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진보교육] 67호 (2018.01.04. 발간)


[담론과 문화] 정은교의 몽상록

넋두리 셋

  

눈동자 (진보교육연구소 회원)






1. 봉준이가 운다

 

봉준이가 운다, 무식하게 무식하게

일자 무식하게, 아 한문만 알았던들

부드럽게 우는 법만 알았던들

왕 뒤에 큰 왕이 있고

큰 왕의 채찍.....

 

-황동규의 삼남에 내리는 눈

 

몽상록1.jpg몽상록2.jpg


   JTBC에서 하는 프로그램 전체관람가를 봤다(1126일 것). 미장센이 섬세하기로 이름난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이명세 감독이 데이트폭력을 소재로 하여 단편영화 그대 없이는 못 살아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줬다. 어느 시청자가 히치코크의 환생이라고 칭찬의 댓글을 달았다는데 그렇게까지 격찬할 일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상업 영화와는 다른 신선한 맛을 느끼게 해준 작품이다. 예술영화의 마지막 보루는 단편 영화겠다. 이 프로가 시청률이 오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고 방송사가 울상 지으며 그만 접지 않기를 바란다.

   어제(26) 프로가 더 와 닿은 까닭은 영화를 다 본 뒤 방청객으로 나온 영화감독들이 (한둘이 아니라 죄다!) 눈물을 흘렸기 때문이다. 예순 살 된 노감독이 10 년 만에 찍은 영화라서 그랬겠고(10년 동안 메가폰 잡을 기회를 얻지 못했다는 얘기), 그 노선배가 자기들의 미래라는 것이 서러워서도 그랬겠지. “제가 그동안 패배주의에 젖어 있었다고 어느 감독이 털어놨다. 한국 영화는 21세기 들어 완벽하게 상업화의 길로 갔단다. 그 전만 해도 이러저런 실험정신을 발휘해 만든 영화들이 꽤 있었다고 한다. 지금 이대로 가다가는 한국영화가 한번에 훅 가는수가 있다고 이명세는 경고한다.

   얼마 전에는 이화여대생들이 울었다. IMF 총재가 서울에 와서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대생들과 간담회를 나눴다는데 그 자리에서 이대생들이 너나없이 출산도 포기하고 결혼마저 포기할 생각이라고 털어놨다는 거다. 하마터면 참석자들 모두가 일제히 울 뻔했다고 조선일보가 에피소드를 알려주었단다. IMF 총재라는 작자가 간담회장 분위기에 충격을 받아서 한국이 집단 자살을 선택했다고 탄식했다더라.

   

   문득 눈물의 시인홍사용이 떠올랐다.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님의 가장 어여쁜 아들... 그러나 시왕전十王殿에서도 쫓겨난 눈물의 왕이로소이다... 이 세상 어느 곳이든지 설움이 있는 땅은 모두 왕의 나라로소이다(1924).” 남인수도 눈물의 해협을 노래했다. “현해탄 초록물에 밤이 나리면 님 잃고 고향 잃고 헤매는 배야...(1936)” 가수왕 조용필이 나오기 전에 국민가요는 오랫동안 김정구의 눈물 젖은 두만강이었다. “...흘러간 그 옛날에 내 임을 싣고 떠나간 그 배는 어디로 갔소(1938)”

   한 세월 동안 이 나라 민초民草들은 <울면서> 살았더랬는데 21세기 들어 눈물의 시대가 오랜만에 재림再臨했는가? 그래, 이 사회가 (술이 아니라) 울기를 권하는 사회라면 기꺼이 울자. 돈 들어가는 일 아니니 슬픈 일이 생기거든 퍼질러 앉아서 맘껏 울자.

   왜 율리시즈(오딧세우스)를 첫 근대인이라 일컫는가. 아킬레우스건 헥토르건 아가멤논이건 쌈박질만 할 줄 알지, 울 줄 몰랐다. 그리스 서사시에서 유일하게 눈물을 흘린 사람이 오딧세우스다. 고향이 그리울 때마다 울었다. 그 그리움을 품지 않았더라면 마녀 키르케의 품 안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답게 살아갈 세상을 그리워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울음을 달고 살 수밖에 없다.

