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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호 [현장에서] 어느 날 아침

2008.10.06 20:07

진보교육 조회 수:1484

         어느 날 아침                          
                                                                                  유성희/전교조서울남부지회 사무국장

내가 비정규직 투쟁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작년 이랜드 투쟁부터였다. 작년 봄쯤이었나? 그 전에도 물론 KTX 소식을 비롯해 이곳저곳의 비정규직 이야기를 듣곤 했지만, (기차를 잘 안타서 그런지) 그 때만 해도, 아직은‘비정규직’이라는 말이 낯설고, 불우이웃 돕듯이 가끔 돈만 내는 구경꾼 수준의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랜드 투쟁 때부터는 느낌이 뭔가 달라졌다. 우선 이전과는 달리 뉴스가 연일 떠들어댈 만큼 큰 투쟁이었고, 또 가깝게는 지회 연대사업부를 통해 홈에버 시흥점에서 벌어지고 있는 투쟁현장의 소식들을 자주 접할 수 있어서, 한층 심정적으로 가깝다는 느낌이 들었다.(이래서 아는 게 병이다..)  또, 지회 쌤들과 함께 상암점, 강남점, 그리고 시흥점 집회를 다니며, 생전 못해 볼 뻔한 ‘쇼핑투쟁’(홈에버에 들어가서 카트에 금방 상할만한 물건을 잔뜩 쌓아서 아무데다 세워두고 나오는 투쟁) 도 해보고, 같이 선전전 하던 사람이 경찰에 끌려가는 걸 보며 싸워보기도 하고, 전경 방패 앞뒤로 낑겨 보기도 하면서, 나도 모르는 새 슬쩍 구경꾼 수준을 넘어서고 말았다. 아니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운동권 분위기를 영 잘~ 모르는 초짜라, 단순하게도(?) 뭔가 다른 비정규직 투쟁분위기가 마음에 들어서 그랬나 싶기도 하다. 지회총무 2년차, 점잖게 앉아서 무슨 무슨 위원장님들 인사 받고, 투쟁사 듣고, 중간에 노래 좀 부르다 화기애애하게 밥 먹으러 가는 ‘익숙한’ 전교조 집회가 좀 식상하다 싶을 때였다.      
  
   처음 이랜드 투쟁을 다녀와서 같이 갔던 선배가 물었었다. “그래, 재미있겠다더니... 다녀와보니 어때요?” 생각해보면 그런 어려운 질문에 내 대답은 참 간단하다 못해 쉽고 단순했다. “ 저 분들의 간절함이 맘에 들어요.” 근데 진짜 그랬다. 그 무리에 섞여 앉아있다 보면, 그동안 학교나 집회현장에서는 쉽게 느껴보지 못했던 팽팽한 긴장감, 간절한 구호, 싸움의 뜨거운 기세가 느껴지는게 좋았다‘투쟁’하면 왠지 뭔가 그래야할 것 같았는데, 이상하게도 전교조가 하는 투쟁은 언젠가부터 김빠진 맥주 같은 맛이 나는 게 맘에 안 들었다. 아니, 난 불행하게도 투쟁의 톡 쏘는 맛의 기세를 느껴보지 못한 (자칭) 불운한 전교조 세대다. 그래서인지 파란 옷을 입고 열나게 싸우는 이랜드 노조분들을 보면 나는 무조건“오…감동적!”했었다. 그럼 또, 바로 옆에서“뭐 이 정도를 가지고 그러냐? 예전 전교조는 더 처절했었지~” “밑에 조합원들은 애가 끓지만, 상층은 또 이런저런 속사정들이 있다.” 며 기를 죽이는 선배들도 계셨지만... 난 안 살아봤으니 옛날 일은 알 수 없다. ㅋ난 그저 이만도 어디냐.. 그냥 멋지다... 싶었다.
  
