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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호 [논단] 비고츠키 바로알기

2008.01.07 00:07

진보교육 조회 수:2158

[논단]
비고츠키 바로알기

배희철(진보교육연구소 교수학습이론팀)

2007년 3월부터 진보교육연구소 교수-학습 이론 팀이 가동되었다. 출발의 취지는 교육노동운동진영의 이론적 취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교수-학습 분야에 대해 일단 연구해 보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능하면 그러한 활동의 결과물로 체계적인 교육노동운동진영의 교수-학습 이론을 세상에 제출하자는 것이었다. 이러한 활동 취지에 공감하여 6명의 동지들이 놀토를 반납하고 진보교육연구소에서 지속적으로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3월 23일 시작된 세미나에서 7차 교육과정에서 저들이 들고 나온 구성주의 교육학을 분석하는 작업을 시도하기로 방향을 설정했다. 먼저 구성주의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는 삐아제과 비고츠키라는 학자를 심층 분석하는 작업을 시도하기로 하였다. 6월 8일까지의 세미나로 이러한 작업의 작은 마침표를 찍기로 하고, 다음부터는 좀 더 작은 분야를 점검하기로 하였다.
작은 마침표를 찍는 작업의 결과물 중 하나를 비고츠키라는 인물과의 만남을 시간적으로 서술하는 수필의 형식으로 제출하기로 하였다.. 삐아제를 제외하게 된 것은 서구의 최근 연구 성과물들을 살펴보니, 그를 이론적 원조로 하여 내세운 급진적 구성주의라는 틀이 급격하게 와해되어 버렸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는 굳이 비판의 대상으로 다룰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비고츠키에 대한 분석을 체계적인 형식을 갖추어 결과물을 제출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현재까지의 분석으로는 비고츠키에 대해 큰 윤곽을 잡았다는 말도 하기 어렵다는 팀원들의 일치된 의견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제대로 된 결과물을 제출하기 위한 활동의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도록 간단하게 시간 경과에 근거하여 비고츠키를 알아 갔던 과정을 정리하기로 하였다.

Vygotsky와의 인연

세미나를 시작하기 전에 비고츠키를 접한 적이 두 번 있었다. 2001년 대학 서적에서 책 구경을 하다 ‘문화-역사적 접근’이라는 부제를 단 “비고츠키와 문화”라는 책을 구입했다. 수업과 관계도 없는 책을 구입하여 가볍게 읽은 흔적을 남긴 것으로 보아 그 책이 나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였음을 쉽게 추론할 수 있다.  2004년 여름, 자격연수 중에 경인교대 조한무 교수의 “포트폴리오와 평가의 통합적 접근”이라는 강의 시간에 그를 만나게 되었다. 교재의 여백에 ‘학습자를 위한 비계 설정’, ‘ZPD(근접발달영역)에서 교수적 대화를 통한 사회적 중재’, ‘실제 발달수준(독자적 해결 가능), 잠정적 발달수준(비계 필요)’를 필기했다. 그 옆에 세미나 시간에 다루게 될 ‘개인차 강조하는 인지적 구성주의, 교사나 동료와의 상호작용 강조하는 사회적 구성주의’도 적었다.
우연한 첫 만남이나 강요된 두 번째 만남이나 결국 비고츠키라는 인간보다는 근접발달영역이라는 개념을 기억할 뿐이다. 고백하자면 왜 근접발달영역이라는 개념을 만들게 되었는지를 질문하지도 않았으며, 근접발달영역이 가지는 교육적 함축성과 전제가 무엇인지도 질문하지 않았다. 그 것이 우리 교육 현실에 적합한 지에 대한 물음도 던지지 않았다.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박제가 되어버린 인간(비고츠키)의 이름표(근접발달영역)를 이해하려고 노력도 하지 않고 그저 암기만 했던 것이다.