   우리는 걱정이다. 일본에는 히키코모리(=방에 콕 박힌 사람)들이 백만 명 가까이 된다고들 그런다.③ (제 속사정을) 털어놓을 줄 모르고 그러니 울 줄도 모르는 방콕 맨이 우리도 점점 생겨나는 것은 아닐까 싶어서다. 우리 할배 할매들은 울음의 명수名手였는데 울 줄도 모르는 지지리 못난 후손이 나와서는 안 된다. 그 놈의 한류韓流가 진짜배기 문화라서 부디 방콕 맨만은 안 생기게 막아주길 기원한다.

   

   이 어두운 시절을 언제까지 견뎌야 할까. 자본체제의 모순을 탐구하는 정치경제학의 눈길로 보자면 우리가 헬조선hell-朝鮮을 살아가는 근본 까닭은 2008년에 (겉으로) 터져나온 세계대공황 탓이다.

   인류사에서 자본체제의 큰 위기, 10년마다 불거지는 주기적/의례적인 공황 아닌 구조적 위기가 네 차례 있었다.

   1870년대초 식민지 침략으로 해소됐다(이때는 유럽 자본주의 국가에만 영향이 미쳤다).

   19292차 세계대전으로 해소됐다(이때는 전쟁으로 세계 대부분이 영향을 받았다).

   1970년대말 신자유주의 세계화 닦달과 소련 붕괴로 해소됐다.

   그리고 미국 금융자본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을 계기로 터져 나온 2008년 대공황!

   ⇨ 이것, 미국과 유럽이 이른바 양적量的 완화라며 화급하게 4조 달러의 돈을 찍어내서 그 폭발은 막았지만 문제는, 다시 말해 자본과 생산의 과잉 인류 대중의 말라붙은 지갑 사이의 모순은 거의 해소되지 못했다. 그래서 속으로 타오르고 있다. long-time slump! 그래서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들 한다. 언제까지 갈까?

 

몽상록3.jpg


   두 번째 위기에서 힌트를 얻자. 1929년에 터져 나와 1945년에 해소됐다. 16년이 걸렸다. 그때 (위기가) 폭발한 것이 16년 걸렸으니, 지금처럼 속으로 내연內燃하는 것은 (직관으로 어림하자면) 곱절이 더 걸리리라. 그러니까 32! 2008 + 32 = 2040.

   그때는 위기를 전쟁으로 해소했다. 미군기가 독일과 또 어디어디의 공장과 산업시설을 잿더미로 만들고 세계 곳곳의 자본가들이 알거지가 된 덕분에 생산과잉이 해소되고 자본체제가 다시 부활했다. 그때처럼 지금도 전쟁을 벌여 공황을 가라앉힐까? 일본놈 아베는 그러기를 은근히 바라겠지만 아서라, 그러다가 핵무기를 서로 퍼부으면 인류가 공멸한다.

   게다가 문제 해결이 훨씬 어려워졌다. 지금은 자본 체제의 바깥이 없고(=위기를 떠넘길 데가 없고), 자연을 착취하기도 벽에 부딪쳤다. 그러니까 32년이 걸릴지, 52년이 걸릴지 아무도 모른다. 사회 체제가 너무 오래/심하게 비틀거리면 어떤 변이점에 다다랐을 때 괴물로 바뀌지 않을까? 신판 노예제 플러스 좀비 자본제의 결합 같은 악성 종양으로! (잠깐, 식민지 조선의 백성들이 자주 울었던 까닭에는 망국의 설움도 있지만 1929공황에 따른 민생고民生苦 탓도 컸다. 그래서 현해탄/두만강 너머로 남부여대男負女戴하여 많이들 떠나갔다.)

 

   그런데 지금은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과 빅데이터의 시대다. 유전자를 갖고 놀고, 인공위성 카메라로 바닷가 모래알까지 셀 수 있노라, 과학기술자들이 뽐내는 시절이다. 이 든든한 빽(배경)이 있는데 세계의 엘리트들이 설마 위기를 벗어날 길을 못 찾아낼까? 한 놈 한 놈 뜯어봐라. 철인哲人이랄 만한 놈이 한 놈이라도 있는지. 걔네는 천리안千里眼을 뜨기는커녕 즈그덜 뱃속(잇속)과 맞아떨어지는 것만 쳐다본다. 보고 싶은 것만 본다. 걔네 머릿속에는 자본 살릴 궁리만 들어있지 대다수 인류를 살릴 궁리는 들어있지 않다. 걔네가 아는 것은 돈벌이 기술뿐이지 사람 세상을 가지런히 꾸리는 어려운 과업에는 까마득 젬병이다. 2000년대 초 걔네가 (갚을 능력 없는) 빈민한테까지 주택빚을 마구 퍼줄 때 걔네 셈속은 금융자본 돈벌이뿐이었다. 금융공황 같은 것, 혹시 터지지 않을지 의심하지도 않았다. 걔네는 짝눈이다. 걔네 안목이 얼마나 얕은지, 박그네의 사례로도 드러났다.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심판 받을 때, 걔네는 그게 부결될 거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그러니까 판사출신 얼간이가 태극기 휘두르며 마구 설치는 것을 흐뭇하게 바라봤겠지. 걔네는 스스로 속고 살았다.

