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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호 담론과 문화> 덴마크와 스웨덴 학교를 가다.
2018.10.27 16:04
담론과 문화>
덴마크와 스웨덴 학교를 가다.
타라(진보교육연구소 문화연구분과)
북유럽 교육기행이 한차례 휩쓸고 간 자리에 북유럽풍 실내 인테리어와 스칸딕 데디 육아법이 유행하고 있다.거슬러 올라가보면 2008년 후쿠타 세이지의『핀란드 교육의 성공』이라는 책의 번역 출간이 북유럽 교육에 대한 관심의 시작이었다. PISA 2000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핀란드 교육을 이슈로 한 기사들이 연일 쏟아지면서 곳곳에서 기획 영상들이 만들어지고 교육정책가들을 필두로 한 교육성지순례가 이어졌다. 그리고 핀란드 교육에 대한 과도한 열풍을 비판하는 그룹에서는 2010년『덴마크 자유교육』(송순재)을 소개하면서 덴마크의 행복교육을 한국교육의 대안으로 제시하며 이에 가세한다.
국내의 북유럽교육 열품으로 보자면 핀란드, 덴마크에 이어 스웨덴이 그 다음을 잇고 있다. 스웨덴교육은2002년『스웨덴 쑥쑥교육』(코모토 요시코)이라는 번역서가 있었으나 교육 관련하여 조명을 받은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한 손에 카페라떼를 들고, 한 손으로 유모차를 미는 아빠들을 칭하는 ‘라떼파파’는 스칸딕 데디의 전형적인 모습을 담은 신조어이다. 양성평등이 실현된 스웨덴에서 양쪽 부모는 모두 동등하게 육아의 책임을 분담한다. 그런가 하면 ‘평등’이 최우선의 가치로 존중되는 스웨덴은 북유럽 국가들 중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의 가장 빠른 도입으로 학교의 시장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폭염의 끝자락에서 출발한 덴마크와 스웨덴의 학교 방문은 내겐 새로운 경험이었다. 북유럽 교육에 대한 막연한 선망보다는 전 지구적인 신자유주의 흐름 속에서 그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에 주로 관심이 있었지만. 그러나 짧은 외국어 탓에 그들 사회와 교육 현실에 대한 깊은 이해는 어려웠다. 통역가의 해석에 의지하여 대충 맥락을 꿰어 맞춰가며 주마간산격으로 살펴볼 뿐이었다. 교사로서의 촉과 시각에 의지하여 분위기를 감지하는 정도라고나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회와 학교를 거닐면서 그곳 사람들에게 직접 듣고 느끼는 것은 텍스트와는 다른 현장감을 준다. 이 글은 덴마크 3개 학교와 스웨덴 2개 학교 방문에 대한 필자 나름의 주관적인 인상을 기록한 것이다.
로스보르그 김나지움(Rosborg Gymnasium)
덴마크 남부 베일레 지역의 로스보르그 김나지움은 언어, 예술,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4트랙으로 구성된 후기 중등 공립학교이다. 덴마크의 공립학교는 한국의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 1학년에 해당하는 공립기초학교와 후기 중등학교로 구성된다. 공립기초학교인 폴케스콜레(Folkeskole)는 총 9~10년 과정으로 만 7~16세 학생들이 다닌다. 후기중등학교는 만 17~19세 학생들이 대상이며 김나지움, 직업교육, 개인프로그램으로 나뉜다. 이 중 김나지움은 대학 진학을 목적으로 한 학생들이 입학한다.
1500명 가량의 학생이 다니고 있는 이 학교 공간은 쾌적하고 예술적이다. 큰 탁자와 원색의 쇼파들로 가득한 넓은 휴게 공간, 다양한 이야기 공간, 아침 회합과 파티를 할 수 있는 식당 겸용 다목적홀, 드라마실, 밴드 연습실, 다양한 기타와 악기로 가득한 음악실, 집진기가 갖춰진 과학실, 무용실, 채광이 좋은 너른 마룻바닥의 체육관 등 학습 공간들이 무척 다채롭다. 교실은 실내와 실외로 바로 연결되는 구조이다. 미적 감각이 돋보이는 공간들은 예술가들과 학생들이 함께 디자인한 것이다. 게다가 중앙홀 천장에 달린 새 조형물이나 벽면의 그림들은 일종의 공공재로 예술가들이 주기적으로 교체해준다. 도서실이 없다는 것이 좀 의아했으나 학교에서 불과200m 떨어진 곳에 악보집까지 갖춰진 아담한 지역 도서관이 있다.