“구성주의 교육학” 분석

세미나 과정에서 우리가 논의를 위한 참고 교재로 삼았던 책들은 “구성주의 교육학(김종문 외,1998)”, “비고츠키와 교육 : 문화-역사적 접근(한순미,1999)”, 그리고 “비고츠키 : 마음의 사회적 형성(사회인지발달연구회, 1995)”이었다. 처음 계획과 달리 “구성주의 교육학”을 공부하면서 비고츠키를 심층적으로 이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다. 비고츠키에 관한 교재가 긴급하게 선택되어 세미나 자료로 선정되었다.
통상의 경우, 책을 읽는 과정은 혼란에서 어떤 규칙을, 개념을 선명하게 하는 유쾌한 일이다. “구성주의 교육학”을 읽고 토론하는 과정은 혼돈 그 자체였다. 혼돈의 기저에는 14명의 저자들이 집단적 논의 과정을 미흡하게 거치고 짜깁기하여 책을 구성했다는 기계적인 1/N 분업의 노동 과정이 있다. 혼돈의 근본 원인에는 구성주의에 대한 저자들의 편리한 이해방식에 있다. 그들은 머리말에서 다음과 같이 양해를 구하고 있다.

“ 학습이 수동적 흡수가 아니라 능동적 구성이라는 의미에서 구성주의를 쓰는 경우도 있고, 학습은 기존의 인지구조를 변화시키고 재구성한다는 의미에서 구성주의라는 말을 쓰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또 학습은 단순히 인식의 문제라기보다 삶의 문제라는 의미에서 구성주의라는 말을 쓰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구성주의에 대한 의미 있는 구성은 독자 스스로 또는 다른 독자들과 더불어 수행해야 할 임무인지도 모른다. 이점이야말로 구성주의의 본래적 속성이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구성주의 교육학(김종문 외, 1998:ⅲ).”

머리말의 설명에 따르면, 저자들은 세 개의 기준을 제시하여 어떤 대상을 구성주의라고 명명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고 합니다. 만약에 논리적으로 두개의 기준엔 적합하지만 다른 하나의 기준에는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면 어떻게 명명해야 하는지 어려운 상황이 야기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경우에 객관적인 명명을 고민하지 말라고 하고 있습니다. 인식 주체가 알아서 판단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대상을 인식하는 태도는 관념론을 주관적으로 지나치게 남용한 사례로 기록되어야 할 것입니다.
14명의 저자가 쓴 글 하나하나의 내용을 세세하게 언급하는 것은 본론을 벗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구성주의교육의 기원에 대한 저자들의 설명을 묶어 간단하게 정리하여 비고츠키를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참고하고자 한다. 첫째, 저자들이 구성하고 있는 ‘구성주의 교육’이라는 것에는 실용주의적 태도가 기저에 깔려있다(Ibid:8). 둘째, 객관주의와 상대주의의 오류를 넘어서서 구성했다는 ‘구성주의 교육’은 주관주의의 늪에 빠져 있다(Ibid:13-35). 다른 저자는 ‘구성주의 교육’은 상대주의 인식론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Ibid:152). 셋째, 존재론적 기준에서 삐아제와 비고츠키를 동일한 반실재론자로 파악하여 ‘구성주의 교육’에서 하나로 결합시키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Ibid:58).
도대체 어디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구성주의는 7차 교육과정에 반영되었다고 한다. 교육부는 2000년에 “교육마당21” 3월호에 ‘인간학습을 위한 구성주의 교육학’이라는 코너에 지금까지 언급한 책의 내용을 선별 압축하여 게재했다(교육마당21,2000.vol 3:86-112). 이러한 사실로 보아 교육인적자원부가 7차 교육과정의 구성주의적 성격을 홍보하는데 가장 적절한 내용으로 채택한 학계의 학문적 성과물이 “구성주의 교육학”이라 할 수 있다.  
참고 자료로 읽었던 구성주의 관련 서적에서 구성주의가 단순한 교육에 관한 이론이 아닌 특정한 주장을 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구성주의를 교육학의 한 이론으로 국한시키지 않고 우리의 삶 전체에 적용할 수 있는 그런 시각, 패러다임, 철학 이론이라는 전제(강인애, 2002:5).”하에서 다원주의, 포스트모던니즘, 그리고 실용주의에 충실한 삶의 자세가 진리임을 강요하고 있다. 이에 반하여 교육에서 “구성주의는 인지과학 분야, 특히, Jean Piaget의 후기 업적과 Lev Vygotsky의 사회문화적 연구, 그리고 학습에 있어서 표상의 역할을 연구한 학자 중 Jerome Brunner, Howard Gardner, Nelson Goodman의 연구를 기초로 발전(조부경 외, 2001:30)”하였다는 너무도 상반된 해석도 있었다.

