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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 논단_지적재산권과 건강

2004.04.28 15:44

jinboedu 조회 수:1393 추천:37

지적재산권과 건강
곽경호 ∥ 평등사회를위한민중의료연합

우리 사회에서 몸이 아플 때 치료하기 위한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명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의료 서비스에는 의약품의 비용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먹어야하는 약인데 약가는 상식이상으로 높게 책정되어 있다. 그런데 약가가 왜 이렇게 비싼가를 들여다보면 지적재산권의 영향이 크다는 것을 알게된다. 신약을 개발하는데 많은 비용이 들고 그 비용을 회수하기 위해서는 약가가 비싸더라도 정당하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만드느라 고생한 회사는 그 비용을 응당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보다 정확히 말한다면 그것을 팔기 위해 특허를 받은 회사의 고생이라고 해야한다. 온전히 그 회사의 비용으로만 개발된 약은 없기도 하고 그 지식이라는 것이 어디까지가 그 회사의 것인지 판가름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WTO와 트립스협정(TRIPs,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

먼저 WTO체제하에서 공중보건에 관한 지적재산권 논의를 살펴보면, TRIPs에서 의약품 특허권이 쟁점이 되고 있다. 문제가 되었던 부분은 최빈국/개도국 그룹과 선진국간의 '강제실시권' 실시에 대한 것이다. 강제실시권이란 어떤 의약품에 대해서 특허권자의 승인없이 제3자가 그 약을 만들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강제실시권을 발동하면 브랜드 약물을 사먹을 능력이 없는 가난한 나라에서는 낮은 가격에 동일한 성분의 약(일반약)을 먹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 약에 대해 특허를 가지고 있는 제약회사는 강제실시권에 대해 찬성할 수 없기 때문에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선진국들은 이를 강제실시권을 발동할 수 있는 요건을 까다롭게  규정하려고 했었다.

결국 지난 칸쿤 각료회의전 8월 30일 TRIPs이사회는 계속적으로 쟁점이 되던 부분을 '830결정'이라는 반쪽의 합의로 이끌어냈다. 일반약을 필요로 하는 국가가 수입을 위한 강제실시를 하기 위한 조건은 '산업·상업적 목적으로 쓸 수 없다'는 것이다. 산업·상업적 목적이 아닌 방식으로 생산하기 위해서는 '공공의' 기구에 의한 생산이 필수적인데, 공공(혹은 국영) 제약 회사가 존재하는 경우는 전 세계적으로 희귀한 일이기 때문이다. 설사 수입을 위한 강제실시 결정이 내려져서 일반약을 수입해 오게 될 때에도 상당히 까다로운 절차를 밟게 되어 있어 그 실효성이 의문스럽다. 제약 산업의 국가적 인프라가 상당히 취약한 제3세계는 물론이거니와 한국과 같은 중진국도 수입을 해 올 수 있는 강제실시를 시행할 수 있다는 것은 중요한 문제다. 특허로 인한 배타적 독점권 때문에 상대적으로 값비싼 특허의약품을 먹는 것보다 역시 상대적으로 값싼(글리벡의 복제약 비낫의 가격은 글리벡의 10분의 1 수준) 복제약을 먹을 수 있는 것은 곧 '생명에 대한 접근권'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자유무역협정(FTA)과 트립스 강화 경향

세계적으로 자유무역협정이 늘고 있다. 특히 미국과 자유무역 협정을 맺는 나라들이 대륙별로 늘어나고 있는데 이 협정들의 논의과정을 살펴보면 대부분 공통적으로 트립스 강화 효과를 나타내도록 되어있다. 자유무역협정안에는 도하선언에서 명시한 강제실시권의 발동을 제한하는 조항을 넣거나, 특허의 보호기간이 트립스에서 보장하는 것보다 더 길게 보장되도록 하고 있다. 이를테면, 미-싱가폴 FTA의 경우, 특허기간의 연장으로 특허보호 기간을 50∼70년으로 한다는 조항(Article 16.4.4)이나 올해 2월경 미무역대표부가 제시한 미주자유무역지대 협정(FTAA)에 대한 요구안에서 강제실시의 승인을 철저히 공공영역과 비상사태만으로 제한하는 문제(5.1조), 강제실시된 상품의 수출 금지(5.1조), 특허가 승인된 이후 4년간 강제실시 사용 제재(5.3조)등의 조항이 바로 그것이다.

