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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2
응답하라 2013
- 서울, 경기, 강원의 학교성과급 전액 누적 반납 투쟁의 의미와 전망

손지희 / 상신중


1. 시카고 교사들은 왜 파업을 했을까

시카고 교사, 25년 만에 파업, 그리고 승리


지난 9월, 시카고 교원노조 교사들이 무려 25년 만에 대규모 파업을 벌였다. 신자유주의 심장부인 미국, 게다가 신자유주의 학파로 전 세계에 알려진 시카고 학파가 둥지를 튼 도시에서 교사들이 파업을 했다. 교사들을 파업으로까지 내몬 핵심 쟁점은 '교원평가'이다. 교사들의 반발을 크게 불러일으킨 것은 학생들의 일제고사 성적을 잣대로 한 교원평가제 시행 때문이며 이를 막기 위해 교사들이 파업을 벌여 주목을 끌었다. 관련 기사 내용을 옮겨본다.

"미국에서 세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 시카고에서 10일 2만5000여명의 교사들이 붉은 티셔츠를 입고 교실을 뛰쳐나왔다. 시카고 교사들이 파업을 벌인 것은 25년 만에 처음이다. 이번 파업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자 ‘오바마의 남자’로 불리는 람 이매뉴얼(전 백악관 비서실장)이 시장으로 있는 도시에서 벌어진데다, 오바마 대통령이 추진해온 교육개혁 정책에 대한 반발이라는 점에서 대선 이슈로도 비화될 조짐이다. 가장 큰 쟁점은 학생들의 성적을 잣대로 교사들의 성과를 평가하는 교원 평가제 시행이다. 지난해 취임한 이매뉴얼 시장은 교사들의 성과 평가에 학생들의 일제고사 성적을 40%까지 반영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는데, 교사들은 이는 현실을 무시한 정책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한겨레, 2012년 9월11일)

교사들이 파업을 하다니? 그것도 25년이나 잠잠하다가 파업을? 왜 시카고의 교사들은 파업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것일까? 다른 교육여건은 다 그럭저럭인데 유독 교원평가와 성과급제만 교사들이 불만을 품어서는 아닐까? 집단이기주의로 몰린 끝에 파업 교사들은 백기를 들고 막을 내려야 당연한 귀결이 아닐까?


교사들이 맞선 것은 20여 년 간의 신자유주의의 횡포

교사 파업은 승리했다. 시민들은 파업에 나선 교사들을 전폭적으로 지지했으며 다른 도시의 교사들과 노조들도 전국적인 투쟁의 전조로 반겨 마지 않았다. 시카고의 지역교육여건은 매우 열악하다. 시카고의 학생 40만 명 중 80%가 빈곤층이다. 고등학교 재학생 중 60%만이 졸업한다. 미국 평균 고등학교 졸업률은 75%이다. 그리고 교사들은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한 경쟁의 압력 속에서 임금 하락과 신분 불안에 장시간 노출되어 있었다. 이러한 나쁜 교육 상황은 미국 대다수 공립학교들과 교사들이 처한 현실이라고 보는 게 맞다. 다른 도시의 교사들과 노조들 역시 임금과 노동조건 개선과 관련한 이번 파업을 전국적인 투쟁의 전조라며 지지를 표하고 반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카고 교원노조가 맞선 것은 20년간의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의 횡포이다. 나아가 신자유주의로 인한 교육여건의 파괴와 경쟁에 따른 폐해이다. 이런 지경에 일제고사 결과를 교사 성과급 지표로 무려 40%를 반영하겠다고 했으니 교사들이 나서지 아니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번 파업에서 교사들은 일제고사-교원평가-성과급의 연동에 반기를 들었음은 물론, 차터스쿨(우리 식으로는 자율학교) 확대 및 지원 확대, 고용안정 후퇴, 수업일수 연장에 맞섰다. 하나같이 우리가 여실히 경험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정책들이다. 이번 파업을 통해 알려진 대로 이는 ‘오바마의 남자’로 불리는 이매뉴얼 시카고 시장의 핵심 정책들이었다.
이번 파업은 미국 대선 쟁점으로도 빠르게 부상했다고 한다. 미국의 보수 양당 체제에서 미국의 교사들과 노동자 계급이 선택할 선택지가 양당 중 하나밖에 없다는 사실이 암울하기는 하지만, 오바마의 집권으로 나아지지 않을까라는 기대가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는 점은 시사사는 바가 적지 않다.
사실 오바마 정부의 교육정책은 우리 입장에서는 참으로 실망스런 구석이 많았다. 미국판 일제고사인 NCLB(학생 낙오 방지법) 수정안이라고 내놓은 것도 부시 행정부의 그것과 별다를 바가 없었고 이번 시카고의 교육정책에 연방정부는 지지입장을 표했다가 교사 파업으로 곤혹스런 입장이 되었다. 대선에 악재로 작용하지 않을까라는 우려 때문이다.

