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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교육] 58(2015.10.8. 발간)

 

[특집2] 2015개정교육과정 해부

2. 2015개정교육과정의

핵심역량빅 아이디어를 해부한다!

 

이찬승 / 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

 



 

 

1. 시작말

 

2015개정교육과정이 도시되었다. 1년만에 총론과 각론의 동시 개정은 그 속도 면에서 가히 기네스북 등재감이다. 연기하자는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자세히 살펴보면 이번 개정은 문제가 여간 심각한 것이 아니다. 최소한 30년지대계의 교육비전 부재, 개정에 소요될 시간을 턱없이 부족하게 잡아 놓고 예정대로 강행하는데서 오는 문제점, 개정의 목적과 수단의 불일치(mismatch), 요란한 선전에 비해 내용이 없는 대개념(big idea) 중심의 교육과정 재구조화, 현장에서 작동할 수 있는 여건의 마련 없이 교육과정 문서만의 개정, 완전 새로운 개념(: 빅 아이디어)을 최소한의 검증도, 준비도 없이 모든 교과에 일괄 적용하는 무모함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번 개정 내용 중 특히 핵심역량과 빅 아이디어의 도입은 그 배경을 비롯해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본 글에서는 이 두 가지와 관련해 문제점들을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2. 역량기반교육의 허와 실

 

역량, 핵심역량 등의 표현은 긍정성이 커서 역량이 강조되는 교육에 대한 비판적 관점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이는 역량기반교육에 대한 국내 연구와 실행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21세기의 도래와 함께 역량이 강조되는 데는 타당한 이유도 있지만 기존의 지식기반교육의 질이 문제되자 마치 이의 해결책이 역량기반교육인 것처럼 역량 교육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경계할 점도 없지 않다. 그리고 역량의 평가에 대한 연구나 측정 도구가 전혀 개발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역량을 강조하는 교육은 소리만 요란한 빈 깡통이 될 공산이 크다. 지식기반교육을 제대로 하는 것, 이것이 역량 교육을 강조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지식기반교육과 역량기반교육을 매우 다른 것으로 보는 태도, 역량 함양을 위한 교육의 여건은 마련하지 않고 역량을 총론과 각론 양쪽에서 동시에 강조하고 이의 반영을 강제하는 것은 역량에 대한 아마추어리즘에 가까워 득보다 실이 클 것이다. 역량이란 무엇이고 왜 강조되는지부터 살펴본다.

 

. 역량교육은 실패한 지식교육의 희망이 될 수 있는가?

 

이제는 지식 교육에서 역량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 , 학자들이 역량중심교육과정도입이 당연한 것처럼 말할 때 이에 대한 비판이나 경계심을 표하는 사람조차 없었다. 필자도 21세기 초 미국 교육학회에서 ETS의 연구자를 중심으로 문제해결능력 등을 연구해 매년 발표하는 것을 보고 , 저거다!”라며 감탄한 적이 있다. 그 이후 역량에 대해 좀 더 공부하면서 역량에 대해 좀 더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역량기반교육을 무비판적으로 긍정적인 것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서 약간의 경계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역량의 강조가 한국적 상황에서는 지식교육의 폄하로 이어지는 듯하다. 이는 매우 잘못된 현상이다. 지금 교육과정 개정을 통해 역량교육을 본격 도입하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고 이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역량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100인이면 100가지 정의가 존재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역량이란 예를 들어 설명하면 달라진 21세기 사회를 성공적으로 살아갈 수 있기 위해서 비판적 사고능력, 창의적 문제해결능력, 함께 일하는 능력뿐만 아니라 다문화 사회를 살아가기 위한 소양, 불확실 한 것에 도전하는 진취적 태도 등을 말한다. OECD의 역량 연구인 DeSeCo 프로젝트에서는 역량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역량(competence)’이란 단순 지식(knowledge)이나 기능(skills)과 다르며 그 이상이다. 이는 기능뿐만 아니라 특정 상황에서 태도 등의 심리적 자원까지 동원해서 복잡한 요구도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한다. 예를 들면 언어 사용능력, 정보통신 활용기술, 소통 대상에 대한 심리적 태도 등을 기반으로 효과적인 소통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역량인 것이다(Rychen & Salganik, 2003).

 

모든 역량은 나름의 내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가령 협업능력은 지식, 인지적 능력(: 뇌의 정보처리 능력), 태도, 감정, 가치와 윤리, 동기와 같은 요소들로 구성이 되고 이런 것들을 바탕으로 협업능력이 발현되는 것이다. 역량은 그 역량을 구성하는 개별 요소들로 나눌 수 없는 포괄적이고 총체적인(holistic) 특성을 가지고 있다.

