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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혁명을 위한 교육패러다임의 전환

-- 진보교육연구소 교육이론분과



1. 참교육이념과 공교육개편안, 그리고?

참교육이념은 당시의 한계와 상황을 반영한다. 교육실천의 방향과 관점으로 구체화되었다기보다는 교육모순에 대한 항변에 가까웠다. 기댈 수 있었던 교육이론이라고는 재생산이론 정도였고 사회주의 교육이론에서 취할 수 있는 내용은 노동과 학습의 결합이라는 종합기술교육이 전부이다시피했다. 제도교육학은 차라리 지양과 비판의 대상이었지 기존의 교육을 뛰어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성하는 근거가 될 수 없었다. 현장 참교육 실천에 있어서는 부가적, 틈새활용적 방식이 주를 이루었고 수업방식 변화 시도가 개별적으로 이루어지는 형세였다. 교육의 본질적이고도 관건적인 영역인 교육 목표, 교육적 인간상, 교육내용, 평가 등에 대해서는 실천과 논의가 지연되거나 회피될 수밖에 없었다. 참교육 이념이 대안적 교육패러다임으로의 발전 전망을 찾지 못하고 정체되는 와중에 전개된 전교조 때리기 공세 속에서 참교육이념은 ‘초심론’으로 악용되었고 참교육이념은 낭만적으로 회고되는 과거가 되어 갔다. 국가주의의 파시즘적 관료주의 교육체제에 대항하는 성격이 강했던 참교육이념은 신자유주의 교육 패러다임에 맞서는 무기가 되지 못했다.
신자유주의 재편 공세 대응 과정에서 교육운동진영은 참교육실천의 성과를 종합하여 총체적 교육개편의 필요성과 개편의 상을 제출하였다. 한국교육 현실을 ‘구조적 모순’ ‘총체적 일탈’로 진단하고 시스템 수준의 개편이 불가피함을 역설하면셔 ‘공교육개편안’을 제출하였다. 공공성, 민주성, 사회적 생산성을 핵심원리로공교육의 대안적 구성원리와 변화의 상을 제출하였다. 참교육이 ‘이념’으로 받아들여졌다면 공교육개편안은 ‘종합적 정책대안’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했다. 공교육개편안의 구성과 제출은 교육운동, 담론지형에서 커다란 진전이었지만 이론적 토대를 확보하지 못했다. ‘좋지만 먼 얘기’ ‘지나치게 큰 얘기’의 상태에 머물러야만 했다. 정치적 국면의 성격에서 두세 차례 재생되었고 때로는 보완되었지만 그것은 세밀함의 차원에서였지 철학적 이론적 토대의 확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공교육 개편안의 가치 지향은 타당하며 참교육 이념에 비하면 구체화되었지만 교육에 대한 근본적 방향과 관점을 제시하고 인식을 변화시킬 정도의 내용적 우위를 지닌, 패러다임은 아직 아니었다. 일상의 교육실천과 거리감이 느껴지는 '이상적‘(혹은 좌파적) 정책대안의 이미지가 강한 탓에 공교육개편안은 미시적 실천의 영역에 침투하지 못하였다.
교육패러다임은 제도화된 시스템의 문제 뿐 아니라 교육에 대한 관점과 인식 나아가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인식과 행위의 틀’이다. 진보적 교육이론이 명실상부한 패러다임의 지위를 점유하는 것는 대중의 실천과 인식의 틀로서 작용할 때이다. 기존 교육패러다임과의 치열한 투쟁은 불가피하며 교육혁명을 지향하는 주체들은 기존의 교육패러다임의 내부에서가 아니라 바깥에서의 공격하는 내용적 무기를 지녀야 한다.