로스보르그 김나지움의 비전은 혁신(innovation)과 창의(creativity), 그리고 기업가정신(enterpreneurship)이다. 3년 전 재설정된 이 비전들은 덴마크 교육의 역량중심교육과정으로의 변화상을 반영하고 있다. 실용적인 지식과 쓸모있는 교육에 대한 강조는 신자유주의적 교육거버넌스의 확산에 의한 것으로 덴마크 공교육에도 여실히 드러난다. 전통적인 교육방법과 함께 프로젝트, 가상포럼, 실험실습, 여행, 지역기업 체험활동을 진행하는 이 학교는 학생들의 행복과 웰빙을 중요하게 여긴다.
교사는 주당 37시간 근무하며 15~20시간 수업을 하는데 구체적인 수업시수는 교과 선택에 따라 매 분기마다 다르다. 교사의 교과 선택권이 있고, 각 교과는 A,B,C의 3수준으로 나누어 개설되며 학생들이 스스로 선택하게 하여 전공 적합성을 미리 가늠해볼 수 있게 한다. 16세 이상이면 맥주를 마시는 것이 허용되고, 최근에는 학교에서 3개월에 1회 맥주파티까지 열어준다니 청소년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가 새삼 놀랍다. 음성화된 채 확산되고 있는 한국 청소년들의 음주문화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일이다.
프레데릭시아 프리스콜레(Fredericia Friskole)
1650년 덴마크 국왕 프레데리코 3세에 의해 군사도시로 건설된 이곳은 바다에 면한 진지이자 요새 지형이다.전략적으로 구축된 도시라 도로들이 직선으로 곧게 뻗어 있다. 게다가 얼마 전부터 7~9학년에서 사용하고 있는 임대 건물은 예전에 나치군대가 주둔지로 만들어 사용하던 시설이다. 붉은 벽돌 건물의 모양새며 군수물품 보관 창고, 3단 돌계단 위의 한쪽짜리 나무 출입문까지 영화 속에서 봄직한 건물들이 직사각형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다. 인근에는 당시 장교들이 살던 집들도 그대로 남아 있어 마을의 역사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프리스콜레(자유기초학교)와 애프터스콜레(자유중등학교)는 덴마크의 자유교육을 실천하는 대안학교이다. 덴마크 자유교육의 근원은 1844년 평민대학을 설립한 니콜레이 그룬트비(N.F.S. Grundtvig; 1783~1892)와1852년 최초의 프리스콜레를 설립한 크리스텐 콜(Christen Kold; 1816~1870)이다. 프리스콜레는 교육을 의무학교교육(취학)이 아닌 부모의 의무교육으로 간주하는 덴마크 교육법의 원칙을 따른다. 이는 덴마크의 오랜 풀뿌리 시민운동의 역사, 요컨대 경제적 협동이 필요하면 협동조합을 만들고, 교육이 필요하면 부모들이 학교를 만들었던 전통을 반영한다.
프리스콜레 학생들의 학비는 지방정부가 80%, 학부모가 20%를 부담한다. 그 이외 건물지원금과 소수자 무상교육 지원 등의 재정 지원은 학생수가 32명 이상이면 가능하다. 프리스콜레는 덴마크 전체의 18%인 560개교가 운영 중인데, 최근에 학생수 200명 이하 학교 폐교로 인해 더욱 증가하고 있다. 정부의 공공비 축소 정책의 일환이다. 프리스콜레가 당면한 문제는 공립학교 구조 개편 이후 특별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학생 수가 증가하는 것과 PISA 이후 평가 가능한 교육, 효율성, 시험에 대한 압박이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이 학교는 지역에 있는 3개의 프리스콜레 중 하나로 현 교장이 학부모들과 함께 1981년 설립한 학교이다. 학부모들은 연1회 학부모총회를 개최하고 학부모총회에서 이사회를 선출한다. 어셈블리(assembly)는 월요일 아침시간에 전체 구성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회합이다. 살아있는 말을 통한 구술문화와 살아있는 삶을 강조했던 그룬트비의 교육사상이 어셈블리로 이어진다. 주간 학교생활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아이들과 함께 만든 교가가 불리는 어셈블리에 학생들은 마루바닥과 창틀에 자유롭게 앉아 참여한다. 학교장은 이 학교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는 최고의 학교만을 만들지 않습니다. … 부모님, 자녀, 직원, 관리인 모두 함께 합니다. … 자신감, 확신,웰빙, 프로페셔널리즘과 커뮤니티는 우리가 사용하고 듣는 멋진 단어 중 일부분일 뿐입니다. … 서로와 학교를 돌보아야 합니다. 많은 사건과 일들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문제들을 함께 풀어야만 합니다.