어떤 역량이든 역량의 내적 구조에 지식이 중심에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탄탄한 지식의 기초 없이 역량이 함양될 수 없다. 그래서 이제는 지식 교육에서 역량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은 지식과 역량의 관계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역량중심교육과정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도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지식기반교육과 역량기반교육은 아주 별개가 아니다. 따라서 역량교육을 실패한 지식교육의 대안이라도 되는 것처럼 과대 선전하고 포장한다면 이는 잘못된 접근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역량에 대한 세계적 유행에 무비판적으로 휩쓸려 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역량이나 능력이란 어휘가 한국에서는 긍정적인 어휘로만 받아들여지고 있다. 아마 지금까지의 지식기반교육에 대한 실망이 커서 그럴 가능성이 높다. 사실 블룸의 교육목표 분류표(알다, 이해하다, 적용하다, 분석하다, 평가하다, 창조하다)를 상기해보면 지식교육 내에 새삼스럽게 강조하는 역량이 거의 다 포함되어 있다. 다만 21세기 들어 마주하는 도전적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특정 역량이 더 강조될 필요는 있다. 역량이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지식의 활용을 강조하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타국에서 교육과정 기준 문서에 핵심역량 리스트를 제시하는 것도 지식교육을 대체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식의 활용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지식교육이 실패하는 한 역량교육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 역량의 강조가 마치 실패한 지식교육의 대안이자 희망처럼 받아들인다면 이는 큰 오해다. 그런데 2015개정교육과정에서는 이런 역량을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 총론의 핵심역량 6가지는 무엇이 문제인가?

 

2015개정교육과정에서는 총론에 아래와 같이 6가지 핵심역량을 제시하고 있다.

 

<1> 총론의 6가지 핵심역량(총론 2차 공청회 시안)

. 자기관리 역량은 자아정체성과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의 삶과 진로에 필요한 기초적 능력 및 자질을 갖추어, 자기주도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

. 지식정보처리 역량은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다양한 영역의 지식과 정보를 처리하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

. 창의적 사고 역량은 폭넓은 기초 지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전문 분야의 지식, 기술, 경험을 융합적으로 활용하여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능력.

. 심미적 감성 역량은 세상을 보는 안목과 인간에 대한 공감적 이해를 바탕으로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고 향유하는 능력.

. 의사소통 역량은 다양한 상황에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하는 능력.

. 공동체적 역량은 지역·국가·세계 공동체의 구성원에게 요구되는 가치와 태도를 가지고 공동체의 발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능력.

 

이상의 6가지 역량은 범교과적 핵심역량의 성격을 갖는다. 이는 형식상 새로운 교육의 목표며 각론의 각 교과가 이를 반영하도록 하는 선언적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바로 궁금해진다. 과연 이 6가지 역량은 어떤 근거로 범교과적 핵심역량 반열에 오를 수 있었을까, 또한 이 6가지에 포함되지 못한 역량은 어떤 근거로 탈락되었을까? 6가지는 모든 교과를 대표하고 21세기 미래사회를 살아가면서 마주할 도전들을 극복하기 위한 필수 역량일까? 결론적으로 6가지 역량의 도출은 매우 자의적이란 느낌이 든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한국의 미래사회를 이끌어갈 오늘의 아동 청소년들에게 길러주어야 할 역량이 왜 위의 것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논거(論據)가 보이지 않는다.

다문화 역량(cross-cultural competencies)’이 왜 빠졌을까? 폐쇄적 민족주의 성향, 타 인종에 대한 차별이 상대적으로 강한 편인 한국적 특성, 준비도 안 된 채로 빠르게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는 상황 등을 고려할 때 다문화 역량은 빠뜨릴 수 없는 범교과 역량이다. 이어서 높은 윤리의식은 왜 빠졌을까란 의문도 든다. 국제투명성기구가 매년 조사하여 발표하는 한국의 국가 부패지수가 2014년 기준 세계 43위다. 높은 윤리의식은 대부분의 나라에서도 중요하게 다룬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이유도 사회의 낮은 윤리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의문은 꼬리를 문다. ‘협업능력은 어디 갔지? 21세기 사회에서는 어떤 조직이든 개인이든 함께 일하는 능력인 협업능력팀워크를 매우 중요시한다. 협력보다는 경쟁을 부추기는 한국의 학교교육의 현실을 고려할 때 협업능력은 빠뜨려서는 안 되는 대표적인 범교과 역량이다. ‘창의·융합적 사고 역량창의적 문제해결능력정도가 좋았을 것이다. 창의력은 문제해결 능력을 구성하는 하나의 하위 능력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OECD, 핀란드 등 주요국의 핵심역량리스트에 창의력을 포함시키는 곳은 극히 드물다. 개별 교과에 연결시키기도 어려운 심미적 감성 역량은 왜 들어갔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지능적인 활동을 과학적으로 파악하여 기계적(수리적)인 모델로 설명하는 일이란 뜻인 지식정보처리란 정보과학의 특수 용어가 왜 범교과적 역량으로 들어왔는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다. 역량의 도출은 도출의 논거가 분명해야 한다. 핵심역량을 도출할 때는 사회의 각계각층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기업도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원래 21세기 학교교육에서 역량교육을 강화하자는 운동은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역량을 필요로 하는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듣기보다는 학자들이 추출을 주도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리고 도출을 위한 프레임이 우수해야 한다. 그래야 빠진 것도, 중복되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다. 아래와 같은 7가지 역량 리스트를 보라. 이는 역량에 관한 연구물이나 주요국들이 중요하게 취급하는 역량을 중심으로 필자가 만들어 본 것이다.