2. 비고츠키교육학 : 기존의 교육패러다임과 근본적으로 다른 이론

교육실제는 행동주의(빽빽이, 스티커, 때로는 체벌 등 행동통제를 위한 강화기제), 이론은 사회적구성주의(학생중심주의, 교사의 역할 주변화, 대상화, 각종 협동학습 모형)가 대세지만, “~주의”와 상관없이 교육현실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입시경쟁 패러다임이다. 현실을 재구성하려면 기존의 인식틀로는 불가능하다. 바깥에서 이 현실을 바라볼 수 있어야 재구성이 가능하다. 그래서 기존과 다른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비고츠키 교육학은 제 교육의제에 대해 기존의 교육패러다임과는 방법론과 인식론에서 질적으로 다르며 내용적으로 대립된다. 동시에 강력한 설명력과 함께 일상적 실천과 긴밀히 결합될 만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이런 점에서 비고츠키 교육학은 기존 교육패러다임에 대한 공세적 무기가 될 수 있다. 특히 자본주의 교육패러다임의 주요 이론인 행동주의와 구성주의와 완전히 구별된다. 기존 패러다임의 구도 속에 비고츠키이론을 포섭하려고 한 결과가 ‘사회적 구성주의’로의 왜곡이다. 그러나 비고츠키교육학은 기존의 교육이론체제나 패러다임의 하위 영역으로 분류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인간발달을 사회와 역사와 인간의 총체적 관계(계통발생, 문화역사, 개체발생, 미소발생이 중층적으로 결합 상호작용하는 과정)로 설명하는 이론인 비고츠키 교육학은 참교육이념의 추상성을 극복하고 공교육개편안의 방향과 관점이 이론적 타당성까지 지님을 보여줄 수 있는 이론이다.

첫째, 비고츠키 교육학은 기존의 교육패러다임이 인간 발달에 대해 사실상 무관심하거나 이론적으로는 양적 누적의 과정(학력, 학업성취도 등)으로 설명하는 것과 달리 인간발달을 교육의 중심문제로 놓고 4가지 질적으로 다른 과정(생물학적 계통발생의 과정, 역사문화적 과정, 개체발생적 과정, 미소발생 과정)이 결합, 상호작용하는 총체적이고 역동적인 나선형의 과정으로 설명한다. 인간 발달 자체는 그 누구도 (겉으로는) 부정하지 못한다. 그래서 발달을 중심문제로 놓고 당대 최고의 이론들을 비판적으로 점유하고 실험적으로 입증하며 역사적 과정으로 설명한 비고츠키의 이론은 강력한 힘을 지닐 수밖에 없다.

둘째, 기존의 교육패러다임이 교수와 학습의 이분법에 기반하여 학습자 중심주의나 교수 중심주의로 양분되었다면 비고츠키 교육학에서 교수와 학습은 하나의 과정의 두 측면으로서 교수학습은 통일적 과정이다. 학습과 발달은 두 개의 완전히 독립된 과정이거나 하나의 단일한 과정이 아니라 이들이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고 교수학습이 언제나 발달에 선행한다는 것을 비고츠키 교육학은 이론적 비판은 물론 실험과 관찰을 토대로 설명한다.

셋째, 기존의 교육패러다임이 능력주의 사회관과 개인주의적 인간관을 바탕으로 선별과 배제를 학교교육의 불가피한 기능으로서 설정한다면 비고츠키 교육학에 따르면 학교에서의 교수학습의 과정에서의 어린이과 어른(교사)와의 체계적 협력은 ‘인간의 고등정신기능을 형성’하는 인간 발달의 핵심 기제이다.

넷째, 이런 점에서 기존의 교육패러다임이 모든 인간의 발달의 가능성을 대신 능력의 차이를 전제하고 제도교육을 이를 확인하는 장으로서 위치시킨다면 비고츠키 교육학은 모든 인간의 발달 가능성에서 출발하고 이를 실현은 공교육에서 이루어짐을 보여준다. 진정한 ‘교수-학습 활동’의 핵심적인 특징은 그것이 ‘발달의 다음 영역’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즉 교수-학습은 아동이 주변 사람들과 상호작용하거나 친구들과 협력할 때만 작동할 수 있는 다양한 내적 발달 과정들을 일깨우게 되며, 이 과정들이 내재화되면 그것들은 아동의 독립적인 발달적 성취의 일부가 된다.

