비를 짊어지느라 허덕거리게 되었다. 이것은 7차 교육과정의 도입으로 예ㆍ체능 과목의 비중이 오히려 줄었고 대학입시에 경쟁력을 갖출 만큼의 특기 적성 교육이 이루어지지 못한 실정에서 빚어지는 필연적인 결과이다.

과외허용조치 이후 한국 교육의 근본 문제점에 대한 수많은 토론의 결과, 국민 대다수는 공교육의 내실화가 최우선이라는 데에 합의했고, 이를 위해서는 교육세를 비롯한 부담을 떠안을 뜻을 밝혔다. 이러한 국민적 요구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가 일부 계층만 대변하는 교육정책을 밀고 온 것이 지금의 교육위기를 더욱 부추키고 있는 것이다.

4. 자율학교 전면화론에 대하여

교육연대가 지난 5월, 민간기업까지 포괄하여 만든 교육살리기 운동본부는 당면 사업으로,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불합리한 규제를 없애고 학생 자치를 북돋는 학교규칙 개정 운동, 도서관 살리기 운동, 열악한 교육환경을 개선할 아름다운 학교 만들기 운동, 교직문화 개선 운동을 펼쳐왔다. 그 일환으로 열린 10.24 토론회에 나온 이인규의 발제를 잠깐 살핀다. 그는 학교붕괴의 주요인의 하나로 학교에 대한 온갖 법적 규제를 들고 있다. 식민지와 군사 권위주의 시대가 낳은 온갖 직간접 규제 장치가 학교의 획일성을 강요하였고, 학과 결정, 교육과정 및 교과서, 학교 설립, 학교 조직 및 내부 규정에 관한 중앙 규제 장치들 때문에 학교는 변화에 능동적으로 맞서지 못하고 지체되어 있다는 얘기다. 그 해결책으로, 현행 교육법에 적혀 있는 자율학교 설치 조항을  전면화하여 이 학교에 교육운동 세력이 참여하여 학교를 바꾸어 나가자는 것이다. 교원의 자격 학사력, 학년제, 교과용 도서의 사용, 수업연한 등에 대해 자율권을 부여받은 자율학교의 틀 안에 교육시민운동의 내용을 수렴하자는 내용이다. 실제 획일화된 교육과정과 교과서, 행정중심의 교원조직, 획일화된 교육환경은 학교의 생명력을 소진시키는 주된 원인의 하나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획일화에 대한 진단과 해결책에서 이 주장은 상당히 걱정스러운 내용을 담고 있다.

교육을 통한 계층 재생산 구조가 더 굳어지는 사회에서 학교 교육은 좁은 문을 다투는 경쟁으로 치닫게 되고 이 거대한 압력이 교육과정 운영의 획일화를 강제하고 있다(이른바 '대안학교'들에서도 진학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작지 않다). 이러한 근본 현실에서 고개 돌린 채 현행 교육법 상의 자율학교 조항을 확대 적용할 때 어떤 결과가 빚어질 것인가? 지금 정부가 호시탐탐 노리는 자립형 사립학교와 자율학교가 공립학교에도 확대될 경우에 입시 명문을 지향하는 자율학교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날 것이 뻔하다. 필자는 이 글에서 '학교 거점을 중심으로 그 동안 시민사회의 주장을 반영한 다양한 실험들이 이 학교에서 행해지고 이러한 실험을 통해 학교 혁신의 상을 확산할 수 있으면 이것이 바로 학교 붕괴를 해결하는 가장 큰 열쇠'라는 순수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지만 현실은 관념론에 갇힌 그 선의를 얼마든지, 기꺼이 배신한다.

일선 학교에서 학생들의 요구를 반영한 다양한 교육이 이뤄지려면 국가 중심의 교육과정의 해체와 교과서 제도의 혁신, 교사에게 진로권고권 수준의 평가권 부여가 실현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 이러한 제도 개선이 없는 상태에서 자율학교 전면확대론이 들어오면 입시명문고로서의 회귀를 바라고 있는 기존의 공립 명문고와 사립의 자립형 사립학교가 짝짜꿍 맞추어, 현행 평준화체제를 와해시킬 것이 뻔하다. 이것의 모델이라 할 미국의 헌장학교(Charter School)7) 의 실제 성과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가 적지 않은 터에, 교육적 토대가 다른 한국에 들여왔을 경우에 어떠한 문제를 일으킬지도 따져야 한다.8) 본질적인 제도개혁을 동반하지 않은, '다양화' 실험은 오히려 교육불평등 구조를 굳히는 데 복무할 것이다.