   물론 권문세족權門世族 아닌 쪽에서도 체제의 위기를 예리하게 짚어내지 못할 때가 많다. 세상이 복잡해지고 마구 헝클어졌는데 사람의 눈길은 넓지 못해서다. 세상을 제대로 바꿔 보겠노라, 큰소리친 20세기 소련과 중국의 혁명가들이 저지른 시행착오들을 보자면 치세治世가 얼마나 간단치 않은지 새삼 깨닫게 된다.

 

   우울한 얘기뿐이었다. 스스로 달랠 길은 그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쯤일까. 성서는 이 세상이 눈물의 골짜기랬고, 불경은 고해苦海를 말했으니 말이다. 아니다. 희망의 근거는 최근 우리가 목소리를 모아낸 데서나 찾자. 수첩공주를 내치고 국민(인민) 주권을 세워서 우리 사회가 자기반성의 계기를 잠깐 마련했다. 울보도, 우울증에 빠진 사람도 그럴 때 쬐끔이나마 기운을 차린다. 우리는 앞이 보이지 않는 한파寒波를 지금 잠깐 얻은 낙관으로 견디고 헤쳐내야 한다. 이것, 쬐끄만 것이지만 소중한 낙관 아니냐.

   울고 싶을 때, 얼마든지 울어라. 거기엔 아니오!’하는 최소한의 외침이 들어 있으니 흉볼 일 아니다. 다만 언제든 눈물을 그치고 눈두덩을 씻을 기운만 품고 지내자.

 

 

2. 유라시아를 생각한다

 

   누가 자기네 독서모임에서 유라시아 문명에 관한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는 얘길 듣고, 찾아봤다. 사학자 이병한이 쓴 유라시아 견문1’반전의 시대. 둘 다 서해문집에서 펴냈다. 이병한은 중화문명과 이슬람문명을 두루 주목한다. 유라메리카 문명을 뒷전으로 물리고, 중화문명과 이슬람문명이 서로 상생相生하여 유라시아 문명이 세계를 주도하기를 학수고대하는 사람이다. 그 주제를 여기저기 떠들고 다니는 전도사다.

   ‘좌파동네는 사실 사회체제(구성체)와 생산양식과 민족국가라는 개념범주를 갖고서 세계를 분석한다. ‘문명이라는 두루뭉수리한 잣대를 부려 쓰지 않았다. 나도 토인비가 문명론을 썼다는 정도의 쪼가리 지식 말고는 머리에 담아둔 것이 없었다. 새뮤얼 헌팅턴 잡놈이 기독교문명과 이슬람문명은 충돌하게 돼 있다. 어쩌구...” 하며 현대판 십자군을 선동하는 그 잡소리가 중고교 교과서에까지 실린 탓에 그 놈이 미워서 문명론자체마저 시덥잖은 것으로 봤다.

   물론 문명론이 읽어낼 세상은 어느 한 면뿐이다. 각 나라나 세계의 사회경제체제가 어찌 변동돼 갈지를 분석해주지는 못한다. 그런데 이병한은 19세기 이후 자리 잡은 국가 간의 질서, 곧 민족국가 간 패권질서를 달리 대체할 대안과 관련하여, 오히려 18세기 이전의 천 년 간 동아시아 나라들을 규율한 중화/조공 질서가 사회진화론을 들먹이는 제국주의 질서보다는 훨씬 낫다는 것이다. ‘중화 질서에 과연 패권의 자취가 없었는지는 더 살펴야 할 일이지만 아무튼 지금의 이른바 국제사회를 어찌 뜯어고칠지, 그 문제의식만큼은 지극히 옳다.