 

핵심교과지식과 학습능력

사회성·감성 역량

고등사고능력

협업능력과 팀워크

공동체 의식과 다문화 소양

도전정신과 자기주도성

높은 윤리의식과 책임감

(이찬승, 2015)

 

, 다음의 역량 프레임을 보자. OECD의 역량 도출 프레임을 응용해 만들어 본 것이다.

 

<2> 한국 학교교육을 위한 역량 프레임 제안

범주(상위역량)

하위 역량

학습, , 직업세계에서 성공하기 위한 역량

핵심교과(core subjects) 지식과 학습능력
고등사고능력(창의력, 문제해결력, 비판적사고력, 상위인지능력)
의사소통능력, 협업능력·팀워크, 도전정신
다중적 소양(정보소양, ICT소양, 매체소양, 경제소양 등)
일상생활 속 힘든 일들을 적응적/긍정적으로 해결하는 능력(life skills) 및 외국어 사용능력

이질적 집단 속에서 사회적 상호작용을 위한 역량

사회성·감성 능력(공감능력, 자기관리능력, 자기인식능력, 사회적 인식과 사회적 관계능력, 책임감 있는 의사결정 능력)
다문화 소양(multicultural literacy)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한 역량

공동체 의식, 민주시민의식, 글로벌 시민의식
높은 윤리의식
지구촌 문제 해결에 대한 안목과 참여, 생명존중, 자연에 대한 경외

(한국 공교육 미래방향 제안, 2013 227쪽 도표 변형)

 

역량 도출이 잘 되려면 위 <2>와 같이 범주를 잘 잡은 다음 핵심역량의 내적 구조를 잘 분석하고 핵심역량과 하위역량을 제대로 분류할 수 있어야 한다. 이번 2015개정교육과정은 이런 과학적 절차를 거쳤는지 의심된다. 2015개정교육과정에서 제시한 6가지 핵심역량은 타당성, 분류, 명칭, 정의 등에 문제가 많다.

 

총론에 제시한 역량의 도출 내용에 대한 비판적 검토는 이정도로 하고 각론의 역량을 살펴보자.

이번 개정은 핵심역량을 총론에서 제시하고 각 교과는 총론의 역량을 참고해 교과의 고유한 역량을 도출할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하지만 필자가 분석해본 결과 각론의 역량의 도출과 반영은 아래와 같은 문제점들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역량 도출의 타당성이 부족해 보인다.

[원인] 각론의 특성에 맞는 역량을 도출해 쓰기보다는 총론의 역량 도출 따로, 각론 역량 도출 따로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총론이 각론에서 자유롭게 가져다 쓸 수 있도록 하위역량을 정교히 도출해 제공했더라면 각론 역량의 도출이 미흡하더라도 보완될 수 있었을 텐데 이런 장치가 전혀 없다.

총론에서 제시한 핵심역량 6가지와 각론 역량을 무리하게 연결시키려고 시도하고 있다(: 체육의 심미적 역량; 수학의 의사소통 역량과 정보처리 역량).

역량의 정의가 총론 핵심역량의 정의와 일치하지 않는 등 안정성이 부족하다.

[원인] 총론의 정의에 대한 보편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지금의 상황은 글로벌 스탠다드와 매우 다르게 자의적으로 정의한 후유증이라고 생각된다.

총론의 핵심역량 중 개별 교과에서 거의 적용되지 않은 것이 있다(: 심미적 감성 역량).