공동체와 관계 형성에 초점을 둔 이 학교의 놀이시간은 중요한 일상이다. 이 시간에 교사들은 티타임을 갖고 아이들은 대팻밥이 깔린 작은 놀이터에서 논다. 학급별 10여명의 학생들의 수업 활동은 여유롭고 느슨하다. 서로 둘러앉아 대화하듯 수업이 이루어진다. 덴마크의 편안하고 따뜻함, 여유롭고 아늑함을 뜻하는 ‘휘게(hygge)’ 문화가 느껴진다. 학교 인근의 숲에는 나무 관찰용으로 만들어놓은 다양한 모양의 사다리들이 곳곳에 세워져있다. 다람쥐처럼 올라타고 놀 아이들의 모습이 연상된다. 7~9학년 학생들 중에는 공립학교에 다니다가 옮겨온 학생들이 있다. 그들이 말하는 프리스콜레의 장점은 공립학교에 비해 소규모 학교라 따돌림이 없고 친구들 간에 친밀도가 높으며 선생님들이 친절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는 점이다. 덴마크 공립기초학교의 현재 모습이 궁금해지는 대목이었지만 추후의 과제로 남긴다.
베일레 애프터스콜레(Balle Efterskole)
자유중등학교인 애프터스콜레는 16~18세 학생들을 위한 기숙학교로 1년에서 최대 3년까지 선택 가능하다.중학교 2학년에서 고등학교 1학년에 해당하는 청소년들이 고등교육 진입 이전에 자기의 삶을 생각해보는 준비기에 머무는 학교이다. 인격 형성 여정의 인생학교인 것이다. 덴마크 학생의 25% 가량이 애프터스콜레을 체험하는데, 일반적으로 학교당 약 110명 가량의 학생이 재학한다. 일반교과 외에 스포츠, 무용, 공연, 국제협력, 음악, 청소년 창업, 시민의식 등 특화된 교과를 중심으로 운영되는데, 베일레 애프터스콜레는 리듬체조 등 의무체조와 음악이 특화된 학교이다.
덴마크 항구도시인 베일레에 위치한 이 학교는 100여년의 역사를 갖는 건물에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재학생 중에는 자기 부모의 청소년 시절 모습을 학교 벽에 붙어있는 졸업사진들 속에서 찾기도 한다. 내가 만난 한 학생은 자기의 부모가 여기서 만나 결혼했다고 한다. 학교는 시민성과 커뮤니티에서의 어울림을 철학으로 삼아 학생들이 재미(funny), 행복, 헌신,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성장하는 자기 자신을 배우도록 교육한다. 10개월의 시간은 아이들을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시킨다.
우리와 함께 하면 삶을 살고 인생을 사랑하며 삶의 일부가 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즉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자신이 되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 운동은 생명이다. 우리는 운동에 중점을 둔다. 일상에서 운동의 도전과 통일의 이벤트로 일반적인 체조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베일레 애프터스콜레에서는 1명의 교사와 8명의 학생들로 하나의 가족을 구성한다. 그들은 수업시간 뿐만 아니라 식사시간, 자유시간, 그리고 주말을 함께 하며 친밀하고 사적인 관계를 형성한다. 학생들은 부모를 떠나 조력자인 교사와 또래들을 만나 온종일 같이 생활하면서 하나의 인격체로 거듭 나고 자립심을 키워간다. 공동체의 일상 속에서 타인과 상호작용하며 심신을 단련하고 민주적인 가치를 깨우쳐 가는 것이다. 언뜻 화랑도와도 유사하다. 학교에는 체조 기능을 익히기 위한 다양한 도약대와 안전장치들, 그리고 물리치료사가 배치되어 있다.
