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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영화들
트레인 스포팅(Train Spotting)과  ‘자유로운 세상’ (it’s a free world)

은하철도/ 진보교육연구소 연구원

‘트레인 스포팅’을  통한 고통 잊기
  IMF가 터지기 전에 지금은 세계적인 대스타가 된 이완 맥그리거가 주연한 대니보일 감독의 트레인스포팅을 보았다. 개봉을 놓쳐서 비디오(오래된 일인듯 낯선 단어가 되었다)를 빌어서 보았다. 경쾌한 락음악을 배경으로 주인공 청년들이 경찰들을 피해 무섭게 달아나는 오프닝이 인상 깊었던 영화였다. 그 당시에는 ‘마약, 범죄, 그리고 섹스 등의 일탈을 하는 청소년 영화’ 정도로 치부하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보았었다.
  10여년이 지나 다시 한번 보았다. 이번에는 비디오 렌탈이 아니라 인터넷 다운로드를 해서 시간의 구애받지 않고 천천히 보았다. ‘트레인 스포팅’은 철도의 발상지인 영국의 고유한(?)취미 내지는 시간때우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역 앞에서 또는 들어오는 기차가 잘 보이는 언덕빼기에서 열차의 번호를 적는 행위를 말한다고 한다. 100여년도 훨씬 전 기차가 희귀했던 시절에 한량들의 소일거리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직도 수만명의 동호인들을 가진 취미라고 하니...... 그러나 이러한 의미 이외에 ‘혈관에 땀땀이 놓인 마약주사 바늘의 흔적’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한다. 기차의 번호에 어떤 규칙이나 의미가 없듯이 하루하루의 무료와 고통을 잊기 위한 마약 역시 어떤 의미나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라고 생각하는 원작자의 의도가 반영된 듯하다.

‘자유로운 세계’의 기막힌 역설
  지난 10월 중간고사 기간 지인들과 번개로 영화를 보았다. 하늘은 높고 말을 살찌울 정도로 날씨가 좋은날 ‘빵과 장미’, ‘랜드 앤 프리덤’, 그리고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등을 감독한 영국의 대표적 좌파 감독 켄 로치의 ‘자유로운 세상’! .사전에 영화 정보를 보니 개봉관이 한 군데 밖에 없다. 예전 가회동 경기고등학교 앞의 갤러리에서 한다고 한다. 의자가 크고 넓어 편했었다는 기억이 나니 영화에 대한 관심보다 ‘편히 쉬고 싶다’라는 생각도 들어 약속시간에 맞춰 갔다. 간단히 저녁을 먹고 시작 시간에 상영관에 들어서니 교복을 입은 십여 명의 학생들과 인솔한 두 분의 다른 학교 선생님을 제외하고 관객들이 없어 썰렁했다.
  영화의 내용은 간단하다. 동유럽에서 영국으로 이주노동자를 알선하는 브로커인 주인공 앤지는 직장 상사의 성희롱에 대들다가 정리해고를 당한다. 빚과 생활고에 힘들게 살아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결국 친구인 ‘로즈’와 동업으로 불법 용역업체를 차려 ‘잉글리쉬 드림’을 좇아 동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에서 온 이주 노동자들의 임금을 중간에 갈취하는 일을 하면서 차츰 성공(?)한다. 그러나 원청 업체의 부도로 밀린 임금을 받지 못하게 된 이주 노동자들이 습격을 하고 싱글맘인 앤지의 유일한 혈육인 아들 제이미가 유괴되면서 위기를 맞이한다. 그리고 저간의 잘못을 개과천선하는가 싶더니 마지막까지 달콤한 착취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앤지는 우크라이나로 가서 다시 이주 노동자들을 모집한다.
  몇 년 전 중국에서 돈을 벌기 위해 브로커의 농간에 수 백 만원의 비용을 써가며 빚을 지고 남한에 온 중국의 교포들의 얘기와 흡사하다. 어디 중국 동포에게만 해당하는가? 작금 남한의 노동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온갖 이름의 비정규직의 모습이 바로 영화의 모습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기륭의 노동자들, 작년 여름을 뜨겁게 했던 뉴코아노동자들 그리고 학교와 빌딩에서 청소와 수위 등의 일을 하는 수많은 파견 용역 노동자들......