‘구성주의 교육’의 역사적 전개과정

구성주의라는 틀을 가지고 교육에 영향력을 행사했던 일련의 작업 결과물들이 행사한 정치적 영향력에 집중하여 ‘구성주의 교육’의 역사적 전개과정을 간단하게 정리하는 것으로 구성주의 세미나 활동의 마침표에 대신하고자 한다.
‘구성주의 교육’이론이 서구 사회에서 구체적으로 영ㆍ미에서 제기된 이유가 무엇일까? 1980년대와 90년대 초반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90년대 중반에 소멸되어가는 과정은 그 이유를 설명하는 외적 조건이 된다. 70년대 후반 심각한 자본주의 축적의 위기 상황에 직면하여 지배계급은 계급 휴전의 서약서(복지국가)를 파기해야할 과제를 실천에 옮기게 된다. 80년대 대처와 레이건은 지배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경제정책들을 강력하게 집행하게 된다. 우리는 이제 그러한 일련의 정책을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라고 한다. 사회적 임금(복지 예산)의 삭감, 노동 강도를 강화하는 생산성 향상이라는 구호를 넘어서서 임금 삭감(성과급, 연봉제의 전면화), 최종적으로 인력 구조조정(비정규직 확산, 해고)으로 나아갔다. 이러한 정책에 대한 계급적 저항에 대한 원시적 탄압(영국의 광산노조 파업, 교사노조 파업, 미국의 케너디 공항 파업에 대한 진압은 그러한 역사적 사례의 첫 페이지를 장식한다.)에 성공하였으나 그 결과는 새로운 노동 시장의 수급 문제를 야기하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의 필요성은 행동주의에 입각한 교육이론과 실천에 대한 변용으로 귀결되었다. 근대적 대량 생산을 위한 노동 시장의 인력 수급을 위한 교육방식의 종언이 필요했던 것이다. Tyler의 논리에 근거한 매우 구체적이고 상세한 ‘교육 목표’를 확실하게 성립하고, 그것을 가르치기 위해 지식과 경험을 ‘계열화(순서화)’하고, 그것에 대한 ‘평가’를 하는 일련의 대원칙에 근거한 교육 실천은 역동하는 노동 인력 시장에 대한 지배 계급의 요구를 감당할 수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선진 자본주의 체제의 자본축적 위기는 구조조정 대상에서 교육 노동자를 예외로 인정할 수 없을 만큼 심대하였다. 이에 교육 노동자를 ‘성직자’ 혹은 ‘전문가’라고 순치시키던 당시까지의 국가의 교육 노동자에 대한 정책은 결정적 전환을 겪었다. ‘성직자’를 실직자로 전락시켜야 한다는 것은, ‘전문가’의 업무를 객관적인 수치로 평가해서 성과급, 연봉제, 해고 순위의 근거로 삼는 다는 것은 사회의 심리적 현상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이에 대한 돌파구로서 ‘수요자 중심 교육’이라는 ‘구성주의 교육’의 핵심 선전, 선동 문구가 제출되게 되었다. 판단의 시야를 교실 내로 축소해서 교사가 공급자이고 학부모가 수요자라고 강요하는 것이 ‘구성주의 교육’의 사회ㆍ정치적 함의였던 것이다.
90년대 중반 영ㆍ미에서 ‘구성주의 교육’라는 광풍의 위세가 소멸되어갔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서구의 문화ㆍ역사적 전통으로 한 동안 기세가 누그러졌던 서구의 교육노동자들이 반격(2006년 영국 교원노조의 연금법 저지 총파업의 가장 힘찬 반격으로 기록될 것이다.)에 나섰게 된 것과 학자들의 체계적인 문제제기의 성과물(학습 주체의 인지적 구성과정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 이러한 역사 진행에 한 축을 구성하게 되었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에 반하여 한국에서 ‘구성주의 교육’이 90년대 중반에 등장하여 한 동안 위세를 떨치는 과정은 한국의 문화ㆍ역사적 특수성이 반영된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유교적 문화전통(군사부일체), 치열한 신분 상승(세습)을 위한 길게는 천년의, 짧게는 수 십 년 동안 지속된 입시 전쟁의 문화, 그리고 결정적으로 교육 외 분야에서 압축적으로 전면적으로 전개된 구조조정의 끔찍한 성과는 한국에서 ‘구성주의 교육’이 영ㆍ미에서 보여준 정치적 광기의 정도를 완화시킬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형성하였다. 게다가 선비적 지조를 숭상하는 문화ㆍ역사적 전통에 근거한 교육 노동자들의 광범위한 반항적 정서(전교조 조합원보다 교총의 회원들이 더 강력하게 저항했던 정년단축 투쟁은 이러한 사례의 첫 목록이다.).  ‘학습자 중심의 교육’이라는 선전, 선동의 취지를 퇴색시킬 수밖에 없었던 교육재정의 낮은 비율로 인한 교육 시설과 환경의 열약함, 그리고 교육노동의 전망을 찾고자 하던 사람들의 실천의 결과물인 진보교육연구소를 중심으로 한 ‘구성주의 교육’ 담론의 도입 과정부터 시작된 치열한 이론적 대응과 전교조의 치열한 실천적 저항은 ‘구성주의 교육’의 선전, 선동을 통한 신자유주의 교육 공세가 관철되는데 거대한 장벽이 되었다.