축구, 핸드볼, 리듬체조, 수학, 영어, 덴마크어 수업이 쾌적한 환경에서 이루어진다. 전교생이 준비하는 집단체조는 일 년의 프로젝트로 기획되어 수업으로 진행되고 학부모들과 지역주민들 앞에서 발표된다. 절도있는 동작과 엄격한 규칙 속에서 학생들은 자유로움을 느낀다고 말한다. 애프터스콜레에서 그들은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즐겁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을 마친 학생들은 다른 트랙으로 여기에 1년 더 머무르거나 다른 애프터스콜레를 찾아가고 혹은 김나지움 2학년으로 진학하기도 한다. 학생들이 스스로의 인생을 계획하는 여유를 갖고 각자의 리듬으로 자신의 속도를 조율할 수 있는 이 과정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연간 학비는 1400만원 가량인데, 부모의 소득 수준에 따라 개인 부담액이 다르다. 중간 수준인 경우 정부 지원과 개인 부담이 각각 50%이고 그 위와 아래 수준인 경우 적절한 비율로 조정하여 부여한다. 이는 프리스쿨이나 지역사회에서 방과후 오후 5시까지 이루어지는 돌봄 비용을 지방정부와 부모가 공동으로 부담하는 것과 동일하다. 공립학교 이외의 교육기관에서 이루어지는 교육비의 일정 부분은 개인이 부담하는 것이다. 어쨌든 공동선을 위해서 청소와 식사 준비를 하며 공동체의 일상 속에서 성장하는 학생들과 이곳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았다고 말하는 교사가 있는 베일레 애프터스콜레는 많은 생각을 던져준다.
세인트 마틴 직업고등학교 (St. Martins Gymnasium)
스웨덴의 학제는 유년학교와 9년제 기초학교, 통합고등학교로 이어지는 체계이다. 유년학교는 탁아소와 유치원이 통합된 형태로 생후 9개월부터 6세 아동이 대상이다. 9년제 기초학교는 초중고 과정으로 초급과 중급과정은 담임교사가 주로 가르치며, 고급과정에서 선택과목이 늘어난다. 초급과정은 평생학습을 위한 기초 학습력에 중점을 둔다. 세인트 마틴 직업고등학교는 스톡홀름의 북서쪽, 회사들이 밀집한 지역의 한 건물 안에 있다. 1970년대 혁신적으로 통합되었던 스웨덴의 후기중등교육은 1991년 이후 신자유주의적 교육개혁으로 계열 분리와 직업전문교육의 강화로 진행되고 있다.
전체 250명 학생 중 홀로 이민자인 학생은 20~30명이다. 난민과 이민자에게 비교적 허용적인 스웨덴에서는 정부 차원에서 그들에게 교육적 지원을 제공함으로써 노동력 재생산과 사회 통합에 힘쓴다. 노령 연금과 부족한 노동력 문제, 이민자 문제를 풀어가는 그들만의 해법인 것이다. 교직원은 교과 교사를 포함하여 상담, 보건,이민자 언어교육, 모국어 교사, 특수교사 등이 있다. 전공은 미용, 스타일리스트, 페인팅, 수공예(목공), 텍스타일 디자인(패션), 차량 정비가 있다. 대학 진학을 위한 고등학교 공통 교과와 함께 전공 교과를 이수하며 학기당 4주의 직업 체험이 있다. 직업 체험은 인근의 회사 작업장에서 이루어지는데 노동에 대한 일정한 임금을 받는다. 졸업생들은 전원 취업이 되는데, 본인의 희망에 따라 대학에 바로 진학하거나 취업 후 경력으로 직업전문대에 진학하기도 한다. 25세 이상 5년 직장 경력을 가진 경우 대학 입학에 우선권을 주는 ‘25/5 제도’를 말하는 것 같다.
학교의 전공 교과 수업은 이론과 실습으로 이루어지는데, 학교 공간은 주로 전공별 작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목공실은 목재 절단 기계들과 다종다양한 장비들이 갖추어져 있고, 페인팅과 실내장식을 가르치는 실습실은 학생당 1개의 작은 쪽방을 제공하여 도배, 페인팅, 조명 등을 완성하게 한다. 미용, 헤어샵, 의상실 등이 제대로 갖춰져 있고, 헤어를 전공하는 학생들은 정해진 날에 지역 사람들에게 실습을 하고 소정의 서비스 요금을 받기도 한다. 차량 정비는 인근의 자동차 공장에서 현장 교육이 이루어진다.