[원인] 대표적인 예가 심미적 감성 역량인데 이는 정의가 불분명해서일 수도 있지만 범교과적 역량으로서의 특성이 부족한 때문일 수도 있다. 어떤 이유든 심미적 감성 역량은 제대로 적용되지 않거나 적용해도 매우 억지스러워 득보다 실이 훨씬 많을 것이 분명하다. 이것 대신 문제 많은 인성교육 대신에 사회성·감성 역량을 도입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사회성감성 교육은 원조인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의 여러 나라들까지 보편화되어 있다. 한국만 말도 많은 인성교육에 매달리는 모습이 너무 안타깝다.

 

. 역량교육의 강화는 어떤 위험성을 갖는가?

 

역량 교육의 강화는 바람직한가?’란 질문을 던지면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할 것 같다. 너무나 당연한 것에 대해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납득하지 못해서 일 것이다. “이제는 지식 교육에서 역량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란 주장이 난무하는 한국이라면 반드시 역량의 도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냉정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역량을 강조하는 교육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학자들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인 것 한 가지만 소개하겠다.

국가수준의 교육과정 개발에 관한 세계적 추세를 소개하고 있는 책(Reinventing the Curriculum, 2013)을 보면 역량중심 접근은 장점도 많지만 아래와 같은 위험성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밝히고 있다.

 

첫째, 모든 교육행위가 미래사회에 필요한 수행능력을 기르는데 맞춰진다면 교사의 주된 역할은 학생의 수행능력의 도달 수준이나 여부의 확인에 초점을 두게 된다. 아마 교사 연수도 이를 중심으로 이뤄지게 될 것이다. 이는 좋은 교육이란 무엇이고 좋은 교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큰 혼란을 가져올 우려도 있다.

둘째, 역량중심 교육은 수행이라는 외부로 드러나는 것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춘다. 사고, 이해, 성찰, 판단 등 내적인 것이 소홀해질 수 있다. 즉 수행의 결과에 지나치게 초점을 두게 되어 수행의 why, how에 대해서는 소홀해질 우려가 있다. 이는 새로운 행동주의로의 회귀나 지식의 실용성만을 강조하는 기능주의로 빠질 수 있다는 비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셋째, 역량중심 교육은 미래를 향한 것보다는 과거에 발생한 문제의 해결에 초점을 두게 된다. 역량은 대부분 사회가 특히 기업과 국가가 요구하는 것들이 많다. 이로 인해 교육이 인간을 적응의 도구(instrument of adaptation)로 전락시킬 위험이 있다. 즉 학습자가 학습의 과정에서 주체가 되기보다는 더 나은 수행을 위해 타인의 지속적인 개입을 받는 대상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인간이 능동적이고 민주적 존재로 커가야 하는 교육의 목적과 배치된다.

넷째, 아동들에게 수행을 위한 역량을 키워주는 과정에는 반드시 가치와 규범적 판단을 요구하게 된다. 이는 전형적인 지배체제를 강화할 우려가 있다. 이는 민주사회의 발전에 역행하는 것일 수 있다. 이는 인성교육, 시민의식 교육 등이 자칫 국가 경영의 효율성을 위해 말 잘 드는 시민으로 길들이기 위한 것이 아니어야 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역량의 함양은 전혀 새로운 것도 아니다. 그리고 지식기반교육과 역량기반교육의 경계도 애매하다. 지식기반교육보다 역량기반교육을 더 중시하거나 강조하는 것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현재 한국에서의 역량의 강조에 대해 무조건 바람직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은 경계해야 한다. 이번 2015개정과정에서 총론과 각론의 모든 교과에 대해 별도의 역량을 정의하고 이를 강제적으로 반영하기로 한 것은 지나치다. 과거 영어교육에서 의사소통중심교육(CLT)의 바람이 불 때 한국 환경에 맞지 않지만 무비판적으로 도입했던 점, 또 컴퓨터가 보급되고 인터넷이 탄생했을 때 모두 컴퓨터 앞에서 혹은 온라인에서 공부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오류가 문득 떠오른다. 지식기반교육을 제대로 하는 것과 역량을 함양하는 것은 별개가 아니다. 한국의 교육계에는 역량교육을 지식교육과 분리해서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이는 매우 잘못된 것이다. 그런 접근은 필연적으로 지식교육을 왜곡하고 지식교육의 폄하를 초래할 것이다. 그리고 역량을 지나치게 강조한 것의 후유증은 교과서 집필에서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교과서 집필 과정을 상상하면 끔찍하다. 교과서는 검정심사를 통과해 합격을 해야 사용될 수 있다. 교과서 출판사와 저자들은 역량 반영에 신경을 많이 쓸 것이다. 우려되는 것은 총론의 핵심역량과 각론의 개별교과 역량을 충실히 반영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교과서 집필자들이 매우 기계적으로 역량반영을 과도하게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예로, 수학교과서에 의사소통 역량정보처리 역량을 교과 역량으로 선정했기 때문에 이를 반영한 수학 교과서도 많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과도하지 않은가? 교과서 심사위원들이 역량에 대해 긍정 일변도의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예상되어 더욱 우려된다. 교과서 집필지침을 만든 분들이 이런 문제점을 잘 고려하기를 기대하지만 왠지 그 반대일 것 같다. 이것이 괜한 노파심이길 바란다.