또 더욱이 문제가 되는 것은 각 나라에서 시행하고 있는 여러 보건 정책들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브라질 정부는 90년대 중반이후 공공제약회사를 통해 의약품의 일반약을 무상으로 공급해 비용도 절감하고, 에이즈에 의한 사망률과 새로운 에이즈 감염율을 50%수준으로 낮추는 정책을 펼쳐왔다. 그런데 FTAA에 의한 지적재산권 강화에 따르면 더 이상 그럴 수준으로 약을 공급하는 것은 어려워질 것이다.

호주 같은 경우에는 의약품 급여제도인 PBS(Pharmaceutical Benefit Scheme)에 위협을 당하고 있다. 미 제약협회는 끊임없이 PBS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해왔고, 다른 나라에도 마찬가지지만 호주의 의약품 정책 전반을 감시하고 수정하길 요구해왔다. 이 제도에는 비용효과를 평가하는 경제성 평가가 있는데 이 때문에 브랜드 약물이 손해를 본다는 것이다. 현재 호주와 미국은 비공개 서신을 주고받으며 이에 대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지적재산권이 민중의 건강에 우선하는가

지적재산권을 보호하는 기준을 표준화하는 것이 자본에게 남은 관건이고, 이를 통해 지식을 자본이 완전히 통제하려고 하는데 기준이 되는 것들이 트립스나 자유무역협정과 같은 국제 협정들이다. 어디까지 특허를 보호할 것인가가 논란이 되고 있지만, 사실 동식물까지 특허를 부여하려고 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민중이 의료서비스뿐만 아니라 교육, 식량까지 자본에 의해 통제받고 있다.

얼마전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이라는 약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백혈병 환자들이 아픈 몸을 이끌고 투쟁했던 사례가 있다. 한 알에 2만 5천 원에 달하는 약값은 그 약을 사먹어야 하는 사람들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약 뿐만 아니라 보통 신약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그것을 개발하는 비용에 있어 국가의 보조금이나 혹은 그 이외의 민간 보조금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엄밀히 따지면 그 약을 개발하는데 드는 비용과 노력이 온전히 제약회사의 것이라 할 수 없지 않은가. 사실 그를 위한 지식 또한 전해 내려오는 지식에 덧붙여진 새로운 지식들로 이루어진 것이다. 새로운 지식에 따라가는 특허에 대한 보장은 너무 막대하여 어지간한 사람은 약을 사먹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막대한 자본의 이익을 전세계적으로 보장해주는 것이 지적재산권에 대한 국제조약들이다.

원래 역사적으로 있었다고 그들(!)이 판단하는 것들을 제외한 동식물들, 유전자조작식품과 새로 발견한 미생물에 특허를 부여하고 이를 좌지우지하겠다고 한다. 오랜 기간동안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품종을 개발해도 누군가가 먼저 특허 등록을 마치면 그만인 것이다.

지적재산권의 문제는 이제 국제협정의 커다란 쟁점이 되었다. 그만큼 논란의 여지도 많고, 실제로 민중들에게 돌아오는 피해도 막대하다. 인간으로서 누려야할 기본적인 공공영역까지 지적재산권의 보호를 들먹이며 침투하고 있다. 자본의 소유권을 형태도 없이 보호해 주는 지적재산권은 앞으로 어느 영역까지 확대될지 모르는 지경에 있다. 지적재산권이 자연의 모든 것을 누군가가 팔 수 있도록 보장하게 되면 숨을 쉴때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지경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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