지배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국가의 ‘구성주의 교육’을 내세운 공세는 지속될 것이다. 한국에서 교육 분야에 대한 구조조정의 작전 계획서라 지칭되는 “5ㆍ31 교육개혁”은 12년이 경과했지만 아직 파기되지 않고 있다. 한국 사회의 우경화된 정치지형은 건재하고 있다. 그들은 평가를 중심으로 한 서열화(학생과 학교의 서열화가 주 전선을 형성하고 있으며, 그 결과물은 곧 교육노동자의 서열화로 귀결된다.)를 집요하게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서열화를 근거로 한 성과연봉제 도입을 장기적 과제로 집요하게 추구하고 있다. 또한 당선을 장담하는 보수 우익의 대권후보들이 고교평준화를 해체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있다는 것은 한국에서 ‘구성주의 교육’을 둘러싼 담론 투쟁이 지속될 것임을 전망하게 한다.
영국의 성과를 근거로 교육 분야의 구조조정을 독촉하는 지배계급의 야만성은 객관적인 사실분석을 결여하고 있다. 교육예산을 GDP의 6.7%에서 4.3%까지 내리는데 성공한 영국의 보수당 정권은 그러한 지배계급의 이해관계를 충실하게 반영한 결과로 정권을 내놓고 교육예산의 증감으로 회귀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국의 상황과 비교하여 분석해야 한다(김용일 교수의 연구 결과 참고). 한국은 불행하게도 영국의 보수당 정권이 사활을 걸고 달성했던 4.3%의 예산지출마저도 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미약한 예산지출마저도 줄이려고  교육 분야의 구조조정을 지속적으로 시도한다면 얼마나 커다란 저항에 직면할 것이지, 그리고 시간의 경과 속에서 그 향배가 어디로 귀결될 것인지 너무도 자명하다.

