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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호 [해외동향] 프랑스 사르코지 교육정책에 맞선 투쟁

2010.01.05 12:55

진보교육 조회 수:1935

[해외동향] 프랑스 사르코지 교육정책에 맞선 투쟁  

김길수 / 여의도여고

   사르코지 정부의 교육 방향은 2008년 1월 국가교육부와 연구 및 고등교육부 두 부처에서 발표한 교육정책을 통해 구체화되었다. 초중고 교육을 책임지는 다르코스 국가교육부 장관은 교사들 파업으로 학교 수업이 마비될 경우 갈 곳이 없는 아동들을 돌볼 서비스 제도 도입, 초등학교 교육 프로그램 개선, 학습 부진아를 위한 주말 교실 개설, 학교 선택제를 포함하는 학군제 변경, 교사 처우 개선 그리고 2012년까지 85,000여 명의 교원 감축안을 제시했다. 한편 대학과 연구분야를 담당하는 뻬크레스 장관은 대학 자율화 및 석사소지자로 교사자격을 제한하는 것을 뼈대로 한 개혁안을 발표했다.
   이러한 개혁안으로 자신들만이 침체에 빠진 프랑스 교육을 세계 정상에 오르게 할 수 있다며 교육 단체들과 충분한 협의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려던 오만한 사르코지 정부는 교육계 전 영역에서 저항에 부딪혔다.
   먼저 대학의 경우, 교수들과 대학생들은 대학 자율화란 국가의 책임인 교육을 대학에 떠넘기는 것이며, 그런 방법으로는 대학들이 살아남기 위해 돈이 되는 학과 중심으로 운영되고, 기초과학 및 인문학은 존재 기반을 잃게 될 것이라고 판단한다. 아울러 재정 확충을 위한 등록금 인상이 뒤따를 것이며, 따라서 저소득층 자녀의 대학 입학이 더 어렵게 되면서 교육불평등을 심화시킬 것으로 평가한다.
   또한 교육관계자들과 학생들은 3년 과정의 대학을 졸업한 후 교사 양성을 위한 대학부설기관에서 1년 이수한 다음 임용고사에 통과하여 1년간 유급 수습교사로 근무하다 교사로 임용되는 현 제도를 고교 졸업 후 학부와 석사과정 5년 교육을 마친 다음 임용고사에 통과하여 연수기간 없이 직접 교육 현장으로 투입되는 개혁안으로 대체하려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정부안 철회를 위해 파업과 시위로 맞서다가 지난 2009년 봄에는 거의 한 학기동안 대학을 봉쇄하면서 대학교육과 행정을 마비시키며 격렬하게 저항하였다.
   한편 초중등 교사와 고등학생들은, 교사 감축은 학급당 학생수(현 고교의 경우 30-32명)의 증가로 이어지면서 교육의 질을 떨어뜨릴 것이 자명하므로 개혁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파업과 시위로 대항했다.
  
그러나 대학생, 교수들의 계속된 반대 시위에는 꿈쩍안하고 마이웨이를 고집하던 정부도 고등학생들의 격렬한 시위 앞에서는 한발 물러섰다. 즉 대학담당 뻬크레스 장관은 정부안의 어떤 양보와 흔들림도 없이 버텼지만 국가교육부 장관 다르코스는 2008년 12월 15일 초중고 개혁안을 보류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이와 같은 초중고 안의 후퇴는 2005년 내무장관 재임시 파리 슬럼가 한 젊은이가 경찰에 쫓기다 송전탑에 감전사 당한 사고로 촉발된 소요 사건에 의해 파리가 화염에 휩싸인 것을 본 사르코지 대통령이 매일매일 격해지는 고등학생 시위가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보류 발표 후 사르코지 정부는 크리스마스 방학과 함께 시위가 잦아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정부 속내를 간파한 학생들은 개학 후에도 정부안이 완전히 철회될 때까지 싸우겠다며 버티자 정부는 리샤르 데스꼬잉 정책연구소장에게 새로운 고교 개혁안을 의뢰했다. 자신의 개혁안을 더 이상 추진하지 못하게 된 다르코스 교육부 장관은 2009년 6월 개각에서 노동·사회관계·연대·가족부 장관으로 이동했다. 1968년부터 1992년까지 20여년 이상 중학교, 보르도의 미셀 몽테뉴와 파리 루이 르 그랑 고등학교 그랑제꼴 준비반에서 문학 교사로 교단에 선 경력이 있는 다르코스는 교육부 장관으로서 좋은 이미지를 안고 출발했지만 이렇듯 고등학생들의 저항 앞에서 정부대변인이자 쇼몽시 시장인 뤼끄 샤뗄에 자리를 내주고 물러서게 된 것이다.
   2009년 10월 13일 사르코지 대통령은 다시 모든 교육관계자들 앞에서 데스꼬잉의 고교 개혁안을 발표했다. 발표에 앞서 그는 새로운 안은 “출생에 따른 특권에 종지부를 찍고, 프랑스 학교가 엘리트를 양성하도록 하며, 성공은 출신 성분이 아니라 노력과 능력을 통해서 이루어지도록 하고, 정의의 원칙과 함께 효율성을 강조”한다고 말한다. 새로운 안이 제시한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계열선택을 잘못한 학생들이 계열을 변경 가능하도록 제도를 수정한다.
   2. 적성과 관계없이 자연계에 과도하게 우수학생이 몰리고, 인문계열이 쇠퇴하는 현상을 보완하도록 계열을 조정한다.
   3. 현재 주 28시간 수업 중 2시간을 개별보충지도 시간으로 할당한다. (과목 및 시간 조정은 학교가 자율적으로 배정)
   4. 외국어를 하나 이상 구사할 수 있도록 외국어 교육을 강화한다. (대학입시에 구술시험 도입을 검토)
   5. 학교에 씨네클럽 개설, 지역문화 단체와 연계 등을 통해 문화 교육을 강화한다.
   6. 고교생의 자율권 강화한다.