이러한 위험성은 '시민사회 주도'의 학교개혁론 그 자체에서 비롯된 것이다. 시민사회가 국가와 자본에 대한 균형추로서 구실하고, 교육부문에서도 자본의 개입을 교육시민운동단체가 맡아야 한다는 이 주장은 지금의 교육운동 지형을 저희 멋대로 규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기본 교육복지조차 결여된 교육후진국에서, 국가권력은 선택의 자유를 빙자하여 오히려 교육에 대한 책무성을 걷어내려는 마당에, 시민사회 아니 시민교육운동단체가 서있을 중립(?)의 자리는 대관절 어디인가?( 교육부는 내년도 중고교 수업료를 9% 인상하겠다는 방침이다. 강원도 교육위원회는 지방재정교부금을 지방세로 전환하고, 탄력세율을 적용한다는 교육부 2001년도 예산안에 대해 반대 성명를 낸 바 있다!)

5. 학교 붕괴 해결을 위한 제언 (민주적 교육공동체의 기반 확보를 중심으로)

1) 공교육의 역할과 기반 강화

프랑스 공교육의 선도자 꽁도르세는 말하기를, 교육의 목표는 각 세대의 사람들로 하여금 신체적, 이지적, 도덕적 능력을 계발하게 하여 인류에게 유익한 방향으로 삶의 질을 개선해 나가는 데 있다 하였다. 미국의 호레이스만도 다른 사회 조직은 기껏해야 사회적 질병을 치유하고 교정하는 일을 할 뿐이지만 학교는 그 질병을 예방하고 교정하는 일까지 떠맡으며 각자가 지닌 천부적 재질을 발현케 하는 유익한 제도라고 하였다. 학교를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통과의례와 자본이 요구하는 기능인력의 공급소로 규정할 때 인류가 교육을 통해 추구해온 모든 가치는 빈 껍데기가 되고 학교는 무한 경쟁 사회를 위한 예비훈련장이 되고 만다.

학교가 공동체성을 잃어버릴 때 아이들은 학교를 거부하고, 바로 사회에 흩어져 들어가 사회적 갈등과 비용을 급등시킨다. 학교 붕괴를 막는 첫 걸음은 무한궤도를 치닫는 신자유주의 패거리들의 발목에 딴지를 걸어 자빠뜨리는 일이다. 파울로 프레일리는 말년의 저서에서 교사에게는 "무장된 사랑" 이 필요하다고 부르짖었다. 교사 개개인이 겸손과 관용의 마음가짐으로 참교육에 고투하는 것뿐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실천 행위 또한 교사의 막중한 소임이라는 말씀이다. 학교에 겨우 첫 발을 디딘 코흘리개 아이들을 우열반으로 나누어 딱지를 붙이는, 반사회적 교육정책에9) 대해 '아니오!' 외치는 7차교육과정 철회 투쟁은 그런 뜻에서 우리의 미래를 위한 투쟁이다.  

2) 국가의 교육의 책무성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의 수립

5.31 조치 이후 현 정권까지 교육정책 수립의 배경은 지식기반사회론이다. 무한경쟁시대에 살아남으려면 인적자원의 계발에 국가의 명운을 걸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들이 모델로 삼은 유럽 국가들은 1960년대 이후 꾸준히 교육에 투자해 왔고 신자유주의가 요란스런 가운데서도 교원증원과 학급당 학생수 감소를 위한 투자를 벌여 왔다. 그러나 IMF 이후 우리나라의 교육재정은 오히려 찌그러들었고 2001년도에 22%가 증액되었다고 하나 여전히 고등학교의 학급당 학생수는 48명을 웃돈다. 올 하반기에 시끄러웠던 교육자치와 일반자치의 통합, 교육재정과 일반재정의 통합 같은 논의는 실제 중앙정부가 더 이상 교육부문 투자의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경제관련 부처의 속셈이 여실히 드러난 것이라 하겠다.