 

 

3. 빅 아이디어(big idea)의 도입 취지와 부실 공사

 

2015개정교육과정의 개발 지향점 6가지 중에는 학습의 질 개선을 위해 핵심 개념을 중심으로 교육 내용을 엄선하여 학습량을 적정화한다.’란 내용이 있다. 그리고 이번 교육과정 개정을 위한 전문가 포럼을 통해 빅 아이디어(=핵심원리)를 통한 교육과정 재구조화를 강조했다. 이를 통해 교육과정 개정 때마다 시도하지만 번번이 실패하는 학습량 적정화를 이루겠다는 의욕을 보인 바 있다. 이 지점에서 독자들께서는 아래와 같은 의문이 들기 시작할 것 같다.

 

핵심개념빅 아이디어는 같은 것인가?

개정교육과정 문서에는 빅 아이디어는 왜 전혀 보이지 않는가?

 

이번 교육과정 개정에서 필자가 집중 비판하는 것도 바로 이 대목이다.

 

. 빅 아이디어(=핵심원리)의 도입배경은 무엇인가?

 

빅 아이디어는 우리말로 대개념, 핵심원리등으로 번역된다. 빅 아이디어를 학교교육에 본격 접목하는 것을 시도한 것은 Understanding by Design(1998)란 책이다. 이 책의 저자의 한 사람인 그랜트 위긴스(Grant Wiggins)는 빅 아이디어를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언뜻 보기에는 혼란스러운 경험과 유리된 많은 개별 사실들로부터 이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의미를 찾게 해주는 것이 빅 아이디어다.” , 이는 흩어져 있는 많은 점들을 이었을 때 만들어지는 하나의 의미있는 큰 그림과 같은 것이다.

 


[그림1] 낱개의 사실들을 연결해서 도출되는 빅 아이디어

 

Big idea는 한 두 단어로 된 어휘형과 문장형 형태 두 가지가 다 존재한다. 하지만 이번 미국의 차세대 과학과 주공통핵심성취기준(CCSS)의 성취기준 개발의 원리를 제공한 디자인에 의한 이해(Understanding by Design: UbD)’의 틀에 의하면 빅 아이디어는 ‘(문장형) 대개념을 의미하며 아래와 같은 형태로 표현된다.

과학: 우리는 아직 아무 것도 확실히 모른다.”

형식은 기능을 따라간다.”

정보는 고유한 맥락이 없으면 의미도 없다.”

우리는 우리 인간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야생의 생물을 연구한다.”

역사는 승자에 의해 기록된다.”

회계는 사업의 언어다.”

안전에는 리스크가 핵심 요소이다.”

통계적 관계가 인과관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과학적 방법이란 탐구의 과정이다.”

범죄는 사회의 시스템적 실패로부터 기인한다.”

https://iteachu.uaf.edu/online-training/develop-courses/planning-a-course/understanding-by-design/

 

이상의 대개념 즉 핵심원리는 어디서 어떻게 도출할 수 있는 것일까? 무척 궁금해진다. 관련 연구에 의하면 문장형 빅 아이디어는 아래와 같이 다양한 소스에서 다양한 형태로 추출된다.

 

개념(concepts) - 경제: 중요한 것은 돈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고 어디에 어떻게 돈을 배정하는가의 문제다.

테마(themes) - 선은 악을 이긴다.

토론(debates) - 승리는 공격 대 방어에 달렸다.

관점(perspectives) - 인생은 자신의 태도에 따라 결정된다; 나의 컵에는 물이 반 잔이나 있다혹은 물이 반 잔밖에 없다’.

역설(paradox) - 자유에는 책임이 수반된다.

이론(theory) - 기능이 형식을 앞선다; 건강하려면 영양섭취가 중요하다(You are what you eat.).

원리(principle) - 적은 것이 많은 것이다.

가정(assumptions) - 난픽션 글은 항상 진실을 묘사한다.