2. 2012년 학교성과급 투쟁

도입 1년 만에 두 배로 규모 확대된 학교별성과급

한국은 아직 교원평가, 성과급, 학생평가가 긴밀히 연동되어 있지는 않다. 현행 개인별 성과급과 교원평가가 그럴 뿐이며 결합의 전조는 작년에 나타났다. 2011년부터 학교별성과급에 한해 학생의 성적이 평가에 반영되기 시작했고 시행 두 번 째 해인 올해 규모가 두 배로 커졌다. 전체 성과급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10%에서 20%에서 늘렸다. 학교성과급은 100%차등 지급 방식을 취하므로 차등액의 규모도 은근슬쩍 키운 셈이다.
학교별 등급이 통보되자 학교현장에서는 우려하던 바들이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학교성과급의 위험성이 거의 도입되기가 무섭게 드러나고 있다. 관리자들의 머릿 속과 입은 더 바빠졌다. 연수 많이 받으라, 일제고사에 성심성의껏 임하게 학생들에게 훈화지도하라는 독려는 귀여운 축에 속한다. 학교성과급 없이 일제고사가 시행되던 때에도 온갖 부작용과 반교육적 행태가 속출했었다. 이제 두 가지가 결합이 되어 버렸으니 시너지 효과가 어떠하리라는 것은 불보듯 훤한 일이다. 불평불만이 한편으로는 커지지만 이와 더불어 학교성과급에 대한 부담으로 평가지표에 어울리는 쪽으로 학교 정책이 기울어지게 되리라는 경고에 부합하는 현상들이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학교평가를 의식하여 교육당국에서 진행하는 온갖 설문조사의 참여율을 높이라는 독려 때문에 귀가 따가울 지경이다. 학교폭력에 해당하는 사안이 발생하면 사안 자체의 해결을 모색하기 보다는 '뒷생각'이 바쁜 관리자들의 모습이 씁쓸하기만 하다. 매사가 그렇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생각과 그에 따른 말은 '혹시라도 있을 지 모를 불이익'이라는 깔대기 속에 소용돌이쳐 들어간다. 성과급을 무기 삼아 횡포가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 참으로 끔찍하다. 이는 그들의 성품과 상관이 없다. 제도의 압박이란 극복하기 어려울 때가 있는 법이다.

참담했던 학교성과급 균등분배

당초 30%로의 확대가 정부의 목표였으니 20% 확대에 머물렀다고 반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전교조는 도입 첫해 기금조성 전술을 전개했지만 별다른 효과없이 끝났고 기금조성전술의 실패를 대대에서 인정하였지만 더 나아간 전술로 돌파구를 열지도 못하였다. 기금조성전술은 폐기되었지만 대다수 지부는 지역별 균등분배에 그치면서 올해 성과급 투쟁은 종결되었다.
학교성과급 균등분배가 거의 마무리된 미취합 내지 미지급인 지역 세 곳을 제외한 8월 말 현재 전국 13개 시도지부 균등분배 현황은 다음과 같다.