다섯째, 기존의 교육패러다임이 경쟁을 인간발달의 불가피한 원리로 한다면 비고츠키 교육학은 협력이 인간발달의 중심 기제이자 조건임을 보여준다. 비고츠키 교육학은 인간의 고등정신기능 발달의 토대는 ‘사회적 관계’이다. 문화역사적 발달의 토대 위에서 어린이는 어른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기호(중심적으로는 언어)의 매개를 통해 논리적 기억, 자발적 주의집중, 논리적 사고, 상상력, 의지 등을 능동적으로 내재화한다. 또한 자연발생적, 혹은 일상적 개념의 형성과 사고 발달과 달리 비자연발생적, 과학적 개념의 형성과 사고의 발달은 학교에서의 교사와 학생의 체계적 협력에 의해 이루어짐을 보여준다.

여섯째, 교육의 목표이자 발달의 과정에서 형성되는 고등정신기능은 인간의 전면적 발달에 대한 비고츠키 교육학의 개념적 구체화이다. 기존의 교육패러다임이 인간 간의 발달가능성의 차이와 특정 기능의 발달을 전제로 한다. 반면 비고츠키에 따르면 인간의 발달은 정신기능 간 관계의 구조적 변화이며 따라서 인간의 발달은 개별적 기능의 독립적 발달일 수 없으며 ‘전면적 발달’ 외에 다른 것일 수 없다.

일곱째, 기존의 교육패러다임은 교육의 발달에 있어서의 역할을 설명하는데 무능력하거나 무관심하다. 그래서 제도교육학의 온갖 교수학습이론은 임용고시에나 유용한 암기대상이지 현장에서의 교육실천과 아무 상관이 없는 잡동사니에 불과한 것이다. 반면 비고츠키는 인간의 고등정신기능의 발달은 자연적 성숙이나 외부 환경에 대한 수동적 적응으로 설명될 수 없는 성질의 것임을 밝히며 그 요체가 학교에서의 의식적 교수학습과정에 달려있음을 보여준다. 그에 따르면 교수학습을 위한 심리적 기반의 발달은 학습을 앞서지 않으며 교수학습과의 연속적이고 내적인 연결 속에서 발달한다. 예컨대, 산술은 외따로 떨어져 있는 어떤 기능을 독립적으로 발달시키고, 쓰기는 다른 기능을 그렇게 발달시키는 식이 아니다. 각각의 다른 교과들은 부분적으로 공통적인 심리학적인 토대를 가지고 있다. 의식적 파악과 숙달은 글말의 발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문법의 발달에 있어서도 그 최전방에 나타나며, 수학의 학습에서도 중대한 역할을 한다. 어린이의 추상적인 사고는 모든 수업을 통해 발달하며, 그의 발달은 학교의 학습을 위해 분리된 다양한 교과목에 상응하는 개별의 경로를 따라 분해되지 않는다. 아동 발달의 기간을 통해 교수-학습의 여러 교과목들이 서로 상호 작용한다.

나아가, 전인교육을 부정하는 교육이론은 없으며 이념적 성향을 막론하고 어느 누구도 전인교육을 실현의 대상으로 거론한다. 하지만 변증법적 통일에 이르지 못한 채 온갖 이분화로 가득 찬 기존의 교육패러다임은 전인교육의 실질적, 과학적 내용을 만들지 못해왔고 기껏해야 ‘인본주의’였다. 비고츠키의 고등정신기능의 발달은 곧 전인적 발달을 의미한다. 고등정신기능은 인지적 측면만이 아니라 정의적, 행동적 측면 모두를 포괄하고 이들이 내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개념으로서 고등정신기능의 발달은 전인적 발달을 의미한다. 비고츠키는 자아 형성에 미치는 반성적(성찰적) 사고 능력을 부각시키며 의지, 창조적 사고 능력, 논리적 기억력, 자발적 주의집중, 자기 통제 능력, 인격, 세계관 등은 비고츠키가 고등정신기능 발달과 연결하여 설명하고 있는 개념들이다.