  올해 기륭투쟁과의 첫 만남도 그랬다. 내가 현장을 찾아갈 때마다 이제 3년을 넘긴 기륭 조합원들의 처절한 구호와 간절한 노래가 마음을 무겁게 그리고 들뜨게 만들었다. 특히, 지회신문 까치소리 기사를 쓰느라 김소연 분회장을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3년을 싸운 사람이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강단 있는 목소리와 반짝이는 눈이 참 인상적이었다. 컨테이너 박스에서 이런 막막한 싸움을 3년이라니... 상상도 잘 안간다.
그러다 올해 5월의 어느 날, 문자로‘구로역CCTV 첨탑에 올라가 있는 기륭노조 사진을 받아봤다. 뉴스에서 기륭조합원이 시청 앞 광장에서 고공시위 하는 걸 봤을 땐 ‘어머 어째?’ 하고 말았었는데, 그분들이 내가 늘 지나다니는 구로역 광장에서 싸우고 있다하니, 또 새삼스레 남일 같지 않았다. 작년 이랜드 투쟁 쫓아다녔던 것도 생각나고.. 아.. 그러고보니 요즘 그 사람들은 뭐하고 있나? 싶은게..
   그날 바로 부랴부랴 숙제하는 심정으로, 기륭 촛불문화제에 참석했다. 사진에서 보던 바와 같이, 금속노조 한분 기륭조합원 한분이 50미터 첨탑꼭대기 위에 계셨다. 세상에~~ 이 눔의 세상이 결국 저런 데까지 사람을 서게 만드네... 고개를 들어 자꾸만 자꾸만 올려다봤다. 유치환 시의 한 구절처럼 두 분은 저 푸른 해원을 향해 손짓하는 ‘깃발’이 되어 온 몸으로 나부끼고 계셨다.
  위에 사람이 저러고 있으니, 밑에 있는 사람들은 자연 더 열심히 자기 일을 찾기 시작했다. 지회 연대사업 부장님은 아침 점심 저녁으로 구로역 광장을 찾으셨고 나를 비롯한 집행부들도 시청광장의 미친소 촛불과, 구로역 광장의 비정규직 촛불을 번갈아 열심히 들었다.
( 그때 정말 순직하는 줄 알았다.) 지회 홈피 등으로 소식을 접한 몇몇 분회는 자발적으로 기금을 모아왔다. 지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나도 더 어떻게든 많은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알면 좋겠다는 생각에 열심히 분회장 메일을 쓰고, 홈피에 글을 올렸다. 최소한 구로에 사는 주민들은 구로역 광장에서 웬 사람들이 첨탑꼭대기에 앉아 천둥번개를 맞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하지않나 싶었다. 나는 답답한 마음에 심지어 수업시간에도 줄창 광화문 촛불집회랑 구로역 광장 이야기를 해댔다. ( 작년 이랜드 투쟁 때도, 나는 틈만 나면 애들에게 비정규직 이야길 했다. 그러고 나서 학년말에 생활기록부때문에  장래희망을 조사하는데.... 몇 명의 우리 반 아이들이 ‘정규직 회사원’이라고 썼었다. 고개를 갸우뚱.. 누가 정규직되랬나? 차별 철폐해야한댔지...  ㅋ  )  
  
  하지만 기륭 촛불문화제를 갈 때마다 너무나 안타까웠던 건, 꼭 내가 앉아 있는 그곳이 마치‘섬’처럼 느껴지는 것이었다. 퇴근길의 사람들과 우리는 보이지 않는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확실히 분리 되어있었다. 늘 집회에서 투쟁사를 외치는 사람들은 우리들끼리만 통하는 말과 노래로 결의를 다졌고, 지나가던 사람들은 ‘뭐하는 건가’ 흘끔거리며 지나쳐갔다. 비정규직 투쟁을 할 때마다‘노동자의 반이 비정규직이고, 이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 결국 우리 가족, 이웃, 친구의 일이다.’라고 했던 구호가 무색할 만큼, 사람들은 철저히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했다. 촛불을 들고 앉아 멍하니...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어떻게 해야 광화문 미친소 촛불시위처럼 시민과 시위대 구분없이 촛불이 옮겨붙을 수 있을지가 고민스러웠다.
  
