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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호 읽을거리2_자전거 도둑

2005.10.10 15:15

jinboedu 조회 수:2696

자전거 도둑

최정민 | 교육문화분과 연구원


2003년인가, 네이스 반대투쟁이 진행되던 어느 여름밤이었을 것으로 기억된다. 지회 선생님들과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있던 중 화장실로 가다가 자전거가 있어야할 곳에 잘려진 잠금줄만 있었다. 황당한 일이었다. 자전거 보관용 철제 시설에 묶어 놓았는데, 잘린 면은 생각보다 매끄럽게 처리되었다. 잠시 애정을 준 자전거였는데…
잠금줄로 자전거를 지킬 수 있다는 순진한 생각은 이렇게 파탄되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도난방지법을 소개받았다. 첫 번째는 안장을 빼는 방법이다. 도난시 속도를 늦추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앞바퀴를 빼는 방법인데 좀 수고스럽지만 완전한 방법이다. 마지막 방법은 좀 위험한데 브레이크줄을 풀어놓는 것이다. 별로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요즘엔 경보기가 달려 있어서 잠금줄을 자르거나 자전거에 손이 닿으면 100데시벨 정도의 소리가 울리도록 하는 장치를 판다고 한다.
자전거가 생각난 김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가 있어 소개를 하고자 한다.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1948년작 '자전거도둑' 인데, 전쟁이 끝난 후 이탈리아의 궁핍한 상황을 그리고 있다. 있는 그대로! 이른바 네오리얼리즘을 대표하는 영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선과 악이라는 것은 없으며 착하고 성실한 한 인간을 도둑놈으로 만들어 가는 사회 구조를 있는 그대로 그리고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아버지와 아들 모두 처음으로 연기해보는 아마추어들이다. 일상을 강조한 영화답게.
또 하나, 국어선생님들께서는 아시겠지만 소설가 김소진의 '자전거도둑'이 있다. 미아리 산동네 출신이라는 점이 인상적인 김소진씨는 젊은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뜬 소설가다. 계속 살아 작품을 발표하였다면 현대문학에 크게 기여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김소진의 자전거 도둑에서는―죄송하지만 좀 길게 인용하자면―데 시카의 자전거도둑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이차대전이 끝나고 폐허로 변한 로마. 오랫동안 직업을 구하지 못해 헤매던 안토니오 리치는 어느 날 일자리를 구하게 된다. 길거리에 포스터를 붙이는 일이다. 그 일에는 자전거가 필수적이다. 오랜만에 일자리를 구하게 돼 당당히 아내 마리아 앞에 선 안토니오는 그녀를 설득해 몇 안 되는 헌 옷가지를 전당포에 맡기고 드디어 자전거를 구한다. 어린 아들 브루노는 출근하는 아버지를 따라나선다.

그러나 어느 모퉁이에서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누가 자전거를 훔쳐 타고 달아난다. 안토니오는 쫓아가다 실패하고 경찰에 신고하지만 경찰은 그런 하찮은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어디 있냐는 듯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허탈해진 안토니오는 자전거포를 뒤지다 어느 젊은이가 자기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것을 목격한다. 기를 쓰고 쫓아가지만 또 허사다. 우여곡절 끝에 자신의 자전거를 훔친 젊은이의 집을 기어코 찾고야 만다. 하지만 안토니오는 빈민가에 있는 그 젊은이의 허름한 집을 보고 절망에 빠진다. 자신처럼 가난한데다 젊은이는 그를 보자 충격을 받았는지 간질을 일으키며 길가에 나뒹굴어 버둥거린다. 경찰이 왔으나 딱 부러지는 증거도 없다.

안토니오의 우유부단한 태도에 실망한 아들이 그와 다투다 없어진다. 안토니오는 강가에서 어린애가 빠졌다는 얘기를 듣고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혀 황급히 아들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아들은 다친 데 없이 다시 그의 앞에 나타난다.

스쳐 지나가려는데 경기장에서는 축구경기가 한창 무르익고 있다. 안토니오의 눈에는 경기장 밖에 즐비하게 세워놓은 자전거들이 한가득 클로즈업돼 들어온다. 아들 부르노에게 먼저 집에 가 있으라고 이르고는 자전거 한 대를 잽싸게 훔쳐 달아나지만 곧 주인에게 붙잡힌다. 어디선가 경찰이 온다. 아들의 면전에서 봉변을 당하는 안토니오의 처지를 가련하게 여긴 자전거 주인이 선처를 베푸는 바람에 안토니오는 철창신세를 면하고 풀려난다. 긴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석양의 거리를 아들은 뒤따르고 안토니오는 어깨가 축 늘어진 허탈한 모습으로 하염없이 걸어간다.

이 영화를 볼 때마다 난 무엇보다 외로움을 느꼈다. 아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아버지의 권위를 깡그리 무시당한 안토니오의 무너진 등이 견딜 수 없어 콧등이 시큰해졌고, 그보다는 무너져 내리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목격해야 하는, 그럼으로써 평생 씻을 수 없는 내면의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갈 어린 아들 브루노 때문에 나는 혀를 깨물어야 했다.

김소진의 소설 자전거도둑은 자전적 성격의 소설로 미아동에서의 소년시절 성장통이 바탕이 된 듯하다. 아파트 아래, 위층의 젊은 남녀의 이야기다. 자전거를 몰래 빌려 타던 여자와 자전거 주인 남자가 만나 영화 자전거도둑을 보다 자신의 내면에 깊게 응어리진 가족의 비밀을 서로 이야기하고 헤어진다는 줄거리다. 축 늘어진 어깨를 가진 아버지가 등장하는 이 소설은 통속적인 눈물 빼기식 소설 '아버지'와는 격이 다르다.
사회가 양극화되어가는 신자유주의 하에서 서민들의 삶은 더욱 비참해져간다. 공황이나 신자유주의 세상의 양극화나 동일한 스타일이다. 특히 서민들에겐 그렇다. 부자아빠는 인정받고 성실한 아버지는 무능한 사회가 되었다. 힘없는 아버지에겐 힘없는 자식들이 생겨나고…
특히 마지막 장면은 전율! 아버지를 대신해 용서를 빌던 브루노의 눈빛! 아들 앞에서 개망신을 당하고 걷는 안토니오의 처진 어깨!
또 하나 박완서의 자전거도둑이라는 동화가 있다. 세운상가에서 점원으로 일하는 아동노동자 수남이가 등장한다. 고등학교에 다닐 나이지만 가계가 곤궁하여 돈을 번다. 승용차에 자전거가 넘어지면서 차주인이 오천 원을 내라며 자전거를 묶어놓는다. '착하고 성실한' 수남이는 고민 끝에 '자기' 자전거를 훔친다. 학생들과 함께 읽고 나눌 이야기가 많은 동화다. 분량도 짧아서 아이들이 집중하기도 좋다.
내 자전거를 훔쳐간 녀석은 안토니오의 심정을 이해할까? 아님 학력과 부가 세습되는 자본주의 시대에 '또 다른' 브루노는 아니었을까? 그리고 '또 다른' 수남이는 아니었을까? 출퇴근을 함께 했던 그 빨강 자건거, '공교육강화' 스티커를 달고 있는 그 자전거. 2년이 지난 지금 잘 있을까? 새로운 주인을 만나 다시 태어났기길 기대한다. 진심이다. 또한 우리나라 '보통교육'도 새롭게 태어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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