<표>기존의 교육패러다과 비고츠키 교육학 (내용은 첨부파일 참조)



3. 발달이론에서 패러다임으로

스탈린주의의 탄압으로 사장되었던 비고츠키 이론이 서구에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이다. 미국에서는 비고츠키 이론을 피아제를 대신할 이론으로 주목하기 시작했으며 80년대에는 이미 주류 이론의 하나로 부상했다. 그들이 보기에 비고츠키의 이론은 획기적이었으며 기존의 서구사회 교육이론과 판이하게 달랐다. 또한  매우 쓸모있는 이론이었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교육학자인 브루너는 비고츠키의 근접발달영역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비계 설정’을 제안했다. 근접발달영역에 대한 논문은 수도 없이 많다. 그만큼 기존의 교육이론이 ‘교육과 발달의 관계’를 해명하지 못한 채 무력하거나 현장의 교육과 따로국밥으로 있는 상황을 극복할 열쇠가 비고츠키의 교육과 발달의 내적 관계 설명에 있다는 사실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핀란드 교육과정의 기초는 비고츠키이론이다. 핀란드 교육이 한국교육과 대조적인 교육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접할 때는 그 사회가 ‘협력’을 핀란드 특유의 정치철학의 기반위에서 도덕적 가치로 중시 여기기 때문일 것이라고 짐작했는데 실은 협력과 평준화를 교육시스템의 핵심 원리로 채택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이론적 토대가 비고츠키교육학이었다. PISA의 핵심역량 개념이나 북유럽 국가들이 교육목표로 강조하는 ‘사회적 역량’(Social Competence)은 비고츠키의 고등정신기능의 개념에 따라 교육목표로 표현한 것이다.
한편 국내 교육학계에서도 비고츠키이론이 주요 인지발달이론 중의 하나로 취급되고 있다. 발달이론, 교육심리이론, 교수학습론, 평가론을 다룬 교육학 이론서에는 거의 빠짐없이 비고츠키 이론이 소개되고 있으며 발표된 석박사 논문도 꽤 된다. 특히 교과교육 분야에서는 거의 전 교과에서 비고츠키를 원용한 논문이 생산되어 왔으며 유아교육과 특수교육분야에서는 중심적 이론으로 각광받고 있다.
아이러니는 신자유주의와 입시 교육 패러다임과 질적으로 다른 내용임에도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이 사회적 구성주의를 주요 이론적 근거로 취하는 바람에 비고츠키도 더불어서 유행이 되었고 이 때문에 교육운동진영이 비고츠키이론을 만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사회적 구성주의자들이 ‘사회적 상호작용’, ‘근접발달영역’, ‘언어의 매개적 역할’ 등 자신들의 이론을 강화하는데 이용가치가 있는 개념을 선별적으로 취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왜곡이 발생했다.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비고츠키 이론이 설명력이 뛰어나고 현실 적용력이 강하다 보니 오히려 왜곡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교육상품으로도 많은 각광을 받는다. 검색창에 ‘비고츠키’를 치면 금방 알 수 있다.
이러한 정황들은 비고츠키 이론이 심리학 이론, 발달이론으로만 볼 수 없고 현실에서도 이미 ‘교육학’으로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과 방향을 제시하는, 경우에 따라서는 국가교육정책의 패러다임으로 이해되고 적용되고 있음을 알려준다. 비고츠키 이론은 ‘발달’이라는 교육의 근본문제에서 출발하고 그 문제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때문에 교육의 각 주제에 대해 설명의 논리와 근거를 제공하는 총체적 이론이며 아직은 부분적이지만 주체의 인식과 실천의 방향을 이미 제시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실제로도 교육학에서 분과학문으로 나뉘어 다루어지고 있는 거의 모든 주제들은 비고츠키 이론을 통해 재구성이 시도되어 왔고 유아교육, 도덕교육, 특수교육, 교육평가론에서는 실질적인 작업들이 축적되어 왔다. 비고츠키 이론은 이러한 이유로 최근 수십년 간의 과정에서 기존의 교육패러다임과 제도교육학이 노정한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이론으로 인식되어 왔고 이런 점에서 이미 서구 교육학계와 일부 국가 그리고 국내 교육학계 일부에서 비고츠키 교육학은 이미 ‘패러다임’의 수준으로 상승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4. 프레임 전쟁 : 패러다임의 전환을 위한 실천