   그러다 어느 날, 기륭 농성장을 열심히 쫓아다니던 연대사업부장님이 아이디어를 내셨다. 촛불집회가 기존의 운동권문화와 달리,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재창조되어 가고 있는 것처럼.. 기륭 비정규직 투쟁도 그런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제안이었다. 구체적으로, 사람들에게 저 첨탑 위의 노동자들이 특별한(?)사람이 아니라, 당신과 같은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사는 이웃이고, 뒤에서 맘아파하는 아들딸이 있는 보통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릴 수 있는 UCC을 만들자는 아이디어였다. 그래서 알아보니, 저 위에 올라가 있던 기륭조합원 윤종희 동지의 두 딸이 각각 난곡중학교 3학년 , 독산초등학교 2학년이란다. 게다가 첫째 딸 아삼이는 담임이 전교조 조합원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늘 내 제자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자녀고, 또 이들이 커서 또 비정규직이 될 거라고들 했었는데, 이제야 비로소 생활 속에서 우리가 이미 이렇게 만나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했다.
  우선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아삼이를 만나 보기로 했다. 더 나아가 그 영상도 중학생인 아삼이와 톡톡 튀는 감성으로 함께 만들어보자는 계획을 세웠다.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밤 8시.... 학원에서 끝난다는 아삼이를 윤종희 동지 집으로 직접 찾아가 만났다. 내가 사는 독산동에 윤종희 동지와 아삼이네 집도 있었다. 불쑥 찾아간 불청객을 아삼이는 많이 불편해했다. 게다가 내가 개웅중학교 선생님이라고 소개하자, 좀 신기한 눈치였다. 내가 생각해도 좀 신기한 상황이긴 했다. 아삼이에게 어렵게 취지를 설명하고, 엄마의 일을 알리는 영상 작업을 같이 하고 싶다고 제안을 하고, 어려운 승낙을 받았다.
며칠 후, 아삼이는 약속장소인 금속노조 사무실로 친구 둘을 데리고 나타났다. 마음이 급한 나와는 달리, 아삼이는 내일 있을 드림콘서트에 가느냐 마느냐를 가지고 친구들과 쉼 없이 수다를 떨고, 핸드폰 문자를 보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대.략.난.감. 처음엔 얼마나 당황스럽던지.. 속으로 얘는 엄마가 저러고 있는데도 맘도 안 아픈가? 싶었다. 생각해보면 아삼이나 친구들이나 내가 그냥 학교에서 매일매일 씨름하는 평범한 중딩 아이들일뿐인데.. 새삼 내가 뭘 기대했나 정신이 번쩍 났다.
  일단 아삼이의 동의를 구해서, 친구들에게 그 간의 투쟁 사진들을 보여주며 아삼이 엄마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게 어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너희들도 어른이 되서 비정규직이 될 수도 있고.... 또, 그렇게 일하다보면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될 수도 있다.. 아삼이 어머니도 그래서 이렇게 싸우고 있는 거다” 라며 한참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갑자기 눈을 깜박이며 알아듣는 듯하던 아삼이 친구들이“ 저는 비정규직 안 될 건데요?  방송 작가 될 거예요.”“나는 연예인!” 이라며 새침하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비정규직이 나쁜 것 같긴 한데, 너도 될 수 있다고 하니.. 기분이 안 좋았나보다. 눈치를 보니, 친구들의 대답에 내가 당황한 만큼 아삼이도 당황한 듯 보였다. 물론, 친구들은 금방 또 웃고 수다를 떨어대며 아무렇지 않아 했지만, 아삼이 표정은 잠시 어두웠다. 그 모습을 보는 나 역시 마음이 편치 않았다.
    