(Rosemary Ball , 2012)

 

이상에서 보듯이 빅 아이디어는 어휘형 핵심개념(core idea)과 전혀 다른 것이다. 아래 <3>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3> ‘개념 빅 아이디어도출

(핵심)개념(concept)

빅 아이디어(big idea)

영양(nutrition)

건강하려면 영양섭취가 중요하다(You are what you eat).

일본의 패전(WWII)

일본의 패전은 한국 해방의 실마리가 되었다.

설득적인 글쓰기

강력한 매체를 활용하면 사람들의 신념과 행동도 바꿀 수 있다.

데이터의 공정성

통계자료를 조작해서 진실을 호도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번 2015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이런 빅 아이디를 왜 도입하려 한 것일까? 빅 아이디어에 의한 교육과정 재구조화의 본래의 취지는 이제 (dot)’이나 나무(tree)’에 해당되는 단편적 지식의 습득 교육에서 이런 이나 나무를 이었을 때 만들어 지는 큰 그림(big picture)’이나 (forest)’을 배우는 교육으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 개별 지식은 다 잊은 후에도 기억에 남을 핵심원리를 배우는데 초점을 맞추자는 의도다. 빅 아이디어를 활용한 단원 설계는 아래와 같은 절차를 따른다.

 

<4> 단원 학습설계 절차(UbD)

학습목표 수립 (관통개념 도출) 빅 아이디어 도출 핵심질문 도출 핵심질문의 답 도출을 위한 수업설계 평가

 

이는 교육의 최종 목표이자 결과를 바라보며 하는 역순(backward) 방식의 수업설계다. 이런 방식의 수업 설계는 아래 <5>처럼 장점이 많다.

 

<5> 빅 아이디어 중심으로 재설계된 교육과정의 특징

UbD 대견해의 특징

중요한 이유

단편적 지식 습득의 결함

역순 설계 모형

목표-지도-평가의 연계의 중요성이 큼

활동을 위한 활동, 학습 범위 전체의 진도 빼기 목적 우선

배운 지식의 전이/활용 중시

학교교육이 핵심이 진정한 이해(활용능력 포함)

학습자는 배운 것을 활용하지 못함

대견해를 통한 이해

전이/활용 능력은 연결학습을 통해 가능함

연결이 없는 분절적 학습이 더 어렵고 집중도 안 됨

의미있는 학습

학습자를 몰입시키게 됨

목표-지도-평가 연계가 미흡해 의미를 모르는 학습을 함

http://www.slideshare.net/jdumaresq/understanding-by-design-the-basics?next_slide

 

교사들 중에 이번 2015개정교육과정에서 빅 아이디어를 도입한 것이 이런 취지였다는 것을 아는 몇 사람이나 될까? 필자의 짐작으로는 이번 교육과정 개정과 상관없이 빅 아이디어를 별도로 연구한 사람이 아니면 극히 소수일 것이라고 짐작된다. 이런 상태에서 공청회를 열고 의견을 듣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빅 아이디어와 핵심질문을 통한 수업설계는 매우 정교한 고난도 작업이긴 하지만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이런 수업 설계를 하기 위해서는 대견해와 핵심질문의 도출이 매우 중요하다. 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핵심개념-대견해-핵심질문간의 관계를 예를 들어 설명하겠다.

 

<6> 개념-대견해-핵심질문의 예(Rosemary Ball , 2012)

(핵심)개념

대견해(big idea)

핵심질문

혁명

갈등은 변화를 초래한다.

권리장전은 모든 시민에게 도움을 주는가?

돈과 분별력

사업의 성공 여부는 고객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느냐에 달렸다.

창업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사업은 어떻게 해야 성공하는가?

 

이상과 같이 빅 아이디어란 새로운 개념을 도입은 해당 교과 내용을 몇 개의 핵심개념으로 분류하고 각 개념을 구성하는 구체적인 내용들로부터 대견해를 도출하는 작업을 수반한다. 빅 아이디어에 의한 단원 설계는 핵심원리, 핵심질문의 도출이 핵심 중 핵심이다. 그러나 이번 2015개정교육과정에서 이런 것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없었다. 개발 지향점에서 학습의 질 개선을 위해 핵심개념을 중심으로 교육 내용을 엄선하여 학습량을 적정화한다.’라고만 되어 있다. 빅 아이디어의 도입 취지는 위 <5>와 같고 이를 실현하는 틀은 <4,6>과 같이 대견해(=핵심원리)와 핵심질문을 갖추고 있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교육과정의 내용체계에는 핵심개념이란 단어만 나오고 빅 아이디어는 온 데 데 없다. 어디로 갔을까?