○ 학교성과급 균등분배 총 참여인원 : 11,387명 (서명은 19,885명 참여)
○ 학교성과급 1인당 분배액 : 전국 평균 545,480원 (최저 지역은 386,710원)
○ 개인별성과급 균등분배 총 참여인원 : 1,047개교, 10,108명 (확인 지역 7개)

학교성과급 균등분배 결과 확인된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균등분배는 대중적이지도 않으며 지속가능성도 없는 전술이라는 점이 이번 균등분배 결과 드러났다. 비조합원도 참여한 경우가 있겠지만 단순히 숫자만 비교하면 조합원의 절반은커녕 20%에도 못 미친다. 대중적, 즉 더 많이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들이 있었는데 참담하게 무너졌다. 속 내용은 더 좋지가 않다. 균등분배액 최저인 지역의 경우 분배 후 1인당 386,710원(세금 제외)을 되돌려 받았는데 이 액수는 S등급 학교의 참여가 매우 미미했으며 그 결과 A등급이 B등급에게 돈을 주는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학교등급
S
A
B
지급액수
925,930
617,290
308,640
세금
152,780
101,850
50,930
세금 제외시 1인당 지급액
773,150
515,440
257,710


이 경우 B등급 학교의 참여자들에게 '다음에도 함께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길 리가 없었을 것이다. 균등분배는 지속하기 어려운 전술이라는 점은 개인별 성과급 균등분배 참여가 날로 줄었다는 점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개인별성과급은 전교조가 관할할 수 있는 조직적 전술이 이미 아니라는 점도 위의 개인별 성과급 참여학교와 참여인원을 보아도 알 수가 있다. 그냥 학교 상황과 활동가의 개인적 의지에 내맡겨진 지 오래다. 그런데 전교조의 전술로 채택되어 모든 지부에서 진행한 학교성과급 균등분배 첫 해인 올해의 성과는 참담할 지경이다. 이는 조금만 생각하면 왜 그런지 알 수 있다. 등급이 높으면 높은 대로 낮으면 낮은 대로 참여가 주저되는 것이 현실이다. 최저 지역의 경우 B등급 참여자들의 경우는 마음까지 무척 상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같은 학교 동료도 아니고 누군지도 모를 사람들한테 '구걸'하는 기분까지 들었을 수 있다. 개인별성과급의 경우 균등분배 참여가 많으면 심리적 위안이라도 얻지만(적을 경우엔 그렇지 않다), 학교성과급 균등분배는 그런 소소한 효과마저도 없었다. 오히려 역효과가 우려될 지경이다.
둘째, 정부에 아무런 압박수단이 되지 못하는 무기력한 전술임이 드러났다. 균등분배가 위력을 발휘하려면 엄청나게 많은 인원이 참여해야 하는데 앞서 살핀 대로 전혀 대중적 참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균등분배가 그나마 압박효과를 가지려면 대규모 참여를 통해 '교사들의 분노'를 보여주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는 조건에서 이미 출발하고 있었음을 직시했어야 했다. 개인별 성과급이 거의 안착된 상황, 다시 말해 성과급 투쟁을 사실상 포기한 채 4년여를 보낸 상황에서 대중적 폭발력을 일으킬 수 있는 깜짝 전술이란 없다. 게다가 균등분배는 해가 지날수록 참여가 줄어들 게 되어있는 '위축형 전술'이고 그러다가 소멸한다. 균등분배 한 번 한다고 정부에 강펀치를 날릴 수는 없기 때문에 지속하면서 참여를 계속 키워야 전망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저 협박 좀 하면 소멸할 전술이므로 정부로서는 성가시거나 피곤할 까닭이 전혀 없다. 이는 개인별 성과급 현장무력화 전술인 균등분배와 순환등급제에서도 이미 확인했었다.  
조직의 결정이기 때문에 호응도 없고 보람도 없는 일을 하는 분회장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았다 등등의 문제들은 자세한 언급을 생략하겠다. 요컨대, 학교성과급 균등분배는 아무런 존재감 없이, 정부에 아무런 부담을 주지도 못한 채 마무리되었다.