‘구성주의 교육’의 변화에 대한 변증법적 분석

여기서는 세미나에서 논의된 ‘구성주의 교육’의 내용(협의의 교육이론 측면)에 대한 간결한 변증법적 분석을 행함으로서 ‘구성주의 교육’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자 한다.
구성주의 교육이론을 제창한 자들은 경험주의에 근거한 행동주의 교육이론을 역사적 실체로서 정(正)으로 설정하였다. 그에 대한 대립물로서 이성주의에 근거한 Piaget의 인지발달이론에 근거한 교육이론을 반(反)으로 설정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대립물의 모순을 지향하는 합(合)으로 모스트모던니즘, 다원주의, 실용주의를 수용하여 구성주의 교육이론을 정립하였다. 이러한 개념 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학습자의 인지 구성을 부각시킨 Piaget의 인지 이론의 주요 개념들을 채택한데 있다.
이러한 개념 형성의 결과물에 대한 명명은 태생적인 이론적 취약성을 가지고 있다. 학습의 정의 자체가 인지적 구성 과정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즉 인지적 구성 과정이 포함되지 않은 학습이라는 것이 성립할 수 없기 때문에 구성주의로 학습을 형용하고, 학습으로 구성주의를 형용하는 것은 동어반복의 오류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저급한 논리적 오류(자체 모순)를 외면하기 위한 노력으로 급진적 구성주의라는 명명이 적절하게 고안되었다.  교육장면에서 교사의 역할을 극단적으로 축소하고 학습자의 역할을 극단적으로 부각시키는 이론적 특징을 적절하게 반영한 구성주의 교육이론이 영향력을 과시하게 된 것이다.
인간의 지적 실천의 역사가 증언하듯이, 실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이론은 교육현장의 실제를 적합하게 반영한 교육이론에게 그 위상을 양도해야 하는 운명을 겪게 된다. 교육현장에서의 교사와 학습자의 활동에 대한 적합한 분석에 근거한 Vygotsky의 이론들이 Piaget의 이론에 대한 대립물로 제시되었다. 구성주의 교육이론에는 크게 급진적 구성주의와 사회적 구성주의가 있다고 한다. 지배계급의 이익을 반영하는 학자들(이후 자용(資用)학자)의 실천 활동은 둘의 합으로 사회적 구성주의라는 명명을 제안하게 된다. 사회적 구성주의라는 명명의 탄생은 자용(資用) 학자들의 실용주의적 학문 자세를 반영한 적절한 조치였다. 급진적 구성주의의 이론적 토대와 사회적 구성주의의 이론적 토대에 대한 학자들의 연구 활동은 급진적 구성주의의 이론적 토대인 Piaget의 발달이론에 심각한 결합을 지적하고 그 이론의 현대적 의미에 중대한 문제제기를 하게 된다. Cole은 개인(Piaget)과 사회(Vygotsky)의 어설픈 결합은 극복되어야 한다는 주장했다.
1994년에 “과학교육”에서 Matthews는 급진적 구성주의의 원조인 Glasfeld에 대해 “그의 급진적 구성주의 입장은 경험주의의 변종이며, 과학의 실재적 대상과 이론적 대상을 혼동하였으며, 개인주의적 특성을 가진다.”(김종문 외 1998:384)고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급진적 구성주의에서 이론의 원천으로 삼았던 Piaget의 인지발달이론에 대해 Brunner가 “The culture of education”(Brunner, 1996)에서 행한 비판은 결정타였다. 그 내용의 핵심은 피아제의 심리학 이론이 “심리 발달과 심리적 상호작용을 정확하게 기술할 때, 활동에서 관찰되어지는 아주 다양한 사회적 요소들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 틀로는 아주 단순하고, 너무 편협하고, 너무도 만족스럽지 못하다(Kerr,1997).”는 것이다.  1996년 Vygotsky 탄생 백 주년 기념 학술 대회들, 심지어 미국 발달심리학회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 결과물, 분배된 인지로서의 문화(Culture as Distrubuted Cognition)라는 부제로 개최된 미국 인류학회의 1996년 학술대회 결과물은 급진적 구성주의와 사회적 구성주의를 하나로 묶어 구성주의 교육이론을 지속하려는 자용(資用)교육 학자들의 노력에 마침표를 찍었다.
사회적 구성주의의 이론적 근거가 되는 Vygotsky의 이론체계가 인접 학문 분야에서까지 광범위한 지지를 받게 되었지만 구성주의 교육이론이라는 명명은 서구의 교육학자 사이에서  회자되지 않게 되었다. 교육 현장의 학습활동을 이론화하여 체계적으로 인식하려는 이 십여 년의 서구 학자들의 연구 과정은 ‘행동주의 교육’을 기각시키고 ‘구성주의 교육’의 내용을 완전히 새롭게 했다. 그 결과물인 사회적 구성주의는 그 원천인 Vygotsky 이론체계의 내용이 명확해지면서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한 담론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그저 교육심리학 등의 학술서적에 지난 역정에 대한 무미건조한 설명의 형태로 존재할 뿐이다. 병렬적으로 '발달의 사회문화적 관점 ; Vygotsky 이론' 등으로 간결하게 설명되고 있다(Eggen, 2006).
어떻게 이렇게 간단하게 퇴각할 수 있었을까? 짧은 기간 동안 Vygotsky의 이론을 이해하기 위하여 노력한 나의 활동은 그 대답을 제공하기에 충분하다. 그의 이론체계를 적절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1991년 소비에트 제국의 붕괴 이후 낡은 이론으로 취급받던 Marx의 세계 인식의 도구인 변증법, 역사주의, 유물론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하고 그들 간의 역동적인 탐구 과정을 종합적으로 사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식 주체의 능동적 인지 구성의 비밀이 혁명적 실천이라는 학문적 결론에 기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왜 우리는 Vygotsky를 모르고 있었지?