그러니 국가의 교육에 대한 책무성을 높이려면 전국민적인 교육재정확보 운동을 벌이고, 교원노조도 단체교섭의 현안으로 교육환경개선과 교육재정 확보 과제를 정하여  '국민 교섭'으로 펼쳐야 한다. 이 맥락에서 전교조 부산지부와 교육청이 '냉난방 시설 설치'를 단체협약으로 체결하기로 합의한 것은 환영할 일이다. 이 성과를 바탕으로 교원노조의 단체교섭을 국민적 요구를 수렴한 국민 교섭으로 발전시키고, 교육시민운동단체가 이 일을 거들 방안이 한껏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교육운동단체는 각 시도의 교육예산 편성과 정책수립 과정에서 학교 교육을 내실화할 전략을 세워서 힘껏 밀고가야 한다.

주--------------------------
1
) 교실붕괴 담론을 공론화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한 이인규 교육연대정책실장은 최근에 이러한 입장을 1) 탈산업사회의 등장에 따른 탈학교화의 흐름으로 설명하는 입장 2) 사회화 과정을 달리하는 세대간 문화 갈등으로 보는 입장 3) 정부주도 교육개혁 실패로서의 학교 붕괴 현상 4) 급진적 자유화에 학교붕괴 원인을 두는 입장으로 정리하여 발표하였다. [학교 혁신 쟁점과 과제-교육개혁 시민운동 연대 토론회 자료집 중 이인규 발표문 시민사회 기반 학교혁신의 방향과 과제 p9-11]
2)  조선일보 2000. 5.22일자 6면 김원식 논설위원 논단
 첫째 사교육에서는 능력별 선택이 가능하고 공교육에서는 획일적 선택을 강요받는 현실부터 개선해야 한다. 학생을 배려하는 공교육이라면 당연히 학생 수준별 강의의 차별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둘째. 사교육은 교사의 퇴출이 있으나 공교육은 없다. 사교육에서는 잘못 가르치는 교사는 즉시 퇴출되거나 강사료를 낮춘다. 그러나 공교육은 잘못 가르쳐도 정년이 보장되고, 봉급도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학생 성취도에 따라 교사에 대한 임금보장체계를 만들고 책임교사는 외부 채용하여 실적이 없을 경우에 퇴출시켜야 한다.
셋째, 사교육 현장은 따뜻하고 공교육 현장은 춥다. 따라서 학생은 공교육 현장 자체를 기피할 수밖에 없고 교육 성과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3) 지식기반사회를 맞이하여 인적 자원 개발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교육부를 '교육·인적 자원 개발부'로 개편하고, 초중등 교육의 주요 권한은 시도 교육청으로 이관하겠다는 방침은 결과적으로 교육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줄이려는 것이다. 자립형 사립학교 도입, 외국인 학교에 내국인 입학 허용, 과외와 조기유학 허용 등 상류 계층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책들이 도입되면 보통교육 기관으로서 학교의 역할은 약해진다.
4) `전교조 고양지회에서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 조사 결과에서 러브호텔을 이용한 학생들이 4%가 넘는다는 결과는 퇴폐 소비문화에 적나라하게 노출된 우리 아이들의 실상을 보여주고 있다.
5) 서울대 생활연구소가 2000년 신입생을 대상으로한 아버지의 직업분포는 괸리 전문직이 49.8%로 생산직 노동자 9.3%에 비해 5.4배 일반 사무직 16.9%에 비해 3배나 많은 것으로 나나났다.(동아일보 2000년 11월 15일자)
6) 지난 11월 12일 일요스페설에서는 강남의 한 학교에 한 반 정도의 학생이 조기유학을 떠나면서 많은 문제점을 발생시키는 한편으로 외국의 한 학교에 40명 이상의 한국 학생들이 입학하면서 최소한의 영어 회화 능력도 기르지 못한채 방과후 교육활동에조차 참여하지 못하는 조기유학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바 있다.
7) 헌장학교는 학교공동체의 신청에 의거하여 특정법 적용 및 행정규제를 면제받는 공립학교를 말하며 1992년 미네소타주의 한 학교에서 시작된 이래 현재 미국 전역에 약 1,100개 학교로 확산된 상태이다.
8) 현재 미시간주의 헌장학교 중 70%가 사기업에 의해 운영되는 등 수익사업의 목적으로 헌장학교에 교육자본이 침투하는 등의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미국의 헌장학교 현황과 문제점] 교육평론 참교육 2호 p 216-227쪽을 참고할 것
9) 초등학교 1.2학년에게 2000년도부터 도입된 7차교육과정은 아이들을 보충반 심화반으로 나누어 가르치는 것을 원리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