   물론, 아삼이 친구들이 보인 반응이 아주 낯선 것만은 아니다. 예전에 학교 수업시간에 비정규직 이야기를 한창 하고 있는데, 한 녀석이 “4년 공부 안하면 40년 개고생하는거야.” 라고 무례하게 말을 내뱉은 적이 있었다. 처음엔 그 한마디가 어찌나 화가 나던지, 어디서 싸가지 없는 이야길 하냐고 한껏 화풀이를 해줘버렸다. 물론, 그 녀석도 딴에 아는 척 하느라고 “공부안하면 대학 못가고, 대학 못 가면 사람취급 못 받는다.”던 어른들의 말을 고스란히 전했을 뿐인데... 그 순간엔 왜 그렇게 화가 나던지.
  되짚어보면, 우리 어른들이 교육이랍시고 늘 하는 말이 “ 공부하면 성적 올릴 수 있고, 성적 올리면 좋은 대학갈 수 있고, 학벌 좋으면 남보다 덜 땀 흘리며 = 남을 착취하며 살 수 있다” 가 아니었나 말이다....그래 사실, 내가 하고 있는 이 수업들도 결국엔 이 거짓말로부터 단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바로 우리의 교육의 진실이고 현실일텐데... 그땐 내가 너무 오버했다 싶다. 또, 한 두 마디 말로 아이들이 ‘노동의 가치’를 이해하길 바라는 것 자체가 어찌 보면 독한 욕심이고 헛된 망상이란 생각도 든다. 어찌보면 그런 건 교과서 같은 걸로는 절대 가르칠 수 없는 거다. 이제서야 그런 건 사람들의 삶과 삶이 만나서 의미있는 관계를 만들고, 그 관계들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물들여 가는 거란 생각이 든다.
                    
  암튼 나는 결국, 아삼이를 따로 불러내서 이것저것을 물어 내용을 채우기 시작했다. 아삼이가 쭈뼛쭈뼛 거리며 힘들게 꺼낸 이야기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말은 “ 엄마가 구로역에서 내려오면 뭐해요? 또 집에 안 들어올텐데.. 그리구요 한 달에 거기 다니면요.. 60만원 받는데, 거길 왜 또 다니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딴 회사 가면 되지~ 아웃백 한번 가면 10만원인데..”였다. 엄마가 없는 집에서 9살짜리 동생을 돌보며 집안일을 도맡아 한다는 아삼이의 말 속엔 여지없이 엄마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이 묻어났다. 또, 엄마가 싸우는 이유가 그깟 60만원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아삼이는 내심, 우리가 만드는 영상이 불우이웃 돕자는 영상처럼 비춰질까봐 걱정스러웠던 모양이었다. 얘기가 끝날 즈음 아삼이는 담담한 표정으로 동정은 싫다고 다시 한번 쐐기를 박았다. 또, 본인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자세하게 노출되는 것이 싫은 눈치였다. 충분히 이해가 갈만한 얘기들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 나는 애초에 계획했던 것만큼 아삼이의 일상을 충분히 담아낸 영상을 만들 순 없었다. 게다가 나의 어설픈 기술까지 더해져 완성된 영상은 얼마나 어설프고 애매한 작품이 되었던지.. ^^; 한동안은 창피해서 완성됐다는 걸 숨겼었다는거~~~ ㅋ
  