무엇보다 먼저 한국의 좌파가 러시아의 혁명적 당 이론이라 할 수 있는 레닌주의와 경제적 거대 담론에 치중하여 사회주의 학습을 하였다는 지난 궤적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심리학이나 교육과 관련된 이론적 학습의 필요성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비고츠키는 마르크스주의 인식론의 텅 빈 공간을 채우는데 적절한 이론적 틀을 제시했다. 비고츠키가 행한 인식주체에 대한 분석과 인식주체가 대상을 인식하는 과정에 대한 체계적인 설명은 마르크스가 행한 대상에 대한 과학적 분석과 함께 종합적으로 고려되어야 마르크스주의 인식론이 한 단계 비약할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 한국의 문화적 대미종속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학문 분야에서는 특히 그러한다. 교육학 관련 분야는 그 중에서도 언급할 가치도 없는 분야이다. 이런 배경을 전제로 하고 살펴보겠다. 미국에서도 1962년에서야 비고츠키가 “언어와 사고”라는 영문 번역 단행본으로 처음 소개되었다. 그 책의 서문에서 브루너는 “비고츠키의 발달 개념은 동시에 교육이론이다.”고 했다. 1987년 비고츠키 전집 1권의 서문에서 그는 “자신이 그 말의 뜻을 절반도 깨닫지 못했다”고 적고 있다. 계속해서 그는 “사실상 비고츠키의 교육이론은 발달이론이면서 문화적 전이 이론이다.”고 했다. 이러한 사실은 미국의 학계에서 비고츠키의 이론을 이해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는지 웅변하는 일례일 뿐이다. 그의 이론은 조각조각 해체되어 이론의 중대한 의미가 훼손되기도 하면서 너무도 많은 교수학습이론의 방법론의 원천으로 채용되어 졌다. 그러한 과정에서 개인주의적, 실용주의적 문화적 채색이 이루어졌으며, 문화적 상대주의에 의한 이해의 한계까지 노정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후에 한국에 비고츠키가 소개되었다. 이러한 결과 학문적 성과물들은 총체성을 상실하고 세세한 부분적 내용의 실증주의적 성과와 관련하여 서술되고 있으므로 관심을 끌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교육노동운동 진영의 교수-학습 이론에 대한 체계적 틀 확립을 위한 노력이 최근까지도 미미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비고츠키를 마르크스주의 교육학의 창시자로 자리 매김할 연구역량을 형성하기 위한 주체들의 다방면에 걸친 노력이 필요하다. 아래 사진의 인물은 마르크스이며 위 사진의 인물은 비고츠키가 교사들에게 강의하는 장면이다.