몽상록4.jpg


몽상록5.jpg
 

   이슬람문명도 그렇다. 내 선입견(기억)에는 이슬람을 부르짖는 테러리스트들이 미국 뒷돈을 받아 소련과 맞서고 리비아 카다피정권을 쫓아내는 데 앞장서는 등 온갖 구질구질한 짓을 벌인 얘기들로 가득하고, 더 일찍이는 1979년 이란 민중이 팔레비 왕정을 쫓아낼 때, 밑바닥에서는 좌파 활동가들이 더 헌신적으로 뛰었건만 혁명의 열매를 호메이니의 이슬람동네가 독차지하고 그 뒤로는 사회변혁운동이 시들어간 안타까운 역사에 대한 기억이 자리 잡고 있었다. 물론 민중한테 믿음을 사는 실력 면에서 사회운동 쪽이 호메이니 쪽보다 미약했기에 그 결과가 나온 것을 누굴 탓하겠냐만, “좌파가 패배한 곳에 이슬람이 들어섰다는 유감스런 감정은 좌파가 어찌해야 다시 일어서지?’하는 궁리로만 이어졌지 이슬람주의 운동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는 연결되지 못했다.

   이병한은 호메이니 혁명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아냐고 외친다. 이란에서 사회혁명은 불충분했어도 민족혁명이 성공한 것은 사실이다. 그 뒤 40, 서방 제국주의가 서아시아를 온통 들어먹으려는 야심을 (이란이) 꺾어 놓은 것은 정말 다행한 노릇이다. 2000년대, 십년 간 미국 지배층이 이란에 쳐들어가자고 줄창 노래 불렀지만 결국 못 갔다. 제국주의의 기세가 뚜렷이 꺾인다면 앞으로 서아시아에서 사회혁명의 여지도 더 넓어질 것이다. 그때의 (사회)혁명 퇴조를 아쉬워할 것만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 이슬람동네에 대해 관심 뚝끊는 분위기가 만연한 까닭은 틀림없이 이슬람 테러리스트 탓이리라. ‘기독교 최고를 자만하는 사회지배층의 완강한 심리 탓도 있을 테고. 그런데 이슬람동네에는 이라크와 시리아만 있는 게 아니고,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도 있다. 그 인구가 통틀어 중국에 맞먹는 15억이고, 조금 지나면 인구 1등의 문명권으로 올라선다. 걔네를 다 개종시키겠다고 (여전히) 꿈꾸는 기독교인이 있다면 그거 놀랍게 미친놈들이고, 그런 미친놈들은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이 가만 두지 않는다.

   솔직히 나도 이슬람교리가 별로 흥미를 끌지 않는다. 모하메드가 나이 잡순 과부 눈에 들어 행세를 하고 어쩌고, 또 그의 사후死後 정통/이단 가르기, 시아파/수니파 누가 옳은지 이런 것들 알고 싶지 않은 얘기이고... 기독교리에서 핵심은 성육신成肉身일 터인데 그것 빼고 교리를 짜맞춘 것도 시덥잖아 보인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놓인 자리에서 주목할 것은 이슬람에서 종교와 정치가 한몸뚱이라는 것이고 그렇다면 걔네 정치에서 긍정해줄 대목이 뭐냐는 것이겠다. 이병한의 책에 자세한 얘기는 없고, 딱 하나, 이슬람나라(오스만제국) 치하治下에서는 여러 종교와 민족이 서로 으르렁댈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20세기 미국대통령 윌슨이 떠든 민족자결이 진보적이라거나, 그건 아니라도 레닌의 민족자결론은 변혁적인 것이라고들 말해 왔고, 거기 진취적인 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제국주의의 제3세계 침략이 수월해지게 길을 닦아준 측면을 놓쳐서는 역사를 온전히 읽어낸 것이라 할 수 없다. “오스만제국한테 만민 평화를 배워라!”

 

   이슬람교리에 뭔가 긍정해줄 것이 있겠다는 방증 하나는 그렇기에 그 종교=정치가 급속도로 퍼지지 않았냐는 점이다. 상인들부터 받아들였다. 근대의 장사꾼이야 남의 것, 모략질해 먹는 놈들 투성이지만 고대나 중세의 상인들은 (대체로) 교역과 교통을 넓히는 선진적인 집단이다. 불교도 인도의 상인들한테 퍼졌다(농민들한테는 별로 퍼지지 않았다). 서아시아의 상인들이 두 손 들어 이슬람을 환영했음은 그것이 세계성을 띤 사상=종교임을 말해 준다.