서울, 전북, 강원의 학교성과급 전액누적반납 투쟁

학교성과급 누적반납은 작년 서울 단 한 지역, 그것도 지부 사업으로가 아니라 현장교사들이 뜻을 모아 작은 규모(180명 남짓 참여, 액수는 3400만원)로 시작했다. 이에 견준다면 올해 학교성과급 누적반납투쟁은 많이 확대된 셈이다. 세 개 지역에서 진행 중이고 작년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 이를 통해 누적반납은 조직적 결정을 하면 확대가능성이 충분한 전술이라는 점이 희망적이다.

올해 학교성과급 누적반납을 실천하고 있는 세 개 지역을 현황을 소개한다.

먼저, 서울은 10월초 현재 누적액 1억 돌파를 앞두고 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차등성과급폐지를 위한 학교성과급 누적반납 서울지역 추진단"이 주체가 되어 진행해 왔다. 서울지부 집행위에서 몇몇 지회장들이 균등분배와 병행을 제안하여 '긍정적'으로 검토되는 분위기인 듯 하다가 끝내 지부 사업으로 결정하지 못한 경우다. 더 많이 확대될 수 있었지만 지부 사업이 아니라는 한계는 여전히 장벽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조직적 결정을 등에 업지도 못했는데 현장 교사들이 이 정도의 성과를 낸 것은 과소평가할 수 없다. 서울지부 균등분배 참여인원은 1,780명에 불과했기 때문에 기자회견 등 후속사업을 할래야 할 수도 없었다. 서울 뿐만 아니라 균등분배만 진행한 모든 지역은 돈 나누고 조용히 끝났다.

다음으로 강원지부는 세금도 제외하지 않은, 말 그대로 전액 몽땅 반납과 더불어 참여자 명단 공개를 대의원대회를 통해 결정하여 진행하였다.

<강원지부 성과급 지급액 및 반납액>

학교등급
S
A
B
지급액수
925,930
617,290
308,640

󰁾 학교성과급이 지급되면, 강원지부 계좌로 전액 반납하고 참여자 명단을 공개합니다.
󰁾 교육청에 반납을 추진하며 수령 거부 시에 지부에서 누적하여 참여자를 확대해 나갑니다.
󰁾 추후에 성과가 있으면 지부대의원대회에서 반환 시기를 결정하고 참여자에게 균등 분배합니다.

9월20일 강원지부는 강원도교육청 앞에서 반납기자회견을 열었다. 김효문 지부장 외 214명의 반납 참가자 명단 112,962,740원의 반납액을 전달하면서 "성과급제도 폐지를 통해 수당으로 반환"하라는 요구사항을 전했으나 도교육청은 수령을 거부했다. 강원지부의 균등분배 참여인원이 210명이었음을 감안하면 대중적 참여확대라는 균등분배 정당화 명분은 허상이었던 셈이다. 더욱이 명단공개까지 결합된 전액반납투쟁이었으니 이는 꽤 고무적인 결과다.

마지막으로 전북지부는 10월4일 현재 약 858명이 참여하였으며 반납총액은 3억 8천여 만원에 달한다. 전북은 진보교육감이라는 우산 아래서 교과부의 횡포로부터 보호받고 있는 지역이라는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킬 만한 곳이다. 자립형사립고 지정 취소, 체크리스트가 아닌 서술형 교원평가 실시, 학교폭력 기재 거부 등이 실은 전북지부의 견인노력의 결과임을 간과해선 안 된다. 진보교육감을 배출한 지역들의 저간의 상황을 보면, 투쟁 없이 교육감 '덕'을 본 경우는 없었다. 제도 자체를 변화시키려는 전교조의 대정부 투쟁 없이 혁신학교 등 진보교육감이 트레이드 마크 삼아 추진하는 사업만으로는 개량조차 기대하기 힘들다.

간추리면, 9월 현재 학교성과급 전액 누적반납 참여 현황을 작년과 비교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2011년 : 서울 한 개 지역, 156명, 총액 3200여 만 원
=> 2012년 : 3개 지역 1238명, 총액 5억 8천 여 만 원


올해 3월『진보교육』에서 필자는 성과급에 관한 글을 다음과 같이 마무리했었다.