교육운동진영은 교육의제에 대한 다툼이 벌어질 때 주로 인간적 차원, 도덕적 차원, 사회적 차원에서 대응논리를 구성하였다. 교육패러다임에 근거한 내용적 공격의 무기가 취약하다보니 시장주의 경쟁 담론이 주도하는 프레임 속에서 내용적 파괴력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학업성취도, 하향평준화, 학력격차, 평가의 변별력 중시, 입시의 불가피성, 경쟁 등의 담론에 대해 "오류로 규정"할 만한 내용적 근거를 제공하는 교육이론을 기존의 교육학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사회학적, 도덕적 차원의 공격만으로는 특수의 주장을 보편인양 하는 왜곡된 상황을 뒤집기에 부족했다. 다툼이 벌어지면 이념대립인 양 취급하면 그만이고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그건 네 생각이고’이라는, 다양하게 있을 수 있는 견해 중의 하나로 취급되기 일쑤다. 그래서 ~의 의견, ~의 의견, ~의 의견 등등... 국민 모두가 가진 의견 중 하나로 교육운동진영의 의견도 처리해버리면 그만인 상황이었다. 그래서 올바름보다 양적 우세가 좌우하는 구도에서는 당연히 힘있는 자가 담론을 주도한다.
비고츠키 교육학은 다투는 여러 의견 중 하나가 아닌 교육적으로 옳고 그름을 규정할 수 있는 내용적 힘이 있다. 교육의 근본문제인 발달을 중심에 두는 교육패러다임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제 기존 교육패러다임과 프레임 내에서 할 수 없었던 현실에 대한 교육적 타당성에 대해 다른 기준으로 접근할 수 있다. 여러 의제들이 있겠지만 지배적 교육 프레임의 틀에서 한정된 논의가 이루어진 의제들에 대해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한 접근을 시도해보면 다음과 같다.

○ 학업성취도에서 고등정신기능으로
교육 목표는 학업성취도가 아닌 고등정신기능의 발달이 되어야 하며 기억기능 및 문제풀이 속도를 강화시키는데 치중되어 있는 현재의 교육은 고등정신기능의 발달과 맞지 않는다.  비고츠키에 따르면 학습자에게 있어서 '낱말의미'는 처음부터 완성된 형태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발달하는 것이므로 모든 개념, 낱말을 처음 제시하고 접하는 그 상황을 발달의 시작으로 본다면 현재의 교육과정, 기억에 의해 누적된 정보의 양을 측정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아직 학습자에게는 필요한 것은 기억에 의존하는 개념의 피상적 정의가 아니라 숙달과 내재화의 과정을 이어나가는 것이다.

○ 서열화에서 평준화로
신자유주의자들은 다양성과 수월성의 프레임 속에 평준화를 끌어들임으로써 대립을 교란시켰다. 다양성과 수월성 프레임에서 평준화에 대한 논의는 ‘효과성’에 대한 논쟁으로 제한되었다. 학업성취도 변화 추이를 지표로 한 하향평준화 여부 확인, 평준화와 비평준화 지역의 사교육비 지출 비교, 평준화의 평등화 효과를 주제로 한 연구들에서는 평준화에 불리한 결과들이 오히려 많았다. 이러한 효과 비교 프레임 하에서는 기존의 결과를 뒤집는 실증적 결과를 제시할 수 있다 해도 논란은 제한적 틀 속에서 반복될 뿐이다. 비고츠키 교육학의 관점에서 평준화는 다툼의 여지없이 당연히 교육시스템과 학습집단구성의 기본 원리다. 사회적 관계가 발달의 기초이고 인간의 발달이 청소년기에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전 생애에 걸쳐 지속되는 역동적 과정임을 고려한다면 유아에서 성인교육까지 평준화의 원리가 적용되어야 맞다.