   사회경제면은 어떤가. 이슬람사상에 현대를 뛰어넘는 대안의 비전(요컨대 사회주의 사상)이 뚜렷하지는 않아도 지금의 막가파 신자유주의 도깨비를 견제하는 데 도움 될 대목은 많을 것이다. 이슬람이든 기독교든 고대古代에 등장한 보편종교에는 당연히 황금만능주의를 비판하는 대목이 많이 들어 있겠지. 한 가지만 짚자면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운영되고 있는 이슬람은행이다. 이자를 아예 안 받는지, 덜 받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빚 준 쪽(은행)이 빚 낸 쪽이 재기再起할 수 있게 연대책임을 져주는 제도다.

   우리 언론이 주로 미국과 유럽 동네만 둘러본다는 사실도 잠깐 떠올리자(최근엔 힘이 세진 중국 눈치도 살핀다만). 팔레스타인의 운명은 아예 거들떠 안 봤고(보수언론), 이슬람나라들도 거들떠보지 않았다(진보언론). 그런데 1-2백 년의 뒷걸음질을 멈추고 중국과 이슬람국가들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유럽에서 배울 것도 적어지고, (정치적으로) 기대할 것도 별로 없어진 지금, 우리의 유럽바라기도 이제 멈춰야 한다. 가령 칼리프 국가이념도 IS가 들고 나오는 바람에 사람들이 웃기거나 기괴한 생각쯤으로 치부할지 몰라도 기실은 생각 깊은 이슬람 사상가들이 제창하는 것이고 ‘(유럽 열강이 멋대로 국경을 그어댄) 국민국가의 모순을 해소하고자 하는 진취적인 문제의식이 거기 들어 있다. 결론이 어느 쪽으로 나건, 서아시아 사회를 갈가리 찢어놓은 지금의 국제질서를 수정해내는 실천 과제가 절실하지 않은가.

 

 

3. 중국과 농촌을 생각한다

 

   이병한의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중국(또는 동아시아 문명)에 대해 관심 끊고 지냈구나.’ 하는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한겨레나 경향을 수십 년 구독했는데 그 진보개혁 언론이 불러다 묻는 지성知性 또는 활동가들이라고는 (미국을 비롯해) 유럽 쪽이 대부분이다. 인도 사람이나 브라질 지성한테는 어쩌다 묻는다. 베네수엘라 활동가나 이란의 지성한테는 찾아가볼 생각도 아예 없다(이병한의 공은 이렇게 한국 언론이 찾아가볼 생각을 전혀 안 품는, 응달진 나라의 지성들 얘기를 전해준 것이다).


 몽상록6.jpg


   왜 우리가 중국 사정에 어두울까를 생각해 보니, 첫째 수십 년 간 거기를 빨갱이 나라라고 외면하고 지낸 버릇이 하나 있고, 둘째 중국의 현대사 경험이 너무 끔찍하거나 드라마틱해서 그것을 어찌 읽어내야 좋을지 난감한 탓도 있다. 보수파한테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이 까닭 모를 일이었을 테고(그래서 머리에 뿔 달린 존재쯤으로 밀쳐뒀겠고), 1968년 문화대혁명의 결과는 쾌재를 부를 일이었겠다. “그래, 그렇게 지랄을 떠니까 극좌파들이 천벌을 받았지.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전향한 등소평 이후부터만 중국 지도층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겠다.” 걔네 보수파들은 등소평 이전 부분은 깜깜하게 블랙박스에 처넣는다.

   

   변혁파(진보파)는 문화대혁명의 결과를 어찌 읽어야 할지가 난감하다. 개혁개방 이후, 사회주의를 버리고 돌아선 것으로 보이는 중국공산당을 긍정해주고 싶지도 않다. 실망을 안겨준 동네이니까 더 쳐다보고 싶지 않다(물론 중국 국가의 검열 탓에 그쪽 소식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 탓도 있다).

   중국의 지성들 자체도 한동안 지적知的 혼란을 겪고 집단실어증에 빠졌다는 얘기를 듣고 보니, 우리의 게으름도 면피가 됐다. 중국 사회 모두는 문화대혁명이 금기어禁忌語이자, 트라우마의 대상이란다. 천안문사태(1989)도 마찬가지다. 어느 중국인이 그랬단다. “천안문 시위운동 지도부의 잘못도 따끔하게 비판돼야 한다. 하지만 정부가 폭력 진압에 대해 먼저 사과를 해야 그 얘기를 꺼낼 수 있다.” 이것도 침묵의 역사 속으로 들어갔다.