. 빅 아이디어(=핵심원리)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이미 앞에서 살펴본 바로 예상할 수 있듯이 빅 아이디어와 핵심질문을 중심으로 한 수업 설계는 수많은 낱개의 정보 즉 점들을 이어서 하나의 큰 그림 즉 핵심원리를 도출하는 것이고 이는 매우 고난도의 작업이다. 한국이 이런 경험이 축적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적어도 2~3년은 집중 연구를 해야 시범 교과서가 나올 수 있을 정도의 일이다. 빅 아이디어 도입 취지에 대해서 누가 토를 달겠는가. 그러나 전 교과에 전면 도입한 것은 용감무쌍하다고 해야 할지 무책임하다고 해야 할지 두고 보면 알 일이다. 적용이 비교적 적합한 과학교과나 사회교과에 먼저 시범적으로 적용해보는 것은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전 교과에 전면 적용을 했다. 그런데 적용을 하려면 제대로 적용해야 하다 적용을 시도하다가 만 수준이다. 정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실제 교육과정 문서에는 빅 아이디어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교육과정 내용 체계표를 보면 아래와 같이 되어 있다.

 

<7> 2015개정교육과정 내용체계표 구성


 

<8> 통합과학 내용 체계표 



눈을 닦고 봐도 위 <7,8>에는 빅 아이디어가 보이지 않는다. 다른 과목에도 보이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빅 아이디어에 의한 수업설계 원리와 관련된 내용체계 상의 유일한 용어는 핵핵심개념(core idea)’뿐이다. 그런데 그 내용을 뜯어보면 핵심개념이라기보다는 대 주제(big topic) 성격의 것들이 대부분이다. 빅 아이디어 이론을 학교수업에 적용하는 것을 다룬 Understanding by Design(UbD)의 저자 그랜트 위긴스는 주제(topic)와 개념(idea)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고 특별히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그는 변화’, ‘관계’, ‘수 시스템등의 용어를 예로 들면서 이들은 대개념이 될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이들 어휘들은 많은 지식을 내포하고 있지만 빅 아이디어의 요건인 ‘(최소한의)추상성, 구체성, 실용성, 유용성, 예측적·연결적 힘, 풍부한 통찰력을 제공하는 추론 가능성등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빅 아이디어는 행방불명되었지만 동전의 양면과 같은 핵심질문은 어떻게 되었을까? 공통과학과 공통사회에는 핵심질문을 선보였다. 이는 큰 의미 있는 진전이라도 평가하고 싶다. 그러나 문장형 핵심원리가 전혀 없다. 그런데도 관련 보도자료에 보면 핵심개념과 핵심원리에 의해 학습량을 재구조화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눈을 닦고 봐도 핵심원리는 보이지 않는다. 학습자 중심의 수업을 평가할 평가도구에 대한 연구나 모형 개발도 없다.

한 마디로 새로운 개념에 의한 교육과정 재구조화 작업이 그 중요성에 비해 너무 허술하다. 네 바퀴가 있어야 정상 운영이 가능한 자동차에 바퀴를 2~3개 끼우다가 말고 차를 출시한 격이다. 이런 차를 몇 미터나 정상적으로 운전할 수 있을 것인가? 출발하자말자 사고를 낼 위험이 매우 크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주원인은 불확실한 도입동기, 시간부족, 연구부족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남의 것이 좋아 보이면 그냥 전면 도입하고 보는 아주 나쁜 버릇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정교한 작업은 학자와 각 교과를 범교과적 통합수업 방식으로 오랫동안 지도한 경험이 있는 선생님들 간의 오랜 기간 협업을 통해서만 가능할 일이다. 신이 와서 해도 1년만에는 끝낼 수 없는 고난도의 대 작업이다. 그렇다보니 빅 아이디어 도입의 취지까지 왜곡하고 있다. 빅 아이디어는 학습량을 줄이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어떤 내용이 가장 중요한가에 관한 것이고 핵심원리 중심의 학습을 위한 것이다.

 

 

4. 2015개정 교육과정이 범하고 있는 치명적 결함 2가지

 

이번 2015개정 교육과정의 설계상 가장 크게 문제되는 것을 꼽으라면 두 가지를 들겠다. 하나는 지식 위주의 암기식 교육에서 배움을 즐기는 행복교육으로의 전환을 강조함으로써 지식기반 교육을 폄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매우 잘못된 인식이다. 지식기반교육의 폄하 경향은 역량 교육을 강화하면서 심화된 면이 있다. 21세기 사회의 특성을 고려할 때 역량 교육의 강화는 필요하다. 하지만 역량교육은 지식교육 속에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까지 역량교육을 소홀히 한 것이 아니라 지식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지식 교육에 다양한 수준이 있는데 지금까지는 알다, 이해하다에 머물렀던 것이 문제다. ‘적용하다, 분석하다, 평가하다, 창조하다등의 고등사고능력 함양을 소홀히 한 것이다. 이 외에 이번 2015개정 교육과정의 설계상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이 또 하나 있다.