내부와 외부의 경계가 사라진 오늘날의 세계
  결국 ‘자유로운 세계’ 란 국경과 민족의 구분 없이 전세계를 사냥터로 옮겨다니는 자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고 그 사냥터의 사냥감인 우리들은 사냥꾼을 피해 다닐 수 있는 자유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시간의 문제일 뿐 언젠가는 우리도 사냥꾼의 수확물이 될 수밖에 없는 ‘자유로운 세계’라는 구조에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영화에서 앤지는 그녀가 하는 일의 부당함을 꾸짖는 아버지에게 “일이 필요한 사람에게, 먹을것을 필요한 사람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주는 일이에요” 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그러나 미세하게 떨리는 입술 주변이나 불안한 눈동자의 움직임에서 관객들은 어렵지 않게 흔들리는 앤지의 양심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에게 타인의 착취를 통한 자신의 안온한 삶의 영위는 너무나도 멈추기 힘든 유혹이자 개인적인 결단으로만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 모순을 짊어진 ‘자유로운 세계’의 일원일 뿐이다.

트레인 스포팅의 주인공 렌튼도 크게 앤지와 다르지 않다. 마지막 친구들 전체와 공모하여 크게 마약거래에 성공한 주인공은 친구들을 따돌리고 혼자서 돈을 독차지 하면서 그간의 생활과의 결별을 한다. 엔딩 타이틀이 오르기 전에 Underworld의 Born Slippy (NUXX)가 흘러나오면서 주인공은 은행에서 나와 이른 아침의 런던을 힘차게 걷는다. 그리고 나오는 독백!
“이제부터 너희들과 같기로 했다. 직업, 가족,초대형 텔레비전, 세탁기, 자가용, 자동 깡통따개, ...... 쓰리 피스 정장, DIY, 게임기, 자녀 갖기, 공원 산책, 골프, 집에서의 세차, 쉐타고르기, 연말 정산........ 죽음을 향한 그날까지 앞만 보고 전진.” 자본주의의 경쟁과 배제의 사회에서 음지에 있었던 그리고 마약과 일탈을 통해 현실을 부정하고 욕하면서 저주했던 주인공이 결국 추구하는 것은 자본주의 체제로의 철저한 편입이었다.

새로운 출구의 모색
  영화임에도 너무도 극사실적인 영화 ‘자유로운 세계’를 보니 편안한 의자에서 영화를 보았음에도 마지막 엔딩 타이틀이 올라가는 순간까지 불편함은 계속되었다. 아마도 많은 시청자들이 말도 되지 않는 재벌가를 소재로 한 트렌드 드라마와 허무맹랑한 역사를 끼워 맞춘 시대물 드라마에 열광하는 이유는 아마도 현실과 사실 그리고 진실의 인정이 너무도 고통스럽기 때문이 아닐까?
  마지막 즈음에 앤지의 흔들리는 눈빛과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우크라이나 여성의 ‘희망이 있겠는가’ 라는 질문에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하는 주인공 엔지를 보면서 일말의 기대와 희망마져 철저하게 부정하는 감독이 야속하기까지 하였다. 그래서 슬펐다.

두 영화는 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터럭만큼의 기대와 희망을 허용하지 않는 현실의 처절함과 비정함을 여과없이 제시함으로써 불편함을 넘어 슬픔을 주고 있다. 결국 영화를 다 보고 지인들과의 늦은 밤까지 소주잔을 기울였다. 오간 대화중에 이런 말들이 기억이 된다.
  “결국 2000년대 들어와서 폭등한 주식과 부동산 가격의 거품은 IMF 이후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면서도 절반 정도의 임금을 받으며 착취 당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한과 고통의 응어리이며 언젠가는 붕괴되어 안락함만을 좇아 무신경하게 살아온 우리의 발등을 찍을 것이다.”
“ 서울대를 정점으로 하는 학벌의 권력과 위상의 재생산을 위해  학생들이 존재하는 것이지, 결코 학생 개인의 발전 욕구나 자아발전 심지어 출세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등등
처절한 밑바닥까지의 내처짐으로, 오를수 없는 거대한 벽에 맞닥뜨리면서 새로운 출구를 모색하게 되지 않을까? 추락하는 도중에는 바닥의 깊이에 대한 계산과 계속되는 추락에 대한 공포로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지만 심연의 나락에 도달한 다음에는 더 이상 나약한 계산을 할 필요가 없게 되지 않을까? 바로 이 점에서 슬픔은 분노가 되고 분노는 또 다른 모색의 길을 만들어주지는 않을까? 얼마만큼 더 나락에 떨어져야 하는가? 이제 더 이상의 나락은 없는 바닥에 있지는 않는가? 이제 슬픔을 넘어 분노로 분노를 모아 모색과 반격의 시점은 아닐런지.... 카타르시스의 주사기 삼아 슬픔에 종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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