 

몽상록7.jpg


몽상록8.jpg
 

   나는 원톄쥔이 쓴 백년의 급진(돌베개 펴냄)’을 읽고서야 중국 현대사의 흐름이 한눈에 들어왔다. 지금의 중국공산당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온당할지 감이 생겼다고나 할까. 이를테면 문화대혁명을 그 당시 중국에 경제위기가 터져 도시 실업자들이 마구 쏟아져 나온 배경과 연관지어 읽어야 왜 중국의 군중들이 공자/임표 비판에 광분했는지가 설명된다. 사회 속에 설 자리, 입에 풀칠할 일거리를 잃어버린 청년들의 분노가 공자/임표라는 과녁에, 윗사람들한테 쏠린 것뿐이다. 조반유리造反有理! 나라 지도층한테 대드는 것은 무조건 옳다!! 그 사태를 흉잡아서 공산당 극좌파들은 하여간 덜 떨어진 놈들이야하고 비웃는 것은 무슨 사태든 변혁세력 탓으로 몰아가겠다. 이참에 변혁세력, 콱 망해라. 덩달아 나라 전체가 망하건 말건!”하는 심뽀의 표현일 뿐이다.

   원톄쥔은 중국이 건국(1949) 이후, 여덟 차례 터져 나온 경제위기를 꼼꼼히 분석한다. 최근의 두 차례는 바깥에서 온 위기이고(세계경제에 깊숙이 편입된 탓), 나머지 여섯 차례는 중국 내부에서 생겨난 위기란다. 중국은 알거지 상태에서 국가 살림을 시작했다. 장개석을 쫓아낸 뒤 나라의 금고를 열어보니 텅텅 비었다더라. 장개석이 싸그리 긁어모아 대만으로 튀었던 것이다. 소련의 도움을 받는가 싶었는데 내정 간섭에 반발했더니 지원단이 싸그리 철수해 버려서 몇 년간 공을 쳤다. 미국이 60년대 말까지 호시탐탐 침략의 기회를 벼르는 탓에 해안가의 산업시설을 내륙으로 옮기는 초강수超强手를 뒀더랬는데 이것도 억지스런 일이라 뒤탈이 났다. 이런 사면초가四面楚歌 상태에서 중국 국가를 지탱해준 곳이 농촌이요 품어준 사람들이 농민이란다. 요컨대 도시 살림이 삐걱거려서 실업자들이 쏟아질 때마다 그네들을 농촌으로 내려 보낼 수 있어서 국가가 한숨을 돌렸다고 한다.


몽상록9.jpg

 

   이것이 어찌 가능한가? 경자유전耕者有田토지 혁명을 달성해서 수억 농민들이 쪼가리 땅이나마(중국 인구가 엄청 많은 탓) 제 땅을 지닐 수 있었다. ‘평등하게가난한 사람들은 군식구를 더 받아줄 아량이 생긴다. 도시 청년들이 어째서 시골로 내려갈 수 있었는가? 지금 시진핑이 청년들아, 시골로 가라고 호소한들 대부분 콧방귀를 뀔 것이다. 중국 사회에 돈독이 올랐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때는 대중이 대의명분에 귀를 기울이던 시절이다. 모택동 주석이 분부하는 대로 따랐다. 세 차례 하방下放이 있었는데 모두 합쳐서 5천만 명의 도시 청년들이 시골로 내려갔다.

   원톄쥔은 정치이데올로기가 어떻고 저떻고 따지지 않았다. 중국의 이른바 신좌파가운데는

중국 일부 지역, 곧 충칭(중경)의 경제 모델로 보아, 프루동주의(또는 자유사회주의)가 옳다는 둥, 무슨 정치이론을 꺼내든 사람도 있지만 그는 이데올로기를 말하면 중국 주류로부터 이데올로기적 역공逆攻을 당할지 모른다는 염려를 품었던 듯하다. 이데올로기를 떠나 객관적 사실만 갖고 정책을 토론하자고 부르짖는다. 그 결론은 중국 국가가 두 세대에 걸쳐 수억 농민들한테 엄청난 빚을 졌다. 이제 그 빚을 농민들한테 갚아라!”라는 것이다.   중국 지도부가 ‘(농민들한테) 빚 졌다는 의식을 얼마나 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21세기 들어, 얼마쯤 방향수정의 노력은 시작했다. 2003년부터 삼농(=농촌+농민+농업) 문제를 으뜸으로 다룬다는 정책문건 1호를 내려 보냈다고 한다. 이런 정책 전환을 도운 지식인이라 하여 원톄쥔은 TV에도 나오고 한때 유명인사가 됐다.