 

이질적인 것 두 가지 즉, 역량을 강조하는 교육과 핵심원리(=big idea) 중심의 교육이 아무런 상호관련성 없이 함께 도입되었다는 점이다. 역량은 실용적 지식이고 핵심원리는 학문적 지식이다. 또 이 둘은 수업설계 방식이 매우 다르다. 전자는 문제해결능력, 협업능력, 자기관리능력, 비판적 사고능력 등 어려운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실용적 역량이다. 따라서 이는 프로젝트수업이나 문제해결수업 등을 통해 기르게 된다. 하지만 핵심원리 중심의 교육은 수업설계가 '학습목표-> 핵심원리 도출-> 핵심원리의 깊은 이해를 위한 핵심질문 도출 -> 핵심질문의 답을 얻기 위한 수업활동 설계-> 평가'란 절차로 이루어진다.

 

수업설계의 원리와 절차가 매우 다른 두 가지를 상호간의 관계 정립도 없이 병렬적으로 도입한 것은 교육과정 기준 문서의 심각한 결함이 아닐 수 없다. 역량은 지식의 활용을 강조하기 위해 도입한 면이 크고, 핵심원리(big idea)에 의한 교육과정 재구조화는 개별 지식을 관통하는 핵심 원리 중심의 지식수업을 하자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교육과정이 개정되어도 되는가? 이 문제점에 대해 교육부와 학자들은 명쾌히 해명해야 한다.

 

 

5. 맺음말

 

2015개정교육과정은 그 출생의 과정이 참 해괴했다. 수능체제 개선하려다가 교육과정 전면개정에 이른 것이다. 이번 교육과정 개정의 결과를 바라보는 현장은 마치 쓸쓸한 가을을 맞는 기분이 아닐까 싶다. 현장의 여건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는데 교육과정 문서 치장만 해서 내려 보내면 뭘 하나 하는 생각에 많은 선생님들은 또 한 번 좌절의 한숨을 크게 내쉴 듯하다. 그래도 절망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어떤 역경 속에서도 우리의 아이들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직 한국은 교육 후진국이다. 세계적 중등교육 후진국인 영국과 미국을 따라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교육과정 개정의 절차 면에서 봐도 한국은 후진국임이 분명하다. 이제 교육과정 개정의 절차부터 혁신해야 한다. 그리고 직접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교육과정 편성권을 갖도록 해야 한다. 매우 중앙집권적인 싱가포르도 교육과정 편성권은 교사에게 있다. 교사의 전문성 향상은 교육과정 편성권과 평가권, 주요 의사결정권이 교사에게 주어질 때만 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할 때만 지역과 학교에 맞는 교육을 할 수 있다. 이런 변화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

우선 침묵과 순종, 무기력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저항해야 한다. 그러나 그 저항은 평화적인 것이어야 한다. 이를 통해 차기 교육과정 개정은 교사가 중심에 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마이클 애플이 곧 한국에 온다. 그가 강조하는 사회개혁의 철학 사랑(love), 배려(caring), 연대(solidarity)’를 상기했으면 좋겠다. 최근의 그의 저서 교육은 사회를 바꿀 수 있는가?”란 책에 나오는 다음 문구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교육을 통해 사회를 바꿀 수 있는가?”

바꿀 수 있다.”

사회가 각종 계급적 요소와 자본주의 시스템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때만(if and only if).”

 

하루하루 힘든 현실을 마주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선생님들께 힘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모두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교육과정이 존재할 수 있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는 애플의 말처럼 선생님들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지속적으로 저항하고 열심히 노력하느냐에 달린 문제다. 아울러 기존의 학교 시스템의 창조적 파괴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통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앞으로의 노력 방향은 교육과정보다 더 큰 그림 즉 모두의 열망이 담기고 영감을 불러일으키며 가슴 뛰게 할 그런 교육비전을 그리는 것부터 시작했으면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의 학교교육 개혁을 위한 빅 아이디어와 핵심질문을 도출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 지면의 한계로 창의융합인재 양성은 허구적 정치적 구호라는 필자의 견해를 소개하지 못해 아쉽다. 이에 대해서는 필자가 운영하는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공교육 희망 칼럼 109회를 참고하시기 바란다(http://21erick.org/bbs/board.php?bo_table=11_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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