○ 경쟁이 아닌 협력으로
비고츠키 발달이론에 따르면 경쟁이냐 협력이냐라는 구도도 우습다. 문화의 역사를 내재화하는 일은 성인과 아동의 협력적 관계를 중심 관계로 하여 이질적 학습집단에서의 근접발달영역이 창출됨으로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독립적 학습자, 스스로 발견하는 존재로서 학습자를 사실상 방치하고 그 방치를 경쟁의 룰로 통제하는 것은 발달이 아닌 포기를 양산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교육은 곧 협력인 것이다. 경쟁원리냐 협력원리냐는 대등한 수준에서 다툴 수 없다.

○ 비교를 위한 측정에서 미래지향적 질적 평가로
제도와 방법의 개선이라는 프레임으로는 기존의 상대평가패러다임을 파괴할 수 없다. 이런 프레임 속에서 과정평가, 수행평가, 서논술형 평가 등 '평가방식의 고급화, 다양화' 시도는 활발했지만 입시 경쟁 패러다임의 압도 속에서 개선이 아닌 복잡함만 더해졌고 가르치고 배우는 실제 과정보다 평가가 비중있는 활동으로 취급되었다. 비고츠키 교육학은 평가의 기능과 양상을 완전히 바꾸는 논의를 가능하게 한다. 발달의 관점에 선다면 평가 방식은 중심 주제가 될 수 없다. 학생과 체계적인 협력과정을 구성하는 교사들이 평가의 주체가 될 수밖에 없다. 발달은 질적 변화의 과정이며 현재의 발달수준보다 발달의 가능성을 중심에 두기 때문에 수량화와 비교는 불필요한 것이 된다.

○ 수업혁신론에서 교육관계론으로
수업모형을 교실 안으로 끌어들인다고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관계의 재구성'이 핵심이다. 이건 지금 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계 속에서 발달이 이루어지고 발달을 이끄는 기제가 교육이라는 비고츠키의 입증을 떠올린다면 핵심은 테크닉이 아니라 '교육관계의 재구성'일 수밖에 없다. 모형의 적용이 아닌 교육적 관계 구축이 핵심 문제가 되며 나아가 관찰 기준, 자율적 규제 등에 대한 실천적 논의들의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비고츠키는 특정한 수업모형을 전형으로서 제시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지성화된 성인으로서 발달을 이끄는 교사의 전문성에 믿고 맡길 일이 된다.

비고츠키 교육학은 다퉈왔던 교육의제들에 대해 진보진영이 제출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이론적 무기이다. 교육의 근본문제인 발달중심의 교육패러다임이기 때문에 그렇다. 비고츠키 교육학은 다투는 여러 의견 중 하나가 아닌 교육적으로 올바르고 다른 ‘견해’에 대해 옳고 그름을 규정할 수 있는 힘이 있다. 발달지향의 교육원리에 근거하여 기존의 패러다임에서 주류를 차지하는 것들에 대해 전혀 다르게 규정할 수 있다. 발달 개념이 앞서 살펴본 바대로 질적, 사회적, 미래지향적 그리고 과학적 설명력과 경험적 타당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대중의 교육에 대한 의식 고양과 사회 담론지형 변화를 이끄는 패러다임으로 상승시키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이다. 실천에 있어서 비고츠키 교육학을 제도와 일상 모두에 있어서의 방향과 관점을 의미하는 패러다임으로 ‘자기화’하는 작업이 진행되어야 하며 담론지형에서 '발달과 교육'이라는 새로운 교육패러다임을 사회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주류 프레임에 포섭되는 것이 아니라 프레임을 바꾸는 실천을 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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