   그는 (미국 경제학 물을 먹은 관변 지식인들과 달리) 중국 경제를 낙관하지 않는다.⑪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그는 공황론을 안다), 예전과 달리 농촌이 도시 경제의 격랑을 떠받쳐줄 잠재력을 더 이상 보여주지 못할 거라고 걱정한다. 그래서 중국 농촌의 토지 사유화, 절대로 안 된다고 줄곧 외쳤다. 지방정부들이 집단소유로 돼 있는 것들, 많이 헐어서 자본가들한테 팔아넘기려고 안달복달이다. 그런데 한국 농촌은 공황에 버팀대가 돼 줄까? 실업자들이 비빌 언덕을 찾아 농촌으로 내려갈 수 있을까?

   

   그는 할아버지는 화북 출신 부유한 상인이었고 부모는 중국인민대학 교수였다. 문화대혁명 때 16살 나이로 하방됐다. 대학이 문을 닫아 부모도 뿔뿔이 헤어져 농촌으로 갔다. 낮에는 노동을 하고 밤에는 친구들과 학습동아리를 꾸렸다. 28살이 되어서야 (돌아와서) 대학에 들어갔다. 농촌 연구를 맡으면서, ‘발로 뛰는 연구아닌 것은 믿지 않았다. 늘그막에 민중과 함께 실천하려고 협동조합 운동을 시작했는데 지방정부가 훼방을 놓아 좌절했다.

   그는 3억에 이른다는 중국 중산층을 믿지 못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달콤하게 읽고, 유커족으로 전 세계 관광을 즐기는 그들을! 70%가 여차하면 딴 나라로 이민 갈 궁리나 하고 있고, (문화대혁명을 핑계 삼아) 탈정치적 사회의식으로 자족하고 살아서다. 도시에서 풍족하게 살아가는 그들이 농민 희생 덕에 삶에 여유를 얻었다는 깨달음을 품을 리 없다. 그런 역사교육을 받아본 적도 없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그에게 동류의식을 품게 된다. 세상이 너무나 녹록치 않음을 직시한다는 점에서! 술 한 잔 나누고 싶은 사람이다. 이들, 신좌파가 교류하는 토론사이트 조유지향鳥有之鄕에 몇 해 전에 들어가 본 적 있는데 최근 다시 검색해보니 인터넷에 뜨지 않는다. 정권이 훼방을 놨을까? 2012년 보시라이 사건이 났을 때도 폐쇄 당했다는데 또?⑫  그는 한국과도 가깝다. 두 달 전에 두레생협에서 불러서 협동조합 운동에 대해 강연도 했다. 그를 통해서 한국의 농촌 현실도 되돌아보게 된다. 동아시아 민중의 운명은 하나다. 거기나 여기나 대공황의 시대를 어떻게 헤쳐 나갈까. 문득 추워진다.

   그의 감상感傷 한 도막을 옮긴다. “...20년 동안 (이론 혁신을 꾀할 때마다) 무수한 비난을 들었다. 이제 환갑이 되어 마음도 편안해지고 거슬리는 일도 없어졌다...” 



후주) -----------------------------------------


1) 올해 방송프로그램 중에 괜찮다싶은 것 두 개만 떠올리자면 엊그제 끝난 이번 생은 처음이라(티브이엔)’자체발광 오피스(엠비시)’. 중고생들 앉혀놓고 날을 잡아서 몰아보기를 해도 될 만하다.


2) 한국은 로봇 도입속도가 세계평균보다 4배 빠르고, 임금 감소폭도 2배 커서 2025년까지 33%가 줄 거라는 분석이 있다. 보스턴컨설팅그룹 2015 보고서에서 인용. 정세를 예민하게 읽어야겠다.


3) 히키코모리는 고독사, 또는 무연사無緣死의 말로末路를 걷는다. 일본은 매년 3만명 넘게 외톨이로 죽고, 그 예비군이 천만 명에 이른단다. 얼마 전 한국배우 이미지도 그렇게 죽었다. 한국은 50대 남성 장년층의  고독사비율이 남달리 높다. 조기퇴직 등으로 사회관계에서 단절되는 충격을 견디지 못한데다가, (고령층 노인과 달리) ‘독거인獨居人에 대한 관심권에서도 벗어나 있는 탓


4) 북한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평가하자면 무슨 봉건세습이니, 정치문화를 따지기 전에 산업화의 실패를 짚어야 한다. ‘주체농업이랬지만 그것, 자본주의 따라잡겠다는 소련식 산업화에 불과했고 탈농자가 결국 탈북자가 됐다. 기초가 여전히 부실하니까 자꾸 벼랑 끝 노선으로 치닫는다.  