"학교성과급에 관한한 무엇을 해야 할 지는 분명하다. 아마도 5월 쯤 등급이 통보될 것이고, 6월에는 통장에 기분 나쁜 돈이 들어올 것이다. 그나마 방학 전이라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성과급 거부, 수당화 쟁취'를 위한 구체적인 행동 즉 '누적반납'을 지금부터 결의하고 실천하는 것. 개인성과급 차등액도 묶어서 전국적으로 하면 더할 나위 없이 확실하겠지만 최소한 학교성과급 누적반납을 결의하는 지부, 현장의 움직임이 3월 내에 나오는 게 지금 기대할 수 있는 그림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전국적 실천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싶다. 적어도 작년부터 서울지역에선 학교성과급 누적반납을 실천했고 지속을 다짐했다. 서울지역 누적반납 추진단은 혼란스러움 속에서도 추진단을 믿고 누적반납에 동참에 주신 동지들을 생각해서라도 이 싸움을 계속할 각오가 되어 있단다." (2012년 3월, 진보교육44호, 「'성과급', 아직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원하는 만큼은 아니었지만 3개 지역의 실천을 통해 '그래도 불씨는 살려놨구나' 정도의 상황까지는 진전된 셈이다.
2012년 2월 전교조 대의원대회에서 사업계획 심의 과정에서 학교성과급에 관한 한 균등분배에 누적반납을 병행하는 방안이 제안되었고 이에 따라 지부별로 실천할 여지가 생겼었다. 하지만 '균등분배도 힘든데 누적반납을?'이라는 관념에서 벗어나기 힘든 까닭이었는지 여러 지역이 누적반납을 결정하는데 어려움과 좌절을 겪었다. 언뜻 생각하기에 누적 반납이 더 쎈 전술인데 하물며 지금과 같이 실천력과 조직력이 떨어져 있는 전교조 상황에서 불가능해보일 수 있다. 더 많은 참여가 가능해 보이는 균등분배라도 하자는 생각이 떠오르게 된다. 뚜껑을 열어보니 그렇지도 않았다는 점은 앞서 지적했다.
작년 서울지역 현장교사들은 대중적인 전술이라는 판단을 해서 학교성과급 전액누적반납을 시작한 것이 아니다. 학교성과급의 등장이라는 위중한 조건에서 성과급 투쟁의 불씨를 다시 지피기 위한 전술이라는 점에 의미를 부여했으며 해를 거듭할수록 키울 수 있으며 정부와의 긴장을 높일 수 있으리라는 판단이 있었다. 물론 5년이고 10년이고 돈 쌓기를 지속해서는 곤란하다.
앞서 살핀 현황을 통해 안구가 돌출할 정도의 성과는 아닐 지라도 결코 우습게 볼 결과가 아니다. 올해 세 개 지역의 투쟁을 발판삼아 성과급 폐지를 위한 투쟁의 들불이 전국으로 퍼질 수 있는 최소한의 발판은 마련되었다. 이들 세 개 지역은 10월 중순 경 교과부 앞에서 반납기자회견을 합동으로 할 계획이며 10월 초 현재 마무리 작업 단계이다.


3. 응답하라 2013

"응답하라 1997"는 최근 한 케이블 채널에서 인기를 끈 드라마 제목이다. 드라마는 1997년에 학창 시절을 보낸 이들의 추억을 재미나게 그린 것으로 호평 받았다. 필자가 보기에 드라마 속의 응답은 다수의 개인들에게 자리잡고 있는 '기억'이다. 드라마는 소소한 일상의 기억들을 일깨우며 즐거움으로 인도한다. 1997년은 외환위기가 터졌고 대선이 있었던 해다. 비록 새로운 정권 역시 얼굴만 달라졌을 뿐 본질은 신자유주의 정권이었지만 그래도 많은 이들은 1997년을 IMF사태와 정권 교체의 해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역사의 기억에서는 힘겨웠을 시기라도 어찌 일상의 깨알같은 재미가 없었으랴. 그래도 역사의 기억에 무게 중심을 두고 오늘을 기억할 훗날, 우리의 2013년은 역사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아니 어떤 과거로서 응답하도록 할 것인가? 시카고 파업에 참여한 교사들은 2012년을 아마도 '승리의 해'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인간에게는 기억이 전부가 아니다. 여러 가지 인간의 능력 중 특히나 상상은 인간만이 누리는 '특권'이 아니겠는가. 상상은 창조의 바탕이다. 상상은 인간을 위축시키기도 하고 현실을 수용하게 만든다. 하지만 어떤 상상(필자의 생각엔 과학적 사고와 의지 그리고 모종의 지향성을 바탕으로 한 상상)은 용기있는 행동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발칙한 상상 한 번 해본다.