구성주의를 넘어 비고츠키의 문화-역사적 이론 바로 알기로

구성주의의 교수-학습 이론의 문제점을 찾고자 시작한 몸짓이 Vygotsky를 바로 알기로 변질된 아니 발전된 과정을 간결하게 제시했다. 이러한 작업 과정에서 느낀 점을 간단하게 정리하는 것으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하나, 구성주의라는 개념의 내용을 형성하고 유지하고 교체하고 확장하는 과정도 결국은 그 시대적 상황, 즉 계급투쟁의 실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자본과 노동을 대변하는 두 축으로 확연히 구별되지 않는 다양한 중간이 존재하는 것도 유사하며, 그러한 사실이 개념에 대한 이해를 더 어렵게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둘, 한국의 교육학자 층이 엷다보니, 그리고 학문적 전통이 일천하다보니, 외국의 학문 사조를 받아들이면서 내용보다는 정치적 구호에 치중하는 듯이 보이는 현상이 구성주의 교육이 전파되는 과정에도 극대화된 양상이었다.
셋, 좀 더 적극적으로 그 내용을 파악하고 학문적 결과로 집적하고자 하는 학자들의 노력도 전체적 흐름, 역사적 과정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었다. 공동체 문화를 기반으로 한 Vygotsky의 연구 결과물을 개인주의적 차원으로 변질시킨 가공품을 수입함으로써 생기는 문제에 대한 대처가 미흡하였으며, Vygotsky의 연구물이 만들어진 시대적 상황과 가지는 역사적 의미를 반영하는 것이 부족하였다. 결정적으로 한국의 현실에 적용하는 데 어떤 문제점이 있는 지를, 즉 개선되어야 할 한국 교육 현실을, 적절하게 지적하는 실천적 자세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넷, 거대한 이론적 틀을 부분, 부분으로 해체시켜버린 미국의 학문적 역량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가장 적대적인 이론을 철저하게 병렬적으로 해체시킴으로서 개인주의 문화에 적합한, 자본주의 체제 재생산에 유리한 이론에 접목시키는 기술은 이윤추구를 위해서는 모든 것을 상품화하려는 자본주의의 최후 단계인 금융자본주의의 투기 기술을 연상시킨다.
마지막으로, 비고츠키의 문화-역사적 이론은 거대한 종합적 이론이라는 것이다. 특히 교육과 관련된 이론이라는 것이다. 먼저 구성주의와 별개의 이론으로 정립되어야 한다. 한국의 상황에 적합하게 적용하고 발전시켜야 하는 미래 교육의 주요 내용을 담고 있으므로 차후 지속적으로 심도 있는 연구가 학계에서 교육운동진영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비고츠키 관련 자료 간단 소개

사고와 언어
1985년에, 신현정 교수(현재 부산대 심리학과)가 “사고(思考)와 언어(言語)”를 소개했다. 이 책은 1962년에 미국에 처음으로 번역된 비고츠키의 저작이다. 그 영어 번역 단행본 “Thought and Language"를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비고츠키의 사회 속의 정신 : 고등 심리 과정의 발달
1994년 Vygotsky의 글을 모아 엮은 “비고츠키의 사회 속의 정신 : 고등 심리 과정의 발달”이라는 이름의 책이 소개되었다. 번역의 대상으로 삼은 책은 Michael Cole 등이 1978년에 편집한 “Mind in Society ; The Development of Higher Psychological Processes."였다.