5) 유럽편향의 한국언론에는 별로 보도 안 되는 해외소식이 많이 실려 있다


6) 이슬람은 신의 이름으로 자선세를 들여온다. 정교일치의 긍정적인 유산이다


7) 인도네시아 관련, 수하르토까지만 기억했다. 워낙 깡패라서. 지금 보니까 그놈 쫓아내고 이슬람학자가 정권을 잡았다. 그때보다는 한 발짝이라도 미국과 거리를 두고 있다. 국력도 쬐끔씩 커지는 추세다.


8) 이것 말고도 중국 농민이 여러 가지로 국가경제를 떠받들었는데 긴 설명은 생략한다


9) 그는 그 빚이 얼마큼의 규모인지 (어림일 뿐이지만) 숫자로까지 밝혔다


10) 밑바닥 인구 2억의 가난을 뚜렷이 해소한 점에서 중국은 스스로 자랑할 만하다. 인구 1억이 넘는 개발도상국 중에 대도시 근교에 빈민굴을 이루지 않은 나라는 중국이 유일하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럴까? 그것은 장담하지 못한다. 농촌으로 되돌아갈 길이 끊긴 농민공 2억의 장래가 중국의 장래다


11) 중국이 여지껏은 잘 나갔지만 생산자동화일자리 소멸 추세 관련, 최대의 패자敗者가 될 수 있다.


12) 충칭시 당서기 보시라이가 2012년 부패 등의 혐의로 공안당국에 붙들려 무기징역 선고를 받은 사건.

충칭 모델의 이름으로 몇몇 그룹이 진보정치 실험을 해온 것을 당 주류파가 억누를 계략으로 보시라이의 개인 비리를 터뜨린 사건이다. 그런데 충칭 실험은 보시라이 혼자 벌인 것이 아니다  




진보교육 67호_담론과문화_눈동자의 몽상록.hwp

07_담론과 문화(70_119).PDF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88 [권두언] 부당해고를 뚫고 전진하는 전교조, 교육의 미래이다. file 진보교육 2016.07.04 371
387 [권두언] 작다고 해서 하찮기까지 한 것은 아니다 file 미로 2016.01.12 370
386 [담론과 문화] 윤주의 육아일기-여혐vs여혐혐 file 미로 2016.01.11 370
385 69_포커스_교사의 교육권을 어떻게 볼 것인가 file 희동 2018.07.11 368
384 69_기고_프레이리 교육사상 두번째 이야기 file 희동 2018.07.11 368
383 특집1-2> 고교학점제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 file 진보교육 2019.11.16 365
382 [현장에서3] 혼자서는 버틸 수 없었던 싸움 file 진보교육 2015.04.12 365
381 [82호 특집] 3. 유네스코 교육의 미래 2050 교육운동의 의미와 주요 의제에 대한 실천적 문제의식 file 진보교육 2022.01.08 364
380 [현장에서] '17강림44' 교실에서 보내는 편지 file 진보교육 2017.10.13 363
379 [특집] 2. 권력개편기 교육노동운동의 방향 file 귀카 2015.07.28 363
378 69_담론과문화_낡고 오래된 도시, 필라델피아 재생 프로젝트 file 희동 2018.07.11 360
377 [담론과 문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file 진보교육 2021.08.23 359
376 담론과 문화> 페미니즘 이야기 - 커피, 토마토, 빵과 포도주, 고추냉이, 수정, 자장면, 그림책과 여성주의 file 진보교육 2021.01.23 358
375 [현장에서] 윤주의 교단일기_1 file 진보교육 2017.07.11 357
374 [권두언]교육혁명의 전망을 전국으로 확산하자 file 희동 2015.04.13 357
373 기획2] 초등 과정중심평가를 둘러싼 논의 file 진보교육 2019.07.17 356
372 현장에서> 극한직업, 초등학교 1학년 담임 file 진보교육 2019.07.17 356
371 [80호 특집2] 2030 교육과정론 분석 및 향후 교육과정의 논의 방향 file 진보교육 2021.05.08 351
370 담론과 문화> 덴마크와 스웨덴 학교를 가다. file 진보교육 2018.10.27 351
369 [담론과 문화] 수지클리닉 이야기_ 우리 아이들 - 한 달 간의 관찰교류기 file 진보교육 2017.04.06 3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