   이와 같은 새로운 고교정책안에 대한 교사와 학생들은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
   한 마디로 15쪽에 달하는 대통령의 훌륭한 교육정책은 말의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 상속세 감세, 증여 가능 한도의 증가, 재산세를 감소하는 정부가 교육불평등을 해소하겠다면서 교육 예산을 매년 5%씩 줄이고, 2012년까지 교사를 85,000명을 감축하겠다는 안을 여전히 철회하지 않은 채 제시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중등교사들로부터 가장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중등교원노조(SNES-FSU)’는 성명을 통해 새로운 정책은 ‘학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들의 문제, 학급당 학생 수 감소, 지속되고 있는 근무 조건의 악화, 처우 개선 등 어느 것도 해결하지 못한다’라며 정부안을 거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고등학생 제 1의 단체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고등학생 연맹(FIDL)’은 ‘FIDL News’ 11월 호에 대통령이 제안한 ‘진로지도, 개별지도, 새로운 시대에 맞는 교육’은 구체적 실현 방안이 결여되었으며 그들이 요구해온 문제들(과밀학급, 교육불평등, 학교폭력, 부진아 과외지도, 게토화된 슬럼가의 고교)에 대해 어떤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는다며 정부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그림  마르세유 거리에서 시위 중인 교사들, SNES-FSU 마르세유지부 제공


   이처럼 경제적 뒷받침 없이 더 나쁜 조건에서 더 열심히만 하라고 등떠미는 정부에 교사, 대학생 그리고 고등학생들은 11월 24일 하루 파업을 하며 다시 거리로 나섰다. SNES-FSU에 따르면 이날 하루 전국에서 40% 가까운 중등교사가(교육부는 12,26%라고 주장) 이날 파업에 참여했다고 한다. 무노동 무임금이 적용되는 프랑스에서 파업에 동참하는 것은 그만큼의 경제적 손실을 의미한다. 교육부 발표를 존중한다 해도 그 참여율이 아주 높은 것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그림  파업 중인 고등학생들, 11월 24일 르 몽드


   이처럼 여전히 교육주체의 요구와 거리가 먼 사르코지 정부의 새로운 고교정책안을 교육단체들의 단결된 힘으로 저지시킬 수 있을 지 좀 더 지켜보아야 할 것 같다. 정부의 단호한 입장과 주 2시간 개별 보충지도에 의해 수업시수가 감축되는 해당교과교사들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위의 프랑스 상황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친서민 정책을 펼친다면서 교육․복지 예산을 감축하고, 부유층 감세정책 유지라는 모순과 위선에 가득찬 MB 정부와 그에 힘겹게 대항해야 하는 교육단체를 보는 것 같다. 다른 점이 있다면 프랑스에는 자신들의 교육의 질을 고민하며 개선을 요구하는 고등학생 단체가 있고, 이들을 교육의 한 주체로서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청소년을 보호대상의 미성년으로만 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으로 볼 때 학생들과 함께 시위하는 교사들은 감정절제를 하지 못하는 철부지 아이들을 선동하는 무책임하고, 사회 혼란을 야기하는 사람으로 사회 지탄의 대상이 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만 18세만 되면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자기 삶을 스스로 책임지어야 하는 성인이 되는 프랑스 청소년들에게 사회문제는 바로 그들 자신들의 문제이며, 이들의 사회참여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끝으로 프랑스 교육운동의 한 축인 고등학생 단체들을 간략히 소개하는 것도 프랑스 사회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듯하다. 주요 4 단체는 다음과 같다.
   1987년 창설된 FIDL은 2009년 현재 회원 7,000명으로 구성된 제 1의 고등학생 단체이고, 다음으로 1994년 만들어진 ‘고등학생 전국연합(UNL)’이 6,000여 명, 세 번째는 ‘연대, 통일, 민주적인 고등학생(SUD)’가 900명, 끝으로 금년에 창립된 ‘고등학생의 힘(Force Lycéenne)’이 있다.
   이 수치는 2009년 바깔로레아 응시자수(622,322명)만으로만 비교하면 조직률이 아주 미미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적극적으로 조직활동에 참여하는 학생수를 의미하며, 각종 현안에 따라 수업을 거부하거나 시위에 참여하는 학생수와는 큰 차이가 있다. 이들은 대학생, 교사 단체와 유기적으로 연대하지만 자신들의 활동에 있어 독자성을 잃지 않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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