"2013년 전교조 신임 집행부는 새로운 정권이 교사들의 대규모 성과급 누적반납에도 미적거리자 파업을 결의한다. 교사들은 비단 성과급, 교원평가, 일제고사 폐기만 요구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교육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물론 2013년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교사 파업의 도화선이 된 것은 수년간 한국교육을 파행으로 몰고간 주범인 성과급, 교원평가, 일제고사였다."

상상이 망상으로 귀결될 지 창조의 씨앗이 될 지는 주체의 역량과 실천에 달린 문제다. 우리가 처한 현실은 서두에 언급한 미국 교육과 교사들이 처한 현실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게다가 우리는 신자유주의 훨씬 전부터 입시지옥을 겪으며 살았다. 버틴 게 신기할 정도다. 물론 한국인들은 입시지옥을 어찌 그리 버티고들 살았나라는 문제는 별도의 분석주제이다. 실은 버틴 게 아니라 바꿀 길을 못 찾은 것은 아니었는지. 어린 학생들이 자살을 하는 지경이어도 바뀌지 않았던, 강고해 보였던 입시체제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전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20년 대선을 앞두고 국립대 통합네트워크가 야당의 공약으로 검토되는 등 변화의 조짐은 감지된다.
미국의 교사들은 대선을 앞둔 올해 파업을 했고 그들은 승리했다. 지금 처한 상황을 바꿀 수 있다는 전망만 있다면 파업보다 더한 일인들 왜 못 하랴. 2012년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은 파업보다 더한 일(그게 뭔지는 아직 상상해보지 않았다)을 해도 모자랄 지경이지만 지금으로서는 주체적 역량을 탓할 수밖에 없다. 권력을 쥔 못돼먹은 갑들의 창조는 다수를 불행하게 만든다. 일제고사, 성과급, 교원평가, 교육과정, 말도 안 되는 학교폭력대책.... 나열하기도 버거울 지경이다. 특히 올해는 정권 말기 이주호가 복수담임제, 학교스포츠 클럽 등으로 교사들을 멘붕에 빠뜨렸다. 우리는 어느덧 패배에 익숙해져서 과감한 상상을 창조적 실천으로 옮기기도 전에 지레 접으며 살아온 것인지도 모른다.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작지만(해보니까 누적반납은 사실 그리 큰 일이 아니었다. 메신저로 취지 설명하는 정도의 소극적 설명만 해도 공감하는 사람들은 참여하더라는)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누적반납을 실천한 세 개 지역 교사들에게 박수를 보냄과 동시에 해보지도 않고 애꿋은 상상으로 미래의 가능성마저 차단하는 우를 더 이상은 범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언젠가는 과거가 될 2013년은 아직은 미래다. 주체들이 창조해야 할 미래. 2012년 천 명의 교사들은 누군가에게 맡기는 대신 스스로 미래를 창조하려는 움직임에 가담했다. 우리는 2013년 이맘 때 어떤 실천을 모색하고 있게 될까. 응답하라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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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1 [80호 특집1] OECD 교육 2030의 내용과 이론적, 실천적 의의 file 진보교육 2021.05.08 14372
1490 [담론과문화] 찜질방으로부터의 사색 file 진보교육 2008.04.07 13225
1489 담론과 문화> 드라마 SKY캐슬 - ‘누가 아이들을 죽였는가!’ file 진보교육 2019.01.18 13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