실습 교사들은 전공 기술 전문가들이 교사로 채용되어 교육대학에서 교육학 등 일련의 교육과정을 이수하면서 교사직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교사로서의 자격 요건이 완화된 것이다. 현재 스웨덴에서 교사는 비교적 낮은 연봉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선호하는 직업이 아니다. 1990년대 경제위기와 사회민주당의 영향력 약화로 스웨덴의 포섭, 연대, 포용의 가치들은 선택, 경쟁, 선발로 대체되고, 학교선택제가 시행되었다. 기업이 학교를 통해 수익사업을 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학교의 시장화는 가속화되고 도시를 중심으로 사립자율학교가 급증한 것이다. ‘평등’이 상식이었던 이 사회에서 학교는 시민에서 소비자가 된 학부모 혹은 학생들에게서 일종의 상품처럼 자유롭게 선택되고 있다. 교사직에 대한 비선호와 부족 현상은 여기서 비롯된 것으로 간주된다.
카스탄젠 프레네학교 Freinetskolan Kastanjen
카스탄젠 프레네학교는 스톡홀름주 남서쪽 봇쉬르카시(Botkyrka kommun) 슬라그스타(Slagsta)라는 지역에 위치한 학교이다. 이곳은 청동기 유적과 호수가 있는 도시 근교 마을이다. 길 입구에는 kastanjen 이라고 새겨진 소박한 나무 팻말이 세워져 있다. 학교 건물로 들어서자 벽에 걸린 자그마한 사진이 인상적이다. 한 아이가 펼친 손바닥과 그 위에 놓인 잘 익은 밤이 클로즈업된 사진이다. 손의 작업과 자기의 경험에 관한 질문을 통해 이론적 지식을 배운다는 프레네(Celestin Freinet) 교육의 철학을 담고 있다. 학교 외벽에는 8학년 학생들이 담임과 함께 스프레이로 공동 작업한 학교 상징 이미지들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
유치원부터 9학년까지 190명의 학생 중에는 지역별 특성상 이주민 다문화 학생들이 많다. 학급당 학생 수는20명인데, 수업은 동학년 학급 활동과 1~3학년, 4~6학년의 혼합 학년 활동으로 구성된다. 중등의 7~9학년은 주로 학년별로 학습한다. 교사는 교과서 없이 실물 위주로 교육하며, 아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들의 경험이나 사건을 수업 소재로 끌어들인다. 따라서 교사는 학생들과 민주적으로 소통하고 사고가 유연하며 자율적이어야 한다. 주제통합학습은 3년 단위의 대주제와 학기별 소주제로 구성되는데, 활동 주제는 학생들의 의견을 들어본 후 교사가 결정하고 수업 방법은 학생과 협의한다. 통합 활동을 통해 학생들이 이들 간의 연계성을 느끼고 배운 것을 총체적으로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학교는 학생들의 ‘배움의 욕망(lust att lara)’을 이끌어내는 데 주안점을 두고 민주교육, 부단한 시도, 자유로운 표현과 창작활동, 협력을 통한 공동작업을 지향한다. 교장이 제시한 교육학 나무 그림처럼 교사들의 교육철학이 명확하고 수업에 대한 열의와 연구 분위기가 감지된다. 학급에는 담임과 보조교사, 그리고 개별지도교사가 있어서 수업활동이 협력적으로 진행된다. 수업 중 한 아이가 슬그머니 뒤로 나가서 앉아있자 개별지도교사가 아이의 손을 잡고 조용히 교실을 나간다. 개별지도가 필요한 아이들을 포함하여 35명의 아이들을 담임교사 혼자 오롯이 감당하는 우리 교실의 모습과 대조적이다.
카스탄젠 프레네학교는 마을의 자연환경을 활용한 교육활동이 많고, 신선한 재료로 직접 조리한 음식을 학교 구성원에게 제공하는 것도 특징적이다. 식단은 다문화 학생들을 고려하여 의도적으로 여러 나라의 음식들로 구성한다. 학교의 시장화와 학교 간 불평등이 심화되는 속에서 그래도 아직은 교육을 모든 인간의 보편적 권리로 여기는 평등의 문화가 이 학교에 남아있는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의 혁신학교와 많이 닮았다. 돌아오는 길 내 머리 속에는 배움의 기쁨, 교육권, 평등, 쾌적한 학교 공간, 이런 말들이 떠다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