  그래도, 만들면서 나 개인적으로는 정말 좋은 경험을 쌓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아삼이를 만나면서, 비정규직 투쟁이 먼 곳이 아닌, 바로 내 가까운 이웃의 문제고, 매일 얼굴 맞대고 사는 우리 반 아이들의 문제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확인한 셈이 되었다. 또, 교육의 문제는 비정규직의 문제와 전혀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다시 해봤다. 예를 들어 작년 이랜드 노동자들이 한 달에 60만원이라도 벌어 학원비라도 보탤까했다던 외침은 단순히 권력과 자본을 향한 것만은 아니란 생각이다. 또, 자식들에게 비정규직만은 물려줄 수 없다는 구호 또한 그렇다.
  계속해서 교사인 우리가 땀 흘려 일하는 노동의 가치, 사람 사이의 따뜻한 관계가 그깟 점수보다 훨씬 중요하다라고 이야기하지 못 하고 , 네 친구들을 밟고 올라서야만, 나중에 한 달에 60만원 받는 고생을 피할 수 있다고 가르치면서, 비정규직 투쟁에 연대한다는 건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복잡한 이론이나 분석 다 필요없이, 우리 아이들이 커서 나중에 공장에서 일하든, 교사가 되든, 운전사가 되든, 변호사가 되든, 사람대우 받으며 일하는 보람 느끼며 먹고살 수 있게되고, 혹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아도 아무 걱정 없이 살 수 있게 된다면, 지금과 같은 한심한 입시경쟁 교육의 모순도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지 않겠냐는 말이다. 너무나 이상적이고 단순한 발상일지는 모르겠지만...  

무심하게도 시간은 흐르고 흘러, 여름이 가고 가을이 되었다.
한 여름 단식투쟁으로 죽어가는 동지들의 옆으로 관을 올리면서까지 싸웠던 기륭의 피맺힌 투쟁을 생각하면, 내가 동영상 하나 만들며 이런 것들을 그저 “깨달았다”고 하는 게 참 한심하고 낯부끄러운 일이다. 게다가 이 동영상이 기륭투쟁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뭐가 달라진 건지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손에 쥔 것 하나 없는 이 가을이, 결코 무의미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벌건 대낮에 사람 둘이 굶어 죽어가도 꿈쩍 않는 기륭전자 그리고 자본과 권력에 치를 떨며.. 94일만에 단식을 중단하고 병원으로 실려간 김소연 동지들을 두고 우리가 그냥 ‘졌다’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어느 날 아침, 출근 준비 중에 동생이 아주 익숙한 노래를 흥얼거렸다. “ 가자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단결투쟁으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 꼭 찾아오리라♬” 세상에.. 이건 나에게 있어 나름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내 동생은 이쪽 방면에 전혀 관심도, 아는 바도 없는.. 심지어 전태일도 누군지 모르는(--:) 애다……. 대체 그 노래를 어디서 배웠나 물어보니, 동생이 지금 일하고 있는 송파구시설관리공단 앞에서 매일 듣는단다. 얼마 전에 공단에서 일하던 비정규직들이 해고를 당하는 바람에 근 4-5개월 동안 매일매일 항의집회가 열렸다고 했다. 이 노래를 얼마나 들었던지 그 사무실 사람들은 다들 이 비정규직 철폐가를 흥얼거리며 밥을 먹는단다...우스웠다. 그리고 괜히 흐뭇했다.
  그래, 당장은 질 수도 있다. 한발 물러설 수도 있다. 100만이 모였던 광화문 네거리가 기억하듯, 아무리 싸워도 세상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디에선가 이렇게 끊임없이 깃발이 세워지고,‘비정규직 투쟁가’가 울려퍼지고 있다면, 내 동생이 그랬듯... 많은 사람들이 다 같이 이 노래를 따라 부르게 될 날도 곧 오지 않겠는가하는 희망이 생겼다.  
  그래 나 또한 오늘도 교단 위에 외롭지않은 깃발을 세우고 나름 치열한 투쟁중이다. 질기게 싸우다보면 이기는 날도 있겠지. 때로는 물러서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하고, 모르는 척 도망가고 싶은 맘이 들만큼 힘도 들지만, 그래도 이렇게 싸우며 사는 교사라 행복할 때가 더 많다. 그래, 대한민국의 수많은 아삼이들을 위해 살고, 그리고 기륭 동지들을 위해 함께 싸우는 나는 전교조 교사다.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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