비고츠키 ; 마음의 사회적 형성
1995년에 또 다른 번역서가 국내에 소개되었다. 이번에도 공동 번역의 형식을 취했다. 한양대 사회인지발달연구모임에서 “비고츠키 ; 마음의 사회적 형성”이라는 책을 내놓았다. 그들은 1985년에 Vygotsky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J. V. Wertsch가 쓴 “Vygotsky and the social formation of mind"를 완역하였다.

어린이들의 학습에 비계설정 : 비고츠키와 유아교육
같은 해에 유아교육과 관련한 책이 한 권 번역되어 창지사에서 출판되었다. Berk, L. E. & Winsler, A.(1995) Scaffolding children's learning: Vygotsky and early childhood education.를 홍용희 교수가 번역하였다.  


정신의 도구 : 비고츠키 유아 교육
이제 최근 10년 안에 소개된 책들을 정리할 순서다. 먼저 1998년에 김억환 교수와 박은혜교수가 옮긴 책을 소개하겠다. 번역의 대상이 된 책은 “Tools of the Mind : The Vygotskian Approach to Early Childhood Education"이다.


아동의 상상력과 창조
부산대학교 교육학과 출신의 팽영일 교수가 1999년에 Vygotsky의 원전을 번역하였다. 옮긴이의 말에서 번역자는 “비고츠키의 가장 중요한 공적은 그가 인간 의식의 사회ㆍ역사적 본질에 관한 마르크스주의적 명제를 구체적인 심리학 연구에 적용하였다는 점이다. 비고츠키에 의하면 인간의 고등 심리 과정(논리적 기억, 개념적인 사고 등)은 노동 과정과 같이 ‘정신적 생산’ 도구(언어)의 도움에 의해서 실현된다고 한다. 그런데 기호는 인간의 공동 생활동 속에서 만들어진다. 그리고 개개인은 기호의 도움에 의해서 사고를 한다. 이러한 기호의 매개에 의해 점차 외적인 것이 내적인 것으로 바뀐다. 그는 개념의 발달에 따라 의미 관계도 변하는 동시에 지각과 사고, 의지와 감정 등에도 새로운 상관관계가 수립된다고 설명하고 있다.”고 Vygotsky에 대해 정리하고 있다.

비고츠키와 교육 : 문화-역사적 접근
1999년에 드디어 국내 연구자에 의한 Vygotsky 연구서가 세상에 선을 보였다. 한국 교육 개발원에 근무하는 한순미 연구원에 의해 “비고츠키와 교육 : 문화-역사적 접근”이라는 제목으로 박사학위 논문을 보완한 형태로 모습을 드러냈다. 서문에서 저자는 문화-역사적 접근이라고 부제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초등영어 놀이와 게임 :비고츠키의 사회문화적 관점.
21세기 들어서 오랜 침묵을 깨고 작년에 이완기 교수와 David Kellogg 교수가 초등 영어 교과와 관련한 연구 결과물을 세상에 내 놓았다. 영어 제목은 “Play and Games in Primary ELT : A Vygotskyan Sociacultural Perspective"이다. 한국에서 자신을 Vygotskyan이라고 호칭할 수 있는 첫 연구자의 성과물이다. 그 내용은 동시대 연구자들과 호흡을 같이하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으며, 최근의 Vygotsky 연구 성과가 그대로 녹아 있다.

비고츠키주의자의 언어적 자기 규제론과 도덕 교육
2007년에 국내 연구자에 의한 두 번째 책이 출판되었다. 비고츠키 학파의 삼총사, 비고츠키, 루니아, 레온테프의 이론을 비교하면서 언어에 의한 자기 규제와 도덕 교육의 관계에 대해 설파하고 있다. 여기서는 국내 연구 기반의 미흡으로 비고츠키 문화-역사적 이론을 상대적 구성주의와 명확하게 구분 짓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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